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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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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52a2a><colcolor=#ffffff> 최한기
崔漢綺
파일:혜강최한기.jpg
혜강(惠岡), 패동(浿東), 명남루(明南樓), 기화당(氣和堂)
출생 1803년( 순조 3) 10월 26일
경기도 개성부
사망 1877년( 고종 16) 6월 21일 (향년 73세)
한성부 남촌 송현계
(現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본관 삭녕 최씨
분야 실학, 과학 등
주요 활동 집필, 연구
종교 유교( 실학)
가족관계 아버지 최치현
어머니 청주 한씨
배우자 반남 박씨
장남 최병대

1. 개요2. 생애3. 사상4. 저서

[clearfix]

1. 개요

조선 후기의 유학자, 실학자. 일생을 진사 신분에 머물러서 중앙 관직에는 진출한 적 없지만, 서양의 과학 기술을 받아들여 지구전요, 지구전후도, 기측체의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2. 생애

1803년 경기도 개성부에서 최치현과 청주 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삭녕. 개성 출신이지만, 양부인 숙부 최광현을 따라 정착한 이후 쭉 서울에서 살았다. 본가와 외가는 여러 대에 걸쳐 개성에서 거주한 집안이었고, 최한기 또한 개성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최한기 집안은 조선 전기 문신인 최항(崔恒, 1409~1474)의 후손으로 되어 있는데 직접적인 혈손은 아니다. 직계 조상들 중에서는 그의 증조부인 최지숭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문무과는 물론이고 생원진사시에도 합격자를 배출하지 못한 한미한 가문이었다.

부친인 최치현은 효성이 지극하고 글을 잘해 영락한 삭녕 최씨 가문을 일으킬 재목으로 일찍이 촉망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응시에 번번이 낙방하여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게다가 부친인 최치현은 최한기가 10세 때인 1812년 2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부친의 사망 당시 최한기는 큰집 종숙부인 최광현의 양자로 이미 입양된 상태였다.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던 본가에 비해 양가(養家)는 무관 집안이었다. 양부 최광현은 1800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지방 군수를 지내기도 했다. 많은 책을 소장하고 거문고도 켤 줄 아는 교양있는 인물이었던 최광현은 최한기의 외조부인 한경리를 비롯하여 한경의·김천복·김헌기 등 개성 지역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만년을 보냈다. 최한기가 친부와 양부 양쪽에서 쌓은 학문적 바탕은 훗날 저술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이후 최한기는 1825년에 생원에 급제하였지만, 벼슬길에는 뜻이 없었는지 문과에는 응시하지 않았고, 대신 그의 아들 최병대가 186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왕의 시종신이 되었다.

1834년 김정호와 함께 남촌 창동(現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의 자택에서 세계지도인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를 판각한다. 비록 과거에는 오랫동안 진출하지 못한 한미한 선비였지만, 집안의 경제력이 받쳐준 덕에 저술과 연구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또한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이동인 등과 통상 개화론자로서 개화파를 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1860년대 이후부터는 생활고가 심해져 말년에는 귀중한 책이 저당잡힐 정도로 어려운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3. 사상

최한기의 학문세계는 유교적 전통에서는 극히 드물게 강한 경험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맹자가 인간의 본유적(本有的, 내면에서 가지고 있는 것)인 것 이라고 규정한 인의예지조차 경험으로 얻게 되는 습성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앎이란 선천적이 아니라 후천적 경험을 통하여 배워 얻어지는 것이다. 또, 경험이란 경험의 주체인 인간의 마음과 경험의 대상, 그리고 이들 둘을 맺어주는 감각기관이 있어야 가능하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근간이었던 이기이원론에 따르면 천지의 만물은 모두 같은 기(氣)를 받아 서로 다른 질에 따라 서로 다른 신기(神氣)를 갖게 된다. 사람마다 신기가 서로 다른 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공통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서로 이해할 수가 있다. 최한기는 덧붙여 이런 신기의 만남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때 한 사람의 신기를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에 통해주는 것이 그의 감각기관이다. 즉, 인간은 눈·코·입·귀 등의 감각을 통해 경험을 쌓음으로써 그의 신기를 더욱 밝혀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한가지보다는 둘 또는 그 이상의 감각경험을 통하여 확인된 지식일수록 그 확실성이 높아진다. 이들 감각의 감각경험을 그는 이통(耳通, 듣는 것)·목통(目通, 보는 것)·구통(口通, 맛보는 것)·수통(手通, 만지는 것) 등으로 부르고, 보강된 경험을 주통(周通)이라 불렀다.

인간은 경험과 그것이 쌓여진 기억을 바탕으로 자기 생각을 확장하여 갈 수 있다. 이 과정이 추측이다. 귀납법과 연역법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그의 추측법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기를 바탕으로 이를 추측하는 것, 정(情)의 나타남을 미루어 성(性)을 알아내는 것, 움직임을 보고 그 정지상태를 알아내는 것, 자기자신을 미루어 남을 알아보는 것, 물을 바탕으로 일을 짐작하여 아는 것 등이다.

그의 경험론적 방법론이 얼마나 서양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서양의 역산(曆算)과 기학(氣學), 즉 과학적 방법론을 크게 중요시하면서 서양의 과학기술 도입에 적극적이었다. 그의 학문방법을 설명한 추측록(推測錄)·신기통(神氣通)이 이미 많은 서양과학의 예를 들어 그의 논지를 펴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뒤의 저술이 모두 서양학문을 소개하려는 노력으로 일관되어 있다.

4. 저서



[1] 추측록과 신기통의 합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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