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루추안 |
각본 | 루추안, Succeed Be |
제작 |
자오시앙 루추안 한상핑 |
출연 | 류예, 오언조, 친란, 장첸 외 |
음악 | 리우통 |
장르 | 시대극, 액션 |
제작사 | 차이나 필름 그룹, 스텔라 메가 미디어 그룹, 추안 프로덕션, 폴리페이스 엔터테인먼트 |
개봉일 | 2012년 11월 29일 |
상영 시간 | 135분 |
제작비 | 2000만 달러 |
국내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
1. 개요
원제는 <왕적성연>(王的盛宴)으로 '왕이 주관하는 큰 잔치'를 말한다. 영제는 < The Last Supper>. 초한쟁패기의 인물인 유방과 항우 그리고 한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특히 유방의 인생 회상이 스토리의 주요 뼈대를 담당하며, 후반부에 한신의 회상이 약간 나오고 항우는 제3자의 시점에서 다뤄진다. 감독은 < 난징! 난징!>으로 유명한 루추안(육천). 국내에서는 당시 관객이 10,000명도 되지 않는 등 고전했지만, 초한쟁패기를 다룬 작품들 중 고증 수준이나[1] 내용 면에서 뛰어난 수작이라 할만하다.2. 등장인물
2.1. 주연
-
한신 (
장첸 扮)
별볼일 없는 배경의 출신이지만 유방을 보좌하여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얻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다. 하지만 이런 그의 능력과 처신에 대하여 유방은 두려움을 품는데...
-
항우 (
오언조 扮)
유방 최대의 호적수. 비록 패배하여 갑옷만 남았지만 죽음을 앞둔 유방의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2.2. 조연
-
장량 (
기도 扮)
유방의 모사. 소하처럼 한신과 유방 및 여후의 관계에서 고뇌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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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 (
여율래 扮)
진나라의 마지막 황제. 유방에게 야망의 씨앗을 심는다.
-
우미인 (
곽사연 扮)
항우가 사랑하는 여인.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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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부인 (
하두연 扮)
유방의 첩실. 여후의 변모에 본의 아니게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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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증 (
요택여 扮)
항우의 모사. 처음부터 유방을 경계하고 홍문연에서 죽이려 하나 실패한다. 실제 역사에서 냉철하고 차분했던 것과 달리 본작에서는 괄괄하고 화끈한 성격으로 묘사된다.
-
항백 (
이기 扮)
항우의 삼촌. 유방을 마음에 들어하며 목숨을 살리는데 기여하지만 유방의 의심 및 요주의 대상이 된다.
3. 줄거리
천하를 탐낸 세 남자가 있었다!
항우와 유방, 그리고 한신…세계의 운명을 건 영웅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항우와 유방, 그리고 한신…세계의 운명을 건 영웅들의 전쟁이 시작된다!
3.1. 기
초한쟁패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유방은 악몽을 꾼 후 잠에서 깨어난다. 악몽의 내용은 항우와 한신의 군세를 보고 두려움에 떠는 내용. 이 모습을 척부인이 안쓰럽게 보는 가운데 여후가 의미심장하게 들어온다. 뒤이어 들어오는 소하가 한신을 데려왔다면서 그의 목을 내밀자 유방은 장례를 잘 치러주라고 명령하나 이윽고 유방은 자신을 '패현의 유계(劉季)'[4]라고 지칭하는 조소를 들으며 과거 회상으로 들어간다.과거 유방은 도적 떼와 다름 없는 형제들[5]을 이끌고 설(薛)에 주둔하고 있는 항량을 찾았다. 이유는 고향인 풍읍(豊邑)을 되찾고 아내인 여후를 구하기 위함. 하지만 범증을 위시한 항량 군이 그의 허풍[6]을 비웃는 와중에 갑자기 큰 비가 내린다. 갑분싸의 분위기 와중에 유방이 분위기를 돌려보려 금방 그칠 비라고 하는데 묘하게도 정말 비는 그쳐버린다. 항량은 유방을 죽이라고 명령하고 유방의 부하인 하후영 등은 반항하지만 사지에 몰린다. 하지만 항우가 묘하게도 그를 감싸줬고 항백 역시 재주가 아깝다며 살리자고 하자 항량은 마음을 거두고 유방은 살아난다. 거기에 더하여 갑옷을 받고 군사 역시 지원 받게 된다. 그리고 이 당시 유방의 모습은 천하를 호령하는 항우와 전우가 된 것으로 기뻐하는 소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윽고 장면은 다시 전환돼서 현재 늙은 유방은 기록중인 사관에게 묻는다. 한치의 거짓도 없이 자신의 일을 기록하라고...[7] 다시 과거의 일로 돌아가서 유방은 항우가 준 지원군 덕분에 고향을 되찾고 남편 때문에 감옥에 갇힌 여후 역시 석방시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아내의 모습을 보고[8] 분노하는 찰나 그의 사생아인 유비(劉肥)[9]의 존재를 들키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진나라의 멸망을 위해서 고향을 떠난다. 그리고 애증 관계[10]인 아내가 떠나는 자신을 안쓰럽게 보는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독백한다. 하지만 다시 만났을 때는 한창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다투며 아내는 항우의 포로가 된 상태였고 다시 그녀가 돌아왔을 때 유방은 척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유여의(劉如意)[11] 를 보는 등 어떻게 할지를 모른다. 그리고 척부인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보는 여후의 모습은 후반부 그녀의 모습에 대한 복선이 된다.
3.2. 승
과거를 돌이켜보며 힘없이 누워 있던 유방은 번쾌, 소하, 장량 등의 신하를 만난다.[12] 뒤이어 그가 언급한 사람은 천하통일의 1등 공신 한신. 한신은 영화상으로 통일된 직후 유방의 의심을 받아 수감돼서 갇힌지 6년이 지난 상황이었다. 유방은 한신에게 역심을 왜 품었는가를 묻지만 오히려 한신은 논리적으로 반박하며[13] 오히려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 용의 아들인 유방을 어떻게 이기겠냐고 그의 아픈 곳을 자극한다.[14] 이에 분노하지만 유방은 그를 죽이지 않고 장량이 집으로 데려가 감시토록 한다. 그리고 다시 궁궐로 돌아오던 유방은[15] 먼 옛날 그가 천하에 대한 야심을 품었던 때를 회상한다. 강소성 출신의 정장(亭長)[16]인 그가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정복한 모습, 구중궁궐 가운데서 보잘 것 없는 자신의 신상을 볼 수 있는 등 천하를 손에 쥔 자의 권력, 그리고 궁궐을 거닐며 왕후장상 영유종호를 외치던 모습을...이렇게 야심을 품었던 그지만 장량과 대화를 나누며 다시 너절했던 과거를 떠올린다. 야심에 취해 함양의 진왕궁에 들어가고 함곡관을 막았다가 항우의 노여움을 사고 항백에게 빌어서 목숨을 건질 기회를 겨우 얻었던 것. 이 과거가 원인이 된 것인지 항백을 궁궐에 불러서 아부를 받지만[17] 오히려 항우의 친척인데 왜 자신에게 붙었냐는 말로 몰아붙인다. 여기에 더하여 소하를 불러서 한신이 여전히 불만이 많으며 딱 한번 조정에 나와서 말없이 뚱하니 있다가 간 것을 지적하며 죽여버리겠다고 일갈한다. 이에 소하가 말리지만 흥분하여 각혈하는 등 몸이 나빠지기 시작한다.[18]
3.3. 전
이번에 그가 돌이킨 과거는 홍문연이었다. 항백에게서 간신히 항우에게 목숨을 빌 기회를 얻은 유방은 장량과 함께 진나라의 옥새를 바친다.[19] 이윽고 시작되는 연회에서는 항장이 그의 목숨을 노리고 항백이 감싸며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그의 말대로 그는 생선이고 항우는 생선 가게 주인이었다. 항우는 일련의 소란 후 유방에게 진왕궁에 들어갔는지를 취조하지만 유방은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고 역사대로 숙취를 핑계로 자신의 진영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유방은 고백한다. 항우가 알고도 자신을 놓아준 것임을...제후왕 분봉으로 한왕(漢王)의 자리를 받은 유방은 역설적이게도 타도의 대상인 진왕 자영의 죽음에도 기뻐하지 않는다. 자영의 말대로 그의 야심이 통일이라는 이념을 계승받아 각 나라의 자유로움을 역설한 항우를 타도할 검이 된 것. 하지만 기묘하게도 항우는 이를 알고도 유방을 내버려뒀고[20] 이윽고 이 나비 효과로 유방은 한신을 소속에 넣고 천하통일에 나선다.
항우와 전쟁을 한지 5년만에 유방은 항우를 해하전투에서 몰아붙인 후 사지로 모는데 성공한다. 최후의 전투 직전 우희가 자결하고 사촌 동생인 항장을 비롯한 최후의 부하 26인이 장렬히 전사하는 가운데 항우는 홀로 남는다. 하후영의 신호에 맞춰서 항우를 궁병들이 화살로 쏴 죽일 찰나 한신은 그 명령을 거두고 항우는 자결한다. 하지만 이런 한신을 보는 유방의 모습은 두려움이 섞인 모습이다. 그 무서운 적인 항우를 죽인 한신이 이제는 무서워진 것.
시간이 지나, 장량은 감옥에서 풀려난 한신을 자신의 집에 데리고 있는다. 허나 여후는 장량에게 계속 한신 제거를 건의하고, 이를 거부한 장량이 집에 와 한신에게 유방한테 좀 잘 보이라고 부탁하자, 열이 받은 한신은 제나라 왕의 자리를 요구한 것[21]은 자신의 전공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고, 장량이 약이나 달이며 사는 것은 의심에 찬 유방에게 자신의 무기력함을 보여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 아니냐고 쏘아부친다. 이에 장량은 한신의 그러한 날카로운 모습이 스스로를 벨 것이라 경계하지만 오히려 한신은 진 멸망 시기엔 많은 사람들이 이 구호를 외쳤다며 왕후장상 영유종호를 외친다. 그리고 천하는 오직 천하인(天下人)들의 천하일 뿐이다라는 말도 하지만, 장량은 시대가 달라졌음을 직시해야 한다고 다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한탄한다.
여후는 자신이 장량 집에 심어놓은 노비를 통해 이 소식을 들었는지, 장량을 불러 그 앞에서 한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를 짚으며 한신을 제거해야 한다고 재차 종용한다. 그러자 한신 숙청에 결단코 반대하던 장량도 결국 동의하게 되고, 장량의 계책 아래 한신의 수족들이 야금야금 제거당한다. 소하가 가장 걸림돌인데 장량이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한편, 한신을 아끼는 소하는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들을 질책하며 홍문연의 기록을 따진다. 유방을 뒤에서 구한 것은 사실 한신이었다고 사관들에게 진실을 기록하게 하지만[22] 사관들은 시늉만 할 뿐 알고보니 이를 기록하지 않았고 소하는 분노를 표한다. 그 순간 여후가 들어오며 역사의 이면과 진실이란 조작될 수 있음을 말하며 소하의 기록[23] 역시 스스로 정하도록 하고 소하 역시 굴복하고 만다.
3.4. 결
영화의 제목대로 큰 잔치가 열리니 한신에게 입궁하라고 소하는 전하고 한신 역시 자신의 최후를 직감하며 궁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천하의 명장이 죽으러 가는 와중 날씨는 역설적이게 맑고 화창하며 한신의 과거 회상이 시작된다.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 돌아다니며 고생하던 한신은 유방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24] 배를 곯으며 눈치를 보던 한신에게 유방은 말없이 주먹밥을 주고 이에 어리둥절해 하는 한신에게 유방은 웃어 보이며 갈 길을 간다.[25] 시간이 조금 지나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를 만나 부하가 된 한신이지만 오히려 항우의 말타기 셔틀로 쓰이는 등 중용받지 못하자 설렘을 품고 유방에게 찾아와서 대장군에 오르고 같이 천하를 정복하기 시작한다.이윽고 회상이 끝나고 소하는 한신을 씁쓸히 배웅하고 한신은 여후를 위시한 궁궐의 신하들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상황에 처한다. 여후는 과거의 공을 참작하여 역적이지만 신체를 보전해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하며 한신은 목이 졸리는 가운데 유방에게 큰 뜻과 희망을 가지고 향하던 자신을 떠올리며 사망하게 된다. 사망한 한신의 목을 소하는 울면서 자르고 유방에게 달려가서 그가 바라던데로 자신이 한신을 데려왔다고 고하지만 죽어가는 유방은 소하를 잘 알아보지도 못한다. 그리고 유방은 여후에게 옛날에 자신이 용의 아들이라는 헛소문 때문에 죽을뻔 한 것을 기억하냐고 읖조린 후 조용히 사망한다. 그리고 사후의 유방이 독백한다. 자신의 운명은 홍문연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만, 사실 자신의 인생은 매 순간이 홍문연이었고, 드디어 이것을 끝낼 수 있게 되었다.
4. 평가
4.1. 평점
관객 점수 56% |
평점 5.7/10 |
네이버 영화 |
네티즌 평점 8.5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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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5.6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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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6.3 / 10 |
저평가된 수작으로 꼽힌다. 다만 초한쟁패기 시절 중국사에 대해 알고 봐야지 이해가 수월하며, 회상 장면이 많다보니 시간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이런 시간대와 인물간 관계를 아는 역덕후가 아닌 딴에는 내용 따라잡기도 힘들 수 있다. 즉, 초한지 덕후라면 흥미롭게 볼만하지만 초한지 문외한이라면 보통 중국 영화하면 기대하는 화려한 액션 장면도 드물어 지루할 수 있다. 연출부터가 자세한 설명 없이 생략할건 과감하게 생략하는 식이라 그야말로 초한지 매니아용 영화다.
4.2. 호평
4.2.1. 내면 묘사
단순히 액션, 전쟁의 측면에 집중한 여타 초한쟁패기를 다룬 작품들과 달리 인물의 내면 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호평이 많다. 통수 대마왕 유방, 전쟁영웅 한신, 인간흉기 항우라는 기존의 인식을 넘어서 한 명의 인간으로 그들의 내면(특히 유방과 한신)을 그럴듯하게 다루며 특히 각자의 욕망과 감정을 담아내서 새로운 테이스트를 제공했다.4.2.2. 인간 사회에 대한 비유
역사를 다루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의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을 생각해보게 했다.-
되풀이 되는
갈등의
역사
해하전투의 유방과 항우의 싸움에서 영상 및 음악을 통해서 인간사는 결국 한 때 친구나 형제라고 해도 결국 반목하고 갈등하며 진행됐음을 드러내고 있다. -
욕망의 충돌
자영의 의도대로 천하의 주인이 되는 욕망을 품은 유방의 모습과 반대로 각 나라의 자유와 특성을 존중하여 살자는 항우의 대비를 통해서 욕망의 충돌을 다뤘다. -
애증
영화 내용상 유방은 한신을 6년간 수감시키고 두려워 하면서도 끝까지 죽이는 것을 망설이는 등 한신에게 품은 공포 못지 않게 애증의 감정을 가졌음을 드러낸다. 실제 역사에서도 유방이 한신에 대해서 강등과 질책을 하면서도 죽이기를 망설였던 것을 생각하면 현실을 잘 반영했다. -
영웅에 대한 인간적인 해체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초한쟁패기의 주인공들인 유방, 항우, 한신의 능력과 업적에 대해서만 많이 다뤄졌다. 하지만 항우와 한신이라는 압도적인 능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공포에 떠는 유방, 우미인과의 작별에서 눈물을 흘리는 항우, 희망과 꿈에 가득찬 한신의 모습을 통해서 역사 속 영웅들에 대하여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재해석을 시도했다. -
역사의 이면
초한쟁패기의 인물에 대하여 색다른 시선을 제공함과 동시에 현재 우리가 아는 역사 속 사실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하여 의문을 던졌다. 특히 후반부 여후와 소하의 대화를 통해 시사점을 던졌다. -
인물의 변모 혹은
타락
다양한 인물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비틀리고 망가져 가는 것을 보여줬다.
4.2.3. 미장센
감독이 설정한 인물의 특징을 묘사하기 위하여 미장센을 최대한 살리는 화면이 잘 연출됐다.-
항우
기존의 학살자 및 무인으로서의 항우가 가지는 이미지 탈피를 위하여 인간적인 면을 많이 넣었다. 특히 부하들과 최후의 전투를 벌이는 장면 및 우미인과의 작별 장면이 보여주는 영상미가 매우 뛰어나다. -
유방
초한지 및 토사구팽이라는 말로 인하여 통수의 달인이나 평범한 인간을 초월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유방에게 평범한 필부의 이미지를 제공했다. 특히 영화 시작 부분에서 유방이 꾸는 악몽, 중반의 홍문연, 죽은 유방의 독백을 통해서 그 또한 한 명의 인간이었음을 드러냈다. -
한신
유방의 토사구팽으로 인해 몰락한 이미지가 강했는데 본 영화의 서사는 역사의 이면이라는 이름 아래 한신의 결백이라는 주장을 담는다. 또한 죽음을 앞두고 궁궐로 입궁하는 한신의 회상 및 죽기전 주마등을 통해서 꿈이 가득했던 그의 모습을 다뤘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미화가 많이 됐지만[26]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다루기 힘든 그의 모습 역시 역사책의 서술대로 다루는 등 생각할 여지를 제공했다.
4.2.4. OST
영화 곳곳에 사용 된 음악에 대한 호평이 많다. 특히 항우가 최후의 전투를 벌일 때의 음악[27], 홀로 남은 항우, 한신의 회상 장면에서 사용된 음악들이 매우 좋은 편. 아쉽게도 음원 판매는 아직 되고 있지 않다.4.2.5. 고증
많은 초한전쟁 관련 영화들 중 고증 부문에서 탁월한 편이다. 우선 200억의 예산으로 3년 간의 제작 과정을 거쳤으며 인물들의 복식, 병장기, 행동 등에서 당시를 재현하고자 했다.- 항우가 전투에 나서기 전 하인들이 시중드는 모습은 진한교체기 당시의 벽화를 통해서 재현했다.
- 전투마차 부대 역시 출현한다. 당시는 등자가 발명 되기 전이라 기마병과 전투마차가 혼용됐다.
- 엉성한 사극처럼 장수가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깃발과 북을 통해서 전투 명령을 하는 장면을 보였다.
- 전한의 제왕묘에서 출토된 소찰주를 바탕으로 병사들의 투구를 만들었다. 심지어 기존 사극들처럼 공장에서 만들어서 깔끔한 느낌을 준 게 아니라 수작업으로 일일이 망치질해서 형태를 만들었다는 디테일을 보여준다.
- 장수들이 쓰고 있는 투구는 종장판 투구인데 깃털장식에 목가리개까지 재현했다.
- 지휘관의 신호를 통해서 보병, 궁병 등이 대형을 갖추는 등 전투 장면을 구현했다.
- 엉터리 사극처럼 등장인물들이 미백(...)을 하는 등 하지 않고 나이에 맞는 모습을 구현했다.
- 복장들을 보면 기존 사극처럼 미싱기를 이용해서 말끔한 옷매무새를 표현한 것이 아닌, 옛날 바늘로 옷감을 꿰맨 것으로 기계가 도입되기 이전 옷을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 건물들 역시 기계로 목재를 다듬어서 만든 칼같이 맞춰서 만든 느낌이 아닌, 일일이 수작업으로 목재를 다듬어 만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마루바닥이나 목재 벽을 미세한 틈이나 굴곡 등이 살아있다. 그리고 기존 사극처럼 무식하게 커다란 내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실제 막사나 건물 내부의 비율을 표현했다.
- 항우와 유방의 나이 차이를 분장으로 잘 구현했다. 소설 《 초한지》의 영향으로 늙은 시황제가 죽고 야심에 찬 유방과 항우가 등장한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 유방과 진시황과의 나이 차이는 3살 또는 12살이며[28] 오히려 항우와의 나이차가 15살 또는 24살이다.[29] 즉 실제로는 유방이 항우 아빠 뻘이다.
- 항우를 비롯한 초나라 군대의 갑주는 도철(饕餮) 무늬를 정확히 재현했다. 도철 무늬는 상나라 및 주나라 시절에 사용된 것인데 항우가 구시대적인 관점을 가졌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 홍문연 장면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앉는 방식은 모두 좌식 문화를 따른 것으로 고증했다. 실제로 중국에 입식 문화가 보편화된 것은 북송이 멸망한 이후로 본다.
- 홍문연에서 인물들에게 각자 상을 제공하고[30] 큰 그릇에 담긴 술을 국자로 뜨게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에는 개별 상을 받는 문화가 일반적이었고, 술의 제조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아서 그릇에 담긴 술에서 맑은 부분만 떠서 마시는 문화가 있었다. 여담으로 도수는 소주와 맥주의 중간 정도였다. 음식들 역시 기존 사극처럼 화려한 접시에 음식들을 큼직하게 쌓아올린 연출이 아닌, 그 당시 음식과 접시 등을 제대로 표현했다.
- 홍문연에서 유방과 항우가 손으로 식사를 하는 장면도 있는데 역시 당대 상황에 맞는 것이다. 《 예기》에 따르면 타인과의 식사에서 땀이 난 손으로는 음식을 잡으면 안된다는 구절이 있는데 다르게 보자면 손으로 먹는 것이 보편적이었다는 뜻이다. 또한 당시에도 젓가락은 사용했지만 주로 야채 건더기가 있는 죽을 먹을 때만 한정적으로 사용했다. 당시에는 고기와 야채 및 곡식을 넣은 죽이 주식이었는데[31] 노인 공경의 차원에서 식사할 때 고기 건더기는 노인에게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고기는 잘게 썰어져 있었고[32] 죽이었기 때문에 노인들은 젓가락없이도 죽을 먹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야채가 들어간 부분은 당연히 건져먹을 젓가락이 필요했다.
- 또한 같은 장면에서 유방의 식탁 위에 있는 포크 역시 고증에 맞는데 이는 당시 식사문화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기원전 2,000년의 유적에서 포크가 발견되는 등 당시에는 흔하게 쓰는 물건이었다.
4.3. 비평
4.3.1. 실제 역사와의 차이점
여타 《초한지》 영화처럼, 감독이 아무리 《사기》를 참고했다 해도 역사를 재구성한 이야기를 따르는 만큼 실제와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특히 스토리 자체가 유방의 심리 묘사와 회상 장면을 통해 주로 전개되다 보니 항우, 한신에 대한 (어찌보면 유방의 질투 섞인 시선으로 본) 미화 및 유방에 대한 실제 역사와는 다소 다른 왜곡도 들어갔다. 상당히 무게감 있는 연출로 그럴듯하게 찍어놔서 영화의 이야기가 죄다 실제 역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을 정도.-
항우와 유방이 만났을 때 유방을 48살, 항우를 24살로 표현했다.
아빠와 아들항우는 생몰년도가 정확하지만 유방은 확실치는 않기에 나이 차이는 15살 또는 24살이다. 이는 감독이 스토리를 위하여 정한 것으로 보인다. - 한신이 유방을 설(薛)에서 만났다고 했는데 실제 역사상으로 확실치 않다. 유방은 확실히 설(薛)에서 항량에게 합류했지만 한신은 항량이 회하를 북상할 때 쯤 만났다.
- 영화상으로는 소하, 장량 등이 한신을 살리려 하고 안타까워하지만, 실제 역사에선 어땠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오히려 장량은 굳이 나서서 한신 제거에 공을 세운 소하를 승진시키며 한신 처형을 지지하는 자세를 보였다.
- 한신의 죽음 당시 나이를 영화에서는 35살이라 하는데 실제 나이는 불명이다. 단, 한신의 나이가 유방보단 훨씬 어린건 사실로 보이고, 항우보다 조금 연상이었을 가능성이 크기에 실제 죽을 때의 나이는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 정도였을 확률이 크다.
- 한신이 항우의 부하일 때 직책은 원래 집극랑(執戟郞)인데 이 자리는 무기의 일종인 집극(執戟)을 들고 있다가 장수에게 주는 하급 장교 겸 비서 정도의 자리다. 즉, 한신이 영화처럼 항우의 말타기 셔틀(...) 노릇을 했을 가능성은 적다.
- 유방의 과거 이야기에서 진나라 황궁에서 자신의 등본을 찾을 때 기계장치를 이용하는데 이는 실제로 있었는지 없엇는지 불명, 영화적 연출을 위한 창작으로 보인다.
- 여후에 의해서 괴철을 포함한 한신의 수족들이 제거 당하는 모습이 영화에 나오는데 실제 기록상으로는 이런 일은 없었다. 괴철은 한신이 죽고 잡혀왔지만 기개있는 변론으로 살아났고 벼슬자리도 하다가 나름 편안히 죽었다. 한신 부하들의 처분에 대한 기록은 딱히 없지만 한신의 삼족이 멸해진 것은 사실이다.
- 실제 역사상으로 홍문연에서 활약한 것은 번쾌다. 다만 육가의 기록인 《초한춘추》에 따르면 유방이 도망친 후 장량이 남아서 항우에게 선물을 전할 때 한신의 이름도 언급된다.
- 항우의 죽음은 실제로 해하 전투 후 도주한 다음 일어났다. 또한 이때 항우의 패잔병을 상대한 병력은 영화에서는 등장이 없는 관영이 이끄는 5000명의 한군 기병이었다.
- 해하 전투 당시 우희는 항우 앞에서 자결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 정사엔 자살했다는 얘긴 없다. 그냥 해하 전투 이후엔 생몰미상이다.
- 해하 전투에서 말없이 자살한 항우의 목을 영화에서는 번쾌를 비롯한 한군이 난도질하는데 실제와는 조금 다르다. 기록상 항우는 해하 전투의 패배 이후 도주하다가 포위되어 싸우던 중 자신의 옛 부하인 여마동을 보고는 은혜를 베풀겠다면서 자살했고 시체는 양무(楊武), 여마동(呂馬童), 왕예(王翳)[33], 양희(楊喜), 여승(呂勝)의 5인이 나눠 가졌다.
- 한나라가 천하통일을 한 후 한신은 영화에서처럼 옥에 6년간 갇히지 않았고, 단지 제왕에서 초왕으로 전봉됐다가 회음후로 강등된다. 회음후로 강등될 때 잡혀가긴 했지만 감옥에 집어넣기 전 유방이 사면령으로 풀어줘버렸다. 그리고 한신은 유방이 진희의 난을 진압하러 간 사이에 모반을 일으키는듯한 정황이 보인다고 판단한 여후가 죽여버렸다. 유방은 이 사실을 모르다 난을 진압하고 와서 한신의 죽음에 한편으론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론 안타까워했다(차희차련). 따라서 영화 엔딩처럼 한신이 죽고 그 목을 아픈 유방에게 가지고 가자 유방이 죽는 것은 거짓이다. 실제로는 유방이 1년 더 살았다.
- 항백이 영화에서는 암살당하지만[34] 실제로는 유씨 성을 받고 천수를 누리다 죽었다. 다만 뒤를 이은 항백의 아들 유수(劉睢)는 기원전 186년(여후 2년)에 죄를 지어 봉국을 몰수당하긴 한다.
- 영화 시작 부분에서 유방이 자신의 고향은 강소성 패현(沛縣)이라고 하는데 강소성이라는 명칭은 후대의 청나라때 만들어진 것이다. 유방이 태어나는 시점에서 그의 정확한 고향은 사수군(四水郡) 패현(沛縣) 풍읍(豊邑) 중양리(中陽里)이다. 《초한지》 팬들에게 익숙한 지역 명칭을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4.3.2. 난해함
기본적으로 친절하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설명하진 않는데, 초한쟁패기 시절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늙은 유방의 회상 형식으로 훅 들어갔다 다시 나왔다 하는 방식이라 어느정도 초한쟁패기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 이 사건을 말하는구나, 오 이 사건을 이렇게 해석해? 하고 고증이나 연출을 즐길 수 있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도대체 뭔 소린지 내용 따라잡기가 어려울 수 있다.5. 명대사
당시 적은 생선가게 주인이었고...
난 그 앞에 한 마리 생선이었지
엄청난 위험이 천천히 다가 오는 것이 보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영혼은 그 당시를 방불케한다..
11년 전 홍문연의
그 암흑 속으로 또 다시 돌아간 듯 한...
살기가 사방에 퍼져있는 항우군의 진영...
난 그 앞에 한 마리 생선이었지
엄청난 위험이 천천히 다가 오는 것이 보였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영혼은 그 당시를 방불케한다..
11년 전 홍문연의
그 암흑 속으로 또 다시 돌아간 듯 한...
살기가 사방에 퍼져있는 항우군의 진영...
그 연회의 결말은...
내가 술에 취했다고 핑계를 대고 도망나오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
도망가고, 계속 도망갔어!
나는 온 천지의 마른풀을 헤치며 미친듯 도망가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알 수 있었다 당시 항우가 나를 놓아 줬다는 것을
항우는 진왕궁이 하나의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 깊은 욕망을 일깨울 수 있는 열쇠...
한신의 욕망 또한 바로 그날 깨어났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 역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영(子瓔)왕이 왜 나를 진왕궁에 데리고 갔는지..
그는 내 마음속에 욕망의 씨앗을 심어주려 했던 것이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면...
난 그의 복수를 위한 날선 검이 될테니...
내가 술에 취했다고 핑계를 대고 도망나오는 것으로 끝을 맺었지
도망가고, 계속 도망갔어!
나는 온 천지의 마른풀을 헤치며 미친듯 도망가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알 수 있었다 당시 항우가 나를 놓아 줬다는 것을
항우는 진왕궁이 하나의 열쇠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 깊은 욕망을 일깨울 수 있는 열쇠...
한신의 욕망 또한 바로 그날 깨어났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 역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자영(子瓔)왕이 왜 나를 진왕궁에 데리고 갔는지..
그는 내 마음속에 욕망의 씨앗을 심어주려 했던 것이다
그 씨앗이 싹을 틔우면...
난 그의 복수를 위한 날선 검이 될테니...
수 많은 사람들이...
일생동안 자신을 명확히 돌아보지 못한다
나처럼 말이다
예전 진나라의 조그만 마을 풍읍에 살았을 때
내 삶은
우물 안의 물과 같았다
보잘것 없고, 평화로왔지
하지만 진왕궁에 들어 온 이후로
내 마음속의 문의 활짝 열려
스스로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볼 수 있었다
넓은 바다와 같은 욕망을...
일생동안 자신을 명확히 돌아보지 못한다
나처럼 말이다
예전 진나라의 조그만 마을 풍읍에 살았을 때
내 삶은
우물 안의 물과 같았다
보잘것 없고, 평화로왔지
하지만 진왕궁에 들어 온 이후로
내 마음속의 문의 활짝 열려
스스로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볼 수 있었다
넓은 바다와 같은 욕망을...
천하는 그저 천하인의 천하일 뿐이오
내 이름은 유방이다
한왕조의 첫 번째 황제다
61세에... 내 인생의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
보통 사람으로 시작하여 황제로 끝을 맺은 이야기
나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죽은 후에 내 처와 아들이 다른 세 명의 아들들을 죽일런지...
나는 더더욱 알 수가 없다
400년후, 나의 제국 또한 이 땅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길
내 운명은...
홍문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틀렸다
내 일생이... 모두 홍문연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침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한왕조의 첫 번째 황제다
61세에... 내 인생의 이야기를 모두 마쳤다
보통 사람으로 시작하여 황제로 끝을 맺은 이야기
나는 알 수가 없다
내가 죽은 후에 내 처와 아들이 다른 세 명의 아들들을 죽일런지...
나는 더더욱 알 수가 없다
400년후, 나의 제국 또한 이 땅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길
내 운명은...
홍문연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틀렸다
내 일생이... 모두 홍문연이었다
하지만 지금... 마침내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다
6. 기타
- 영화가 완성됐지만 중국에선 개봉이 5개월이나 지연됐는데 중공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통과가 되긴 했지만, 늦어진 연유에 대해선 현실 정치와 연관한 일부 설왕설래도 나왔는데, 예를 들어 유방과 여후의 모습이 보시라이와 그의 아내 구카이라이를 연상시켜서라는 설, 천하를 차지하고 사뭇 달라진 유방의 모습이 중공의 일당독재를 연상시켜서 뜨끔했다는 설 등이 그것이다.[35] 물론 실제 이유는 오리무중.
- 친란은 여후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서 반나절에 걸친 화장을 받아야만 했다고 한다. 거의 변장 수준이다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촬영기간 8개월 내내 유지해야 했고 잘 때도 고개를 똑바로 하고 자는 등 고생을 했다고 한다.
- 원래는 유방 역할에 주윤발을 캐스팅하고 항우 역에 유방 역을 맡은 류예를 쓰고자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정상 주윤발의 캐스팅이 무산되고 류예가 유방 역할을 하는 대신 오언조가 항우 역할을 했다. 근데 오언조랑 한신 역을 맡은 장첸이 닮아서 헷갈린다.(...)
- 당시의 인물을 정확히 재현하기 위해서 캐스팅에 공을 들인 배우는 장첸이라고 한다. 또한 유방 역할을 한 류예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서 일부러 살을 20kg 찌웠다. 또한 매일 수염을 붙이고 맨발로 연기를 했다.
- 오언조는 항우 역할을 위해서 촬영 기간 동안 상산(象山)의 호텔에 거주하면서 달리기 연습을 틈틈히 했다고 한다. 영화 속 내용상 맨발로 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다고. 그외에도 3편의 영화를 거절하고 8개월간 항우에 대해서 공부하는 등 연기를 위해서 노력했지만 나름 즐겁게 지냈다고 한다.
- 캐스팅 목록에는 조무상(曹無傷)[36] 역할로 배우 류을린(刘乙麟)도 캐스팅 되어 있었는데, 정작 영화 내 출연은 없었다.
[1]
영화 초반부터 '본 영화는 사마천의
사기에 의거하여 제작되었음'이라고 박아버리고 시작한다. 물론 후술되어있듯 이 영화도 100% 고증에 충실한 영화는 아니고 영화적 각색은 있다. 특히 후반부. 그 외 복식 고증 등은 훌륭한 편이긴 하다.
[2]
그 이면에는 두 사람에 대한 공포나 적의가 아닌, 항우에 대한 고마움과 존중, 한신에 대한 우정과 전우애 같은 인간적 감정이 공존하였음이 드러난다.
[3]
영화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드라마
초한전기에서도 같은 배역을 맡았다.
[4]
유방이라는 이름을 쓰기 전의 이름은 유계였다. 유방의 보잘 것 없는 과거를 상징하는 이름. 유계(劉季)라는 이름이 유씨네 막둥이라는 뜻이라 그렇게 화려한 이름이 아니다
[5]
번쾌, 하후영, 소하, 장량과 함께 움직이는 걸로 묘사된다.
[6]
스스로를 용의 아들이라 칭하며 그가 오는 곳에 큰비가 내린다는 내용. 유방의 아내인
여후가 퍼뜨린 것
[7]
영화의 주제 중 하나인 역사의 이면을 생각해보자면 묘한 장면이다.
[8]
고문을 당했는지 머리 일부분의 두피에 큰 상처가 있었고, 몰골 역시 초췌해졌다.
[9]
훗날 제도혜왕(齊悼惠王)이 된다.
[10]
역사의 이면과 함께 영화의 주제 중 하나
[11]
뒷날 조은왕(趙隱王)이 되지만 여후에게 독살당하는 인물
[12]
말년의 영향인지 상당히 날카로운 모습을 보인다.
[13]
배신할 것이었으면 진작 했을 것.
[14]
작중 내내 유방은 자신의 능력을 압도하는 한신, 항우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또한 보잘 것 없는 과거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
[15]
이 때 만큼은 신하들과 순박한 모습을 보인다. 권태에 찌든 황제의 모습과는 대비되는 모습
[16]
진나라는 10리마다 정(亭)이라는 행정단위를 설치했는데 그곳의 수장이다. 현재로 치면 동장 정도의 위치
[17]
유방이 과거에 목숨을 빌기 위해 항백에게 줬던 보석을 이번에는 반대로 항백이 유방에게 바친다.
[18]
이 장면부터 유방은 어찌하여 한신이 자신을 따른 것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다만 영화상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19]
영화가 고증에 신경을 매우써서 일단 사극에 나오는 무식하게 커다란 옥새가 아니라
전국옥새를 본뜬 것이다.
[20]
유방은 항우가 귀족이라 타인의 야심에 신경쓰지 않고 자신의 것만 본 것이라 생각한다.
[21]
실제 역사 기록상으로 이 때 유방은 극대노했다. 한신의 공이 작아서 그렇다기보단 항우와 유방 진영 간보고 저울질하는 모양새로 비칠 수 있어 사람 긁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22]
당연하지만 실제 역사 기록이랑은 다른 부분이다.
[23]
즉, 소하의 선택과 그에 따른 응보.
[24]
정황상 유방이 향량을 찾아간 설(薛). 한신은 영화에서 유방을 만났다고 하나 유방은 전혀 기억치 못하는데 이 이야기를 말한다.
[25]
한신이 당시 승승장구하던 항우 대신 보잘것 없던 유방에게 간 이유가 이런 사소한 것이었음을 알려주는 장면.
[26]
본작에서 가장 미화된 인물은 한신이 아닌 항우이다.
[27]
음악에 무기들이 부딪혀 나는 쇠소리를 삽입하여 인간사는 갈등의 연속임을 드러냈다.
[28]
유방의 태어난 해가 기원전 247년 또는 256년이다. 진시황은 기원전 259년 생이었다.
[29]
항우는 기원전 232년 생
[30]
분찬제(分餐制)라고 불렸다.
[31]
빈민의 경우는 야채의 비중이 높았고, 부유할 경우에는 고기를 많이 넣었다.
[32]
현대에서도
중국 요리는 칼질을 중요시하는 것이 여기서 유래했다.
[33]
항우의 시체 중 수급을 얻었다.
[34]
한신 토사구팽의 명분을 연출하기 위해 항우에게서 유방에 투항한 (그래서 못 믿을) 한신마냥 다른 항우나 한신의 측근 출신들도 숙청했다. 다만 항백은 살고자 예전 유방을 살려줄 때 맺은 정략결혼 약조를 여후에게 어필하나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이미 본인의 운명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35]
굳이 현실 정치와 연계시켜 따지자면, 집권 세력 입장에선 썩 달갑진 않은 대사도 있긴 한데, 예를 들어 항우가 진 황제를 처형한 후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 모든 백성에게 똑같은 색깔의 옷을 입게 하고, 모두 같은 수레를 타게 하고, 똑같은 글자를 쓰게 함으로, 본래 각양각색인 마음들을 억지로 하나로 만들었소. (난 이것을 다시 쪼개려 한다는 취지의 말 이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자신들의 문자를 쓰고 자신들의 역사를 쓰시오."라고 하는데, 이는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공 입장에선 묘하게 거슬리는 장면일 순 있다. 그 외 한신이 천하는 천하인들의 천하일 뿐이라거나
왕후장상 영유종호 드립을 치자 장량이 깜짝 놀라며 시대가 변했는데 그런 구호 외치지 말라고 경고하는 장면도 있다.
[36]
유방과 같은 고향 출신이며 거병 초창기 멤버. 좌사마(左司馬) 자리까지 올랐지만
항우에게 유방을 모함하여
홍문연이 열리는 발단을 제공한 인물. 홍문연 직후 살아 돌아온 유방에게
참수 당했고 목은
효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