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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21:56:29

최상덕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 <tablebordercolor=#c30452>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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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3 김일경 · 80 박경완 · 81 김정준 · 83 정수성
· 85 염경엽 [[틀:LG 트윈스 감독|
]] · 93 장진용 · 94 김재율 · 97 모창민
· 99 김광삼 · # 송지만'''
2군
'''71 김경태 · 75 김용의 · 76 윤진호 · 79 손지환
· 82 최경철 · 86 신재웅 · 89 양원혁 · # 이병규 [[틀:LG 트윈스 2군 감독|
]]'''
잔류·재활군
67 이종운 · 77 정주현 · 78 양영동 · 92 최상덕
트레이닝 파트
69 양희준 · 87 안영태 · 88 김용일 · 91 이권엽
· 95 고정환 · 96 배요한 · 98 박종곤
· 유현원 · 최재훈 · 김종욱
인스트럭터
퓨처스 황병일
프런트코칭스태프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 군 입대 선수 등록 선수 육성선수 1군 엔트리
다른 KBO 리그 팀 명단 보기 }}}}}}}}}
최상덕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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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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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2007년
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신현석 (1) (2) {{{#!folding (6명) 강영수
이광근 (1)
최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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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박원진 (1)
이경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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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범
박은진
여태구
허정욱
김형주 (1)
윤형석 (1)
최광천
김경기
전일수
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정민태 김홍집 최상덕 위재영 최원호
{{{#!folding (고졸)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최영필{{{#!folding (고졸) 고호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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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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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설의석
2002년 이후 연고지 문제로 1차 지명에서 제외
조순권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년도 (1라운드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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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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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 1982 1983 1984 1985 1986
방수원 주동식 이상윤 김용남 강만식
<rowcolor=#000> 1987 1988~1992 1993 1994 1995
김정수 선동열 김정수 이강철 조계현
<rowcolor=#000> 1996 1997 1998 1999 2000~2002
김정수 이강철 이대진 곽채진 최상덕
<rowcolor=#fff> 2003~2005 2006 2007 2008 2009
리오스 김진우 윤석민 리마 윤석민
<rowcolor=#fff> 2010 2011 2012 2013 2014
로페즈 윤석민 서재응 소사 홀튼
<rowcolor=#fff> 2015~2016 2017~2018 2019~2020 2021 2022
양현종 헥터 양현종 브룩스 양현종
<rowcolor=#fff> 20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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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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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00> 1982 1983~1984 1985 1986 1987
이길환 하기룡 정삼흠 오영일 김건우
<rowcolor=#ffff00> 1988 1989 1990 1991 1992
김용수 김기범 최일언 김용수 김기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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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이상훈 김용수 손혁 해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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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덕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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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0번
박지훈
(1993)
<colcolor=#ffffff> 최상덕
(1994~1995)
양윤기
(1996~1997)
해태 / KIA 타이거즈 등번호 34번
유남호
(1990~1995)
최상덕
(1996~2005)
김진우
(2006~2007)
LG 트윈스 등번호 34번
김광우
(2003~2005)
최상덕
(2006)
오승준
(2007)
SK 와이번스 등번호 19번
최준원
(2005~2006)
<colbgcolor=#ff6600> 최상덕
(2007)
백청훈
(2008~2009)
SK 와이번스 등번호 34번
조형식
(2005~2007)
최상덕
(2008)
최길성
(2009~2009.7.3.)
한화 이글스 등번호 59번
최진호
(2007~2008)
최상덕
(2009)
김재우
(2010)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83번
김종수
(2008)
최상덕
(2010~2011)
김수경
(2013)
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74번
정명원
(2008~2011)
최상덕
(2012~2016)
조재영
(2017~2021)
SK 와이번스 등번호 74번
박진만
(2016)
최상덕
(2017~2020)
조원우
(2021~2024)
LG 트윈스 등번호 92번
홍순범
(2023)
최상덕
(2024~)
현역
}}} ||
}}} ||
파일:24LG 재활군 투수코치 최상덕.png
<colbgcolor=#c30452><colcolor=#ffffff> LG 트윈스 No.92
최상덕
崔尙德 | Sang-Duk Choi
출생 1971년 3월 31일 ([age(1971-03-31)]세)
경기도 인천시 남구
(現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인천숭의초등학교 (졸업)
동인천중학교 (졸업)
인천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 / 학사)
신체 189cm, 98kg[1]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4년 1차 지명 ( 태평양)
소속팀 태평양 돌핀스 (1994~1995)
해태- KIA 타이거즈 (1996~2005)
LG 트윈스 (2006)
SK 와이번스 (2007~2008)
한화 이글스 (2009)
지도자 넥센 히어로즈 육성군 코치 (2010)
넥센 히어로즈 1군 불펜코치 (2011~2012)
넥센 히어로즈 1군 투수코치 (2013~2014)[2]
화성 히어로즈 투수코치 (2014~2016)[3]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17)
SK 와이번스 1군 불펜코치 (2018~2019)
SK 와이번스 1군 투수코치 (2020)[4]
SK 와이번스 PDA 투수코치 (2020)[5]
인천고등학교 야구부 인스트럭터 (2021~2023)
LG 트윈스 재활군 투수코치 (2024)[6]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24)[7]
LG 트윈스 잔류군 투수코치 (2024~)[8]
등장곡 SK 와이번스 시절
MC몽 - 허클베리 몽의 모험
종교 가톨릭[9]
가족 배우자 김민선, 딸 최솔기, 아들 최륜기[10]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피칭 스타일5. 연도별 주요 성적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해태- KIA 타이거즈,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소속 우완 투수. 現 LG 트윈스 코치.

1차 지명으로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하였고 첫해부터 인상 깊은 활약을 보이다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다. 팀이 쇠락하던 98년부터 선발투수로 활약하였고, 팀이 KIA 타이거즈로 인수 되기 직전인 2000 시즌의 에이스였다.[11] 그래서 여러 팀을 거쳤지만 사실상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여겨진다.

2. 선수 경력

2.1. 태평양 돌핀스

인천숭의초, 동인천중, 인천고, 홍익대 교육학과(90학번)를 졸업하고 1994년 1차 지명을 받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하였다. 입단 첫 해부터 13승 9패 1세이브를 거두면서 태평양 돌핀스 1994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12] 1995년 6월 25일 한화전에서 장종훈의 타구에 얼굴을 맞는 부상을 당해 0승 4패로 시즌을 마감하였다.[13][14]

2.2. 해태- KIA 타이거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00423185340132A3.jpg

1995 시즌 후 박재홍의 신인 지명권과 트레이드되어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해태 타이거즈는 199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광주일고 박재홍을 1차 지명했고 지명권 보유 기간 제한이 이 시절만 해도 없어서 박재홍의 지명권은 여전히 해태가 쥐고 있었다. 원래 박재홍은 1992년에 당시로선 드물게 고졸신분으로 해태의 1차 지명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연세대에 진학했다. 뭐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다수가 대학으로 진학하지, 고졸 입단이 흔하진 않았으니 그러려니 했지만 연세대 졸업 이후에도 해태 입단을 거부하고 현대 피닉스로 선회하는 꼼수를 부렸다. 신생팀 현대 유니콘스는 당시 실업야구 현대 피닉스에 입단한 박재홍을 데려오기 위해 최상덕을 해태에 내주고 박재홍의 지명권을 얻어 온다. 현대 유니콘스는 롯데 자이언츠의 전준호를 데려오기 위해 현대 피닉스에서 뛰던 문동환이 롯데 자이언츠로 가려고 하자 전준호를 롯데에서 받아오고, 유니콘스는 롯데에 현금(5억원)을 주고, 롯데는 문동환에게 계약금을 지급하고, 문동환은 그 계약금으로 피닉스와의 계약을 해지하는 편법을 동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레이드 맞상대 대상이었던 박재홍과 최상덕은 훗날 KIA와 SK에서 두 번이나 같이 뛰게 된다.

이적한 첫 해에는 팔꿈치 부상까지 겹쳐 시즌을 마감할 정도로 부침이 심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최상덕이 술회하기를 당시 해태 구단에서 부도 직전의 어려운 구단 사정에도 불구하고 최상덕을 미국으로 보내 수술을 시켜줄 정도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결론적으로 해태 구단의 기대에 부응했다. 지금도 최상덕은이 부분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1998년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해태- KIA 타이거즈에서 2005년까지 계속 뛰었으며, 해태의 마지막 에이스로 활약했다. 1996~1997 2시즌 동안 부상 때문에 누웠던 그는 98년 8승2패 ERA 4.25로 이강철- 이대진에 이은 팀의 실질적 3선발[15]을 맡으며 화려하게 복귀한다.

실질적인 전성기도 해태 말기 ~ KIA 타이거즈 시절로, 99년 7승5패 5점대의 평균자책점으로 숨을 고른 그는 2000년, 2001년, 2003년에는 두자리수 승리를 올렸을 정도로 2000년대 초창기 타이거즈의 암흑기 때 굳건히 마운드를 지킨 에이스였다. 특히 2000년~2001년은 2년 연속 185이닝 이상, 완봉 1위 완투 1위를 기록하면서 이닝 이터의 면모를 보였고, 당시 부실했던 타이거즈 투수진의 든든한 기둥으로서 활약했다. 2002년에는 8승에 그치긴 했지만 그 해 LG와 맞붙었던 2002 플레이오프 3차전 완봉승은 그의 활약이 최고조에 올랐던 때였다. 타이거즈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당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 보면 광주에 너무 오래 살아서 어린 딸이 서남 방언을 써서 고민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으니 사실상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밝힌 또 다른 에피소드로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밝힌 바로는 최상덕이 가끔 훈련을 하러 광주일고에 오곤 했는데 나중에 SK에 뛸 때 김성현이 최상덕을 학교 선배로 착각했는지 '선배님 저 (광주)일고 나왔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16]

누적성적은 분명 박재홍과 비교하면 뒤지지만[17], 팀의 승리를 책임지면서 180이닝 먹어주는 에이스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잘 알테니 사실상 해태와 현대는 윈-윈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박재홍이 남긴 성적이 너무 화려한데다가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서 타이거즈가 이익을 본 부분이 묻힌 감이 없지는 않다.

80년대~90년대 중반과는 달리 외국인 타자들이 들어오면서 타력이 크게 향상된 시기에 완투를 하면서 135구는 기본으로 던졌다.[18] 그게 전성기가 길지 않았던 이유가 되었다. 완투의 제왕이라는 왕관이 몇년후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2.3. LG 트윈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60622195523007.jpg

그러나 그 동안 혹사의 여파로 2004 시즌 평균자책점 12.89, 2005 시즌 6.02를 찍으며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했다. 결국 그 해 말에 마해영, 서동욱과 묶여서 LG 트윈스 트레이드되었다.[19]

최상덕은 이순철 감독에 의해 개막전 선발투수가 되었으나, 인상 깊은 모습을 남기지 못하고 한 시즌만 뛴 뒤 LG에서 방출됐다.

2.4. SK 와이번스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80311171510020.jpg

2007 시즌을 앞둔 상태에서 다시 고향 팀 SK 와이번스로 이적하였다.[20] 그러나 여기서도 2008 시즌 후 방출당한다.

2.5. 한화 이글스

이후 2009년에는 삼성 라이온즈와 입단 테스트를 벌였지만 장원삼 현금 트레이드 발각 여파로 모 기업에서 외부 영입을 삼가라는 지시가 내려온 데다 최상덕 본인의 디스크로 인해 무산되었다.[21]

우여곡절 끝에 한화 이글스에 종착하게 된다. 그러나 팀을 잘못 만났을까? 재활 공장장이었던 김인식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8경기 0승 0패 ERA6.75로 2009년 7월 8일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 당하고 만다. 그리고 은퇴.

3. 지도자 경력

3.1. 넥센 히어로즈

파일:attachment/최상덕/1363851181_player_photo.jpg

2010년이 되자 넥센 히어로즈의 육성군 코치로 합류하여 지도자로 첫 발을 내딛었다. 2012년 1군 불펜 코치로 승격하였다가 시즌 종료 후 정민태 투수코치가 사임함에 따라 그 자리를 맡게 되었다.

2013년 9월 15일 마무리 투수 역대 4번째 시즌 40세이브에 성공한 손승락이 기술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멘탈적인 부분에서 최상덕 코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기사

그러나 2014년 4월 9일 시즌 개막 후 계속되는 1군 투수진의 단체 방화에 책임을 지고 2군 투수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22] 이후 수석코치 이강철이 투수코치를 겸직하다가 육성군의 류영수 투수코치가 1군으로 보직이 변경된다.

3.2. SK 와이번스

2016 시즌이 끝난 후 SK 와이번스의 1군 투수코치로 선임되면서 이적한다. 이후 손혁 SK 와이번스의 1군 투수코치로 영입되면서 1군 불펜코치로 이동했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SK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선수 시절 끼어보지 못했던[23]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코치로서 끼게 됐다. 우승 당시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러다 손혁이 2019 시즌 후 키움 히어로즈 감독으로 가면서 다시 1군 투수코치로 되돌아왔다. 그렇지만 SK가 하위권을 해매면서 2군 투수코치로 강등당했고, 최창호가 1군으로 올라왔다.

결국 2020 시즌 후 구단에 자진 사퇴의사를 밝히고 물러났다. SK에서 나온 후 원광대와 모교인 인천고등학교 야구부의 투수 인스트럭터로 있었다.

3.3. LG 트윈스

2023년 11월 28일, LG 트윈스의 코치로 영입되며 지난 2006년 이후 17년 만에 다시 LG 유니폼을 입어보게 되었다. 과거 넥센과 SK 시절 감독-코치로서 함께했던 염경엽 LG 감독과의 인연으로 영입된 듯하다. 보직은 재활군 투수코치.

그리고 김경태 코치가 건강문제로 2군으로 내려감에 따라 1군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8월 29일 잔류군 투수코치로 보직이 변경 되었다.

4. 피칭 스타일

파일:최상덕투구폼.gif
[24]
피칭 스타일을 보면 초구에는 패스트볼로 스트라이크를 잡고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는 체인지업, 혹은 슬라이더를 던지는 편. 최고구속 148km, 평균 142km정도였고, 슬라이더의 구속은 130km대로 형성된다.

현대 ~해태 시절에는[25] 키킹을 할때 최동원처럼 왼발을 아주 높게 드는 것으로 유명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93>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4 태평양 36 158 13 9 1 0 0.591 2.51 123 9 63 90 45 44 1.152
1995 10 29⅓ 0 4 0 0 0.000 8.28 42 5 18 17 27 27 1.977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6 해태- KIA 4 9⅔ 0 2 0 0 0.000 9.31 20 1 4 4 12 10 2.379
1997 1군 기록 없음
1998 30 97⅓ 8 2 1 0 0.800 4.25 105 15 33 56 49 46 1.377
1999 29 121⅔ 7 5 1 0 0.583 5.33 123 27 46 73 82 72 1.340
2000 30 185⅔
(5위)
12 9 0 0 0.571 4.56 193 28 73 136
(5위)
102 94 1.373
2001 29 185⅓
(3위)
12 10 0 0 0.545 4.32 179 20 74 106 98 89 1.311
2002 24 133 8 7 0 0 0.533 4.47 150 23 37 79 79 66 1.376
2003 22 126⅓ 11 5 0 0 0.688 3.56 128 16 43 63 53 50 1.314
2004 5 14⅔ 1 2 0 0 0.333 12.89 28 4 13 10 22 21 2.727
2005 24 61⅓ 1 5 2 2 0.167 6.02 71 8 32 48 44 41 1.549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6 LG 9 45 2 5 0 0 0.286 4.80 52 7 14 23 28 24 1.400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7 SK 4 8⅓ 0 0 0 1 0.000 12.96 19 3 4 8 12 12 2.760
2008 14 14 0 0 0 1 0.000 1.93 13 0 1 5 3 3 1.000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9 한화 8 10⅔ 0 0 0 0 0.000 6.75 14 1 1 9 8 8 1.406
KBO 통산
(16시즌)
278 1200⅓ 75 65 5 4 0.536 4.55 1260 167 456 727 664 607 1.380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94년 2완투 1완봉
1999년 2완투 1완봉
(2위)
2000년 6완투
(1위)
1완봉
(1위)
2001년 8완투
(1위)
3완봉
(1위)
2002년 1완투 0완봉
2003년 2완투
(4위)
1완봉
(3위)
KBO 통산 21완투 7완봉

6. 여담

7. 관련 문서



[1] 네이버 프로필 기준 [2] ~4월 8일 [3] 4월 9일~ [4] ~8월 2일 [5] 8월 3일~ [6] ~7월 15일 [7] 7월 16일~8월 28일 [8] 8월 29일~ [9] 이 영상에서 좋아하는 노래로 그레고리안 성가를 골랐다. [10] 2019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의 2차 10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나 입단 거부. [11] 때문에 해태의 마지막 에이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KIA 타이거즈가 된 첫 해에도 사실상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KIA의 첫 번째 에이스 투수이기도 했다. 2000~2001 2시즌 연속으로 타이거즈의 시즌 개막전 선발투수였다. [12] 13승 중에서 7승이 구원승이었다. 그러나 158이닝, 평균자책 6위를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신인 선수 치고는 매우 좋은 성적이였다. [13] 장종훈은 특유의 라인 드라이브성 타구로 유명했는데 장종훈의 타구에 얼굴을 맞은 또 다른 투수는 김원형이다. 해당 문서 참조. [14] 이후 2012시즌에 KBS N SPORTS에서 방영된 KBO 30주년 레전드 다큐멘터리 장종훈 편의 인터뷰 중에서 "코치님 이거 제 이빨이 아닌 거 아시죠?"라는 멘트를 했었다. [15] 임종 직전인 1998 시즌의 김상진은 ERA는 좋았지만 6승 11패로 승운이 없었다. [16] 인천고 출신이라 '인고' 나왔다고 주변에 이야기했는데, 타이거즈에서 오래 뛰다보니 '(광주)일고'나온 걸로 사람들이 이해했다고 한다. [17] 박재홍은 96, 98, 00년에 30홈런 - 30도루를 하면서 유니콘스의 우승 2회, 준우승 1회에 큰 공을 세우고 신인왕을 받을 정도였다. [18] 그보다 타자 실력이 향상됐다고 쳐도 매번 120구 넘게 던진거나 다름없다. [19] 반대급부로 넘어온 선수는 장문석, 한규식, 손상정이다. 물론 이 트레이드는 루즈 - 루즈였으며, 그나마 모든 포지션이 가능한 서동욱을 오래 백업으로 써먹다가 포수와 바꿔치기 한 LG가 근소한 이익을 봤다고 볼 수 있다. [20] 이 당시 KIA 타이거즈에서도 재영입 제의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타이거즈의 에이스 소리를 듣다가 무너져서 돌아가는게 마음도 좋지 않았고, 자존심도 상했다고 한다. 그렇게 KIA의 영입제의를 거절하고 만다. 선수 본인이 타이거즈 시절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또 KIA 팬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 [21]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은 베테랑 투수를 선호해서 그 전 해에는 최상덕의 동기인 이상목(당시 38살)을 자유계약선수로 데려왔고, KIA 시절에는 또 다른 최상덕의 동기인 최향남(당시 42살)을 데려와서 2년간 잘 써먹었다. [22] 전날 목동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이정훈, 오재영도 함께 강등당했다. 그리고 이정훈은 팔꿈치 때문에.... [23] 신인 시절이던 1994년에는 한국시리즈에 등판했으나 준우승에 머물렀고 해태-KIA 시절에는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다. 현역 말년 시절 고향팀 SK에서 뛰었을 때도 팀은 한국시리즈 2연패에 성공했지만 최상덕은 1군 전력이 아니어서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24] 해당 경기는 2002. 04.16 경기이며, 해당 경기에서 최상덕은 제이 데이비스에게 4회 솔로 홈런 맞은 걸 포함해 6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시즌 2승을 올린다. [25] 대략 99년도까지. [26] 최상덕의 부인도 야구장에 있었으나 아들 최륜기를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27] 선술했듯이 김진우가 최상덕을 굉장히 잘 따르며 롤모델로 삼았고, 최상덕 역시 김진우를 많이 도와주고 멘토로서 잘 지도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