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775C4 0%, #4b92db 20%, #4b92db 80%, #2775C4)" {{{#!wiki style="margin: 0 -10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25px"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폴 앙리 스파크 | 오스왈도 아라냐 | 호세 아르세 | 허버트 에바트 | |
제5대 | 제6대 | 제7대 | 제8대 | |
카를로스 로물로 | 나스롤라 엔테잠 | 루이스 파딜라 네르보 | 레스터 피어슨 | |
제9대 | 제10대 | 제11대 | 제12대 | |
비자야 락슈미 판디트 | 엘코 판 클레펜스 | 호세 마사 페르난데스 | 루데신도 오르테가 |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제16대 | |
완 와이타야꼰 | 레슬리 먼로 | 샤를 말리크 | 빅토르 안드레스 벨라운데 |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프레더릭 볼런드 | 몽기 슬림 | 무하마드 자파룰라 칸 | 카를로스 소사 로드리게스 | |
제21대 |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
알렉스 퀘이슨새키 | 아민토레 판파니 | 압둘 라만 파즈와크 | 코르넬리우 머네스쿠 | |
제25대 | 제26대 | 제27대 | 제28대 | |
에밀리오 아레날레스 과탈란 | 앤지 브룩스 | 에드바르 함브로 | 아담 말릭 |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제32대 | |
스타니스와프 트레프친스키 | 레오폴도 베니테스 |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 가스통 토른 | |
제33대 | 제34대 | 제35대 | 제36대 | |
해밀턴 셜리 아메라싱게 | 라자르 모이소프 | 인달레시오 리에바토 | 살림 아흐메드 살림 | |
제37대 | 제38대 | 제39대 | 제40대 | |
뤼디거 폰 베흐마르 | 이스마트 키타니 | 홀러이 임레 | 호르헤 일루에카 | |
제41대 | 제42대 | 제43대 | 제44대 | |
폴 루사카 | 하이메 데 피니에스 | 후마윤 라시드 초우두리 | 페터 플로린 | |
제45대 | 제46대 | 제47대 | 제48대 | |
단테 카푸토 | 조지프 난벤 가르바 | 귀도 데마르코 | 사미르 시하비 | |
제49대 | 제50대 | 제51대 | 제52대 | |
스토얀 가네프 | 루디 인새널리 | 아마라 에시 | 디오고 프레이타스 도 아마랄 | |
제53대 | 제54대 | 제55대 | 제56대 | |
라잘리 이스마일 | 헨나디 우도벤코 | 디디에르 오페르티 | 테오벤 구리랍 | |
제57대 | 제58대 | 제59대 | 제60대 | |
하리 홀케리 | 한승수 | 얀 카반 | 줄리언 헌티 | |
제61대 | 제62대 | 제63대 | 제64대 | |
장 핑 | 얀 엘리아손 | 하야 라셰드 알할리파 | 스르잔 케림 | |
제65대 | 제66대 | 제67대 | 제68대 | |
미겔 데스코토 브로크만 | 알리 트레키 | 요제프 다이스 | 나시르 엘나세르 | |
제69대 | 제70대 | 제71대 | 제72대 | |
부크 예레미치 | 존 윌리엄 애시 | 샘 쿠테사 | 모겐스 뤼케토프트 | |
제73대 | 제74대 | 제75대 | 제76대 | |
피터 톰슨 | 미로슬라우 라이차크 | 마리아 페르난도 에스피노사 | 티자니 무하마드반데 | |
제77대 | 제78대 | 제79대 | 제80대 | |
볼칸 보즈크르 | 압둘라 샤히드 | 쾨뢰시 처버 | 데니스 프랜시스 | |
제81대 | ||||
필레몬 양 |
}}} 유엔 사무총장}}}}}}}}}}}} |
1. 개요
Jean Ping2008년부터 2012년까지 아프리카 연합의 의장을 역임한 가봉의 외교관 겸 정치가. 중국인과 가봉인의 혼혈이다.
2. 생애
1942년 11월 24일 가봉 에팀부에현 옴부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국인인 청즈핑(程志平)인데 프랑스 각지를 전전하다가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가봉에서 어머니를 만나 그가 태어났다. 아버지의 성은 청(程, Cheng)씨인데 현지 주민들이 성을 뒷글자인 핑(平, Ping)으로 착각해서 졸지에 성이 Ping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1987년에는 방중하여 94세였던 고모와 상봉하기도 하였다. 모국어로는 가봉의 국어인 프랑스어를 쓴다.보기 드문 중국인과 흑인간의 조합이라 그런지 낯설면서도 왠지 친근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중국계라 친중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하며 스스로를 용의 후예라 칭한다고 한다. 그러나 2013년 가봉에서 반중 여론 및 정부 정책으로 인해 중국인으로 묶여서 욕을 먹었으며 가봉 정부가 중국 기업의 자원개발권 회수를 시작하자 이를 반대하다가 중국인의 돈에 매수당했다, 중국인으로 자부하기에 가봉을 팔아먹는 반칭총이라는 온갖 비난을 들으면서 가봉에서의 입지가 타격을 받았고 거리에서 반칭총은 중국으로 꺼지라는 비난과 욕설까지 들었다고 한다. 결국 이렇게 되자 그도 물러서서 가봉 정부 및 여론을 옹호하면서 친중적인 태도에서 돌아섰다.
2016년 9월에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현 가봉 대통령 알리 봉고 온딤바에게 패배했다. 그는 알리 봉고의 재선을 부정선거라고 비난하며 재검표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