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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15:14:45

견훤(태조 왕건)

수달이가 죽었어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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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견훤의 모습[오프닝1][오프닝2]

1. 개요2. 극중 행적
2.1. 전반부
2.1.1. 수달이가 죽었어! 수달이가!
2.2. 후반부: 최종 보스
2.2.1. 고려와의 혈전2.2.2. 금산사 유폐2.2.3. 고려로 귀순하다2.2.4. 일리천 전투2.2.5. 최후
3. 특징
3.1. 세계관 최강 무력, 영웅의 기질3.2. 성격적 과오3.3. 후계자 문제3.4. 콩가루 가족사3.5. 다른 등장인물들로부터의 평가
4. 평가
4.1. 인간 감정을 잘 아우른 캐릭터4.2. 의의 및 주요 대사
5. 여담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태조 왕건>의 등장인물. 왕건 궁예에 이은 세번째 주인공이자, 주인공인 왕건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캐릭터. 한편으로 드라마 최후반부( 신검이 쿠데타를 일으킬 시점 부터.)부터 결말(후백제의 멸망.)까지는 견훤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되며, 견훤의 죽음으로 드라마와 마지막 사건 전개가 모두 끝난다. 담당배우는 중견 연기자 서인석 배우가 맡았다.

2. 극중 행적

2.1. 전반부

최초에 견훤은 각간 김위홍 밑에 있는 휘하 장수로 등장한다. 본격적으로 처음 활약한 것은 태조 왕건의 5화 말미, 서라벌로 가는 왕륭 일행이 습격을 받은 것을 구원하면서부터였다. 등장 당시부터 도적들을 상대로 언월도와 칼을 들고 거의 소드 마스터 급 활약을 보여주면서 임팩트 있게 등장하였으며 이어서 6화에서는 견훤이 모시고 있는 위홍을 만나기 위해 마음대로 집에 쳐들어 온 궁예와 맞짱을 떴으나(!!) 절대 만나서는 안 되는 두 사람이 만났다. 서로 용호상박의 비등한 무예를 보이며 승부를 내지 못했다. 이후 각간 위홍이 죽은 뒤 8화에서 서남해로 떠나라는 영을 받고 서라벌을 떠나게 되며 왕융 부자와도 작별하게 된다.

아자개의 상주를 지나 서남해에 도착한 다음에는 군사를 이끌고 서남해 일대의 호족과 능창(수달)을 위시한 해적의 무리(해상 무역을 기반으로 삼고 있던 호족, 군진 세력)들을 공격하러 나섰고 수달을 제압하고 그가 진심으로 견훤에게 항복해 충성을 하자 이것을 시작으로 종례를 비롯한 서남해의 호족들과 수천 명의 무리가 뒤따르게 되어 군사력을 손에 넣자 견훤은 마침내 군주가 되려는 야망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능창이 항복하기 전 견훤을 제압하려고 미다부리정의 태수와 짜고 친 술수인 아자개를 빌미로 견훤을 압송하러 왔던 무진주 태수의 사자 신강을 매를 친 추허조의 행동을 기회로 삼아 신라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후 세력을 넓혀간 뒤 무진주를 공략해 스스로 왕을 칭하며 세력을 본격적으로 일으키기 시작했고 900년 완산주에서 백제의 뒤를 잇겠다고 선언하며 비로소 황제의 위에 오른다.[3]

그 이후로는 주로 후고구려-마진-태봉국 위주로 드라마 전개가 되며, 견훤은 전투때 낚시터 나온 아저씨(대어를 놓치는...)같은 존재가 된다. 가끔 궁예나 다른 신하들이 '견훤왕'이라고 칭하면서 언급된다. 신라를 칠 때 대야성 전투마다 2번 실패하는 장면도 나온다.

2.1.1. 수달이가 죽었어! 수달이가!

(장계를 보면서) 아니!! 뭐야?! 죽었어?! 수달이가 죽었어, 수달이가?! 보았는가? 수달이가 죽었다는 것이야, 수달이가 말이야!!
최승우 : 고정하시옵소서, 폐하....
궁예왕이 수달이를 보자마자 불에 태워 죽였다는 것이야!! 보았는가? 지금 올라온 이 장계를 보았어?!
최승우 : 예, 폐하. 신도 억장이 무너지옵니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아... 아...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아니, 궁예왕 그 자가, 미,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달이를... 그렇게 참혹하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
최승우 : 이미 마진국의 궁예왕이 이성을 잃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고 하옵니다. 자신의 신하들도 관심법인가 뭔가로 짐승처럼 때려죽이는 정신이상자이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 아니, 적군의 장수라지만 이렇게, 이렇게 죽일 수가 있는가...
수달의 죽음에 견훤을 울분을 참지 못한다.
능애 : 폐하... 지금, 폐하의 장수들이 바깥에서 령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더 망설이실 것 없사옵니다. 수달 장군의 원수를 갚아야 하옵니다. 출전의 령을 내리시오소서!
어... 그 불 속에서 죽다니... 얼마나 뜨거웠겠느냐... 아우야... 수달 아우야... 아...!
아우야!!!!!!!!!!!!
견훤, 최승우, 능애가 수달이 죽었다는 장계를 받고, 충격에 휩싸인 장면 94화에서. #

완산주를 수도로 삼아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은 연호를 정개(正開)로 하는 등 황권을 강화하고 신라와 차별화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901년에는 첫 번째 대야성 공략을 진행하여 실패하였으나 주변 읍성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신라와는 달리 견훤의 세력권은 점점 넓어졌다. 그러나 903년 왕건이 주도한 나주 공방전과 이에 내응한 토착 세력들의 배반, 그리고 밀약에 따라 움직인 신라의 협공으로 인해 금성(나주)과 그 일대 지역들이 마진에게 함락당하고 강주성도 신라에 빼앗기는 등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실제 역사에서나 드라마 안에서나 나주는 견훤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만다. 특히 88화부터 묘사된 두 번째 나주 공방전에서는 장군 방희가 신숭겸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의형제인 수달이 적에게 사로잡혔다가 궁예에게 보내져 불태워져 죽는다. 이에 견훤은 최승우의 만류에도 나주를 공격하지만 큰 피해를 받고 끝내 나주를 되찾는데 실패하여 서해의 제해권까지 모조리 상실하는 등 결정적 타격을 받았다.[4]

나주 공방전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최승우의 계책을 받아들여 태봉에 첩자[5]를 보내고 궁예와 왕건을 비롯한 태봉의 신하들 사이를 이간질시키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후 다시 신라를 도모하기 위해 벌인 2차 대야성 전투에서 또 하나의 의형제이자 맹장인 추허조까지 전사하였고[6] 견훤은 분노해 신검과 양검 등을 매질한 뒤 군령을 적용해 죽이려 하나 신하들의 만류로 겨우 그만두게 된다.

왕건에게 태봉이 무너지기 전까지 최승우와 함께 국력을 키우면서 성급하게 태봉을 공격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보면 아직은 왕건과의 대립구도는 아직 크게 세워지지 않았다...하지만....

2.2. 후반부: 최종 보스

2.2.1. 고려와의 혈전

태조 왕건 메인빌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초중반부 중후반부
후고구려편 후백제편
파일:궁예태조왕건.jpg 파일:external/dimg.donga.com/6832833.1.jpg
궁예 견훤
}}} ||


918년 역성 혁명으로 궁예가 축출되고 그 자리를 왕건이 대신하며 고려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견훤은 초반에는 고려와 화친하고 세력 확장을 시도하였지만 곧 충돌하게 되어 조물성 전투가 벌어진다.[7][8] 양국의 태자들끼리 맞붙은 제1차 조물성 전투[9]에서는 비슷한 승부가 났지만 제2차 조물성 전투에서 전장에 돌림병이 돌아 큰 피해가 발생했을 때 치료약을 찾은 백제와는 달리[10] 고려는 치료약을 찾지 못해 군사 태평이 전장에서 죽고 제대로 싸울 수가 없게 되자 이를 이용하여 견훤은 왕건과 형제의 예를 맺고 서로 인질을 교환하여 신라를 고립시키게 되었다. 이 작전으로 고려와 백제 사이는 잠깐의 평화를 얻었지만 고려와 백제와의 관계는 백제가 고려에 볼모로 보낸 진호가 죽게 되고[11] 왕신도 그 소식을 듣자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이했고 이 이후는 후백제의 멸망까지 전쟁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고려와의 대결 초반은 후백제가 유리했다. 대야성 공략에 성공한 뒤 두 번의 조물성 전투에서도 결과적으로 우위를 점한 것은 물론이고, 파진찬 최승우의 귀신같은 전략에 힘입어 고려와 신라에게 동시에 치명타를 안긴다. 서라벌 공략에 성공해 경애왕에게 온갖 수모를 준 뒤 죽게 만드는 한편, 경순왕을 즉위시켜 신라를 강제로 자신의 영향력 안에 넣었다.[12] 그리고 신라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고려군을 맞아 벌어진 공산 전투에서는 신숭겸을 비롯해 고려의 공신 여덟을 죽이고 1만여 명의 병사를 전멸시키는 대승을 거뒀다. 비록 목표로 했던 왕건을 잡진 못했지만, 신숭겸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왕건이 꼼짝없이 목숨을 잃었을 정도로 완벽한 승리였다. 왕건을 잡았다고 확신하던 시점에서 견훤은 그야말로 삼국 통일의 위업이 손아귀에 들어오는 것처럼 여기고 60년 평생 이렇게 설렌 순간이 없었다며 뿌듯해하는데, 이 때가 실로 견훤과 후백제의 리즈 시절이나 다름없었다. 덤으로 약 20여 년 동안 점령당했던 나주까지 잠시나마 다시 되찾았다. 또한 삼년산성 전투에서도 호족들을 항복시켜 승리하는 등 고려와의 세력 다툼에서 후백제는 약 몇 년 간 우위를 점해 간다.[13]

하지만 견훤이 후계자 결정 문제를 두고 신료들과 마찰을 빚으면서 후백제 조정에는 내부 분열의 조짐이 싹트기 시작했고[14], 이후 벌어진 고창 전투에서 경애왕의 죽음으로 후백제를 증오하고 있던 고창의 토착 세력인 김선평, 권행, 장정필, 즉 삼태사들의 완강한 저항과 고려의 맹장 유금필 등의 활약에 의해 전사자만 본대의 절반에 가까운 8천여명을 기록하는 참패를 당하면서 이 전투를 기점으로 견훤과 후백제는 내리막길을 타게 된다. 특히 작중에서는 고창 전투에서 협공을 하기로 되어 있던 신검의 부대가 별의별 핑계[15]를 대면서 협공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졌다고 묘사하며 이 전투가 후백제 내부 분열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창 전투의 패배 이후로 견훤의 마음은 더욱 금강에게 기울어졌으나 최승우의 간곡한 청으로 결국 신검에게 최후의 기회[16]를 주기로 한다. 개경 공략전에 대한 지휘권을 신검에게 맡기면서 이 작전에 성공해 고려 왕의 목을 가져올 수 있다면 옥좌를 넘겨주겠다고 한 것이다. 만약 작전에 실패한다면 너의 모든 권리는 금강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말과 함께. 이 때 견훤은 신검에게 '아무리 그래도 자식인 너를 내가 미워할 리가 있겠느냐' 며 장남에 대한 애정어린 말을 해 주었고 정말 오랜만에 '부자지간의 정'이라는 것을 느낀 신검은 감동한 나머지 울먹이기까지 했으며 작전 성공에 대한 의욕을 더욱 불태운다.

이때 견훤의 대사는 다음과 같다.
"너는 나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하는 이유 중에는 그 근본에 부자 간의 정이 있기 때문이야. 아느냐?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아니다... 미워한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너의 허약함과 부족함 때문이었어. 내가 너를 그 동안 때리고 채찍질한 것은 너의 그 많은 단점들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어..."
"이 애비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네 그 많은 증오를 이번 전투에다 불태워 보거라. 그리고 진정으로 이 나라의 태자로서 거듭나거라. 그리고 보이거라! 내게 보이거라! 그리하여 볼 것을 내게 보인다면... 나는 약속대로 너에게 이 옥좌를 줄 것이다. 다음 보위에 관한 일을 종지부를 찍을 것이야! 알겠느냐 신검아. 이 애비의.... 약속이다!"

최승우까지 동행하여 해군을 통해 송악 황궁을 직접 쳐들어가 고려의 수군을 무력화시키는데는 성공하지만 때마침 왕건이 서경으로 갔기 때문에 왕건을 잡지 못한다. 비록 왕건을 잡지 못했지만 큰 전과였다. 하지만 유금필이라면 이를 가는 애술의 말을 듣고 신검이 교만하게 곡도로 갔다가 절반 이상의 수군을 잃는 바람에 이번에도 기세를 반전시키지 못했다.[17] 이는 견훤의 조급함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운주 전투를 무리하게 강행하는 원인이 되었다.[18] 때마침 앓던 등창이 원정 중에 더욱 심해져서[19] 진군도 후퇴도 못하는 사이에 고려군이 먼저 운주에 도착한다. 그런 상태에서 총사인 신검이 무리하게 견훤을 적진으로 이끌고 가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사이에 고려군에게 포위된다.[20] 서둘러 온 탓에 겨울 준비도 잘 되어있지 않아 병사들이 쓰러지고 사기도 낮아 견훤의 군대는 이번에도 대패하고 만다. 장군 최필은 견훤을 지키다가 전사했으며 술사 종훈은 포로가 되고 의사 훈겸은 살해당했다.[21] 결국 후백제는 이 패배로 더욱 기세가 기울었으며 견훤도 건강이 악화되어 운주 전투를 마지막으로 전투에 더 이상 출전할 수 없게 된다.

2.2.2. 금산사 유폐

운주 전투에서 패배하고 돌아온 견훤은 뒤를 이을 후사를 결정하기로 마음먹었고, 총애하던 금강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하였다. 최승우는 견훤에게 금강이 후사를 잇게 하려면 신검, 양검, 용검을 불러 죽이라 했으나 견훤은 그래도 자식이라며 이를 따르지 않았고, 대신 차선책으로 양검과 용검을 강주와 무주로 내려보내고 신검을 순행이라는 명목으로 먼 곳에 보낸 뒤 금강을 보위에 올리려고 하였다.[22] 이를 위해 견훤은 이찬 능환에게서 최승우에게 모든 실권을 넘기고 박영규에게 군권을 넘기는 등 황제의 권력을 이용해 사전 작업을 하였지만 신검은 이보다 한 발 빠르게 움직였다. 양검과 용검을 지방에서 불러들이는 한편 견훤의 형제에 해당하는 능환, 능애는 물론 신덕, 파달 등을 끌어들여 반역을 꾀한다. 이 와중에 의원들이 등창을 치료하는 씬에서 견훤은 아버지 아자개처럼 "아갸갸갸갸갸갸갸갸" 하는 소리로 비명을 질러 의도치 않게 개그신을 보여주기도 했다.[23]

그리고 935년 3월, 기어이 난을 일으켜 파진찬 최승우와 금강을 죽인 신검 일당은 견훤을 후궁 고비와 함께 금산사에 유폐해 버린다.[24] 왕위를 찬탈당하고 아들 금강과 친우인 최승우의 죽음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견훤은 슬픔 속에서 하루하루를 술로 세월을 보낸다. 심지어 등창을 치료하면서까지 병나발을 불 정도로 정신적으로 막다른 상태임을 보여주었다.[25] 이렇게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던 와중에 후백제의 왕사인 경보 대사가 방문한다. 능환은 경보가 견훤을 만나는 걸 반대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돌려 정식으로 황제 자리를 물려받고 싶던 신검은 경보의 방문을 허가했고 덤으로 경보에게 견훤을 잘 구슬려 보라고 편지까지 써준다. 그러나 도선 대사의 수제자였던 경보는 오래전부터 후백제와 견훤의 운명을 예측하고 있었고, 견훤한테 간 것도 사실은 후삼국 시대를 끝내 백성들의 고통을 끝내기 위한 것이었다.

2.2.3. 고려로 귀순하다

경보는 처음에는 견훤에게 신검과 화해할 것을 권유해 보지만 견훤은 단호히 거부한다.[26] 그러자 경보는 최승우와 금강을 위한 천도제를 지낼 것을 권하는데, 이를 통해 견훤의 마음의 상처를 달래는 동시에 견훤이 일생 동안 이룬 모든 것은 다 수많은 백성들의 희생 덕분이었다는 걸 일깨워준다. 그리고 194회에 이르러선 왕건과 함께 삼국을 통일하라는 엄청난 발언을 한다. 견훤은 처음엔 화를 내지만 사실 견훤 역시 신검은 왕건의 상대가 될 수 없으며, 이로 인해 결국 고려가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고려에서는 아자개의 편지를 보내 견훤의 마음을 더욱 흔들었고, 거기에 후궁 고비 역시 어차피 고려에게 무너질 제국이라면 차라리 견훤 자신의 손으로 후백제를 거두는 게 낫다고 설득해 결국 견훤은 자신이 세운 왕국을 자신이 거두기 위해 고려로 귀순하기로 결심한다. (195회).

견훤은 경보에게 연통을 넣어달라고 부탁하여 이를 사위 박영규에게 전하게 하고, 관직을 빼앗기고 승평에서 향리로 지내고 있던 박영규는 국대 부인의 뜻을 받아들여 집사에게[27] 자신의 휘하 무사들을 인솔하여 금산사로 가도록 하고 동시에 나주의 고려 측 인사들에게도 연통을 넣어 조치를 요청함으로서 견훤의 탈출을 돕기로 한다.

금산사의 낙성 법회가 있던 날. 집사들이 몰래 약을 탄 술에 취해 버린 파달 장군과 후백제 군사들을[28] 뒤로하고 견훤은 도망쳤고[29], 고령의 나이에다 등창이 뼈까지 닿아 제대로 일어서기도 힘든 와중에도 무사히 탈출한다.[30][31] 배를 타고 나주로 가는 장면에서 박영규의 수하가 날씨가 좋아 빠르고 편히 갈 수 있다고 한 말에 "다시는 못 올 길인데 뭘 그리 빠르고 편히 간단 말이냐."라면서 굉장히 울컥해 하기도 했다.[32] 이후 나주에 도착해 유금필을 포함해 고려군을 만나는 데 성공한다.

나주에서 고려군의 호위를 받아 도주할 때 후백제의 장수 상귀가 배를 이끌고 길을 막았지만, 극의 클라이막스 전투인 일리천 전투의 복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호령 하나로 추적병들이 감히 활을 쏘지 못하게 할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고 견훤과 고려군은 우왕좌왕하는 후백제 수군들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 무사히 고려로 도주할 수 있었다. 이 견훤의 고려 귀순은 후삼국 시대 최고의 전환점이자 클라이막스로, 이 사건으로 인해 태조 왕건은 극이 종결되기 2화~3화 전까지도 극적 긴장감을 충실히 유지할 수 있었다. 견훤의 탈출극 이후에는 왕건과 견훤, 신라를 바치고 항복해 온 경순왕까지 삼한의 (옛) 주인들이 나란히 앉아 백제 정벌을 논하는 모습이 그야말로 백미였다.
왕건: 상보 어른. 어서 오시옵소서. 상보 어른.
견훤: 아우님.
왕건: 상보 어른. 잘 오셨사옵니다. 이 아우가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견훤: 고맙사옵니다, 아우님.
왕건: 어찌하여 이 아우에게 존대를 하시옵니까? 예전처럼 하시옵소서.
견훤: 아니오.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니오. 절 받으시옵소서.
왕건: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이 무슨...
견훤: 이미 나는 백제국의 황제가 아니오. 나라를 잃어버린 폐주가 어찌 대국의 황제와 동등할 수가 있겠소이까? 절 받으시오.
왕건: 아니되옵니다! 상보 어른, 상보란 뜻은 어버이격의 어른에게 일컫는 높임말이옵니다. 그럴 수 없사옵니다.
견훤: 받아주시오, 황제.
왕건: 아니되옵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사옵니다. 이렇게 아우에게 와주신 것만 해도 큰 은혜이옵니다. 하물며 상보 어른께서 형편이 어렵다 하시여 이 아우가 절을 받을 수 있겠사옵니까?
견훤: 나라와 나라일이오. 수많은 눈들이 보고 있소이다. 이미 나는 폐주의 몸이라고 하였소. 고려국 황제 폐하! 폐주, 알현이옵니다! 절 받으시옵소서!
왕건: 상보 어른. 상보 어른!
나주를 출발해 무사히 고려에 다다른 뒤 견훤은 예전 조물성 전투에서 형제의 예를 맺었을 때처럼 성대히 모시며 상보로 대우하는 왕건에 대해 아우님이라며 존대를 한다.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왕건에게 이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이라 하며, 왕건이 크게 놀라 어찌 아우가 상보께 절을 받느냐며 극구 반대하는데도 폐주를 자처하며 한사코 큰절을 하면서 앞으로 삼한의 주인이 왕건이고 자신도 고려 사람이 되었음을 알린다. 왕건도 크게 놀라 서둘러 견훤을 일으키며 어찌 이러시냐고 안타까워한다. 주변 사람들도 견훤의 모습에 말을 잃을 지경이었다.

연회 때 박술희를 알아보고는 "하마터면 내 매제가 될 뻔 했었지?"라고 묻자 박술희가 인정하면서 호탕하게 웃기까지 했다. 왕건은 견훤의 수발을 맡은 관청은 소홀하지 말라고 했으며, 발각될 경우 크게 경을 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 임무를 시중 김행선에게 위임했다. 상보로 대우받는 예로, 신라의 경순왕이 항복하러 직접 개경으로 올 때도 옥좌에 앉은 왕건 바로 옆에 앉아있을 정도였다.

2.2.4. 일리천 전투

후백제와의 일전을 준비하는 왕건에게 간청해[33] 일리천 전투에 선봉으로 참여한다.
나의 군사들이여, 백성들이여! 어서 오라, 두려워 말고 오라, 어서 오라! 무기를 버리는 자는 모두 살려 줄 것이다! 버려라, 다 버려, 버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 고려국 황제 상보 견훤'의 수기를 내걸고 선봉으로 나선 견훤은 또 다시 강력한 카리스마를 드러낸다. 일단 입고 나온 갑옷부터가 황금색에 용까지 새겨져서 왕건의 호피 무늬 갑옷보다도 더 화려한데다, 말도 혼자서 백마를 타고 있어 오히려 왕건보다 더 황제처럼 보일 정도였다.[34] 일리천 전투에 참여한 수만 명의 후백제군 병사들과 장수들은 견훤의 일갈에 그대로 데꿀멍하며 감히 고려군을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고, 견훤이 " 나의 백성들아. 무기를 버리면 살려줄 것이다"라고 말하자 후백제군은 와해되기 시작한다.[35]

고려군은 항복한 애술과 김총이[36] 알려준 정보를 통해 황산벌에서 후백제군을 포위했고, 결국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신검이 투항하기로 결정하면서 전쟁은 고려의 승리로 끝났다. 항복을 위해 고려군의 진영을 찾아온 신검 일당들을 본 견훤은 저들은 나라를 들어서 바친 것이 아니라 실패를 하여 항복한 것이라고 말하며 항복한 자들을 엄벌할 것을 요구한다. 반란의 수괴로서 처형을 언도받고 담담한 태도로 죽음을 맞이한 능환, 능애나 파달, 아무 말도 없는 신검 등과는 달리 자기의 친아들들인 양검과 용검이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자 견훤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더욱 기가 막히고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견훤: 고려의 황제께서는 뭐하시오!? 이미, 적국의 수괴들이 무릎을 꿇었소이다! 당연히 그 죄를 물어야 하실 것이요!
능애: 나라를 들어바친 황제이시옵니다! 죄란 가당치 않사옵니다!!
견훤: 닥치지 못할까?!!! 들어서 바친 것이 아니라! 실패를 하여, 항복을 한 것이다! 죄를 받아야 할 것이야!!
양검: 살려주시옵소서 폐하! 이미 나라를 다 바쳤사옵니다!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용검: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이미, 다 끝이 났사옵니다 폐하...!
견훤: 그래도... 백제 황실의 태자들이 아니냐...! 내가 보고 있는데... 더럽게 목숨을 구걸한단 말이더냐! 죽이시오, 황제!!
양검, 용검: 아바마마! 아바마마!!
견훤: 죽이시오, 황제...!!! 백제국을 훔친 놈들이올시다. 나의 제국을 훔쳐서 이렇게 한 놈들이올시다!! 죽이시오!! 죽이시오!! 우선 저 신검이 놈부터 먼저 죽이라고 명하시오!! 말도 아니 되오!! 나라를 훔친 도적이라고 하였소이다. 제 형제를 죽인 놈들이라고 하였소이다. 그리고, 황제의 자리를 훔친 놈들이올시다. 죽이시오!! 죽이시오!!
제국의 아침 2회[37]에서의 왕건의 회상[38]
신검은 두 형제와는 달리 목숨을 구걸하지는 않았으나, 부자 상봉 자리에서 결코 담담할 수는 없었고 평생 동안의 회한이 끓어넘치는 표정으로 아우들 옆에서 아버지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나마 왕건이 자비를 베풀어 양검, 용검은 진주에 유배하고 신검은 살려둘 것을 명하자, 견훤은 분노로 이성을 잃고 왕건에게 신검을 죽이라며 노발대발하다가 뼈까지 이른 등창이 악화되어 쓰러지고 왕건과 박수문 형제의 부축을 받아 자리를 떠나게 된다.

편집된 대본[39]과 달리 방영분에서는 실제 역사에서 신검 형제의 행적에 대해 설명하는 내레이션[40]과 함께 신검이 처형되는 모습을 지나가듯이 보여준다.[41]

2.2.5. 최후

완산주가.... 그립... 구.... 나.....
작중 견훤의 유언
견훤의 죽음. 견훤은 후백제가 황산에서 멸망할 당시 그곳에서 쓰러져 인근 절간으로 옮겨졌다가 수일만에 등창이 터져 죽었다. 그때 그의 나이 70세였는데 삼국유사는 그가 죽은 날을 서기 936년 9월 8일로 적고 있으나 그 정확성은 의문이 있다. 어쨌든 견훤은 이렇게 죽었다. 그야말로 후삼국시대 파란만장했던 한 영웅의 비참한 최후였던 것이다. 일설에는 견훤이 죽기 전에 자신의 죽음을 알고 지금의 전주를 바라볼 수 있도록 묻어달라고 유언했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그랬는지 그의 묘는 지금의 논산시 한 야산에 묻혀 멀리 전주를 보고 있다.[42]
견훤 사후 성우 김종성의 나레이션
견훤은 급하게 근처에 있는 절에 옮겨져 시름시름 앓다가, 왕건이 마음을 바꿔서 세 아들 모두 목을 베었다는 김행선의 말을 듣자 그토록 원망했던 아들들이지만 결국 처형되었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뒤 "완산주가 그립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쓸쓸히 눈을 감는다. 아우와 아들들은 모두 처형되고 자신의 나라는 끝나며 등창이 터진 이후 완산주로 상징되는 후백제 황제로서 군림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절간에서 사망하는 모습은 그동안의 위용과 전성기를 생각하면 상당히 서글픈 최후이다.

드라마에서는 결국 부자간에 쌓인 원한으로 갈등 해소 따위 없고 서로 적이 된 상태로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끝나기 때문에 안타까워한 시청자들도 있었지만, 드라마 방영 당시 출간된 소설 버전에서는 견훤이 죽기 직전 꾸는 꿈에서 신검, 양검, 용검 태자들과 만나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세 태자들은 "저희가 그렇게 미우셨습니까? 저희도 금강이처럼 그저 아바마마로부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듣고 싶었을 뿐입니다."라고 울며 하소연하고 이전 "이 애비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라고 하긴 했다. 견훤이 이에 대해 뉘우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화해를 하게 된다는 식으로 눈을 감았다.

드라마에서 궁예에 맞설 정도로 포스 있는 캐릭터가 초반에는 견훤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실 태조 왕건에서 초반, 후반 스토리 담당은 궁예와 견훤이 주인공이고 왕건은 들러리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태조 왕건은 궁예와 견훤 등이 순서대로 퇴장하고 이후에 통일한 왕건이 신료들, 장수들, 군사들에게 환호를 받으면서 끝난다. 신검 처형 장면이 마지막 촬영이었지만 견훤의 최후가 태조 왕건의 대단원인 셈.

3. 특징

3.1. 세계관 최강 무력, 영웅의 기질

허허허허.. 장군께서는 보아하니 누군가의 밑에 있을 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종간

후삼국 시대의 황제지만 출중한 무력으로도 볼만한 장면이 많았다. 작중 힘이 장사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서 그런지, 실제로 드라마 속에서 견훤이 무력의 화신인 항우에 비견되는 장면도 여럿 있었다. 91화에서 적진 한가운데로 난입해 통나무를 들고 빙글빙글 훨윈드를 돌거나[43] 자기 몸의 반 정도 되는 청동화로를 맨손으로 들어 집어 던지기도 했다.[44] 꽤 비현실적인 장면이지만 중장년층에서는 "나라를 세운 호걸 장사라면 저 정도는 해야지!"라는 감상도 있었다. 실제로 작중 통나무에 고려군 병사들이 맞을 때마다 나오는 둔탁한 타격음이 꽤나 들을만하다.

하지만 책사인 최승우의 존재로 견훤의 전략적 식견이 묻힌 경향은 강하다. 극중 후백제가 유리한 고지에 임한 경우는 최승우의 계책대로 돌아간 경우가 대부분이며, 반대로 패배할 때는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최승우의 조언을 무시한 결과로 등장하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최승우가 냉철하게 간언해도, 견훤이 자신의 감정이나 자존심 때문에 이를 거절하는 식의 전개가 흔하게 묘사된다. 오히려 견훤 스스로 후백제를 거두게 된 일리천 전투에서 견훤은 냉철한 자세로 전쟁에 임했고, 이때 견훤의 전략적 식견이 묘사되었다. 견훤 자신이 직접 나서면서 왕건과 유금필 등에게 군사의 포진을 지시했고, 후백제 내 자신의 입지를 철저하게 활용하여 후백제군의 와해를 유도하였다. 또한 후백제군의 사기가 완전히 바닥났다고 판단이 섰을 때 공세를 펼치게 하는 등, 늙고 병든 상태였음에도 노련한 모습을 보였다.

수달과의 회담 장면에서 수달이 견훤에게 '용맹은 있으나 그것은 필부의 것이다' 라고 일갈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또한 항우에 대한 한신의 평과도 같으니 결국 패권을 차지 하지 못한 견훤에 대한 복선인 듯 하다. 태조 왕건은 작가가 삼국지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은 드라마지만 극 중 견훤의 이미지는 초한지의 항우와 많이 겹치지만, 꼭 나무랄 수는 없는 것이 실제 역사서들과 역사학자들에게서 왕건과 견훤은 흔히 유방과 항우에 비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우와는 달리 극중의 견훤이 직접적인 전투 외에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거나 학살을 방조한건 서라벌 기습 때가 유일하며 병졸들이 신라 궁궐의 내관들과 신하들을 학살하고 궁궐에 불을 지를때, 최승우가 '학살과 방화를 말려야 한다'라고 하자 '그냥 내버려 둬라'라고 했다. 이 경우를 제외하면[45] 포로나 백성 등에 대한 지나친 학살은 없었고 반대로 황제로서의 의무와 책임감에 대해 말하거나 민생에 신경쓰는 장면들을 보이면서 견훤이 싸움만 잘 하는 전쟁광이 아님을 보여주었다.[46]


또한 점지어진 군주인 왕건의 진정한 라이벌답게 그냥 닥치고 무력만 강한 단순 무식 캐릭터들과는 일선을 긋는 묘사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난다. 무력 못지 않게 성품도 뛰어나 서라벌에 가는 길에 도움을 받은 왕융은 그를 보고 장수 중의 장수라고 평가했으며 능환도 말하듯 밑바닥에서부터 일어나 나라를 세운 창업자이다 보니 자잘한 법도나 체면에 얽매이지 않고 배포가 큰 모습을 여러 번 보여 준다. 서라벌 공격 작전에서는 위장 작전을 위해 일반 지휘관들이 걸치는 갑옷을 입기도 했고,[47] 최승우를 등용하기 위해서는 몸소 찾아가 무릎을 꿇기도 했고 도선 대사의 수제자인 경보 대사를 왕사로 삼기 위해 몸소 찾아가는 성의를 다하기도 한다. 경보 대사가 견훤을 시험해 보기 위해 스님에겐 절을 세 번 해야 한다고 하자 박영규는 무례하다며 꾸짖으나 견훤은 돗자리를 깔게 하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절을 올렸다. 이에 경보가 세 번을 절해야 한다며 두 번 더 하라고 하자 능환과 신검은 발끈했지만 견훤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웃으며 마저 절을 올렸다. 경보는 이걸 두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지만 스스로를 낮출줄 안다'고 감탄한다. 이 때에 마찬가지로 경보 대사를 방문한 고려의 책사 최응 또한 견훤이 절하는 모습을 뒤에서 보고는 자신을 따르는 시종에게 "역시 견훤 왕은 그릇이 큰 사람"이라며 추켜세운다.

이렇듯 대를 위해서 기꺼히 자신을 낮추는 것도 견훤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그저 '미륵'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존재로만 보았던 재위 후반기의 '미치광이 황제' 궁예의 경우 황제가 되기 전 기훤의 수하로 있다 '기훤'이 살해된 직후 기훤의 세력을 자신이 흡수를 하였으나 당시 기훤의 세력은 양길에 비해 세력이 너무나 약해 양길과 싸워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고 부하들을 거느리고 양길에게 투항했을 때 양길에게 무릎을 꿇은 적이 있었지만 당연히 황제가 된 이후에는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은 적이 없다. 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삼국지'의 '유비'와 비교되는 성격인 왕건마저도 황제가 된 이후 이렇게까지 하는 장면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역사나 드라마에서나 왕건은 '견훤'과 지방의 연로하면서 중요한 호족들의 경우에는 그들을 '상부', 즉 자신이 아버지처럼 모신다는 겸양의 면모들을 보였고, 드라마에서는 조물성 전투후 견훤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지만 그것은 '조물성 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한 직후라 자신과 부하들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견훤에게 절을 한 것이었다.

또한 내레이션을 통해 종종 설명되는 것처럼 마진국과 달리 오월, 후당 등의 중국과의 외교도 신경쓰며 민생을 안정시키는게 황제의 의무라고 말하거나 무작정 전쟁을 하는 것보단 국력을 비축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등 정치적, 외교적 식견도 어느 정도 있는 모습을 보인다.

3.2. 성격적 과오

다만 꼭 중요한 순간에 욱하는 성격으로 인한 과오가 발목을 잡았다. 성정 자체가 괄괄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신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차별 대우아들들에 대해 박정한 태도가 큰 문제였다.

물론 견훤이 비록 욱하는 성질에 괄괄한 성품이었지만, 그렇다고 ' 관심법'으로 아무나 두들겨 패 죽이던 궁예나 스스로 몰락을 자처한 기훤 같은 막장과 비교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 가령 경계를 소홀히 하여 '나주'를 빼앗긴 의형제 ' 수달'이 죽음을 청했을 때 끝내 용서해 준 일이나 군법을 적용해 달라던 장수들 및 전쟁에 실패한 아들들을 죽이려 하다가도 다른 신료들의 청을 받아들여 결국 살려준 일, 그리고 최승우를 등용할 때나 수달, 추허조, 최필 등 의형제 또는 아끼는 수하들에 대한 태도 등을 볼 때, 견훤은 오히려 사람을 아끼는 편에 속한다.

견훤이 전쟁에 패한 장수들(특히 태자들)에게 살아 돌아왔다고 갈군다든지 매질을 한다든지, 전투에 대패한 장수나 태자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한다든지 하는 묘사가 많이 보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잠시 후 머리를 식힌 견훤이 상대방을 야단만 치고 마무리 짓는 식으로 끝났다. 불같은 성미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말년의 궁예처럼 의식의 흐름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고창 전투'에서 돌아와 대노해서 신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황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아봐라."고 소리치고 황태자의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악을 쓴 것은 당연히 변호의 여지가 있는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 자식들이 자신과 금강을 죽일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출정하지 않아 군사가 전멸하고 자신도 죽을 뻔한 위기에 처한' 후에 한 말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극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작가의 설정이겠지만 공교롭게도 이때 '고창 전투'에서 견훤과 함께 죽을 고생을 한 금강, 최승우, 박영규는 모두 나중에 신검 일파에게 제거되거나 반대편에 서게 되는 인물들이다. 어쨌든 견훤의 작중 행적 중에서 극 후반부 이전에 사람의 목숨을 경박하게 여긴 사례는 서라벌 침공 때 목숨을 구걸하는 ' 경애왕'에게 구역질이 난다며 자살을 강요하여 결국 자진을 빙자해 살해하고 궁궐의 신료들과 환관들과 궁녀들을 살육하고, 궁궐에 불을 지르고, 경애왕의 황후가 견훤의 겁탈을 우려해서 스스로 자살하게 만든 사건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행동은 너무나 도에 지나쳐서 실제 역사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드라마에서도 견훤에게 악평이 가해지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견훤이 비판을 듣는 것은 자업자득이니 당연한 일이다. [48][49]

드라마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그나마 잘 조절되고 있던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견훤의 실책도 늘어났다. 고창 전투와 운주 전투에서의 패전 이후 자신의 건강(등창), 후사 문제 등으로 점점 조급해지며 최승우와 박영규 등의 일부 신료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인물들을 거의 믿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아들들 및 신료들과 대립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작중의 모습만 봐도 ' 고창 전투'를 기점으로 나이가 들어가고 몸이 약해지면서 성격이 더욱 조급해지고 사나워져 신료들에게 면박을 주는 경우도 늘어나는 것으로 그려진다. 의형제로서 평생을 함께 한 이찬 ' 능환'은 언제부턴가 나올 때마다 면박을 주었다. 특히 금강에게 황위를 넘겨주기 위해 이찬을 사실상 은퇴시키면서도 또 늙었다고 면박을 주었는데 그때는 '능환'이 인상을 쓰고 몸을 부르르 떨며 분노와 모멸감을 참아야 했을 정도였고, 친동생 능애를 비롯한 신검을 지지하는 신료들에게는 '네가 뭔데 감히 지껄이느냐'[50]라는 식으로 대놓고 면박을 주면서 무시하는 장면도 늘어났으나, 이 부분에서도 견훤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변호를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고창 전투' 이후 견훤의 신료들에 대한 질책은 근본적으로 신검을 지지하는 신료들에게 향한 것'으로 신검이 '고창 전투'에서 아버지이자 황제인 견훤에게 패륜과 반역을 저질렀는데도 무조건에 가깝게 신검만 편들고 있으니 이렇게 그들에게 분노와 면박을 주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문제는, 신검 형제들의 패륜과 반역과 이적행위와 이를 감싸는 신료들의 태도는 늘 아들들에 대해서는 늘 엄격하고 극단적이었던 견훤 본인의 언행이 원인이라는 점이다. 특히 맏아들 '신검'에 대해서는 자기 마음에 차지 않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신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서슴없이 심하게 면박을 주거나 매우 심한 꾸중을 하거나 심지어 처형시키려는 경우가 자주 있었고 이것이 '신검'이 비뚤어지는 원인중 하나가 되었다.[51] 흔히들 극중 중 후반부에 금강이 두각을 나타내며 신검, 양검, 용검을 차별 대우하던 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가만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게 아래에서 비교할 첫 대야성 정벌 당시 똑같이 살아돌아온 친아들 신검과 의형제로 삼은 부하 추허조에 대한 격렬한 반응의 차이를 보면 아무리 국가간 전투라는 공적인 일임을 감안해도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며 실제로 당시 시청자들조차 평가가 엇갈렸다고 한다.[52] 심지어 이 대야성 전투 때는 고비가 이제 막 궁중에 들어와 금강은 등장하지도 않았던 시절이다. 실제 역사가 어떤지 잘 아는 시청자들은 이미 이 때부터 뜨악할 수밖에 없었다.
신검이 살아 돌아왔을 때의 반응(태조 왕건 38화 후반부 ~ 39화 초반부)

(견훤) 함께 간 지휘 장수가 쓰러졌는데 네 놈 혼자 도망을 치다니. 네가 그러고도 이 견훤이의 아들이란 말이더냐!! 그러고도 네가 대 백제국의 태자이더냐!! (마구 매질하며) 이놈아!! 이놈아!! (칼을 빼들고) 너는 나라의 명예를 더럽혔다!! 이 칼로 목숨을 끊어라!! 어서!!! 이 애비의 말이 들리지 않느냐. 이 칼로 너의 명예를 지키라 하였다.!!
(견훤) 함께 간 장수가 쓰러졌는데 혼자만 도망쳐 오다니!!
(신검) 아바마마.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적군의 공격이 워낙 심하였고 아군의 패색이 짙어 추 장군이 소자를 보고 먼저 전선에서 빠지라고 하여...
(견훤) 그래서...... 그래서 네 놈 혼자 도망을 쳤단 말이더냐!!
(신검) 그러하옵니다. 아바마마. 신은 추 장군의 영을 받았나이다. 아바마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신이 다시 나가 추 장군을 찾아보겠사옵니다!!
(견훤) 그만 물러 가거라. 이 못난 놈아. 네 놈 이름에 검(劍)자를 쓴 것이 부끄럽도다. 신검. 신검이라... 하... 하...... 기가 막힐 일이로다. 썩 물러가거라. 이놈아!!
추허조가 살아 돌아왔을 때의 반응(태조 왕건 39화 초반부)

(견훤) 허조로구나! 네가 살았구나!! 살았어. 살아 돌아왔어!!
(추허조) 폐하. 죽여 주시오소서... 용맹한 폐하의 군대를... 모두 잃었습니다. 군법으로 다스려 주시오소서!!
(견훤) 아... 아니다. 모든 것이 다 짐의 판단이 잘못된 탓이었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고맙구나. 살아줘서 고맙구나.
(추허조) 폐하. 참으로... 참으로 머리 둘 곳이 없사옵니다. 폐하....
(견훤) 어떻게 살아왔느냐. 다들 네가 죽었다고 했는데 어찌 살아왔느냐.
(추허조) 어쩌다 목숨을 건졌사옵니다. 허나 살아있는 것조차 부끄럽사옵니다
(견훤) 아니다. 잘 와 주었다. 자. 다시 해 보자꾸나!! 저 신라의 조무래기들을 우리 철기군으로 하여금 쑥대밭을 만들어 버릴 것이로다!! 남은 군사들을 다시 한 번 재정비하도록 하라!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는 일이오. 전 장수들을 다 모이라고 해!!

이렇게 의형제들이나 부하 장수들에게는 관용을 베푼 반면 처음 출전한 큰 전투에서 패전하고 돌아온 친아들에게 칼을 던지며 목숨을 끊으라 하고 있으니 반응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이런 식이니 벽진군에서 대패한 신검을 책망하며 맨 먼저 한 말이 네가 잃어버린 수천의 군사는 내가 보물처럼 아끼는 대백제국의 백성들인데 네가 허망하게 다 잃어버렸다라는 말이나 '고창 전투' 후 백제의 일길찬 염흔이 고려로 귀부한 일을 놓고도 신료들이 보는 앞에서 견훤이 신검에다가 대놓고 "너 때문에 갔다는구나. 너를 황태자를 안 시켜줘서 갔다는게야!!"라고 갈구는 말은 양반으로 들릴 정도다. 물론 추허조는 의형제였기도 했고 자기 아들들보다 신하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대의멸친(大義滅親)[53][54]의 행보는 신하들에게는 큰 감동과 충성심을 얻을 수 있는 일이며 이런 대접이 당시 사회상에서는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일이고 위의 사례들도 신검이 추허조만 버려두고 도망오거나 본인의 삽질로 전투를 말아먹고 병사들을 다 죽게 만들었으니 충분히 그럴수 있는 일지만 그것이 가정 교육의 문제점까지 덮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대야성에서의 실패는 최승우가 거듭 말린 것처럼 애초부터 무리한 정벌이었고 전투 자체도 최승우가 출진을 말릴 정도로 무모했다. 애초에 질 전투를 억지로 내보내 놓고서 젊은 나이에 첫 전투에 임하는 태자가 그것도 추허조가 피하라 해서 도망왔더니만 그걸 가지고 신료들 앞에서 두들겨 패고 자결하라고 칼까지 던진 것이다. 누가 봐도 기대와 달리 잘 안 풀리는 차에 자식이 자기가 기대한 모습을 못 보였다고 애먼 화풀이를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만 이 대야성 전투에서도 견훤을 변호해줄 수 있는 것은 '당시 신라는 오랫동안 이어져온 지배층인 진골 귀족들의 정권다툼과 부패,수탈로 인한 각지의 반란과 민란으로 극도로 쇠약해져 그야말로 이름뿐인 나라로 전락한 시점이라 이런 망해가는 나라의 성을 함락시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견훤의 대야성 함락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사전에 예측한 최승우와 왕건,최응,태평이 신기할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드라마이니까 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설정된 왕건과 드라마에서 가장 뛰어난 브레인들로 설정이 된 최응,최승우,태평 정도니 이걸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신라의 발전기라 할 수 있는 신라 선덕 여왕때도 백제의 공격으로 대야성이 함락된 적이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견훤의 대야성 공격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각설하고 견훤은 자기 자식이자 태자이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했지만 젊은 시절부터 하급 군관으로 고초를 겪어가며 단련된 자신과 달리[55] 자식들은 황궁에서 곱게 자란 아이들이었음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수련이나 사냥하는 아들들을 칭찬하기는커녕 항상 갈구는 아버지로 나온다. 대련하고 있으면 무예가 아니라 춤을 추고 있다고 갈구고, 사냥을 못 하면 아직도 그 모양이냐고 갈구고, 술을 못 먹는다고 또 갈군다. 여기서부터 '신검'의 아버지 눈치보는 소심한 성격이 뒤틀리기 시작했으니, 결국 대야성에 지나친 욕심을 부린 것이 후에 펼쳐질 처절한 후계자 암투의 시작점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주변 사람들과 척을 본격적으로 지기 시작한 것은 '고창 전투' 후였지만 아들들에 대해서는 시작부터 엄격하기만 했지 제대로 된 칭찬 한 번 해주지 않았고 금강이 태어나면서 차별이 더 심해진 것이니 가정 교육에서는 변호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 물론 작중에서 신검이 고의적으로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속내를 드러낸 '고창 전투'를 비롯하여 작중에서 신검이 헛짓거리를 한 일이 한두번도 아닌 건 사실이고 앞뒤 가리지 않고 신검을 옹호하는 신검파 신료들의 태도도 적장자 우선의 원칙만으로 설명하기엔 터무니없는 무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료들과 척을 지고 아들들의 사이를 갈라놓는 근원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분명히 견훤 자신이다. 이런 문제는 그가 폐위되어 금산사로 쫓겨나는 빌미가 되었다. 견훤은 틈만 나면 신검을 구박하고 능환과 능애를 비롯한 원로 신료들을 늙었다며 모욕하였지만, 견훤 또한 늙어가면서 막내에 대한 편애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아집과 독선으로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이 흐려진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정작 견훤 본인이야말로 누구보다 늙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견훤이 나이 60이 되어도 자신은 아직 늙지 않았다며 진노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꼬장이나 부리는 노망난 늙은이, 꼰대로 비춰지는 장면도 한둘이 아니다.

물론 가정 교육에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추허조 등의 장수들과 신검을 다르게 대한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게 애초에 기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추허조 역시 고위직 장군이라곤 하나 왕의 수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신검은 자신의 후계자로서 피땀흘려 세운 나라를 물려줄 인물이었다. 단적으로 장군이 실책을 저지르면 전투에서 패하지만 왕이 실정을 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 게다가 너무 자기 자신만 기준으로 삼는다는 비판도 좀 억울할 게, 자신과 달리 상인의 아들로서 패서 호족 도련님으로 커온 고려의 왕건은 어린시절 능숙하게 상단을 지휘하는 모습[56]을 보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20대 초반부터 3개 주를 평정하고 채 서른도 되기 전에 자신을 정면대결에서 패퇴시킬 정도로 온 삼한이 인정하는 영웅으로 컸는데, 정작 군인 출신인 자기 손으로 키운 아들이란 놈은 나이 서른이 되어서도 속시원한 승리는 고사하고 소중한 의형제를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 하고 있으니 빡이 치지 않을수가 없는 노릇이다. 즉, 미래의 황제인 만큼 자신은 둘째치고 적국 군주 정도의 능력은 보여줘야 할 것인데 당연히 신검의 능력치가 한참 딸리니 깐다는 것이다.

또한 패서라는 든든한 기반이 있었던 왕건과 달리 견훤은 후백제의 중심지는 고사하고 아예 영토조차 아닌 상주 출신의 쌩 외지인이며 신검마저 황후 소생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57] 무주-전주의 토착세력을 아래에 두고 군림하자면 적장자인 신검이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어 확고한 후계자로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데 능력은 고사하고 얼마 안되는 소중한 상주 출신 친위세력인 추허조를 휘리릭 날려먹었으니 이쯤되면 자식이 아니라 정말로 원수나 다름없다. 작가의 역량부족 내지는 현실적인 제작여건[58] 때문에 넘어간 일이지 이 정도의 대실패라면 신검의 모가지가 문제가 아니라 견훤 본인의 권위가 흔들려도 이상할게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식들을 미친듯이 갈궈서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게 만든 점까지 변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견훤' 본인은 비범한 인물이 틀림없으나 모든 사람이 그만큼의 역량을 가지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기대치를 상정해 놓고 그외의 모든 상황을 고려해 주지도 않았다, 또한 신검에게 칭찬이나 애정에도 지나치게 인색했다. 사실 이런 식의 과오는 수많은 자수성가형 아버지들이 흔히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분명히 자신과는 능력도 환경도 모든 것이 다른 자식에게 자신과 똑같은 방식을 엄격하게 강요하다가 결국 자식이 엇나가버리는 사례는 생각보다 쉽게 볼 수 있다.[59] 애초부터 경험을 쌓아야 할 데뷔전을 헬 난이도로 몰아놓고 용감히 싸우다 죽어서 돌아왔어야지 하면서, 심지어 당장에 자신이 베려고 한다면 살아돌아온 것 자체를 죄악시 삼는 마당에 훗날의 황제니, 후계자 운운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거기서 더 밀어붙여봤자 성과는 커녕 더 큰 피해를 입고 신검 본인이 전사한다한들 명예로운 전사 따위가 아닌 그냥 용렬함으로 인한 개죽음일 뿐이다. 당시의 싸움은 전원 옥쇄할 각오로 싸우는 계백 장군의 결사대 같은 상황도 아니고, 전쟁을 일으킬 여유가 있기에 영토를 넓히는 것이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마땅히 후퇴해서 다른 작전을 도모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장수가 죽었으면 태자도 함께 전사했어야지’ 가 아니고 ‘적의 저항이 거세어 장수가 전사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후퇴하여 태자와 일부 병사는 살아돌아왔다’는 반응이 나왔어야 했다.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이 뻔히 보이는 신검에게 과중한 자리를 계속 맡기니 신검은 계속 견훤을 실망시키고, 견훤은 계속 신검을 질책만 하니, 신검은 그 질책을 통해 자신을 개선하기는 커녕 아버지께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앞서 유리한 전투를 말아먹는 경우가 잦아지고[60], 결국엔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더군다나 견훤은 금강과 '신검'을 대할 때 금강에게 맡겼어야 할 일을 '신검'에게 떠 안기고 '신검'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금강을 곁에 두게 한 것도 자기 인생에 큰 화를 불렀다. 견훤과 금강, 신검을 처음 만난 ' 경보'도 금강과 '신검'에게 이 점에 대해 은유적으로 경고를 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견훤에게도 그런 성격적 과오에 대해 지적했으나 견훤은 이를 제대로 듣지 않았고 결국은 자식들이 아비의 덕을 망치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

드라마에서 견훤의 이런 자식 대우가 보다 비판받아야 하는 이유는 이런 행보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견훤 본인의 경험에서 쉽게 예측이 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견훤 본인부터가 계모와의 갈등으로 아버지와 척을 져 그야말로 대업을 그르치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신료들의 여론을 무시해 가면서까지 적자들을 박대하고 서자를 총애한 시점에서 절대로 해피엔딩은 기대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황후 박씨의 입버릇이 " 상주의 아버님과 똑같이 따라간다"였으니 결론적으로는 아버지인 아자개에게 받지 못한 인정을 자식들을 통해 보상 받으려다가 결국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이 되어 스스로 세운 나라를 무너뜨리는 허무하고 아이러니한 인생을 살게된 인물인 셈이다.

제작진이 작중에 견훤이 고려 귀순 때 아자개와 만나서 아자개한테 자식 문제로 호되게 핀잔을 듣는 장면을 구상할까 생각했다고 하는데 '견훤'의 성격적 과오를 감안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이다.

3.3. 후계자 문제

다시 한 번 이르노라!! 황태자 이야기는 그 누구도 꺼내지를 말어!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드라마 최후반부에 이르러 견훤은 결국 후계자로 금강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이전까지 견훤은 후계자 문제에 대해 화만 내며 누구도 후계자를 운운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을 뿐, 후계자 선정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리고 본인이 등창으로 오늘내일하는 시점에서 급하게 금강을 태자로 삼으려 했다. 그 결과, 금강과 최승우는 역적으로 몰려 죽고 본인도 폐위 당하는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였다.

견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줄려면 당연히 신검 및 그를 위시한 지지자들을 모조리 제거했어야 했다. '권력은 부자간이라도 나눌 수 없다.'라는 이야기가 괜히 생겼겠는가. ' 최승우'가 신검 삼형제 암살을 진언한 것도 '견훤'이 권력과 후계자 '금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숙청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본인이 원하는대로 금강에게 자리를 물려주되 신검 형제를 살려주고 싶었으면 처음부터 기반을 다지게 하고 후계자를 확실히 금강으로 정해 안정적으로 물려받게 하거나, 아니면 눈물을 머금고 숙청을 시도했어야 했다. ,처음에는 신검의 자질을 알아본다는 명목과 신하들의 반발 때문에 치일피일 미루다 견훤이 은퇴할 즈음이 되어서야 금강으로 결정을 했는데 이때쯤에는 아무런 반발없이 안정적으로 물려받는다는건 사실상 불가능 했으니 신검 형제의 목을 베는게 최선 이였으나 그놈의 잔정 때문에 이도저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숙청의 명분이 없었던 것도 아닌 게 고창 전투 직후 바로[61] '대놓고 이적 행위를 한 것'을 구실 삼아 신검 일파를 날렸으면 될 일이다. 아버지로 아들에게 정을 주는 건 사적인 일이고 이적 행위를 한 장수를 군법에 따라 처형하는 건 공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신검 입장에서는 본인에게 반감이 높을 것이고, 아무리 부자지간의 정을 운운해도 왕위가 걸리고 목숨이 걸리는 문제이므로 정을 운운할 문제가 아니다. 아니 애초에 푸대접 받은 신검이 그런 잔정에 넘어갈 이유가 없다. 일단 장남이고 고창 전투에서 그런 짓을 해도 자기를 지지하는 신료들도 많은 상황이니[62], 금강이 후계자가 되는 식이라면 살기 위해서 반역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안 그러면 나중에 금강에게 죽을 게 뻔하고 설령 죽지 않더라도 최소한 내분이 심해져 나라가 기울 판이다. 따라서 신검 일파는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농후하고[63], 따라서 이걸 감안하지 않고 엉성하게 양위를 한다는 거 자체가 문제다. 만일 여기서 주류 신료들이 왕후 박씨 계열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도 말이 안되는데, 그렇다면 그냥 처음부터 신검을 후계자로 내세워야 한다. 그게 싫다면 비주류를 키워 주류를 밀어내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물론 견훤은 후견인으로 최승우와 박영규를 붙여주어 금강의 기반을 다지려 했고, 또한 신검 세력 측을 유배, 실권박탈, 신덕일파 숙청 등으로 견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너무나 허술했다. 사위 박영규는 능력이나 인품은 있긴 했지만 정작 신덕이나 능환에 비해 군부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이전까지는 군권은 신덕이 꽉 쥐고 있던 상태라 단숨에 어떻게 해볼 상황이 아니었다. 즉 아무리 늦어도 공산 전투나 고창 전투 이전에는 박영규 에게 군권을 넘겨 줬어야 했던 것. 최승우는 애초부터 권력 다툼이나 후계 다툼에 욕심도 낄생각도 없었고, 또한 최승우에게 지지세력이나 우호세력이 하나도 없었다. 사실 주변 사람들이 최승우를 금강의 사람이라고 오해를 했을 뿐이지, 그조차도 사실은 신검의 지지자에 더 가까워서 견훤에게 신검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금강에게 왕위를 포기하라고 종용하기도 했을 정도로 금강을 지지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64] 또한 신검의 수족인 양검, 용검을 지방으로 내보내긴 했으나, 정작 견제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에 이 들은 강주, 무주의 병력을 그대로 움켜쥘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견훤은 등창에 시달렸기에 제대로 된 권력 행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고비와 금강은 자만심에 빠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승우는 후백제의 미래를 직시하고 있었으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나마 박영규는 군부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금강에게 간언을 하는 등 현실 파악은 하였다. 하지만 능환 측은 가장 먼저 박영규를 감금하면서 쿠데타를 시작했다.

견훤 본인도 후계자 문제를 확실하게 해놓지 못한 걸 알았기에 '왕건은 미리 후계자 문제를 매듭지어서 골치를 썩지 않았다.'며 푸념을 하기는 했지만 푸념만으로 어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물론 왕건 역시 후계자 문제로 내부에 분위기가 심각하게 조성된 적은 있지만 왕건이 빠르게 결단을 내려 크게 번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견훤보다 현명했다.

견훤의 행보는 궁예 말년의 행보와 정 반대이면서도 결과적으로 스스로를 파멸시켰다는 같은 결과를 일으켰다. 궁예는 가족과 후계자 문제를 잔혹하게 대한 끝에 갓난아기 하나를 제외한 처자식을 끔찍하게 처형하였다. 이 사건으로 궁예는 조정과 호족 세력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고 역성혁명을 당하고 만다. 반대로 견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숙청이 필요한 상황에서 잔정을 베풀었고, 그 결과 충신과 자식을 잃고 옥좌까지 잃고 말았다.

3.4. 콩가루 가족사

또한 이 드라마에서는 아자개 신검, 금강을 이용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견훤의 가족사에 얽힌 문제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계모 때문에 아버지 아자개와 갈등을 빚고 있었는데 먼저 문제를 만든 것은 성을 갈고 갈라져 나온 견훤이었을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계속 화해를 거절하고 나중에는 적국의 장수인 왕건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등 뒷목을 잡게 만들면서[65] 결국 생부인 아자개와도 원수 같은 상황이 되었다. 문제는 자신도 맏아들 신검 때문에 속을 썩이다가 계비의 말을 들어 마음에 드는 넷째 아들 금강을 후계자로 세웠는데 신검과 몇몇 신하들에게 제대로 뒷통수를 맞아서 아버지보다 훨씬 더 처참하게 자식들에게 불효를 당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

사실 드라마 내에서 견훤이 아자개에게 그렇게까지 심하게 불효를 저지른 건 아니다. 해봐야 집을 나가서 성을 갈아버렸다는 것 정도?[66] 그런데 적어도 드라마에서 견훤이 집을 나온 것은 계모와 대립각을 세우다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쫓겨나온 것에 가깝고, 드라마에서는 그냥 대강 계모랑 싸웠다 정도로 넘어갔지만 소설판에서는 아예 계모를 범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도망나온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니 집 나와서 성을 갈아버린 것도 딱히 견훤 잘못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나마도 이후로 자리를 잡자마자 맨 먼저 한 것이 상주로 달려가서 아버지를 모셔오려 한 것이었고 아자개가 죽을 병에 걸리자 나름대로 고생해서 500년 산삼까지 구해서 보내기까지 했다.[67]

이런 견훤의 가족사는 호족과 친하게 지내기 위해 정략 결혼으로 30명에 가까운 부인을 둔 것을 제외[68]하면 비교적 특기할 게 없는 왕건 쪽의 가정사에 비하면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같은 가정사[69] 인지라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다만 나중에 아자개가 견훤에게 고려로 오라는 서찰을 썼을 때를 보면 아자개가 견훤과 척을 진 것은 견훤이 성을 갈아버림으로써 아자개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부정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으며 아자개는 백 살이 다 되어 마지막 등장할 때까지 마음 속으로는 견훤에 대해 일말의 애정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200회 마지막 해설에서도 견훤은 자신의 집안을 다스리는 데는 실패했다고 나온다.

3.5. 다른 등장인물들로부터의 평가

태조 왕건이 왕건을 주인공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적국의 왕으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작중의 평가는 신라 및 신라를 숭상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대체로 좋은 편이다. 처음 등장할 때 부터 왕건의 아버지인 왕륭에게 장수 중의 장수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비범한 모습을 보인데다가 조물성 전투에서 어쩔 수 없이 굴욕적인 화친을 맺어야 했고 공산 전투를 비롯해 여러 번 죽음의 위기를 넘긴 왕건도 견훤을 보고 평하길 "적국의 왕이나 그야말로 영웅이라 할 만 하다."고 할 정도. 노구를 이끌고 일리천 전투에 선봉으로 출전한 모습을 보고는 "삼한을 호령했던 영웅이시오, 당연한 일이 아니오."라고 말하는 등 왕건은 견훤에 대해서 일관되게 후한 평을 내린다.

고려의 인간 병기이자 작중에서 견훤을 구해내는 유금필도 견훤에 대해 그 위엄이 성성하게 살아계셨다고 극찬을 하고 복지겸도 "평생을 걸쳐 뵈었지만 엄청난 분이시다"라고 말하며 담력을 칭찬하는 등 견훤에 대해서는 작중의 평가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 좋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경보 대사가 당나라에서 귀국 후 옥룡사에서 있을 때 서로 비슷한 시기에 고려에서는 최응이 직접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찾아오고 백제에서는 경보 대사를 국사로 모시고자 견훤이 최승우 능환 등 신하들을 거느리고 직접 찾아왔던 일이 있었는데 경보 대사에게 때가 되면 돕겠다는 말을 듣고 견훤이 떠난 뒤 경보 대사가 최응에게 견훤이 어떻느냐는말을 하자 최응이 대답하길 "과연 인물이 비범하고 도량과 그릇이 큰 사람 같다. 역시 희대의 영웅이라 할 만한 사람이다."고 평을 내렸으며 경보 대사도 "나 또한 그리 보았습니다. 고려국 황제와 견주어 조금도 모자라거나 지나침이 없으니 그야말로 희대의 호걸이라 할 만합니다."라며 후한 인물 평을 내렸다. 의형제이자 함께 창업의 주역이었던 능환은 "밑바닥에서부터 일어선 분이다 보니 자잘한 법도에 얽매이지 않는 분."이라고 평했으며 고창 전투에서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긴 최승우는 만신창이가 되어 숨어 도망치는 와중에도 한 가닥 여유를 부리는 견훤을 보면서 "신은 이런 폐하의 모습을 뵐 때마다 참으로 놀라곤 하옵니다." 하며 감탄한다.

재위 중반부부터,후반까지 폭정을 저지른 궁예와 달리, 견훤은 가족과 신료들에게 성격적 결함을 드러냈을 뿐 백성들에게만큼은 폭정을 저지르지 않고 끝까지 선정을 베풀었다. 눈에 띄게 검박하지는 않았지만 군주의 위엄을 유지하는 선에서 그칠 뿐 딱히 사치와 향락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민심을 살펴가며 적절하게 국정을 수행하려 노력했다. 또 백제를 부활시켜 그 위상을 삼한에 널리 떨친 영웅적인 군주이다보니 후백제 백성들에 대한 견훤의 영향력은 매우 막강했다.

실제 역사에서나 드라마에서나. 폐위된 견훤이 고려의 전함에 탑승해 서해 바다를 거쳐 고려로 가려고 할 때 후백제의 병사들은 차라리 상관의 명령을 거스를지언정 감히 견훤을 공격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이는 위에 언급한 일리천 전투에서 엄청난 결과를 안겨다 주었는데 견훤이 선봉장으로 나서자 후백제군은 처음부터 싸울 의욕을 잃어버렸고, 억지로 돌격하는 병사들에게 견훤이 "나의 백성들이여, 무기를 버리는 자는 살려주겠다."고 외치자, 후백제 병사들은 바로 무기를 버리고 고려군에 투항하기 시작했고 결국 군대가 와해되고 말았다.

물론 신라와 그 신라를 따르는 호족들의 평가는 당연히 최악이다. 경애왕을 시해하고 황후가 자살하는 원인을 제공했으니 고창 전투에서 나오는 김선평 같은 인물은 전령에게 대놓고 패륜의 무리를 증오한다고 말할 정도지만 이건 견훤의 업보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한계를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국가를 건설한 영웅 호걸이며, 하늘이 내려준 미륵인 왕건의 라이벌인 만큼 당연히 작중 인물들의 평가는 좋을 수 밖에 없다. 말년의 궁예와는 달리 왕건의 대척점이 아니라 진정한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서 초반에는 서라벌 에피소드를 통해 견훤의 라이벌이 궁예로 그려졌지만, 따지고 보면 그 이후로 드라마 1부와 2부에 걸쳐 견훤과 전장에서 맞싸운 라이벌은 내내 궁예가 아닌 왕건이었다. 견훤 스스로도 말년에 병상에서 회고했듯이, 왕건과 견훤이 황제 vs 황제로서 싸운 세월은 20년이라지만 전장의 총사 vs 총사로서는 그야말로 한평생을 대결해 온 선의의 라이벌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레이션으로 나온 바처럼 후삼국시대는 후백제의 건국에서부터 시작하여 후백제의 멸망으로 끝난다. 비록 리즈 시절은 2부 잠시 동안에 그쳤지만 견훤은 이 드라마와 후삼국 시대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대단히 상징적인 인물이다.[70] 다만 번외로 신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기 직전 악몽을 꿀 때는 왕건에게 살려달라고 싹싹 빌고 애원하면서 잠시 포스가 추락하기도 했다.[71] 물론 꿈 속이기는 했지만 나이 들어 목숨을 구걸하는 행위를 극히 혐오하는 견훤의 성격과는 상반된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작중 견훤의 불안한 상황을 표현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늘 두려울 것 없던 정복황제인 그가 이런 꿈을 꿀 정도로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감을 보여준 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도 깨어난 직후 "내가 이런 꿈을 다 꾸다니..." 하고 자괴감에 기가 막혀하면서 절망하는 대사가 나온다.

4. 평가

4.1. 인간 감정을 잘 아우른 캐릭터

견훤은 드라마상에 볼 수 있는 모든 인간 감정을 보여주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왕건은 그야말로 돌부처 같은 인물이고 궁예의 경우 삼라만상을 초월한 성인 군자인 미륵과 인연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위치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리고 그 괴리감 사이에 끼어버려 기어코 광기에 빠져버린 미치광이 폭군이라는, 어느 방향이든간에 보통 사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 반면에 견훤에 경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인간적인 모습을 상당히 많이 보인다.

희노애락은 기본이고 호걸답고 대범한 면모에서부터 꿈속에서 간혹 보여주는 구차한 목숨 구걸씬까지 소화했으며[72] 또 한편으로는 불 같은 성미에도 불구하고 마음 속으로는 자식들을 깊이 사랑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애절함도 품고 있다. 가령 무능함을 몸소 보여주는 신검에게 마냥 냉정한 듯 하다가 개성 상륙작전에 앞서 보여준 신검과의 대화에서의 견훤의 모습은 못나지만 그래도 기대를 거는 자식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아버지 그 자체였다. 게다가 노년기에는 그야말로 코믹에서부터 처절함을 자유 자재로 넘나든다. 드물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가끔 개그씬을 보여주기도 했다.[73]

4.2. 의의 및 주요 대사

태조 왕건의 견훤 역은 배우인 서인석 개인에게도 매우 큰 의의가 있다. 서인석이라는 연기자를 잘 모르던 젊은 시청자들에게도 그 이름을 확실히 알린 계기가 되었을 정도로 견훤 역은 명연기로 칭송을 받았으며 실제로 드라마가 종영된지 20년이 넘었음에도 아직도 사극에 서인석이 나오면 견훤 얘기가 꼭 따라나올 정도다. 그럴법한 것이 서인석의 견훤은 사극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인간 감정을 다 보여주며 강렬한 연기를 선보였다.

또한 배우의 이미지가 장수나 임금 같은 이미지에 어울리는 편이다 보니 장수와 임금, 모두 중첩되는 견훤이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극 전반기 동안의 실질적 주인공이던 김영철( 궁예)의 미륵불, '관심법' 연기와 극 전반,후반에 걸쳐 열연을 펼친 서인석( 견훤)의 포스에 정작 주인공 왕건이 오히려 묻히며 페이크 주인공 논란도 생겨났다.

서인석이 정말 절륜한게 그런 진중한 견훤 역을 소화한지 오래되지 않은 2005년 제5공화국에서 노태우 역으로 등장해 '즌 장군? 추카해요?(딸랑딸랑)' 식의 연기를 무리없이 소화했으며 여기서 서인석은 견훤에서 보여준 이미지를 상당부분 희석시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게 견훤 이미지가 너무나 강하게 자리잡아서 서인석이 이미지 소모에 시달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배우로서 견훤의 이미지를 벗어나서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고 이미지를 구축해야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무인시대의 이의방도 견훤 이미지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인상을 오랫동안 줬으며, 제5공화국의 호연으로 어느 정도 이미지의 희석은 가능했으나 견훤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태조 왕건 이후 서인석은 사극에 출연할 때마다 끊임없이 이 견훤 역과 비교를 당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014년 정도전에서 최영[74] 역할을 연기할 때도 초기까진 '견훤의 재림'이 아니냐는 우려 아닌 우려가 퍼질 정도였지만 견훤과는 다른 최영 특유의 연기를 선보이면서 그 우려를 벗을 수 있었다.[75] 태조 왕건이 종영된 지 무려 12년이 지난 뒤인 것이다.

작중에서의 명대사로는 " 수달이가 죽었어!!"[76] 또 졌어! "늘거써!"가 유명하다. 인터넷방송에서 bj나 스트리머를 놀릴 때 주로 사용한다.

이 드라마에서 일이 안 풀릴 때 치욕에 떠는 건 궁예나 왕건도 마찬가지이지만 애초에 궁예의 경우에는 본인이 친정을 한 전투는 이긴 모습을 보였고, 왕건에게 군권을 위임한 뒤에는 왕건이 싸워준 덕분에 친정에서 패배하는 일은 없었다. 왕건에 경우 전쟁에 패해도 혼자 분을 삭이며 부들부들하는 스타일인데 반해 견훤의 경우에는 패배 소식을 접할 때 유독 격하게 반응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패배에 반응 예시로 사용되기도 한다. 히틀러의 분노 장면으로 유명한 다운폴의 한국 사극판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이렇다보니 주요 명대사들이 인간의 희노애락 표현이나 캐릭터의 호방함을 나타낸다.
글쎄올습니다. 이 난세에 누가 장담을 할 수가 있겠사옵니까. (어린 왕건을 보면서) 자, 공자님. 이. 만나뵙자마자 이별이로군요.
( 왕건) 섭섭하옵니다. 견훤 장군님.
(견훤) 장군... 허허허허... 그렇습니다. 이제 명색이나마 장군이 되었사옵니다. 하하하하. 공자님은 분명 훗날에 큰 인물이 되실 겝니다. 그때 꼭 뵐 수가 있기를 바랍니다. (8회)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능창이라는 대장군을 나의 아우로 맞았노라. 따라서 이 순간 이후로 이미 나의 형제인 그대들과도 한 형제가 되었음을 천지신명께 고하노니 영원히 삶과 죽음이 함께 할 것이고 오로지 정의의 길만을 갈 것임을 맹세하는 바이니라. 모두 잔을 들라. (12회)
군사들은 들으라! 여기 이 칙사의 말처럼 처음에 나는 신라 조정의 영을 받아 왔느니라. 그러나 세상이 어지럽고 관리들은 썩어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음을 알았느니라. 이제 나는 백성들을 위해서 이 곳에 남기로 하였느니라!! 이 곳에 새로운 법을 세우고 새로운 희망을 꾸밀 것이니라! 우리는 이제 대의를 좇아 일어섰으니 우리의 땅을 지키고 옛 땅을 되찾을 것이니라!! 장졸들은 모두 힘을 모아 새로운 법을 따라야 할 것이니라!! (13회)
그렇소이다. 이 시대에 도적이 아닌 자가 세상에 어디 있겠소. 도적은 도적이되 나라를 훔치려 하는 도적이올시다. 그것을 훔쳐서 옳게 쓰고 아니 쓰고는 바로 그대들 같은 대학인들이 할 일일 것이외다. 날 좀 도와주시구려. 내 이렇게 진심으로 청하는 바이오. (무릎을 꿇으며) 최 학사, 이렇게 간절히 청하오. 부디 이 사람에게 가르침을 주시오, 최 학사... (18회)
아우야, 일어나거라! 우리는 형제가 아니더냐. 그까짓 금성 고을 하나가 우리 형제의 우애보다 더 중요하단 말이더냐!! 너는 내 아우. 내 영원한 아우 수달이니라!! 성과 영토는 얼마든지 잃었다가 다시 찾을 수가 있지만 인재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니라. 일어나거라. 자, 어서!! / 뭣들 하느냐. 대장군 수달에게 갑옷과 투구를 갖다 주어라!! (60회[77])
방장군이 죽었어어어어!!! 내 아우 수달이가 저들에게 잡혀 있어, 저들에게 말이야...! 꺼이쿠... 꺼이쿠. 아이구, 속이 탄다 속이 타... 하... 저들을 구해야 하네. 구해야 해. 수달이 말야, 내 아우 수달이 말야!! 다른 전선에 나가 있는 장수들도 다 오라고 하였어, 난 다시 공격을 할 것이야. 그리고 수달이를 구해 올 것이야!!! (91회)
아니! 뭐야?! ...죽었어?! 수달이가 죽었어, 수달이가?! 보았는가?! 수달이가 죽었다는 것이야. 수달이가 말이야!
( 최승우: 고정하시오소서, 폐하.)
궁예왕이 수달이를 보자마자 불에 태워 죽였다는 것이야...! 보았는가? 지금 올라온 이 장계를 보았어?
(최승우: 예, 폐하... 신도 억장이 무너지옵니다.)
아... 아... 아니, 이럴 수가 있는가! 아니, 궁예왕 그 자가 미...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수달이를 그렇게 참혹하게 죽일 수가 있단 말인가아아...
(최승우: 이미 마진국의 궁예왕이 이성을 잃은 지는 꽤 오래 되었다고 하옵니다. 자신의 신하들도 관심법인가 뭔가로 짐승처럼 때려 죽이는 정신이상자이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아...! 아니... 적군의 장수라지만 이렇게... 이렇게 죽일 수가... 있는가아아...
(능애: 폐하, 지금 폐하의 장수들이 바깥에서 영을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더 망설이실 것 없사옵니다. 수달 장군의 원수를 갚아야 하옵니다. 출전의 영을 내리시오소서!)
아... 그 불 속에서 죽다니... 얼마나 뜨거웠겠느냐... 아우야... 수달 아우야... 아! 아우야아아아아! (94회)
죽었다고... 했느냐...? 추허조가 죽었다고 했어...?[78] 이런... 이런... 못난 놈들... 네 놈들을 살리려고 앞장을 섰다가 그렇게 벌집이 되어서 죽었다고? 추허조가 죽었어!! 네 놈들 때문에 추허조가 죽었어!! 내 아우 추허조가 죽었어!!! 못난 놈들. 못난 놈들!! 이번엔 아주 내 아우들을 죽게 만들어버렸구나. 네 놈들이 그러고도 내 아들이냐. 네 놈들이 그러고도, 대백제국의 태자이더냐, 이 놈들아! 못난 놈들!! 이 못난 놈들!! 네 놈들 목숨을 살리려고 추허조를 죽게 했더란 말이냐!! 이 못된 놈들!!(중략) 부끄럽도다. 참으로 부끄럽도다!! 여봐라!! 두 태자를 끌어 가라. 가서 목을 베어라!!! 어서 끌고 가서 형을 집행하지 않고 뭘하는 게야!! 목을 베어라!!(중략) (109회)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자식들을 보며)저 자들을 끌고 가서 형을 집행하라!
(신검&양검: 아바마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용서? 용서?! 내 분명히 말하였다. 15년 전의 수치를 기억하고 명예를 되찾으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보다 더한 상황을 만들어버렸어! 추허조를 죽게 하였어, 허조를!! 에잇! 이놈! 이놈들아...!!(신검과 양검의 머리를 지휘봉으로 마구 내리친다.)내게는 네놈들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소중한 아우였느니라!! 이놈들을 끌고 가 처형을 하라! 어서!!
(최필: 폐하!! 신을 먼저 벌하여 주시옵소서!! 태자마마들은 죄가 없사옵니다! 전사한 추 장군과 신이 적의 계략을 미처 읽지 못해 일어난 일이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폐하!)
(신덕: 폐하! 신들도 벌하여 주시오소서. 폐하의 위업에 누를 끼치고 폐하의 군사들을 숱하게 잃었사옵니다. 군령으로 다스려주시오소서.)
(김총: 폐하, 신들도 벌하여 주시오소서!)
(최승우: 폐하. 말씀 올리옵건대, 두 분 태자마마께서 전투에는 실패하셨사오나 군령을 어기신 것은 아니시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오소서.)
아니야. 지 놈들 목숨을 살리려고 추허조를 죽게 하였어. 허조를 말이야!! 내 오른팔들이... 이제 하나 둘 다~ 죽어가고 있어. 지난 번에는 수달이가 죽었고 이번에는 허조가 죽었어!!! 이...버러지같은 놈들 목숨을 구하려고 말이야!!
(최승우: 두 분 태자님께 죄를 물으시려거든 다른 장수들도 똑같은 죄를 물으셔야 하옵니다. 어제의 싸움에는 패하셨사오나, 이들 모두가 열심히 싸우셨사옵니다. 노여움을 삭히시옵소서.)
(신검: 용서하시옵소서, 아바마마. 미처... 어찌 할 겨를이 없었사옵니다. 워낙 갑작스러운 적군의 기습을 받았사옵니다.)
아... 이런 일을 당하다니. 내가 오늘 여기서... 허조 아우를 잃게 되다니...! 아... 어찌 이렇게 가혹하시옵니까?! 허조를 데려가다니요!! 허조야... 허조야...!! 하... 참으로 한스러운 대야성이로다. 아직도 신라가 저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도다. 천년을 버텨 온 사직이야. 내가 너무 무시하고 덤벼든 것 같구만. 허나! 이대로는 못 물러난다!! 제장들은 대오를 다시 정비하라! 모두 일어나라! 꼴도 보기 싫다, 태자들도 일어나거라! 너희들은 이번 전쟁에 더이상 참여를 못 할 것이다! 가서 뉘우치고 반성하라! 썩 물러가거라, 이 못난 놈들아! 악몽이로다... 제발... 꿈이었으면 좋겠어, 파진찬. 허조가 죽다니. 허조가 죽다니...!(110회)[79]
뭐라고 했어? 많은 군사를 잃어? 아, 아니, 얼마나 잃었는데?(최승우: "5000의 군사 중 3000이 죽고, 1000이 부상을 했으며 싸울 수 있는 군사는 채 500도 아니 된다고 하옵니다.") 뭐야?! 이런 정신머리들을 봤는가! 아, 아니, 그 쪼그만 시골 성 하나를 넘지 못하고 모조리 당했단 말인가! 뭐? 뭐라고? 3000이나 죽었어? 싸울 수 있는 군사가 500도 안돼? 신검이, 이 놈이이이이이!! 내...!! 크흑...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1000명도 안되는 시골 군사에게 우리 정예 전군 5000이나 당했단 말인가? 이걸 보고라고 하고 있는 겐가!! 이찬은 뭐했어, 박영규 장군은 뭘 했고, 내 아우는 뭐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이 보고는 아니 들은 거로 하겠어. 회복하라고 해, 반드시 성을 넘으라고 해, 아니면 군령으로 죄를 물을 것이야! 아... 아이구 이런 망신이 있는가, 이런 망신이... 어서 전령을 다시 보내, 싸우라고 해, 성을 뺏으라고 해!! 이찬도 이제 늙었군. 형편없이 늙어버렸어! 시골 성 하나 뺏지 못하고 이런 실수를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런 실수를 할 수가 있어, 어떻게!!! 이, 이놈들...(제134화)
파일:또졌어?!.gif
이게 무슨 소리야! (두루마리를 흔들며) 또 졌어!!! 이젠 아예 전멸을 했다고!! 꺼이쿠... 아니. 그러고도 어떻게 저희들만 살아 있어!! 저희들만 어떻게 뻔뻔하게 살아 있어!! (전령: 태자마마는 어깨에 화살이 박혀 큰 부상을 입었사옵니다!) 부상? 수천의 군사가 죽었는데 그까짓 화살 한 대 맞은 것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 꺼이쿠 이런... 이렇게 부끄러울 데가 있는가! 이젠 아예 다 죽었다는구만. 그러고도 지들만 살아 있다는거야. 지들만!! (중략) 나 같았으면 그 자리에서 할복을 했을 게다!! 멍청한 것들 같으니라고! 결코 용서할 수가 없는 일이야! (136회)[80]
아, 아, 아... 되었네 되었어. 절이라니!! 이미 나를 보고 상보라 불러 주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나는 그대의 형이 되었네. 아니 그런가, 아우님? 하하하하... 과연, 과연 대 고려국의 황제일세!! 아우님... 하하하하. 아우님. 이미 예는 다 끝이 났네!! 아우님도 황제가 아니신가. 같은 황제들끼리 그만하면 충분히 예의는 되었네. 경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고려국의 황제는 짐의 아우가 되었느니라!! 그러나 여전히 아우님은 고려국의 황제가 분명하니라!! 털끝만큼의 결례도 용서치 않을 것이야. 알겠는가? (149회)
허허, 거 사람 하고는. 왕후장상이 따로 있다던가. 허허허허... 나도 처음에는 시골 호족의 아들이었고 또한 신라의 군관이었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인들 못 하겠는가? 우리는 지금 한 나라의 황도를 점령하러 가는 길일세. 저 서라벌은 신라의 천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야. (154회)
하하하하하... 고생하였도다. 참으로 고생들 하였도다! 하하... 이것이 왕건 아우의 수급이란 말이지. 왕건 아우의 수급이야!! 암... 얼마나 보고 싶었던 얼굴인가. 아우야, 형이 여기 있노라.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되었는고?? 그래, 간밤에는 잘 주무셨는가, 아우님? 어디 이 형과 얘기를 좀 해 보세. 하하하하... 아... (신숭겸의 수급을 보고 놀라며) 아...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이게 누구인가? 왕건 아우가 아니지 않는가?[81] (161회)
닥치지 못하겠느냐 이놈아! 뭐가 어째? 나라가 무너져어어어어어어!?[82](166회)
장수들의 본분은 적과의 싸움에서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다. 그것이 두려워서 움직이지 않았기로 2만의 군대가 다 당했어!! 그 중에서도 전사자만 8천이야. 8천!! 8천!! 8천!!! 이런...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할 수가 없어!! 이해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어! 더군다나 그 중에 내 아들이, 내 맏아들이 총사로 지휘하는 군대가 그 모양이었어어! 이 백제군의 명장들이란 장수들이 다 그 모양이었어! 다! 다! 이런... (중략) 또 이르노라! 황태자의 문제는 누구도 입에 올리지 말어. 내 소신대로 할 것이야!! 입에 올리는 자는 불문곡직하고 그 목을 벨 것이야. 알겠느냐! 다시 한 번 이르노라! 황태자의 문제는 누구도 거론허지 말어!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171회)
이놈아, 자식과 부모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 간이다. 내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신검이 네놈만을 유독 미워하겠느냐. 네가 맏이이기 때문이었다. 네가 장자이기 때문에 애비인 나는 누구보다 너에게 기대를 많이 걸었던 것이다. 본래 맏이가 아버지의 업을 잇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이야! 그런데 왜 너는 너에게 경계를 하고 머뭇거리는 것이냐? 이 애비가 못나서였을까? 아니다. 네놈이 내 기대를 번번히~! 실망을 시켰기 때문이야! 네가 누구이냐? 황제의 아들이면서 네놈 말마따나 다음 보위를 맡을 서열에 있다! 허나 황제의 자리는 서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야! 수많은 백성들의 앞날을 책임진 자가 황제이니라. 나라를 책임지고, 백성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만년 기업의 앞날을 책임을 지는 자가 황제이니라. 아느냐? 백성들의 배고픔을 덜어주고, 백성들의 잠자리를 살펴주고, 저들의 근심과 걱정을 덜어주고 편히 먹고 쉬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황제의, 의무야!! 아느냐?!
신검아, 너는 나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미워하는 이유 중에는 그 근본에 부자 간의 정이 있기 때문이야. 아느냐? 아느냐고 물었다. 내가 너를 미워한다고...? 아니다. 미워한 것은 네가 아니라 바로 너의 그 허약함과 부족함 때문이었어. 내가 너를 그 동안 때리고 채찍질한 것은 그 많은 단점들을 덜어주기 위함이었어. 이 애비는 지금도 너를 사랑한다. 네 그 많은 증오를 이번 전투에다 불태워보거라.[83] 그리고 진정으로! 이 나라의 태자로 거듭나 보거라. 그리고 보이거라! 내게 보이거라!! 그리하여 볼 것을 내게 내어 보인다면, 나는 약속대로 너에게 이 옥좌를 줄 것이다. 다음 보위에 관한 일은 종지부를 찍을 것이야. 알겠느냐, 신검아...? 이 애비의 약속이다.[84] (175회)
이찬은 이제 쉴 때가 되었어! 늙었어! 벼슬은 그대로 두겠으나 조정의 일에선 손을 떼게 될 것이다. (185회)
나를 보고 밥을 먹으라...? 기운을 차리라...? 나라를 도둑맞고 생떼같은 자식을 죽였어! 평생을 함께 살아 온 파진찬이 죽었어!! 금강이가 죽었어... 파진찬이 죽었어...!! 이 백제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신검이 놈이 다 망치는구나. 이 놈이 다 망치는구나. 이 놈이... 이 놈이... 이 미친 놈이...! 아... 그렇게 돼 가는구나... 결국은 이... 이렇게 해서 백제가 망하는 것이로구나... 이렇게 해서 왕건 아우가 삼한을 거머쥐는구나... 왕건 아우가... (191회)
나는 견훤이라는 사람이야! 대백제국의 황제...황제야! 황제!
(후백제를 세우고 고려와 싸우며 신라를 정벌했던 지난 40여년간의 세월을 다시 회상한다)
그래... 영광의 세월이었어... 내 한때는 신라의 도성을 지키던 하급 군관에 불과했었지... 하지만 나는 제국을 이루었어! 왕건 아우를 무릎 꿇리고,, 신라의 왕을 죽였어! 대백제국의 황제로서 말이야!!! 그래... 그렇게 그 영광 속에서 백제는 오늘을 달려왔어... 이제 신라는 다 되었고 백제와 고려만 남았는데... 이 중요한 때에... 이 자식놈 하나가 일을 그르치고 있어...! 다 망쳐버렸어! 다...다...다!!! ...이놈... 이 신검이 놈이 다 망쳐버렸어! 다... 이 놈이... 이 쳐죽을 놈이...! (192회)
네에에에에에에에 이이이이이이이이 노오오오오오오옴!!![85]
능애: 다 끝난 일이옵니다... 제국을 위해 허락하시오소서.
그치지 못할까?! 그 드러운 주둥이를 닫지 못할까, 능애 이놈! 닫지 못할까, 이놈! 네 이놈, 썩 꺼지거라! 이 옷은 네놈이나 가져다가 덕지덕지 입거라! 이 돼지같은 놈들 같으니라고! 이놈... 욕심이 많아서 혈육을 죽이고 나라를 강탈한 놈들이 말 한번 뻔지르르허구나! 누가 세운 제국이냐?! 너희같은 도적놈들이 국가를 보전하겠다고?! 제국을 보전하겠다고?! 하이고!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이놈아! 이놈아... 돌아가. 이놈! 썩 돌아가! 돌아가! 돌아가! (192회)
그래, 짜거라... 상처는 고통스러운데 마음 한 쪽은 시원~하구나!! 나는 마실 것이니 너는 짜 보거라!! 이놈의 등창이 이기는가, 술이 이기는가 보자꾸나!! ([86]) 이 놈아. 네가 할 일은 고름을 짜는 일이고, 내가 할 일은 마시는 일이야!! 우리는 서로의 소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야. 짜거라 이놈아!! 으흐흐흐흐... 으으으... ... 놈들... 놈들!!! (193회)
빠르고 편히 간다...? 무엇이 그렇게 빠를 일이 있단 말이더냐. 백제를 떠나는 일인데... 뭘 그리 서둘 일이 있단 말이냐... 으흐흐흐흐... 이 제국을 버리고 떠나는 일인데... 뭘 그리 빠르고 편히 갈게 있다는 말이냐... 뭘...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인데... 뭘...... 그리... (197회)[87]
네 이놈 상귀야!! 황제가 부르는데 귀가 먹었느냐, 이놈아!! 그리고 거기 장수들은 들으라! 너희들은 다 낯이 익구나. 나를 알아보겠느냐? 이놈들!! 너희들이 나를 쏠 수가 있단 말이냐!! (198회)
고려국 황제 폐하. 폐주 알현이옵니다!! 절 받으시오소서... (199회)
애술이가 아니냐. 너는 김총이고! 가엾게들 되었구나. 어쩌다가 신검이 놈 밑에서 이 고생들인고? 크흠!! 내가 알기로 너희 둘은, 반란에 가담을 아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게로구나. 에잉~ 쯧쯧쯧쯧... 이보시오, 황제. 죄가 없는 자들이오. 용서해 주시구려.
닥치지 못할까!!! 들어서 바친 것이 아니라 실패를 하여 항복을 한 것이다. 죄를 받아야 할 것이야!!
그래도... 백제 황실의 태자들이 아니냐... 내가 보고 있는데... 더럽게 목숨을 구걸한단 말이더냐... 죽이시오, 황제!! 죽이시오, 황제...!!! 백제국을 훔친 놈들이올시다. 나의 제국을 훔쳐서 이렇게 한 놈들이올시다!! 죽이시오!! 죽이시오!! 우선 저 신검이 놈부터 먼저 죽이라고 명하시오!! 황제의 자리를 훔친 놈들이올시다. 죽이시오!! 죽이시오!! (200회)

5. 여담



[오프닝1] 32회 이전 오프닝에서의 신라 말기 장군 시절의 견훤. 영상에서는 묘하게 놀라워하거나 당황해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 시기의 견훤은 서라벌 군졸로 복무하면서 신라의 실태를 보았으니 그런 광경들에 대한 반응으로 볼 여지도 있다. [오프닝2] 32회 이후 오프닝에서의 견훤, 후백제 건국과 함께 황제가 된 이후라 의상이 매우 화려해졌고 눈빛과 표정또한 상당히 부드러워졌다. 32화 이전까지는 후광이 비치며 어진 모습이던 궁예가 이후에는 폭군으로 타락하는 모습을 암시하는 변화가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3] 삼국유사에서는 견훤이 칭왕한 시기를 889년이나 892년에 칭왕했다고 언급하며, 900년 이전까지는 내부적으로만 왕 행세를 하고 대외적으로는 왕을 칭하지 않다 900년에 비로소 공식적으로 백제의 부활을 선포하며 대외적으로 왕을 선언했다고 나온다. [4]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계속 견훤의 발목을 잡았던 나주는, 후에 견훤이 아들인 신검에 의해 폐위되고 금산사에 유폐되고 나서, 금산사를 탈출한 그가 고려로 무사히 망명할 수 있게 되는 중요한 도피 루트가 된다. [5] 특히 백제의 승려 도우가 여러 가지 의미로 가장 큰 활약을 했다. 나주 공방전에서 형제들이 모두 죽어서 왕건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임춘길의 휘하에 들어가 왕건을 참소하도록 꼬드기고 '고경참문'을 조작해 왕건을 궁예가 제거하는 빌미를 만들려 하였으며 결국 역성 혁명 이후 어설프게 반역을 시도하던 임춘길과 같이 처형되고 말았다. [6] 다만 이는 실제 역사와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추허조 항목 참조 [7] 실제 역사에서도 작중에서도 왕건 즉위 초기 고려 내부가 어지러울 때 고려에 총공격을 가히지 않고 오히려 화친한 건 두고두고 견훤의 오판이 된다. 다만 작중에서는 이러한 착오가 상당히 긍정적인 투로 묘사되었는데 갈수록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인 능환은 견훤의 조치에 반대를 한 반면 최승우는 찬성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거기에 견훤을 쉴드 쳐주는 나레이션은 덤. [8] 왕건의 즉위 초기에 후백제가 총공세를 가하지 않은 것을 반드시 오판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상대방의 혼란기를 틈탄 침공은 큰 군사적 성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역으로 상대방을 단결시키는 '양날의 검' 역할을 하기 때문. 최승우가 지적한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사실 '다 망해가는 신라를 상대로 대야성조차 10년이 넘게 못 점령했는데' 고작해봐야 충청권의 친 궁예 세력 정도를 규합해서 후백제가 고려를 침공해 얼마나 재미를 볼 수 있을까? 고려는 비록 초창기에 몇몇 친궁예 세력의 저항에 시달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려의 국력 혹은 왕건 정권의 당위성과 지지 세력이 후백제의 침공 한번에 무너질 정도로 취약했냐면 그건 전혀 아니다. '공산 전투'의 참패가 고려 초창기의 취약성 사례로 종종 언급되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신숭겸과 김락 같은 주요 장수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희생해 왕건을 살렸을 정도로 왕건 정권 내부의 단결력과 충성심은 공고했다. 오히려 환선길이 혁명 3일 만에 어설프게 반역을 시도했다가 목이 잘리는 등 후백제가 뭔가 손을 써 볼 공간이 생각보다 적었다. 드라마에서는 환선길이 후백제의 축하 사절이 도착할 때를 맞아 반역을 시도한 것으로 나오지만 상식적으로 900년대에 후백제가 혁명 3일 만에 축하 사절을 철원까지 보낼 수 있을 리가.... 후백제가 여기서 어설프게 고려에 대한 침공을 감행했다면 오히려 임춘길 같은 인간들은 9월까지 버티기는 고사하고 후백제가 거병하는 즉시 목이 잘렸을 것이다. 그리고 후백제는 임춘길, 이흔함의 목을 바쳐 화살 한 방 안 쏜 채로 웅주와 매곡 등에서 상당히 짭짤한 소득을 올렸다. 작중에서도 백제는 가만히 앉아서 이흔암이 다스리던 곳을 통째로 넘겨받았다. [9] 견훤의 막내아들 금강(태조 왕건)이 화살에 맞아 애꾸가 된 바로 그 전투이다. 이때 금강의 분투는 견훤에게 매우 큰 인상을 남겨 향후 후계 구도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심지어 적장인 정윤 왕무나 박술희, 심지어 왕건까지도 이를 듣고 탄복했을 정도니. [10] 후백제군에선 금강이 역병에 걸렸지만, 후백제군의 군의관인 훈겸이 지나가던 노인에게서 지렁이 약을 처방받아 금강에게 먹이자 나았다. 이 장면에서 견훤의 지렁이 태몽 이야기도 언급되며 견훤은 조상님께서 도우셨다며 기뻐했다. [11] 드라마에서는 최응과 유금필, 박술희 등이 암살을 모의하고 왕식렴이 그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를 실행한 것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 때문인지 훗날 왕식렴은 유금필이 서경(평양)에서 오랑캐들로부터 자신과 왕건이 보는 앞에서 만세를 받자 매우 불쾌해하기도 했다. [12] 이 때 경애왕의 왕비에게 자신의 시중을 들라고 명했다가, 왕비가 이를 수치스럽게 여겨서 자결하자 크게 놀라고 자신의 장난이 지나쳤다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삼국사기 기록에서는 견훤이 경애왕의 왕비를 강간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작품에서는 이것이 다소 과장된 기록이라고 판단하고(내레이션을 통해 '이후의 기록 속 견훤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고 설명했다) 해석을 달리한 듯 하다. [13] 그러나 이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14] 고려는 이때 정윤을 정하려고 상당히 미뤄졌다가 충주 부인 유씨의 아들이 병으로 잃게 되자 이를 깨달은 왕건은 태자 무를 정윤으로 정하게 되지만 정작 견훤은 끝까지 후사를 정하는데도 너무 많이 미뤄버리고 말았다. [15] 3분의 1도 안 되는 유금필의 군대에게 길이 막혀있었으며, 돌아갈 수도 있는데 돌아가면 이미 전쟁은 끝나있었다. [16] 실제로는 신검이 아니라 상귀, 상애 장군 등이 활약한 전투다. [17] 이 때문에 견훤은 신검을 후계자로 삼는데 또 한번 망설인다. 애당초 송악 공략전이 신검의 힘이 아니라 최승우의 덕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18] 견훤의 병을 아는 훈겸이나 신중한 최승우는 말렸지만 무리하게 출전했다. [19] 처음 작은 부스럼 상태일때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관리를 하지 않다가 뒤늦게 어의를 불렀을 때는 손쓸 수 없을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20] 운주로 가기 전 금강, 최승우, 박영규, 김총 등은 견훤의 병을 이유로 돌아가자고 했으나 신검 형제나 다른 장수들은 싸우자고 하는 탓에 무리하게 이끌려온다. 비록 자신의 명으로 운주로 가자는 말은 했지만 다 죽어가는 자신을 전쟁터로 데려가려는 신검의 모습에 견훤은 또 한 번 실망하게 된다. [21] 그러나 의사 훈겸과 장군 최필 등은 실제 기록에 의하면 술사 종훈처럼 유금필에게 사로잡혔다. [22] 이것도 최승우가 태자들은 죽이되 신료들은 다독이라는 청을 하였으나, 견훤은 태자들은 지방으로 보내고 신료들 상당수를 유배보내거나 죽이려는 정반대의 사전 작업을 시도했다. 견훤은 이를 은밀히 진행하려 하였으나 이미 쿠데타 세력이 심어놓은 프락치 내관에 의해 죄다 이 계획이 쿠테타 세력에게 알려져 이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23] 어느 날 치료 중 고통이 너무 심하다며 약은 없는 거냐고 하소연하자 의원이 약뿐만 아니라 의원과 환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답변했을 때 견훤이 "그럼 내가 노력을 안 한다는 말이냐?"라고 버럭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 의원은 '맨날 독한 술을 먹고 노기를 참지 못하니 어찌 등창이 좋아지겠냐'고 팩트폭력을 가했고, 이에 견훤은 데꿀멍해서 말을 못 잇다가 "그럼 니가 의원을 그만두고 이 황제의 자리에 앉아봐! 안 그러고 배기는가!"는 식으로 역정을 내는데 이 신도 심히 개그스럽다. [24] 이때 견훤은 병상에 누워 왕건과 고려군이 왕궁으로 쳐들어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악몽을 두 번이나 꾸었다. 그리고 꿈에서 깬 후 들이닥친 것은 반갑게도(?) 고려군이 아닌 신검과 그를 따르는 후백제군이었지만, 그들이 가져온 소식은 고려군이 쳐들어온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최악의 소식이었다. 여담으로 금산사가 2008년에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기 몇 년 전이던 시점이라 실제로 금산사에서 촬영했다. 덕분에 서인석의 실감나는 연기까지 더해져 진짜로 견훤이 저랬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 부족함이 없다. 다만 실제 금산사는 정유재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후에 중건한 것이기 때문에 이 금산사가 실제 견훤이 유폐되었던 금산사와 완전히 같지는 않다. [25] 처음에 고비는 독주를 삼갈 것을 간언했으나, 얼마 뒤 견훤의 등창이 치료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차라리 술이라도 마음껏 마시며 가시라며 간언을 포기한다. [26] 경보가 은근슬쩍 화해를 권유하자 견훤이 그 따위 소리나 하러 온 거냐며 버럭하는데, 이에 경보가 말을 집어넣으며 천도제 건으로 화제를 돌리는 모습이 약간 찌질해 보이기도 한다. [27] 이 집사 역 배우는 용의 눈물에서 심온을 잡아 포박해오는 의금부 도사 역할을 맡는다. [28] 여담으로 유폐된 견훤의 처소를 지키다가 탈출 계획에 낚인 걸 알게 되고 뒤늦게 파달에게 보고하는 병졸(197화 중반부)이 있는데, 이 병졸 역을 맡은 조용태는 견훤이 초창기 미다부리 정에 부임해올 때 수달의 세력에 매수된 채 견훤에게 깐족대다가 처형당하는 수문장(9화 후반 ~ 10화 초반) 역을 맡았다. [29] 낙성 법회 준비로 인해 경계가 평소보다 느슨해졌고, 법회 일정을 집사들이 몰래 엿들어 계획을 준비한다. 그리고 법회 날 집사들이 장졸들도 취해있는 걸 몰래 들어와 확인한 후 집사와 휘하 무사들이 후백제 군사로 위장을 해 교대한 후 처소에서 견훤과 같이 나와 몰래 금산사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집사들이 금산사 뒤쪽의 숲에 마차를 하나 숨겨두었고, 견훤은 금산사를 나오자마자 마차를 타고 바로 밤새 달렸다. 박영규의 지휘 아래 매우 치밀하게 짜여진 계획이라고 볼 수 있다. [30] 이때 도망치면서 마차 안에서 '이렇게 가는구나.. 이렇게 백제를 떠나는구나.. 내가 세운 나라에서 이렇게 도망을 치고 있구나.. 이렇게 가고 있어..'라며 독백한 뒤 "신검이 이놈..!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야..! 내 절대로 용서치 않을 것이다, 이놈..!"이라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신검에게 경고를 날린다. 견훤이 신검에 대한 원한과 분노가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준 셈. [31] 그 다음 날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후백제 조정과 신검은 난리가 났다. 뒤늦게 파달을 포함해서 후백제 군사들이 뒤를 쫓아보지만 이미 견훤은 집사들과 금산사를 떠나 한참을 멀리 간 뒤였다. [32] 이후 자신이 다스리던 영토로 못 돌아온 것을 감안하면 자신의 미래를 이미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견훤은 당시 본인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양주(현 경기도 일대)를 식읍으로 받았다. 물론 양주 일대는 과거 백제의 최전성기 시절 수도였던 위례성 인근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고려 입장에서는 견훤을 최대한 예우한 것이긴 했으나, 경주 일대를 그대로 식읍으로 받은 경순왕보다는 못한 처사였다. 그래도 자신의 아들들에 비해서는 대접을 받긴 했지만... [33] 고령의 나이에 등창이 뼈와 오장육부를 상하게 해 가만히 있어도 고통으로 끙끙대는 등 환후까지 중한 터라 왕건이 반대하자 무릎을 꿇겠다고도 하고 심지어는 빌겠다고 말하는 통에 더 이상 말리지 못하고 동행시키게 되었다. 당시 왕건이 상보로서 대우하는 터라 말리지 못한 것도 있었다. [34] 실제로 199화의 일리천 전투의 작전 회의는 견훤이 말하고 왕건이 이를 그대로 따라 명하는 것으로 연출된다. 후백제는 견훤 그 자체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선 고려의 황제가 왕건이 아닌 견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 여담으로 견훤이 선봉에 서는 것은 견훤 본인이 선봉에 서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을 유금필이 지지한 것인데, 반대하던 왕건이 까닭을 묻자 후백제 탈출 당시 후백제의 병사들이 견훤을 공격하지 못한 일을 언급해 왕건도 이를 듣고 찬성으로 돌아섰다. 최종화에서는 견훤의 이 전술에 왕건이 놀라기도 했다. [35] 199화 마지막에 견훤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본 애술이 경악하면서 서둘러 공격하려고 하나, 아무도 그와 동행하지 않자 통솔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우왕좌왕한다. 덧붙여 이걸 보는 견훤은 껄껄 웃으며 "너희의 황제가 여기에 있다! 애술아!! 껄껄껄껄!!!"이라고 말하며 과거 호걸의 기상을 유감없이 돋보인다. [36] 이들은 신검의 정변에 동참하지 않았고 그냥 후백제 장수로서 끌려 나와 죄가 없다고 판단하여 살려준 것이다. [37] 제국의 아침 2회에서 죽기 직전 왕건의 회상에서 나왔는데, 태조 왕건과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도 동일하게 이환경 작가가 작업한 것이라서 가능했다. [38] 본편 200화 [39] 신검 삼형제가 끌려가는 것을 잠시 바라본 왕건이 박술희에게 '내가 잠시 잘못 생각했고 상부 어른의 한도 풀어드려야 하니 모두 죽여라' 라고 명령하는 부분이 있다. [40] 양검과 용검은 귀양을 갔다가 곧 처형당했고, 신검은 주변의 권유를 받아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므로 두 동생보다는 죄가 가볍다 하여 왕건으로부터 용서를 받고 벼슬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이 기록 이후 정사에서 신검의 이름은 찾을 수 없다고 하는데, 학계에서는 신검 역시 양검, 용검과 마찬가지로 오래가지 않아 처형당했으리라는 설이 중론이라고 한다. 숙청했다면 시기상으로는 견훤이 죽고, 후백제의 민심도 완전히 고려에 흡수되어 후백제 부흥 운동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일 것이다. [41] 드라마상으로는 송악으로 개선하여 황궁으로 들어가는 왕건 일행을 마지막으로 비췄지만, 실제 촬영 마지막은 신검의 처형 장면이었다. [42] 이 나레이션이 끝나고 실제 견훤왕릉의 모습을 잠시 보여준다. [43] 해당 링크 영상의 12:56 부근부터. 이 통나무 휠윈드도 그냥 바닥에 쓰러진 통나무를 주워 쓴 게 아니라 금성 공방전 때 패퇴하던 도중 고려군의 두 기병이 장수들을 낙마시키기 위해 양쪽에서 통나무를 말에 매달고 달려드는 것을 이걸 붙들고선 되레 그 기병들을 낙마시키고 달려드는 보병들을 상대로 무쌍을 펼친 것이다. 즉 말 두마리로 끌고가던 100kg가 족히 넘는 통나무를 맨손으로 들고 휘두르고 던지면서 병사들을 도륙한 것이다. 임업을 하거나 통나무를 다뤄본 사람들이라면 저 정도 통나무의 무게가 가늠이 될 것이다. [44] 이것은 본래 임꺽정 같은 조선 시대 장사들의 이야기에 흔히 나오는 레퍼토리다. [45] 문제는 이 경우가 신라가 완전히 고려로 돌아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는 것이다. 후백제가 공산 전투에서 가져온 주도권을 고려가 빼앗아가는 고창 전투 역시 신라계 호족들이 서라벌을 유린한 견훤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고려에 붙었으며, 극중에도 투항을 권유하는 후백제 전령에게 이를 언급하며 꾸짖는 모습이 나왔다. 때문에 견훤 최대의 실책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어쨌든 반영은 잘 된 셈이다. [46]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제도를 신라의 것과 동일하게 되돌리고, 명망있는 고승들을 즉위식에 참석시키자 그 의도가 백제를 적국으로 간주하며 아직 신라를 따르는 민심과 불교를 믿는 신앙심을 끌어들이겠다는 것임을 간파하는 정치적 식견도 보여줬다. [47] 이때 최승우가 황제의 것이 아닌 평범한 옷을 입은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웃으면서 "나도 원래는 서라벌의 말단 군관 출신이었는데 무엇이 대수이겠는가"라며 자신의 올챙이 시절을 잊지 않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48]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왕건이나 고려 조정이나 심지어 ' 신라' 내부에서도 '견훤'이 한 짓에 어울리게 분노하는 모습이 없었다. 이것은 '신라'인들에게 있어 '구한말'로 비유하자면 ' 일본'이 '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만큼, 아니 어쩌면 더한 만행으로 느껴질 사안이었다. [49] 견훤의 입을 빌려 변명을 하자면 서라벌에서 약탈을 하고 잔인하게 군 이유는 의자왕의 치욕을 갚아 줘야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아마도 백제유민들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서 일부러 한 것이다. [50] 물론 171화에서 나온 영순 같이 신검을 무리하게 쉴드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경우도 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편애와 조급함이 버무려지며 견훤의 실책이 더욱 크게 드러난다. [51] 일국의 태자가 자신의 아랫사람들 앞에서 목숨이 오락가락하고 그 아랫사람들의 적극적인 탄원으로 살아남았다는 것은 권위에 엄청난 타격이 가해질 만한 상황이다. [52] 오히려 공적인 일임을 감안한다면 국가의 차기 통치자인 태자와 (아무리 왕의 의형제일지라도)일개 장수의 목숨을 동일하게 비견해서는 안될 일이다. [53] 국가나 사회의 큰 일을 위해서는 부모 형제와 같은 혈육의 정도 돌보지 않는다는 뜻의 고사성어 [54] 삼국지연의에서 유비 조운이 창검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구해낸 어린 아들 유선을 조운으로부터 받아들자마자 땅바닥에 패대기치며 "이까짓 어린 자식 때문에 큰 장군을 잃을 뻔했구나!"하고 탄식하는 장면과 완성에서 조조가 아들 조앙과 조카 조안민이 죽은것보다 전위를 잃은것이 더 슬프다고 발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55] 다만 견훤이 첫 군생활을 시작한 부대는 신라 왕궁 경비 근위대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동서고금 어느 나라든 왕과 왕의 가족을 직접 호위하는 왕궁 근위대는 말단 병졸이라도 일선 부대 소부대 지휘자 정도 계급이다. 현대 한국군 기준으로 따지면 최초 군생활 계급이 아무리 낮게 봐도 하사 이상이란 얘기다. 아자개 집안이 신라 사회 기준 나름대로 적어도 대단히 신분이 좋은 5두품급이었기에 견훤은 바로 그빽으로 첫 출발이 대단히 좋았다. 어쩐지 완전 자수성가 이미지가 있는데 실제로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신라군 최종 커리어가 오늘날 기준 원스타급인 비장이었으니 입지전적인 출세는 맞지만 [56] 종간이 이 모습을 보면서부터 왕건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57] 비슷한 이유로 신라 장군 김유신도 전투에서 지고도 살아 돌아온 아들 김원술과 의절했다. [58] 추허조 역의 배우가 견훤 역의 배우와 사석에서 싸운 일 때문에 실제 역사와 다르게 그 장면에서 하차해야 했다. [59] 현대에도 노동법이니 사회복지니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에서부터 맨손으로 사회에 진출했지만 고성장 시대라는 흐름을 탈 수 있었던 부모 세대와 단군 이래 최대의 번영을 구가하는 물질적, 제도적 풍요 속에서 성장했지만 저성장이 시작되어 오히려 기회가 줄어들어 버린 자식 세대가 끊임없이 갈등을 겪기도 한다. [60] 이복동생 금강이 성장하면서부터 이러한 강박관념과 초조함은 더욱 심해진다. [61] 물론 최승우가 조언할 때는 이걸 명분 삼기에 너무 늦었다. 그래서 최승우가 간언하기를 두 형제를 모두 불러 불문곡직 목을 베라고 하며 정 베지 못하겟거든 아주 저멀리 보내서 다시는 불러쓰지 말라고 했다. 이를 시행하면 아들만을 잃지만 하지 않는다면 아들과 나라 둘 다 잃는다며 간청했으나 견훤은 최승우가 말한것과 정 반대로 자식들은 멀리 보내되 독자적인 군사력을 거느린 지방 영주로 보내버리고 신료들은 숙청하는 작업을 펼치는데 문제는 이게 그들의 귀에 들어가서 결국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신검의 아우들조차도 지방으로 쫒겨났을 때 자신들의 임지에 있는 군사만 합쳐도 3천에 달한다며 불안은 커녕 쿠데타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칠 정도였다. [62] 이걸 두고 대놓고 이적 행위를 한 작자를 지지하는 걸 두고 후백제 신료들의 자질론을 운운할 수 있으나 애초에 이 부분은 태조 왕건의 창작일 뿐이다. 이건 금강에게 양위 하는 것을 납득 시키기 위한 장치로 신검을 무능하게 만들었으나 결국 이쪽에서 문제를 일으킨 셈. [63] 특히 신검의 경우 후계자 경쟁에서 탈락할 경우 반드시 죽게 되어 있으므로 더욱 필사적일 것이다. [64] 최승우가 신검을 지지한 것은 신검의 능력을 높이 사서가 아니라, 적장자를 제치고 후계를 세우면 반드시 사단이 날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기 때문. 그 때문에 견훤에게 정 금강을 후계자로 삼으려면 신검 형제들부터 죽이라고 조언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사실상 모든 일에 손을 놓아버린다. [65] 아자개가 자기와 척을 진 상황들과 고려로 귀부하였다는 소식을 계속 접해 어찌나 격노했는지 가끔 각혈을 할 지경에 이르렀다. [66] 다만 집을 나가기 전의 젊은 시절이 전혀 묘사되지 않았고, 나가도 그냥 나가는게 아닌 성까지 갈아버리고 나갈 정도였으면 이전의 불화가 매우 극심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아자개 입장에서는 성까지 갈고 집을 나간 자식이 뒤늦게 제 이익을 위해 아버지를 포섭하려 드는 것이 괘씸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67] 아자개는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렸으니 그래도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안 왔다며 수틀려서 고려로 갈 것을 결심했다고 직접 언급한다. 사실 자식이 아버지가 자칫하면 임종을 맞이할 상황에 안 오니 섭섭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견훤은 백제의 황제다. 일개 장수일 뿐인 박술희와는 지위와 업무의 중요함이 격이 다르므로, 함부로 나라를 비울 수가 없다. 그래도 태자들을 보내 자신을 대신하는 등 최선을 다했지만 아자개는 서운하게만 생각하고 견훤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다. [68] 그나마 드라마 상에서는 시청자들의 관점을 고려했는지 대부분의 부인이 제국의 아침을 포함해 엑스트라로만 등장하고 딱 3명만 중점으로 나왔으머 한명은 중도 하차했다. [69] 사실 드라마 전반부에 등장하는 궁예 가족사는 견훤 가문보다도 더한 막장의 극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하다못해 가족 간의 복잡한 '애증'이라도 있던 견훤 가족사와 달리, 궁예의 가족사는 증오와 죽음과 비극, 그리고 캐릭터들의 광기와 정신붕괴만 가득하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 견훤의 가족들은 서로 충돌하지만, 궁예의 가족사는 한 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쪽을 죽이려 들고 정신을 망가뜨린다. [70] 견훤이 나라를 세울 당시 왕건은 아직 어렸고 궁예는 아직 기훤과 양길의 수하에 머물러 있었다. 오죽했으면 이 드라마 10회~13회 중반부까지의 내용 중 거의 모두가 견훤이 서남해를 접수하는 과정이다. [71] '태조 왕건'과 작가가 동일한 연개소문(SBS)에서 당 태종 역을 맡은 서인석은 악몽을 꾸면서 연개소문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72] 견훤이 애걸복걸 하는 장면은 딱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여기에 서술된 목숨 구걸씬이며 하나는 조물성 전투에서 금강이 괴질에 걸려 오늘내일 하자 조상에게 금강을 살려달라 빈 것이다. 어느 쪽이던 왕건이나 궁예에게선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73] '조물성 전투'에서 능애가 왕건이 인정이 많은 사람이라 말하자 기분 상한다는 듯 '그 말 들으니 난 인정이 없다는거 같네?'라고 하니 능애가 당황해 하자, '그냥 해본 소리야 ㅎㅎㅎ.'하고 농담을 던지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사실 이 부분은 단순 개그신이라기보다는 두 사람 사이가 금이 간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74] 애초에 이쪽은 견훤 및 이의방과 달리 고려의 충신이었다는 점에서 설령 서인석이 맡는다 해도 견훤 느낌이 나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75] 이와 대조적으로 전국환 육룡이 나르샤에서 최영 역할을 맡았을 때도 각시탈 우에노 히데키 이미지와 기황후 연철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는데, 이는 육룡이 나르샤의 최영이 정도전의 최영과 달리 우왕에 대한 어긋난 충성심으로 고려의 멸망 원인을 제공한 권신에 가까운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76] 변형 버전으로 "지난 번에는 수달이가 죽더니 이번에는 허조가 죽었어!"(110화에 나온다), "금강이가 죽었어! 파진찬이 죽었어!"(191화에 나온다)가 있다. 모두 실제로 나오는 견훤의 대사들이다. 참고로 이 죽었어라는 대사는 91화에서도 잠깐 나온 적이 있었으나 유명해진건 94화 이후며 그 외에도 서인석이 후에 출연한 연개소문에서도 위징이 사망한 후 이세민으로서 이 대사를 간단하게나마 언급했다. [77] 간신히 금성에서 탈출한 수달은 견훤의 군대가 무진주에 도착할 때 머리를 풀어헤치고는 길가에 꿇어앉아서는 견훤에게 자신의 죄를 물어 처형해 달라고 빈다. 이에 견훤은 수달의 뺨을 치고선 위의 대사를 하며 수달을 다독여준다. 그리고 견훤은 훗날 다시 금성을 되찾아 불명예를 씻자고 말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수달은 금성을 되찾는데 실패했을 뿐더러 끔찍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리고 견훤은 그 금성을 통해 고려로 간다. [78] 추허조 역의 강재일은 이때 서인석과 회식 자리에서 시비가 붙어 실제 역사보다 일찍 하차했었다. [79] 위 109화에서 이어서. [80] 이 부분은 연전연패에 빡친 한화 이글스 팬으로 빙의된 견훤의 모습으로 패러디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한화 이글스의 홈구장이 있는 대전은 실제로 과거 후백제의 영토였었다. 또, 게임을 컨텐츠로 삼는 스트리머들이 잘 안풀려서 죽을 쑬때면(특히 멀티플레이 게임) 이 대사가 도네이션으로 종종 사용되기도 한다. 또한 매직박이 한화 이글스 중계 방송을 할 때 한화가 패배할 경우에도 이 대사가 도네이션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81] 이 대사 이후 최승우의 대사에 "왕건 아우가 아니옵니다. 왕건의 의제 신숭겸이옵니다." 라고 하는 깨알같은 말 실수가 나온다. [82] 이후 벼루로 능애의 머리를 내려친다. [83] 예성강을 기습해서 개경을 공격하는 작전이었다. 드라마에선 신검이 총사였다. [84] 견훤이 신검에게 그동안 쌓인 마음을 털어놓는 씬이다. 그동안 견훤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던 신검도 그런 아버지의 마음에 울음을 터뜨린다. [85] 이때 술잔을 능애의 머리에 세게 던진다. [86] 어의가 안절부절하며 어주를 삼가라 청한다. [87] 그리고 견훤은 정말 백제로 돌아오지 못하며 눈을 감는다. 한이 맺혔는지 아래와 같이 후백제의 수도인 완산주가 그립다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다. [88] 다만, 이들이 재학했을 당시에는 성북구에 있었다. 노원구로 이전한 시기는 1998년. [89] 수도를 뜻하는 순우리말 서울이 서라벌에 유래됐다는 설이 있기 때문에 서울에 서라벌 이름을 따 와도 이상할 것은 없다. [90] 이외에도 종간 역할의 김갑수 무인시대에서 최충헌 역을 맡고 궁예 역할의 김영철과 신검 역할의 이광기 태종 이방원에서 각각 태조 이성계 정도전 역할을 맡았다. [91] 아마도 고창 전투 촬영 때일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