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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20:06:10

제1경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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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경비단
第1警備團
1st Security Group
파일:제1경비단 흉장.png
행동으로 충성하자
창설일 1996년 12월 1일(제1경비단)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수도방위사령부
규모
역할 서울특별시 대테러 작전 북악산 인왕산 경비
단장 대령 조성현(학군 39기)[1]
위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 개요2. 역사3. 예하부대
3.1. 단본부 직할대3.2. 제1경비대대 청룡3.3. 제2특수임무대대 백호3.4. 제35특수임무대대 태호3.5. 지원부대
3.5.1. 과거 배속되었던 부대
4. 출신인물
4.1. 역대 경비단장
4.1.1. 30대대/30단장4.1.2. 33대대/33단장4.1.3. 역대 제1경비단장
4.2. 장교/부사관4.3. 병
5. 기타
5.1. 근무환경5.2. 선발5.3. 경비단가
6. 사건사고7. 여담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를 근거지로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경비부대. 1996년 12월 17일 창설되었으며, 청와대 외곽 및 북악산 인왕산 일부 경비를 담당했다. 즉 전방 GOP, GP와 비슷하게 서울 도심 속 주둔지와 산 속 근무지를 6개월 단위로 교대[2]하며 근무했다. 인왕산이나 북악산에서 종종 보이는 군인들은 대부분 이 부대 소속 장병들이다.

실제로 격오지 대우를 받아 과자, 컵라면 등의 특수근무자 증식도 나온다. 교대하는 단위는 두 대대인 청룡대대와 백호대대였으며, 그 변천사에 대해서는 아래 역사 문단 참고. 수방사 특성상 인력난에 시달리는 만큼 비번이 없는 건 물론이었고 청와대 근위부대라는 명칭에 걸맞은 각종 작전 및 훈련을 특정지 근무와 병행해서 진행했다! 잠이 부족하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시위[3]라도 벌어지면 증가초소까지 투입되었으므로 업무강도가 배로 늘어났다.

대통령 경호부대로써 대통령 취임식과 6월 현충원 참배 경계작전에 투입되어 현충원 주변 경계를 위해 야영을 하며 2박 3일의 주야간 경계근무를 펼쳤다. 2000년 경까지는 대통령이 참석하는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도 투입되어 주변 경계를 맡았다.

2. 역사

수방사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부대들 중 하나고, 심지어 나이 좀 있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수방사 = 제1경비단 병력 + 그 외 나머지 기타 등등'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수방사 창설 목적이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정변 세력의 보호를 위한 친위대 성격이 강했고 그 핵심이 1경비단의 전신인 30, 33대대였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제1방공여단 제1113공병단이 편입되기 전까지는 수방사 직할부대 중에 경비단과 비교할 만한 사이즈의 부대가 기껏해야 군사경찰단 말고는 없었기도 하고, 방공여단과 공병단은 편입된 지금도 본부는 경기도에 있는 등 수방사 나머지 직할부대와는 좀 따로 노는 분위기가 강하다보니 여전히 수방사의 메인은 경비단으로 여겨진다.

제1경비단의 시작은 5.16 군사정변 때 서울로 진입한 두 개의 수도권 지역 향토예비사단이었던 30사단[4]과 33사단[5]의 병력이다. 5.16 쿠데타 성공 이후에 이 두 개 사단에서 각각 1개 대대가 서울에 남아 그것이 30대대와 33대대라고 불리다가 1974년에 차지철이 경호실장이 되면서 경비대대에서 경비단으로 확대개편되어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 되었다. 즉 수방사 창립 멤버다.

두 부대의 주둔지는 30단은 경복궁[6], 33단은 현 1경비단 주둔지 위치에 주둔했다. 친위세력인 만큼 30단과 33단에 중대급 소규모 전차 부대까지 운용을 하였으며 한국 수도이자 정치의 중심 서울 도심에 있는 유일한 전투병력이기에 요직 중 하나였다.

이때문에 12.12 군사반란의 핵심 병력으로 제30경비단장 장세동 보병 대령과 제33경비단장 김진영 보병 대령은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을 배반하고 쿠데타의 주축이 되었으며 김진영이 잠시 자리를 비운 33단은 사령관 장태완 명령 하에 전차중대가 출동해 30단과 교전할 뻔 했었다. 게다가 정부군 상층부의 안일한 판단으로 9공수를 물러나게 하자마자 1,3 공수부대가 국방부를 공격하였고 김진영은 33단에 복귀하여 가용 전투병력을 모두 잃은 장태완 장군은 다 끌어모아 최후의 저항을 하려 했지만 부하들에게 만류되었으며 그나마 남은 전투병력인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가 배신을 때리며 반란군에 가담하자 눈물을 머금고 저항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7][8]

이들이 현재의 제1경비단으로 통합된 것은 김영삼 정부시절인 1996년으로, 하나회 숙청 완료 후 추후 또 군사 사조직이 악용할 가능성을 차단 겸 군사정권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조직통합이 목적이었다. 통합 후 현재의 위치인 구 33단 주둔지에 자리잡았으며, ( 참고) 30단은 청룡대대, 33단은 백호대대로 격하되며 병력은 2/3로 축소되었다. 더불어 당시까지 경복궁 내에 함께 주둔했던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들도 삼청동으로 이전했다. 이후에도 근무영역은 그대로여서 청룡대대는 북악산, 백호대대는 인왕산에 한번에 2개 중대씩을 투입하여 6주마다 교대를 실시하며 전담 방어했으나 2001년부터 대대 단위로 부대교대가 실시되어 각 대대가 전 구역을 다 담당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참 아이러니하게도, 명색이 대통령을 지키는 경비부대인데 5.16 군사정변 12.12 군사반란이라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양대 쿠데타 모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부대, 혹은 그 후신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권력의 핵심 중 핵심에 해당하는 부대라,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 노태우, 그 외에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군사정권 시절의 군인 출신 정치인 상당수가 30단 또는 33단의 단장에 취임했었다.[9] 이 흔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아서 1경비단장( 대령)은 유사한 성격의 55경비단장과 함께 육군 보병 장교의 핵심 진급 코스 중 하나다.[10] 단가나 영내 여기저기 붙어있는 슬로건에도 근위부대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2009년도 노무현 대통령 경복궁 앞 추모식이 있었을 때에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비상출동 대기한적이 있다. 총기휴대는 없었던것으로 기억.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에 따르면 계엄령의 첫 스타트를 끊는 부대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1경비단 장병들은 이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임무가 청와대 지키는 거니까, 명령 받아서 출동하고서도 그게 계엄령 시작인 줄 모를 거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를 떠나 북악산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고 하니 경비단이 없어지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청와대나 광화문이나 서울 한가운데 있는 건 똑같다는 점, 그리고 유사시에 경비단의 역할 등을 생각하면 경호부대는 몰라도 경비단 자체는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광화문 이전이 공수표가 되면서 경비단 역시 존속이 확정되었다.

2019년, 각 대대 편제가 4개 중대에서 3개 중대로 축소되었다. 30단/33단 시절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것. 이는 병력 자원 감소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

2020년 11월 1일 북악산 일부 구간이 전면 개방되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대통령 경호라는 부대의 존재의의가 사라지게 되었다. 55경비단처럼 경호실이 통제하는 작전부대들은 용산으로 이동했지만 1경비단은 여전히 현 주둔지에 남아있으며, 용산으로 가려고 해도 이동할 공간도 없고 기존 국방부 경계부대들이 있어서 이동할 필요도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 지키던 '수호신부대', 등산객 안전지킴이 전락했다"

그렇게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 외곽을 경비하는 부대는 아니게 되었다 해도 부대가 주둔하는 북악산과 인왕산 부근은 서울 시청 및 주요 기관들이 몰려있는 중구 및 종로구 지역을 감제하는 중요한 장소이며 수도 서울을 수호하는 주요부대임은 여전하며 2023년에는 대테러 부대로 지정이 되었다. 다만 개편 과정에서 부대 규모가 또 축소되었다.

서대문구에서는 꾸준히 경비단을 내보내고 부지를 재개발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2024년 3월 2일에도 서대문구 주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경비단을 이전시키고 그 부지에 바이오단지나 서대문형무소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 테마관광지를 만들겠다고 한다. #

3. 예하부대

3.1. 단본부 직할대

3.2. 제1경비대대 청룡

1대대인 청룡대대는 본래 30단 시절부터 북악산 경비를 전담했으나 2001년부터 동시교대로 양쪽 섹터를 모두 경비한다.
2023년 현재 교대를 하지않고 섹터 경비를 전담중이다.

3.3. 제2특수임무대대 백호

2대대인 백호대대는 본래 33단 시절부터 인왕산 경비를 전담했으나 2001년부터 동시교대로 양쪽 섹터를 모두 경비했다.
2023년 현재 교대를 하지않으며, 2023년 대테러임무를 부여받아 특수임무대대로 개편완료 되었다.

33경비단 시절엔 이름이 비슷한 33헌병경호대와 종종 혼동되곤 했으며 심지어 언론에서도 가끔 헷갈려 하거나 아예 같은 부대인 줄 알기도 한다. 같은 수방사 소속 근위대라는 공통점에, 거기다 잘 알려지지 않은 레어한 부대라는 이유까지 겹쳐 둘을 혼동하는 사람이 꽤 있다. 참고로 33경비단의 명칭은 모태인 제33보병사단에서 온 반면 33헌병경호대의 명칭은 차지철이 직접 지은 이름으로, 둘의 고유명칭의 유래도 전혀 상관이 없다.

3.4. 제35특수임무대대 태호

2023년 제1경비단의 부대 개편으로 수도방위사령부 직할 독립대대에서 제1경비단 예하 부대로 소속이 변경되었다. 상징명칭은 '태호(太虎)부대'

과거 부대 명칭은 제35특공대대(상징명칭은 '독거미부대')로 일반적인 육군의 특공연대처럼 부대 이름에 '특공'자가 들어가지만, 수방사 직할부대가 다 그렇듯 야전 성향이 강한 다른 육군특공대들과는 달리 시가전과 대테러에 특화된 모습을 보인다. 1991년 3월 2일에 창설되었으며, 수방사에서 부르는 약칭은 '삼오특공' 또는 '삼오특임'

3.5. 지원부대

3.5.1. 과거 배속되었던 부대

2000년 경에는 K-1을 13대[11], 중대본부용 K-200을 1대 장비했다. 전차대대 소속 다른 중대인 2중대, 3중대는 물론 수방사 예하사단 전차대대도 모두 M48A5K였으므로 당시에 경비단에 파견을 나온 1중대는 수방사 유일의 K-1 중대였다.

4. 출신인물

4.1. 역대 경비단장

청와대를 지키는 만큼 장성급 장교 진급률이 높은 대령 계급 지휘관 최고 요직 중 한 곳으로[12], 역대 단장은 대부분 고위직으로 진급했다.

30단/33단장 시절부터 전임 1경비단장인 정재우 대령까지 역대 전원이 육사 출신이었으나 조성현 대령이 최초로 비육사 출신 단장으로 보직되었다. 대통령실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함에도 경호작전, 대테러작전 등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부대임은 변화가 없다.

4.1.1. 30대대/30단장

75년에 규모가 연대급으로 확장되면서 대대에서 단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소령, 이후 중령, 70년대 후반부터 대령이 단장을 맡았다.
||<bgcolor=#ffe475> 역대 ||<bgcolor=#ffe475> 이름 ||<bgcolor=#ffe475> 재임 기간 ||<bgcolor=#ffe475> 최종 계급 ||<bgcolor=#ffe475> 임관 ||<bgcolor=#ffe475> 비고 ||<bgcolor=#ffe475> 기타 ||
1대 손영길 == 준장 육사 11기 ==== 소령으로 취임
2대 전두환 1967.8.11. ~ 1969.12.11. 대장 육사 11기 대통령 중령으로 취임
3대 === == == 육사 ==기 ====
4대 === == == 육사 ==기 ====
5대 이종구 1973 대장 육사 14기 국방장관
6대 === == == 육사 ==기 ====
7대 이대희 == == 육사 15기 병무청
8대 === == == 육사 ==기 ====
9대 장세동 == 중장 육사 16기 경호실장, 前 안기부장 12.12 군사반란 당시 단장
10대 이현우 == 중장 육사 17기 경호실장, 前 안기부장
11대 김상준 == 중장 육사 19기 합참 작전본부장
12대 이충석 == 소장 육사 21기 합참 작전부장
13대 === == == 육사 ==기 ====
14대 === == == 육사 ==기 ====
15대 === == == 육사 ==기 ====

4.1.2. 33대대/33단장

||<bgcolor=#ffe475> 역대 ||<bgcolor=#ffe475> 이름 ||<bgcolor=#ffe475> 재임 기간 ||<bgcolor=#ffe475> 최종 계급 ||<bgcolor=#ffe475> 임관 ||<bgcolor=#ffe475> 비고 ||<bgcolor=#ffe475> 기타 ||
1대 === == == 육사 ==기 ====
2대 === == == 육사 ==기 ====
3대 === == == 육사 ==기 ====
4대 === == == 육사 ==기 ====
5대 === == == 육사 ==기 ====
6대 === == == 육사 ==기 ====
7대 === == == 육사 ==기 ====
8대 === == == 육사 ==기 ====
9대 고명승 == 대장 육사 15기 국군보안사령관
10대 김진영 == 대장 육사 17기 육군참모총장 12.12 군사반란 당시 단장
11대 김정헌 == == 육사 18기 육군사관학교 교장
12대 김종배 == == 육사 20기 前 야전군단장
13대 유효일 == == 육사 22기 육군대학 총장
14대 === == == 육사 ==기 ====
15대 === == == 육사 ==기 ====
16대 === == == 육사 ==기 ====

4.1.3. 역대 제1경비단장

#redirect 제1경비단
볼드체 대장 진급이 된 경비단장.
||<-6><bgcolor=#ffe475> 역대 제1경비단장 ||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간
0대 윤영범 소장 육사 33기 국방비서관
0대 김용현 중장 육사 38기 수방사령관 경호처장 국방장관
0대 정기봉 소장 육사 39기 1군지사령관 [13]
8대 구홍모 중장 육사 40기 수방사령관
現 미군기지 이전사업 단장
[14]
9대 최병혁 대장 육사 41기 연합사 부사령관
주사우디 대사
[15]
10대 김동열 준장 육사 43기 체육부대[16] [17]
11대 전동진 대장 육사 45기 지작사령관
12대 강호필 대장 육사 47기 지작사령관
13대 손광제 소장 육사 48기 교육사 교리발전부장
14대 지영수 대령 육사 49기 단장
15대 구삼회 준장 육사 50기 지작사 작전처장
16대 김지면 준장 육사 52기 합참 작전1처장
18대 김종화 준장 육사 53기 지상작전사령부 작전과장
19대 권영환 대령 육사 54기 합참 지통3팀장 [18]
20대 정재우 대령 육사 55기 합참 정책과장
21대 조성현 대령 학군 39기[19] 단장 [20]

4.2. 장교/부사관

3군단 주임원사 역임
제5대 합참주임원사 역임

4.3.

5. 기타

5.1. 근무환경

단본부는 서울 시가지 한복판에 아파트 학교에 둘러싸여 있다. 군사보안이지만 하도 면회가는 곰신들이 많아서 네이버 검색만 해봐도 다 나온다. 심지어 구글 지도에 '제1경비단'이라 검색하면 위치가 대놓고 나오는 수준이다. 국군정보사령부 같은 다른 서울 소재 부대들처럼, 80년대까지만 해도 주변이 그냥 다 이었지만 그 후로 도시화가 급격히 진전되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 부대 특성상 제1경비단 주둔지는 수방사 직할 부대들 중에서도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 통합주둔지를 제외하면 유달리 도심에 있는 편이다.

실제로 오후 전투체육때는 연병장에서 도수체조 등을 하면, 주위에 체육공원 언덕배기위로 올라와서 운동하시는 어르신들이 동물원 구경마냥 군인들을 구경한다.

실제 근무지는 물론 속에 있으며 진짜 보안에 더 민감한 쪽은 이쪽이다. 다만 예하대대 및 지원중대 소속 경계병력이 아닌 단본부 행정병이나 일부 파견인원을 제외한 운전병들은 일반적인 수방사 병사들과 비슷한 생활을 하게 된다. 특정지 뿐 아니라 일부는 대통령경호처 및 그 예하기관에 파견나가 근무하기도 한다. 이 경우 같은 수방사 소속의 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33, 55, 88)와는 별개의 파견인원으로 취급되며 어색한 동거관계(?)가 이뤄지기도 한다. 제1경비단과 경호부대는 좀 데면데면한 편이라는 속설이 있다.

이처럼 중요한 부대이다보니 후방 부대임에도 현역으로 부대가 완편되어 있다. 전시에도 병은 예비군이 충원되지 않는다. 부대 특성상 전시에 수방사 예하사단에 지역을 인계하고, 어느 곳으로 이동한다. 간부[21]만 예비역이 충원될 수도 있다.

다만 장비 경신은 늦다. K2 소총도 30만번대의 낡은 물건에 2000년대 후반까지도 각 소대 M60 기관총이 지급되어 있었다. K3 경기관총은 "내년에 나온다"는 소문만 몇십 년 동안 계속 돌다가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야 나왔다. 2010년 4월 K3 보급이 시작되기전 집체교육이 있었고, 2017년 3월에는 소대당 두 정씩 화기분대가 장비했다. M60때와 보유량은 같다.

1경비단 복무의 가장 큰 낙은 서울시내 야경보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를 내려다보는 위치의 부대들이 다 그렇지만. 주둔지 저녁 식사 후 식당 앞 흡연장에 서서 흡연하며 감상 할 수 있는 남산타워의 야경은 가히 최고라고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근무지인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을 더 높게 치는 전역자들도 있으니 개인의 주관이 개입된다고 보는 게 옳다. 또한 인왕산 근무부대는 등산객들이 많아 등산객 구경하는 것도 재미다. 물론 등산객도 감시대상이므로 감시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개갈굼을 먹게 된다.

근무강도 뿐 아니라 군기도 매우 센 것으로 유명한데, 보통 2000년대 초 혹은 그이전까지 대부분의 군대가 말년에는 아무것도 안하는게 일반적이지만 이곳은 그렇지가 않았다. 2010년까지만 해도 말년휴가 나가기 전날까지 청소를 하거나 근무를 나가는 인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부대를 보는 눈이 워낙 많기 때문에 FM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장 주둔지든 소초생활이든, 주위에 민간인들 투성인 데다가 부대특성상 스타계급들이 워낙 자주 방문하다보니 타부대처럼 가라로 돌리다 걸리면 간부들 입장에서는 정말 큰일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대장급 이상부터는 전부 엘리트 진급코스를 받고 온 인물들이고 또 장군을 목표로 군생활 하는 사람들이라 당연히 FM이 일상화기 때문에 군기가 빡센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 유일하게 실탄을 휴대하고 민간인과 직접 접촉하면서 근무하는 부대라는 점도 빡센 군기의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제55경비단도 실탄을 소지하긴 하나, 이들은 민간인을 접촉하지 않는다. 경비단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초소 근무중에 총과 탄약을 소지한 채 그대로 서울 시내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다. 때문에 경비단 배정 자원들도 모두 신원조회를 기본으로 받는다.

경비단에서는 2013년까지 주단위 동기제를 유지했다.[22] 이게 지속된 이유인즉슨 부대 운영 특성상 2, 3달 안에 많은 인원이 신병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월별로 선후임을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2014년[23]이 되어서야 당시 대대장에 의해 병영부조리 척결의 일환으로 월별 동기제로 전환되었다. 같은 시기 전방 육군 사단 중에는 1년 동기제가 도입된 곳도 있었다는 것에 비하면 상당히 뒤쳐진 것이다.

5.2. 선발

과거 쌍팔년도에는 전방 부대를 돌면서 몸 좋은 병사들을 그냥 골라서 뽑아 왔다는 고참 부사관들의 증언(1999년 경)이 있다.

1경비단의 전신인 수방사 30경비단의 경우 1991년 이전에는 키 178cm 이상, 시력 1.5 이상, 격투기 유단자, 오다리제외, 청와대에서 요구하는 신원조회 통과자로 신교대에서 차출해 왔다. 1992년에는 키 175cm 이상으로 기준이 완화 되어 키가 175cm였던 한 병사의 별명이 "땅콩"이었다는 슬픈 전설(당사자에게 확인가능)이 있다. 그러다 1993년 2월 김영삼 전대통령 취임 후 문민정부라는 미명아래 수방사를 탄압(?)하기 시작했고, 일시적으로 뺑뺑이를 통해 175cm 이하, 안경낀 병사가 들어오기 시작했다.(이전에는 키작고 안경 낀 병사가 없었다.) 몇 개월간 뺑뺑이를 통해 들어오다가 다시 차출로 변경되었으나 기준은 점차 완화되었다.

1995년 전후의 선발은 306 보충대 옥상에서 키는 175cm 이상, 오다리 제외(실제로 차렷 시켜놓고 무릎사이로 주먹 넣어봐서 뽑았다) 시력은 1.0 이상을 뽑았다. 30단과 33단 구분없이 필요 인원의 2배수를 뽑고, 훈련소에서 받는 성적과 신원조회결과 이상없는 인원이 최종적으로 남아 방교대에서 30단과 33단으로 분리되었고 탈락한 인원들은 위탁교육을 받은 사단에 남았다. 방교대에서는 아무래도 직접적인 청와대 외곽 근무를 서는 30단의 인사장교의 파워가 세서 먼저 30단 인원을 뽑고 나머지는 33단으로 갔다.(이 사실은 단 통합 후 인사장교가 불공정하게 인원 선발을 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격투기 유단자가 있을 경우 간혹 방교대에서 35특임으로 뽑혀가는 경우도 있었다. 30단과 33단이 통합된 직후 30단에서 온 인사장교가 1대대(전 30단)으로 괜찮아 보이는 인원을 먼저 다 빼돌리고 2대대(전 33단)에는 별볼일 없어 보이는 병사만 떨궈줘서 원성이 자자해지자 경비단 인사장교가 갈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1995년 기준으로 경비단에 안경을 끼거나 키가 작은 병사들은 모두 논산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단 본부중대에만 배속되었고, 중대단위의 행정병의 경우 일반 병들을 뽑았고 후에 주특기 번호만 변경해서 행정병 근무를 시켰다.

최소 1999년부터 2010년대 초까지는 수방사 선발 자원들( 수방사 선발 참고)이 신병훈련을 마치고 방패교육대에서 대기하는 동안 대통령경호실 지원부대, 사령부 본근대 경비중대, 35특임, 문서고관리대[24] 등 소규모의 특수한 부대들이 먼저 엘리트 인원을 싹 뽑고 나면 나머지를 경비단과 방공단이 나눠 갖는 식이었으며, 병력을 인수하는 날까지 경비단 사람은 방교대에 오지도 않았다.

1999년 입영자의 경우 키는 172cm, 안경 미착용의 두 가지 조건만 갖추면 선발이 가능했다. 14년 이전까지는 최소 170cm 이상이라는 암묵적 선발 기준이 있었으나 이후 병력부족의 이유로 그 이하 병사도 소수지만 보이기도 한다. 안경 역시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논산 출신 운전병이나 의무병, 화학병, 전문 행정병인 대대 계원 이상이 아닌 전투병력 중에는 안경 낀 병사는 사실상 없었으나, 2016년 현재는 안경 낀 병사들도 바글바글한 듯하다.

그러던 것이 2013년 중반부터 수방사와 별개로 1경비단이 신교대에서 면접을 통해 우선선발을 하게 되었다. 보통 서울이라는 미끼에 낚인 불쌍한 영혼들이 다수지만, 1경비단이 빡세다는 게 알려져서 가기 싫다고 해도, 모집간부가 선발인원 채우느라 허우대 멀쩡하고 인성/학력 괜찮으면 "싫어요?→질어요→좋아요?"라고 하며 당사자의 의사를 무시한 채 반 강제로 뽑기도 한다. (실제로 방교대에서 주임원사 면접 때, 경비단 가기 싫다는 걸 이미 늦었다고 거절당했다) 즉, 이 병사들은 이때부터 경비단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방교대에서도 다른 부대가 데려갈 수 없어서, 방교대로 병력 뽑으러 온 다른 부대들이 징징대는 경우도 많다. 방교대에 온 보병 자원이 30명이 넘는데 죄다 경비단 선발자원이라 타 부대가 뽑을 수 있는 병력이 전혀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단, 처음부터 배수로 뽑기 때문에 일단 일차선발 되어 방교대까지 온 뒤 방교대에서 죽어도 가기 싫다고 거부하여 수방사 다른 부대에서 복무하는 좋은 경우도 있다. 아니면 35특임이나 1방공여단에서 미친듯이 고생할수도 있다. 실제로 허리아파서 경계근무 못 선다고 빠진 뒤 본근대나 지원부대에서 꿀빠는 사례도 2015년 현재 실존한다. 당연하지만 웬만해서는 안 빼준다. 게다가 수틀리면 '부적격자 전군 재분류'로 전방 부대 재배치 처분도 가능하며 병의 인사이동이 드물어 중간에 전출 1회만 가도 부대에서 문제아라고 낙인찍는 육군 특성상 이는 꽤 큰 처벌이다.

물론 이는 경계병 한정으로, 특기병( 운전병, 조리병 등)은 다른 부대와 동일하게 방교대에서 선발한다. 또한 행정병 등도 방교대의 보병 자원 중에 데려가기도 한다. 그 외 병과는 육군훈련소에서 차출한다

5.3. 경비단가

뜨겁게 차오르는 태양 같이 의지와 정열로 뭉친 용사들
북악과 인왕의 정기를 받아 서울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가슴에 깊이 새긴 결의로 내 조국 철통경계 위하여
천년을 우뚝 선 소나무처럼 굳건하게 나라 지켜나가자
청룡 백호 용맹 받아 행동으로 충성 다하여서
전군 유일 최정예 근위부대 제1경비단

2001년에 제정되었다. 그 이전에는 소대가, 중대가, 대대가는 있어도 단가는 없었다.

6. 사건사고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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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1일에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실시한 리멤버 1.21 훈련에 참가한 제1경비단 병력의 모습[25]


[1] 충남대학교 [2] 교대주기는 2000년 이전에는 중대별로 6주, 2001년부터 한동안은 대대 단위로 3개월, 또 한동안은 4개월이었다. [3] 대표적으로 2008년 촛불집회,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 등. [4] 당시 서울지역 향토예비사단. 지금은 서울 인근의 제30기계화보병사단(현 제30기갑여단) [5] 당시 경기 서부(인천, 영등포 포함) 지역 향토예비사단, 제33보병사단(현 제17보병사단) [6] 멀쩡한 궁궐을 허물고 들어앉은 것은 아니다. 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를 경호하는 일본군 부대 주둔지로 쓰던 자리에 들어갔다. 이 터는 본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태원전 자리였으나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열기위해 허물어졌다. [7] 이들에게 배신의 댓가는 정말 달콤했다. 장세동은 현역 군인 신분으로 장관급인 대통령경호실장을 맡다가 성대한 전역식과 함께 중장으로 전역했고, 이후에는 부총리급인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영전했다. [8] 김진영은 이후 소장, 중장 시절에 두 차례의 부침을 겪지만 대장 진급에 성공하고 육군참모총장까지 되었다. 심지어 취임 직후에 김진영을 전역시킨 김영삼은 경남고 후배인 김진영에게 국회의원 뱃지까지 달아줄 생각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9] 본관 내에 있는 부대 역사관에는 역대 단장들의 사진이 죽 전시되어 있다. [10] 수도방위사령관이었던 김용현 중장(육사 38기), 구홍모 중장(육사 40기)등이 대령 시절 제1경비단장을 역임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지상작전사령관을 맡았던 전동진 대장(육사 45기)과 합동참모차장을 맡고 있는 강호필 대장(육사 47기)도 대령 시절에 제1경비단장을 지냈다. [11] 중대장차 1대, 3개 소대에 4대씩. [12] 비슷한 급의 요직이 제1보병사단 제11보병여단장, 제12보병여단장이다. 서부전선 최주요 섹터를 지키는 곳이라 역시 역대 여단장 거의 전원이 육사 출신에 장군으로 진급했다. [13] 2006년 [14] 2008.11.10. 이임 [15] 2008.11.10. 취임 [16] 전역 후 21년 12월 2급 군무원 신분으로 취임 [17] 2010~11년 [18]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장, 前 제55경비단장. 중령 당시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장이었으며 귀순자를 안전하게 구출한 사례가 있다. 관련기사 육사 생도 시절 연대장생도를 역임했다. [19] 충남대학교 졸업. 역대 첫 비육사 출신 단장이다 [20] 수도방위사령관 이진우 중장 합참 작전본부 작전기획부에 이어 연속으로 직속상관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진우 장군이 작전기획부장 시절 예하 실무자였다. [21] 중대 기준으로 부중대장, 대대 기준으로 장교보직인 부대대장(말년 대위 또는 소령급)과 부사관보직인 본부중대 처부소대장( 중사급)은 어느 부대든 항상 예비역 편제다. [22] 같은 수방사 소속인 군사경찰단도 비슷한 걸 한다. 기수 동기제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육군 군사경찰이 전부 후반기 교육 배출순서로 기수를 매긴다. 이래서 월 단위 동기제는 없다. 역사도 오래 됐으며 군사경찰단만 이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고치기는 힘들어보인다. 그래도 운전병이 많은 육군수사단에선 별 의미가 없다. [23] 주둔지에 위치한 직할대인 본부대와 수송대는 이미 2012년 말부터 월단위 동기제를 시행하고 있었고, 이후에 본부대에서 분리된 통신대 역시 2013년 분리 운영과 동시에 월단위 동기제를 유지했다. [24] 일개 문서고관리대 병사를 면접씩이나 해서 뽑는 이유는 해당 문서 참고. [25] 당시 단장은 전동진 대장, 훈련 참가 대대장은 조종래 소장. [26] 부대에 따라 근무형태는 케바케다. 근무 사수-부사수가 정해져 있지 않은 부대도 많고, 실탄 들고 혼자 서는 부대도 있다. 다만 이는 신원조회를 매우 빡세게 하는 모 부대. [27] 인왕산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한번씩 교육목적으로 찾아 가게된다. 교육에 집중 안된다면 뒤적뒤적 주위를 살펴라. 33단 시절 인쇄물이 있어서 놀라게 된다. [28] 강호필 단장 부임 이후부터... [29] 이 근무복은 개인 단위 지급이 아니라 소대 단위로 지급되어 수량이 늘 부족했다. 왕고부터 2/3 정도만 본인 근무복을 소지하고 있고, 나머지 후임들은 여러 명이 한 벌을 명찰만 갈아가면서 돌려입어야 했다. 전역한 왕고의 근무복은 당연히 그동안 근무복이 없었던 병사 중 최선임이 물려받는 게 상례다. 다만 유달리 키가 크다거나 한 경우 아직 이등병이라고 해도 일찌감치 자기 근무복을 차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