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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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안대군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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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태조의 왕자
회안대군 | 懷安大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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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태조의 황자
회안대군 | 懷安大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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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국공신
마한공 | 馬韓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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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안대군묘 전경 | |||
출생 | 1364년 8월 7일[1] | ||
고려
동계군
동북면
함흥부
귀주동 이성계 사저 (現 함경남도 함흥시 함흥본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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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421년 4월 10일[2] (향년 56세) | ||
조선
충청도
홍주군 유배지 (現 충청남도 홍성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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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회안대군묘(懷安大君墓)[3] | ||
재위기간 | 조선 회안군 | ||
1392년 8월 25일 ~ 1398년 10월 10일 | |||
조선 회안공 | |||
1398년 10월 10일 ~ 1401년 2월 8일 | |||
조선 회안대군 | |||
1401년 2월 8일 ~ 1421년 4월 10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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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 전주 이씨 | |
휘 | 방간(芳幹) | ||
부모 |
부황
태조 고황제 모후 신의고황후 |
||
형제자매 |
부황 기준 8남 5녀 중 4남 모후 기준 6남 2녀 중 4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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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
자녀 | |||
아호 | 망우당(忘牛堂) | ||
봉호 |
회안군(懷安君)[4] → 회안공(懷安公)[5] → 회안대군(懷安大君)[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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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 양희공(良僖公) |
[clearfix]
1. 개요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 초기의 왕족. 조선 태조 이성계의 4남이다. 제1차 왕자의 난 중에 공을 세웠으나, 1400년 손아래 동생인 이방원과 충돌한 제2차 왕자의 난에서 패배하고 말았다.2. 생애
- 초기
고려 말 관직에 올라 소윤(少尹)을 역임했고, 1392년 7월 아버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했을 때 개국익찬공신 1등에 책록되고 현록대부의 벼슬을 받았으며 마한공(馬韓公)에 봉작(封爵)되었다. 1392년 8월 25일 회안군(懷安君)에 봉군되었다.[11] 그 뒤 1398년 10월 10일 회안공으로 봉작되면서 의흥삼군부좌군절제사를 역임했다. 그리고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유배 중인 1401년 2월 8일 회안대군이 되었다.
- 왕자의 난
- 유배와 최후
1401년 유배 중에 회안대군으로 봉작이 개정되었다. 동년 6월 태종은 그를 다시 한양으로 소환하려 했지만 신료들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그후 그는 스스로 본관지인 전주로 내려갈 것을 청하여 허락받고 전주부 동용진면으로 내려와 20년간 거주하였다. 본부인 여흥 민씨의 죽음을 전해 듣고 1411년 병마사를 지낸 춘천부 출신 박인간(朴仁幹)의 딸과 혼인하였다고 알려져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그러나 박인간의 형 박도간(朴道幹)의 서녀를 첩으로 삼은 것이었다.
1416년 태종은 회안대군의 작위와 공신녹권, 직첩, 아들 의령군의 직첩을 모두 회수하였다. 그는 한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1418년 태종이 아들 세종에게 양위한 뒤 한양으로 올라올 것을 주문했지만 거절하였다. 이후 심종(沈水+宗) 등과 연락하며 모종의 거사를 계획하였지만 실패하였다.
1421년 4월 10일( 음력 3월 9일) 홍주(洪州)에서 병사하였다.[12] 태종의 권고로 와병 중에 상경하던 중 홍주군 은진에서 사망했다. 태종은 사람을 보내 국장(國葬)으로 장례를 치르게 하고 지관을 보내 시신은 전주부 동용진면 금상동 법사산(현 전주시 덕진구)으로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그러나 선원보략에서 퇴출된 것은 복권시켜주지 않았다.
- 사후
1863년 판서 신석우(申錫憂)의 상소로 양희공의 시호가 증시되었고, 1869년 불천지위가 내려졌다. 1872년 고종에 의해 영종정경부사의 증직이 추가되었다. 대한민국에 와서 그의 묘소는 전라북도의 유형문화재 제123호 회안대군묘로 지정되었다.
3. 가족 관계
- 부황: 태조 이성계 1335 ~ 1408
- 모후: 신의왕후 1337 ~ 1391
- 형: 진안대군 이방우 1354 ~ 1394
- 형: 영안대군 이방과 ( 정종(조선)) 1357 ~ 1419
- 형: 익안대군 이방의 1360 ~ 1404
- 남동생: 정안대군 이방원 ( 태종(조선)) 1367 ~ 1422
- 남동생: 덕안대군 이방연 미상
- 여동생: 경신공주 1382 ~ 1426
- 여동생: 경선공주
- 정부인: 삼한국대부인 여흥 민씨
- 1계부인: 삼한국대부인 밀양 황씨[13]
- 차남: 창녕군 이태[14]
- 둘째며느리: 판관 박무현의 딸 밀양부인
- 장녀: 성혜옹주[15]
- 첫째사위: 상호군 조신언
- 외손자: 조묵
- 차녀: 신혜옹주
- 둘째사위: 군수 이대생
- 삼녀: 양혜옹주
- 셋째사위: 부사 박경무
- 2계부인: 금릉부부인 김포 금씨[16]
- 첩부인: 춘천 박씨[17][18][19]
- 첩부인: 백종[20]
3.1. 후손
그의 후손으로는 IZ*ONE의 멤버였던 이채연과 그 자매 채령, 세븐틴 디노가 있다.현재 그의 후손은 약 4만명으로 추산된다.
4. 여담
첫 부인 여흥 민씨의 묘소는 여주시에 있다 하였으나 실전되었다. 둘째 부인 밀양 황씨의 묘소는 서산군 사현리 갑좌에 있고, 전주부에는 셋째 부인인 김포 금씨와 상하 쌍분으로 조성되었다.5. 대중매체에서
-
1996년
KBS 드라마 <
용의 눈물>에서는 배우
김주영[21]이 연기했다.
세자 책봉 문제와
사병 혁파 문제로
이방원과 함께
이성계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큰 불만을 나타내며
무인정사 때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이복동생인
이방번을 참살한다.[22] 하지만
권력욕이 커서 둘째 형 이방과가
왕위에 오르자 대놓고 "다음
후계자 얼른 정합시다."라는
눈치없는 말을 내뱉어 형제들 사이를
갑분싸하게 만든다. 결국 나중에는 귀양길에 처해 불만이 컸던
박포와 손을 잡아 대대적인 준비 이후에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나[23][24] 이방원에게 패하고 결국은
유배길에 처해진다.[25] 차마 동복동생인 이방원에게 살려달라고 빌 수 없어서
자결까지 하겠다고는 했으나 아버지는 물론 형들인
이방과와
이방의가 함께 설득하고
참교육을 실천해주는 바람에[26] 결국 그들의 말대로 하여 이복동생들과는 달리 이방원의 배려로 그나마 끝까지 천수를 누릴 수가 있었다.
정안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정종의 부탁으로
상복을 입도록 허락받은 모습으로 짧게 재등장하며
나레이션에서 이후 어떻게 됐나 간략하게 언급된다. 최종 화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와 함께 죽어있는 모습으로 작중에서 완전히 퇴장하며 이방원을 제외한 모든 형제들이 세상을 떠난다. 잘 생각해보면 짜증나는
캐릭터일 수도 있는데 이방간이 스스로 밝히는 자기가 집권해야 하는 이유라고는 "난 이방원의 형이야!"이거나 기껏해야 1차 왕자의 난 때 뒤늦게 참여하며
대궐로 달려온 정도였다. 왕위에 앉을만한 명분으로
서열말고는 아무 근거도 생각한 적 없는 듯.
그러나 그 평가와 별개로 이방간의 성향과 위치는 이성계에게 있어선 매우 중요하기도 했었다. 세습이 그 적장자와 그 순서에 맞추는 것인만큼 그나마 나은 정종에게 물려주고 싶었으나, 그 스스로가 자기 자식들을 절로 보내 세습을 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마찬가지로 왕위를 스스로 포기한 이방의를 제외하면 남은 건 이제 방간과 방원 뿐이었다.[27] 방원의 능력과 공을 인정한 정종이 왕위를 물려주고자 해도 방간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지도 않으니 왕위를 못 주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이는 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이성계에게는 좋은 견제책이기도 했으나, 결국은 싸움에 패해 물러나게 되자 이성계에겐 진짜 좋든 싫든 왕위를 물려줘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그렇게 되자 이방원에 대한 환멸을 느끼며 아예 자신이 직접 나서는 계기가 되고 만다.
물론 앞선 평가는 상술된 내용과 별개로 배포나 능력 자체가 그냥 꼬장부리듯 나왔다가 무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중에서 일어나는 무시는 이방원과 비교를 할 때의 모습이었고, 상술했듯 2차 왕자의 난이 철두철미한 계획하에 일어난 반란인 것으로 묘사되듯이 능력은 꽤 뛰어나고 왕족으로서의 권위 또한 자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28] 왕자의 난 직전 사병 혁파나 진법 훈련 때 왕족이라도 무시하고 행하는 행동들에 대해서 이방원과 더불어 유이하게 무언으로나마 저항하던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퉁두란도 이방간이 배포가 꽤 있다고 칭찬했고, 이방원과 더불어 손을 잡고 정도전 일파를 척결할 계획을 세울 때는 정도전 일파는 이방간은 다른 대군들과는 다르게 행동력이 있으니 염려했으며 신덕왕후는 다른 아들들은 어찌해도 좋으니 적어도 이방원하고 이방간은 꼭 죽여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약간 무협의 느낌도 가지고 있던 시대상 이방간의 포지션은 능력은 있으나 아우보다는 부족해 그 능력을 시기하는 형에 더 가깝게 나온다.[29]
- 2015년 SBS 드라마 <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배우 강신효[30]가 연기했다. 도리깨나 철퇴같은 둔기를 주로 사용하는 과격한 무인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정몽주를 참살한 조영규에게 "너 손맛 좀 봤다며?"라고 하는 장면으로 첫 등장했다.[31] 무인정사 때는 이근을 붙잡고 박포에게 이름을 물어보고는 박포가 이근이라고 대답하자 철퇴로 때려죽이고 이방원에게 이근이라고 알려준다. 이때 대사도 압권인데 이근을 알아보지 못해 박포에게 "야! 이 아새끼 누구네?" 라고 묻고 박포가 이근임을 알려주자 때려죽이고 "방원아! 이근이란다하하하!" 라고 광기를 드러낸다. 무인정사 이후에는 이방원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가진 모습을 보여줘 2차 왕자의 난을 암시했다. 이후 역사대로 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데 난을 일으키는 장면조차 없이 붙잡혀있는 장면부터 등장하여 이방원에게 호탕하고 당당하게 "제발 날 좀 살려다오!"라고 외친다. 이방원은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지 않냐"고 어이없어했고 이방간은 이에 "동북면 사나이의 기백을 버릴 수는 없지 않냐"고 답한다.[32] 역시나 실제 역사대로 이방과에게 "무식한 놈"이라고 디스당한다.
- 2019년 JTBC 드라마 < 나의 나라>에서는 배우 이현균[33]이 연기했다. 이 작품에서는 < 용의 눈물> 이후로 오랜만에 2차 왕자의 난이 중요하게 다뤄져서 비중이 상당히 큰 편인데 이전 작들의 이방간 캐릭터와는 달리 무예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상당히 교활하기까지 한 인물로 묘사된다. 하지만 훨씬 더 뛰어난 동생 이방원과 주인공 서휘 등에 의해 패하고 역사대로 하차하게 된다.
- 2021년 KBS 드라마 < 태종 이방원>에서는 배우 조순창[34][35]이 연기했다. 이방간과 이방원의 갈등이 보통 대중매체에서는 왕자의 난 이후 권력이 눈 앞에 보이면서 드러나는 반면 여기서는 처음부터 이방간이 이방원을 시기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방과는 이런 동생의 모습을 보고 답답해한다. 자세한 것은 이방간 참조.
[1]
음력
공민왕 13년
7월 2일
[2]
음력
세종 3년
3월 9일
[3]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 산 59-5 소재.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23호로 지정되어 있다.
[4]
조선왕조실록 태조 1년 1년 8월 7일 병진 2번째기사
[5]
조선왕조실록 태조 7년 9월 1일 계유 5번째기사
[6]
조선왕조실록 태종 1년 1월 25일 을유 4번째기사
[7]
증(贈) 문하부사(門下府事) 한경(韓卿)의 딸
[8]
판서(判書) 증(贈) 문하찬성사
[9]
판서(判書) 황형(黃亨)의 딸
[10]
정랑(正郎) 금인배(琴仁排)의 딸
[11]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1권, 태조 1년 8월 7일 병진 2번째기사, 여러 왕자를 군으로 봉하다.
[12]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11권, 세종 3년 3월 9일 신미 2번째기사, 이방간이 홍주에서 병들어 죽다.
[13]
판서 황형의 딸
[14]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10권, 숙종 6년 11월 3일 무오 5번째기사, 이방간의 자손을 《선원록》에 기록하게 하다.
[15]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53권, 세종 13년 7월 20일 임오 2번째기사, 성혜 옹주의 졸기
[16]
정랑 금인배의 딸
[17]
충주 목사 박도간의 딸
[18]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34권, 태종 17년 8월 8일 신묘 1번째기사, 환자 정사징을 베다.
[19]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36권, 태종 18년 7월 24일 임신 1번째기사, 경상도 수군 도절제사 박인간을 파직하다.
[20]
태종실록 34권, 태종 17년 12월 4일 을유 5번째기사 - 화산군 장사정을 상주에 내치다.
[21]
아버지
이성계 역의 배우
김무생과 마찬가지로 1983년
MBC 드라마 <
조선왕조 500년>에 이어 2번째로 같은 역을 맡았는데 전작과는 달리 비중있게 등장한다. 배우 김주영은 2014년
KBS 드라마 <
정도전>에서는
조민수를 연기했는데 조민수는
이성계에게
숙청됐다. 그런데 <
정도전>에서 이성계를 연기한 배우는 1996년
KBS 드라마 <
용의 눈물>에서
이방원을 연기했던
유동근이다.
[22]
형식상으로는 이방원이 말리지만 전혀 말릴 생각이 없었다.
[23]
작품 속 2차 왕자의 난의 경우에는 <
조선왕조실록>과 다르게 정말 만만치 않은
반란으로 묘사가 될 정도로 철두철미한 준비로 묘사되었다. 이는 이방간을 작중 이방원 입장에서
중간 보스
보정을 주면서 어느 정도는
고증을 희생해서다.
[24]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와 정종은 방간이 실패할 것을 어느 정도 내다봤다. 극중 이성계는 방원이라면 치를 떨고 심지어 정종에게 방원이를 죽여달라고 할 정도인데 방간이가 자신에게 지지를 요청하자 어째 동복형제를 죽이려 하냐면서 소같은 놈 이라고 화를 냈다. 상황상 방간이 방원이를 죽이는것에 분개한 것보다는
딱 봐도 더 모자란 놈이 괜히 일을 크게 만들어 오히려 잡아먹힐 것 같으니 한심해서 그런 것이라는 점이 느껴진다.
[25]
이에 이성계는 그나마 이방원을 견제하던 이가 사라졌음에 더욱 분노했고
퉁두란이 이방원의 편을 들고 이성계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를 떠나게 되면서 혼자 고립된 이성계가 속으로 더 분노와 고통에 곪다가 내부적으로 더 큰 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26]
이방과에게 계속 "전하"라고 호칭하자 인내심이
폭발한 이방과가 "이 놈아, 전하는 무슨 전하냐! 난 지금 네 형으로서 널 살리려고 온거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 놈아!"라고 일갈한다.
[27]
물론 이성계 입장에서 둘은 가장 왕위를 물려주고 싶지 않은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한 명은 이복동생들을 참살하자는 주동자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자기가 직접 베어죽여버렸으니 말이다.
[28]
특히 왕족으로서 신하들의 행동에 반발하거나 왕가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에 대해 대처하고 뭉쳐야 한다고 주로 주도한 것도 거의 다 회안대군이었다. 이방원은 거의 별도로 움직이고 대처하던 것을 고려하면 왕실측에서 주변의 세태에 대해 가장 핵심적으로 파악하고 있던 셈이었다.
[29]
그렇다고 마냥 동생인
이방원을 죽일 듯이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2차 왕자의 난 직전에도 동생을 안 죽이고 반란을 성공할 방법은 없는지 그 방도를 찾으며 고뇌하기도 했다.
[30]
강신효는 1989년생으로 실제로는 동생인 이방원 역의 배우
유아인보다 3살 어리다.
[31]
조영규가 정몽주를 죽일 때 사용했던
무기가 이방간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 중 하나인
도리깨였기 때문이다.
[32]
결국
개그 캐릭터 확정.
[33]
훗날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선 아예 방원의 측근인
박은을 연기하게 된다.
[34]
공교롭게도 <
육룡이 나르샤>처럼 이방원을 연기하는 실제 배우보다 연하인데 이 쪽은 2살이나 어리다.
[35]
2014년
KBS 드라마 <
정도전>에서는
이숙번 역. 배우개그로 두 역할의 실존인물들은 다 태종한테 쫓겨나 유배지에서 여생을 보내게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