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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6 23:43:40

전함/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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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용 수상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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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열함

항목 참고.

2. 철갑함

항목 참고.

3. 1890년대~ 1906년: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철갑함은 그야말로 이런저런 무장을 달 수 있는 대로 주렁주렁 달아놓은 개판중구난방 군함이었지만, 1890년대 들어서 어느 정도 정형화되게 된다. 11인치 이상의 대구경 주포와 5~6인치 중간포, 그리고 1~3인치 정도의 속사포와 어뢰를 장비하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정형화되게 되었다. 또한 이 시대에 들어서 기존의 철갑함(Ironclad)이 아닌 전함(Battleship)이라는 명칭이 등장하게 된다.

4. 1906년~ 1911년: 드레드노트급 전함

이와 같이 전함이 발전하던 중, 열강들은 러일전쟁 쓰시마 해전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그때까지 선박들은 방어력이 공격력을 상화했기 때문에 하베이 강을 장갑으로 사용한 배는 격침할 수 없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발트 함대는 전함 6척이 격침되는 굴욕적인 대패를 당했다. 이런 결과에 충격을 받은 열강들은 쓰시마 해전을 분석하게 되고, 존 피셔 제독이 거기서 영감을 얻어 혁신적인 전함을 설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드레드노트였다.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모든 포탑에서 지휘에 맞춰 동시에 사격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건 삽질이었다. 당시까지는 각 포탑에서 직접 조준해서 사격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어차피 그럴 거면 각 포탑에서 최대한 빨리 장전해 되는 대로 사격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하지만 피셔 제독은 같은 탄도를 가진 화포들을 동일한 사격제원으로 발포하면 동일한 탄착군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함교에서 전문 장교가 각 포탑으로 사격제원을 전달해 일제사격(Salvo)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여기에 협차(Straddle) 개념을 도입함에 따라 명중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 때문에 중간포의 존재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중간포는 주포가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존재했던 것인데, 주포의 명중률이 상승한 이상 사거리도 짧고[1] 화력도 약한 중간포는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따라서 이후의 전함들은 3~5인치의 속사포와 12인치 이상의 대구경 주포만을 장비하게 된다.

또한 기존의 레시프로 엔진이 아닌 증기터빈을 도입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속도인 21노트를 달성했고[2] 배수량도 1만 7천 톤을 넘기면서 방어력도 강해졌다.

이에 따라 기존의 구형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은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고, 각국은 치열한 건함경쟁에 돌입한다.

5. 1911년~ 1922년: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하지만 두려울 것이 없던(Dreadnought) 드레드노트는 순식간에 구식이 되어버렸다. 드레드노트는 12인치 연장포탑 5기 중 2기는 양현에 분산배치되어 있었기에 한쪽 방향으로는 최대 8문밖에 향할 수 없었고, 이는 건조 도중 급하게 드레드노트급으로 변경된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동급이었다.[3]

1910년 영국은 오리온급 전함을 건조하는데, 오리온급은 13.5인치(343mm) 연장포 5기를 모두 선체 중심선상에 배치해 압도적인 화력을 가졌다.[4] 오리온급 전함이 일제사격 시 사용하는 장약량은 드레드노트의 2배에 달했고, 이 때문에 오리온급 이후의 전함들은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는 별도의 분류를 갖게 된다. 슈퍼 드레드노트급의 분류 기준은 매우 모호하지만 일단 증기터빈의 사용과 포탑의 중심선 배치, 13.5인치 이상의 고화력 등으로 정할 수 있다.

이후 전함은 다시 한 번 크게 변화하게 되는데, 집중방어 구조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네바다급 전함에서 처음 도입한 이 방식은 맞아도 상관 없는 곳은 그냥 장갑을 달지 말고, 꼭 필요한 부분만 장갑을 달면 배수량이 줄어드니까 같은 배수량으로도 더 강한 방어력을 가질 수 있다는 발상을 기초로 했다. 이는 현명한 생각이었음이 유틀란트 해전에서 드러났고, 이후의 전함들은 이런 집중방어 구조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된다. 그리고 그 구조를 써먹을 날은 오지 않았다[5]

6. 1922년~ 1937년: 해군 휴일



7. 1937년~ 1946년: 2차 세계대전형 전함



8. 1946년~ 2011년: 현대화 아이오와급 전함



9. 미래?




[1] 쓰시마 해전 이전까지는 사거리의 중요성이 그렇게 부각되지 않았다. [2] 쓰시마 해전 당시 일본 연합함대는 14노트, 러시아 발트함대는 11노트로 항해했다. [3] 사실 사우스캐롤라이나급은 증기터빈이 아닌 레시프로 엔진을 사용했고 그 때문에 최고속력도 18.5노트밖에 되지 못했기에, 사츠마급 전함이나 카와치급 전함과 함께 준드레드노트급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 문제는 델라웨어급 전함 1번함 델라웨어에서도 해결되지 못하고 2번함 노스다코타에 와서 겨우 해결된다. [4] 이 13.5인치 주포는 라이온급 순양전함에도 사용되었다. [5] 물론 이후 전함들 간의 포격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과 2차 과달카날 해전도 있었으며, 역사상 마지막 함대함 포격전인 레이테 만 해전 수리가오 해협 해전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랬든 말든 해군의 주력은 항공모함으로 넘어가 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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