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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왕국 Magyar Királysá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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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국장 |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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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3월 1일 ~ 1946년 2월 1일 | ||
Regnum Mariae Patrona Hungariae 헝가리의 수호자 마리아의 왕국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헝가리 제1공화국 | 헝가리 제2공화국 | |
국가 |
Himnusz ("Isten, áldd meg a magyart") |
|
위치 | 동유럽 | |
수도 | 부다페스트 | |
정치체제 | 권위주의 섭정 체제 → 파시즘 일당독재 체제 | |
국가원수 | 왕(없음) | |
주요 국왕 | 없음 | |
주요 실권자 | 호르티 미클로시 | |
공용어 |
헝가리어 루신어 |
|
민족 |
헝가리인 독일인 유대인 슬로바키아인 등 |
|
종교 | 가톨릭 등 | |
통화 | 크로네 → 코로나 → 펭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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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0년부터 1946년까지 중부유럽의 헝가리에 존재했던 나라로 1920년부터 1944년까지 호르티 미클로시가 섭정을 맡아 집권하였다. 판처파우스트 작전으로 호르티가 실각한 1944년 말부터는 살러시 페렌츠가 집권하였다. 1945년 소련에 점령당하고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2. 역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립한 이후의 국기 |
1944년의 헝가리 왕국[2] |
패전 후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어 헝가리 제1공화국이 탄생했다. 마침내 헝가리인들은 1526년 이후 390여년 만에 그들만의 나라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 헝가리는 트리아농 조약에 의하여 에르데이(Erdély)로 불리던 트란실바니아(Transilvania)를 포함한 대량의 영토를 상실하고 이중제국의 일원이었던 헝가리의 영역보다 작은 영토에 세워졌다. 헝가리인들이 지배하던 슬로바키아인들은 체코인, 소수의 우크라이나인과 루신인들과 연대해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고, 크로아티아인과 슬로베니아인 및 세르비아인들은 연합해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독립했으며, 트란실바니아의 루마니아인들은 루마니아 왕국에 편입되어 헝가리 왕국 이후 수백년간 지속된 마자르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부르겐란트의 독일인들 역시 헝가리에서 떨어져 나가 오스트리아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그러나 분리 독립 이후에도 헝가리의 역사는 고난과 굴욕으로 점철되었다. 1918~19년 사이 쿤 벨러(Kun Bela), 거르버이 샨도르(Garbai Sándor)를 비롯한 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에 자극받아 혁명을 일으켜 세운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Magyarországi Tanácsköztársaság)은 국내의 혼란을 제대로 수습하지도 못한 채 세계 혁명을 외치며 루마니아와 체코슬로바키아, 세르비아 등 주변 국가들을 모두 적으로 돌렸고, 그 결과 협상국의 지원을 받은 루마니아군과 헝가리 보수파의 침공으로 붕괴되었다.
오헝 제국의 붕괴와 재건된 헝가리인들의 국가는 지속적인 부침과 혼란을 겪었고,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의 붕괴 이후 국정 주도권을 장악한 헝가리 보수파들은 전통적 질서의 회복를 위해 '헝가리 왕국'의 복구를 결심하게 된다. 문제는 국왕으로 즉위할 적절한 인물. 가장 유력한 후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이자 헝가리 왕국의 국왕이었던 카를 1세. 그런데 사라진 제국의 황제가 다시 권력을 되찾는다는 점에서 승전국들의 반발이 있었고, 헝가리 내부에서도 카를 1세에 대한 지지가 굳건했던 것이 아니었다.[3] 여기에 일단 섭정을 자처해서 최고권력자 자리에 앉은 호르티 미클로시는 이미 자신이 헝가리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된 상황에서 굳이 국왕을 들여 자기 권력이 나누어질 위험을 감수할 마음도 없었다. 결국 재건된 헝가리 왕국은 국왕 선출 절차를 중단하고, 국왕이 없는 왕국이 되고 만다.
우습게도 그가 섭정일 당시 헝가리는 공화국을 칭하고 있었음에도 1946년까지 공식적으론 왕국이었고, 또 내륙국이었다. 이 때문에 1919년부터 1946년까지 헝가리는 바다 없는 나라의 해군 제독이 왕 없는 왕국의 섭정이 되어 다스리는 기묘한 상태였다.
오스트리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헝가리의 마지막 왕이던 카를 1세(헝가리명: 카로이 4세)가 헝가리로 잠입하여 왕으로 즉위하려고 시도하기는 했으나 호르티 제독의 군대에게 도로 쫓겨났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호의적이었다. 국제연맹에 가입했으나 트리아농 조약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탈퇴한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헝가리 왕국의 영토 변화 |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인 1940년 11월에는 과거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독일과 동맹을 맺고 추축국에 가입하였으며 유고슬라비아 침공 및 소련 침공[4]에 적극 참여했다. 독일이 우세했을 때 체코슬로바키아와 루마니아로부터 옛 영토를 조금 뜯어내고 유고슬라비아에서도 영토를 뜯어내는 등 제1차 세계 대전 때의 패배를 되갚는 듯 했다. 그러나 1944년 전세가 불리해지자 호르티 치하의 헝가리는 소련과 단독으로 강화를 맺으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를 파악한 독일은 1944년 3월 마가레타 작전을 시행해 헝가리를 사실상 점령했다.[5] 이에 호르티는 새 총리를 임명하지만, 독일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해 10월 독일군과 친독 인사인 살러시 페렌츠가 이끄는 화살십자당의 합동 작전인 판처파우스트 작전으로 호르티는 섭정 지위를 잃게 되었고, 슈츠슈타펠 대원들에 의해 납치되어 독일로 호송된다. 살러시 페렌츠의 쿠데타는 성공하여 국민단결정부(Nemzeti Összefogás Kormánya) 수립을 선언하며 총리로 취임했다. 살러시 페렌츠의 국민단결정부는 파시즘적 통치를 하고, 엄연한 준메이저 추축국이던 이전과 달리 독일에 거의 종속된 모습을 보여주었다.[6] 그러나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고 소련에 점령(1945년 4월)당하였다.
말기에는 지구 역사상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으로 악명 높았다.
이후 헝가리에는 제2공화국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 철의 장막' 안쪽으로 편입되었고, 영토도 다시 트리아농 조약을 기준으로 한 영토로 되돌아간다.[7]
3. 둘러보기
[1]
1942년의 헝가리 왕국
[2]
다만 이 시기 헝가리 영토는
뮌헨 협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에게서 일부 영토를 햘앙받고, 독일의 조력으로 북부
트란실바니아를 할양받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에게도 영토를 할양받은 뒤의 최대 영토다. 헝가리 왕국 대부분의 존속 기간 동안 영토는 트리아농 조약으로 정해진 현대 헝가리 영토에 가까웠다.
[3]
승전국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헝가리로 복귀하는 것이 이미 찢어놓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재건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카를 1세를 싫어했고, 헝가리 내부에서는 카를 1세의 복귀를 환영하는 왕당파, 군주제 찬성파와 왕국 재건도 싫고 이전 국왕의 복귀도 거부하던 공화주의자 및 자유주의자까지 의견이 분분하게 나뉘어 있었다.
[4]
이는 소련 공군의
커셔(현 슬로바키아
코시체) 폭격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소련의 의도적인 폭격인지 논란이 있으며 독일이나 헝가리의 자작극이라는 주장도 있고, 헝가리와 사이가 나쁜 루마니아의 공격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독일의 괴뢰국이었던 슬로바키아의 독단적 행동이라는 주장도 있다.
[5]
이때를 기점으로 헝가리의
유대인들이 독일로 호송되기 시작했다. 후술할 국민단결정부에선 아예 자기들이 직접 학살한다.
[6]
이때를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마냥 독일의
괴뢰국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7]
헝가리를 처벌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소련 측이 루마니아의 북부(현재의 몰도바 대부분 지역 및 부자크) 영토를 차지했기 때문에 영토를 돌려주지 않으면서도 루마니아인들의 반감을 덜 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트리아농 조약을 기준으로 영토 조정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