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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12:13:15

함춘호

<colbgcolor=#ABB4BA><colcolor=#fff> 함춘호
Ham Chun-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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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1년 8월 5일 ([age(1961-08-05)]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예원학교 (성악과/졸업)
대성고등학교 (졸업)
한일장신대학교 (음악학/학사)
청운대학교 산업기술경영대학원 (실용음악학과/석사)
쉐퍼드대학교 (명예박사)
현직 서울신학대학교 실용음악학과 학과장
직업 음악가, 교수
종교 개신교
소속그룹 시인과 촌장
데뷔 1986년 시인과 촌장 2집 앨범 ' 푸른 돛'
소속사 민트박스 엔터테인먼트
1. 개요2. 활약3. 기타4. 음반5. 세션6. 방송7.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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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BS 다큐

시인과 촌장 멤버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세션) 기타리스트이고, 한국 가요사의 레전드 연주자이자 음악가이다. 순수 기타리스트로서의 실력도 독보적이라고 정평이 나 있으며, 특히 어쿠스틱의 경우엔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한다.

2. 활약

한국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연주자를 한 명 뽑는다면 함춘호라고 말할 것이다 - 유희열
단순 기타의 장인이 아닌, 말그대로 음악계의 레전드이자 거장 - 신승훈
동시대에 이런 대단한 기타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건 행운이다 - 최백호
악인전에서 언급된 타 음악인들의 평

한국 음악계를 대표하는 세션으로서 역대급의 활약을 해오고 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의 유명 가요 대부분은 함춘호가 기타를 연주한 (녹음한) 곡들이며, 당시 함춘호가 해외에 나가면 한국 대중음악계 전체에 차질이 생긴다며 그의 출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였다. 00년대~10년대에 이르러서도 탑 세션맨으로서 수많은 유명 가요 및 다양한 종류의 곡들에 참여했고 40년 차에 가까운 오늘날 (2020년 기준)까지도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는 중.

또한 함춘호는 세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에 연주자의 위상을 높여준 인물로 평가받는다. 시대를 선도한 그의 연주는 이제 대중음악 기타 연주의 표준으로 연구되고 있으며 그만의 기타 톤과 어쿠스틱한 감성은 지금까지도 대체불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단독 콘서트나 여러 장르의 뮤지션과 협업하며 솔로 아티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함춘호’라는 이름만으로 대중에 음악적 신뢰감을 주는 한국 대중음악의 독보적인 연주자.
고3 때 (1979) 친형의 친구였던 이문세에게 노래를 하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그의 소개를 받아 레스토랑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이후 입소문이 나서 전인권이 노래를 들으러 왔고 이후 인연을 맺게 되어 한동안 둘이서 함께 공연을 했다. 이 시기 전인권의 노래와 본인의 노래를 비교하게 되면서 서서히 노래에 대한 꿈을 접고 기타에 집중하게 되며, 1980년대 초반에 전인권과 다른 멤버들과 함께 팀을 이뤄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후 1981년 이광조의 앨범에 연주를 하게 되면서 첫 세션 연주를 했고 들국화의 시초가 되는 프로모션 테이프를 만들 때 기타를 담당하기도 하는 등 정착하지 않고 여러 활동을 했다. 또 다른 음악적인 도전을 위해 전인권과 헤어진 후 새로운 팀을 꾸려 대구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소문을 듣고 찾아온 (함춘호와 평소 교류하던 들국화 최성원의 적극 추천에 의해..) 하덕규의 제안으로 1986년 시인과 촌장의 2집 멤버가 되었고, 이후 그의 기타에 대해 더 소문이 나면서 순식간에 세션계의 최강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또, 작곡가 김형석이 어렸을 때 김광석 음반의 피아노 세션을 했었는데,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음악의 길을 포기할까 생각했다고 하는데, 어린 김형석에게 당시 김광석의 기타 세션을 하던 함춘호가 '너 앞으로 나 녹음할 때 따라다녀' 하면서 김형석을 데리고 다녔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을 수 있게 하여 음악의 길을 계속 걷게 해 주었다고 하는 훈훈한 이야기도 있다.

김형석이 예능 수상한 가수 4화에서 이를 얘기하며 함춘호가 자신의 멘토 역할을 해 주었다고 언급했다.

3. 기타

4. 음반

5. 세션

목록

6. 방송

7. 수상 이력


[1] 그 후 전인권 한춘근을 제외한 멤버들과 한국 대중음악사의 레전드 밴드를 만든다. [2] 그렇지만 김현식은 계속 술을 마셨고 결국 1990년 세상을 떠났다. [3] 자칭이 아니라 유희열이 직접 라디오에서 언급했다. 오소영 본인도 알고는 있었다고. 여담으로 유희열과 오소영은 서로의 팬임을 자처하는 선후배사이. 데뷔 초기 작업실에서 몇번 만난적도 있었다고 한다. [4] 송창식 데뷔는 196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