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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7 18:43:58

톨킨 번역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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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젠다리움
Legendarium
[ 생전 출판 ]
||<|2><tablewidth=100%><bgcolor=#BDB76B><width=200> 호빗
<colcolor=#000>→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두 개의 탑 왕의 귀환
[ 사후 출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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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0E68C><colcolor=#000> 지명 | 종족 | 인물 | 연표 | 전쟁 | 물건 | 시와 노래 | 언어 | 마법
관련 인물 J. R. R. 톨킨 | 이디스 톨킨 | 크리스토퍼 톨킨 | 톨키니스트
기타 주제 | 번역지침
[ 매체 ]
||<tablewidth=100%><colbgcolor=#808000><colcolor=#fff><width=250>실사영화
<colbgcolor=#F0E68C>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 두 개의 탑 | 왕의 귀환 | 골룸 사냥)
호빗( 뜻밖의 여정 | 스마우그의 폐허 | 다섯 군대 전투)
드라마 반지의 제왕: 힘의 반지
애니메이션 반지의 제왕: 로히림의 전쟁


1. 개요2. 설정3. 예시와 해설4. 한국에서
4.1. 논란
4.1.1. 지침의 적용4.1.2. 번역어에 관해4.1.3. 음차할 때의 표기4.1.4. 지침에 대한 오해
5. 기타 언어6. 현재7. 타 매체의 유사 번역 사례

1. 개요

J. R. R. 톨킨이 직접 작성한 자신의 작품을 영어 외의 언어로 번역할 때 해당 방식을 따를 것을 서술한 지침. 지침 자체는 반지의 제왕의 번역에 적용하기 위해 작성되었지만, 실제 번역에서는 반지의 제왕 호빗, 실마릴리온 등 톨킨의 모든 레젠다리움 작품들을 번역하는 데에도 적용된다. 여기서는 단순히 톨킨이 남긴 번역지침 그 자체만이 아니라 톨킨의 작품들을 번역하는 데에 관한 모든 사항들을 함께 묶어서 다룬다.

톨킨이 직접 번역지침을 남겼다는 것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톨키니스트들을 제외한 국내 커뮤니티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고, 번역지침의 존재를 알아도 자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톨킨 번역지침이라고 해도 그것을 단순히 톨킨이 구두로 남긴 몇몇 파편적인 언급으로 알고 있거나, 반지의 제왕 부록에 나온 발음법이나 서부어 요정어에 관한 설정 부분을 가리켜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톨킨 번역지침은 엄연히 별도의 문서로 작성되어 있는 확고한 지침으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규범으로서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흔히 국내에서 '톨킨 번역지침'이라고 일컫는 문서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이름들에 대한 안내Guide to the Names in The Lord of the Rings', 혹은 '반지의 제왕의 명명법Nomenclature of The Lord of the Rings'이라는 문서 #원문 #비공식 번역본 [1]이다. 영미권에서는 줄여서 (Tolkien's) Nomenclature로 부르기도 한다. 다만 이 문서가 별도로 번역 출판되거나 다른 책에 실린 적이 없어 일부러 찾아봐야 하는 데다 공식적으로 번역된 적도 없기에[2] 국내 라이트 팬들의 접근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최근까지도 번역지침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참고로 원제를 보면 '톨킨'이나 '번역'이라는 말은 들어 있지 않은데, '톨킨 번역지침'이라는 명칭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에서 2000년대 초반 새로 판권을 취득해 번역 출간할 때쯤 출판사와 독자들이 이 지침을 언급할 때 톨킨 번역지침이라고 부르던 것이 정착된 것이다.

톨킨이 처음부터 번역지침을 남겼던 것은 아니다. 1955년 반지의 제왕이 처음 출간되고 나서, 첫 번역은 1957년 네덜란드어였고, 이후 1961년 스웨덴어 번역이 출간되었다. 그러나 톨킨은 두 번역본의 번역에 크게 실망하였고, 이후 덴마크어 번역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번역지침을 작성하게 된다. 다만 톨킨이 처음부터 번역지침상의 의도를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톨킨은 네덜란드 번역에 대해 여러 가지로 비판했는데, 이때 자신의 고유명사들을 번역한 것에 대해서도 불평하였다. 즉 고유명사를 번역하라는 의도는 적어도 네덜란드어 번역본 출간 당시까지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톨킨은 1967년 번역지침을 작성해서 출판사에 보냈고, 여기에는 지금 알려진 번역지침과 같은 내용이 담겨 덴마크어와 독일어본 번역에 적용되었다. 이후 번역지침 문서는 톨킨 사후 톨킨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에 의해 일부 편집을 거쳐 반지의 제왕 가이드북에 수록되어 출간된다.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되지 않았기에 그간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어려웠던 면이 있다.

본문에서는 해당 문서를 편의상 번역지침이라고 일컫지만, 반지의 제왕 부록 E, F의 내용 역시 반지의 제왕을 번역할 때의 지침이 되는 내용들이다. 반지의 제왕 부록 E에는 반지의 제왕에서의 자음과 모음의 발음법이 해설되어 있으며, 부록 F에서는 반지의 제왕에서의 각종 언어와 종족들, 그리고 해당 언어들의 번역에 관해 해설되어 있다. 번역지침의 설정상의 배경도 부록 F에서 설명되어 있다. 따라서 '번역지침'과 부록 E, F, 그리고 기타 톨킨의 언급들이 모두 번역할 때 지킬 지침이 된다. [3] 따라서 번역지침에 대해 논쟁이 벌어질 때에도 톨킨 번역지침이 무엇인지, 그 내용과 범위는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고 이야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적었고, 불필요한 논쟁을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지침의 내용이나 그 성격이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오해와 어림짐작이 끼어들기 쉬웠던 것이다. 지침에는 고유명사들이 일일이 나열되어 해설되어 있으며, 번역해야 하는 것과 번역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명확히 나뉘어 있으므로, 명백한 기준을 갖고 있으며, 규범성도 강하다.

2. 설정

톨킨의 번역지침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톨킨의 작품들의 설정상의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한다. 톨킨은 사실 소설가이기 이전에 언어학자였고, 언어학자이기 이전부터 언어에 관해 풍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톨킨은 어릴 적부터 여러 가지 가상의 언어들을 창조하기 시작했고, 실마릴리온에 등장하는 요정어들의 토대가 되는 언어들을 구상했을 즈음에는 이미 언어에 관한 그의 철학이 자리잡은 상태였다. 톨킨은 역사 및 문화와 별개로 존재하는 언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고, 그 맥락에서 가상의 언어에도 반드시 그 가상의 역사, 문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4] 이에 따라 톨킨은 자신이 만든 가상의 언어에 가상의 역사를 붙였고, 그 역사에 따라 언어가 변화하는 과정까지 구현하였다. 이 가상의 역사를 이야기로 구현한 것이 훗날의 실마릴리온이고, 이는 톨킨의 모든 작품활동의 기반이 되었다. 톨킨은 가상의 언어의 변천사와 분화 과정을 설정하면서 언어들을 만들었고, 반지의 제왕에서 등장하는 서부공용어 역시 톨킨의 이러한 언어적 창작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다.[5] 따라서 톨킨의 언어들은 대부분 서로간 어느 정도 관계있는 언어들로 설정되어 창조되었다. 톨킨은 더 나아가서 자신의 언어를 현실의 언어와 연결짓고자 했고, 따라서 서부공용어는 톨킨의 다른 언어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현실의 영어와도 관련있는 언어로 설정되었다.

톨킨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러한 살아 있는 언어체계를 작품의 설정에 반영하였다. 반지의 제왕의 배경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서부어로 설정하고, 가운데땅을 서부어와 요정어, 그 밖의 언어들이 활발히 상호작용하는 공간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가 아니라 서부어 등 톨킨이 만들어낸 언어들이다. 톨킨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이 만들어낸 언어체계를 현실의 언어체계와 엮으면서, 능청스럽게도 " 반지의 제왕은 고대 지구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그 주인공인 골목쟁이네 프로도가 쓴 '붉은책'을 영어로 옮긴 것이다."[6] 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붉은책'이란 프로도가 자신의 여정을 서부공용어로 적은 설정상의 책인데, 이 책에는 서부공용어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주로 고유명사지만, 신다린, 퀘냐, 난쟁이어 등의 '외국어'들도 섞여 적혀 있다는 설정이다. 톨킨은 자신이 이 책을 '발견'하여 '번역'한 것이 반지의 제왕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원문인 서부공용어를 자신은 영어로 옮겼다고 주장했는데, 따라서, '원문'에서 서부공용어로 적혀 있는 고유명사들은 영어식으로 옮겨졌고, 요정어 등 서부공용어 이외의 기타 언어의 경우 원형을 보존해서 옮겨졌다는 것이 설정상의 상황이다. 이에 따라 톨킨은 자신이 '번역한' 고유명사들을 각 언어로 번역할 때에도 '자신이 했던 것처럼' 그 언어체계를 각 언어로 통째로 번역하라는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번역지침을 작성한 것이다. 다만 번역지침에서 요구하는 것이 번역자들에게 '붉은책'을 번역한다고 생각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랬다면 그냥 설정놀음이 될 것이고, 실제로는 이러한 설정상의 상황을 밝힌 뒤, 번역할 때 현실 속에서 이 상황을 고려하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번역시에는 영어를 모두 번역어로 옮기고, 고유명사들은 그 유형에 따라 번역하도록 지시한 것이 번역지침이다.

다른 매체들에서도 여러 언어들이 섞여 있는 경우 대체로 위의 주문과 비슷하게 번역되고 있다. 예를 들어 게임이나 할리우드 영화에서 스페인어나 독일어 등 영어 이외의 언어가 섞여 있는 경우, 제작사에서 처음부터 해당 언어에 대해 영어 자막을 제작한 것이 아니라면 한국어 자막에서도 영어 대사에 대해서만 번역하고 영어 이외 언어 대사는 번역하지 않는다. 소설에서도 마찬가지로, 영어 소설에 별도 언어가 등장하면 영어 부분만 번역하고 영어 이외 언어 부분은 번역하지 않거나, 음차로만 옮긴다. 물론 언어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번역하는 경우 보통 제작자의 의도와 반대된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즉, 톨킨 번역지침은 과거에 흔히 오해되었듯이 단순하게 모든 고유명사들을 한국어로 옮기는 번역이 아니다. 아무래도 번역된 고유명사들이 더 눈에 띄어서 그렇게 인식되었겠지만, 실제 번역지침은 고유명사들을 분류하고 번역할 것과 아닌 것을 나눠 놓았다. 예를 들면 ' 모리아'의 경우, 신다린 단어로, 난쟁이들은 '크하잣둠'이라고 부른다. 난쟁이어와 신다린 둘 다 서부어가 아니므로 번역지침에 수록되지 않았고, 두 단어 모두 번역되지 않고 음차되었다.[7] 번역지침의 전제는 '서부어'를 번역한 영어 부분을 각 언어로 번역하라는 것이며, 영어 형태의 이름들도 최대한 그 의미에 맞도록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번역지침에서는 그 전제에 대한 설명과 고유명사들 중 반드시 번역해야 할 서부어 단어들을 나열하고 있다. 따라서 작중 서부어 이외의 언어로 된 고유명사들은 번역의 대상이 아니라 음차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번역지침에 대해 논의할 때 명심하여야 할 사항 중 하나다. 물론 그렇게 음차하는 단어들의 경우, 부록에서 규정하는 대로의 발음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번역지침에서 나열한 번역 대상인 고유명사들은 서부공용어[8]에 해당하는 고유명사들, 즉 호빗들의 이름, 설정상 서부어가 원문인 지명들이 대부분이고, 몇몇 일반 영어단어들이 일부 포함된다.

정리하자면, 톨킨은 반지의 제왕의 원문은 서부어이고, 자기는 서부어를 영어로 번역하였으니, 번역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영어를 대체하라고 주문한 것이다.

붉은책과 관련한 설정은 반지의 제왕 부록F에서 해설되는 부분이다. 부록F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링크 참조.[9]

이 번역지침이 중요한 이유는 톨킨 본인이 반드시 따를 것을 강조한 직접 쓴 지침서라는 것이다. 톨킨이 그냥 소설가였다면 그냥 그런 것도 있구나 하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톨킨은 언어학에 조예가 깊은 옥스포드 대학의 영문학 교수였고, 자신의 지식을 십분 활용해 가상의 문자 가상의 언어도 직접 만들었으며, 외국어들도 꽤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베오울프 등 고대 영어로 된 작품들을 현대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는 반지의 제왕을 번역할 때 설정상의 상황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또한 번역지침은 처음부터 작성된 것이 아니라 초기 번역에서의 문제점들을 피드백해서 톨킨이 작성한 것이므로 단순히 이론상의 지침서가 아니고 매우 현실적이다. 실제로 톨킨은 번역지침에서 직접 번역지침에 따른 네덜란드어나 독일어 등의 번역어 예시도 다수 제시한 바 있다. J. K. 롤링같이 원작을 파괴하는 경우라도 일단은 원작가인 이상 해당 작품에서 무시할 수 없는 권위를 가지지만, 언어와 언어학, 그리고 번역까지 조예가 깊은 톨킨 본인이 문서로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다면 이 번역지침을 따르지 않는 쪽이 작가의 의도를 무시한 오역일 수 밖에 없다.

3. 예시와 해설

대표적인 인명인 골목쟁이네 프로도Frodo Baggins를 통해 좀 더 자세하게 위의 설정을 보자. 설정상으로, 골목쟁이네 프로도라는 인명은 원래 서부어로 '마우라 라빙기Maura Labingi'라는 인명이었다. 다만 반지의 제왕 본문이나 부록에 직접적으로 명시된 설정은 아니고 꽤 자세히 찾아봐야 나오는 설정이기는 하다. 그리고 이런 유형의 고유명사들의 서부어 원문이 무엇인지 모두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톨킨은 이 이름도 '번역'했는데, '마우라Maura'는 서부어로 현명하다는 의미의 어간 Maur-에 남성형 인명어미인 -a가 붙은 형태라고 해서, 영어에서 같은 의미의 어간 Frod-에 영어에서의 남성형 인명어미인 -o를 붙여 프로도Frodo로 '번역' 했다고 밝혔다. Labingi 역시 마찬가지 방법으로 그 의미를 영어 단어로 옮겨 Baggins라는 성을 만든 것이다. 호빗들의 성명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명명되었는데, 톨킨은 번역을 할 때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번역어를 정해 달라는 의도를 번역지침에 남겼다.

다만 골목쟁이네 프로도의 경우, 번역지침상 Baggins 항목은 있으나 Frodo 항목은 없으므로, Baggins는 번역하여 골목쟁이네가 되었고 프로도는 단순히 음차하였다.

나머지 호빗들의 이름의 경우에도, 샘와이즈 감지(Samwise Gamgee)는 '바나지르 갈프시(Banazîr Galpsi)'를, 메리아독 브랜디벅은 '칼리막 브란다감바(Kalimac Brandagamba)'를, 페레그린 툭은 '라자누르 투크(Razanur Tûk)'를, 빌보 배긴스는 '빌바 라빙기(Bilba Labingi)'를 각각 20세기 영국인들의 언어 감각에 맞게 로컬라이징한 결과라는 설정이다.[10]

물론 이처럼 이름을 번역하는 것은 흔한 경우는 아니고, 쉽게 익숙해지기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경우, 작가 본인이 스스로 '원래 이름'을 번역해서 썼다고 설정하고, 그 설정이 유지되어야 한다고 일부러 지침에 포함시켰으므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현실에서 좀 더 익숙한 예시로는 웅크린 황소, 성난 말 등 인디언들의 이름을 번역한 경우들이 그나마 가까울 것이다. 위 예시를 인디언들의 이름으로 비유하자면, '타탕카 이요탕카'가 원어, '시팅 불'이 영어 번역, 그리고 '웅크린 황소'가 한국어 번역이듯이, '마우라 라빙기'가 원어, '프로도 배긴스'가 영어 번역, 그리고 '골목쟁이네 프로도'가 한국어 번역인 관계로 바로 연관지을 수 있다.

아라고른 2세의 별명 중 하나인 "스트라이더(Strider)"의 경우에도, 설정상 아라고른을 정말 Strider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서부어에서 그에 해당하는 단어로 불렀을 것이고, 톨킨이 이를 번역해 놓은 것이 Strider인 것이다. 스트라이더는 번역지침에 항목으로 수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영어 단어이므로, 모든 영어를 번역 대상어로 번역하라는 번역지침에 따라 한국어 번역 대상이 되었고, 이에 대해 씨앗사에서는(그리고 이후 북이십일에서도) "성큼걸이"라는 번역어를 채택했다.[11] 일본어 번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뜻대로 '(일본어 발음으로 하세오, 한국식 독음으로는 치부)'라고 번역했다.

지명의 경우로 예시를 들자면, 영화에도 등장했던 엘론드의 저택은 요정어로 임라드리스이고, 이것을 영어로 톨킨이 번역한 것이 리븐델[12], 리븐델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깊은골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 임라드리스, 리븐델, 깊은골 모두 통용되는 명칭인 것이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

위 예시들을 비롯해서 여러 번역의 대상이 된 고유명사들은 기존에 존재하던 영어 단어이거나, 톨킨이 창작한 영어 단어들이다. 즉, 영어단어의 번역에 있어서는 음차가 아니라, 반드시 서부어를 영어로 번역한 것과 같이 각국 언어에서 비슷한 뉘앙스의 단어로 골라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이 톨킨 번역 지침 골자이다.

그 밖에, 번역지침에서는 Corsair, Enemy 등 명백하게 영어단어인 명사들도 일부 수록되어 번역하라고 되어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스트라이더가 수록되어 있지 않듯이, 고유명사의 성격을 가진 영어단어들이 모두 수록되어 있는 건 또 아니다.[13] 그렇지만 번역지침의 서문에서 영어를 전적으로 번역하라고 되어 있으며, 영어 형태의 이름들도 번역하라고 전제되어 있다. 다른 항목들에서의 지침을 살펴봐도 영어단어들을 번역하라는 의도는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면, elf나 dwarf라는 영어단어들도 그 자체로는 번역지침에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elf-friend, elven-smiths, Dwarrowdelf 등의 단어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톨킨은 해당 항목들에서 elf와 dwarf를 번역할 때 사용될 단어를 직접 제시해 보는 등 당연히 번역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각국의 번역본에서도 Strider와 같이 영어식 조어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명백한 고유명사들은 지침에 따로 수록되지 않아도 번역된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현실의 반지의 제왕 텍스트만 놓고 보면 '서부어' 어휘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톨킨이 '몽땅 영어로 번역하여 치환'해 놓았기 때문이다. 작중에는 단지 등장인물들이 구사하고 있는 언어가 서부어라는 점 외에는 서부어에 관해 전혀 알 수 없다.[14] 그렇기 때문에 반지의 제왕 부록이나 작가의 해설을 읽어보지 않는 한, 서부어의 존재감이 많이 떨어진다. 요정어의 경우 자주 등장하는데, 로슬로리엔에서의 '나마리에'(퀘냐)가 등장하고, 그 유명한 모리아의 '멜론'(신다린)으로도 등장한다. 심지어 언어적 설정이 가장 부족한 난쟁이어(크후즈둘)의 경우 역시 김리의 '바룩 크하자드!'라는 돌격구호로 등장한다. 그 밖에 모르도르의 암흑어도 절대반지에 새겨진 '아쉬 나즈그 김바툴...'의 시구로 등장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요정어와 난쟁이어, 그리고 암흑어까지도 세계관에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지만, 서부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잘 알지는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서부어를 영어로 번역했듯이 영어를 번역하라는 번역지침을 곧잘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4. 한국에서

역대 한국 번역본들에서는 번역 지침이 딱히 존중되지 않았다가[15] 씨앗을 뿌리는 사람 판본에서부터 번역 지침을 대폭 수용한 번역본을 내었다. 이후 판권이 북이십일로 넘어간 뒤 출간된 아르테 판본에서도 번역지침을 더욱 준용한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은 이 지침을 존중해서 고유 명사를 번역했다. 물론 번역 지침을 따른다고 그냥 영어 → 한국어로 번역기를 돌린 건 당연히 아니고, 번역어를 선정하거나 창작하는 데에 하나하나 고민하면서 고유 명사 번역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대충 번역한 것이 아니라 지침상 해설된 고유명사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 번역어에 담아내었다. 이 과정에 대해서는 씨앗사 판본의 역자 서문과 지금은 절판된 〈톨킨 백과사전〉의 일러두기인 '단어의 표기에 관한 규칙 (발음과 번역)'을 참조하면 자세히 알 수 있다.

해당 번역 방침을 계승한 북이십일 아르테판도 마찬가지다. 아르테판은 씨앗판 번역본에 원본의 50~60주년 개정판 내용을 반영하고, 기존 판본에서의 한국어 문법 오류를 수정하는 편집상 개선 외에도 일부 번역어들을 번역지침에 근거하여 개선하였다.

번역지침을 따라 번역된 국내 판본들의 번역어 일부 예시는 다음과 같다.
2020년 북이십일에서 새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리된 최신 번역어들의 목록은 구글 문서 참조. 아래쪽 탭을 이용하면 분야별 고유 명사들의 목록을 볼 수 있다.

4.1. 논란

톨킨 번역지침을 제대로 준수한 최초의 번역판인 씨앗사 번역이 등장한 이후 일었던 논란으로, 지금은 사그라들었지만 여전히 간혹 가다 다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번역지침의 존재와 내용에 관해 정확히 알지 못해서 오해가 일어난 것으로, 번역지침 그 자체보다는 씨앗사의 번역본에 대한 논란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다. 예컨대, 실제로 나왔던 비판 중 하나로, 호빗을 호빗으로 번역하면 드워프도 드워프가 되어야 하고, 드워프가 난쟁이면 호빗도 조금 다른 난쟁이가 되어야 할 터이다.[18]라는 주장이 있었다. 이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번역어를 골라 왜 마음대로 번역했냐고 따지는 것은 번역지침에 관한 논쟁에서 가장 흔한 유형이었다.[19]

앞의 예시와 같은 주장은 번역지침이 고유명사들의 목록을 제공하며 번역 여부를 정리한 것을 몰라서 나온 주장이었다. Hobbit은 '번역하지 말라'고 적시되어 있는 한편, 난쟁이의 경우 dwarf가 영어 단어이므로, 영어는 전적으로 번역 대상 언어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는 번역지침에 따라 번역된 것이다. 위와 같은 주장은 번역지침을 오해하여 씨앗사판이 고유명사를 마음대로 번역한 것이라고 여겨서 나온 주장이다. 다시 말하지만, 번역지침에서는 고유명사들을 번역할 것과 번역하지 말 것으로 나누고, 만일 지침에 포함되지 않은 고유명사가 있다면 번역하지 말라고까지 되어 있다. 즉, 어떤 고유명사는 번역하고, 어떤 고유명사는 번역하지 말아야 하는지는 논쟁의 여지 없이 명시되어 있다. 씨앗사의 번역본은 여기서 벗어나지 않았고, 번역하라는 단어를 일부 음차하는 식으로 남겨 둔 것은 있어도 번역하지 말라는 단어를 번역한 것은 없다.

특히 초창기 씨앗사의 번역본이 처음 등장했을 때, 출판본의 특징상 점진적인 변경 같은 게 가능할 리 없으므로 시장에 출간된 번역본이 갑작스럽게 음차에서 번역으로 바뀐 셈인데, 이에 대해 적응하지 못한 기존 독자들과 씨앗사식의 번역 기조가 낯설었던 신규 독자들이 모두 반발하였다. 씨앗사 번역이 새로 등장하기 이전 번역본은 황금가지판이었는데, 황금가지판은 이전의 예문이나 기타 번역본들과는 달리 상당히 폭넓게 정착해 있었기 때문에 황금가지판의 번역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사실 황금가지판이 고유명사를 모두 음차한 것은 아니고, 의외로 번역된 고유명사들도 많았지만, 씨앗사는 번역지침에 따라 호빗들의 성씨를 번역하는 등, 훨씬 '눈에 띄는' 번역을 했기에 크게 대조되어 보인 면이 크다. 여기에 씨앗사 측에서는 번역지침에 의거한 번역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사의 번역본을 옹호했고, 다양한 이유들로 신규 번역본을 선호하는 독자들이 이에 가담하면서 감정싸움으로 번진 양상도 있었다. 만일 출간 전부터 톨킨 번역지침에 관한 홍보가 넓게 이루어지면서 새로운 번역어를 차츰 소개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논쟁이 과열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으나, 200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비교적 신생 출판사였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상황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그렇게 되기는 어려웠던 측면이 있다.

한편 번역 지침이 한국어(좀 더 확장하면 아시아권 등 비(非) 인도유럽어족 계열의 언어들)에 맞지 않는 지침이라고 주장하며 한국어본 번역에 적용하는 것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논란도 있었다.

4.1.1. 지침의 적용

씨앗을 뿌리는 사람판으로 처음 접한 사람들은 별 문제를 느끼지 못하나, 황금가지판이나 기타 역판, 영화 자막, 원서 등으로 접한 사람들은 이 부분을 어감이 좋지 않다고 문제 삼는다. 어감에 관해서는 단순한 호불호가 아니라 어감에서 오는 느낌이나 의미가 변질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혹은 어감의 익숙함도 문제가 되기도 했다. 씨앗사판을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번역지침은 물론 좋은 방향으로 가는 흐름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권장 혹은 권유일 뿐이지 강요 혹은 강제가 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물론 사람마다 달라서 씨앗을 뿌리는 사람판 외 버전을 먼저 접한 사람들 중에서도 씨앗사의 번역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번역지침에 의거한 번역본을 싫어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었던 비판을 따르자면, 톨킨 번역지침을 따를 경우 톨킨이 원하는 것은 영어본에 존재하는 설정상의 서부어 어휘들을 뉘앙스에 알맞게 번역하는 것, 즉 영어판의 뉘앙스에 알맞은 단어를 골라서 번역해주길 바라는 것일 테고 애초에 지침에서 번역하길 요구하는 단어들은 영어~고대 영어 조어법으로 만든 단어들이 대부분이므로, 영어 원문을 어떻게 번역해도 비유럽권 언어에서는 이상해지고, 신화, 설화 면에서도 문화적으로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요정, 난쟁이 같은 단어의 의미까지 달라진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번역지침을 완전히 이해하고 제기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톨킨이 번역지침을 작성한 의도는 모르고 단순히 그 최종적인 지시 내용, 즉 영어를 전적으로 번역하라는 주문에 대해서만 단편적으로 알기 때문에 가능한 주장일 뿐이다. 번역지침의 핵심은 반지의 제왕이 별도의 원어가 있는 텍스트라는 설정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지, 영어를 번역하는지 어떤 언어를 번역하는지는 실상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 사이의 의미 차이를 과장해서 번역지침을 외면하는 건 핵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번역, 특히 톨킨의 저작의 번역에 있어서는 원작자의 의도와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 독자의 주관적인 어감을 존중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작품에서 언어적 설정을 매우 세밀하게 구성한 나머지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까 일부러 번역지침을 남긴 것이 톨킨이다. 즉 원문의 의미를 살리는 번역을 하려면 지침을 충실히 따르는 번역을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번역에서 어감을 절대로 존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의미가 유지되고, 번역지침이 지켜진다는 전제 하에서는 어감이 좋을수록 나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어감이란 번역에서 중요한 요소로, 글의 어감이 좋지 않다면 독자가 글을 읽다가 곧잘 막히게 되고 당연히 이런 글이 좋은 번역은 아니다.[20] 또한 다른 모든 것이 동일하고 어감에 있어서만 우열이 명백히 갈린다면 어감을 우선시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 밖에도 텍스트의 성격상 모든 의미를 정확히 번역하기보단 느낌을 풍부히 살린 의역을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번역도 있고, 이럴 때에는 어감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 반지의 제왕 역시 만일 다른 판타지 작품들처럼 언어나 발음에 별 의미가 없어 소리나는 대로 적어도 되는 성격의 작품이었다면 음차를 선호하는 독자들의 의견을 대폭 수용한 번역본이 더 훌륭한 번역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반지의 제왕은 그렇지 않다. 어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원작자의 지침을 일부러 무시하려 드는 행동은 설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작품 내용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과 맥락상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물론 음차도 번역의 한 가지 방법이라고 주장하겠다면 그거야 나름 의미있는 주장일 수도 있고, 실제로 반지의 제왕 번역에서 음차가 아예 사용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21], 그렇다고 톨킨이 직접 고유명사마다 어떤 의미를 담아 어떻게 작명한 것이니 어떤 방향으로 번역하라고 지침을 남겼는데도 불구하고 번역에서 음차로 일관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번역이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성씨지만, 작중 등장하는 'Fairbairn이쁘동이'라는 성씨를 예시로 보도록 하자. 이 성씨는 감지네 샘와이즈의 맏딸 엘라노르의 후손들의 가문명으로, 본문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고 부록에 실려 있는 호빗들의 가계도에나 등장한다.[22] 이쁘동이네라는 번역어 역시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씨앗사의 번역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부적절한 번역어였다. 음차한 '페어베이른'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훨씬 나아 보이는 데다, '이쁘동이'라는 단어는 너무 '촌스러운' 단어이고, 사람 이름으로는 낯설었던 것이다. 그러나, 번역지침에는 Fairbairn이라는 항목이 실려 있으며, 'Translate.'라고 주문되어 있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한 해설을 읽어봐도, 'Fairchild'라는 이름의 다른 형태이며, 엘라노르의 아름다움에서 유래된 가문명이라고 되어 있다.[23] 작가 본인이 '아름다운 아이'라는 의미로 작명했다고 밝히고 번역하라고 했으므로, 이것을 '페어베이른'이라고 번역하는 것보다는 '이쁘동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페어베이른 가문이라고 하면 일반적인 한국 독자들은 여기에 아름다운 아이라는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하는 사람이라도, '페어' 부분을 곧장 'Fair'로 연관짓기 힘들고, Fairchild도 아니고 Fairbairn을 보고 '아이' 부분을 연상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쁘동이 가문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 시조가 예뻤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기 어감을 근거로 음차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작가의 의도를 무시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작가가 의도한 작명 의미를 알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하기까지 하는 셈이다. 물론 이것을 별도의 해설이나 주석을 달아서 설명해도 되지만, 작가가 번역하라고 지침을 남겨 뒀는데 굳이 그럴 근거가 없고, 단어 그 자체를 보는 것과 해설로 설명을 듣는 것의 감상이 달라지는 것도 분명하다. 번역어의 어감이 너무나도 어색하거나 번역어가 의미를 제대로 못 담아낸다고 생각해서 다른 번역어를 제시한다면 몰라도, 아예 번역지침을 적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어감과 관련해서도, 원어와 비교하여 번역어들의 어감이 한국어 번역에서 특별히 더 이상해진다는 근거는 없다. 어감이라는 개념이 대단히 주관적이라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각국의 번역본을 비교하면 한국어에서만 원어의 어감이 이상해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에서 봤던 Shire 샤이어라는 고유명사를 예로 보자. 샤이어라는 단어는 국내 독자들의 시각에서는 별 문제 없는 어감의 단어이다. 익숙한 단어도 아니고, 가상의 마을에 새로 붙인 이름이라고 하기다고 하기에도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영어 원어민들의 입장에서, Shire는 동네, 고을, 마을 등을 의미하는 전통적인 단어이고, 현재도 단독으로도 사용되며, 햄프셔Hampshire, 요크셔Yorkshire 등 행정구역명에서도 사용되는 일반명사이다. 원어민들이 보기에는 판타지 소설 속 지역명이라고 쓰인 단어가 다른 수식어도 없이 그냥 '고을' 또는 '동네'인 셈이다. 고유명사가 딱히 고유명사스럽지 않아 보이는데, 이것은 다른 번역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의 번역본에서는 Shire가 Comté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 역시 Shire와 유사한 의미의 일반명사이고, 부르고뉴프랑슈콩테Bourgogne-Franche-Comté 에서처럼 지금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프랑스 독자들의 입장에서도 고유명사가 들어갈 자리에 평범한 단어가 등장하는 셈이다. 만일 씨앗사판 번역본에서 Shire를 번역해서 '고을'이나 '동네' 등으로 옮겼다고 생각해 보자. 씨앗사판 번역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른 번역어들에 대해 그러듯이 어떻게 동네 이름이 '동네'냐면서 어감이 이상하다고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시에서 봤듯이, 이것은 한국어 번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영어 원문에서부터 마찬가지이고, 작가가 의도한 방향에 따른 어감이다. 이런 단어들이 영어 또는 기타 언어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한국어 번역에서는 문제가 된다고 주장하려면 근거를 더 갖추어야 한다. 이런 유형의 단어 중 최고봉은 단연 물강[24]인데, 이건 원문에서부터 강 이름이 Water였다.[25] 특히 번역지침에서 번역하도록 주문된 고유명사들은 대부분 작가의 의도에 따라 토속적이고 고대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작명되었지, 흔히 판타지에서 기대하는 신비하거나 이국적인, 혹은 '멋진' 느낌을 주기 위해 작명되지 않았다. 특히 톨킨이 번역지침을 남긴 의도 중 하나가 바로 요정어와 서부어의 어감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서인데,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어가 바로 '신비스럽고 고풍스러운' 어감의 언어의 역할을 하고, 서부어가 '토속적이고 평범한' 어감의 언어, 즉 보통의 언어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것을 감안하지 않고, 혹은 알지 못하고, 모두 어감을 이유로 음차하라고 하면, 두 언어의 고유명사들 모두 단순히 이국적이고 멋진 느낌의 외국어밖에 되지 못한다. 작가의 의도가 전혀 살아나지 못하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고 미리 어떤 기대를 품어 놓고는 그 예상과 다른 번역어에 대해 어감으로 비판하는 것은 대단히 핀트가 어긋난 것일 수밖에 없다.

다른 유형의 단어들을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호빗골Hobbiton, 바람마루Weathertop, 검산오름Dunharrow, 강노루네Brandybuck, 어둠숲Mirkwood, 등 존재하던 단어들이 아니라 새로 지은 단어들에 대해서도, 톨킨이 영어식으로 새로 작명한 영어 고유명사들과, 그것들을 한국어식으로 번역해서 작명한 한국어 고유명사들의 어감이 서로 크게 우열이 갈린다고 볼 수 없다. 없던 단어를 새로 지은 것이라서 어감이 어색하다고 해도, 그렇게 따지자면 원래 단어들도 모두 새로 지은 단어들이므로 원문도 마찬가지이고, 조어법 역시 한국어 지명과 인명 조어법에 맞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번역어들이다. 몇몇 경우 어감을 떠나 의미를 잘못 옮겼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은 단어에 대한 자의적인 의미해석 이상의 근거를 갖고 주장하는 경우도 없다. 이러한 단어들은 그 외형뿐만이 아니라 번역지침에서의 작가의 해설까지 합쳐서 봐야 그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데, 모두 번역어들이 충분히 의미를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위의 바람마루Weathertop의 경우, 원어만 보면 번역어에서 '바람'과 '마루' 모두 원문에서 다소 벗어난 단어로 보인다. 그러나 번역지침에서 Weathertop 항목을 참조하면, 'Hill of the wind'라는 의미라고 해설되어 있다. 이런 유형의 단어들은 기존 영어에 없는 단어들을 새로 작명했거나, 기존 영어단어들을 조합해서 작명한 것, 또는 고대영어의 단어들을 발굴해서 새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므로 작가의 의미해설을 참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다. 번역지침도 읽어보지 않고 이런 단어들에 대해 의미로 논한다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

번역지침 문서를 직접 읽어본다면 알 수 있겠지만, 톨킨은 번역지침을 통해 번역에 있어서 어떤 점을 의도했는지 충분히 밝혀 두었다. 흥미롭게도, 씨앗사본이나 북이십일본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하는 주장은 대부분 이 범위 내에서 이미 반박이 되어 있다. 톨킨은 번역지침에서, 모든 번역 언어에서 번역지침이 적용된다고 선언하면서 지침을 시작했고, 각 번역 언어들에 대해서는 자신이 서부공용어를 영어로 대체하였듯 영어를 대체하며, 영어 이름들을 각 번역 언어로 옮기라고 밝혔다. 그리고 번역자들에게도 몇 가지 배경지식을 갖추고 번역할 것을 요구했는데, 그것은 반지의 제왕 부록 F를 숙지하는 것, 그리고 각자의 언어에 있어서 인명과 지명의 작명법에 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출 것 등이었다. 특히 작명법에 있어서는 각 언어에서 옛 형태나 방언적 요소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기를 바랬는데, 이는 톨킨 자신부터가 서부공용어 어휘들을 '번역'할 때 고어적, 토속적 느낌을 반영하여 작명했기 때문이다. 톨킨은 자신이 서부공용어 영어로 '번역'했을 때, 자신은 '영어다운' 이름, 즉 실제 영어에 존재하는 이름은 아니지만 영어식 작명법에 따라 작명하여 영어인 것처럼 들리게 만드는 이름을 지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번역지침에 수록된 고유명사들은 대부분 톨킨이 이렇게 작명한 이름들이다. 톨킨은 특히 이러한 유형의 고유명사들에 대해, '이런 이름들을 번역하지 않고 유지하는 경우 세심하게 의도된 명명법을 손상시키고, 가상의 당대 언어사에 어울리지 않는 설명되지 않는 요소를 도입하게 될 것이므로, 번역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밝혔다. 즉, 영어 고유명사를 번역하지 않고 음차한 경우, 설정상 고대의 지구인 가운데땅에서 갑자기 현대 영어가 사용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말이다. 또한 설정상 모든 서부공용어 단어들이 다른 언어들을(요정어 등의 세계관 내 기타 언어들) 직역한 것은 아니므로, 번역자가 각 언어에 적절한 새로운 번역어를 창안해 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맥락에서, 한국어로 된 번역본에서 '영어' 이름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톨킨이 의도한 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톨킨이 고대 영어스러운 명명법으로 고유명사를 하나 만들었다고 하자. 이것은 영어 텍스트 내에서 영어 독자들에게 옛 느낌이 들도록 하기 위함이지, 일부러 멋진 어감을 내기 위함이 아니다. 해당 고유명사를 한국어본에서 음차한다면, 그것은 한국어 텍스트 내에서 튀는 단어가 되며, 독자들은 그것을 단지 언어적으로 구분되고 이질적인 단어로밖에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톨킨이 번역에 있어서 가장 지양하고자 했던 점이다. 간혹 씨앗사본을 비판할 때, '한국어로 번역했다면서 한국어에 없는 말을 지어냈다', 또는 '번역한다고 해 놓고는 방언을 끌어다 썼다' 등의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위에서 봤듯이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다.[26] 영어 원문부터 영어스러운 작명을 한 것이 대부분이지, 실제 영어에 있는 말을 쓴 것이 아니고, 방언을 사용하는 것 역시 톨킨이 적극 권장한 부분이었다.

심지어 씨앗사에서 처음 번역본이 나왔을 당시에는 씨앗사식 번역을 두고 씨앗사식을 강요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있었는데, 출간 과정에서의 미흡한 소통을 지적한다면 모를까, 출판사에서 자체적인 번역방식을 정해서 번역하는 것을 강요라고 부를 수는 없다. 다른 예로 열린책들 등 유수의 출판사들에서도 고유명사의 음차에 있어 각자의 표기법을 마련해 두고 있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외래어표기법과 다른 경우도 많다. 예로 든 열린책들에서는 러시아어 음차에서 된소리를 적극 반영하는데, 이로 인해 톨킨 번역지침에서처럼 촌스럽다는 등의 호불호가 존재한다. 그런데 이것도 호불호가 있다 뿐이지 열린책들이 독자들에게 러시아 독음을 강요한다는 주장은 제기된 적이 없다. 만일 출판사에게 번역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니 교체하라는 주장을 했다면, 오히려 그런 주장이 강요가 될 순 있겠지만 말이다. 특히 씨앗사의 번역본은 저자의 지침을 최대한 존중해서 번역한 것이므로 자의적이지도 않으며 씨앗사본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취향에 근거한 번역본보다 훨씬 근거가 확실힌 번역이다.[27] 물론, 현재 황금가지판 등 음차 번역본들을 구하고 싶어도 절판되어 있다. 때문에 반지의 제왕을 구입하고자 할 때에 씨앗사의 판본을 구입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28] 그러나 출판사가 그 사정을 감안해 주어서 독자들 입맛대로 판본을 나눌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그것도 어떤 근거를 갖춘 주장도 아니고 개개인의 선호라는 추상적인 배경을 저자의 직접적인 요구사항이 담긴 문서보다 우선하여 번역본을 만들라는 것은 말 그대로 억지밖에 되지 않는다. 그밖에 개인적인 글에서 표기할 때에 번역지침에 어긋나는 방식의 표기를 하는 것까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지침대로 작성하지 않았다고 수정을 요구한다면야 번역어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부를 만 하겠지만, 그것이 번역지침에 어긋나는 표기라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공식적인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이 표기의 일관성이나 정보전달, 의사소통에서 바람직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번역지침에 따른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를 존중해 주는 것에 더 가깝다는 것도 명확하다.

다만 유의할 건, 지금까지 번역지침에 의거한 번역본이 씨앗사판뿐이었던 시절이 길어서 흔히들 오해하지만, 씨앗사의 번역만이 번역지침을 지키는 유일한 번역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씨앗사의 번역은 번역지침을 대폭 따라 그들의 방식으로 번역한 것이지, 씨앗판 번역본이 곧 번역지침인 것은 아니다. 최신본인 북이십일의 번역에서 또다시 번역이 개선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북이십일의 번역 역시 씨앗사와 마찬가지로 그 번역 자체가 번역지침이 아니라는 것은 동일하다. 따라서 개인적인 글에서 고유명사를 씨앗사/북이십일판의 번역어와 다른 번역어로 지칭한다고 해도, 일단 번역지침에 근거해서 번역만 했다면 번역지침에 어긋나는 행동은 아니다. 공식적인 표기가 아니라는 것은 변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번역지침을 가장 잘 준수한 번역본이 현재의 공식적인 번역본이라는 것 자체는 명백하다. 씨앗사, 그리고 최근의 북이십일 아르테의 번역 모두 반지의 제왕 번역에 있어서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담당한 것으로, 번역지침의 해설을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29] 예를 들어 Middle Earth의 번역어의 변천을 통해 번역지침의 준수 정도를 보기로 하자. 원문에 대해 지금까지 다양한 번역어들이 제기된 바 있다. 극초기 번역본인 예문판에서 "중간계"가 사용되었고, 90년대 후반부터 씨앗사 이전까지 가장 유명했던 황금가지판에서는 "중원", 그리고 씨앗사-북이십일판 번역의 " 가운데땅" 정도가 있고, 혹시 개인적인 다른 번역어가 더 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흔히들 단순히 단어만 다르지 모두 맞는 번역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 중 씨앗사-북이십일본에서 사용된 가운데땅만이 틀리지 않은 번역이고, 나머지 번역은 모두 틀린 번역이다. 이것이 틀린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역시 번역지침의 내용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선 번역지침에서 Middle-earth를 어떻게 해설하는지를 보자. 번역지침에서 그 의미를 설명한 부분을 보면, 프롤로그, 본문, 그리고 부록에서 분명하게 설명되었지만,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지금 볼 수 있는 땅과 하늘 아래와 같은 배경에서 펼쳐진다. 그런데도 너무나도 흔히 잘못 여겨지는데, 특정한 땅, 세계, '행성'이 아니다. 이것은 '(요정들과) 인간들이 거주하는 땅'으로, 서쪽과 (서부에는 소문으로만 알려진)극동의 바다 사이에 위치했다고 여겨졌다. 라고 되어 있다. 괄호는 원문의 것을 그대로 옮겼다.

'세계'가 아니라고 되어 있으므로, 여러 세계를 전제하고 그 중 중간의 세계의 의미로 기본적으로 해석되는 '중간계'는 틀린 번역이다.[30] 그리고 '중원'이라는 단어는 그 어원이 중국을 가리키는 단어이고, 소설이나 이후 무협지에서 중국을 대체하여 일컫는 말로 사용된 단어이지, 별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도 아니다. 한자어로 해석해 주려고 해도, '원'에 Earth 부분의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당연히 이것도 Middle Earth의 의미를 옮겼다고 볼 수 없는 단어이다. 따라서 '바다 사이', '거주하는 땅'의 의미를 담은 '가운데땅'이라는 단어가 지금까지 나온 번역어 중에서는 지침을 가장 정확하게 준수한 것이다. 그 밖의 다른 단어들 역시 마찬가지로, 북이십일본 이전까지는 씨앗사의 번역본만이 의미를 정확하게 반영한 번역어를 사용했다.

일부에서는 지침은 인도유럽어족 언어만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한국어 번역에 적용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전혀 근거 없는 말이다. 이 주장은 번역지침에 관해 불호를 나타내는 일부 사람들이 내세우던 것이었는데, 인도유럽어족 운운은 번역지침 본문은 물론, 어느 관련 텍스트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은 내용으로,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아볼 수 없는 말이다. 지침에는 어느 언어들만을 염두에 뒀다거나 어느 언어들에는 적용하지 말라는 내용은 일절 없으며, 오히려 어떤 언어에라도(Any language) 공통으로 적용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번역지침에는 '이 섹션은 번역에 어려움이 크게 없을 것이다, 특히 영어와 관련있는 게르만어파 언어들로 번역할 때에는'이라는 언급도 있긴 하지만, 이게 게르만어파 외 언어에는 지침을 적용하지 말란 소리는 당연히 아니다. 톨킨은 게르만어파 언어들에 상당한 지식이 있었고, 번역지침에는 독일어, 네덜란드어, 아이슬란드어, 스웨덴어 등의 언어들로 예시를 제시하는 것이 자주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것이 해당 언어들에만 번역지침을 적용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번역지침에는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등 여러 유럽 언어들에 관한 언급도 전혀 없는데, 이것이 해당 언어들에서 번역지침을 적용하지 말라는 뜻이겠는가? 톨킨이 모든 언어로 예시를 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Any language라고 했으면 자연히 한국어도 포함된다고 이해해야 한다.

하다못해 톨킨이 언어학자가 아니었다면 옛날 사람이라 실수로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갔을 수 있지 않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겠으나, 톨킨은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에 참여하거나 고대 언어들의 복원에도 관심을 가지기도 한 언어학 부분에서도 권위자였다.[31] 물론 톨킨이 전문적으로 다룬 언어들은 모두 인도유럽어족, 그 중에서도 게르만어파들이지만, 모든 언어라고 적시하면서 문법부터 느낌까지 모두 다른 중국어나 일본어, 혹은 페르시아어 등 아시아권 언어를 염두에 두지 않았을 리도 없고, 인도유럽어 이외 언어에 적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면 따로 언급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 시대 유럽인들은 동양에 대해 무지하고 편견에 찌들었으므로 거기까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라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다. 톨킨이 문학 작품을 출간하기 이전에 이미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나 프리드리히 니체가 불경이나 인도 철학서를 읽어보고 그 영향이 그들의 철학 체계에 남았으며, 톨킨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 에즈라 파운드는 한시를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시대적 한계를 감안하고서라도 그 시대의 유럽은 동아시아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 지역 문화를 탐구,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일본어본의 예를 들면, 호빗이 1965년, 반지의 제왕이 1972년에 처음 번역출간되었는데, 톨킨이 1973년에 사망하였으므로, 톨킨이 여기에 대해 별도로 변경할 사항이 있었다면 더더욱 언급했을 것이다. 번역 및 출판에 소요되는 기간을 고려하면 톨킨이 일본어본 출간에 대해 전달받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고, 톨킨은 일본어판 호빗의 삽화에 대해 호평하는 등 피드백도 확실히 남겼다.[32] 지침에서 모든 언어라고 적시하는 만큼, 당연히 한국어에도 적용하는 게 맞다.

설령 번역지침의 내용에 없어도 의도상 적절하다면 해당 주장이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번역지침은 가상의 언어체계에 어울리게 번역하라는 것인데, 한국어 텍스트에는 영어 단어가 섞여 있어도 어울리고 다른 언어 텍스트에는 영어가 섞여 있으면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닌 이상, 톨킨의 의도를 구현하려면 한국어에서도 번역을 하는 것이 맞다. 이것은 번역 언어가 인도유럽어족인지 아닌지와는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언어의 관계를 고려한다면, 영어와 보다 가까운 인도유럽어족, 더 나아가 게르만어파 텍스트에서는 영어 단어가 섞여 있어도 한국어 텍스트에서보다 덜 이질적일 테니 해당 언어들에서 오히려 번역지침을 적용하지 말고 영어에서 더 먼 언어들에서 더 엄격히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야지, 한국어에서 번역지침을 적용하면 안된다는 주장은 정반대로 가는 주장일 뿐이다.

오래 전부터 반지의 제왕을 즐겼던 사람들 중에서는 일종의 선점효과로 인해 번역지침에 따른 번역어에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단순한 번역어의 어감이나 호불호, 익숙한 정도를 떠나 정착 단계에 있던 고유명사들이 새로운 번역어로 바뀌면서 팬층 내 교류에서 장해요소가 된다는 주장이 덧붙여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것 역시 번역지침이 톨킨의 의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내는 방향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지침을 적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특히 반지의 제왕의 과거 판본들에서는 인간을 '멘족'이라고 번역하거나(동서문화사), 에오메르를 '요머'라고 읽는 등(예문) 번역의 한계가 뚜렷한 경우가 많으며, 씨앗을 뿌리는 사람 이전 최신판인 황금가지판에서도 Middle-Earth를 '중원'이라고 번역하는 등, 개선의 여지가 분명했기 때문에, 단순히 먼저 나와 익숙해진 번역어라는 이유로 번역지침을 적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또, 이런 식의 주장대로라면 현재 기준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처음 접한 번역판인 씨앗사의 번역본, 혹은 앞으로 계속 신규유입이 늘어날 아르테판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아예 모든 것을 다 감안하더라도 번역지침을 한국어에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톨킨이 어느 언어에라도 적용하라고 만든 지침이라도 결국 한국어에는 맞지 않으니까 적용하면 안 되고, 톨킨이 의도했다고 밝힌 단어들의 의미도 음차해 놓는 편이 더 잘 이해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로 오면 이미 더 이상 논지를 제기하는 건 의미가 없고, 개인의 취향으로 여기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위에서 보았듯이, 번역지침이 처음 도입된 씨앗사본이 등장했을 시기라면 몰라도, 번역지침의 내용이 어느 정도 알려진 지금 번역지침의 적용 여부를 논하는 것은 상당히 무의미하다. 그리고 다소 잘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번역지침은 결국 작가 본인의 지침이다. 앞서 언급되었듯이 그 내용이 매우 자세하고, 어떤 언어에라도 적용된다고 밝혔으므로 예외를 둘 여지도 없다. 작가의 작품은 취하고 작가의 지침은 버리려는 태도는 작가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태도라고 볼 수 없다. 백 번 양보해서 작가가 자기 작품에 맞지 않는 지침을 남겼다면 비평적으로 배제하는 것도 근거가 있겠으나, 번역지침이 그런 경우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앞서 언어에 관한 작가의 설정을 설명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의도한 재미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도 지침에 따라 번역하는 것이 더 알맞다. 번역지침에 따라 번역한 것보다 원문의 의미와 어감을 잘 살린 텍스트를 원한다면 원문을 읽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

4.1.2. 번역어에 관해

그리고 번역지침을 따른다고 해도 몇몇 번역어들에 관해서 논란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긴스(Baggins)가 골목쟁이네로 번역된 것을 비롯한 호빗들의 이름의 번역이다.[33] 그러나 이 분야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부분은 종족명의 번역어일 것이다.

엘프→요정, 드워프→난쟁이, 드래곤→용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순히 단어들이 촌스럽기 때문이 아니고, 각 언어 세계관에 존재하지 않는 의미나 단어들을 무리하게 번역하다가 본의 아니게 오역을 이끌어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레젠다리움에서의 번역지침식 번역을 비판하는 경우가 있었다. 대표적인 주장으로 요정이라는 번역어를 사용한 건 엘프(Elf)와 페어리(Fairy) 등의 엄연히 다른 존재들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이 있다.[34] 같은 맥락으로 Dwarf는 난쟁이가 아니고, Dragon은 용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곤 한다. 서로 유사하긴 하지만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 따라서 고유명사를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음차해야 의미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영어와 같은 유럽권 언어에서는 그나마 번역 논란이 상당히 드물다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 있다. 하물며 현대 영어와 연관성이 거의 없는 동아시아권 언어로는 어떻게 번역을 해도 뭔가 불편해지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

그러나 상기한 주장은 제기될 수는 있겠으나 합당하지 않다. 번역에서 일대일로 대응되는 의미를 찾아내라는 것은 그 어느 언어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흔히들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어휘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실제로 엄격하게 분석하면 문화적, 역사적으로 다른 배경이 있기 때문에 어느 두 언어에서 완벽하게 일치하는 번역을 만든다는 것은 과학, 기술 분야의 경우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과학 분야에서마저도 각 단어 자체의 역사까지 파고들어가면 같은 의미의 단어를 찾는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해진다. 단어 수준을 넘어 문장, 그리고 텍스트 전체까지 넘어가면 이러한 간극은 더욱 커진다. 그런데도 현실에서는 반지의 제왕 뿐만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텍스트들이 무수히 많은 언어들로 서로 번역되고 있다. 즉, 언어적 차이에서 기인한 어느 정도간의 의미 차이 정도는 번역할 때 충분히 감안하고 번역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드래곤과 용, 엘프와 요정, 드워프와 난쟁이, 그리고 기타 등등의 단어들이 음차로만 의미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의미 차이가 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무엇보다 이런 유형의 단어들은 고유명사도 아니고, 한영사전만 찾아봐도 나오는 일반명사들이다. 사전에 실려 있을 정도로 일반적으로 서로 통용되는 단어라고 받아들여지는 단어들을 번역하지 말자는 것은 지나치게 주관적인 것이고, 고유명사마저도 번역하라는 톨킨 번역지침 하에서는 더더욱 받아들여지기 힘들다. 이런 단어들은 번역지침에서 따로 항목으로 볼 것도 없이, 영어를 각 번역어로 대체하라는 주문에 따라 번역되면 된다.

가령 드래곤과 같은 단어에 있어서도 이미 일상언어적으로 드래곤과 용이 동일한 대상을 가리킬 수 있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성서 번역에 있어서도 가톨릭 성경과 개신교 개역개정, 공동번역성서 모두 성서에 나오는 '드래곤'을 '용'으로 번역하여 표기하고 있다.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동양 문화에서의 용이 서양에 소개될 때에도 Dragon이라는 번역어가 사용됐다. 반지의 제왕이 한국에 번역될 때는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이런 식의 언어 사용이 자리잡은 지 오래이며(가장 최초의 번역만 하더라도 1970~80년대에 출판되었으며, 그 때는 이미 드래곤과 용이 섞여 쓰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반대로 서구에서도 동양의 용을 굳이 원어를 존중하여 중국어 기준으로 음차하면 Lung( 한어병음 표기로는 Long이지만 실제 발음은 '룽'에 가까우므로), 일본어 기준으론 Ryu, 한국어 기준으로는 Yong으로 쓰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서구권에서도 동양의 용을 간단하게 '드래곤'으로 표기하는 것도 일상적이다. 예를 들면,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의 룽 드래곤이나, 몬스터 걸 백과사전 세계관 등에서는 동양의 용과 서양의 드래곤이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 다른 종으로 묘사되므로 이런 경우에는 드래곤과 용을 별개의 단어로 취급하는 게 맞겠지만, 반지의 제왕이 그런 세계관이었던가? Dragon과 용이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은 일부의 주장일 뿐이지 일상언어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장은 아니다. 흔히들 드래곤과 용이 다르다고들 주장하지만, 그것은 차이점만 강조해서 본 것이지, 공통점이 더 많으며, 실제로 드래곤과 용이 번역어로 통용되는 것에서도 일반적인 인식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엘프, 페어리의 구분이 한국어 번역에서는 모두 '요정'으로 통일되어서 다른 것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문제에서도 일차적으로 레젠다리움 세계관에 엘프와 페어리가 따로 구분되어 등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부터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하며[35] 당장 다른 세계관의 경우를 살펴봐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중국식 표기만 하더라도 여기서 구분이 되지 않는다는 드워프, 노움 같은 고유명사들이 엄연히 톨킨식에 가깝게 번역이 잘 되어 있다.(한국판은 그냥 드워프와 노움을 음역하는 것을 택했지만) 즉, 굳이 번역하지 못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중국식 와우 표기를 보고 어색하고 이상하다는 것은 단지 한국판의 표기가 익숙했기 때문이며, 그 한국판 번역에서마저 '파이어볼'이 아니라 '화염구'라는 게 이상하다는 식의 논리적이지 못한 반발이 있었던 것을 생각하자. 레젠다리움의 설정을 더 파보면 톨킨이 베렌과 루시엔을 처음 쓸 때 등 초창기에는 요정엘프가 아닌 페어리라고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엘프냐 페어리냐 따지는 것에 톨킨 자신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예 초기 설정에서는 Gnome이라는 종족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후 개작을 거치며 elf(특히 그 중 놀도르)가 된다. 즉, 톨킨의 구상에서, 엘프냐, 페어리냐, 더 나아가 노움이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엘프와 페어리를 구별해야 하니 둘을 모두 가리키는 요정이라는 번역어를 쓸 수 없다는 말은 적어도 톨킨의 작품들에서는 성립되지 못한다. 설사 두 종족이 모두 등장했었다고 해도, 모든 영어를 번역하라고 요구하는 번역지침에 따라 두 단어 모두 각각 번역어를 만들면 되는 것이지, 둘 다 음차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Elf에 관해 좀 더 나아가면, elf라는 단어 역시 톨킨이 반지의 제왕을 집필할 당시 사실상 사어로, 톨킨이 자신의 작품에서 적극 사용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사어였을 것이다. 톨킨의 편지에서는 인쇄소에서 elves, elven 등의 elf 활용형들이 elfs, elfin 등으로 교정되었다고 불평했는데, 이것의 맥락은 영어에서의 leaf-leaves, self-selves 등의 불규칙변화형 예시들을 보면 알 수 있다.[36] 원래 영어에서 -f로 끝나는 단어들의 활용형을 만들 때에는 불규칙형태를 적용하여 f가 v로 교체되는데[37], 사어의 경우 입으로 발음할 일은 없고 문서에나 가끔 적는 단어이므로, 문헌으로 적을 일이 있을 때에는 일반적인 규칙을 그대로 적용하여 그냥 -s를 붙이는 식으로 사용되었다. 즉 당시 elves가 elfs로 교정되었던 건 elf가 당시 사어 취급을 받았다는 뜻이다. 톨킨이 elf라는 단어를 '신비하고 수명이 긴, 인간과 비슷한 종족'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하기 이전, elf는 전통 민담에서 등장하는 각종 비인간 정령들을 가리키는 단어 가운데 하나였고, 당연히 현대 판타지에서 등장하는 엘프들과는 다른 의미였다. 물론 현대 판타지의 엘프의 이미지와 유사한 종족들, 즉 북유럽 신화에서의 신들, 또는 한여름 밤의 꿈 등에 등장하는 Fairy들이 기존에 존재했고, 이들과 유사한 존재들을 일컬을 때 Elf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했지만, 명확하게 일대일로 정의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 엘프, 트롤, 페어리, 노움 등 현대 판타지에서는 아주 다른 종족들이 톨킨 이전에는 모두 비슷하게 민담 속 정령들을 일컫는 단어로 혼용되었고, 엄밀하게 구별되어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톨킨이 elf를 고귀한 인간형의 종족으로, troll을 거대하고 무식한 괴물로 설정하고 나서부터야 현재 판타지 팬들이 생각하는 엘프와 트롤의 이미지가 굳어진 것이다.[38] 그마저도 톨킨 당대에는 앞에서 봤듯이 거의 사어가 되어 있던 실정이었다. 현대 판타지에서 등장하는 '엘프'의 원형은 톨킨이 자신의 작품에서 정립하고서야 비로소 확립된 것으로, 단순히 긴 수명과 고귀함이란 특성뿐만이 아니라 높은 기술 수준과 전투력, 그리고 숲과 자연을 사랑하는 특성이 모두 톨킨의 Elf에서 정립된 설정이다. Fairy의 경우, 이렇게 Elf의 의미가 이쪽으로 굳어진 뒤에야 팅커벨 같은 종족들을 의미하는 쪽으로 확실하게 굳어졌다. 따라서 Elf라는 단어에 특정한 개념이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고 볼 수 없다.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라는 어떤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린 채 그것을 '요정'이라는 개념과 비교하여 다른 점을 찾아내면서 번역어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은 여기에서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요정이라는 단어는 한국에서 민담 등에서 자주 사용되던 단어는 아니지만, 분명히 국어사전에서 '요사스러운 정령'이라는 의미라고 풀이되며, 실제로도 그런 의미로 사용되곤 한다. 그렇기에 서양의 동화 등을 번역할 때 elf든 fairy든 요정을 번역어로 사용했던 것이기도 하다. 동화는 아니지만, 앞서 언급하였던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보면, fairy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이 fairy들은 인간형이지만 인간보다 더 고귀하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등 반신과도 같은 종족으로 묘사된다. 숲 속 왕국의 왕과 왕비라는 특성까지 갖고 있는데, 여기서 이들의 성격이 오늘날의 판타지 종족으로 치면 '페어리'보다는 '엘프'와 가까운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에도, 쭉 요정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즉, 지금의 '엘프'와 같은 성격의 종족을 번역할 때에 이미 '요정'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예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elf와 요정이라는 단어의 유래와 사용을 보더라도, 두 단어가 서로 번역어로 사용되지도 못할 만큼 아예 다른 단어라고 할 수 없다. 톨킨이 기존 민담에 등장하던 각종 정령들을 가리키던 'elf'라는 단어를 가져다 자신의 작품의 종족명으로 사용했다면, 한국어로 번역할 때 기존 '요사스러운 정령'이라는 의미의 '요정'이라는 단어를 해당 종족명으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며, 이는 톨킨의 작품에서만이 아니라 번역에 있어서 상당히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엘프'는 판타지에 등장하는 고귀한 종족이고, '요정'은 동화에 나오는 정령들이므로 두 단어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는 주장은 그 근거가 얕은 것이다. elf가 요정으로 번역되지 못할 정도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면, king이 왕으로, knight가 기사로 번역되는 것도 불가능해지고, 더 나아가 어떠한 번역도 불가능하다.

난쟁이-dwarf의 경우 굳이 한영사전을 찾지 않더라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Snow White and Seven Dwarfs'만 봐도 일반적으로 당연히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번역으로 인식된다. 이런 형편까지 감안하면, 줄곧 내세우는 '의미상의 차이'라는 것은 레젠다리움의 번역에 있어서 생각처럼 큰 요소는 아닌 것이다. 특히 정말로 번역어가 없어서 음차 외에는 대안이 없는 'hobbit', 'ent' 등 톨킨이 직접 창조한 고유명사들은 지침상 번역하지 말라고 명시되어 있다. 즉, 상단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번역과 언어에 조예가 깊은 작가 본인이 자신의 작품에 사용된 고유명사들을 일일이 분류하여 번역하라/번역하지 마라, 번역한다면 어떻게 번역하라고까지 명시했는데, 그것을 제삼자가 나서서 의미상 적절치 않다고 주장하고 더 나아가 해당 지침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까지 주장하는 건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 위에서 보았던 의미 전달의 부분이 아니라 단순히 '어감이 구리다', '촌스럽다'는 이유로 번역지침에 의한 번역어를 까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특히 '촌스럽다'는 이유는 앞서 보았듯이 토속적인 어감을 내는 것 자체가 톨킨의 의도 중 하나였으므로 비판으로 성립할 수도 없다. 빌보 배긴스보다 골목쟁이네 빌보가 훨씬 친근한 느낌과 평범한 호빗이라는 정감어린 느낌이라 좋아하는 팬층도 있듯이 취향차에 불과하다. 번역지침에 맞고 틀리고를 떠나 어떤 번역어에 대한 어감상의 호불호는 갖고 있을 수 있으며, 해당 취향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비판받을 순 없다. 어감에 대한 선호로만 본다면 '빌보 배긴스'와 '골목쟁이네 빌보' 중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는 예를 들어 ' 시팅 불'과 ' 웅크린 황소' 중 어느 이름의 어감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취향차 정도밖에 안된다. 지침에 맞는지 틀린지를 따지는 것과는 다른 문제인 어감상의 문제에서는 옳고 그름이 없다. 어감에 대한 호불호 자체는 취향의 영역으로, 비판이 개입될 여지가 없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국내 판타지 팬층이 비정상적으로 외래어 어감의 고유명사를 선호하는 경향은 비판받을 수 있다. 과거의 양판소, 그리고 최근의 라이트노벨이나 웹소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경향이지만, 의미상 차이가 없음에도 불필요하게 영어 음차를 사용하거나, 아예 의미도 없이 일단 유럽 어딘가의 어감이기만 하면 되는 고유명사 작명법이 비판받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간혹 가다 국립국어원 등의 한국어 기관에서의 우리말 순화 운동이나 2000년대 초반 양산형 작품들에서의 근본 없는 한국어 조어법[39]으로 나온 순우리말 단어들에 대한 적개심을 여기에까지 향하는 경우가 보이는데, 그럴 때는 작가의 지침에 따라 합당한 근거로 번역된 번역어임을 알려 주는 것이 이후의 생산성 없는 논쟁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번역어에 대한 호불호 중 대표적인 것으로, '골목쟁이네'라는 번역어가 있다. 이 번역어는 가장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일단 적어도 그 중 '골목쟁이'라는 단어가 한국어에 없는 말을 억지로 지어냈다는 건 명백하게 틀린 지적이다. 골목쟁이는 국어사전에도 '골목에서 더 들어간 좁은 곳'이라고 실려 있는 한국어 단어이다. 나름 호빗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다.[40] 그리고 한국어에서도 사람을 적당히 일컬을 때 그 인물의 출신지나 거주지 등에 ~네, ~댁 등을 붙여 부르는 경우가 최근까지도 흔했다. 그럼에도 골목쟁이가 한국어와 맞지 않는 단어라고 따지는 사람들이 명심할 점 중 또 하나는, 'baggins'나 'baggin'이 톨킨 관련 문서 이외에 쓰이기나 하는 단어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예를 들어 스웨덴어의 'Bagger' 번역의 경우 그 뜻이 '자루에 들어간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걸 한국어로 한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할 때 제대로 답할 수 있겠는가? 영어 단어가 아니라 영어스럽게 작명된 이름인 Baggins를 명백한 한국어 단어인 골목쟁이로 번역한 것을 지적한다면 몰라도, 골목쟁이가 한국어에 맞지 않는 단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장하기 전에 사전도 안 찾아보고 나온 주장일 뿐이다.

지침을 참조하면, Baggins 항목에서는 Baggins를 bag(가방)나 sack(자루)의 뜻을 포함하여 번역하여야 한다고 했지만, 단어의 의미풀이를 보면 (호빗들에게는) 빌보의 생가인 Bag-end(즉 'bag'나 'pudding bag'의 끝= 쿨데삭)와 관련된 이름으로 받아들여진다.[41][42]라는 의미 해설이 주어져 있다. 여기에 부연하여 Baggins라는 단어가 시골에 있던 자신의 이모[43]의 농장 이름이었는데, 그 농장이 진입로의 맨 끝에 있었다는 언급도 있다. 쿨데삭, 그리고 농장이 길의 끝에 있었다는 부분에서 '골목에서 더 들어간 좁은 곳'이라는 뜻의 번역어 골목쟁이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위에서 인용한 내용을 다시 정리하자면, 빌보가 대대로 사는 집이 Bag-end백엔드이고, 호빗들의 언어관습에서는 백엔드는 쿨데삭의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묘사되었지만, 설정상 백엔드는 길 끝에 위치한 집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빗들은 Baggins라는 성씨가 백엔드라는 집 이름과 관련이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44] 따라서 '백엔드'-'길 끝'-'배긴스'의 의미상 관계가 성립하며, 배긴스를 번역할 때 '길 끝' 부분을 반영하여 '골목에서 더 들어간 좁은 곳'이라는 의미의 '골목쟁이'라는 단어를 번역어로 사용한 것이다. 즉, 엄밀히 말하자면 bag, sack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으므로 번역지침에 완전히 맞는 번역은 아니지만, Baggins라는 단어의 의미를 고려하면 의미상으로는 적절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침에서 Bag나 Sack의 뜻을 포함한 단어로 번역하라고 지시한 만큼 그 부분에 관해서는 지침에 어긋나는 번역인 것은 맞다.[45] 골목쟁이라는 번역은 원문의 Baggins의 교묘한 어감을 없앤 것이 사실이다. Baggins는 노골적으로 영단어 동사 bag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가방에 뭔가를 넣다' 또는 '안전하게 챙겨두다'라는 뜻을 가진다. 이는 소설 호빗에서 아르켄돌을 챙긴 Bilbo Baggins(빌보 배긴스)의 활약과 연관된다. 이렇게 뭔가를 챙겨둔다 어감의 성은 후속작에서 프로도의 활약에까지 이어지지만, 한국어판에서는 Baggins를 골목쟁이로 번역함으로써 이러한 느낌을 살리지 못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Baggins를 배긴스라고 번역했어도 그런 느낌이 전혀 살아나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번역지침을 따라서 발생한 문제라기보다는 따르는 과정에서 선택한 단어의 문제이다.

4.1.3. 음차할 때의 표기

이하 내용은 번역 지침 문서 자체와는 큰 관련이 없는 논란이지만 톨킨 문학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문제이므로 함께 작성한다. 일반 대중들이 이 부분도 번역 지침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고, 실제로 발음법은 반지의 제왕 부록 E에서 해설되는 부분이므로 '지침'이라고 할 수는 있기도 하다. 흔히들 '톨킨 번역 지침에 따르면 아라곤이 아니라 아라고른이래요'라는 식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톨킨 번역 지침'을 위에서 보았던 '반지의 제왕의 명명법' 문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면 틀린 말이고, 반지의 제왕 부록 E, F, 그리고 기타 작가의 언급들을 모두 포함해서 지침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본다면 맞는 말이 된다.

번역 지침을 제대로 따라도 요정어로 된 고유명사들이나 기타 몇 가지 단어들은 음차하게 된다. 아무 논란 없이 깔끔히 번역되는 경우들이 많지만 발음이나 철자법이 복잡한 경우에는 한글 표기에 대해 논란이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편 씨앗사 이전의 번역들의 경우, 요정어 발음들을 영어식으로 읽어 음차한 것들도 많은데, 이것들은 논란의 여지 없이 오역이다. 흔히 알려진 것들이 간달프를 갠달프/갠돌프로 적는 것, 보로미르를 보로미어라고 적는 것 등등이 있다. 비교하자면 로마의 Caesar에 관한 글을 번역하는데 라틴어 발음을 따라 카이사르라고 적는 것이 아니라 영어의 발음을 따라 시저라고 적은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특히 이 부분들은 영어로 제작되는 영화들에서 배우들도 흔히 하는 실수인지라[46] 설정을 잘 모르고 대충 번역하는 경우엔 더 자주 발생하게 된다. 영화 자막 제작 등이 대표적.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라고른 2세의 경우로, 흔히 '아라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Aragorn이라는 표기를 영어식으로 읽은 발음으로 잘못이다. 영화에서도 '아라곤'이라는 발음이 자주 사용되어 더 널리 퍼지기도 했다. 아라고른의 경우 요정어 이름으로, r은 반드시 별개로 발음되며 영어와 달리 모음화되지 않는다. 특히 아라고른의 경우 무슨 원인인지는 몰라도 '아라곤'이라는 표기는 '아라고른'에 비해 틀린 발음인데도 널리 퍼져 있고 잘 고쳐지지도 않는다. 아라곤은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 있던 국가다. 보로미르, 간달프 등 다른 캐릭터들의 이름은 물론 'r'이 들어가는 다른 요정어 단어들인 아르노르, 곤도르, 모르도르 등도 일반적으로 옳은 발음이 널리 퍼져 있는 것에 비하면 특이한 경우. '갠달프', '보로미어', '몰돌' 등의 표기가 잘 사용되지 않는 것과 비교해 보자.

간혹 가다 아라고른 등 요정어 발음법을 살려 읽은 표기를 가지고 '영어를 잘못 읽었다'라고 비판하며 헛다리를 짚는 경우가 있는데, 마찬가지로 작가의 의도상 그렇게 읽는 것이 더 맞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47] 특히 씨앗사판 번역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씨앗사판의 번역이 '자의적'이라고 착각하고는 자기들의 기대와 다르게 음차된 단어들을 '괜히 멋부려서 읽은' 단어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 다른 분야이지만 센 강을 세느 강이라고 읽은 것을 떠올리면 된다. 당연하지만 모두 톨킨이 의도한 발음법에 더 맞게 음차한 단어들이지 번역할 때 자의적으로 만들어 낸 발음들이 아니다.

이런 유형의 오류들은 대부분 영화나 오디오북 등 영상 매체에서의 발음을 듣고 판단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들이다. 한국어 독자들의 입장에서 '원문' 발음을 들을 기회가 바로 이런 영상 매체를 통해서인데, 문제는 이러한 단어들의 경우 영어권, 아니 현실 세계의 그 어느 배우들도 '원어'로 발음할 수 없는 단어라는 것이다. 흔히들 '영화에서 아라곤이라고 그러던데?'라고 하는 경우가 많이 보이지만, 그래 봤자 '원문'이 아니라 잘못된 발음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는다. 특히 반지의 제왕 부록에서는 아무래도 알파벳으로 표기해 놓은 데다가 1차 독자들이 영어 화자들이므로, 영어 발음에 이끌려 발음하는 것을 경계하여 음소별 해설마다 여러 차례 거듭 영어식의 어떤 발음이 아니라고 해설해 두었다.[48] 만일 어떤 외국 배우가 어떤 영화에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설정으로 등장해서 한국어 대사로 연기했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발음은 틀리고 어떤 발음은 맞게 했을 것이다. 당연히 이 배우의 발음법이 한국어를 발음하는 방법이 될 수는 없고, 이 배우의 발음대로 한국어를 적는다면 그것은 오류가 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외국인 배우들이 그렇게 읽는다고 해도 잘못된 발음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반지의 제왕에서의 고유명사 역시 마찬가지이다. 맞게 읽는 방법이 정해져 있고, 배우들이 어느 정도 틀린 발음으로 대사를 읽었다 해도 맞는 발음이 바뀌지는 않는다.[49] 요정어가 실제 원어민이 존재할 수 없는 언어라고 할지라도, 톨킨이 명확한 발음법을 남겨 놨으므로 맞는 발음법대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다른 작품들의 오역의 경우 영상매체를 통해 이름이나 발음을 잘못 옮겼다는 것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서 더 헷갈릴 수 있지만, 반지의 제왕에서는 영어가 원어가 아니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면 오류를 저지르기 쉽다.

이 정도는 단순히 요정어를 영어식으로 적은 것이라 명백한 잘못이고, 규정된 발음법을 따라가면 비교적 고치기도 쉽지만, 발음의 음차에 있어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띈다. 작중의 요정어는 톨킨이 완전히 창조해낸 하나의 별개의 언어체계로, 한국어와도, 영어와도 다른 독자적인 음가 체계를 갖추고 있다. 따라서 원문에서부터 알파벳으로 표기했다고 영어식으로 읽지 말라는 내용이 부록에 실려 있다. 영어 단어를 한국어로 음차할 때에도 그 발음을 고스란히 살리는 것은 불가능한데, 생소한 요정어를 한국어로 음차하는 것이니만큼 더더욱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다.

요정어와 한국어 음가의 미묘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문제점도 있다. 가장 흔한 경우가 이중모음의 표기와 ng 음가의 표기이다. 예를 들어, 요정어 이름인 Maedhros는 일단 서부어가 아닌 요정어이므로 음차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음차하는 과정에서 '마에드로스'라고 적을지, 라틴어처럼 ' 마이드로스'라고 적을지가 갈린다. 다른 예를 들면, Fingon에서의 ng발음이 있다. 씨앗사 실마릴리온에서는 핑곤으로 번역되었지만, '핀곤'이라고 표기해도 발음상으로는 문제가 없다. 사실상 같은 발음이지만, 일단 표기는 다르니만큼 표기의 일관성 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지는 간간히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렇듯이 비록 요정어 표기와 발음에 관해 톨킨이 남긴 해설을 따른다 해도, 그것을 한글로 옮기는 과정에서 또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이처럼 한국어에 없는 발음에 관해서는 일반인들은 자기 귀를 근거로 삼아 한글 표기를 지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단 반지의 제왕의 번역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영어단어를 한글로 적을 때도 흔히 발생하고, 기타 외국어의 한글 표기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내가 듣기론 분명 이렇게 적는 게 맞는데, 왜 다르게 적느냐'는 주장으로 한글 표기를 비판하는 것은 음운론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음운론적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음소를 구분해서 표기해야 하는지, 음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표기에 반영해야 하는지 제대로 주장할 수 없다. 반지의 제왕 부록에는 음운론적인 해설과 함께 어떤 발음을 어떤 철자법으로 표기하였는지 해설되어 있지만, 보통 일반인들이 음운론적인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므로 대부분은 알파벳 철자만 보고 발음을 지레짐작하는 경우가 많아 종종 논란의 단초가 되곤 한다.

그 밖에, 몇 안 되는 경우들이지만, 길고 복잡한 고유명사들의 경우 어떤 어근들이 조합된 것인지 분석이 난해하여 음차에 논란이 있었던 것들이 있다. 특히 이런 유형의 단어들은 등장 빈도도 매우 적어서 분석하기에 더 곤란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신다린 단어에서 '-th-'표기의 경우, 이것이 하나로 분석되는지 아니면 '-t + h-' 로 분석되는지에 따라 음차가 각각 '-ㅅ-', '-트 + ㅎ-'로 달라져야 하는데, 씨앗판의 번역본에서 일부 잘못 분석된 것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경우 요정어 어근 자료를 봐야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데, 톨킨의 언어 설정은 아직도 새로 분석되는 것들이 있을 정도이므로 완전히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현실적으로, 이런 경우의 단어들에 대한 번역상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는 없으며, 가끔 어쩌다가 눈썰미 좋은 독자가 발견하면 신기하다는 시선을 받는 정도다.

4.1.4. 지침에 대한 오해

과거 씨앗사본이 등장한 초기에 거세게 일었던 논란 중 몇몇은 완전히 논점에서 벗어난 것들도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번역지침은 당시 씨앗사의 주장에 의해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을 뿐, 그 내용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저 모든 고유명사를 고유어로 번역하라는 지침이라는 정도로만 알고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당시뿐만 아니라 씨앗판이 출간되고도 십여년이 흐른 시점에서도 번역지침에 대한 인식은 비슷했고, 그때의 논쟁도 처음 씨앗본이 등장했을 때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이는 번역지침에 따른 번역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지침을 자세히 알지 못하고 옹호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씨앗사 번역에서만 고유명사들이 번역된 것으로 아는 경우도 있었는데, 황금가지 판에서도 고유명사의 절반 이상은 번역되어 있었다.

그렇게 주제에서 벗어난 논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운데땅의 역사서등 국내 미번역 설정집/작품들을 번역하면 고유명사들이 새로 쏟아질 텐데 그걸 어떻게 다 새로 (멋대로) 번역할 것이냐며 따져 묻는 것이었는데, 이 경우는 위에서 말했듯이 번역지침에 관한 논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해당 작품들은 애초에 고유명사에 관한 한 번역지침이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다. 톨킨이 고유명사를 번역하길 원했던 것은 현실에서는 자신이 영어 텍스트에서 영어스럽게 작명한 것이기 때문이었고, 설정상으로는 '서부어'를 영어로 옮긴 고유명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마릴리온부터 시작해서, 후린의 아이들,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그리고 가운데땅의 역사서[50] 등의 (당시) 미번역 작품들은 그런 배경과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번역지침은 '서부어'의 번역을 다루는 것인데, 서부어란 설정상 일러야 태양 제 2시대는 가야 성립된 언어이고, 실마릴리온 등 작품들의 배경은 거의 1시대 및 그 이전이다. 애초에 설정상 서부어로 된 고유명사가 존재하지 않던 시대를 다루므로, 번역지침에 의해 번역할 고유명사도 없다. 톨킨이 여기에 작명한 고유명사들은 처음부터 요정어로 의도하였지, 영어로 번역한 결과라고 의도한 단어들이 아니다. 실제로 반지의 제왕에서 자주 등장하던 번역된 지명들이, 실마릴리온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주장을 하던 사람들은 고유명사의 성격을 구분하지 못하고, 고유명사라면 씨앗사가 무조건 '자의적으로' '이상한' 번역어를 만들어 내서 번역할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번역되어 있던 실마릴리온을 봐도 그런 주장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장 씨앗사본 실마릴리온을 펼쳐서 요정어 발음 그대로 음차해서 번역된 단어가 얼마나 되는지 세어 보자. 수백 개도 넘을 것이다. 만약 씨앗사가 요정어나 난쟁이어 등으로 된 고유명사들도 번역했다면 책제목부터 '순수한 빛의 반짝임의 (이야기)'로 번역됐을 것이다. 그리고 ' 순수한 빛의 반짝임'이라는 보석은 ' 불의 영'이란 요정이 만들었을 것이고, 그의 큰아들은 ' 좋은 몸'이라고 번역됐을 것이며, ' 회색 망토'는 ' 발라르의 땅'이라는 대륙에 있는 ' 방벽의 땅'이라는 나라의 왕이고, ' 소중한 선물'이라는 ' 아름다운 자'와 결혼하여 수도인 ' 천의 동굴'에서 ' 모든 것의 아버지의 자손인 ' 말하는 자 뒤따르는 자 중 가장 아름다운 ' 꽃의 딸'을 낳았다는 괴랄한 번역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후 미번역 상태였던 후린의 아이들(씨앗사), 끝나지 않은 이야기(북이십일)이 새로 번역되었고, 모두 번역지침을 따르면서도 내용상 아무 문제 없는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5. 기타 언어

한국어 외 언어에서도 대체로 번역지침이 준수되어 번역되었다. 이 중 몇 가지 언어의 간단한 예시들만 보기로 하겠다.

6. 현재

위의 논란들은 대부분 씨앗을 뿌리는 사람에서 새로 판권을 취득하여 새 번역본을 내놓았던 2000년대 초에 활발히 일어났던 것들으로, 시간이 많이 지난 현재에는 대부분 논란 자체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씨앗사 판본이 자연스럽게 시장을 장악하고 호빗 등 관련 매체로 새로 들어오는 팬들도 씨앗사의 번역본을 구입하기 때문에 씨앗사 번역은 호불호의 문제를 떠나 일단 확실히 정착했다고 보여진다. 물론 현재에도 각자의 호불호를 가진 개개인들은 있지만, 그것이 다시 논란으로 번지는 경우는 드물며, 설정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때에도 대부분의 경우 씨앗사의 번역이 사용된다. 다만 번역지침 자체는 존재가 다소 알려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 내용은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다 최근 북이십일 출판사에서 새로 번역 판권을 취득하였다는 것이 알려지며 북이십일 판본에서는 어떤 번역이 채택될지에 대해 잠시 다시 번역어의 채택에 대해 토론이 제기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씨앗사의 번역을 따르며 몇몇 개선할 점만 고치는 것을 선호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져서 씨앗사식의 번역어에 대한 선호가 다시 확인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종종 번역지침에 의거한 번역어 일부에 관한 불호를 드러내는 사람들도 소수 있다.

2021년부터 톨킨문학선이 본격적으로 출간되었다. 번역기조는 씨앗사의 번역본과 마찬가지이며, 고유명사들의 번역에 있어서도 번역지침을 잘 준수하였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위에서 언급되었던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번역되었다는 것. 문서에서 언급되었듯이 번역지침을 준수하면서 잘 번역되었다. 전체적으로 눈여겨볼 점은 음운론적인 부분에서 더 엄격한 분석을 통해 몇몇 음차 내용이 달라졌다는 것. 예를 들면 기존 '로스로리엔'이던 번역어는 '로슬로리엔', '앙그반드'는 '앙반드'로 변경되었다. 그 밖에 기존에 번역하지 않았던 번역어들을 새로 번역하기도 했고, 다량의 번역어들이 더 정확히 교정되었다.

7. 타 매체의 유사 번역 사례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게임들의 번역이 있다.


[1] 서두가 긴데, 번역지침 내용 자체를 보고 싶다면 링크된 글 4번 항목부터 읽으면 된다. [2] 물론 비공식 번역은 존재. [3] 일단 이 문서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단순히 번역지침이라고 하면 위에서 본 '반지의 제왕의 명명법' 문서만을 가리킨다. [4] 톨킨은 이 맥락에서 당시 인공언어의 대표격인 에스페란토를 비판하기도 했다. [5] 톨킨이 가장 공들여 만든 신다린 등 요정어들은 이에 따라 초기~후기의 언어변천, 지역별, 국가별 방언이 마치 실제 언어처럼 각각 별도로 설정되어 있다. 다만 그 외 언어들, 즉, 난쟁이어나 아두나익(누메노르어) 등의 언어들은 기본적인 창작은 되어 있어도 실제로 모든 변천 양상까지 다 창작하지는 못했다. [6] 무슨 소린지 잘 감이 안 잡힌다면,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생각해보면 된다. 여기선 아예 역자라고 자칭하는 작가가 각주의 형식을 빌려 열심히 우긴다(...) [7] 모리아의 서부공용어 '원어'는 푸루나르기안Phurunargian으로, 난쟁이들의 광산이라는 의미이다. 이 서부어 '원어'를 '번역'한 단어가 드워로우델프Dwarrowdelf이고, 이 단어는 서부어이므로 번역지침에 수록되었다. 참고로 톨킨은 푸루나르기안이라는 단어가 고어적 특성이 남아 있는 단어라고 설정해서 '번역'할 때에도 현대 영어가 아니라 고어적인 형태로 번역, Dwarrowdelf를 사용하였다. 여기의 Dwarrow가 현대영어의 Dwarf와 대응되는 단어이다. [8] 소설 내에서는 영어로 번역되어 영어 단어의 형태로 등장한다. [9] 분량이 길긴 하지만 위에서 말한 설정상의 상황에 대해 아주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10] 출처는 반지의 제왕 부록과 미번역도서 HoME. 아래 링크된 해설F에 대한 글에서는 이러한 이름들에 대한 추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다만 마우라, 라빙기, 빌바 등의 이름 각각이 반지의 제왕 부록에서 제시되지는 않는다. [11] stride가 성큼성큼 걷다는 뜻이고 -er이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므로 [12]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설정상 요정들이 '임라드리스'라고 부르는 곳을 서부어로는 '카르닝굴'이라고 불렀고, 서부어(의 샤이어 방언) 구사자였던 프로도는 이것을 원어로 '임라드리스'라고도 적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카르닝굴'이라고 붉은책에 적은 것이다. 톨킨은 이 '카르닝굴'이라는 서부어를 '리븐델'이라는 영어로 번역했다고 주장한다. [13] 번역지침에 수록된 Corsair는 영어단어로는 (주로 지중해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을 일컫는 보통명사이므로 굳이 번역지침에 실려 있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반지의 제왕 내에서는 하라드의 해적들을 일컫기 때문에 고유명사적인 기능을 한다. Enemy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모르도르, 혹은 사우론의 세력을 칭할 때의 경우를 주로 상정하므로 고유명사적인 성격을 갖는다. [14] 호빗들의 언어가 서부어와 통하기는 하지만 서부어의 옛 흔적이 많이 남은 방언이라는 것까지는 알 수 있다. [15] 그렇다고 고유 명사를 모두 음차한 건 아니고, 명확하게 영어 단어인 고유 명사 등은 번역되기도 했다. 고유 명사 번역에 대해서는 링크 참조. [16] Elf와 Dwarf는 번역지침의 항목으로 실려 있지 않고, 영어를 전적으로 해당 언어로 번역하라는 번역지침의 지시에 따라 번역된 단어들이다. 반면 Orc는 번역지침의 항목으로 별도로 실려 있으며, 유지하라고 되어 있다. [17] 은근히 영어 철자와 한국어본 표기가 유사해서 그냥 영어를 조금 이상하게 음차한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 두 말의 이름은 로한어 원어의 발음을 옮긴 것이다. 번역지침에서는 Shadow/fax, Snow/mane으로 나누어 번역하거나, 로한어 원어를 음차하라고 되어 있으며, Scadufax와 Snawmana라는 '로한어 원문'이 주어져 있다. 로한어는 서부공용어의 고어적 특징이 다수 남아 있는 언어로 설정되었으며, 톨킨은 서부 공용어를 영어로 옮겼듯이 로한어를 고대 영어로 '옮겼다'. 즉, 로한어는 고대 영어로 표현되었으며, 로한어 원문이라고 주어진 단어들은 현실의 고대 영어식 조어법으로 만들어진 단어들이다. 이것을 톨킨이 다시 현대 영어로 번역한 것이 소설 원문에 등장하는 Shadowfax와 Snowmane이 된 것이다. 따라서 번역한다면, 자신이 했던 것처럼 그 의미를 그대로 옮기거나, 아니면 그 '원문'을 발음 그대로 옮기라고 선택지를 주었다. 그래서 '섀도팩스', '스노메인'이 아니라 ' 샤두팍스', '스나우마나'가 된 것이고, 만일 번역하는 쪽을 선택했다면 '그림자갈기', '눈갈기' 정도로 번역되었을 것이다. 톨킨은 로한어와 관련한 항목에서는 고대 영어와 관련이 깊은 게르만계 언어들에서는 자신이 했던 것처럼 번역하는 편을 더 선호해서 따로 강조해 두었지만, 강제하지는 않았다. [18] 드워프를 난쟁이로 번역한 데 대한 불호를 나타낸 것으로, 호빗은 호빗이라고 번역했으면서 드워프는 왜 자의적으로 난쟁이라고 번역했냐고 따지는 맥락이었다. [19] 참고로 포르투갈에서 1965년도에 처음 호빗이 번역되었을 때, O Gnomo라고 번역되었다. 앞서의 의견처럼 '조금 다른 난쟁이'로 번역한 셈인데, 톨킨은 이 번역에 대해 대단히 적절하지 못하다고 여긴 바 있다. 번역지침이 작성되기 이전의 번역본이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후 포르투갈 번역본은 O Hobbit으로 다시 번역된다. [20] 이 부분은 번역에 있어서 직역과 의역의 범주와도 맞닿아 있다. [21] 예를 들어 Shire 샤이어의 경우, 번역지침에 항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단어 해설과 함께 '적절히 번역하라(translate it by sense)'라고 되어 있고, 씨앗사판이나 아르테판에서는 따로 번역어를 만들지 않고 음차하여 번역되었다. 여러 유럽 출판본에서는 각국어로 번역되었지만. [22] 톨킨은 호빗들의 설정에 굉장히 공을 들였고, 반지의 제왕 부록에는 이렇듯 거의 설정상으로만 등장하는 호빗들의 가계도들이 다수 등장한다. [23] 덧붙이자면 머리카락을 fair라고 부를 때에는 금발이라는 의미도 있고, Fairbairn이라는 가문명은 엘라노르가 금발인 것과도 연관이 있다. 그러나 톨킨은 영어 독자들을 대상으로는 금발의 의미도 염두에 뒀다고 해설했지만, 다른 언어에서까지 '금발'의 의미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24] 샤이어에 흐르는 강으로, 브랜디와인 강의 지류이다. [25] 북이십일 번역본에서는 그나마 물의 고어 형태를 반영해서 믈강이라고 변경되었다. [26] 앞의 것은 골목쟁이네, 뒤의 것은 검산오름이 대표적 대상이었다. [27] 그것도 설정 논쟁이 벌어질 때 가장 큰 권위를 갖는 톨킨 자신의 1차적 저작이다. [28] 참고로 황금가지판도 구하려고 하면 중고서점 등의 경로로 구하기는 쉽다. 아직까지는. [29] 반지의 제왕 번역자들은 90년대 예문판부터 번역을 맡았고, 황금가지판은 다른 역자가 담당했지만, 씨앗사, 그리고 최신판인 아르테판까지 거의 30년을 반지의 제왕 번역을 맡은 사람들이다. [30] 다만 Middle-Earth라는 단어의 기본적인 모티브라고 생각할 수 있는 미드가르드나 기타 판타지에서 등장하는 '중간계'들의 경우, 여러 '세계' 중 하나, 또는 천상계와 지옥계 등의 가운데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세계를 의미하는 '계'가 포함되어 번역되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다. [31] 물론 '아시아계 언어 등 모든 언어들을 다루는 언어학 일반' 쪽이 아니라 언어학 자체보다도 '영어학'과 '영문학'이 주요 분야지만, 아시아계 언어들의 존재와 특성을 몰랐을 리는 없다는 것. [32] 톨킨은 스스로가 호빗의 삽화를 그리고 반지의 제왕의 표지를 디자인하는 등, 자신의 작품에 관한 그림도 나름 잘 그렸다. 이 맥락에서 번역본들의 내용뿐만이 아니라 삽화에 관해서도 평한 사례가 다수 있다. [33] 톨킨은 호빗들의 이름을 짓는 데 설정을 덧붙이는 등 상당히 공을 들였으며, 그만큼 번역지침에 있어서도 번역하는 대상 항목들로 많이 수록되었다. [34] 단 레젠다리움 내에서는 elf와 fairy는 동의어로 쓰인다. [35] 단, Fairy라는 단어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편적인 설정이지만, 호빗들의 구전에 등장한다고 설정되어 있고, 일반적으로 Elf를 호빗들이 가리키는 다른 단어로 생각된다. [36] Dwarf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37] 간단하게만 말하자면 발음의 편의를 위한 것이다. 'leafs리프즈'보다는 'leaves리브즈'가 조음위치상 발음하기에 더 쉽다. [38] 트롤의 톨킨 이전 모습에 관해서는 겨울왕국에서의 트롤들이나 무민의 트롤들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39] 양산형 작품들에서의 고유명사들은 앞서 봤듯 한편으로는 무분별한 외래어/영어 음차와 다른 작품들의 설정을 그대로 옮겨 적는 등 이와는 정반대로 문제가 되는 경우들도 많았다. [40] 호빗들은 모험을 싫어하며 목가적이다. 어찌 보면 우물 안 개구리들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격. [41] 위 번역지침 원문 링크 baggins 항목에서 발췌번역. 따옴표, 괄호, 등호 모두 원문을 따랐다. [42] 아예 프랑스어 번역에서 Bag-end는 Cul-de-Sac으로 번역되었다. [43] 톨킨의 어머니의 여동생 에밀리 제인 니브. 결혼 전 성은 서필드. [44] 참고로 Bag-end는 씨앗사본과 북이십일본에서 골목쟁이집으로 번역되었다. [45] 배긴스 집안과 친척인 색빌 배긴스(Sackville Baggins) 집안의 경우에도 Sack 부분을 반영하여 번역하라고 되어 있고, 이에 따라 자룻골 골목쟁이네라고 번역되었다. [46] 물론 영화를 찍을 때 상당히 신경 써서 발음을 지도하지만, 아무래도 설정을 모르고 보면 그냥 영어 단어로 보이기 때문에 틀리기 쉽다. 같은 맥락에서, 진성 톨키니스트였던 크리스토퍼 리의 경우에는 발음을 틀리는 경우가 없다. [47] 다른 작품들에서의 예시와 비교해 보면, 헤르미온느(Hermione)는 영어 이름을 번역가가 잘못 읽은 것으로 오역이 맞지만, 아라고른(Aragorn)은 요정어 이름이므로 영어식이 아니라 요정어식으로 읽은 아라고른이 맞는 번역어다. [48] 이 맥락에서 알파벳 발음법에 있어 고정관념이 비교적 적은 비영어권 독자들이 오히려 톨킨이 의도한 발음과 더 가깝게 읽을 수도 있다. [49] 사실 톨킨이 남긴 육성을 들어 보면 톨킨도 스스로의 설정을 완벽하게 지켜서 발음하지는 못했다. [50] 가운데땅의 역사서는 실마릴리온과 반지의 제왕의 설정집들이므로 일부는 반지의 제왕의 시기를 다루고, 일부는 실마릴리온의 시기를 다룬다. [51] 사실 독일어에서는 Shire에 대응하는 단어로 Gau가 있었지만, 나치 정권에서 일부 점령지 행정구역명을 Reichsgau라고 쓰는 바람에 번역할 때 사용할 수 없었다. 톨킨도 이 단어를 잘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치가 망쳐 놓은 단어라고 언급했고, 독일어 번역가도 동의해서 별도의 번역어를 선택해야 했다. 한편 네덜란드어에서의 Gouw는 당연히 같은 계통의 단어이고, 톨킨은 네덜란드어 번역본에서 이 번역어를 승인한 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