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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18:36:54

전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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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창덕-26659-0001_1.jpg
첫번째 전어도 창덕26659 고궁박물관 촬영
파일:창덕-26660-0001_1.jpg
두번째 전어도 창덕26660 고궁박물관 촬영
傳御刀

1. 개요2. 특징3. 대중매체4. 여담

1. 개요

고려 말~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도검 2자루. 창덕궁에 소장되었던 검들이다. 전어도(傳御刀)라는 명칭은 '어물(御物: 임금이 사용하는 물건)이라고 전(傳)해지는 칼(刀)'이란 뜻으로, 이름처럼 왕의 칼이라고 추정한다. 다만, 정확한 제작연대와 사용자는 전부 불명확하다. 링크 이 검 2자루 모두 창덕궁에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서 소장 중이다. 전시품목이 종종 바뀌어서 전시를 안할 때도 많다.

2. 특징

파일:창덕-26659-0001_2.jpg
도신과 손잡이를 분해한 사진, 창덕26659-1, 국립고궁박물관제공

한국 도검의 특징적인 양식을 지녀 역사성과 학술성, 예술성을 인정받는다.

검 두 자루 모두 길이는 무려 147cm에 달하고 칼날 길이는 92.0cm, 자루 길이는 55cm 칼집 길이도 103cm에 이르는 거대한 장검이다. 크기 체감[1] 손잡이는 상어 가죽으로 감싸고 머리에는 용의 머리를 조각했는데, 채색한 뒤 붉은색 매듭 끈을 드리워 장식했다. 검의 끝부분이 역날검처럼 생겨 오해하기 쉽지만, 휘어진 부분에 날이 서있고, 역날검은 아니며 끝 부분만 양날인 의사도의 형태를 취하였다.

크기를 볼 때 실전용이 아닌 지휘도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데[2] 이웃한 일본에 크기가 비슷한 오오타치 쌍수도 같은 무기도 등장하니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파일:c0036507_48c7f807da021.jpg
발해고분에서 발견된 도검
파일:발해전어도.jpg
위 사진은 러시아 체르냐찌노(Chernyatino)에 있는 발해고분에서 발굴된 두 동강 났던 도검 사진을 하나로 이어 붙인 뒤 전어도와 대조해 놓은 것이다. 전어도와 마찬가지로 끝부분이 양날에다 전체적인 형상이 거의 동일하고 도신의 길이도 85cm로 전어도와 상당히 유사하다. 다만, 발해도검유물의 경우 슴베가 조선 것에 비해 매우 짧다.

전체적인 형상은 다르지만, 일본 정창원에서 보관 중인 당태도[3] 유물 중에서도 전어도처럼 끝부분만 양날인 것이 존재한다.[4]

3. 대중매체

위화도 회군 이후엔 이성계가 갑옷 입고 무장하고 등장하는 장면이 거의 없어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상왕이 된 이후 함흥본궁으로 이동할 때 등장. 이 때는 직접 들고다니지 않고, 내관처럼 보이는 수행원이 들고 따라다닌다.
이후 조사의의 난이 일어난 후 조사의가 이성계의 지지의 증거로 하사받아 사용한다. 가끔 지휘할 때 꺼내서 휘두르는 정도. 막판에 전황이 몰려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자 자결용으로 사용하려 하지만 그 전에 화살을 맞고 실패. 다만 자결시도 때는 초반의 이성계와 달리 날 방향이 제대로 되어있다.

4. 여담



[1] 후술하겠지만 이성계가 사용했던 검인지는 불확실하다. [2] 현대에 검술을 수련하는 이들 상당수가 1m 남짓한 카타나에 익숙하기에, 기타 도검이 자신들이 다루기엔 불편한 길이라면 다소 쉽게 의장용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3] 당나라 시절의 무기로 일본도의 외부 장식에 영향을 주었다. [4] 파일:정창원_당태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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