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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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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
慶北高等學校
Kyeongbuk High School
파일:경북고등학교 교표.svg
<colbgcolor=#00824c><colcolor=#fff> 개교 1899년 7월 달성학교
유형 일반계고등학교
성별 남학교
형태 공립
교장 류시태
교감 신경수
이념 신문화(新文化)
교훈 아는 사람(知), 생각하는 사람(思), 행하는 사람(行)
교화 목련
교목 느티나무
학생 수 849명[기준]
교직원 수 80명[기준]
관할 교육청 대구광역시동부교육지원청
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00 ( 황금동)
홈페이지 파일:경북고등학교 교표.svg
1. 개요2. 역사
2.1. 연혁
3. 상징
3.1. 교표3.2. 교훈3.3. 교목3.4. 교화3.5. 교가 및 응원가
4. 교복
4.1. 교복 자율화 실시 전4.2. 교복 자율화 폐지
5. 학교 시설6. 교내 행사 및 경맥제7. 운동부8. 총동창회9. 출신 인물10.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10.1. 버스10.2. 도시철도
11. 기타
11.1. 1985~200011.2. 2001~현재11.3. 여담

[clearfix]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
2.28 민주화운동 결의문
"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

1. 개요

경북고등학교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위치한 남자고등학교다.

2.28 학생민주의거에 참여하였으며,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3부 요인을 배출한 학교이다. 또, 스포츠계에서도 많은 스타들을 배출하는 학교이기도 하다. # 또한, 비평준화 시절 경기고, 서울고와 더불어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고들 중 하나였다.

2. 역사

파일:20160511_185518002.jpg

경북고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달성학교는 영남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으로서 1899년 최극창, 윤필오 등 1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대구의 여러 유지들이 모금에 참여한 사립학교로 경상감영 자리에 문을 열었다. 조선인 자제들에게 일본어로 선진 학문예술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히자츠게 마스키치(膝付益吉)는 한일친교를 증진시키고, 상호간의 오해를 푸는 것은 교육 외에는 없다는 것을 간파한 뒤,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학교의 창립에 전력을 쏟았다.

1899년 7월, 히자츠케를 도와서 함께 학교를 위해 힘쓴 사람으로 신타니마츠스케(新谷松助)도 있었다. 대구의 명사 윤필오(尹弼五)씨도 앞장서서 이를 응원하며, 관찰사 김직현(金稷鉉)씨를 움직여, 창립비(創立费) 중 백원을 기부하게 하고, 700여평의 학교 부지와 관사 1동을 할애 받았다. 달성학교가 기반을 이루자 조선인 유지들이 금품을 기부하는 것이 많아져 그 금액이 700원을 넘어서, 학교의 기초가 정해진다.

교사를 초빙하여 오래도록 이를 유지하는 방법에 고민하던 히자츠케는 스스로 본인재산 일체를 처분해 교비로 제공하자, 그 뜻을 듣게된 한국학부(韓國學部)에서 1900년부터 연간 120원을 지원하고, 부산의 다섯군데 사찰에서 매월 15원씩 기증했다. 또한 1901년 4월부터 동아동문회(東亞同文會)는 해마다 420원의 보조금을 주기에 이르렀으며, 부산의 일본영사관에서도 보조를 얻어서 부산사찰의 보조는 1901년 4월부터 중지 되었다.

기타 목포지역의 유지와, 한남교육장려회(韓南敎育奬勵會)에서도 가부금을 보냈고, 1901년 9월에는 경부철도회사(京釜鐵道會社)로부터도 기부금이 있었다.이로써 달성학교는 대구유지 소수가 좌지우지 할 수 없는 명실상부한 한강이남의 교육기관이 되었다.

심상과와 고등과를 둔 달성학교는 4년제 교육기관으로 뒤에 심상과는 대구공립소학교[3]로 인계되었고, 고등과는 1907년 개교한 협성학교[4]에 흡수되었다. 이후 일제는 협성학교를 관립 대구고등보통학교에 병합하고, 대구고등보통학교는 협성학교의 재학생과 물품을 인수하여 1916년 개교했다.[5] 그 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1925), 경북공립중학교(1938), 대구고등학교(1950.5), 경북고등학교(1950.6), 대구고등학교(1951)를 교명으로 쓰다가 경북고등학교(1953.9)로 교명을 변경한 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2016년 2월 대구고보 기준으로 5076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경북고등학교는 경기고등학교[6], 평양제이중학교(폐교)[7]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설립된 공립고등학교(제3고)[8]이며 이는 교표, 교복 소매의 삼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단 1899년 7월에 개교한 사립 달성학교가 전신이므로 학교역사는 경기고나 평양제이중보다 길다.
파일:경성제일고보 마크.gif 파일:평양고등보통학교 교기.png
경성제일고보(現 경기고) 교표 평양고보(舊 평양제2중학교) 교기
1919년 3.1 운동 당시(대구는 3월 8일) 대구고보 전교생 239명 중 200여 명이 참가하여 대구 만세운동을 주동한 데 이어 항일동맹휴학ㆍ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 발표사건ㆍ비밀결사사건 등 민족정기를 밝히는 항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외에도 여러 항일 운동에 앞장섰고, 확인된 항일투쟁가만 38명이다(서훈자 33명, 미서훈자 5명). 관련 기사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경북중 32~34회 학생들이 학도의용군에 지원하여, 안타깝게 전사한 학도병이 53명에 이른다. 특히 1945년에 입학한 32회는 동기생 20여 명을 잃었다. 이는 대구경북지역 중학교 중에서 가장 많은 희생이었고, 전국에서도 두 번째로 많은 학교로 꼽힌다. 이 학도병을 기리는 조형물이 2.28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옆 호국동산이라는 이름의 공원에 세워져 있다.

1960년 2.28 학생민주의거의 발상지다. 당시 이대우 학생회장의 주도로 여러 학교와 연합하여 일으킨 이 운동은 대한민국 최초의 학생 자발적 운동이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민주의거를 기념하는 기념비와 기념 조형물이 교정에 세워져 있다.

2.1. 연혁

3. 상징

3.1. 교표

파일:XGRgIrz.jpg 파일:Screenshot_2016-10-07-17-53-06-1.png
1953년부터 쓰고 있는 교표로 둘 다 자주 쓰인다. 참고로 대구고등학교 시절[11]에는 백선이 하나뿐이였으며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삼백선은 있었으나 무궁화 잎과 펜촉은 없었다. 자세한 사항이 궁금하다면 역사관에 가보도록 하자. 중앙의 세개의 펜촉은 끊임없는 학문적 탐구를 나타내며 그와 교차되어 있는 세 개의 무궁화 잎은 각각 지, 덕, 체를 상징한다. 그리고 가로로 난 세 개의 흰 선은 서울, 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개교한 고등학교임을 말해주는 동시에 위에서부터 천, 지, 인 삼재를 가리킨다.

3.2. 교훈

知() 아는 사람, 思() 생각하는 사람, 行() 행하는 사람

3.3. 교목

느티나무 : 느티나무를 교목으로 삼은 뜻은 느티나무의 강인하고 넉넉하고 단정한 모습처럼 큰 기상과 조화로운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의 전당이라는 의미이다.

3.4. 교화

목련 : 목련을 교목으로 삼은 뜻은 목련꽃의 맑고 깨끗한 모습처럼 순수한 이상을 지니고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여 남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돼라는 뜻이다.

3.5. 교가 및 응원가

파일:Screenshot_2016-10-06-06-00-16-1.png
교가는 1학년 음악시간에 외우며, 가창 평가를 교가로 하기도 했다. 반면, 응원가는 특이하게도 체육시간에 배운다.[12]
응원가도 꽤 자주 불렀었는데, 큰 야구 경기가 있을 때에는 단체로 야구장으로 응원을 가서 응원가를 부르기도 했다.[13]

4. 교복

4.1. 교복 자율화 실시 전

파일:경북고등학교 모자.jpg
경북고등학교 모자. 비평준화 시기 또래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파일:1957-04-00.01cape.jpg
교복 자율화 전 동복(1957)
파일:19191C4D4EECAA532A12ED.jpg
교복 자율화 전 하복(1955)
이 사진에선 알아볼 수 없지만 흰색을 베이스로 하늘색이 카라 등에 배색되었다.
현재 교복에도 볼 수 있는 백삼선이 눈에 띈다. 1983년 교복 자율화가 실시 된 후 더 이상 이 교복을 입지 않았다.

4.2. 교복 자율화 폐지

파일:s_0801_000523.jpg
교복자율화 폐지 후 교복(1986.8~현재)
특수학교를 제외한 중고등학교 가운데서 교복을 가장 먼저 재도입한 학교중 하나로 재도입후에 교복이 한번도 바뀌지 않았으며, 학생들도 만족해서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듯하다.

동복은 남색 자켓의 소매에 학교의 상징인 삼백선이 새겨져 있다. 대체로 무난한 교복이지만 자켓 핏이 정장처럼 나와 대체로 이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90년대 말에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강요당했기 때문에 귀찮은 문제도 있었다.

여담으로, 졸업할 때쯤이면 동복 소매의 삼선이 낡아서 떨어지려고 한다. 또, 소매에 단추가 양팔에 3개씩 달려있는데 굉장히 거슬린다. 단추가 책상에 부딪히면서 생기는 소음이 본인은 물론이고 상대방에게도 매우 거슬린다.

하복은 흰색과 회색으로 배색했으며 흰색 상의 포켓에 삼선이 그어져 있다. 하의는 상의랑 같은 회색의 면바지.

원래 체육복이 존재했으나 현재 체육복은 사라졌고, 체육시간엔 사복을 입고 수업을 한다.[14]

2016년부터 생활복도 나왔는데, 타 학교의 디자인에 비하면 정말 촌스럽다. 얼핏보면 배드민턴 운동복 같이 생겼다.
촌스러운 디자인탓에 생활복을 입는 학생들도 거의 없다.[15]

생활복 디자인은 공모전으로 탄생했는데 수상자의 디자인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공모전 참여자 모두의 공동 디자인으로 생활복이 디자인되었다.

생활복의 특징으로는 바지의 소재가 방수라는 점이 있다.
파일:경북고 여름 생활복.jpg
2023~현재

2023년부터 생활복 디자인이 새롭게 바뀌었다.
몇 차례의 학생 선호도 조사 및 교복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되었다.

2022년 경 부터 주변 학군지 일반고에 유행처럼 퍼진 야구잠바의 경우, 경북고는 2022년 경맥제 축준위들에 한해 시범 제작한 후,
2023년 학생회 회의를 통해 최종 디자인을 결정, 판매하였다. 주기적으로 추가구매 신청을 받으니 참고 바란다.

5. 학교 시설

파일:Screenshot_2016-1ㅂㄱ디ㅡ1-1.png
학교 부지가 굉장히 넓다.[16]

건물과 학교 부대 시설도 나쁘지 않다.[17] 1990년대까지는 매우 좋은 편에 속했으며, 예로 들어 그 당시 대부분의 공립학교들이 선풍기만 갖추고 있을 때, 이 학교는 교실에 에어컨을 비치해 두고 있었다.[18]

2016년 기준으로 황금동 교사를 지은 지 약 30년밖에 되지 않아 그렇게 낡지는 않았지만, 석면 천장, 냉난방, 화장실 변기 등의 노후설비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개선 공사와 관련해 대구교육청에서 공고를 냈다.

2017년 1월 겨울방학 중 석면제거 공사를 진행하여 석면제거를 완료했고, 2017년 여름방학 이후에 노후화된 화장실을 보수공사하였다. 여기에 시청각실도 리모델링되었으며, 최신형 TV가 교실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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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교내 행사 및 경맥제

체육대회는 따로 다른학교들처럼 다양한 종목으로 진행되는것이 아니라, 1학기 말에 오직 반대항 축구 및 풋살 리그로 진행된다.

경북고등학교 재학생 축제는 경맥제[19]로, 보통 2학기 말(가을~겨울 시기)에 열리며 동아리 부스와 공연을 각각 나누어 이틀간 진행한다. 체육대회와 마찬가지로, 2020년대 초반 몇 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열지 않았으나, [20] 2022년에 다시 경맥제가 열렸다! 22년도 경맥제는 당시 축제준비위원회의 능력으로, 코로나19 이전 경맥제의 기록을 하나하나 다 참고하여 반영하였으며, 상부 권력의 일부 교사 측에서 찬조공연팀을 2팀으로 제한하였으나 이또한 당시 축준위 재량으로 4팀을 초청하는것을 성공하여 나름대로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다.2023년에는 12월에 경맥제가 열렸다. 당시에는 방과후에 축제를 진행하지 않고, 오전 학교일과시간에 축제를 진행한 관계로 외부학생이 출입하지 못하였고, 외부 찬조팀도 2팀으로 제한되어 학생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결국 2024년 경맥제는 외부학생 출입이 허가되었다. 10월에 열려서 고3들은 거의 참여하지 못했고, 준비과정에서 여러 논란과 말이 오갔지만, 학생들의 노력으로 성공적인 축제를 마칠 수 있었다. 부스의 경우, 학생 부스에서의 음식 조리와 판매가 제한되어 동아리 대다수가 참여를 하지 않았고, 할거리가 많진 않았으나 최종적으로 소수의 부스에서 음식 및 음료 제공이 가능하게 되었고, 외부학교 학생들이 무려 천 여명 이상 방문하여 성공적으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익일 공연의 경우 앞부분의 루즈하고 평가가 매우 좋지 않은 조악한 뮤지컬을 제외하면, 찬조팀도 4팀으로 증가했고, 교내 재학생들의 무대도 다채로웠어서 1,2학년 학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어냈다.

주변 고등학생들이 많이 찾는 편이며 다른 학교들과 큰 차별성이 있는 축제는 아니지만 축제의 인기는 이상하리만큼 높다. 심지어 수성구뿐만 아니라 중구, 남구, 동구에 있는 학교에서 오는 학생들도 더러 있는 만큼 유서깊은 축제다. 2024년 경맥제에서도 경북고등학교와 꽤 먼 거리의 학교들(예를들어 동문고, 중앙고 등)과, 심지어는 동구의 학교인 동부고에서까지 학생들이 찾아왔으며, 그 학교에선 댄스부가 축제 찬조 팀으로 초청받아 여전히 경맥제의 명성과 인기는 현재 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7. 운동부


8. 총동창회

학교 동문과 관련된 굵직한 행사를 진행하며, 학교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상당히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걸 동창들 뿐만 아니라 경북고 교사들, 학부모들, 학생들, 지역주민들 모두가 격렬하게 반대한다. 여튼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자동으로 총동창회원이 된다. 주관하는 행사 중에 큰 행사로는 경맥제(대구)경맥 가을 축제(재경)이 있다. 그 외에도 경맥기념춘추 출간이나 각종 동문 행사를 주관하며 경맥OB합창단, 경맥 산악회, 경맥 문학회, 수경회 등 동창 모임도 활발하다.

9.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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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10.1. 버스

학교 뒷편 청수로 쪽에는 234번과 425번이 버스 종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종점에서 학교로 통하는 직통 통로가 없기 때문에 이곳에서 경북고까지 가려면 최소 15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10.2. 도시철도

11. 기타

여기서부터 나오는 경북고등학교의 문제점들은 고교평준화에 따른 문제점들이라 보면 될 것이다. 고교 평준화 이전과 이후의 경북고를 모두 겪어본 교사들은 경북고 쇠락의 원인으로 고교 평준화로 학생의 질이 떨어진 것도 크지만 가장 큰 원인은 고교 평준화 이후 교사들의 질적하락이라고 말한다. 실제 1970년대 고교 평준화 이후로도 한동안 명문고등학교에는 우수한 1급 교사들만 돌아가며 배치되는 시절이 있었고 그로 인해 한동안 경북고등학교도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교직원들에 대해서도 완전 평준화가 진행되었고 결과는 오늘날과 같다.

11.1. 1985~2000

11.2. 2001~현재

파일:다 화이바 심어.png

11.3. 여담


[기준] 2024년 [기준] [3] 현 대구초등학교 [4] 대구 국채보상운동 모금액 중 일부가 설립 자금에 쓰였다. [5] 2015년까지 경북고등학교는 달성학교가 전신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대구고보의 개교년도를 개교기준으로 삼았었다. 그러나 2016년 대구고보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다가 달성학교가 효시였음을 알 수 있는 고문서를 발견하였고, 2017년에 개교년도를 1916년에서 1899년으로 앞당겼다. [6] 1900년 관립중학교로 개교 [7] 1909년 관립평양고등학교로 개교, 1911년 평양고등보통학교로 교명 변경. 이후 평양제이중학교로 개명. 6.25 전쟁 이후 폐교된 것으로 추정됨. [8] 폐교된 평양제이중학교를 제외하면 두 번째다. [9] 대명동 교사에는 대구고등학교가 들어왔다. [10] 경운중학교(대구)(1970년 개교)가 경북중 계승 [11] 1950년 5월 30일~6월 24일, 1951년 4월 1일~1953년 9월 3일 [12] 요즘에는 응원가를 안 배운다. [13] 과거에는 응원하러 가기 위해 직접 버스를 대여해 가기도 했다. [14] 등교를 할 때에는 교복을 입고 등교해야 하기 때문에 사복을 따로 들고 와서 갈아입어야 한다. 단, 일과시간에는 사복을 입어도 상관이 없기 때문에 체육 시간이 없는 날에도 사복을 들고 오는 학생들이 있다. [15] 덕분에 교복을 입는 학생들이 많다. [16] 원래는 현재보다도 넓었지만 동창회관을 개보수하여 교육청이 쓰고, 테니스장을 밀고 황금유치원을 지어 예전보다는 약간 좁아졌다. 또한 학교 담벼락과 교문을 허물고 공원으로 만든 것도 좁아진 원인이다. [17] 아래에 언급되듯 졸업생들이 빵빵하다 보니 학교에 신경을 많이 써줬다. [18] 3학년 교실은 1997년, 1ㆍ2학년 교실은 1999년에 에어컨을 설치했는데, 이는 인근의 사립학교에 비하면 늦은 편이다. [19] 총동창회 체육대회와 이름이 같다. 당연히 전혀 다른 행사. [20] 정확히는 전시회만 했다. [21] 류중일(SS), 김성래(2B), 남우식(P) [22] 현재는 점심시간에 탁구장 사용이 불가하다. 다만 방과후에는 배드민턴 동호회로 인해 강당이 열려 있어 마음만 먹으면 탁구장을 사용할 수 있다. [23] 모범 학생에게 수여하는 상이지만 모범상과는 별개의 상이다. [24] '자랑스런 경고인'이 성실한 학교 생활로 받는다면 '경맥인'은 마일리지 제도를 따르는데, 마일리지 제도는 학교 교훈인 지•사•행에 따라 3가지로 나누어지며 마일리지를 쌓는 방법은 야간 자율학습 참여도와 방과후 활동 참여도이다. [25] 규정은 있지만 교사들이 예전처럼 막 잡지 않아 사실상 길이는 자유다. 이 때문에 장발남들이 꽤 많아졌다. 하지만 긴생머리 학생들은 없다. [26] 현재 규정은 2013년부터 적용했고, 북쪽 경신고도 두발규정이 완화되었다. [27] 2012년에 두발규정이 완화되어도 전교생들이 환호하지 않았다. 특히 3학년은 1ㆍ2학년에 비해 담임 교사들의 단속이 많이 심했다. 가끔 머리 긴 1ㆍ2학년이 교장, 교감, 학주, 학생부 교사들은 물론이고 1ㆍ2ㆍ3학년 담임 교사들한테 걸리기도 했다. [28] 하지만 정말 전문적으로 피는 학생들은 딴 데서 폈다. 북쪽 담벼락 밑이 전문범들의 주요 접선 및 활동 장소였는데, 바로 뒤에 사는 고층 아파트 주민이 목격하여 학교에 신고하는 바람에 매복한 학주가 검거하기도. [29] 주로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그렇게 부르신다. [30] 예를 들어 군청색을 사용하는 3학년이 졸업하면 다음 해 1학년이 군청색을 사용하고, 초록색을 사용하던 1학년은 2학년이 되고, 하늘색을 사용하던 2학년은 3학년이 되는 방식. [31] 요즘에는 황금중은 물론이고 대륜중, 오성중에서도 많이 오는 편이다. [32] 경운중 출신 학생(주로 야구부)이 경북고 하복을 사지 않고 경운중 하복을 입고 그대로 등교하기도 했다. [33] 유승민은 경북고, 이재용은 경복고 출신이다. 주로 언론에서 이런 실수를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