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Funny Tank제2차 세계 대전 도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쓰기 위해 영국에서 영국군이 개발한 특수한 전차의 총칭. 처칠 전차와 M4 셔먼 등의 전차 차대를 전용했기에 '전차'라고 부른다. 이후 현대의 기갑/ 공병 부대의 공병전차들의 시초 뻘이 되는 차량들이다.
Funny는 우스개 외에도 '수상한, 괴상한' 등을 뜻한다. 다른 이름은 '후술할 개발 총책임자의 이름을 딴, Hobart's Funnies'(호바트의 괴짜들).
2. 개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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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육군
소장 퍼시 클레그혼 S. 호바트 경 (Major General Sir. Percy Cleghorn Stanley Hobart, KBE, CB, DSO, MC) |
퍼니전차가 워낙 임팩트가 강하여 호바트 장군을 그냥 괴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영국 기갑부대를 키워낸 관리자로서의 능력과 공헌이 훨씬 컸다. 당시로서는 생소한, 보병과는 독자적인 기갑 부대라는 조직을 구성하고 그 아래의 간부와 병력을 훈련시키는 기획자 및 관리자로로서의 능력이 뛰어났고, 실제 그의 공훈은 여기에서 나온다. 퍼니전차 역시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1]
영국군 기갑 선구자 가운데 한 명으로 불리는 인물답게 1934년에는 영국 육군에 최초로 편성된 기갑 여단장에 취임했고, 1937년에 참모차장을 거쳐 다음해에는 이집트에 창설할 기갑사단의 최초 사령관이 되어 앞으로 만들어질 사단의 편제를 구성하였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보수적인 윗선의 시각에서는 전차만능주의로까지 보일 수 있는 그의 진보적인 사고는 전차를 비롯한 기갑 전력을 보병의 보조 역할로만 인식하던 영국군의 높으신 분들과 충돌이 잦을 수밖에 없었고, 적이 많았기에 당연히 제대로 된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2] 실제로 이집트에서 그가 편성한 부대는 초기에는 부실한 장비 구성으로 인하여 군 내부에서도 '이동 극단(Mobile Farce)'으로 불릴 정도로 비아냥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이집트에 뿌린 씨앗은 그 이후에 벌어진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제대로 이름값을 했는데, 그가 만든 부대가 바로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이름을 날린 영국 육군 제7기갑사단, 일명 사막의 들쥐들(Desert Rats)이었기 때문.
하지만 보수적인 보병 중심의 전차관을 버리지 못한 군 상층부에서는 호바트를 미워했고, 전차전이라는 새로운 전쟁 양상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당시 그의 상관인 아치볼드 웨이벌 장군은 반 호바트파가 던져주는 악평까지 그대로 받아들여 그를 전역시켰다. 참고로 호바트를 전역시킨 웨이벌은 이탈리아군 상대로는 상당한 전과를 올렸으나 에르빈 롬멜이 북아프리카 전역에 등장하면서 독일군에 밀리기 시작했고, 배틀액스 작전까지 실패로 돌아가자 결국 해임되었다. 그리고 롬멜을 아프리카에서 몰아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호바트의 매부였다.[3] 하지만 퇴역까지 당한 호바트와 달리 이미 충분히 높으신 분이었던 웨이벌은 인도 주둔군 사령관으로 옮겨갔고, 나중에는 인도 총독까지 오르며 군내 정치의 승자가 되고 백작 작위까지 받는다.
그렇게 전역하여 고향으로 돌아온 호바트는 독일군의 영국 상륙에 대비해서 결성된 지역 홈가드(Home Guard : 향토 방위대)에 가입했는데, 여기서도 그의 조직 구성 능력은 빛을 발했다. 홈가드는 지원은 부실하고 반대로 대원들의 열의만 높아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았는데, 호바트는 이런 당나라 군대 수준의 홈가드를 재편성하여 지역의 방위 능력을 눈에 띄게 향상시켰고, 곧 그 공적을 평가받아 지역 홈가드 부사령관까지 오르게 된다. 마침 그의 멘토이기도 한 리델 하트가 신문 투고 형식으로 호바트의 강제 전역을 비판하기도 했고, 홈가드에서 쌓은 공적도 인정을 받아 윈스턴 처칠은 그를 예비역 소집해 제11기갑사단, 일명 'Charging Bull'의 편성과 훈련을 맡겼다. 여기서도 그의 기갑 부대를 키우는 남자로서의 능력은 빛을 발해 호바트가 편성한 11기갑사단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주노 해안에 상륙한 뒤 독일을 향해 진격하여 종전까지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크게 활약했다. 물론 이 결정에 호바트를 적대하는 사람들은 '그놈은 늙어서 안 돼', '그놈은 병들어서 안 돼'라는 별의 별 이유를 들어 그를 끌어 내리려 했지만 이번에는 처칠이라는 강력한 실드가 반대파의 목소리를 억눌렀다.
이렇게 11기갑사단의 기초를 쌓은 뒤 새로 편성을 시작한 것이 제79기갑사단이었다. 영국군은 디에프 상륙작전에서 겪은 망신을 교훈삼아 기존의 방법으로는 해안에 요새화가 이뤄져 단단히 구축된 방어선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고, 앞으로 벌어질 본격적인 상륙작전, 즉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는 이러한 삽질이 벌어지지 않도록 상륙전에 특화된 기갑 장비 개발을 검토했는데, 그 역할이 제79기갑사단에 떨어졌다.
79기갑사단은 초기에는 윗선에서의 지원 부족으로 부대 해체 위기까지 겪었지만 당시 육군 참모총장인 앨런 브룩 장군이 후원자로 나서 특수 기갑 부대로 전환하여 위기를 넘기며 본격적으로 부대의 모습을 갖춘 뒤 호바트 이하의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모아 후에 호바트의 괴짜로 불리는 특수 전차의 개발과 배치, 운영을 시작했다. 이러한 특수 전차의 개발은 호바트의 매부이기도 한 몽고메리 장군을 통해 미군에도 소식이 전해졌고, 당시 연합원정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육군 원수도 이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미군은 겉모습만 보고 DD 셔먼만 채용했다.
3. 대서양 방벽
독일군은 연합군이 언젠가는 프랑스에 상륙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마침 아프리카 전선에서 병을 얻어 막 요양차 독일로 귀국했던 에르빈 롬멜은, 히틀러의 명으로 대서양 방벽을 건설하여 연합군의 상륙을 막는 임무를 맡았다. 그는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해안가를 완전 봉쇄하기 위해 공병대를 동원하여 방어선을 구축하니 이것이 바로 대서양 방벽이다.- 토질이 물렁물렁한 해안가를 이용하여 전차의 진입 경로를 제한한다.
- 해안가에는 다수의 기관총 사수를 대기시켜 보병의 접근을 1차적으로 차단한다.
- 해안가 지역이 끝나가는 부근에 보병이나 전차가 지나가지 못할 정도의 절벽을 구축하여 적의 접근을 막는다.
- 토치카로 적의 접근을 막고, 동시에 전차의 접근 경로를 막는 방해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배치한다.
- 절벽이 돌파당할 경우를 대비하여, 해안선을 따라서 모든 해안가에 지뢰를 빼곡히 매설해 보병과 전차의 접근을 막는다. 이 때 매설된 지뢰는 4백만 개에 달한다.[4]
- 대전차 참호를 구축하여 다시 전차와 보병의 접근을 막는다.
- 마지막으로 다수의 토치카를 구축하여 적 보병과 전차를 최종적으로 막는다.
비록 시간에 쫓기고 자원과 인력은 부족하여 롬멜이 원하는 대로는 다 이뤄지지 못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은 마지노선이나 지크프리트 선 못지않은 미친 방어선을 정말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모든 토치카는 적 포탄에 쉽게 무력화되지 않도록 콘크리트를 수십cm 단위로 두껍게 발라놓아 방어력도 대단했다.[출처] 하지만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교두보를 확보하려면 어떻게든 이 방어선을 뚫어야만 했고, 이 구상의 일부로 호바트 소장이 이끈 제79기갑사단이 퍼니전차를 개발한다.[6] 호바트의 괴짜들로 불린 이 전차들의 목표는 단 하나, 대서양 방벽을 좀 더 안전하고 확실하며 빠르게 돌파하는 것이었다.
4. 종류
이 난공불락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호바트 예하 퍼니전차 개발진들이 내린 결론은 기승전차. 그들이 낸 결론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무르디 무른 해안 뒤에 진지를 만들어 전차가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면 전투공병전차에 보빈 장비를 달아서 무른 해안에 카펫을 깐 다음 전진하게 한다.
- 해안가에 기관총좌를 쫙 깔아서 보병을 저지한다면 물을 건널 수 있는 전차를 바로 해안으로 올려보내서 방패로 삼는다.
- 전차도 지나가지 못할 정도의 절벽을 만들어둔다면 전투공병전차에 고트 장비를 달아서 벽을 날려버린 다음 진격한다.
- 콘크리트 수십 cm 두께의 벙커를 지어놨다면 전투공병전차에 거대한 중박격포를 장착해 화력으로 박살낸다.
- 수천만 개의 지뢰를 깔아서 지뢰밭을 만들어 놨다면 지뢰제거전차로 적의 포화를 막으면서 지뢰지대를 개척한다.
- 전차가 지나가기엔 너무 넓은 대전차 참호를 잔뜩 파두면 교량전차로 다리를 들고가서 필요할 때 다리를 설치한다.
- 강력한 토치카 안에서 저항한다면 전차에 강력한 대형 화염방사기를 달아서 토치카 내부를 청소한다.
아래 항목은 가나다순으로 표기했다.
4.1. 전투공병전차(Armoured Vehicle Royal Engineers, AVR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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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전차를 개조한 공병전차(AVRE)[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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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RE의 주포인 230mm 페타드 후장식 박격포 |
장전법은 일단 포신을 위로 90도로 꺾은 다음, 탄약수가 차내에서 해치만 살짝 열어서 박격포 밑바닥 뚜껑을 열고 밑에서 포탄을 장전한 후 발사한다. 물론 이 시대에 대구경 자동 장전 장치 같은 건 없었으니[11] 전부 수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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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다니는 쓰레기통(Flying dustbin)'이라고도 불렸던 18kg짜리 포탄 |
장애물을 파괴하여 아군이 진격할 길을 만드는 이 AVRE가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적 토치카 잡으려고 폭탄 들고 맨몸으로 돌격하는 것[15]보다는, 멀리서 박격포로 날려버리는 게 더 쉽고, 빠르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골드, 소드와 주노 해변에 상륙한 이들 전차는, 독일군의 토치카를 박살내면서 아군 보병의 진격을 돕는 큰 활약을 했다. 이와 비슷한 타국의 기갑 차량들은 소련의 SU-152, ISU-152 자주포가 있고 독일의 4호 돌격전차와 슈투름티거가 있다.
전후 1947년엔 처칠 Mk.VII를 기반으로 한 신형 AVRE 차량이 개발되었고 주포도 165mm Ordnance BL 6.5″ Mk.I으로 변경되었다. 냉전기가 되자 AVRE는 차대를 센추리온 전차로 변경하는데, 이 시절 사용한 165mm는 사거리도 훨씬 길어졌고 그냥 고폭탄이 아닌 점착유탄을 썼다.
4.1.1. 추가장비
공병전차는 다양한 추가장비를 달아서 쓸 수 있었다. 공병이라는 이름답게 장애물 개척과 관련 된 장비가 장착되었다.4.1.1.1. 고트(Goat)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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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2. 교량 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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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용방식은 공병전차 앞부분에 9m 또는 27m짜리 다리를 달아, 이것을 크레인으로 매달아서 운반하다가, 강과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이 다리를 놓고, 그 위로 전차를 건너가게 한다. 다만 크레인에 다리를 다시 매달기 위해서는 2시간은 걸리므로, 급박한 상황에서는 사실상 1회용에 가깝다.
현대의 교량전차는 기본적으로 교량 크레인에 나온 것처럼 큰 다리를 휴대하지만, 다리를 접어서 휴대하며, 사용 후 빠른 회수가 가능하다.
4.1.1.3. 보빈(Bobbin)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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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제작된 장비가 다름아닌 보빈전차. 공병전차 앞부분에 카펫을 둘둘 감은 롤을 달았다. 일단 전차가 상륙해서 앞의 롤을 풀면, 카펫이 깔리면서 모래에 차량이 빠지지 않게 만들어준다. 롤이 다 풀리면 자동으로 전차와 분리되므로, 후속차량은 깔린 카펫 위를 그냥 지나가면 끝이다.
그러나 노르망디에서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예상보다 모래밭이 단단했기 때문에 굳이 이런 장비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모양만 본다면 상당히 웃기는 물건이고, 미군은 대부분의 퍼니전차를 거부했기에 이 물건도 채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오지마 전투가 벌어지자 이런 장비가 왜 필요한지가 증명되었다. 기세좋게 상륙했더니 셔먼 전차나 윌리스 MB, DUKW 같은 차량들이 화산재 모래에 푹푹 빠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이것들을 또 빼내려니 알보병들은 힘들어 미치겠고, 일본군은 참호와 벙커 속에 짱박혀서 해변에 묶인 병사들에게 총포탄을 쏟아부은 것이다. 비록 미군이 승리하기는 했지만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17]
그래서 이 개념은 지금도 살아있다. 상륙훈련 같은 데 보면 LST 같은 상륙함에서 병력이나 장비가 쏟아져 나올 때 모래사장 위에 이상한 철망 같은 것만 밟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저 차량에 사용된 것을 개량한 비치매트이다. 다만 부설용 차량은 전차나 장갑차 대신 트럭 같은 차량에 장착하고 있다.[18]
4.1.1.4. 파사인(Fascines)[19]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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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망디 상륙 작전 당시에는 참호뿐만 아니라 높은 절벽이나 토치카를 교량전차로 넘어간 다음에 나무를 던져서, 전차가 떨어지면서 무너지지 않게 하는 완충제로도 활용했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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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인 장비를 이용해 참호를 건너는 장면과 AVRE의 230mm 박격포 발사장면[21] |
4.2. 교량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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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칠 ARK Mk II |
교량전차는 전차 윗부분에 다리 비슷한 구조물을 달고, 한 번 접히는 다리 모양 구조물을 앞뒤로 달았다. 구덩이와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거기로 들어간 후 스스로 다리가 된다. 상황이 끝나면 구덩이에서 나와서 갈 길을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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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운용시에는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 교량전차 본체는 물에 거의 파묻혀서 천장 정도나 보인다.[22] |
4.3. 구난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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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가 없는 처칠 ARV[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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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주포를 단 처칠 ARV |
퍼니 전차들이 일단 다른 차량보다 먼저 상륙해서 작업을 하느라 먼저 목표가 되기도 했고, 원설계에서 벗어난 여러 가지 장비를 단 데다가, 일부는 지원 장비를 부착하기 위해 무기를 제거하기도 했고, 신품이 아닌 사용하던 물건들을 개조한 거라 잘 퍼졌기에, 구난전차는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
전차 자체로써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추가 장비를 붙여서 운용하기도 했으며, 전투공병전차의 원조격에 해당하는 차량이 된다.
포탑을 떼고 차체만 운용하는 구난전차는 2차대전 당시에 매우 흔했다. 자신과 같은 차체를 쓰는 전차가 퍼졌을 경우 끌어오기 위해 운용했다. 포탑을 뗀 이유는 견인 차량의 무게를 포탑 무게만큼 줄여서 구동계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자세한 건 구난전차 문서 참조.
4.4. DD 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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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항 스크린 전개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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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항 스크린을 접은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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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타인 DD전차 기동 영상 |
부양정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많은 전차를 상륙시키기에는 부양정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고, 현재와는 달리 당시의 부양정은 전차를 바로 내보내고 전진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DD 전차로, 배처럼 넓적한 판을 달아보기도 하고, 튜브를 동체 및에 설치해보기도 하는 등의 시도 끝에 만들어졌다.[25] M4 셔먼, 밸런타인 전차등의 바깥쪽에 부항스크린을 달았다. 이 스크린은 평상시에는 접어뒀다가, 작전을 시작하면 공기를 안에 불어넣는다. 부풀어오른 형태가 욕조와 유사하며, 넉넉한 부양력을 위해 이 스크린은 상당히 크다. 기관총의 사격을 대비하여 스크린 내부의 튜브들은 다수의 칸으로 나뉘어 있어, 몇 군데 구멍이 나도 바로 부력을 잃지는 않는다.
추진력은 아이들러 휠과 베벨기어로 연동된 두개의 스크류로 얻는 방식. 이 두개의 스크류는 필요 없을 경우 위로 꺾어 올려 기어의 결속을 해제하면 작동하지 않게 되어있다. 사실상 간이 수륙양용전차인 셈이다.
이런 전차를 만든 이유는, 상륙시 전차가 보병과 같이 상륙하지 않으면 적의 기관총에 보병들이 학살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6] 하지만 전차를 상륙시킬 상륙정은 일반 상륙정과 달리 크고 흘수가 깊고 느려서, 상륙정만 사용할 경우 전차가 보병 뒤에서 상륙할 수밖에 없기 때문. 그래서 일단 보병을 당장 지원할 전차인 DD전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퍼니전차 따위는 필요없다고 외치던 미군조차도 얌전히 채용했으며, 이렇게 개조된 셔먼 전차는 공식 명칭이 셔먼 DD(duplex drive)인데, 일선 병사들을 대개 이 DD를 도날드 덕(Donald Duck)이라 불렀다.
당시 독일군 기관총 사수의 말을 들어보자.[27]
무슨 욕조 같은 것이 올라오더군요. 그런데 그것이 전차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전차 뒤에는 100여 대 이상으로 보이던 욕조들이 둥둥 떠다니며 다가오고 있었고요.
그러나 전차가 너무 무거워서 충분한 부양력을 내지 못해 먼 바다에서의 운용은 힘들기에, 파도가 심각하게 치는 바다에서 쓸 물건은 아니다. 게다가 스크린은 소총탄에도 뚫릴 정도로 약하고, 부항스크린이 너무 커서 운용시 사격이 사실상 금지되었으며, 주변방향을 살피기 힘드므로 운용에 주의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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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9 부양장치 |
T-6와 같은 형태에 경량 전투차량용 T7도 존재하였고, M5 스튜어트, M24 채피, M18 헬캣 등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DD에 비해 무겁고 비쌌으며, 생산과 부착에 인적 자원을 많이 먹는 바람에 거의 버려지게 되었다.[28]
상륙작전을 다룬 매체의 원조격인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오마하 해변 상륙 당시 기상악화로 인해 예정된 상륙위치보다 더 나아가서 전차들을 발진시키기로 현장지휘관이 결정하고 수기신호를 보냈으나 8척이 이 신호를 보지 못하고 예정 위치에서 발진시켜 그대로 침몰하고 말았다. 그러나 당시 이 광경을 보던 이들 중에는 지휘관이 겁이 나서 빨리 도망치자고 내렸던 것 같다며 이 명령 자체를 비난하기도 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모두 합해서 200대가 참가했으며, 라인강 도하 작전에서도 활용되었다. 미군은 이 부항 스크린에 탈착식 운용이 되도록 개량하여 냉전기에도 M2 브래들리와 같은 경장갑 차량용 도하 장비로 사용했다. 스트라우슬러식 부항 스크린을 이용해 도하하는 M2 브래들리. 1983년에 찍힌 사진.
4.5. 지뢰제거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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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깨를 장착한 셔먼 크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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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깨로 지뢰를 때려부수는 셔먼 크랩. 노르망디 작전 당시 2대가 투입되었다. |
위에 나온 셔먼 '크랩'은 전차 앞에 고속으로 회전하는 드럼을 달고, 여기에 다수의 블레이드가 장착된 날카로운 도리깨를 매달아놓는 방식을 채용했다. 상륙한 전차는 이 드럼을 고속으로 회전시키고, 연결된 사슬 도리깨가 지면을 마구 헤집으면서 그 밑의 지뢰를 때려서 부수거나 터뜨린다. 지뢰가 터져도 사슬 몇 개 정도만 날아가는 게 보통이라 수명도 길고 효과 역시 매우 훌륭했으며, 주노 해변에서 지뢰를 처리해 보병의 진격을 효과적으로 도왔다. 크랩 옆에는 철조망을 절단할 수 있는 장치가 함께 마련되어서, 지뢰밭은 물론 철조망을 제거하며 보병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그 외 형식은 아래와 같다.[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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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llshorn Plough(쇠뿔형 쟁기)를 장착한 처칠 '불스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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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전선에서 지뢰를 밟아 부수는 호주군 소속의 마인롤러 부착형 마틸다 II 보병전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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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M1 에이브람스의 지뢰제거 쟁기 |
T마인(텔러미네)이나
S마인같은 지뢰들이 터지면 전차도 같이 흔들렸어요. 이 유령같은 놈이 사람에게 달려들 때 이상한 걸 돌리면서 큰 먼지와 소음을 일으키면 누구나 겁을 먹고 도망가게 되죠.
-이안 허미트
덧붙여서 사실 2차 세계대전 때 각 군은 각각 자기네 방식으로 지뢰 제거차량을 개발해서 사용한다. 각각 지뢰밭을 탐지기와 사람 손으로 땅을 쑤셔가며 파내야 했던 경험에서 생각한 것으로, 어떻게든 지뢰를 파내는 거야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신속한 작전시 그냥 탱크로 밀고 지나가면 되지 않는가 하는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독일군도 지뢰제거차를 개발한 적이 있는데, 독일군의 물건은 지뢰를 자기가 직접 밟아서 터트리는 방식이라, 한번 지뢰가 터진 후 사용 불가능 상태가 되었다.[31]-이안 허미트
셔먼 크랩과 동형의 지뢰제거 장비를 처칠 중전차에 장착한 버전도 있는데, 이쪽은 크랩이 아닌 처칠 '스콜피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4.6. 크로커다일(Crocodile) 화염방사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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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크로커다일 운용 영상 |
크로커다일은 차체의 기관총 대신 대형 화염방사기를 장착하고 있으며, 무전수(겸 기관총 사수)가 조작한다. 이 화염방사기의 사거리는 보병이 휴대하는 화염 방사기보다 훨씬 긴 210m였고, 역시 효과적인 대보병 살상력을 가졌다.[32] 베이스가 된 전차는 처칠 MK.VII로, 가장 믿음직한 방호력을 가지고 있기에 선택되었는데, 아무리 튼튼하다 하더라도 이 전차의 주 무기는 화염방사기였으므로, 일선에서 전차전을 벌이지 않고 후방에서 보병지원용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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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뿜는 처칠 크로커다일의 모습[33] |
종종 박격포를 단 AVRE와 크로커다일이 짝을 이루는 경우가 있었는데, AVRE가 박격포로 토치카의 뚜껑을 딴 다음, 크로커다일이 그 사이로 지옥불을 미친듯이 뿜어내 벙커의 독일군을 태워버리는 식. 보병용 화염방사기의 무거운 무게, 짧은 사거리, 현실과의 타협으로 너무 작은 연료탱크 같은 약점들을 극복하고 오직 무지막지한 대보병 화력이라는 강점을 극대화시켜 대호평을 받았다. 독일군 입장에서는 전차 본체를 잡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전차포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형 화기의 총탄에 꿈쩍도 하지 않는 견고한 무쇠덩어리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보병 입장에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고, 그래서 처칠 뒤에 커다란 보조 연료통이 붙어있는 것을 보자마자 기겁해서 항복한 부대까지 있을 정도로 독일군 입장에서는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크로커다일은 무기 특성상 고통스럽게 불로 태워죽이는 성질과 그 무시무시하고 파멸적인 위력으로 독일군에게 안겨준 엄청난 공포와 비례해 그만큼의 증오를 돌려 받는 일명 '혐오 병기'로 지칭되었다고 한다.[34] 그래서였을까, 처칠 크로커다일의 운용병이 포로로 잡히게 되면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잔혹한 린치 끝에 살해당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크로커다일의 운용병은 저격수와 동급의 취급을 받았다고 하니, 이 무기가 독일군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짐작할 만 하다.
화염방사전차 역시 지뢰제거차량과 구난전차처럼 퍼니전차 시리즈가 유일한 건 아니다. 소련군은 OT-34 화염방사 탱크, 미 해병대는 M4 화염방사 탱크를 만들어서 잘 써먹었다. 특히 태평양전쟁의 필리핀 전역, 오키나와 전투등에서 땅굴,참호를 파고 저항하던 일본군을 상대로 Blowtorch & Cockscrew 전략을 사용했는데, 동굴요새 입구를 발견하는 족족 화염방사전차가 불을 퍼부어 열기+유독가스로 숨어있는 일본군을 제압했고, 여차하면 공병들이 입구를 폭파해 아예 생매장시키는 방법까지 사용했다.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독일도 2호 전차, 3호 전차, 그리고 4호 전차를 개조해서 포신에서 화염이 나가도록 만든 화염방사 전차를 운용하긴 했다. 다만 독일은 화염방사 전차보다는 Sd.Kfz. 251에다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Sd.Kfz. 251/16 장갑차를 더 많이 썼다.
4.7. 조명 전차
Canal Defense Light탄소 방전으로 작동하는 방전등 기반의 고성능 탐조등을 달아서 야간 작전중에 조명을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된 전차.
'운하 방어 등'이라는 장비 이름은 의도적으로 장비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적군 첩보에 혼란을 주려고 붙은 이름이다.
탐조등이 파손되는걸 방지하기 위해 장갑으로 보호받는 조명용 신형 포탑 내부에 전등을 달고 비교적 작은 슬릿 구멍을 통해 빛을 조사하였다. 백색광은 물론 승무원이 교체하는 색 필터의 사용으로 청색과 황색 빛도 낼 수 있고, 두대의 조명전차가 한 곳에 황색광과 청색광을 같이 비추면 RGB 색상 혼합에 의해 더 밝은 흰 빛을 내는게 가능했다. 초당 2회로 여닫는 셔터도 장비되었다.
조명장비의 설치를 위해 포탑이 새로 바뀌면서 주포도 함께 없어진다.[35] 베이스로 미국에서 공여한 M3 그랜트와 M4 셔먼 계열 차량, 그리고 영국제 마틸다 II 같은 전차들이 사용되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1944년 11월에 실시된 클리퍼 작전에서 야간 조명 지원용도로 투입되었다.
미군도 조명 전차를 확보하여 애리조나 주의 캠프 보우스에서 시험을 했다.
4.8. 그 외의 퍼니전차들
- BARV(Beach Armoured Recovery Vehicle)은 2.7m 깊이의 물속을 다닐 수 있으며, 해안가의 장애물들을 치우는 역할을 맡았다. 다만 이 전차는 79기갑사단에서 운용되지 않았으므로 퍼니전차는 아니라고 한다.
- 캐터필러사의 D7 불도저도 장갑 불도저로 개조되어 노르망디에 투입되었다. 이외에 크롬웰 전차를 개조해서 만든 장갑 불도저도 있으나, 1944년 말부터 사용되었으므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 파이프 폭탄을 장비하고 장애물을 폭파시키는 퍼니전차도 개발되었으나, 위험하다는 이유로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5. 실전에서의 운용
영국군에서는 호바트 장군이 사단장을 맡은 제79기갑사단에서 관리하면서 작전에 필요한 부대로 파견나가는 방식으로 운용했다. 호바트의 매부였던 몽고메리 장군은 퍼니 전차의 기능성을 높이 사서 시연회 당시 아이젠하워 총사령관과 오마 브래들리 장군에게 채용할 것을 적극 추천하기도 하였다. 신무기의 도입을 회의적으로 봤던 아이젠하워 장군도 다른 것은 몰라도 셔먼 DD만큼은 높이 평가하였다.그러나 미군은 대다수의 퍼니전차를 채용하지 않았다. 퍼니전차는 호바트 소장이 원하는 기능을 추가하느라 외견이 보통 전차보다는 건설 장비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고, 괴이한 모습의 전차를 본 미군은 대부분의 퍼니전차들을 거부했던 것이다. 당시 미군은 신병기에 대해서 회의적이었고,[36] 퍼니전차의 개념 자체도 미국 입장에서는 매우 생소한데다가, 대부분은 영국제 전차를 기반으로 만들었기에 보급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어서 채용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에 결정권자였던 브래들리 장군은 대부분의 퍼니전차의 사용을 불허하였고, 미군이 사용한 퍼니전차는 수륙양용전차인 셔먼 DD뿐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퍼니전차는 그리 재미를 본 물건은 아니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자, 오마하 해변으로 진격하던 미군 지휘관은 적의 포화를 두려워하여 해안가에서 4.2km 정도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셔먼 DD를 발진시켰다. 그러나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로 셔먼 DD를 내몬 이 잘못된 결정은 많은 전차병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말았는데, 30대 중 27대의 셔먼 DD가 거친 파도 때문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버린 것이다. 결국 거의 모든 전차를 잃은 상태에서 오마하 해변에 상륙한 미군은 엄청나게 피를 봤지만 겨우겨우 상륙한 3대가 보병들의 엄폐물이 되어주고 독일군의 벙커와 방어진지를 날려버리면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고, 반대로 영국군은 해안가에 접근해서 DD전차를 내렸기에 그런 손해를 입지 않았다. 그렇게 다른 퍼니전차들도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한 덕분에 미군에 비해 훨씬 쉽고 간단하게 상륙에 성공했다.
이후 호바트 장군은 리델 하트와의 대화에서 " 미군은 그 전차를 쓰는 방법을 몰랐다" 고 평했다. 그리고 브래들리 장군이 퍼니전차를 채용하지 않은 실책은 두고두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퍼니전차와 그 후손들은 당당하게 현대 전차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6. 현대
퍼니전차는 그 요상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많은 활약을 했으며, 현대 전차는 반드시 이들의 후손과 동반하거나 병합되어 작전을 진행한다. 아직도 현대전에서는 전차의 진격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존재하며, 이를 돌파하려면 퍼니전차와 같은 공병전차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활약에 힘입어 외양도 사람들의 눈에 익으며 특유의 멋이 있다는 의견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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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추리온 AVRE |
현재 영국군이 주력으로 쓰는 공병전차는 챌린저 2를 개조한 트로잔(Trojan)이다. 온갖 건설 장비가 장착되어 무시무시한 외형을 자랑한다.
걸프 전쟁에서도 M9 ACE와 같은 공병용 장갑차량이 적 진지 돌파를 위해 투입되지만, 생존성을 위해서는 방어력을 늘려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기에 본격적인 전투공병전차가 출현한다. 적진을 돌파하는 공병용 차량이니만큼, 전차 수준의 방어력을 지닌 공병전차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위의 두 전차 개조형 공병차량은 걸프전에도 참전하였다고 한다.
현재 퍼니전차 가운데 현대까지 살아남지 못한 채 후손 없이 사장된 유일한 물건은 화염방사 전차다. 화염방사기의 사거리는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늘릴 수 없었지만, 보병용 대전차 화기의 사거리는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서 화염방사기의 몇배 이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군사력의 강화와 함께 화염방사기라는 무기 자체가 도태되었기 때문이다.[37] 그래도 대량의 화염으로 적을 제압한다는 개념 자체는 살아남아서 소이탄 로켓인 M202 FLASH나 러시아의 열압력탄 무반동포인 RPO-M, 전차의 경우 대량의 열압력탄두를 발사하는 TOS-1 부라티노의 형태로 살아있다. 주로 소프트 타겟을 상대하는 비정규전에서 사용된다.
7. 미디어
7.1. 게임
7.1.1. 도미네이션즈
자세한 내용은 AVRE 전차(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자세한 내용은 셔먼 크랩 전차(도미네이션즈) 문서 참고하십시오.
7.1.2.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시리즈
7.1.2.1.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셔먼 크랩: 셔먼 전차에 75탄약을 주고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지뢰 제거도 되지만, 이걸 작동시키고 적 보병에게 들이밀면 마치 포탄에 직격당했을 때마냥 보병이 무참히 토막나고 갈려나간다.처칠 AVRE: 영국 왕립 공병대 지원의 중간 유닛으로 인력 600으로 호출 가능. 230mm 페타드 박격포를 장착한 전차 답게 대보병이나 대건물 특화 병기로 굴릴 수 있다.
처칠 크로커다일: 영국 왕립 공병대 지원의 최종 유닛으로 인력 800으로 호출 가능. 주포와 화염방사기를 둘 다 사용할 수 있다.
8. 기타
- 퍼니전차 관련 다큐멘터리로는 'The War - 노르망디의 비밀병기'가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퍼니 전차 외에도, 로켓으로 시속 100km/h로 달려가는 화약실은 대형바퀴 Panjandrum(어르신)이라든가, 부품들을 물속에서 보관하면서까지 철저하게 은폐했던 '간이 항구' 등, 호바트 소장이 만든 다양하고 재미있는 병기와 장비들을 볼 수 있다.
- 히스토리 채널의 '기상천외한 무기 (WEIRD WEAPON - THE AXIS & ALLIES)'에서도 다른 기괴한 물건과 함께 소개되었다.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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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기(1914~1945) | 냉전기(1945~1991) | 현대전(1991~) |
[1]
애초에 능력도 없이 무언가를 해보자고 하면 그걸 실행해줄 군부나 정부가 있을지부터 생각해면 쉽다. 즉 능력이 되니까 상부에서도 해볼까? 해서 만들어진 게 퍼니전차지, 그냥 이상한 괴짜가 만들자고 했다가 운좋게 만들어진 전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2]
대중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언론플레이는 물론 시중에 전차의 집중운용은 물론 차량화-기계화 보병과의 연계, 전 차량의 무전기 설치의 효용성 등을 담은 책도 발간했는데, 영국 사회에 외면을 받았던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독일 기갑부대를 창설 중이던 구데리안 등의 독일 기갑병과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했다.
[3]
참고로 몽고메리의 부인은 베티(엘리자베스의 애칭) 카버인데, 그녀의 원래 이름은 엘리자베스 호바트다. 몽고메리와 결혼할 당시에 이미 애 딸린 미망인이었기에 전 남편의 성을 쓰고 있어 성이 다른 것이다.
[4]
원래는 2억 개의 지뢰가 매설될 예정이었으나, 물자 부족 등을 이유로 4백만 개로 줄였다.
[출처]
'The War - 노르망디의 비밀병기'
[6]
다만 호바트 소장은 어디까지나 부대의 책임자였고 대다수의 퍼니 전차는 이 부대에 속한 또는 협력한 인물들이 아이디어를 내 만든 것이다.
[7]
직역하자면 '왕립 공병대 장갑차량'
[8]
처칠은 마틸다II의 후계차량답게 만족스러운 방어력을 보유했다. AVRE 중에서는 처칠 AVRE가 가장 많았다.
[9]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안 간다면, 일반적으로 당시 평균적인 야포 구경이 80mm, 지상에서 운용할 수 있다고 여기던 자주포가 150mm, 그리고 어느 정도 플렛폼이 갖춰지고 다수의 인원이 운용하는 중순양함에 쓰이던 함포가 203mm이다. 즉 230mm 정도면 당시 지상에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굴릴 수 있는 최대구경 포라 생각하면 된다.
[10]
과거 여러 매체나 서적까지도 290mm로 언급할 만큼 잘못 알려졌었으나, 실제 구경은 230mm이다. 290mm는 이 포의 명칭인 Mortar, Recoiling, Spigot, 29mm에서 29mm가 오독, 와전된 것이다. 이 29mm는 발사봉인 '스피곳'의 지름이다.
[11]
완전 자동 장전 장치를 사용한
디모인급 중순양함은 전후에나 완성되었다.
[12]
비슷한 돌격포 역할로 콘크리트 구조물을 박살내던
ISU-152의 152mm 대콘크리트용 철갑탄은 56kg이었다.
[13]
약 12kg. 그 강력하다는 소련의 152mm 고폭탄도 탄 자체의 무게는 40kg이나 되지만 작약은 8kg 수준이다. 이렇게 작약을 전체 무게 대비 많이 넣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박격포는 곡사포와 직사포에 비해서 기대하는 사거리가 짧고, 포탄의 포구속도가 빠를 필요가 없다보니 자연히 추진에 필요한 에너지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추진용 화약의 양이 줄어들다 보니, 추진용 화약이 폭발할 때의 충격을 버티게 하기 위해 필요한 탄 자체의 강도 수준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구경장 전차포의 고폭탄은 포신이 짧은 곡사포용 고폭탄보다 더욱 강한 추진력을 버텨야 했기에, 반대 급부로 무게 대비 작약량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물론 구조 강도가 더 강한 포탄인 ISU-152의 고폭탄은 더 많은 장약을 견딜 수 있었기에 사거리가 13km 가량이었고, 구조 강도가 약한 AVRE의 박격포탄 사거리는 후술하듯 매우 짧다.
[14]
얼마나 강한지 판터의 1미터 근처에 착탄하자 그 폭발 충격만으로 판터가 전투불능이 되었다고 한다.
[15]
공병 임무 맞다. 폭파가 공병의 업무이기 때문.
[16]
실제로 디에프 상륙전 당시 전차가 모래에 빠져 기동을 못하자 알보병들은 토치카에서 발사되는 기관총에 학살당하고 모래에 빠져 고정포대가 된 탱크들만이 분전하다 후에 투입된 독일군에게 탱크째 포위당해 항복한 적이 있었다.
[17]
그러나 미군이 이오지마에서 보빈 장비의 개념을 무시했다고 보긴 힘들다. 오히려 미군은 장륜식 차량이나 중장비를 이동시킬 수 있도록 이동식 철판 도로인 마스덴 매트를 14km나 생산해서 이오지마에서 사용했다.
[18]
대한민국 해병대의 구형 비치매트는 기존 군용 차량을 약간 개조하여 사용하였으나, 신형 비치매트는 민수용 트럭에 전용 부설 장비를 설치하여 운영 중이다.
[19]
단수형인 Fascine의 발음은 "파사인"이다.
[20]
'The War - 노르망디의 비밀병기'에서 영상을 볼 수 있다.
[21]
영상에선 290mm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는 널리 퍼진 오류로, 주포의 명칭인 Mortar, Recoiling, Spigot, 29mm의 29mm를 오독한 것으로써, 실제 구경은 230mm였다.
[22]
다리를 건너는 건
M10 아킬레스이다.
[23]
좌측 상단의 전차는
램 전차다.
[24]
당시에 파시즘을 피해 영국이나 미국으로 망명한 추축국 국가 출신들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독일 뿐만 아니라 헝가리에도 꽤 있었다.
[25]
노르망디 해변가의 해류가 불규칙적이고 파도가 강해서 개발시간이 긴 편. 실제 운용 시에도 해류 때문에 운용이 서툴렀던 미군의 퍼니전차가 몇 대나 떠밀려갔다.
[26]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도 전차 지원 없이 상륙하는 미군 보병들을 기관총으로 무차별적으로 갈아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27]
출처 - 'The War - 노르망디의 비밀병기'
[28]
참고로, 이러한 도하 방식이 유사했던 독일의
38(t) 수륙양용전차나 일본의
특 2식 내화정 카미가 도태된 이유도 동일했다.
[29]
노르망디 작전 당시에는 사용되지 않은 것이나, 구상되지 않은 것이다. 호바트의 연구진이 구상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30]
스위치 위로 장비를 얹지 않았을 경우에 한정. 쟁기가 좌우방향으로 가동하기 때문에, 지뢰를 터뜨리지 않고 안전하게 발굴 가능하다. 물론 스위치 위에 장비를 얹으면 얄짤없다.
[31]
소련군의 경우에는
T-34에 지뢰제거장비를 장착해서 사용했다.
[32]
이토록 말도 안되는 스펙인 이유는, 원본인
라곤다 화염방사기가 세계 유일의 대공용 화염방사기 였기 때문이다. 남자의 로망다운 겉모습과 달리 수송선에 장착하여
Ju 87과 같은
급강하 폭격기를 잡는다는 비교적 합리적인 목표가 있었는데, 비록 실전에서 단 한 기의 격추 실적도 올리지는 못했으나 위협적인 모양새 때문에 급강하 폭격기가 폭탄을 떨어뜨리는 고도(일반적으로 60m 이내)가 살짝 높아져서
폭탄의 명중률이 일부 감소하는 효과가 있었다. 독일 측에서도 이를 흉내내보려고 했으나 실험이 실패하면서 해안가에 기름만 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33]
뒤에 연료 트레일러의 바퀴가 보인다.
[34]
한 예로 크로커다일이 독일군 중대가 숨어서 농성중인 헛간에 화염방사기를 쏘다가 연료 밸브가 고장나서 80초 분량의 연료를 모조리 퍼부어 버린 일이 있었는데, 그 결과 헛간이 흔적도 없이 전소되고 농성하던 독일군 병사들도 몰살당했으며, 그 와중에 가까스로 살아남은 몇몇 독일군들은 지옥도를 목격하고는 힘이 빠져 기어가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발사한 영국군 측도 "아무리 적군이라곤 해도 이렇게 잔인하게 죽여야만 했나?" 하는 심정이었다고 하니 말 다한 셈.
[35]
일부 차량은 위장을 위해 외부에 더미 포신만 달아놓았다.
[36]
사실 어느 나라든 군대는 실전에서 성능이 입증된 무기를 쓰는 걸 좋아하기에, 대다수의 군 수뇌부는 신병기 개발에 회의적이기 마련이다.
나폴레옹 시대에도
기구,
잠수함,
증기선 등 신병기는 많이 있었지만 전쟁의 천재 나폴레옹은 저런 걸 제대로 쓰려면 백년은 더 있어야 할 거라면서 전부 채용을 거부했고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37]
현재 제 3세계의 분쟁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RPG-7만 하더라도 유효사거리가 500m 가량으로, 화염방사기의 몇배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