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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20:47:02

필리핀/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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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e1126><colcolor=#fff> 필리핀의 경제 정보
인구 1억 1596만명[1] 2024년, 세계14위
명목 GDP 4,318억 달러 2023년, 세계34위
PPP GDP 1조 2,654억 달러 2023년, 세계29위
1인당 명목 GDP 3,726 달러 2023년, 세계124위
1인당 PPP 11,940 달러 2023년, 세계118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 49.4%[2] 2023년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 Baa2 2023년, 9등위

1. 개요2. 상세
2.1. 토지개혁 실패로 인한 계층사회2.2. 해외 송금위주의 경제2.3. 농업 문제
3. 산업 구조
3.1. 농업3.2. 공업
3.2.1. 전자·부품3.2.2. 선박·조선3.2.3. 차량·이륜차3.2.4. 에너지·운수3.2.5. 관광
4. 기업5. 옛날 필리핀에 대한 과대평가6. 필리핀의 GDP(PPP) 추세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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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data.ygosu.fileofcdn.com/20170329035908_uquyvthi.png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 필리핀 경제의 구조적 문제점과 한국·필리핀 경제협력 방향

필리핀 경제를 서술한 문서. 경제력은 동남아시아에서 중위권에 속하는 나라인데, 2024년 IMF 통계 기준 필리핀의 1인당 GDP는 4,169달러로 베트남(4,636달러)와 500달러 가까이 차이가 나고, 볼리비아[3]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다.

1960년 1인당 GDP는[4] 263달러로 158달러인 한국보다 높았고, 1969년까지는 필리핀이 한국보다 1인당 GDP가 높았다. 일단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집권한 1965년에는 198달러였고, 500달러를 넘긴 해는 그로부터 12년 후인 1978년(561달러)였다. 1982년 829달러 가량을 기록하며 1000달러를 넘길 조짐이 보였으나 1983년[5] 723달러로 떨어진 것을 시작으로 1984년, 1985년 각각 -7%, -6.9%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마르코스가 퇴진한 1986년[6]에는 605달러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마르코스 성장 이후 필리핀 경제는 어느 정도 성장해 1994년 1081달러를 기록하며 1000달러를 넘겼고, 저성장 끝에 2000달러를 처음 넘긴 것도 1994년으로부터 무려 16년 후인 2010년(2202달러)였으며, 2016년 3038달러를 기록한 후 2021년 기준 필리핀의 1인당 GDP는 3461달러도 되지 않는다.

1973년부터 1986년까지 침체는 타 동남아 국가를 포함해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 경제성장률이 정체되어[7] 필리핀만의 특수한 침체 상황이였다고 볼 수 있다.[8] 이때 정치 불안정과 산업구조 변경 실패(또는 포기)가 맞물리며 혼합된 형태의 악화가 나타나며 장기적인 침체를 겪고 있다.[9] 한편,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가 7~8%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심지어 1990년대 이후로 베트남이나 캄보디아, 라오스 같은 후발주자조차 경제성장률이 7%는 기본으로 넘고, 10%에 달하는 년도도 적지 않았던 반면 필리핀은 경제성장률이 일반적으로 높아야 5%대이고 6% 성장은 경이로운 수준으로까지 표현할 정도로[10] 성장률이 매우 저조했다. 이 때문에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필리핀보다 못살았던 인도네시아에게 조차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당했다. 그나마 2012년부터 2019년까지는 항상 6%를 넘는 높은 편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너무 늦게 발걸음을 내딛은 것은 어쩔 수 없었고, 2020년 코로나 19-9.5%라는 역대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한풀 꺾였고 2020년대 초반에는 베트남한테 1인당 까지 추월당했고 전망이 어둡다는 말이 많다.[11]

또한 이처럼 저조한 경제성장률 때문에 많은 인구가 해외로 나가서 일하게 되었고 고급인력들도 대거 유출되다보니 필리핀 자체 성장에도 악영향을 끼쳤는데 이러한 상황이 2000년대 말까지 지속되었다.

그나마 2010년 베니그노 아키노 3세( 화교 계통)가 취임한 이후로는 필리핀의 경제성장 포텐셜이 뒤늦게 터졌다. 그 동안의 높은 출산율로 인한 상대적으로 젊은 인구구조로 인해서 1970~2000년대의 저성장으로 인한 이미지를 탈피하고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극심한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적은 중산층 비율 때문에 그 동안 쌓여온 사회문제는 여전하다. 필리핀의 중산층은 한국의 1970~80년대 중산층 수준이며 잘사는 사람들은 2020년대의 한국 부자 못지 않게 산다. 반면 빈민들은 1960~70년대 한국의 빈민 수준일 정도로 계층 간 격차가 상당히 크다. 한 마디로 빈민과 중산층의 격차도 매우 크지만 반대로 중산층과 상류층의 격차도 크다. 상류층 안에서도 완전 잘사는 이들은 중동 석유 재벌 못지 않게 잘 산다.

2. 상세

흔히 필리핀 경제를 파이가 작은 사회이며 제조업과 수출업 기반이 열악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분배론을 논하기 이전에 중간에서 잉여가치를 만들어낼 생산수단이나 생산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경제 규모도 큰 편이라고는 못 하는데, 일자리 창출이나 자본 축적이 심각한 수준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파이가 작고, 그 작은 파이 안에서도 수출을 이끌어야 할 산업은 더 작다.

개도국들이 자신의 파이를 늘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수출을 통해 외화를 끌어와야 한다. 한국,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포르, 중국, 말레이시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20세기 후반 고도성장에 성공한 나라들은 전부 이를 실현했다. 그런데 필리핀은 수출 제조업 기반이 매우 열악하고, 대기업이라고 할만한 기업들도 전부 유통/부동산/리조트 등 서비스업이자 내수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필리핀은 공업기지로 발전하기에는 입지가 영 좋지 않은 편이다. 물류 편의성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존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이렇다보니 생산기지를 필리핀에 조성하는 것보다 베트남이나 태국, 인도에 투자하는 것이 구미권이나 동북아시아권 기업들에게 훨씬 매력적이다. 그나마 억대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빈곤율이 높아 구매력이 낮고[12], 3천만 인구가 분쟁지역에 거주하고 있어 그 인구의 장점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렵다. 참고로 필리핀은 엥겔계수가 0.6을 넘기는 전형적인 저개발국이다.

필리핀은 무장 반군 등을 제외해도 강도 살인 폭력 절도 등 강력범죄가 중남미 막장국가들 급으로 국내 치안이 매우 불안하고 부패가 많은 것도 외국인들이 투자를 꺼리는 이유중에 하나이다. 특히 치안은 ASEAN 국가중에서도 가장 범죄율이 높고 조직범죄도 설치고 경찰도 믿을 수 없어 관광도 꺼려지는 곳인데 투자가 활성화 될 수 없다. 베트남은 더 가난하고 부패도 심했지만 공산국가라 최소한 치안은 태국보다 안전하고 말레이지아 다음 갈 정도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는 필리핀도 상당한 규모의 반도체 조립사업이 있었다. 미국 인텔의 IC 반도체 조립 공장이 필리핀에 있었고 그외 여러 미국 일본의 반도체 조립공장이 필리핀에 옮겨와 필리핀의 수출이나 고용이나 소득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부터 인텔을 시작으로 하나 둘씩 이 분야에서 경쟁하던 말레이시아와 태국으로 사업을 옮겨 떠나서 현재의 필리핀의 반도체 조립업은 몰락했다. 이 반도체 조립업은 후진국에서는 큰 고용 효과와 수출을 일으킬 수 있는 사업으로 현재 말레이시아의 주력수출 산업이다. 그 결과 현재 말레이시아는 세계 평균 수준의 중진국이자 아세안 국가들 중에서 상위권으로 도약했지만 필리핀은 훨씬 못살던 베트남에도 추월당한 후진국으로 남아 있다.

인텔 등 미국 일본의 반도체 기업들이 필리핀을 떠난 이유는 필리핀의 낮은 산업경쟁력 때문이다. 고질적인 전력 부족과 비싼 전기료와, 에너지 부족, 열악하고 부족한 수송 인프라와 만성적 교통 정체 문제, 훈련된 인력 부족 등 전반적으로 산업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 여기에 더해 만성적인 국내 정치 불안, 반군 등 치안불안, 심한 인플레 등 경제 불안, 정치인들의 엄청난 부패와 정부와 공공기관들의 낮은 효율도 필리핀에서 사업하는 것을 어렵게 하였다. 필리핀이 미국과 일본에 더 가깝고 인구도 많고 임금도 낮고 영어도 어느정도 통하는 이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산업인프라 사정이 나은 말레이지아나 태국에 그런 외국인 투자를 빼았긴 것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공업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자국 브랜드가 없다는게 치명적인 단점이며, 그러한 방식으로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평균 6.4%의 성장률을 기록하는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콜센터업 역시나 전망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약 4~5만 개의 질 나쁜 일자리가 기계로 대체되지만 대신 60만 개가 넘어가는 중간~상위급 일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이런 콜센터 산업도 인공지능의 급속한 발전으로 미래를 위협받는 대표적 산업이라 미래가 어둡다는 인식도 있다.

2010년대 들어서 공공부문에 대한 투자가 괄목할 정도로 늘어나면서 그 동안 등한시되었던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가 되면서 인프라 부문에서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통신부문을 소수의 대기업들이 독점했는데 인프라투자는 미비하다 보니 인터넷 속도가 매우매우 느리기로 악명이 높았다. 하지만 내부의 부정부패가 심각한데다 권력자들도 모두 빈곤층 소작농들을 최대한 많이 부려야 하는 지주 출신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빈부격차 문제는 해결이 힘들 공산이 크다.

2.1. 토지개혁 실패로 인한 계층사회

한편, 이 나라에서 늘 우선순위로 거론되지만 '그만 잊어버리라'고 말해 주고 싶은 것도 있다. ‘농지개혁’이 대표적인 예다. 역사적으로 이 나라의 대토지 소유와 이에 따른 빈부의 격차가 경제발전에 중대한 걸림돌이 된 것은 사실이다.
홍승목, 전 필리핀공사 겸 총영사[13]

무엇보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뽑은 필리핀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 토지개혁의 실패"이다. 한국에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전근대적인 지주-소작농 구조를 필리핀은 아직도 탈피하지 못했다. 거대한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이 농촌에서 봉건영주처럼 행세하는 전근대적 사회구조가 유지되고 있으며, 이들 중에서도 서로 혈연으로 얽혀있는 대략 30여 개의 대지주 가문들이 필리핀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지배하는 특권층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조상들은 스페인, 미국 등 식민통치세력에 빌붙으며 떡고물을 얻어먿은 현지인 지주들이거나 중국 등 외국에서 온 상인들이다. 영어 위키피디아 '필리핀의 정치 가문' 문서 한국 블로그 글 펨코 정리글

특히 이 지주들은 필리핀이라는 국가 내에서 말 그대로 귀족 계급으로 군림한다. 필리핀의 가장 가난한 10개 주를 이런 토호 가문이 지배하고 있다. 소작농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서 민주주의라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틀 내에서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정계에 진출하고, 또 이렇게 얻은 정계 관련 직위를 세습시킨다. 이 때문에 필리핀의 정계는 지주들이 장악했고 필리핀의 지방 지주들에 의해, 지주들을 위한, 지주의 법을 만드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 이는 필리핀 경제의 발전을 최소 수십년 동안이나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다.

특히 필리핀 지주계급들은 제조업 육성이나 인프라 건설 같은 공업화 정책과 복지 확립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파괴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적대적이며, 공교육에 대한 투자에도 시큰둥하며 할 생각을 안한다. 그저 농업, 광업, 유통업, 소매업, 관광업처럼 자신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산업에만 관심을 가지며 지금처럼 농촌에는 저학력 저임금 노동력이 넘쳐나고, 도시에는 빈민들이 가득해서 자신들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후진적인 현재 구조가 유지되길 원하는 것이다.

현지 한국 교민들의 말로는 필리핀의 기득권과 지도층은 필리핀의 "경제발전을 원하지 않고 현재의 불평등하고 후진적인 경제구조가 계속 유지되기를 원한다"고 입모아 말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토지개혁이 필수인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이미 기득권층인 지주들은 (자신들이 자본가가 되지 않는 이상) 산업화를 해봐야 이익이 없으며, 굳이 지금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기업가로 변신하는 모험을 하느니 토지를 기반으로 한 지금의 삶으로 중박은 치는 것을 유지하는 게 낫다. 게다가 산업화를 통해 필연적으로 자본가가 생겨나는데 이들과 경쟁관계가 된다. 이 과정에서 소작농들이 지주의 소작농으로 남느니 도시에서 돈을 벌겠다고 가거나 그게 아니더라도 그 자식들이 도시로 가버려 이촌향도 현상도 일어난다. 즉 지주제 하에서 산업화란 추진되기 어려운 일이다.

빈부격차도 엄청나고 이에 따른 눈에 안보이는 계급 차별도 심히다. 필리핀에서 좀 사는 부촌은 거리도 깨끗하고 상업이나 주거시설도 잘되어 있어 다른 아시아 중진국 선진국 못지 않게 발전되어 있지만 그외의 지역은 지저분하고 찟어지게 가난한 후진국 그 자체다. 부촌에서 커피 한잔 값이 빈민층의 하루 일당보다 비싸다. 그러다보니 생활도 취업도 결혼도 비슷한 계층끼리만 하고, 부와 사회적 경제적 지위와 기회를 물려받고 그게 오랫동안 굳어져 한눈에 봐도 피부색이나 생김새 등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계급을 알 수 있어서 인종차별이나 다름없는 사회적 계급이 있다. 가난한 계층은 부촌에 얼씬거리지도 못한다. 즉 취업이나 결혼 교육 등 사회적 계층 이동의 길이 막혀있어서 계층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빈민층도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교육이든 출세로든 결혼이나 치부로든 중산층에 편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고 산다. 그나마 헨리 시(Henry Sy, 1924~2019)[14] 로드리고 두테르테처럼 자수성가한 사람도 있다.

2.2. 해외 송금위주의 경제

소득에 비해 식비, 주거비, 생활비 등 최소생활을 위한 물가가 높아 생활수준이 낮고 저축이 불가능하다. 필리핀의 식료품 물가는 1인당 GDP가 10배가 넘는 대만보다도 비싸고, 프랑스, 독일같은 국가들과 비슷하다. 식료품만 가지고 물가를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지는 않으나, 이들의 경제사정을 감안하면 식료품비를 내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로 필리핀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게다가 필리핀은 약 3%의 인플레이션이 이루어지고 있고, #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학력 노동자의 경우 차고 넘치기 때문에 임금의 상승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들의 생활고가 앞으로 심해지면 심해지지 덜해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필리핀의 물가가 높은 이유는 외국에 취업해 송금하는 돈으로 생활하는 가구가 많아 본국의 소득 수준에 비해 소비수준이 높아서이다. 필리핀 송출노동자(OFW, Overseas Filipino Workers)들은 전체 인구의 10%인 1천만 명 정도 되는데, 소득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가족은 물론 친척까지 달라붙는 필리핀의 문화상 인구의 절반 정도는 OFW가 먹여살리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들이 필리핀으로 다시 송금해오는 현금을 통하여 내수를 증진시켜 나라 경제를 연명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페소가 고평가되어 필리핀 물가의 급격한 상승을 야기했다.

OFW가 한달에 보내는 돈은 보통 월 3조 원 가량으로, 1인당으로 계산하면 평균 수십만 원 수준이다. 이는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의 최저임금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OFW 가족이 있는 경우 나머지 가족들은 일을 하지 않아도 다른 국내 임노동자 가정의 급여 이상은 받는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러다보니 OFW의 송금만으로도 물가가 엄청나게 높아지게 된다. OFW 가족이 없는 개인이 임금을 받고 사는 것은 버거워질 정도로.

경제구조도 서비스업이 50% 이상으로 후진국으로는 기형적으로 비대하고 가공무역업이나 저임금 제조업 등 후진국에서 수출산업이 될만한 산업은 부진하다. 그래서 매년 수백억 달러의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아세안국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수준)를 서비스 수출과 해외에 있는 노동자들의 송금으로 메우는 형편이다. 필리핀 GDP에서 해외송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현재 9.4%로 상당한 편이다. 필리핀의 GDP 대비 해외송금 비율

의외로 최근의 경제성장률은 매우 높게 나타난다. 이것도 필리핀 정부의 주도적인 인력 송출 사업과 BPO(Business Process Outsourcing. 협력업체 외주화) 산업 호황 덕분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필리핀의 경제 성장이 수출주도형 발전전략이나 자본집약적인 서비스 산업을 통한 성장이 아니라, 해외로 자국민 노동자들을 팔아서 그들이 보내온 돈으로 증진된 내수 경기와 자본 집약적이지 않은 기업 업무 외주화(BPO), 그리고 콜센터업 등 서비스업을 통해 성장했다는 점이다. 기형적인 성장방식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경제성장률만 볼 때에는 충분히 "필리핀이 발전을 많이 하고 있군"이라는 오해를 할 수 있다.

필리핀의 경제는 상당수의 필리핀인이 해외로 나가 노동하거나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연명하는데, 그 와중에 벌어지는 인권 침해가 비판을 받는다.

1995년 3월에 싱가포르에 나가 일하던 필리핀 여성 가정부 플로아 콘템플라시온이 동료 가정부 및 집주인 아들 살해혐의로 교수형당한 바 있었는데, 유무죄를 둘러싸고 양국 간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하여 필리핀에서는 반싱가포르 및 라모스정권 퇴진시위가 전개되었다. 해당 사건은 이원복 교수 시사만화 < 현대문명진단> 3권 에피소드 '철권 밑의 파라다이스'에서도 언급되었고, 영화 < 플로 콘템플라시온 이야기(The Flor Contemplacion Story)>도 제작되어 제1회 서울인권영화제에서도 공개된 바 있다.

같은 해에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있는 알 아인에서 10대 필리핀 가정부 사라 발라바간이 고용주인 현지 남성을(당시 70살) 무려 34차례나 찔러 죽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고용주에게 성폭행을 당한것에 대한 원한이 이유. 사건을 접수한 아랍에미리트 재판부는 같은해 6월 1심에서 징역 7년에 벌금 40,000달러를 선고하는 동시에 강간에 대한 보상으로 27,000달러를 지급하라고 선고하였다. 쌍방 과실을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상급심에 사형을 요구했고 이에 필리핀 정부는 즉각 항의 사절단을 아랍에미레이트로 급파하는 등 양국간 신경전이 펼쳐졌다. 그러나 9월 2심 재판부는 강간에 대한 물증이 없고 계획된 살인임이 분명하다며 예상을 깨고 1심보다 무거운 총살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아부다비 여론도 너무 심했다는 반발이 거셌고 3심 법원은 같은 해 10월 30일 100대의 태형, 벌금 41,000달러(15만 디램)에 1년간 징역 후 추방을 최종 선고하게 된다. 당시 아랍 에미레이트 주재 필리핀 대사 로이 세네레스에 의하면, 사라 발라바간은 이듬해 1월 30일~2월 4일 동안 하루에 매일 20대씩 나누어서 곤장을 맞았고 본인이 직접 "참을만 하였다"는 반응을 보였다. 벌금은 필리핀 정부에서 부담했고 필리핀에선 영화 '사라 발라바간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2.3. 농업 문제

현재 민다나오섬에서는 델몬트를 비롯한 다국적 농업 기업들이 플랜테이션 건설을 위해 원주민들을 내모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내전 지역에서 무슨 농장 건설인가 싶지만 이들은 내전을 이용하여 간접적으로는 내전의 지속을 조장한다. 또 직접적으로는 무장단체에 사주하거나 반군으로 위장한 용병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이주를 거부하는 마을 주변에서 무력 분쟁을 조장한다. 그리고 남몰래 마을 주민들을 노예같이 부려먹으며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면 협박하고 학살하는 식으로 농장 부지를 확보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특히 민다나오는 필리핀에서 유일하게 태풍의 피해권역에서 벗어난 지역이고 현재 필리핀 농업생산량(주로 바나나)의 90%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땅이기 때문에 항상 다국적 기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지역이다.

또한 농장예정부지 밖에 있는 원주민들에게도 다국적 농업 기업은 위협적이다. 초거대 플랜테이션에 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하는 과정에서 농장 주변의 원주민 마을들이 통째로 농약을 뒤집어 쓰게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작게는 실명에서 크게는 사망까지 끔찍한 피해를 입고 있는 마을이 상당히 많다고 하지만 문제는 정부도 기업도 이들에게는 관심이 없다는것이다.

역설적으로 열대과일 재배를 해서 수출하는 대신, 농민의 다수가 이기작으로 벼농사를 짓는데도 쌀을 이웃나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필리핀 농업의 가장 큰 문제는 '지주-소작농제'이다. 토지를 소수의 지주들이 장악하다보니 자영농 육성이 안되어서, 기껏해야 소작농인 농부들이 일을 열심히 할 이유가 없다. 열심히 농사지어봤자 지주만 좋으니 농업 생산성이 낮아진다. 게다가 자영농들은 자영농들대로 워낙 영세하기 때문에 기계화나 선진 농법 도입이 잘 안되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는 상황이며, 결국 도시화로 농토가 줄어들때마다 농업생산력도 쭉쭉 떨어진다. 필리핀 정부도 농업이 부가가치가 낮다는 이유로 농업투자와 보호에 소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필리핀은 이기작이 가능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농업생산량 때문에 심각한 농산물 수입국으로 전락하였다. 다른 이유로는 필리핀의 1억이 넘는 과밀인구, 태풍과 지진 같은 재해, 필리핀 육지의 70%가 산간지역인 점 등이 있다. 그러나 필리핀 경제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토지 개혁 실패'와 내부의 심각한 부정부패와 빈부격차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필리핀은 농업인구가 적지 않음에도 농산물 수입이 농산물 수출의 2배를 훨씬 넘어 매년 농업에서 큰 무역 적자를 내고 있는 식량수입국이고 국제곡물가격 상승 때마다 필리핀 내 곡물 등 식량 가격이 폭등하여 식량위기를 부르고 있다.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은 식량 안보를 위해 정부 소유의 농토를 농민들에게 분배하겠다고 발표했다.

3. 산업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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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필리핀의 수출구조다. 살구색은 축산업, 노랑색은 과일 등의 농업, 연두색은 식품업, 고동색은 광물, 자홍색은 의료/화학, 분홍색은 고무/플라스틱, 옅은 녹색은 가죽/털, 녹색은 직물, 풀색은 신발/모자, 붉은색은 목재, 황토색은 귀금속/비금속, 갈색은 금속, 청록색은 전자기기, 하늘색은 운송수단, 회색은 기타 미분류이다. http://en.wikipedia.org/wiki/Economy_of_the_Philippines

필리핀의 제조업에 관련해서 웹에 검색하면 단순조립으로 수익율이 매우 떨어지고 주변 동남아 국가들에 비해 낙후되어 있다는 정보가 많이 돌아다닌다. 필리핀의 제조업은 '선진국들의 조립공장' 수준이라 봐도 무방하다. 미국, 한국, 일본, 유럽 등 세계 여러 선진국의 공장들이 눈에 불을 켜고 필리핀에 공장을 지어대고 있으며 특히 일본 기업은 필리핀을 최고 투자처(인건비, 수익률)로 보고 있으며 경쟁력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필리핀, 일본기업 최고 투자처"…경쟁력 확연).

저 도표의 Monolithic integrated circuit 는 전자부품인 IC 를 말하는 것으로 세계의 반도체 회사들이 칩을 필리핀에 들여와 와이어본딩과 밀봉포장 마킹 등 인건비가 많이드는 최종조립을 해서 가공수출하는 것으로 액수는 커도 부가가치가 낮은 사업이다. 그래서 미국반도체 회사의 IC 의 표면에도 필리핀산이라고 표시된다.

3.1. 농업

주산업이다. 설탕 파인애플ㆍ마닐라삼[15]ㆍ코프라[16] 연초가 5대 수출품이다. 바나나생산량 3위국가이다. 파인애플, 코코넛생산량 2위국가이다.

3.2. 공업

3.2.1. 전자·부품

도시바 공장이 위치해있다.

3.2.2. 선박·조선

한진중공업이 수빅에 조선소를 가지고 있었으나 2020년 수익성 악화로 매각 후 철수하였다.

3.2.3. 차량·이륜차

도요타 자동차 공장이 위치해있다.

3.2.4. 에너지·운수

필리핀이 산유국인만큼 국내 최대 정유사인 페트론(Petron Corporation)이 필리핀의 대기업인 산미겔 그룹(San Miguel Corporation)의 자회사로 존재한다.

3.2.5. 관광

마닐라, 세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를 가지고 있다.

4. 기업

필리핀의 기업 순위의 1위부터 10위까지 전부다 내수 중심 기업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삼성이나 현대의 포지션에 해당하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수출 주도적인 대기업이 필리핀에는 없다.

내세울 만한 기업은 세계적인 맥주로 유명한 산 미겔과 필리핀의 패스트푸드점으로 한국으로 치면 롯데리아급 포지션인 졸리비(Jollibee)라는 곳이 있는데, 필리핀 내에서는 맥도날드를 누른 곳이다. 당연히 원주민이 아닌 화교계 필리핀인이 사장이다.

그리고 SM이라고 하는 쇼핑몰이 존재한다. 참고로 이것도 화교 자본이다. SM의 헨리 시 회장은 필리핀 재계 1위의 재벌이다. 세계적인 경제전문 잡지 포브스의 2014년 세계 부자랭킹에서 자산가치가 97위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102위)보다 높게 나왔다. 필리핀 부의 재분배가 얼마나 안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17] 정치인들의 문제도 있다. 경제가 제한적으로 개방된 나라인데, 해외 국가의 기업들이 진입하는 것도 거부 하고 있다. 돈과 자원도 나눠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암묵적인 계층 사회가 존재하기에 노동자의 일자리 창출로 인한 인권이 상승하는 것도 지배층에서 싫어 하는 부분이다. 이 같은 이유로 부의 재분배율이 매우 낮은 나라중 하나이다. 조선시대 지배층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제 개방을 반대했던 위정척사파와 비슷한 부분이다.

보다시피 필리핀의 빈부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도 거의 최고 수준이다.[18] 이 SM은 필리핀 어디를 가도 도시마다 존재하며 지역마다 SM지역명으로 부른다. 즉 필리핀 바콜로드시에 있는 중앙 SM은 SM바콜로드가 되는 셈이다. 단 SM은 쇼핑몰일 뿐 백화점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제품들조차 고급이라고 볼 수도 없지만 이건 한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것이고 현지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SM의 제품들은 충분히 고급 제품들이라고 여긴다.[19]

SM은 기타 다른 쇼핑몰들에 비해 가격이 비싼편이라 필리핀 사람들에게 부유층이 주로 이용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20]

5. 옛날 필리핀에 대한 과대평가

한국의 경제발전상을 강조하기 위해 필리핀과 비교하면서 필리핀이 예전에는 아시아에서 일본 버금가는 수준으로 잘사는 나라였고, 심지어 선진국이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 노르웨이 석유 발견 전에는 후진국이었다'[21] 수준의 완전히 거짓이다.[22]

몇몇 사람들은 미국으로부터 독립 초기까지 경제적으로 잘 살았고 민주주의 정치도 잘 돌아갔던 필리핀이 마르코스 정권 시절부터 필리핀의 경제가 나빠지고 정치적으로 국가 막장 테크를 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꾸준히 성장했다. 마르코스 집권 이후 1982년경까지 필리핀 경제는 확실한 성장세였다. 경제 성장 속도만 놓고 보면 동시기 수하르토 치하의 인도네시아와 비슷했다. 이 덕에 처음에는 마르코스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의외로 많았다. # 다만, 베니그노 아키노 암살 사건 등으로 입지가 명백하게 불안해진 1983년 ~ 1986년에는 경제 성장이 하락세였고, 이는 마르코스가 더 이상은 정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된 큰 원인이 되었다.

필리핀이 마르코스 정권 이전에는 아시아에서 고평가된 환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덕에 19세기부터 중국 본토에서 하층민 화교들이 이민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이야기는 경제가 아닌, 부정부패 문제와 관련해서 막사이사이와 마르코스가 극적인 대조를 보였다는 것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1960년 ~ 1965년 1인당 GDP로만 비교해 봐도 필리핀은 100달러 중반에서 200달러 중반 정도이지만, # 말레이시아는 이미 그 시기에 200달러 중반에서 300달러 초반이었다. # 심지어 싱가포르는 400달러 초반에서 500달러 초반이었다. # 이미 1960년대 당시에도 동남아시아에서 필리핀은 그닥 잘사는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는 원래 이 지역에서도 그나마 잘사는 곳이었다.[23]

필리핀은 독립 뒤 제조업 육성을 위한 기계와 원자재 수입에 대한 우대환율정책과 기업에 대한 세제 우대 등을 시행했다. 당시 필리핀은 미국과의 관계 덕분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 특수를 누렸고, 1955년 유엔 아시아극동위원회(Economic Commission for Asia and the Far East(ECAFE))가 발간한 ‘아시아와 극동의 경제 보고서'에서 당시 필리핀의 1946~1954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14.5%로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1위였다.

그럼에도 해방 직후 ~ 한국전쟁 이전까지의 한국의 국민소득과 큰 차이는 없었다. 해방 후 ~ 한국전쟁 이전의 대한민국 대만과 국민소득이 비슷하였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싱가포르[24], 말레이시아 등은 필리핀보다 1인당 국민 소득이 높았다. 필리핀이 한국에 비해 1인당 국민 소득으로 우위를 점한 때는 한국전쟁 이후 ~ 60년대 후반의 약 15년 정도의 기간이며, 60년대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264, 1961년 $278 정도였다.[25]

그 다음 해인 1962년 하술할 환율 변동으로 $156로 떨어졌고, 반등에 실패하여 1960년대 전반적으로 평균 $200달러 내외의 소득을 보였으며, 이후 성장률이 정체하면서 1969년을 기점으로 한국에게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당하였다. 한국의 경우 1960년 $159, 1961년 $94였다.[26] 1962년에 $106로 오른 이후 꾸준히 올라 60년대 평균 역시 $100달러 중후반대의 소득을 보였다. 60년대 한국 1인당 GDP는 당대에도 그다지 잘 살지는 못했던 캄보디아, 태국보다 높은 편도 아니었지만, 1970년을 기점으로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하였고, 이후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은행 자료.

흔히 필리핀이 60년대 이전까지 대한민국보다 훨씬 잘 살았음은 물론 선진국에 아시아 국가들의 롤모델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져 있는데, 이 이야기들은 완전히 틀린 말이다. 왜냐면 정작 1960년대의 1인당 GDP를 보면 한국이나 필리핀이나 아주 큰 차이도 나지도 않고, 1970년부터 한국이 필리핀에게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다. 필리핀은 이미 1960년대에도 동남아시아에조차 잘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국토가 초토화된 전쟁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 된 한국과 한국 전쟁으로 인한 특수를 누릴 수 있었던 필리핀의 경제 상황을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쉽게 말해 르완다 르완다 내전을 겪고도 북한보다 1인당 GDP가 높을 정도로 안정된 상황이라는 이유로 르완다를 아프리카의 선진국인 것마냥 주장하는 꼴이다(...). 덤으로 필리핀은 미국과의 관계 덕분에 특수를 누릴 수 있었다.

애시당초 필리핀은 한참 전부터 식민지 경제체제가 유지되었고, 미국이 독립시킨 뒤에도 (미국 본토가 대공황이라) 막대한 투자나 지원도 받지 못했고, 태평양전쟁 발발과 동시에 일본에게 공격당했다. 6.25 전쟁에 휩싸이기 전까지의 한국과 비교해서 딱히 나을 게 없다.

또한 60 ~ 70년대 필리핀과 한국의 거리 사진을 비교하는 식의 게시물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정작 필리핀은 대도시의 도심 지역 사진이고, 한국은 외곽의 시골 지역 사진을 가져와 놓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비교라면 그 당시 한국이 일본이나 말레이시아, 심지어 미국보다 잘 살았다는 논리도 댈 수 있다. 어느 나라나 번화가와 가난한 지역이 공존하기 마련이고, 아무리 선진국이라도 슬럼가의 환경은 열악하기 때문이다.[27]

여러모로 한국의 전후 급격한 경제성장이 매우 드라마틱했기에 이는 한국인들의 자부심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런 자부심이 과도하게 본인들의 과거를 과소평가하게 되는 경향으로 변질됐고,[28] 저런 식의 선동적인 글도 여과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한때 한국이 필리핀을 롤모델로 삼았다는 근거 없는 루머가 퍼져있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이동원의 회고록을 살펴보면 애초에 박정희는 필리핀을 후진국이라고 무시하였다.[29] 또한 서울의 장충체육관을 지을 기술이 부족했던 한국 대신 필리핀이 지어줬다는 얘기가 이상하게 많이 퍼져 있으나, 거짓이다. 장충체육관은 필리핀과는 아무 연관도 없다. #, #, # 심지어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 또한 이게 사실인 줄 알고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얘기한 바 있다. # 나라의 대표인 대통령이 외교관계에서 잘못된 정보를 말한 건 문제가 있으며, 외교에는 사실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외에 미국 대사관, 경제기획원(현 문화관광부) 등의 청사 건설에 필리핀 엔지니어가 참여했다는 도 있으나, 전부 확인되지 않은 추측의 영역이다. 그리고 아주 만약에라도 필리핀 엔지니어가 참여했던 게 사실이라고 한들, 몇몇 기술자가 '참여'한 것이 어떻게 '지어줬다'는 셈이 되고, 돈 주고 고용한 게 어째서 '지어줬다'는 게 되는 건지 의문이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몇몇 사람이 건설에 참여한 걸로 따진다면 밑도 끝도 없다. 확실하게 검증이 되는 '사실'들은 필리핀은 기업 단위로 한국에 건물을 지은 적도 없다는 것과 지을 수 있는 역량과 기술도 없었다는 거다. 당시 필리핀에서는 건축물을 지을 때 미국 기업에 의뢰하는 게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Nation, 1986. 4. 5. 'Minority Report' p. 478)

참고로 필리핀이 아시아에서 일본 버금가는 부국이였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60년대 초반 1인당 GDP도 실상으로 보면 고평가된 환율로 인한 거품이 끼어 있었다. 1962년 필리핀 중앙은행은 수출 경쟁력 강화와 외환 부족 해소를 위해 1달러당 2페소[30]였던 환율을 보다 현실적이었던 3.9페소[31]로 평가절하했다. 즉슨, 한국보다 잘 살았다는 60년대 초반 필리핀의 1인당 GDP는 1960년까지의 한국과 똑같이 고정환율제 특성상 과대평가된 것이다.

6. 필리핀의 GDP(PPP) 추세

필리핀과 비슷한 GDP(PPP)를 가진 국가들의 년도별 비교[32]
국가명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벨기에 357.760 378.575 389.922 383.057 394.346 405.470 419.065 432.311 447.068 464.066 481.193
콜롬비아 346.804 381.648 403.820 413.438 435.367 460.406 487.789 516.065 547.134 581.299 618.335
스웨덴 322.663 343.168 348.516 332.954 354.716 372.765 391.215 410.164 431.025 453.646 477.828
그리스 301.281 323.421 333.868 330.039 318.082 311.794 319.499 330.436 342.457 357.639 374.781
베네수엘라 299.611 333.573 357.161 348.586 345.210 355.145 365.737 375.343 386.910 400.525 415.127
오스트리아 298.258 318.487 332.538 322.537 332.005 343.831 356.444 368.854 382.325 396.695 411.090
우크라이나 291.559 323.974 337.492 290.116 305.229 322.458 342.917 362.948 383.775 405.875 429.796
스위스 285.026 304.109 316.650 313.441 324.509 335.817 346.571 357.338 369.139 382.136 396.022
필리핀 272.191 300.067 317.946 324.263 351.370 372.814 396.721 421.905 449.539 479.995 513.073
노르웨이 232.454 245.831 253.090 251.763 255.285 265.864 276.270 286.259 296.964 308.534 320.843
싱가포르 217.254 243.272 252.285 252.637 291.937 310.689 328.948 347.869 368.401 390.239 413.460
칠레 214.437 230.845 244.617 242.679 257.884 276.053 293.652 310.805 329.270 349.234 370.812
베트남 199.004 222.184 241.368 256.546 276.567 297.095 321.521 349.177 380.674 416.122 455.367
덴마크 193.702 202.560 204.665 195.781 201.739 208.272 215.483 222.894 230.875 239.450 248.548
방글라데시 190.999 209.019 226.314 241.610 258.608 277.919 300.214 324.911 352.787 383.863 418.131

비교적 성장추세가 빠른 편이다.

2006년부터 2016년 까지 필리핀은 GDP(PPP) 벨기에, 스웨덴, 그리스, 베네수엘라,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스위스 등을 추월했거나 추월할 예정이다. 그러나 PPP는 국가 총생산을 따지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는 PPP가 서비스나 상품의 질 등을 고려하지 않는 등 누락된 부분이 더러 있어서 선진국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고 후진국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단, 명목상 GDP는 실질적인 경기흐름보다 환율에 더 크게 좌우받는 영향이 있기 때문에, 경제의 성장세를 알아보는 데는 PPP가 더 낫다.

7. 관련 문서



[1]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opulation [2]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public_debt [3] 베네수엘라를 제외하면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다. [4] 이하 세계은행 통계 기준 [5] 성장률은 1.9%였다. [6] 성장률 자체는 3.5%로 플러스 성장이었다. [7] 1980년까지 필리핀의 경제성장률은 대개 5%대였고, 1974년에는 3.4%였다. 1981, 1982년에도 각각 3.4%, 3.7%였다. [8] 이때 한국은 엄청난 성장을 했으며 필리핀의 이웃 국가들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도 미친듯이 성장했다. 일본은 60년대말에 이미 성공해서 제외되었고 싱가포르, 홍콩은 70년대에도 어느 정도 먹고 사는 편이었다. [9] 에드사 혁명 직후 민주화가 이뤄졌지만 여러 가지로 5년 동안 쿠데타 시도나 대통령 암살 시도가 있었고 마르코스 시절보다 치안이 악화 되는 일이 있었다. 아직도 이 늪에서 못 빠져나와서 저성장 및 침체기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0] 1960년 이후 필리핀의 경제성장률이 7%를 넘긴 적은 1963년(7%), 1973년(8.8%), 1976년(8.8%), 2016년(7.1%) 4번이 전부다. [11] 사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도 전망이 완전 밝은 건 아니나 이 둘은 그래도 고속성장 중이고 여러 조건도 필리핀에 비하면 매우 나은 편이다. 필리핀이 애매한 이들에 비해 너무 안 좋은 것뿐이다. 심지어 어느 면에서는 후에 킬링필드, 라오스 내전 등 아픈 과거를 무릅쓰고 사실상 최빈국을 벗어난 라오스, 캄보디아보다도 전망이 어두운 편이다. [12] 인니보다도 더 심하다. 그나마 인도보단 낫지만 그래도 희망적이진 않다. [13] 국제법규과 1등 서기관이자 주함부르크 영사, 주네팔 대사관 등을 역임했으며 1997년에 프랑스 국제법 학자에게 독도가 한국 영토인 이유를 법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적지 않은 화제가 되었다. 2013년을 기점으로 외교부에서 은퇴했다. (출처 총영사칼럼6 필리핀 경제를 바라보며 (강의 발췌; 2007.08.29)) [14] 거대 기업 SM 그룹(SM Investments)의 오너로, 가족들이 중국으로 간 상황에서 혼자 남아 신발 장사를 시작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어 그가 사망한 2019년 순자산 190억 달러로 추정될 정도로, 죽을 때까지 11년 연속 필리핀 부자 1위였다. 사실 그 역시 푸젠성에서 태어나 12살에 필리핀으로 이주한 화교였다. [15] 바나나와 비슷하다. [16] 야자씨의 배젖을 말린 것이다. 지방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과자의 재료, 마가린, 비누, 팜유 따위의 원료로 쓴다. [17] 사실 개도국 부자나 재벌들은 한국 부자들 보다 더 잘 산다. 동남아,인도권,중동권,아프리카권,중남미권등 개도국이나 부의 분배가 거의 안되는 지역들 부자들은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잘사는 경우가 많다. 가령 인도는 기아지수가 북한보다 높게 나올 정도로 매우 빈곤한 국가이지만 인도 최고 갑부 무케시 암바니는 수십층 높이의 개인 저택 '안틸라'를 가질 정도로 호화스럽게 산다. 북한 김정은만 봐도 세계 재벌하고 비교가 안되게 잘 살고 있다. 국가급 예산을 자기들끼리 나눠 먹으니. [18] 필리핀 보다 덜한 곳은 라오스, 캄보디아, 동티모르, 미얀마 같은 최빈국 수준 저개발국이고 필리핀 보다 나은 인도네시아나 베트남도 필리핀 만큼 심하진 않다. [19] 1980~90년대 한국과 비슷하다. [20] 물론 여기서 부유층이라고 해봤자 한국의 중산층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진짜 상류층은 외국인용 호텔이나 클럽 같은 곳에 가서 논다. [21] 노르웨이는 이미 1960년 기준으로 웬만한 서유럽 국가들보다 1인당 GDP가 높은 잘 사는 나라였다. 이웃 북유럽 국가들인 스웨덴 덴마크보다는 못 살았을 뿐이지. 쉽게 말해 네덜란드가 싱가포르와 노르웨이보다 1인당 GDP가 낮다고 못 사는 나라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22] 다만 1967년까지 가나보다 못 살았던 것은 사실이다. [23] 심지어 싱가포르는 홍콩과 사실상 똑같았던 것은 물론 세계 평균과 비교해도 그렇게까지 낮은 편도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일본과 논외급이었던 이스라엘을 제외하면 당대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을 정도. [24] 이쪽은 세계 평균, 홍콩, 심지어 일본과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25] 다만 이는 (현 시점에서는 중진국의 마지노선격인) 세계 평균의 절반보다는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당시 세계 평균이 환율 변동을 감안해도 지금보다 훨씬 낮았던지라 별 의미는 없다.(당시 세계 평균을 약간 넘기던 일본이 오늘날로 치면 5000달러대의 인도네시아급이고 영국 프랑스조차 15000달러대로 세계 평균급이다.) [26] 후자 역시 환율 변동 때문에 떨어진 것이다. 사실 이승만 정권 시기 공식환율이 실질환율보다 2배나 고평가된 것이었다. [27] 실제 한국 60년대 서울 도심 지역 사진은 여기에 나온다. 1970년대 한국의 부산, 대구, 인천 등 대도시는 일본의 50만 ~ 100만 사이 도시들과 비슷했으며, 서울은 오사카나 도쿄 외곽 지역과 유사했다. 이미 한국은 1969~1970년 절대빈곤국을 벗어날 무렵부터 20층 이상 건물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작하고 1979년(이 무렵부터 한국은 말레이시아보다도 잘 살게 되었다.)에는 아예 40층에 육박하는 빌딩까지 들어섰지만, 필리핀은 1968년 지어진 마닐라 파빌리온 호텔(90m, 22층)이 1989년까지 필리핀 최고층 건물이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집권이 끝난 1986년까지만 해도 아무리 높아봤자 20층 초반 건물에 그쳤다. 또 필리핀에 처음으로 100m 이상 건물이 들어선 것은 퍼시픽 스타 빌딩(112.5m, 29층)이 건설된 1989년으로 한국보다 무려 19년이나 늦었다. 애초에 평양, 하라레만 봐도 알 수 있듯 후진국들도 수도만큼은 번듯한 것은 매우 흔한 일인데, 수도에 나라의 경제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근대가 아닌 고대나 중세 국가들도 수도의 고관대작들이 사는 지역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휘황찬란하다. [28] 또한 '우리가 과거 초라했던 시절에서 이만큼 유례 없이 발전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역으로 60년대 한국을 오늘날로 치면 소말리아급 포지션이었다고 과장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한국은 당대 기준으로도 매우 가난한 국가인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해도 세계적 기준으로 보면, 환율이 실제 대비 2배 가량 고평가되었던 1960년대 초반이면 몰라도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인도, 방글라데시와 엇비슷한 포지션의 후진국 중하위권 수준이었으며, 오히려 중국 등 한국보다 가난했던 국가들도 수두룩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이 1968년까지 최빈국이었던 것 자체는 맞지만 최빈국 중에서도 하위권이었다는 식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다. [29] 정작 당시 한국은 필리핀보다도 못 살았다는 게 함정이지만(...). [30] 1950년부터 쭉 ‘1달러=2페소’의 고정환율이었다. [31] 정확히는 1962년에는 3.7페소로 평가절하했고 1963~1969년까지 3.9페소로 쭉 고정환율이었다. 이후 1970년 5.9페소로 대규모로 평가절하된 후 변동환율제로 변경되었다. # [32] (중위 18개국 비교)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April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