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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21:10:13

전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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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창덕-26659-0001_1.jpg
첫번째 전어도 창덕26659 고궁박물관 촬영
파일:창덕-26660-0001_1.jpg
두번째 전어도 창덕26660 고궁박물관 촬영
傳御刀

1. 개요2. 특성3. 대중매체4. 여담

1. 개요

고려 말~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되는 도검 2자루. 창덕궁에 소장되었던 검들이다. 전어도(傳御刀)라는 명칭은 '어물(御物: 임금이 사용하는 물건)이라고 전(傳)해지는 칼(刀)'이란 뜻으로, 이름처럼 왕의 칼이라고 추정한다. 다만, 정확한 제작연대와 사용자는 전부 불명확하다. 링크 이 검 2자루 모두 창덕궁에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서 소장 중이다. 전시품목이 종종 바뀌어서 전시를 안할 때도 많다.

2. 특성

파일:창덕-26659-0001_2.jpg
도신과 손잡이를 분해한 사진, 창덕26659-1, 국립고궁박물관제공


한국 도검의 특징적인 양식을 지녀 역사성과 학술성, 예술성을 인정받는다.

검 두 자루 모두 길이는 무려 147cm에 달하고 칼날 길이는 92.0cm, 자루 길이는 55cm 칼집 길이도 103cm에 이르는 거대한 장검이다. 손잡이는 상어 가죽으로 감싸고 머리에는 용의 머리를 조각했는데, 채색한 뒤 붉은색 매듭 끈을 드리워 장식했다. 검의 끝부분이 역날검처럼 생겨 오해하기 쉽지만, 휘어진 부분에 날이 서있고, 역날검은 아니며 끝 부분만 양날인 의사도의 형태를 취하였다.

크기를 볼 때 실전용이 아닌 지휘도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데[1] 이웃한 일본에 크기가 비슷한 오오타치 쌍수도 같은 무기도 등장하니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파일:c0036507_48c7f807da021.jpg
발해고분에서 발견된 도검
파일:발해전어도.jpg
위 사진은 러시아 체르냐찌노(Chernyatino)에 있는 발해고분에서 발굴된 두 동강 났던 도검 사진을 하나로 이어 붙인 뒤 전어도와 대조해 놓은 것이다. 전어도와 마찬가지로 끝부분이 양날에다 전체적인 형상이 거의 동일하고 도신의 길이도 85cm로 전어도와 상당히 유사하다.

전체적인 형상은 다르지만, 일본 정창원에서 보관 중인 당태도[2] 유물 중에서도 전어도처럼 끝부분만 양날인 것이 존재한다.[3]

3. 대중매체

위화도 회군 이후엔 이성계가 갑옷 입고 무장하고 등장하는 장면이 거의 없어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상왕이 된 이후 함흥본궁으로 이동할 때 등장. 이 때는 직접 들고다니지 않고, 내관처럼 보이는 수행원이 들고 따라다닌다.
이후 조사의의 난이 일어난 후 조사의가 이성계의 지지의 증거로 하사받아 사용한다. 가끔 지휘할 때 꺼내서 휘두르는 정도. 막판에 전황이 몰려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자 자결용으로 사용하려 하지만 그 전에 화살을 맞고 실패. 다만 자결시도 때는 초반의 이성계와 달리 날 방향이 제대로 되어있다.

4. 여담



[1] 현대에 검술을 수련하는 이들 상당수가 1m 남짓한 카타나에 익숙하기에, 기타 도검이 자신들이 다루기엔 불편한 길이라면 다소 쉽게 의장용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2] 당나라 시절의 무기로 일본도의 외부 장식에 영향을 주었다. [3] 파일:정창원_당태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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