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타 타이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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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퍼시픽리그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 |
{{{#fe5a1d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55번}}} | ||||
마츠이 히데키 (1993~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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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타 타이시 (2009~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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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로 유토 (2022~) |
{{{#fe5a1d [[요미우리 자이언츠|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44번}}} | ||||
나카타니 진 (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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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타 타이시 (2014~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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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키메데스 카미네로 (2017~2018)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33번 | ||||
스나가 히데키 (2015~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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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타 타이시 (2017~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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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바바토 (2019)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등번호 5번 | ||||
브랜든 레어드 (2015~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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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타 타이시 (2020~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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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토 누네즈 (2022) |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등번호 0번 | ||||
나카이 다이스케 (2019~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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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dec> 오오타 타이시 (2022~2024) |
→ | 결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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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00> 오오타 타이시 大田泰示 | Ohta Tais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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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90년 6월 9일 ([age(1990-06-09)]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
신체 | 188cm, 96kg[1] |
출신학교 | 도카이대학 부속 사가미 고교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08년 드래프트 1순위 |
소속팀 |
요미우리 자이언츠 (2009~2016)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2017~2021)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2022~2024) |
응원가 |
요미우리 시절[2] 닛폰햄 시절[3] 요코하마[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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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국적의 야구 선수.2. 선수 경력
2.1. 프로 입단 전
처음에는 소프트볼을 했으나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 연식 야구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하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엔 3루수와 유격수, 투수로 활동했고[5] 중학교 3학년 시절 참여한 야구 교실에서 하라 타츠노리가 오오타의 스윙을 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은 것을 계기로 하라의 모교인 토카이대학 부속 사가미 고등학교로 진학을 결정했다.고교 시절. 특히 3학년 때는 유격수 겸 주장으로 팀을 이끌었으며 코시엔 진출이 걸린 지역예선 북카나가와 대회에서[6] 5개의 홈런을 치며 팀을 대회 결승까지 이끌었다. 비록 결승에서 케이오기주쿠 고등학교에 패배해 고시엔 본선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고교 통산 65홈런에 약 140미터 가량을 날려 보낼 수 있는 파워, 투수로는 최고 147km/h의 구속. 탄탄하고 거대한 체구로 유격수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민첩성까지 갖춘 그야말로 툴가이의 결정체였기에 선수로서의 평가는 상당히 뛰어났다.
본래는 토카이대학 진학에 뜻을 두고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프로에 지망하기로 결정하면서 2008년 드래프트 회의에 참가. 1순위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중복 지명을 하였고 추첨 끝에 요미우리가 교섭권을 획득[7]. 중학생 당시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던 하라 감독과 프로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계약금 1억엔과 연봉 1200만엔(추정) 규모로 계약했으며 등번호는 마쓰이 히데키 이후 아무도 달지 않았던 준영구결번인 55번을 받았다. 입단 당시의 기대치를 알 수 있었던 부분.
2.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입단 첫 해인 2009년과 2년차인 2010년은 거의 2군에서만 지냈으며 2군에서 착실히 프로 경험을 쌓아갔다. 09년 2군 성적은 타율 .238 17홈런 56타점. 10년도 2군 성적은 타율 .265 21홈런 70타점을 기록.
하지만 2011년에도 프로 첫 안타를 기록한 것 외에는 1군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시즌 도중부터 내야에서의 수비 불안 문제와 타격에 더 전념하기 위해 외야로 수비 위치를 옮겼다. 그 덕을 조금이라도 본 건지 2012년에는 데뷔 첫 홈런을 쳤고 매우 적은 표본이지만 그럭저럭 볼만한 타격 성적을 올렸다.
그러나 2013년에 도로 타격 성적이 내려앉으며 이렇다 할 성장세를 전혀 보이지 못했고 시즌 종료 후 등번호 55번을 박탈당했다. 4년 연속으로 2군 삼진왕에 오른 것은 덤.
2014년 이후에도 희망고문은 계속되었고 이렇게 1, 2군을 오가는 생활은 2016년까지 이어졌고[8] 데뷔 8년차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미완의 대기에 머무르자 요미우리 구단은 결국 오오타를 트레이드 시켰고 이 트레이드는 오오타의 야구 인생에 전환점이 된다.
참고로 이 시절 한국에서는 오오타 타이시가 이승엽,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다카하시 요시노부와 1루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그런 찌라시 기사가 많이 퍼졌었다.
2.3.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시절
2016년 11월 23일. 요미우리는 닛폰햄으로부터 요시카와 미츠오, 이시카와 신고를 받고 오오타와 쿠몬 카츠히코[9]를 보내는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등번호는 33번.
2017 시즌에는 초반 부상으로 1군 합류가 늦어졌지만 요미우리시절과는 다른 타격으로 닛폰햄 타선에 적잖은 힘이 되 주었다. 그렇잖아도 주포 나카타 쇼가 부상과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고 나머지 주축 선수들의 성적도 16년보다 전체적으로 저조했기에 오오타의 활약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주로 2번 타순에 배치되었고 좌익수 주전 자리를 차지. 프로 데뷔 9년 만에 처음으로 규정 타석에 도달하고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내면서 성공적인 이적 이후 첫 시즌을 보냈다.
2018년에는 좌익수로 시즌을 맞이했다. 다만 콘도 켄스케가 좌익수로 기용되는 일이 많아져 시즌 도중 우익수로 이동했지만 우익수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이 해에 왼손 골절상을 입은 탓에 출전 경기 수는 2017 시즌보다 줄어버려 규정 타석에는 아쉽게 도달하지 못했으나 커리어 처음으로 8할대의 OPS를 기록했다.
2019년에는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20홈런 고지를 밟았다. 역대 35번째로 전 구단 상대 홈런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개인 최다인 132경기에 출전했고 커리어 최고인 타율 .289를 기록했다. 다만 22병살타를 기록해 리그 1위를 차지한 것이 흠.
2020년에도 주전 우익수로 나서며 준수한 타격과 안정된 수비로 팀에 기여했다. 시즌 후 외야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개인 첫 수상 실적을 남겼다.
하지만 2021년에는 그간의 활약들이 무색하게 타격에서 심각한 부진을 겪으며 시즌을 망쳤다. 결국 76경기 출전 3홈런에 그치며 시즌을 마감했고 시즌 종료 후 닛폰햄 구단이 논텐더로 풀어버리면서 닛폰햄과의 동행은 사실상 여기서 끝나게 되었다.
2.4.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시절
논텐더로 풀린 직후 여러 구단에서 관심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며 그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진 팀이 요코하마였다. 그러던 중 12월 14일에 요코하마 구단이 오오타의 영입을 발표하면서 2016년 이후 5년만에 센트럴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등번호는 0.시범경기에서의 부진이 정규시즌까지 이어지며 개막 직후에도 줄곧 벤치를 지켰지만 4월 6일 한신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3타수 2안타 3타점으로 활약해 팀의 연패를 끊는데 공헌하였다. 그러나 10경기가 넘은 시점에서 아직 1할대 타율에 홈런 0개로 부진이 계속되는 상황이었지만 팀 내 코로나 집단 감염자 속출로 인해 출전 기회를 계속 부여받았고 경기를 계속 뛰면서 서서히 감이 돌아오는 듯한 모습이다. 4월 17일 야쿠르트 전에서 시즌 첫 홈런을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3경기 연속 안타를 치며 페이스가 서서히 올라오는 중.
개막 한달이 지난 시점에서는 꽤 살아났다. 아직 홈런은 2개밖에 치지 못했지만 타율을 2할 8푼, OPS는 .840까지 끌어올리며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중. 작년 한해 부진했다지만 아직 31세로 한창 나이라서 얼마든지 반등의 여지가 있던 선수라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모습.
하지만 두차례 부상을 입은데다가 코로나에도 걸려 결장이 많았고, 1군 외야수 경쟁이 치열해서[10] 벤치워머 or 교체 출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준주전 외야수, 대타 1옵션으로나마 1군애서 자리를 잡은 게 위안거리.
시즌 성적은 61경기 출전에 5홈런 18타점에 타율 .280, 장타율 .469, 출루율 .311, OPS .780, wRC+ 123. 지난 시즌에 같이 논텐더로 풀린 니시카와 하루키보다 성적이 훨씬 좋다.[11] 요코하마 구단에서도 데려오길 잘했다는 반응과 함께 2022 시즌과 같은 5천만엔에 재계약.
2023년에는 타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22시즌보다 부진했다. 시즌 후 멕시코 태평양 리그에 파견되었으나 24타석 무안타만 기록하고 다시 돌아왔다. 2024년 시범경기부터 출전하며 1군에서 개막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시범경기 기간 동안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전력에서 이탈하게 되었다.
부상 이후 24시즌이 어긋났다 해도 과언이 아닌것이 부상에서 돌아온 후 2군에서 1할과 2할을 오가는 부진에 빠져 1군에 이렇다 할 어필을 하지 못했고 뒤늦게 2군에서 맹타를 휘둘렀지만 이미 1군에선 카지와라와 에비나가 외야 주전 및 벤치 자리를 양분하고 있었다. 시즌 후반이 되어서도 1군의 부름은 없었고 9월 30일자로 쿠스모토 타이시와 나란히 전력 외 통고를 받고 3년간의 요코하마 커리어를 끝내게 되었다.
3. 여담
-
2014년 12월 24일에 기후현 출신의 前 사무원과 결혼, 슬하에 딸 1명을 두고 있다.
-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우에모토 타카시와는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동향이며, 중학교 때까지 배터리를 이뤘던 친구 사이다. 히로시마를 만날 때면 우에모토와 얘기하는 장면이 잡히기도 한다.
- 취미는 낚시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블랙 배스를 낚는 걸 좋아한다고. 요미우리 시절 팀 동료였던 타테오카 소이치로와 함께 낚시를 한 사진이 SNS에 올라오기도 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NPB)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09 | 요미우리 | 3 | 1 | 1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000 | .000 | .000 |
2010 | 2 | 6 | 6 | 0 | 0 | 0 | 0 | 0 | 0 | 0 | 1 | .000 | .000 | .000 | .000 | |
2011 | 12 | 28 | 4 | 1 | 0 | 0 | 3 | 4 | 0 | 0 | 9 | .154 | .148 | .192 | .340 | |
2012 | 21 | 70 | 16 | 4 | 1 | 2 | 7 | 9 | 3 | 7 | 15 | .254 | .329 | .444 | .773 | |
2013 | 21 | 38 | 5 | 0 | 0 | 0 | 2 | 3 | 1 | 4 | 9 | .161 | .250 | .161 | .411 | |
2014 | 44 | 74 | 16 | 6 | 0 | 2 | 12 | 14 | 4 | 8 | 20 | .246 | .338 | .431 | .769 | |
2015 | 60 | 138 | 36 | 7 | 0 | 1 | 3 | 13 | 3 | 7 | 39 | .277 | .319 | .354 | .673 | |
2016 | 62 | 119 | 23 | 6 | 1 | 4 | 13 | 12 | 0 | 4 | 45 | .202 | .227 | .377 | .604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17 | 닛폰햄 | 118 | 457 | 110 | 21 | 1 | 15 | 46 | 41 | 5 | 28 | 88 | .258 | .302 | .417 | .719 |
2018 | 104 | 429 | 105 | 22 | 4 | 14 | 59 | 56 | 3 | 38 | 103 | .274 | .350 | .462 | .812 | |
2019 | 132 | 594 | 161 | 28 | 1 | 20 | 77 | 79 | 6 | 27 | 111 | .289 | .325 | .451 | .776 | |
2020 | 115 | 481 | 125 | 16 | 1 | 14 | 68 | 57 | 3 | 25 | 105 | .275 | .314 | .407 | .721 | |
2021 | 76 | 206 | 39 | 5 | 2 | 3 | 20 | 11 | 1 | 14 | 50 | .204 | .257 | .298 | .556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2022 | DeNA | 62 | 153 | 40 | 10 | 0 | 5 | 18 | 17 | 1 | 6 | 33 | .278 | .309 | .465 | .774 |
2023 | 75 | 186 | 38 | 12 | 0 | 4 | 15 | 18 | 0 | 9 | 49 | .217 | .263 | .354 | .618 | |
NPB 통산 (15시즌) |
907 | 2980 | 718 | 138 | 12 | 84 | 343 | 334 | 29 | 177 | 678 | .259 | .307 | .409 | .716 |
[1]
NPB 공식 프로필
[2]
研ぎ澄まされたその心で
토기스마사레타소노코코로데
갈고 닦은 그 마음으로
大田よ大志を抱き 切り拓け
오오타요타이시오이다키 키리히라케
오타여 큰 뜻을 품고 개척하라 [3] 滾る想い胸に 全てぶつけ
타기루오모이무네니 스베테부츠케로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슴에 모두 부딪혀
魅せろこの場所で 夢の続きを
미세로코노바쇼데 유메오츠즈키오
보여줘 이 장소에서 이어져가는 꿈을 [4] 前奏 : 新たな時代へ挑め
전주 : 아라타나 지다이에이도메
전주 : 새로운 시대에 도전하라
君の見上げる空へと続く道
키미노미아게루 소라에토 츠즈쿠미치
네가 바라보는 하늘로 이어지는 길
打て打て打て行けよ勝利を信じて
우테 우테 우테 유케요 쇼오리오신지테
쳐라 쳐라 쳐라 가라 승리를 믿고서
ハマの風にのってバックスクリーン目指して
하마노카제니놋테 박스크리은 메자시테
하마의 바람을 싣고 백스크린을 목표로 [5] 이때, 같은 후쿠야마시 출신인 우에모토 타카시와 배터리를 이룬 적이 있다. 우에모토도 당시에는 포수였다. [6] 원래는 다른 현처럼 카나가와현도 1개교만 코시엔 본선 진출이 가능했지만 오오타가 3학년이었던 2009년엔 코시엔이 10회마다 열리는 특별대회로 치러졌기 때문에 도쿄와 홋카이도처럼 지역구를 남/북부 2개로 나누어 2개교가 본선에 진출했다. 참고로 오오타의 모교였던 사가미 고교는 북부에 소속. [7] 하라 감독의 요미우리 코치/감독 시기를 합쳐서 드래프트 1위 교섭권 경쟁 중 유일한 승리이다. 이거 빼면 11패. [8] 그런 와중에도 2016시즌 당시 투타에서 무시무시한 퍼포먼스를 보인 오타니 쇼헤이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치기도 했다. [9] 얼마안가 4년뒤에 쿠몬은 트레이드로 세이부로 이적했다. 그리고 1년 후 요시카와도 쿠몬처럼 트레이드로 세이부로 이적했다. 그러나 요시카와는 2021시즌 종료되고 바로 방출되었다. [10] 이미 당시에도 사노 케이타, 쿠와하라 마사유키, 쿠스모토 타이시, 세키네 타이키 등이 외야 주전 및 준주전이었다. 부상만 없다면 무조건 중심타자인 외국인 타일러 오스틴과 2군을 평정한 에비나 타츠오 등은 덤. [11] 참고로 이 해 니시카와는 시즌 초반엔 순조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극도의 타격 부진에 빠지면서 결국 지난 해와 다를 바 없는 타율 0.218/OPS .683 7홈런 19도루의 성적으로 시즌을 끝마쳤고, 성적과는 별개로 닛폰햄 시절에도 지적받은 낮은 워크에식이 라쿠텐에서도 지적받으며 평가가 더 나빠진 끝에 2023시즌을 마지막으로 방출되었다. 그래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하며 현역을 연장하게 되었다.
토기스마사레타소노코코로데
갈고 닦은 그 마음으로
大田よ大志を抱き 切り拓け
오오타요타이시오이다키 키리히라케
오타여 큰 뜻을 품고 개척하라 [3] 滾る想い胸に 全てぶつけ
타기루오모이무네니 스베테부츠케로
끓어오르는 마음을 가슴에 모두 부딪혀
魅せろこの場所で 夢の続きを
미세로코노바쇼데 유메오츠즈키오
보여줘 이 장소에서 이어져가는 꿈을 [4] 前奏 : 新たな時代へ挑め
전주 : 아라타나 지다이에이도메
전주 : 새로운 시대에 도전하라
君の見上げる空へと続く道
키미노미아게루 소라에토 츠즈쿠미치
네가 바라보는 하늘로 이어지는 길
打て打て打て行けよ勝利を信じて
우테 우테 우테 유케요 쇼오리오신지테
쳐라 쳐라 쳐라 가라 승리를 믿고서
ハマの風にのってバックスクリーン目指して
하마노카제니놋테 박스크리은 메자시테
하마의 바람을 싣고 백스크린을 목표로 [5] 이때, 같은 후쿠야마시 출신인 우에모토 타카시와 배터리를 이룬 적이 있다. 우에모토도 당시에는 포수였다. [6] 원래는 다른 현처럼 카나가와현도 1개교만 코시엔 본선 진출이 가능했지만 오오타가 3학년이었던 2009년엔 코시엔이 10회마다 열리는 특별대회로 치러졌기 때문에 도쿄와 홋카이도처럼 지역구를 남/북부 2개로 나누어 2개교가 본선에 진출했다. 참고로 오오타의 모교였던 사가미 고교는 북부에 소속. [7] 하라 감독의 요미우리 코치/감독 시기를 합쳐서 드래프트 1위 교섭권 경쟁 중 유일한 승리이다. 이거 빼면 11패. [8] 그런 와중에도 2016시즌 당시 투타에서 무시무시한 퍼포먼스를 보인 오타니 쇼헤이에게 선두타자 홈런을 치기도 했다. [9] 얼마안가 4년뒤에 쿠몬은 트레이드로 세이부로 이적했다. 그리고 1년 후 요시카와도 쿠몬처럼 트레이드로 세이부로 이적했다. 그러나 요시카와는 2021시즌 종료되고 바로 방출되었다. [10] 이미 당시에도 사노 케이타, 쿠와하라 마사유키, 쿠스모토 타이시, 세키네 타이키 등이 외야 주전 및 준주전이었다. 부상만 없다면 무조건 중심타자인 외국인 타일러 오스틴과 2군을 평정한 에비나 타츠오 등은 덤. [11] 참고로 이 해 니시카와는 시즌 초반엔 순조로운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극도의 타격 부진에 빠지면서 결국 지난 해와 다를 바 없는 타율 0.218/OPS .683 7홈런 19도루의 성적으로 시즌을 끝마쳤고, 성적과는 별개로 닛폰햄 시절에도 지적받은 낮은 워크에식이 라쿠텐에서도 지적받으며 평가가 더 나빠진 끝에 2023시즌을 마지막으로 방출되었다. 그래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하며 현역을 연장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