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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劉鴻基(1831 ~ ?)
조선 말기의 개화 사상가이자 의관(醫官)이다. 호는 대치(大致)이다.
2. 생애
박규수, 오경석, 최한기와 함께 개화 사상가이자 통상 개화론자였다. 오경석과는 친한 친구였으며 박규수와도 친분이 있었으나, 박규수와 오경석이 1876년, 1879년에 세상을 떠나자 홀로 개화론을 이끌며 주로 급진 개화파에게 영향을 주었다.[1] 중인에 의관 출신이었으나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서광범, 유길준, 윤치호, 이시영, 홍영식, 박정양 등 젊은 양반 자제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고도 불렸다.1884년에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오경석의 아들인 오세창과 함께 파주로 피신하였다가 4일 뒤에 가출하였으며,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 않으며, 갑신정변이 실패한 이후에 개화파가 닥치는 대로 학살당할 때 변을 당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3. 대중매체에서
[1]
박규수와 오경석, 최한기의 생전에는 아직 개화파가 급진파와 온건파로 나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