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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그리고 황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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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 대체역사, 타임슬립, 코믹, 드라마 |
작가 | 정이리이리 |
연재처 | 카카오웹툰 ▶ |
연재 기간 |
시즌1: 2017. 02. 07. ~ 2017. 06. 20. 시즌2: 2017. 07. 25. ~ 2018. 01. 02. 시즌3: 2018. 02. 27. ~ 2019. 02. 12. 시즌4: 2019. 02. 19. ~ 2021. 02. 23. |
연재 주기 | 화 |
이용 등급 | 전체 이용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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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대체역사 웹툰. 작가는 <잡초이야기>, < 오!솔로>, < 세자전>의 작가인 정이리이리.다음 웹툰에서 한성 1905 다음으로 나온 대체역사물. 빙의물과 타임슬립이 섞였다.
2. 줄거리
영혼이 바뀐 고종과 태종, 그들은 조선을 바꿀 수 있을까?
― 다음 웹툰 소개
조선시대의 초기와 말기를 배경으로 무능한
고종과 유능한
태종의 영혼이 시대를 뛰어넘어 서로 뒤바뀌는 역사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음 웹툰 소개
- [스포일러] ▼
- 이후 회차가 진행되면서 없었던 사건들, 러일전쟁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쟁, 김옥균이 타고 있던 배의 침몰과 같은 사건이 생기고 현실과 틈이 점점 벌어진다.
3. 연재 현황
다음 웹툰에서 2017년 1월 31일부터 매주 화요일에 연재됐다.2019년 2월 12일 시즌3 종료 후 휴재기간 없이 2019년 2월 19일부터 바로 시즌 4을 연재했으며 2021년 2월 23일에 완결했다.
4. 등장인물
4.1.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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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본작의 주역 1. 경술국치 이후 궁궐에서 자신의 무능함과 왕의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한탄하며 울부짖는다. 그 다음날 종묘로 가 그곳에 모셔진 선왕들의 위패에 사죄의 절을 하는데, 태종의 위패 앞에서 자신이 아니라 태종이 왕의 자리에 있었더라면 조선이 비참하게 무너지지 않았을거라며 밤새 자책한다. 그러다가 과로로 쓰러져 태종의 치세인 15세기 초반으로 타임슬립한다. 자신의 몸이 태종의 몸으로 바뀐 것을 알고 양녕을 폐세자하고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만드는 것에는 성공하지만, 대마도 왜구를 토벌한 후 일본본토까지 들어가다가 43화에서 부상을 당한다. 무의식 중에 태종의 영혼을 만나 조선과 대한의 운명을 제발 구해달라고 애원한다. 그렇게 태종에게 왕의 자질을 배워가며 태종과 함께 개혁을 해나가면서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태종의 영혼이 사라진 뒤에도 현실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계속 개혁을 해나간다. 태종이 사라진 이후 청 VS 연합군 전쟁이나 그 이후 전개를 보면 그 유약하고 태종 옆에서 징징거리며 고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일처리를 매우 빠릿빠릿하게 하고 있다. 다만 이쪽도 사람이고 예정대로 흘러가지 않고 개변된 역사가 마냥 한국에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어서 힘들어하는 모습도 간혹 보이지만 큰 사고는 안 내려고 노력중. 하지만 러시아와의 전쟁 중 일본 측의 대한제국군 포격에 대해 정보수집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일본측을 추궁해 한국이 불리한 상황으로 몰리게 하는 실수를 하기도 한다. 그래도 우유부단함이 상당 부분 사라져 근대화의 속도가 실제 역사보다 빨리 진행되고, 특히 군사 부분에서 여러 성과[1]를 거두고 있기 때문에 이 세계관에서의 고종은 근대화에 성공하면 메이지 덴노처럼 명군으로, 근대화에 실패해도 숭정제처럼 동정을 받는 망국의 군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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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본작의 주역 2. 고종의 재위기인 19세기 후반으로 타임슬립한다. 고종으로 바뀐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이것도 왕의 얼굴이냐며 탄식하며 고종을 질책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온 시기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신하들에게 실록을 가져오게 한 후 그 실록을 밤이 새도록 읽으며 현19세기의 상황을 파악한다. [3]. 자신이 온 시대의 상황을 파악한 후 여러 개혁을 시도하고 일본과의 조약에서도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고종이 일본정벌 중 갑자기 부상을 당한 것에 영향을 받아 고종의 육체를 가진 자신도 무의식 상태가 된다. 시즌 3에서는 구한말 조선을 구원해달라는 후손 고종의 애원과 간청에 못이겨 고종과 함께 구한말로 가 고종과 몸을 공유하며 개혁을 하면서 고종에게 왕으로서의 마음가짐과 통치방식을 기초부터 하나씩 다시 가르쳐준다.[4] 조선 초에 남겨져있던 부상당한 태종의 몸은 의식을 찾지 못한 채 실제 역사대로 1422년 사망하고 그러자 고종과 함께하던 태종의 영혼도 사라진다.
4.2. 조역
4.2.1. 태종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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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
망나니였던 실제 역사의 양녕대군과는 다르게 놀기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 본성은 올곧은 인물로 나온다.[5] 공부도 하면은 잘 하는 듯 하다. 어지간하면 역사를 그대로 이을 필요없이 양녕을 세자로 두면 되지만, 다음 왕이 조선을 넘어 한반도 역사상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임금이다 보니 태종 몸으로 바뀐 고종은 실제 역사대로 진행되도록 양녕을 의도적으로 푸대접하고 동네 선비들을 시켜다 양녕과 놀게 한다. 이를 알게 된 양녕대군은 분노하다가 반역을 도모하게 되지만, 산적 두목의 밀고로 발각되어 사형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38화에서 충녕대군의 변호와 증거불충분으로 인해 풀려나고 유배형에 처해진다. 38화 끝부분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자신의 조카들인 어린 시절의 진평대군과 안평대군에게 "조선에서는 마땅히 어질고 현명한 이가 왕이 되어야 한다"면서 "만약 왕이 어질고 현명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훗날 실제 역사에서 양녕대군이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지지한 것을 염두에 둔 묘사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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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녕대군
태종의 셋째 대군으로, 훗날의 세종대왕이다. 양녕대군의 반역모의가 발각되자 양녕대군을 변호해 유배형으로 끝나게 하고 그 후 태종의 책봉을 받아 세자가 되고, 곧 왕위에 오른다. 참고로 28화에서 (태종이 된) 고종이 술자리에서 양녕대군의 폐세자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말할 때 다른 왕자들이 식은땀을 흘리거나 놀라는 것과 달리 태연한 표정으로 고기를 씹는다. 충녕대군이 철저하게 자신의 야망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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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조
예조 참의. 2화에서 태종에 빙의한 고종에게 정안왕후의 혼전제례(魂殿祭禮)를 유명일별제례(有名日別祭禮)에 의하게 해달라고 청하는 모습으로 잠깐 등장한다. 고종에게 윤허받은 후 고종이 나가라고 하지 않자 당황한다. 고종도 속으로 왜 나가지 않냐고 당황하는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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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3화에서 태종에 빙의한 고종에게 매사냥을 청하는 것으로 첫 등장. 고종이 타임슬립한 시점에서는 퇴위하여 상왕으로 물러나있다. 5화에서 창덕궁 후원의 술자리에 참석하는 모습으로 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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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무
우정승. 3화에서 태종에 빙의한 고종에게 사직을 청하는 모습으로 잠깐 등장한다. 괜히 사직을 윤허했다가 역사가 바뀔 것을 염려한 고종에게 사직을 불허받는다. 실록에도 만화와 동일하게 태종이 조영무의 사직을 윤허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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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휼
원경왕후의 동생이자 태종의 처남. 31화에서 첫 등장. 태종을 몰아내려는 외조카 양녕이 민무구, 민무질의 복수를 해주겠다며 도움을 청하자, 수락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38화에서 반역모의를 발각당해 잡혀온 양녕이 충녕의 변호를 듣고 자신은 반역모의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변론하자, 이에 따라 자신이 역모를 꾸몄다고 양녕을 변호해주고 이후 원주로 안치된다. 유배 나흘 뒤 유배지에서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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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회
원경왕후의 동생, 태종의 처남이자 민무휼의 동생. 31화에서 첫 등장. 태종을 몰아내려는 외조카 양녕이 민무구, 민무질의 복수를 해주겠다며 도움을 청하자, 수락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38화에서 국문 중에 민무휼이 자신이 반역을 모의했다며 태자를 변호하자 당황하나 결국 같이 세자를 변호해준다. 국문 후 충주로 안치[7]된다. 유배 나흘 뒤 유배지에서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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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인
병조참판. (태종에 빙의한) 고종의 일본정벌 결정에 반대했다가 고종에게 찍혀 국문을 받고 유배 후 사사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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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3인조
6화에서 주점에 들어오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 건달들. 길을 거닐다가 태종에 빙의한 고종에게 양녕과 어울리라는 명을 받는다. 그 후 한 동안 양녕과 어울려 놀다가 16화에서 자신들이 고종(이 빙의한 태종)의 명으로 양녕과 어울려 논 것이라 털어놓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양녕이 고종에게 따지자, 17화에서 양녕과 같이 길을 걷는 도중 고종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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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적 두목
양녕대군 일행의 짐을 털려 했던 산적무리의 두목.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양녕대군의 말에 넘어가 한동안 가담하지만, 자신들이 쳐야 하는 상대가 다름 아닌 태종이라는 것을 깨닫고 양녕의 반역을 밀고한 후 어디론가 사라진다.[8]
그외에도 박만과 임순례가 작중에서 잠깐 언급되는데, 3화에서 대간들의 발언을 통해 처벌을 받아야하는 인물로 언급된다. 이 둘이 조사의의 난에 참여했기 때문. 작중에서는 태종에 빙의한 고종이 불허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실록에서도 이 둘의 처벌 요청이 계속 이뤄지지만 그때마다 태종이 불허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4.2.2. 고종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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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처음에는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아들 고종을 못미더워하는 모습으로 등장. 그러나 실제 역사와 다르게 아들 고종이 굳고 일관적인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하며 별달리 태클을 걸지 않는다. 며느리 명성황후와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고종이 흥선대원군의 입궁을 막은 것도 명성황후가 충동질을 한 거라고 생각하여[9] 이에 앙심을 품고 명성황후의 친오빠인 민승호에게 선물로 위장한 폭탄을 보내줌으로써 민승호와 그의 노모, 그리고 그 가족들을 죄다 폭사시켰다. 그리고 단발령에 관해서 김옥균이 갔는데 우연히 그 날 밤에 죽어서 김옥균이 죽였다는 소문이 들리게되 김옥균이 자진해서 사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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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실제 고증을 잘 살려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10화에서 감히 임금을 험담한 나인의 따귀를 사정없이 후리면서 그 나인의 혀를 뽑아버리라는 명령을 내리는 임팩트있는 첫 등장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왕세자 순종을 위한 명목으로 궁에서 굿을 하는 장면도 제대로 나오고,[10] 천하의 개쌍년, 탐관오리의 끝판왕 수준으로 묘사되며 어지간해서는 실드를 쳐주거나 미화하는 을미사변조차 궁녀들을 인간방패로 삼는 등의 쓰레기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고종으로 빙의한 태종은 그런 민씨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경계하며 자기 처남을 쳐냈을 때처럼 일단 지금은 대원군부터 쳐내주고, 그 다음은 민자영 네년의 차례가 될 것이다.라는 숙청을 생각했다[11]. 흥선대원군과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 그리고 민승호를 죽인 원한을 잊지 않아서 원세개가 조선에 머물렀을 당시, 그를 사주하여 대원군과 그 일파를 죽이라 요청을 하였으며 나중에는 대원군이 민승호에게 했던 것처럼 명성황후도 대원군에게 폭탄 선물을 보내 그를 죽이려고 했다. 작중 바뀐 역사에서는 을미사변이 실패해 죽지는 않았다.[12]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살아 있을 때 황후가 되지만, 각성한 고종에게 눌려 결국 비선실세로 움직이던 세월도 다 지나가버리고 결국 찍소리 못하는 입장이 되고 만다.[13] 160화에 재등장하여 황태자(순종)의 심정을 좀 헤아려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맡겨 달라고 하는데, 이에 순종이 의회 설립에 참여하게 된다. 162화에서 다시 등장하여 의회 설립을 반대하지만, 역사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는 고종의 설득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조일전쟁이 발발하고 황태자가 포로로 잡히고 구명을 요청함에도 이겨야하기에 고종이 교섭에 응하지 않자 자신을 담보로 황태자를 구하기 위해 몰래 한성을 나서 황태자가 잡힌 평양으로 향하지만 조선 게릴라의 일본군 습격에 휘말려 총에 맞았고 게릴라들이 수습해 데려가지만 곧 사망한다. 그 게릴라들도 일본군의 소탕 작전에 큰 피해를 입고 철수해버려 진상이 어둠에 묻혔고 이후 일본군이 유감을 표하며 수습한 시신을 양도했기에 역사에는 일본군에 의해 죽은 것으로 기록될 듯 하다.[14] 그래도 그 희생으로 황태자는 구했으니 여한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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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원래 역사랑 다르게 고종(으로 빙의한 태종)이 근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준 덕분에 갑신정변이 일어나지 않았고, 본인 또한 중용되면서 총리대신까지 오르게 된다. 허나 단발령 관련 문제로 흥선대원군을 찾아간 직후, 흥선대원군이 사망하게 되자 전국적으로 김옥균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사임하게 된다.[15] 하지만 완전히 관직에서 물러난 것이 아닌 첩보원들을 육성하는 자리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들의 실질적 수장이 된 상태다. 그리고 결국 정식으로 귀환하여 고종 밑에서 다시 중신으로 일하며, 여러 외교관들이 모여 협상하는 자리에 끼어 이런저런 활약을 벌인다. 127화에서 일본으로 보낸 첩보원들의 신변을 확인하기 위해 일본과의 군사적 협력요청을 명목으로 파견되어 130화에서 고문에 못이겨 일본에 잡혀있던 첩보원과 재회한다. 133화에서 대한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귀국선에 탑승하나, 135화에서 돌아가는 도중 탑승한 배가 폭발하는 사고에 휘말린다. 작중에서 일본 의원들이 김옥균의 처리에 대해 논의하는 것, 133화에서 이토 히로부미 옆에 있던 인물이 이토 히로부미에게 김옥균을 그냥 보내도 괜찮냐고 묻자 이토 히로부미가 고심하는 것을 볼 때 이토 히로부미가 폭발물 설치를 지시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158화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해당 사건을 회상하면서 과격파를 솎아낼 것이라고 독백한 것을 보아 과격파들이 저지른 일로 밝혀졌다. 참고로 김옥균이 타고 있던 배는 영국 국적의 상선이었다!
그렇게 행방불명되면서 사망처리되나 했지만, 143화에서 제주도에서 영국 상선의 생존자들과 함께 어부로 지내면서 생존해 있는 것이 확인됐다. 그리고 드디어 153화에서 고종에게 함녕전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생존을 알린다! 이후 김옥균은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타임즈를 통해 영국의 타임즈 기사[16]에 대한 반박 인터뷰를 하고, 이에 타임즈에서는 일본측으로 변절한 대한제국 첩보원[17]의 인터뷰로 재반박 기사를 낸다. 세계의 다른 신문들에서도 기사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고, 영국 측에서 조사단을 파견을 통보한 상황. 일본과의 밀약으로 영국 조사단이 일본의 손을 들어주자 미국을 떠나 일본으로 들어간다. 이후 일본인으로 변장하여 일본의 안에서 반전여론 형성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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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실제 역사에서는 을사오적 중 한 명인 그 이완용이다. 41화에서 고종에 빙의한 태종에 의해 답안지[18]가 선택되어 장원급제한 후 중용되어, 매국노로 낙인 찍힌 실제 역사와는 달리 일본 낭인의 궁궐습격 사건이 일어나 조선과 일본 양국에 분쟁이 생기자 고종에게서 영국으로 가 중재단 파견을 요청하라는 임무를 받고 이를 충실히 수행하는 등의 활약을 한다. 돌아온 고종에게는 회귀 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내색하지는 않지만 끝없이 충성심을 의심받고 있다. 아직까지 매국을 하지 않고 있는 건 애초에 기회주의자인 인물이 아직은 조선을 배신할 이유가 없어서인 듯. 하지만 최근 들어 일본 입장을 고려하는 묘사가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총리직을 사퇴했다. 이후 한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당하자 친일적 성향을 드러냈고, 홍영식에 의해 목이 꺾여 처단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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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태종에게 참교육(?) 받은 고종이 강단있게 개혁을 추진하자 이를 지지하는 유림 거물로 나온다. 심지어 실제 역사에선 목숨을 걸고 반대했던 단발령을 101화에서 스스로 나서서 시행한다. 자신의 유학은 국가와 백성, 주군을 위한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고종의 단발령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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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익
156화에서 관료들이 의회의 설립을 논의하는데, 민영익은 반역으로 간주되는 것을 무릅쓰고 고종을 설득하겠다고 한다. 이후 158화에서 죽을 각오를 하고 고종에게 의회 설립을 제안한다. 놀랍게도 159화에서 고종이 민영익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의회 설립을 승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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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작품 초반부에 아기인 모습으로 처음 등장했다가, 72화에서 왕이 되었을 때 어지러운 세상을 감당할 수 있을지, 아니 왕이 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이후 73화에서 큰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아버지 고종에게 왕이 되기에 모자라다는 걱정을 말한다. 이에 고종은 왕이 되어 만들고 싶은 조선의 모습을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한다. 김홍륙 독차 사건이 벌어지지 않아 아직까지 건강 상태는 크게 나쁘지 않은 듯.[19] 158화에서 오랜만에 등장했는데, 고종에게 문안인사를 갔다가 한심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성정각으로 돌아와 고종이 자신을 후계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책상에 쌓여있던 제왕학에 대한 책들을 엎어버린다. 이후 161화 끝부분에 대신들의 의회설립에 같이 관여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그런다음에는, 고종의 명으로 대신 대중들의 앞에서 의회 설립에 대한 연설을 하기 직전에 비록 소심한 성격에 주춤하지만 노력하려고 하는등 점차 나아져가는 모습을 보인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우유부단한 성격 덕분에 훌륭한 전재군주는 되지 못할 것이라 하지만 대신 훌륭한 입헌군주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조일전쟁에서도 무섭지만 아버지가 나를 믿고 맡기신 일[20]이라며 팔도를 돌며 국민들에게 전의를 불어넣는 일을 수행했다. 그리고 평양에 도착하고 얼마 안 가 일본군에게 발각, 다리에 총을 맞은 채 포로로 잡히고 교섭재료로 활용되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무사히 송환된다. 이후 고종의 뒤를 이어 사망하게 되지만 연이은 두 황제의 죽음으로 백성들의 분노가 들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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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
실제 역사대로라면 아관파천 당시 주한 러시아 공사. 여기서도 실제 역사처럼 고종과 상당한 친분이 있는데 러시아의 공사로서가 아닌 개인적으로서 고종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허나 고종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결국 스페에르가 새로 러시아 공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러시아로 귀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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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히로부미
일본 측의 총리 대신. 대한제국을 천천히 합병하려는 야심을 품으며 계속 도발하지만, 현실적이었던 행보를 반영하여 대한제국과의 전면전은 자제하려는 모습을 보이며, 일본 측 강경파들이 대한제국에게 강경한 대응을 하자고 얘기하자 때가 아니라며 제어하려 한다. 대표적인 예로 대한제국에 파견된 일본군이 러시아와의 교전 중 대한제국군에 의도적으로 포격을 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회의 의원들에게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며 꾸짖는 것이 있다. 158화에서 귀국선 폭파건으로 영국에서 조사단이 오기로 하자 과격파들을 솎아내기로 결심한다. 이후 역사가 을사조약이 체결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도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안중근 의사가 어떻게 활약할지도 궁금한 부분. 그리고 실제 역사와 달리, 결국엔 과격파들의 쿠데타로 죽을 확률이 높다. 현재는 예상한대로, 쿠데타로 인해 잡혀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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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 헤이하치로
실제 역사에서 러일전쟁에서 활약했던 그 도고 헤이하치로가 맞다. 122화에서 일본 연합함대 사령관으로 등장해 러시아의 조선침공에 대한 대비책을 제시한다. 135화에서는 뤼순에 주둔해있던 일본 측 해군제독으로 등장. 본국으로부터의 이동명령을 받고, 육군에서는 왜 독단적으로 그런 짓을 했냐며 불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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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2세
실제 역사처럼 그리고리 라스푸틴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러시아 제국과 영국-대한제국-일본 연합군의 전쟁도 라스푸틴의 조언으로 전쟁을 결정한다. 러시아군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강행하고, 실제 역사처럼 쓰시마 해전에서 발트함대가 궤멸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와 달리 전쟁이 서로 대등한 입장의 종전선언으로 끝나면서 피의 일요일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21] 그런데 175화에서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지만, 그리고리 라스푸틴과 여러 러시아 관료들이 살해당하는 등 내전의 스케일이 확대되어 볼셰비키가 일찍 권력을 장악했다고 나온다. 라스푸틴이 죽은 것은 확실하지만, 적백내전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니콜라이 2세를 비롯한 차르 일가가 살해당한 여부는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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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7세
156화에서 처음 등장. 김옥균의 생존이 밝혀지면서 영국 상선 폭침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정부에 명령한다. 이에 아서 밸푸어 총리는 대한제국과 일본에 조사단 파견을 통보한다.[22]
5. 실제 역사와 다른 점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웹툰이지만 만화적 재미를 위해 각색하거나 스토리 진행상 각색된 부분이 있다.- 1화에서 경술국치 이후 광화문 뒤에 건설 중인 조선총독부 청사의 모습이 나온다. 총독부 건물은 1916년 건설을 시작해서 1926년에 완공했다.
- 작중에서는 양녕대군이 본심은 올곧은 세자였지만 아버지 태종의 홀대로 낙심한 것으로 등장하며, 태종(몸이 바뀐 고종)이 잠깐 잘해주자 감동해서 열심히 공부하려 하는 등 사실은 괜찮은 놈인데 대우 때문에 비뚤어졌다는 식으로 묘사된다. 그러다 고종의 의도적인 홀대에 상처입고 반역을 시도해 폐세자가 된 것으로 나오지만, 양녕대군/생애 문서에서 보이다시피 실제로는 원래부터 온갖 말썽을 피우고 다니는 망나니였다.
- 경복궁 향원정의 취향교가 1953년 복원했을 때 모습이다. 1953년 복원한 취향교는 고종 당시의 모습과 위치가 달라서 2020년 재복원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5.1. 개변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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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
갑신정변이 일어나 김옥균이 숙청되는 대신, 고종의 중용을 받아 영의정에까지 오른다. 실제 역사에서는 친러ㆍ친미ㆍ친일을 오가며 기회주의를 엿보다가 결국 나라를 팔아먹었던 이완용도 엇나가지 않고 능신이 되어 고종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기도 한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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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조약
강화도 조약 제10조의 내용이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이 지정한 각 항구에서 죄를 범하였을 경우, 조선국에 교섭하여 인민은 모두 일본국에 돌려보내 심리하여 판결하고, 조선국 인민이 죄를 범하였을 경우 일본국에 교섭하여 인민은 모두 조선 관청에 넘겨 조사 판결하되 각각 그 나라의 법률에 근거하여 심문하고 판결하며, 조금이라도 엄호하거나 비호함이 없이 공평하고 정당하게 처리한다'는 내용에서 일본인이 조선의 항구에서 범죄했을 때 만일 조선과 관계되면 일본에 돌려보내어 수사, 판결하게 하며 조선인이 일본의 항구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일본과 관계되면 모두 조선에 돌려보내 수사, 판결하게 하되 각기 자기 나라의 법에 근거해 처리한다로 바뀌었으며 제12조로 일본과 조선은 국가적 차원의 군사 및 기술적 교류를 통하여 양국 간의 발전을 도모한다'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강화도 조약 중 불평등한 부분은 일본과 연합해서 러시아와 전쟁을 할 때 일본군 주둔을 용인하는 조건으로 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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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무휼 민무회 형제 숙청
실제 역사에서는 민무휼과 민무회가 양녕대군에게 민무구과 민무질의 죽음에 대해 한탄하다가 양녕의 고자질로 각각 원주와 청주로 유배당하고 원주 목사 권우(權遇)에게 자살을 권고[25]받고 죽었지만, 작중에서는 양녕의 반역모의에 동참하다 유배당하고 그 후 자살하는 것으로 개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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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의 심온 숙청
실제 역사에서 심온은 왕권을 확고히 다지려는 태종에 의해 당시 병조참판이었던 강상인[26]과 함께 사사당했다. 작중에서는 (고종이 빙의한) 태종의 일본정벌에 반대했다가 찍혀 자신과 함께 반대의견을 내비친 강상인과 함께 사사된 것으로 개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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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정벌
실제로는 대마도 정벌은 대마도의 반격으로 인한 피해를 본 뒤 대마도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끝나지만, 작중에서는 경술국치까지 경험한 고종의 개인적 원한이 겹쳐 빙의 태종이 직접 지휘하여 전투가 승리로 끝나며, 본토까지 쳐들어가지만 태종이 적군의 화살에 맞고 부상을 당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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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실각
흥선대원군이 실각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최익현의 상소의 경우, 이 만화에선 처음부터 (고종에 빙의한)태종이 뒤에서 조종한 것으로 묘사했다. 참고로 이렇게 여론을 만들어서 흔드는 방식은 실제 태종의 특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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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태종이 고종과 구한말로 돌아와서 고종의 의식이 돌아온 후, 고종(이 된 태종)이 근대화를 일찍 추진하여 갑신정변이 일어나지 않는 대신 갑오개혁 때 개혁 내용이 10년 일찍 실행된다. 개혁 재정 확보를 위한 조세의 금납화와 노비 제도 폐지도 이 때 이뤄지고, 일본의 차관으로 중앙은행을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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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조약
실제 역사처럼 1884년 청프전쟁으로 청군 대부분이 조선에서 철수하는데, 고종(이 된 태종)이 청일 간 균형을 위해 조선에서 대부분의 군대를 철수하는 것을 제안한다. 이에 따라 청일 양국의 주둔군 철수와 병력을 재파병 할 경우 청, 일, 조선 3국이 서로 통보하고 결정한다는 한성조약이 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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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군
별기군이 실제 역사보다 2년 빠른 1879년 창설된다. 태종과 고종이 구한말로 돌아온 후, 군제 개혁이 가속화되고 징병제를 실시하여 중앙군 10만, 지방군 15만, 예비군 25만의 군사를 1894년까지 양성하기로 한다. 일본의 무라타 소총을 본뜬 것이긴 하지만, 1885년에 일본의 지원으로 최초의 조선식 소총을 양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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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동학의 상소문을 받아들여 최제우의 신원을 회복하고, 동학을 정식 종교로 인정해주었다. 이에 따라 동학의 교리도 왕은 지극한 기운이 극에 이른 사람이며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황제를 신 바로 아래단계에 위치시킨 기독교 공인 직후의 로마제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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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령
을미사변이 미수로 끝난 직후, 단발령과 대한제국 선포가 같이 이루어진다. 단발령을 고종의 의지로 추진하며, 광화문에서 고종과 대신들이 모범을 보여 머리카락을 자른다. 단발령에 대한 반대세력을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실제 역사와 같았지만, 반대세력과 관료들 간 대화 창구로 공청회를 정기적으로 열었다. 이후 최익현이 고종의 뜻에 따라 단발령에 따르면서, 반대세력이 급격히 수그러들고 소수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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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부설
경부선과 현재 경의선 서울-평양 구간과 평라선 철도 건설이 먼저 착수된다. 러시아의 철도 부설 제안을 놓고 영국 공사에 조언을 구하는데, 러시아와 일본에 철도 부설을 동시에 맡기게 된다.[27] 경부선은 일본이 부설하여 완공되지만, 경의선 서울-평양 구간과 평라선 철도는 러시아가 부설하다가 도중 중단된다. 이후 이유가 러시아가 청나라와 밀약을 맺어 부동항과 철도를 확보했기 때문에, 조선의 철도 건설 필요성이 낮아져서 중단되었음이 밝혀진다. 최근 167화의 지도에는 이 철도와 경의선 평양-신의주 구간이 표시되어 있다. 아마도 대한제국에서 각각 완공, 새로 건설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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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 해군 양성
영국에서 12,000t급 군함 두 척을 구매한다. 함명은 광무호와 광제호이다.승조원 교육도 영국에서 담당하여 체계적으로 해군을 양성하게 된다. 이후 의화단 운동 진압에 일본과 연합함대로 참전하여 톈진항을 점령하는 전과를 올린다.[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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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
대한제국 시기에도 경복궁이 대한제국 황궁으로 계속 사용된다. 근정전, 사정전, 향원정, 건청궁이 등장한다. 고종 입장에서는 을미사변을 막았기 때문에 경복궁을 꺼릴 이유가 사라져서 그런 듯. 경운궁의 함녕전과 정관헌, 석어당도 등장하는데, 경복궁과 경운궁의 양궐 체제로 보인다.[29] 다만 정전인 중화전과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의 경우, 고종이 건축을 명령하거나 건축되고 있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점을 종합했을 때, 이 세계관에서는 실제 역사와는 달리 경운궁을 황궁으로 쓰기 위한 대대적인 확장 공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경복궁이 계속 정궁 역할인 듯 하다.[30] 그런데 황태자인 순종의 거처는 창덕궁 성정각으로 나온다. 경복궁, 경운궁, 창덕궁 모두 황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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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화단 운동
대한제국이 의화단 운동 진압에 개입한다. 진압이 아닌 치안 수습을 명목으로 500명의 기병대만 파병한다. 이후 배상금의 2%를 배분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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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일 vs 러시아 전쟁
동청철도 보호를 명목으로 만주에 20만 대군을 배치한 러시아에 맞서 대한제국이 동맹인 영국, 일본과 같이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나, 정한론을 못버린 일본의 통수로 인해 일본을 선제공격하고 김옥균을 잃는다. 다만 김옥균은 생존해 있으며, 일본과 교섭에서 대한제국에게 불리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존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시실이 밝혀진다. 이후 영국의 중재를 통해 다시 연합군으로 싸워서 이겼지만 예전의 역사와 달리 영국,일본과 함께 러시아와 동등한 위치에서 아무런 배상금이나 영토도 없이 종전선언을 하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결국 이를 계기로 한일간의 관계는 악화되어 후일의1903년한일전쟁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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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 설립
실제 역사에서는 독립협회가 추진한 의회인 중추원이 설립되었다가 곧바로 해산되었지만, 고종이 민영익의 의회 설립 제안을 받아들이고 황태자 순종을 의회 설립에 참여시킨다.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의회 설립을 시대의 흐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일본과 전쟁이 벌어지자 순종은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민심을 수습하고 있다.
- 성상께서 경복궁에서 붕어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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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의 죽음
원 역사와 다르게 일찍 죽는다. 이재명에게 암살 시도 당하는게 아니라 고종이 죽기전 이완용이 변절할 시 그를 죽이라는 명령을 받고 그 명령을 완수하려는 특임대신 홍영식에게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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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세계대전의 발발
고종과 순종이 연이어 자결로 생을 마감하고, 대한제국은 일본에게 점령당하지만, 일본의 확장을 막고자 청나라와 러시아가 대한제국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선전포고, 이에 영일동맹에 의해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일본편으로 참전하고 이후 미국이 대한의 해방과, 제국의 몰락이라는 명분으로 청과 러시아의 편으로 참전하게 되며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세계대전이 벌어진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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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동상의 내용
후기에 수록된 에필로그[33]에 의하면 (현실에서는 소녀상에 해당하는) 광화문의 동상으로 소녀상 대신 대일전쟁 때 일본에게 항거하다가 쓰러진 사람들+그 이후로 계속 저항하다가 쓰러진 민중들을 나타낸 동상이 세워졌다. 크게 보면 일제강점기 이후 해방되어 현재의 대한민국이 세워졌다는 흐름은 변하지 않았는데, 다만 일제강점기에 일본군 위안부가 동원되지 않은 듯한 정황으로 보아 일제강점기가 그다지 길지 않았거나 일제의 탄압이 덜 심하게 행해졌던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해당 동상에서는 고종과 순종이 특히 강조되어, 이 세계관에서는 (현실과 달리) 고종과 순종이 순교자로 기억되는 것으로 여겨진다.(헌데 광화문 동상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 외무성의 행태와, 거기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한국 외교부의 대처는 현실 반영이다.) 이 세계관에서는 광복 후 남북 분단이 되었는지, 만약 분단되었다면 남북통일이 이루어졌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6. 비판
리첼렌은 이 말을 남기기 3일 전, 대체역사물계에서 독보적인 매운맛 수위로 악명높은 연재작인 대통령 각하 만세의 기획 의도를 밝히며 수위를 더 높이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괴이신랄한 엔딩 덕분에 졸지에 가짜 광기가 된 꼴이 되어 이런 게시글을 남긴 듯 하다. 이 게시글에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의 작가 카르카손도 "세상에."라는 단 한마디 댓글을 달았다.사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이 작품의 괴악한 엔딩을 본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본 작품의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인들이 최면술을 썼다는 식으로 가정하고는[34] 대통령 각하 만세(=폭통)와 엮어서 "이완용을 시켜 우물에 콜레라균을 푸는 걸 시작으로 혁명을 명분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항구마다 기뢰를 뿌려 식량난으로 굶겨 죽이고 생화학 무기, 방사성 물질을 뿌려대면서 일본인들을 학살하고 있는 주인공( 조지원)"을 이토의 최면술로부터 한국을 구하기 위해 학살자의 오명을 감수했다는 정신줄 놓은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리첼렌이 항복한다고 대역갤에 글을 올린 것.
[리뷰] 왕 그리고 황제 작가님이 전하고자 했던 결말의 진정한 의미는...
6.1. 최종화에 대한 비판
마지막 화에서 작가 스스로가 작품 내내 쌓아온 주제를 깡그리 부정하는 최악의 결말을 내버림으로서 평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동안 작품에서는 "황제가 무너져도 나라는 무너지지 않는다.", "나라가 무너져도 백성은 무너지지 않는다." 하는 주제를 계속 이어왔다. 그런데 마지막에 고종이 자결한 후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기는커녕 일본이 어디서 어떻게 동원이 가능했는지도 모르는 100만 대군을 한반도 땅에 상륙시킨다. 사실 이것도 원래 141만이었으나 독자들의 반발에 수정한 것이 이미 작중 일본 측에서 100만 대군 동원은 비현실적이란 발언이 나온 뒤였다는 점에서 핍진성마저 충돌을 일으킨다. 동양사에서 종종 수십만 대군을 동원하는 기록이 심심찮게 등장해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인데 청년 100만여 명이 먹어치울 어마어마한 재화를, 그것도 개화기 일본이, 역사 개변으로 청일전쟁 배상금과 조선에 빨대를 꽂는 것도 없어진 마당에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일전쟁 배상금을 뜯어가고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은 실제 역사의 러일전쟁에서도 전쟁기 전체를 통틀어 누적 병력이 120만, 병력 규모가 최정점이었을 때도 65만 정도였다. 이정도 규모도 당대에선 엄청난 수준의 동원력이었고 이때문에 일본의 경제는 그야말로 파탄 직전까지 갔었다. 동양사 중국의 백만대군도 앞뒤 안가리는 전국시대에 대륙 안에서의 전쟁에서나 이름이 드러나지, 해외원정을 보내려면 백만은 커녕 십수만만 해도 곡소리가 났다.더욱 백미는 조선이 분열된 이유인데 이토가 선전선동과 동시에 일본 시민권을 뿌리자 조선 백성들은 내분으로 대립하다가 일제에 굴복한다는 최악의 전개로 엔딩을 내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임금이 승하한 이유가 일본의 침탈에 저항하다가 살해당한 것이다. 그런데 왕과 왕손을 살해한 바로 그 왜놈들이 시민권을 뿌린다고 민중이 그걸 이득으로 여기면서 사분오열한다? 고려 이래 원시적인 방어적 민족주의를 구성한 한반도에서? 굳이 작품의 배경이 조선 개화기가 아니라 어느 나라, 어느 시대라도 말도 안 되는 전개다.
이 때문에 마지막 화의 댓글창은 미리보기로 구매한 독자들의 댓글로 거세게 불타올랐다. 작가는 독자와 키배를 뜨다가 결국 엔딩을 수정했는데, 그마저도 그림판으로 슥슥 그려 대충 때운 티가 역력한 '이거나 먹고 떨어져.' 하는 성의 없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논란이 화끈하게 터진 뒤에야 올라온 후기에서는 독자들이 알아서 조선인들의 저항과 일본의 몰락을 상상했을거라고 믿었다는 식으로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지라 사태는 진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본이 한국을 병탄한 후 열강들의 세력 구도랍시고 나온 그림도 당대 각국의 이해관계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미국, 러시아, 청나라가 일본과 대립하고, 이에 유럽 국가들이 일본을 지지하는데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터키와 그리스가 이 동맹의 일원이다. 이에 관해서는 작가가 개화기 시절의 국제 정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20세기 대전쟁, 하면 흔히 떠올리는 2차 세계대전의 구도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일본이 미국에게 맞먹으려 들며 대립하고 실제로 크게 몰아치며 승승장구했던 태평양 전쟁 초중반의 모습. 그리고 깡패짓하고 다니는 나치 독일에 저항하는 유럽의 모습을 떠올리며 막연하게 "열강은 열강 편이고 미국을 몰아붙인 일본 정도면 100만 대군은 우습겠다" 는 대역물을 그려내는 작가로서 사전 지식이 전무한 막연한 수준이었으리라는 분석이 돌았다.
실제 역사에서도 일본은 미국과 영국의 전폭적인 채권구매에 힘입어 싸웠던 러일전쟁에서 승전했지만 아무런 재정적 이익도 보지 못하고 종전한 이래 파산하기 직전까지 몰렸다. 작중의 일본 또한 청일전쟁에서조차 이익을 보지 못했다. 이 와중에 해당 작품 세계관에서처럼 백만 대군을 무리하게 동원했더라면 전원 무기와 장비를 제대로 못 쥐어줄 뿐만이 아니라[35] 한국을 다 점령하기도 전에 정부가 파산하고 영국과 미국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되거나 혁명으로 정부가 엎어졌을 것이다.
이 비판들은 단순히 대한제국이 패배했다고 터진 분노가 아니다. 오히려 결말 직전까지는 중과부적 엔딩을 예상하게 만드는 분위기로 흘러간지라 패배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원역사와 달라진 고종과 대한제국의 행적 때문에 황제와 나라가 무너져도 백성은 살아남아 전제군주국에서 최소 입헌군주국, 혹은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거듭나거나, 적어도 일본에 대해 실제 역사 이상으로 저항하는 것을 암시하는 열린 결말 정도를 기대했다. 그런데 오히려 작중 대한제국의 백성들은 일말의 개연성조차 없이 실제 역사보다 퇴보하고 말았고, 이는 작품이 던지던 메시지와 주제의식에도 정면으로 어긋나고 말았기에 분노를 부른 것이다. 개연성, 핍진성 문서 참조.
작중에서도 고종의 독백을 통해 '나라는 망해도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는 언급이 꾸준히 있었음에도 황제가 죽고 나라가 망하자 단 한 화만에 백성도 망해버렸다. 실역사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고종의 사망조차 트리거가 되어 200만 명이 참여한 3.1 운동이 일어났는데, 본작에서의 대한제국 황실과 조정은 어느 정도 개화에 성공한 데다 끝까지 필사적으로 싸우다 고종은 장렬하게 자폭했고 황태자도 군민을 독려하던 중 전사했다. 따라서 작중의 민족론, 백성론과 실제 역사의 반응을 감안하면 실역사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저항이 일어났을 것인데,[36] 그런 묘사가 전혀 없었으므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으니 반발이 일어났고, 논란이 커지자 언급된 작가의 해명은 더더욱 앞뒤가 맞지 않아 식민사관을 기반으로 한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결국 이 대체역사 판도에서 이득을 본 나라는 청나라 말고 없다.
2021년 2월 26일에 결말이 수정되었다.
6.2. 핍진성을 갖추었으려면
상술한 바와 같이 본 결말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개연성과 핍진성의 미비에 있다. 이를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고종이 자폭한 뒤 그대로 이야기를 끝낸다.
이리하면 '대체역사를 모르는'[37] 작가가 처음 고려했던 '고종에 태종이 빙의하여 변화한 이야기'로 완결성을 지니며, '결정되어 있는 역사 속에서 발버둥치는 영웅의 일대기'로서 비극적인 결말을 이끌어내고, 작가가 후기에서 억지로 언급한 열린 결말이 되어 독자들이 알아서 조선인들의 저항과 일본의 몰락을 상상했을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굳이 백성이 분열하고 무너졌다는 결말을 집어넣어 이야기를 닫아버렸고, 이 결말 이후에 "독자가 알아서 조선인들의 저항과 일본의 몰락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일본은 백만대군을 동원할 수 있고 유럽 열강은 일본을 후원하며 황제가 죽자 백성들은 순식간에 일본의 선전과 당근에 휩쓸려 분열되고 내분을 일으켜 무너졌다'는 작중 사실에 비하면 조선 백성들이 재차 저항하는 것은 핍진성에 어긋나므로 그럴 만한 이유를 집어넣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본작은 사족을 달아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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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사후 백성들이 강렬하게 저항하였음을 명시한다.
작품의 주제의식에 맞추는 방식. '황제가 무너져도 백성은 무너지지 않는' 방향성이므로 핍진성의 문제가 없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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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가 무너져도 나라는 무너지지 않는다. 나라가 무너져도 백성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고종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묘사를 작품 중간중간에 삽입한다.
고종의 믿음과 달리 백성들은 고종이라는 영웅적 통치자에게 피상적으로 이끌려가고 있었을 뿐이라는 묘사를 넣어두면 고종이 죽자 순식간에 조선이 멸망한 것에 (현실과 비교하여 개연성은 없지만) 핍진성이 생겨나며, 조선의 멸망과 식민지화가 결정되어 있다는 운명이 강화되어 신뢰받을 자격이 없었던 백성을 마지막까지 믿었던 고종의 비극적 영웅성이 더욱 강조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물론 이런 결말을 냈으면 다른 방향성[39]으로 화제가 되었겠지만, 일단 핍진성은 성립한다는 의미다.
6.3. 결말 수정
더불어 '대체역사 갤러리' 여러분들의 모든 논의들이
현재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의미가 있는 것 이기를 바랍니다
며칠동안 많이 고민하면서 '대체역사'라는 장르에 대한 의미도
조금은 찾은 것 같습니다
―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 올라온 작가의 사과문 #
현재도 과거에도 미래에도 의미가 있는 것 이기를 바랍니다
며칠동안 많이 고민하면서 '대체역사'라는 장르에 대한 의미도
조금은 찾은 것 같습니다
―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 올라온 작가의 사과문 #
결국 2월 26일, 세계대전 등 사후 묘사를 삭제, 고종이 사후세계에서 조선 왕들과 만나는 부분을 수정하고 조선인들이 일제에 거세게 저항할 것을 암시하는 결말로 다시 수정했다. 독자들은 진작에 이랬어야 했다는 평가를 남겼다. 수정 후 작가의 사과문이 올라왔는데, 전반적으로는 작가를 응원하는 등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이 많다.
후기 에필로그에선 순종을 마지막으로 황통이 끊겨버려서 결국 제정복고가 아니라 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수립되었지만 고종과 순종은 항일의 상징으로 남아서 현실의 평화의 소녀상을 대신하여 목 잘린 고종, 순종, 백성들의 동상들이 광화문광장에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7. 기타
- 시즌 1 후기에 따르면 이 작품의 기본 플롯은 작가의 아내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작가가 중세 판타지물과 학원물을 구상했다가 차별점이 보이지 않아 담당자에게 퇴짜를 맞다가 아내가 " 태조랑 고종이 타임슬립하는 건 어떨까?"라고 말하는 것에 영감을 받아 태조를 고종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 태종으로 바꾸고 이야기를 구성했다고.
-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 작가가 올린 해명글에 따르면 대체역사 웹툰을 연재하면서 정작 연재 중간까지 대체역사라는 장르 개념이 있다는 걸 몰랐다고 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대체역사물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대체역사물을 쓴 것이니 결말을 그렇게 낸 것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40]
- 웹소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국내 대체역사물 계에서 몇 안 되는 만화 연재작이다. 연재 도중 일본과의 무역분쟁이 발발했는데 마침 내용도 일제에게 시달리던 구한말 시기라 이와 맞물려 댓글란이 항상 싸우는 분위기.
8. 관련 문서
[1]
임오군란이 일어나지 않아 신식 군대 양성을 1880년대부터 차질 없이 빠르게 추진했다.
무라타 소총을 본뜬 것이긴 하지만 국산 소총을 기기국에서 양산하는 데에 성공하고, 영국에서 12,000t급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도입했다. 의화단 운동 진압에도 참가했다.
[2]
결국 결말에서 자신의 아들 순종과 함께 순교자로서 동상이 남겨져있기에 부정적인 평가는 역시 실수 부분에서는 받겠지만 망국의 군주라도 숭정제처럼 동정론과 함께 저항의 상징으로 평가받을 듯 하다.
[3]
태종이 실록을 읽으면서
세조의
계유정난과
선조의 파천을 매우 까며 쓴소리와 탄식을 섞어가며 대노하는 장면이 묘미. 덧붙여 자신의 생애를 기록한 태종실록도 읽게 되는데, 폐세자를 한 대목을 보고 의아해한다. 충녕대군이 만든 훈민정음을 보고 충녕이 백성들을 위해 훌륭한 일을 했다며 흐뭇해 하는 건 백미.
[4]
이 중 가장 중요했던 가르침이 사람들이 너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흐름을 통제하라인데 이것은 고종과 장기를 두었다가 패하면서 고종이 흐름을 읽는 데에 재능이 있음을 간파하고 내린 가르침이었다.
[5]
태종 안에 들어간 고종의 취급에 빡쳐 영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빡돌아 사고치는 전개로 가야 해서 그런듯하다.
[6]
통념과 달리, 실제 역사에서도 충녕대군은 왕위에 야망을 가지고 행동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7]
실제 역사에서 민무회가 안치된 곳은
청주다.
[8]
태종은 사병을 혁파하고 군사력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였다. 일개 산적 무리가 절대 상대가 안 되는 것은 당연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9]
이는 원래 역사대로나 작중에서나 똑같이 벌어진 일이다.
[10]
다행히 고종(으로 빙의한 태종)이 즉각 제지하여 굿으로 국고가 계속 탕진되는 것을 막았다.
[11]
공교롭게도 태종의 부인
원경왕후도 명성황후와 같은
여흥 민씨다. 실제로 작품에서도 잠깐 등장.
[12]
을미사변을 기억하던 고종이 궁궐 경비를 매우 철저하게 수개월동안 다져놓으며 침입을 경계한 덕에, 기존 을미사변에서 궁궐 경비군들이 제 기능을 못한 것과 달리 훌륭히 기능해서 침입한 낭인들을 죄다 잡아들였다. 그리고 끝내 일본 공사관과 침입한 낭인 무리의 연관성은 심증으로만 남았지만 궁궐의 사주를 받았는지 혼자 나섰는지 모를 의문의 저격수가 탈을 쓰고 낭인 무리의 두목과 을미사변의 연관자 중 하나였던
미우라 고로를 동시에 킬해버리는 쾌거도 달성했다. 같은 연관자 혹은 방관자
이노우에 가오루를 죽이지 않은 건 더 일이 커질 걸 막기 위해서였던 듯. (실제로 이노우에도 미우라가 벌인 일 쪽으로 마무리지으려 들긴 했다.)
[13]
99화에서 입헌군주제 헌법 반포를 반대하지만, 고종은 내려놓아야만 변화할 수 있다는 말로 헌법을 반포한다.
[14]
거기에 일본군이 사과의 의미로 포로로 잡은 황태자를 넘겨줄 것을 약속하여 쐐기를 박았다.
[15]
이는 민심을 가라앉히기 위함과 동시에 김옥균을 음지로 빼돌려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겸했다.
[16]
기사 내용은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일본 측 주장이 반영된 기사로 추정.
[17]
김옥균의 귀국하는 배에 같이 탔던 첩보원으로, 일본 측의 모진 고문으로 다른 첩보원들의 정보를 누설한 상태였다. 배가 폭침한 이후, 해안가의 일본군에게 잡혀 죽을 뻔하니까 결국 완전히 변절한 것이다.
[18]
이 때 태종이 세 답안 중 하나를 즉흥적으로 고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인지 일화의 패러디이다.
[19]
김홍륙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김홍륙은
아관파천 이후 러시아와 대한제국의 관계가 중요해지면서 러시아어를 통역하는 역관으로 권세를 얻었다가 몰락하여 독차 사건을 벌였다. 이 세계관에서는 러시아의 관계가 좋았다가 악화되면서, 김홍륙이 권세를 얻을 기회가 사라지고 독차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20]
출발 직전에 순종을 따로 불러낸 고종이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최선을 다해 격려해주었다.
[21]
전쟁을 패배가 아닌 승리로 포장했으나, 대부분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고만 언급되었다.
[22]
다시 말하자면 영국, 대한제국, 일본 세 나라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다!
[23]
정확히는 일본 국회의사당과 비슷하게 생긴
당창건사적관의 모습.
[24]
다만 기회주의자인 본질은 못 버렸는지, 일제가 노골적인 야욕을 드러내는 상황에서도 친일적인 발언을 종종 한다. 이 점을 두고서 은근 매국 기질 드러낸다고 보는 댓글들도 잊을만하면 간간히 보이긴 한다.
[25]
사실 실록을 보면 민무휼에게 자살을 권고한 주체가 누군지 애매하게 나온다. 권우는 원주로 파견을 온 의금부도사 이맹진(李孟畛)의 명을 받고 자진(自盡)시켰다고 증언했고, 이맹진은 태종의 명을 받아 자진시켰다고 증언했기 때문.
[26]
군사권을 쥐고있는 태종에게 군사와 관련된 일을 보고하지 않고 세종에게 보고했다는 죄로 국문당했다가 사사당함.
[27]
궤간은 러시아의
광궤 안과 일본의
협궤 안이 대립하다가
표준궤로 결정된다.
[28]
여기서 광무호 함장으로 신무성이 등장하는데, 실제
양무호와
광제호의 함장
신순성을 모티브로 한 인물로 보인다.
[29]
정관헌은 주로 영국, 일본 대사와 협의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실제 역사대로 외국 사신을 접견하는 용도.
[30]
주로 경복궁은 사정전에서 고종이 대신들과 회의하는 장면에서 등장하고, 경운궁은 함녕전에서 고종이 거처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31]
참고로 98화에서 청과 러시아의 밀약은 러시아의 동청철도 부설권 획득, 일본이 만주, 조선, 러시아를 등을 침략하면 공동으로 방위한다는 내용이었다. 뒤이어
뤼순,
다롄의 25년 조차권도 얻는다. 앞으로 이 세계관의 역사에서 큰 변수가 될 수 있는 부분.
[32]
26일 자로 결말이 수정되어 세계대전 이야기는 삭제되었다.
[33]
수정된 결말을 이어받음.
[34]
이토가 최면술 사용자라는 등의 비하인드 설정이라도 있는 게 아닌 게 이상 이따위 엔딩이 나올 수 없다는 조롱의 의미. 이 웹툰이 완결된 후, 대역갤에선 이토 히로부미=최면앱 혹은
기아스 사용자로 여기는 내수용 밈이 생겼다.
[35]
실제 작중 일본보다 훨씬 전비가 많던 원역사의 일제도 후방의 보충병에게 줄 소총도 모자랐었을 정도.
[36]
게다가 실역사보다 더 근대화된 대한제국군도 있다. 아무리 전쟁에 패했어도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죽었을 리는 없고, 생존한 군인들이 저항에 나서면 훈련과 무기의 질이 높고 실전경험까지 있는, 실역사보다 더 전투력 강한 의병이나 독립군이 등장할 것이다.
[37]
본인이 스스로 언급했다. 기타항목 참조.
[38]
결국 이 방향으로 수정하여 논란을 수습했다.
[39]
또는 현대 한국의 주류인 민중사관에 대한 부정
[40]
사실 대체역사물의 정의대로라면
임진록,
박씨전같은 고전소설들이나
비명을 찾아서같은 순수문학도 대체역사물에 해당하니 대체역사물을 전혀 본 적이 없진 않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 정립된 장르소설로서의 대체역사물을 본 적이 없을 것이라는 의미. 이 작품이 2017년에 최초로 나왔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직 한국 웹소설계에서 대체역사라는 장르는 주류 장르는 아니었다. 일례로 대역물 붐을 이끌었으며 본작처럼
구한말을 다룬 작품인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가 2018년 8월 9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는데, 이때는 본 작품이 시즌 3을 진행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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