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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4/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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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관련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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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4의 기본 캠페인은 어떤 주인공의 인생을 대하드라마처럼 따라가던 전작과 달리 각 캠페인 시점의 주요 전투들을 배경으로 실사 해설 영상이 포함된 역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2편과 배경 시기가 겹치는 만큼 2편 캠페인에도 나왔었던 윌리엄 1세, 잔 다르크, 징기스칸 등의 주요 인물들 또한 다시 등장한다. 역사 속 인물을 관찰자 시점 내레이터로 등장시킨 2편이나 가상의 가문을 만들어 연대기를 펼쳤던 3편과는 달리,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일절 없으며 현대 시점의 내레이터가 당시 역사를 조망하는 제3자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캠페인에 등장하는 실사 다큐멘터리 영상 트레일러

참고로 도보 기사, 데인족 습격대 같이 더 다양한 고유 유닛의 흔적이 캠페인에 있으며, 유닛 업그레이드가 대장간 뿐만 아니라 무기고라는 건물에도 진행되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본편은 캠페인마다 무기나 각 국가, 부족 등의 생활상을 그린 실사 다큐멘터리가 재생되지만 DLC 술탄승천은 판매가격 특성상 다큐형식이 아니라 일러스트풍 애니메이션으로 대체되었다. 특히 본편 캠페인은 실제로 해당 중세 무기 혹은 생활상을 연구하는 연구가나 역사가, 장인 등을 섭외하여 실제로 무기나 각종 유산, 역사적인 예술품 등을 재현하는 모습을 담아내 굉장히 퀄리티가 좋다. 게임 말고도 이 다큐만으로도 상당히 공을 들여 만들었기에 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

2. 노르만

11세기 헤이스팅스 전투로 시작되는 노르만족 잉글랜드 정복 전쟁, 그 이후의 내전과 13세기 초반 노르만 왕조 플랜태저넷 왕조로 이어지며 잉글랜드의 패권을 둘러 싼 왕가와 귀족들과의 내전과 프랑스와의 전쟁들을 다룬다.

3. 모스크바의 부흥

13세기 루스국에서 교통의 중심지이자 교역의 중심인 현재 모스크바에 위치한 모스크바 대공국이 작은 요새로 시작해서 루스 차르국이라는 거대한 국가로 성장해나가는 캠페인.

4. 백년 전쟁

1337년 에드워드 3세 필리프 6세가 가진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며 프랑스를 침공한 것으로 시작된 14~15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시기를 다룬 캠페인으로,[3] 1351년 30인의 전투부터 1450년 포흐미늬 전투까지의 약 100년의 전쟁사를 다루고 있다.

5. 몽골 제국

13세기초 몽골의 중국과 유라시아 지역 정복전쟁을 다룬 캠페인으로 1223년 칼카강 전투부터 1273년 양양 공방전까지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금나라는 중반부터 계속해서 엄청난 수의 각종 근접기병으로 끝없이 공격해오므로 창병과 중기병을 인구 꽉 채울 정도로 최대한 양산할 수 있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병영을 3~4개 이상 많이 지어두고 인구를 꽉 채워 창병 양산이 가능할 정도로 목장 등 식량 확보도 충분히 해두자. 기마궁사나 일반 궁병은 중기병 상대로 거의 힘을 쓰지 못한다. 또한 한타에서 징기스칸의 1번째 스킬로 전체 방어력 버프도 걸어주자.

이 협력하는 시장이 있는 마을들을 다 밀어줘야 중도 공략이 매우 편해지고 전부 밀고나면 공성추를 다수 만들어 성벽과 탑 같은 방어기재들을 밀어준 뒤 성안의 목표를 본격적으로 불태워주면 끝이난다.
미션 성공시 해금되는 다큐멘터리 : 몽골 만들기

6. 술탄의 승천(DLC)

대부분 미션에서 적들이 아군보다 1티어 높은 유닛들을 갖고 나오는 경우가 많아 상성으로 공략해야 하고 상성 맞춰 싸워도 사상자가 커서 상당히 골치아프다.


[1] 공세부대가 반드시 지나가는 루트에 있는 매복지라서 투석기만 털어줄 특공대를 상주시켜도 돠다. [2] 역사적으로 정확하게는, 루스계 공국들 사이에서 트베리와 모스크바 간 경쟁이 중심이었다. 양국은 몽골의 지배 하에서는 루스계 공국을 대표하는 대공 지위를 인정받고자 칸국에 승인(야르릭)을 구하려고 경쟁하기도 하였다. 한때는 트베리가 모스크바를 크게 이기고 우위를 점하기도 했다. [3] 엄밀히 말해서 에드워드는 1340년 이전까지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지 않았다. 어차피 살리카법이 아니었어도 에드워드의 계승 순위는 나바라의 샤를 다음이라서 계승권을 주장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마치 에드워드가 프랑스 왕위에 대한 욕심으로 호기롭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침공을 개시한 것처럼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필리프가 에드워드를 법정에 소환하고 아키텐을 몰수하는 등 강도 높은 압박을 가해 전쟁을 도발하였으며, 에드워드는 줄곧 수세에 몰려 있었다. 필리프가 프랑스의 진정한 왕이 아니라는 에드워드의 주장은 대륙 진출을 위한 침공의 명분이 아니라 '프랑스의 왕이 아니므로 아키텐의 주권자가 아니고 따라서 나를 법정에 소환할 자격도 아키텐을 몰수할 권한도 없다.'라는 방어적인 명분이었다. [4] 물론 당시에는 기사도의 모범이라고 극찬을 받았으나,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는 영국과 프랑스 모두 내셔널리즘의 영향으로 인해 상대방이 반칙을 쓴 무뢰한들로 폄하되었다. 실제로 30인의 전투 기념비는 브르타뉴를 약탈하는 악한들을 응징한 프랑스 기사들의 숭고함을 기리고 있고, 반대로 코난 도일의 소설 '나이젤 경' 에서는 프랑스군이 반칙을 써서 영국군을 내쫒은 것으로 서술되었다. [5] 나무위키의 백년전쟁기 1차· 2차 파리 공방전은 각각 1429년과 1436년에 벌어진 전투로서 더 나중의 일이다. 이 미션에서 다루는, 푸아티에 전투와 샤르트르 공방전 사이에서의 파리 공격에 관해서는 샤르트르 공방전 문서에서 간략하게 다루고 있다. [6] 여기서 치명적인 텍스트 오류가 있는데, 이 미션에서 나오는 수도원은 지켜야하는 대상이다. 그런데 텍스트로는 수도원을 파괴하라라고 나온다.(심지어 수도원 위에 주의 표시와 함께 파괴하라는 문구가 박혀있다.)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수도원을 파괴하면 미션이 실패하므로 주의해야한다. [7] 실제로는 이후 20년 동안 잉글랜드가 일방적으로 털려서 대륙 점령지 다 뺏기고 해안가 구석으로 쪼그라든데다 브리튼섬 본토까지 침공당하다가 휴전했으며, 45년 뒤인 아쟁쿠르 전투 이후에나 잉글랜드가 다시 우세해졌다. [8] 사실 화약 자체는 이전부터 계속 알려져 있었으며, 잉글랜드군은 화약을 장궁용 불화살의 인화제로 사용했다. [9] 한국어판의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진나라로 오역되었는데, 이는 금나라가 영어로 Jin Dynasty인 것을 진나라로 오역한 듯하다. 중국어 및 영어 음차에서는 晉, 金, 秦, 陳을 전부 "진"으로 발음하고 표기하는 한편 한국어에서 金만 "금"으로 읽고 쓰다보니 생긴 오류로 추정. 더빙 및 자막에서는 정상적으로 금나라로 나온다. [10] 잘 알려진 몽골의 역참망을 말한다. [11] 고증 오류인데, 역사적으로 쿠빌라이 칸은 1271년에 이미 수도를 중도(현재의 베이징)로 옮겨 대원이라고 칭하였다. [12] 나무위키에 개설된 티레 공방전은 고대에 벌어진 전투로서 알렉산드로스 3세의 페르시아 제국 정복전 도중에 벌어진 사건이다. 해당 dlc와 연관된 역사적 사건은 티레 문서에서 간추려 설명하고 있다. [13] 보통 난이도는 병력 규모도 어려움에 비해 적은데다가 계속된 소모전을 강요하는 어려움에 비해 병력 보내는 빈도도 적어서 후술한 성전기사단만 잘 컷하면 매우 쉽게 깬다. [14] 이 임무는 1182년 르노가 벌였던 약탈 사건을 토대로 한다. #홍해 상 십자군의 약탈(영문 위키) [15] 이 미션중 노예 캠프가 발견되면 서술가가 자기 아내와 아들도 이들에게 잡혀갔다고 나레이션 하는데 죽었으리라 생각했는지 이때만큼은 절망감이 섞인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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