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조선 태조의 손자
창녕군 | 昌寧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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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389년 | ||
고려 송도 | |||
사망 | 1451년 10월 15일[1] (향년 62세) | ||
조선
충청도
서산군 유배지 (現 충청남도 서산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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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 충청남도 서산시 남사현 | ||
재위기간 | 조선 창녕군 | ||
1400년 2월 8일 ~ 1451년 10월 15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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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ffd400> 본관 | 전주 이씨 | |
휘 | 태(泰) | ||
부모 |
부친
회안대군 모친 삼한국대부인 밀양 황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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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부친 기준 4남 2녀 중 차남 모친 기준 1남 3녀 중 장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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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밀양부부인 밀양 박씨 | ||
자녀 |
장남 덕림정 이○ 1433년 ~ 1497년 차남 호삼정 이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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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 망우당(忘牛堂) | ||
봉호 | 창녕군(昌寧君)'''[2] | ||
시호 | 양희공(良僖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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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 말기 사람이자 조선 전기의 왕족. 회안대군의 차남이며 의령군 맹종의 이복 동생이고 금산군 중군의 이복 형이다. 삼한국대부인 밀양 황씨 소생이다.2. 생애
1389년 송도에서 회안대군의 차남이자 밀양 황씨 소생으로 태어났다. 고려 말에는 경처와 향처를 모두 인정하였으므로 그는 적자로 태어났다. 조선이 건국되기 전에 태어났으며, 1392년 7월 조선이 건국되자 교수(敎授)의 벼슬을 받았다. 이어 현록대부로 승진하고 창녕군에 봉작되었다.정종에게 적장자가 없어서 왕위를 원했던 아버지 회안대군과 형 의령군 맹종이 1400년에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가 패하고 유배되자 작위를 박탈당하였다. 아버지 회안대군과 형 의령군 맹종은 황해도 토산현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충청도 홍주목으로 이배되었으며, 창녕군은 서산군으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직접 관련자였던 의령군 맹종 외에 회안대군의 자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가혹하다며 제2차 왕자의 난에 가담하지 않은 아들들과 딸들, 회안대군 유배 후에 태어난 아들들의 전지와 작위는 회복시켜주었다.
그는 서산군 부석면 강당리 강촌으로 가서 여생을 보냈다. 1451년 10월 15일에 서산군에서 병사하여 서산 남사현(南沙峴)에 안장되었다.
- 사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