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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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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배경4. 구성5.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6. 현실성
6.1. 해상자위대의 명칭 계승
7. 대중매체에서8. 연관 항목

1. 개요

88함대
八八艦隊 (はちはちかんたい) / Eight-Eight Fleet

일본 해군의 대규모 건함계획.

2. 상세

전함 8척과 순양전함 8척을 건함하고 예비용으로 구형 전함 8척과 장갑순양함 8척을 유지하며 이들로 이루어진 주력함대를 증강하려는 계획. 이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는 전함 6척과 장갑순양함 6척으로 66함대 계획이 실행되었다.

이 16척에 포커스가 주어지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일본 해군 자체의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장대한 계획이었다. 그때까지의 일본 해군은 최신예함을 꽉꽉 채워넣은 1함대, 비교적 구형함인 2함대, 청일전쟁에서 노획한 배를 포함해 어쨌건 모아둔 3함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88함대계획을 통해 압도적인 화력과 방어력을 갖춘 1함대, 고속성과 전투력을 겸비한 2함대, 야간전 외에는 별로 생각하지 않은 대규모 어뢰투사용 구축함 전대인 3함대로 개편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배가 크면 세다는 수준이 아니라 미 해군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배의 크기가 제한된다는 점을 감안하여, 기술적 측면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1] 특히 함대별로 미국 함대보다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전술적으로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복구의 가능성이 높은 등, 대놓고 태평양 최대의 적인 미국 태평양함대를 압도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하술하겠지만 이를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고, 88함대계획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2] 88함대이야기에 따르면 그 예산은 88함대를 만드는 것만으로 끝없이 총력전이라고 한다.

3. 배경

당시 일본 러일전쟁이 끝나고 반드시 배상금을 받아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었다. 청일전쟁으로 얻은 배상금을 진작에 다 날리고 외국에서 국채까지 얻어 써야 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영국의 막대한 전쟁채권 구입이 러일전쟁 수행의 근원이었고, 이는 영미의 극동에서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세계정책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국내 사정으로 전쟁을 지속하지 못한 것 뿐이지 진 게 아니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배상금을 얻기도 쉽지 않았다. 일본도 어떻게든지 배상금을 받아내려 했으나 러시아가 협상하기 싫으냐며 거부하자 일본도 더이상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배상금을 받지 못해도 협상을 하라는 명령을 일본 대사에게 이르게 된다. 결국 일본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한다.[3] 그 문제로 인한 폭동[4]을 진압하고 러시아도 이긴 군부의 입김이 세졌으니, 육군의 경우는 17개 사단을 25개 사단으로 늘렸고, 해군의 경우가 바로 이 88함대이다. 사실 처음은 84함대로 시작해 86함대 88함대 순으로 목표가 점점 늘었다.

4. 구성

88함대 계획
전함 戦艦
나가토급 長門型 카가급 加賀型
나가토 長門 무츠 陸奥 카가 加賀 토사 土佐
키이급 紀伊型
키이 紀伊 오와리 尾張 스루가 駿河 오미 近江
순양전함 巡洋戦艦
아마기급 天城型
아마기 天城 아카기 赤城 타카오 高雄 아타고 愛宕'
13호급 十三号型
함명 미정
밑줄: 항공모함으로 개장, 기울임: 건조/개장 도중 해체, 취소선: 계획단계에서 취소

5.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1차 대전 이후 영국은 각국에 해군 군축을 제의하게 되고 여기에 미국이 동참하고 각국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져[5]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게 된다. 그리고 조약에 의하여 88함대의 계획은 끝나게 된다. 카가와 아카기는 항공모함으로 개장 되었으며 아마기, 토사, 타카오, 아타고는 해체되었고 이중, 타카오와 아타고는 이름을 타카오급 중순양함에 넘겨주었다. 키이급 전함 13호급 순양전함은 공중분해됐다...[6]

6. 현실성

전함과 순양전함을 합쳐서 16척이라는 전력은 분명히 강력한 전력임은 사실이다.[7] 그러나 일본의 국력은 이러한 대규모 함대를 건조, 운용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이전부터 군사력을 키운다고 국가예산의 30~40%를 군사비로 밀어넣는 것이 현실이었다. 참고로 미국이 Naval Act of 1916에서 전함 10척+순양전함 6척을 건조하는 계획을 세웠는데[8] 이것도 부담스럽다고 그나마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줄인거다. 이것도 미국이어서 16척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지, 재정난에 허덕이던 일본이 주력함 16척을 온전히 확보할 수 있었을까?

간단히 비교를 해보면 당시 대영제국, 독일 제국, 미국이 경제력이 좋았는데,[9] 영국과 독일의 건함 경쟁은 경제에 큰 부담을 주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을 기준으로 취역한 군함의 수를 따져봤을때, 영국의 경우 드레드노트급 10척, 슈퍼 드레드노트급 12척(+5척)[10] 순양전함 10척[11]로 프리 드레드노트를 세지 않아도 가장 규모가 큰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12] 한편 제2의 해군국이었던 독일 제국은 드레드노트급 13척(+4),[13] 순양전함 4척(+3)[14]으로 슈퍼 드레드노트급은 부재하지만 튼튼한 방호력을 자랑해서 영국과 맞설 수 있었다.[15] 마지막으로 뒤늦게 전쟁에 참여한 미국의 경우 드레드노트급 8척, 슈퍼 드레드노트 6척(+3)[16]으로 제일 수가 적지만, 전쟁에 늦게 참여해서 상대적으로 더 우수한 설계를 가진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편 일본은 드레드노트급 2척, 순양전함 2척을 보유하고 슈퍼 드레드노트급 2척과 순양전함 2척을 건조하고 있던 상황이었다.[17] 당시 프랑스가 제1차 세계 대전때 해군 전력이 드레드노트급 4척에 슈퍼 도레드노트급 (+3)척[18]을 보유하고 있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일본 해군의 주력함 수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였다. 이 숫자마저도 제1차 세계대전에 적극적으로 참전은 안해서 느긋히 건조 가능했다는 것도 잊으면 안된다. 러일전쟁때 일본 해군보다 규모가 컸던 러시아 제국 발트 함대를 생각해보면 러시아가 일본보다 가난해서 대전(大戰) 전에 드레드노트급 7척만 보유했겠는가?(물론 전쟁으로 재정이 악화되긴 했다.)

당시 일본의 경제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러일전쟁으로 엄청나게 큰 빚을 가지게 되었고 과거 프리드레드노트급과 다르게 드레드노트, 슈퍼 드레드노트급의 건조 비용은 너무나 비쌌다. 그와중에 나가토급 전함으로 시작해서 88함대를 건조하는 것은 이미 국가역량을 벗어났다. 막 근대화를 한 일본은 서유럽과 같은 부유한 나라도 아니였고 일본의 식민지는 부를 늘리기 좋지 않았다. 타이완 경영은 성공적으로 나름 짭잘한 돈을 벌긴 했지만, 타이완의 경제규모는 작고 조선은 34년 11개월동안 단 한번도 흑자를 내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어떻게보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건함을 제한되었기 때문에 일본 제국이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능력이 생긴걸지도 모른다. 실제로 1920년 일본의 총군사비/GDP의 수치는 5.86%로 정상적인 국가에서 나올 수치가 아니다. 정말 88함대를 강행했으면 일본이 건조비용 + 유지비용으로 전쟁을 수행하지 못했을지도.

6.1. 해상자위대의 명칭 계승

거함거포주의에 입각한 88함대 개념 자체는 거함거포주의의 몰락과 함께 완전히 사장되었지만 현 일본 해상자위대에서 각 호위대군 편제 개편 계획을 "88함대"로 지칭한 적이 있다. 구일본군의 8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전함 함대와 해상자위대 호위대군의 호위함 8척과 대잠헬기 8기 개념의 유사성에서 착안한 명칭이다.

1970년대 해상자위대 호위대군은 8척의 호위함과 6기의 대잠헬기를 주축으로 하는 "8함 6기제" 편성이었다. 그러나 소련군에 잠대함 미사일이 배치됨에 따라 대잠방어망이 돌파당하지 않아도 선단이 공격당할 위험성이 크게 증대되었다. 해상자위대는 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함재 헬기를 HSS-2B 시킹 SH-2F 시스프라이트 혼성 10기로 늘리는 8함 10기제를 연구했는데, 추진 도중 상이한 2종의 헬기를 동시에 헬기구축함에서 운용하는 방안은 정비소요가 너무 커져서 실현이 곤란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기종을 보다 고성능인 시킹으로 일원화하는 대신 헬기 숫자를 8기로 줄인 8함 8기제를 호위대군 편성 골간으로 삼도록 결정되었고, 이것이 1척의 헬기구축함(DDH), 2척의 방공구축함(DDG), 구축함 5척(DD)에 8기의 대잠헬기를 운용하는 "88함대"로 불리곤 했다.

8함 8기제 구상은 1995년경 4개 호위대군 모두에서 완성되었지만 그 뒤 휴우가급 헬기구축함, 아타고급 구축함, 이즈모급 다용도 운용모함 등이 배치되면서 호위대군 내에서 운용하는 대잠헬기 숫자가 크게 늘어났고, 2008년 이후 호위대군 예하 호위대 역시 호위대군 사령부 소재지에서 벗어나 일본 각지로 분산 배치되면서 오늘날에는 더이상 쓰이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

2000년대 열심히 해군을 강화하던 한국도 이걸 모방해서 66함대라는 개념을 자주 들고 나왔고 이 시기 나온 밀리터리 소설들에도 그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2000년대에 바라보던 것과 안보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해군력이 증강된 2010년대 후반부터는 거의 잊혔다. 현재 대한민국 해군은 18척의 대형 방공구축함을 제7기동전단에 배치할 계획으로 이 정도면 66함대를 세번 완편할 수 있는 척수이다.

7. 대중매체에서

8. 연관 항목



[1] 가공전기 중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 대책으로 뉴딜을 하면서 파나마를 확장한다는 작품도 있다. 그것만으로 일본 해군이 멘붕하고 기존 계획이 몽땅 날아가 군의 정치력이 꺾인다는 이야기. [2] 개인이 연구한 내용이기는 하다. [3]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막대한 군비를 들이고 수많은 사상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다고 떠들던 일본 정부와 군부가 발표했지만, 배상금도 없고 영토 할양도 고작 북위 50도 이남의 사할린 연해주 연안의 어업권에 불과한 극히 일부였다. [4] 이 폭동은 뒤에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5] 일본의 경우 당시 총리였던 하라 타카시가 군부를 견제하기 위하여 받아들였다. [6] 그나마 키이급 전함은 이후 야마토급 전함 4번함 111번함 계획으로 부활하지만, 그마저도 예산부족으로 건조 중에 취소되어 버렸다. [7] 게다가 이들은 전부 16인치(일본 기준 410mm) 구경의 강력한 주포를 사용하는 전함들이다. 16인치급 주포를 탑재한 전함들은 태평양 전쟁 당시에도 각국의 몇 안되는 귀중한 전력이었다. [8] 콜로라도급 전함 4척,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6척, 렉싱턴급 순양전함 6척. [9] 프랑스도 경제규모가 크지만 해군은 작은 편이어서 제외. [10]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1번함 퀸 엘리자베스를 제외하면 슬슬 전시체제에 들어가는 1915년~16년에 취역한다. 아예 전쟁중에 건조한 리벤지급 전함은 제외 [11] 리벤지급과 마찬가지로 전쟁중에 건조한 리나운급 순양전함은 제외 [12] HMAS 오스트레일리아(Australia)-1911-와 같은 영연방 소속 군함도 포함했다. [13] 쾨니히급 전함. 쾨니히급은 전쟁 직후 취역하게 된다. [14] 데어플링어급 순양전함. 다만 3번함 힌덴부르크는 설계 변동으로 취역이 1917년에 이루어져 유틀란트 해전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15] 참고로 독일은 14인치 이상의 거포 개발이 늦어져서 독일 최초의 슈퍼 드레드노트급은 바이에른급 전함이다. [16] 뉴멕시코급 전함. 테네시급 전함 콜로라도급 전함 제1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이후에도 완공이 안되었으니 제외. [17] 카와치급 전함 2척,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 히에이. 건조중이었던 함들은 후소급 전함과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 기리시마. 이세급 전함은 1915년부터 건조했다. [18] 브르타뉴급 전함. 프랑스의 고질적인 느린 건조 속도로 전쟁 후반에 취역한다. [19] 이름 이상 실제 88함대와의 연관성이 전혀 없으며 이 함대의 구성이 어떻게 되있는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이 함대가 속한 지구연방군은 작품 외적으로 2차세계대전 연합군+냉전기 이후 서방군에서 모티브를 가지는데 정작 연방과 대치하는 지온군은 추축국에서 모티브를 얻은 세력인 것을 보면 기묘하다. [20] 좋게 말하면 아들을 가르치는 아버지처럼, 솔직히 표현하면 '사냥개를 가르치는 주인처럼'. [21] 이에 대비하여 영국 해군이 '세계 최대의 함대'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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