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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의 통일 ( 1975년) | ||||
베트남 민주 공화국 |
+ |
베트남 공화국 |
= |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
Thống nhất đất nước
1. 개요
분단국가였던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1975년 4월 30일을 기점으로 무력으로 통일된 사건. 공식적인 통일은 1976년 7월 2일이지만 북베트남이 남베트남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 1975년이기 때문에 대체로 1975년으로 본다. 냉전으로 인해 분단된 국가 중 최초의 통일 사례이자 최초로 무력을 이용하여 통일하였으며[1] 유일하게 적화통일된 사례다.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전복시키는 형태로 통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통일 베트남의 국기는 북베트남의 금성홍기를 그대로 쓰게 되었다.
2. 분단
1945년 베트남에서 일본 제국이 물러나자 호치민이 이끄는 베트민( 월맹)이 베트남 북부를 장악하여 베트남 민주 공화국( 북베트남)을 세웠다. 북부에 중국 국부군이 주둔했으나 베트민을 막지 못했고 남부는 영국군이 점령하고 구 종주국인 프랑스에 넘겨주었다. 프랑스는 북베트남을 재점령할 계획을 세우고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상대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일으켰다. 프랑스는 베트남 남부에 베트남국이라는 대리 정권을 세워 베트남 북부를 장악하려 애썼으나 결국 실패하고 제네바 협정을 맺음으로서 프랑스는 손을 떼고 남베트남(베트남국)은 독립했다. 그러나 제네바 협정으로 인해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경계로 분단되었다.3. 베트남 공화국 수립과 베트남 전쟁
이후 1955년 베트남국에서는 제정 폐지에 대한 국민투표를 시행하고 응오딘지엠을 총통으로 한 베트남 공화국이 선포되었다. 그러자 남베트남에선 베트콩을 비롯한 공산주의 테러 조직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들은 북베트남의 지원을 받으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이로 인해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은 국경 지대에서 잦은 군사 충돌을 일으켰다. 쿠데타가 일어나 응오딘지엠이 살해당한 후인 1963년부터 1967년까지 남베트남은 혼란이 끊이지 않았다. 4년간 군부가 집권했는데 이때 쿠데타가 연속하여 발생해 집권 군부 세력이 계속 교체되다가 응우옌반티에우가 민정으로 복귀를 선언해 그나마 안정되었다. 그리고 1964년 미국은 남베트남 공산화의 위협을 느껴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북베트남과의 전면전에 돌입한다. 이로써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북베트남은 자신보다 우세한 남베트남과 미국을 이기기 위해 베트콩을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남베트남군과 미군을 골치 아프게 했다. 거기다가 남베트남군과 미군은 소련과 중국의 개입이 두려워 북베트남에 폭격하거나 특수부대를 투입시켜 때리는 식으로 공격하는 것밖에 하지 못했고 남베트남 내의 베트콩을 상대로만 교전했다. 뗏 공세 이후 북베트남이 밀리게 되었지만 자국의 반전 여론 때문에 최대 지원국인 미국이 발을 떼기 시작하였다.
4. 통일
1973년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손을 떼자 일단은 전쟁을 중단하기로 했고 파리에서 파리평화협정이 맺어졌다.[2] 그런데 명목상 전쟁이 중단되었어도 소규모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북베트남은 앞에서 평화를 외치면서도 뒤에서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1975년 3월 북베트남의 선제침략이 시작되었다. 이미 썩을 대로 썩은 베트남 공화국 정부와 베트남 공화국군 장성들은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연합공격에 대항할 능력이 전무했다.
결국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이 함락되었고 베트콩들이 수립한 임시 정권인 남베트남 공화국이 수립되었다.[3] 이 국가는 사실상 북베트남의 괴뢰국이었으며 1976년 7월 2일 소멸됨에 따라 베트남은 마침내 통일되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했다.
5. 당시의 남한과 북한과의 비교
비교 대상 | 남베트남 | 대한민국 | 북베트남 | 북한 |
<colbgcolor=#000000> 인구 | 19,370,000명 | 34,103,149명 | 27,233,525명 | 16,128,000명 |
면적 | 173,809km² | 98,799km² | 157,880km2 | 123,214km2 |
1인당 GDP (달러) | 90 | 414 | 60 | 477 |
여담으로 베트남 통일이 다가왔던 1973년 기준으로 인구와 면적, 1인당 GDP를 남한, 북한과 비교해보면 북베트남이 대한민국, 남베트남이 북한과 비슷하다. 우선 인구를 보면, 북베트남의 인구가 남베트남의 인구의 1.4배였고 역시 남한의 인구는 북한의 인구의 2.1배였다. 면적에서 보면, 남베트남의 국토는 북베트남의 면적의 1.1배였고, 북한의 국토는 남한의 면적의 1.2배였다. 1인당 GDP로 넘어가면,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의 1.5배였고, 북한은 1.1배였다. 이를 통해 각각의 두 국가의 상황이 비슷한 상황임을 알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