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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7 06:44:31

방송자료

1. 개요2. 구성3. 역사4. 사례
4.1. 한국 지상파4.2. 영화
5. 근거법령6. 매체별 아카이브 목록
6.1. 한국6.2. 일본6.3. 대만6.4. 영국6.5. 프랑스6.6. 스페인6.7. 포르투갈6.8. 소련, 러시아6.9. 미국6.10. 캐나다6.11. 호주6.12. 기타
7. 참고/관련 문헌8. 관련 문서

1. 개요

방송자료(放送資料)는 텔레비전에 방송된 내용을 방송국의 취재진들이 촬영하거나 녹화해 자료로 만들어 방송사 내에 보관하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방송으로 송출된 TV/ 라디오 프로그램이나 영상/음성자료로 한정지을 수 있으나 김선희는 2008년 석사논문 <공공 방송 아카이브 설립 및 운영을 위한 제도적 방안 연구>에서 영상자료를 촬영원본, 클린본(CP본), 송출본 3개로 나누며 각종 문서, 사진, 필름, 녹음테이프 등으로 개념을 확장시켰으며 황새암은 2008년 논문 <방송 아카이브 운영 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방송 영상물의 생산과 이용에 이르는 모든 과정 및 상세한 맥락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온갖 형태의 기록정보 자료로 정의했다.

과거엔 비디오테이프 필름이 방송자료의 주를 차지했으며 1990년대 중후반부터 VOD 서비스가 시작된 이래 2000년대 들어선 VOD의 비중도 늘어났다. 보존은 방송사 자료실의 내부 규정에 따라 '자료보존심의위원회'의 선별을 거쳐야 한다.

2. 구성

황새암은 위 논문에서 방송기록물을 5가지 과정으로 나누어 구성했다.

3. 역사

과거 대한민국의 방송자료 보관은 매우 부실하였다. 이는 당시 방송된 자료를 녹화해 둘 2인치 비디오테이프 가격이 비쌌고 필름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던 탓이었다.[1][2] 극초기인 1950~60년대 생방송으로 내보내야만 했던 시절보다는[3] 자료를 손쉽게 녹화해 두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나, 당대엔 홈비디오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가정용 VHS와 베타맥스 같은 것도 없었고, 가격도 비싸서 1970년대 기준으로 2인치 비디오테이프 1롤이 15만 원으로 몇 달치 봉급에 해당할 정도로 높아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미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계속해서 돌려쓰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관행은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당시 방송자료실이 음반이나 필름 위주로 보존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 당시 방송자료의 대다수가 보존되지 못한 채 영영 소실되었다. 텔레비전 방송 자체는 이미 이승만 정권 때인 1956년에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 초중기까지 방송자료의 공백이 크다. 그나마 일부 프로그램은 문화영화라는 명목으로[4] 국립영화제작소에 일부 보존되어 있어서 1950~60년대의 예능 프로그램을 찾으려면 KBS와 MBC가 아니라 한국정책방송원에서 찾아야 하며, 당대의 프로그램이 보존되어 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일부 특집프로그램이나 영상 정도가 보존되어있는 실정이고, 1970년대 중반까지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보존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대 방송에 대해 상세한 것을 알려면 남아있는 대본과 방송사 연감, 언론 보도자료, 관계자들의 증언 등에 의존해야 했다. 60년대 방송자료 보존이 얼마나 부실했냐면 1971년 방영한 아씨 마지막회 이전 방영한 한국 드라마 필름은 남아있는 것이 전무하며, 유튜브 등지를 찾아도 60년대 방송자료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찾기가 매우 힘들다.[5] KBS 아카이브 유튜브에서도 1978년까지 방송되었던 KBS 방송자료는 거의 없다시피하며,[6] 1979년 이후로 방송자료가 대폭 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7]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반에는 헬리컬 스캔[8]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어 1인치 Type-C 오픈릴 테이프, 유매틱 그리고 VHS 베타맥스등 릴테이프부터 카세트까지 비디오매체의 보급이 다양해진 덕에 비디오테이프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 1970년대 초반 이전 시기보다는 상황이 다소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방송자료의 전량보존은 이뤄지지 않아서 대다수 예능프로그램들과 드라마들은 몇십 회에서 몇백 회 가량을 찍으면 그 중에서 몇 회 내지 수십 회 가량만 남기고 나머지는 지우거나 1회, 마지막회, 심지어 대본만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라디오 방송도 사정이 마찬가지라서 카세트 테이프가 값싸게 공급되기 이전에는 라디오 방송자료 보존도 제대로 안 됐고, 설사 된다 해도 중요 프로그램이나 시그널 음악 정도나 보존하던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예외적으로 TV문학관은 필름으로 찍은 덕분에 대부분의 편이 남아 있고, 보도 영상은 장기 보존을 염두에 두고 필름으로 찍은 덕에 전량 보존돼 있다.

1977년 국제TV아카이브연맹(FIAT)이 세워진 후, 1980년대 홈 비디오 문화의 확산으로 점차 방송자료 판매가 늘어나자[9] 방송자료 보존의 필요성이 크게 증가했고, 방송사들이 자체적으로 '방송자료 관리규정'을 제정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방송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방송자료가 미비한 것을 깨달은 방송사는 전체 방송자료를 보관하기 시작했다.[10] 다만 1990년대 초반까지도 일부 방송자료들의 자료관리가 부실했는지 없는 방송자료들도 일부 있다고 하며, 설사 판매한다 해도 1984년 기준으로 드라마나 예능 프로는 17,000원, 특집 프로그램은 36,000원이나 해서 당시 한국음반협회가 정한 19,800원을 상회했고, 간혹 1시간 미만의 프로그램이라 해도 수요가 적은 특수 프로그램이면 기계의 감가상각비 등을 고려하여 36,000원을 내야 했던 까닭에 소비자들에게 원성을 산 바 있다. 참고로 1984년 당시의 대졸 초봉이 월 20~30만원이었고, 평균적인 급여수준은 10만원 대선이었다는것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에게 매우 비싼 금액이었다. 그래서인지 2019년에 KBS에서 후술할 일본 NHK의 것을 참고해 아카이브 수집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다만 폐기되지 않고 보존 중인 일부 방송자료들과 당시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의 체제 홍보 & 찬양 목적 등등으로 촬영하거나 조공(...)한 프로그램 자료, 해외로 판매된 방송자료들[11]은 일부 존재하고 있으며, KBS 디지털비디오아카이브(KDAS)와 MBC의 디지털자산관리시스템(DAMS) 등 폐쇄형 아카이브 시스템[12], MBC Archive 등 개방형 아카이브 사이트,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 등 여러 경로로 접속하거나 연락해 자료들을 열람하거나 구매할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비디오테이프나 필름 등 마그네틱 기록매체들이 앞으로 열화되어 사라질 가능성이 제기되자 방송사들은 디지털 파일 변환으로 전환했는데, KBS의 경우 2000년에 먼저 뉴스 아카이브 시스템 구축을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서 2003년에 온라인 구축을 완료했고, 2007년부터 뉴스 제작과정상 비디오테이프가 필요없는 '테이프리스 워크플로' 방식의 디지털뉴스룸 작업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2005년부터 오디오 아카이브의 디지털화에도 손을 대서 2010년에 소장 중인 CD 및 DAT의 디지털화를 완료했다. 2011년에는 인트라넷 기반의 디지털비디오아카이브(KDAS)를 구축해서 2014년부터 검색 및 다운로드 시스템 등 인프라 확충을 진행하는 한편, 매 월마다 정기적으로 디지털 아카이브 이관을 진행해내며 2016년 아카이브 큐레이션 서비스를 구축한 후 2018년경에 완료했다. 또한 방송자료의 디지털 콘텐츠 사업화가 진행되는 추세에 발맞춰 2016년 조직개편 당시 편성본부 직속이던 아카이브관리부를 미래사업본부 디지털서비스국으로 옮기면서 '아카이브사업부'로 고쳤다. 2019년 미래사업본부 해체에 따라 편성본부 디지털미디어국 아래로 옮겨졌다가 2021년 멀티플랫폼편성국 밑으로 가면서 '콘텐츠아카이브부'가 되었다.

MBC는 1992년부터 1993년까지 내부 자료집인 < MBC 소장 프로그램목록집>을 총 3권이나 냈고, 2005년 국내 방송사 중 최초로 LTO 스토리지 기반의 '디지털자산관리시스템(DAMS)'이라는 디지털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했다. 초기에는 SD 화질만 지원했다가 2008년 HD, 2018년 UHD까지 각각 지원하기 시작했다. # 2010년 업계 최초로 HD 기반 디지털 뉴스제작 시스템 'NPS'를 구축했고, 2016년에는 국내 최초의 개방형 방송 아카이브 사이트 ' MBC Archive'를 개설했다.

SBS는 2004년에 방송업계 최초로 촬영 영상의 인제스트에서 송출에 이르는 '테이프리스 워크플로' 방식의 SD급 뉴스 디지털 제작 시스템(NDS, News Data System)을 구축하여 목동 신사옥 건립 당시 도입했고, 2011년 8월 20일 전 프로그램의 HD 제작/송출도 먼저 실시했다. YTN 역시 쌍용정보통신, 코난테크놀러지 등과 함께 2010년부터 테이프리스 방식의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렇듯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으로 갖고 있기가 애매해진 영상테이프들을 2016년 SBS가 먼저 VOD 영상파일과 함께 국립중앙도서관에 기증했고, 이듬해 KBS도 뒤따랐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도 1970년대 초까지 방송자료를 녹화하는 데 쓰인 비디오테이프를 재활용해 돌려쓰는 경향이 짙어 TBS 테레비, 후지 TV 등지를 제외하면 1950~70년대 초의 방송자료는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하며, 다른 방송사들도 1970년대 초 이전의 방송자료들이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NHK도 2014년부터 '프로그램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대만도 1980년대 이전의 방송자료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판관 포청천(1974년판)은 총 방영분 중의 절반 이하의 분량들만이 남아있다.[13]

개발도상국들 중에서 1960~70년대 방송자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국가들도 있는데, 대한민국의 개발도상국 시기에도 방송자료 보관이 미비했던 점과 비교해보면 방송자료 보관은 당시 국가의 경제 규모나 현황에 따라서 보유 방송자료 수가 크게 엇갈리는 점(자료 보관 시점이 선진국이었나 개도국이었나의 차이)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14] 그렇지만 선진국이라고 해도 적지 않은 방송자료들이 테이프 덮어쓰기로 사라진 경우가 많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서구권 국가들이나 소련에서는[15] 일찍부터 비교적 일찍 방송자료 보관을 시작해 1930~40년대 자료는 많이 남아있진 않아도, 1950년대 자료부턴 어느 정도 남아있는 등 수많은 방송자료들이 현존하고 있으며, 프랑스 국립시청각연구원(INA)을 비롯해 미국 의회도서관, 밴더빌트 대학교 뉴스 아카이브처럼 학술 연구를 위해 고전 영상자료를 보존하고 있다. 국제사회 차원에서 유네스코는 1980년 10월 제21차 총회에서 ' 동영상의 보호 및 보존을 위한 권고'를 내놓았다.

허나 BBC는 Equity(영국예술인 노동조합)와의 재방송 금지 협약과 방송국 내부 공간 협소, 테이프 비용 문제 등을 이유로 방송자료 폐기를 1977년까지 여러 차례나 진행했다. 이 때문에 닥터후의 극초기 에피소드 중 일부는 찾아내지 못해 전세계적으로 방송자료 카피들을 찾아내려 애쓰는 상황이다. 이른바 ' 미싱 에피소드' (Missing Episodes)라 불리는 것들. 그리고 구미권에서 일찍 보존을 시작했음에도 한국처럼 비싼 2인치 비디오테이프를 썼던 적 있어서 자료 소실과 관리 소홀로 상당수의 1970년대 이전 방송자료가 사라졌다고 하며, 다른 국가들도 대부분 비슷하다. 미국도 방송자료가 많이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초창기 컬러방송 자료는 흑백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많다.[16]

유실된 자료들은 개인이 비디오로 녹화한 것이 아니면 영영 볼 수 없는 현실이며, 책과 마찬가지로 설사 소장한다 해도 소장자가 여러 핑계를 대며 기증 안한 채 사망하거나 집 정리 등 개인 사정으로 쓰레기장으로 내다 버려지는 경우도 있다. 유튜브에도 일부 영상에 녹화된 방송자료들이 업로드되어 있으므로 참고할 것. 물론 저작권 문제로 삭제와 복구가 일어나기도 한다.

가슴 아픈 사정이 담겨있지만, 현존해 있는 방송자료들과 2020년대까지의 방송자료들을 감상해보면 시대상이 변화하면서 방송 기술이 어떻게 발전해왔고, 당시 사람들의 자세한 생활상을 알아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예를 들면 방송사 ID에 1980년대 초까지 배경을 채색한 타이틀 카드를 활용했던 점과 1970년대 초기까지 프로그램 타이틀과 출연자 이름, 프로그램 소개 등의 자막에 윤곽선이 없었던 점, 1980년대까진 TV 프로그램의 부가 자막 활용 빈도가 무척 적었던 점, 1970년대까지 채널 CI가 삽입되지 않았던 것과[17] 초상권 문제의 해결이 미비했다는 점, 그리고 사람들의 말투가 현재와 다른 것, 제공자막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는 것 등을 들 수가 있다.

이러한 사정상 1950~70년대 사회상을 보여줄 때 대부분 방송자료들은 대한뉴스 영상자료 화면이 나오며, 비슷하게 1910~40년대까지 개봉된 미국 영화 중 일부 작품들도 부실한 필름 보관 체계, 제작사 측의 자체적인 자료 폐기, 영화 필름의 상태 열화 등으로 필름이 유실된 작품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는 1947년까지 썼던 필름의 주 재질이 질산염이었던 것과 더불어 재질상 인화성이 무척 높았던 관계로 영화사 필름 창고에서 대형 화재가 여러 번 발생해 영화 필름들이 소실된 경우도 있었다.

4. 사례

4.1. 한국 지상파

방송 자료 보관 체계의 미비함으로 인해 가장 많이 피해를 본 한국의 방송사들은 KBS, MBC, TBC로, 2010년대부터 보관 중인 방송자료들을 KBS와 MBC는 각각 인터넷 아카이브로 정리해 열람, 구매, 구독 기능 등을 제공하고 있다.

KBS 자료들의 경우 2017년 2월 말부터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자료들이 이관되어 2018년 3월부터 차례로 업데이트 되고 있으며[22], MBC는 회원가입 사업자등록번호를 입력해야 자료 열람이 가능한데 30일 기준으로 15,000원을 신용카드 계좌이체로 지불해야 한다. 일정 금액의 이용료 지불이나 가입 조건에 까다로운 점들이 있지만 온라인 열람이 가능한 점에선 KBS보다는 개방적임을 알 수 있다. 허나 아카이브 사이트도 방송자료를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라서 방송국 인트라넷 기반 아카이브로 봐야 되는 프로그램들도 있고, 일부 방송자료는 출연정지 연예인이 나오거나 저작권 문제 등으로 비판매, 비공개 목적으로 외부인 열람이 제한된 자료들도 있다. 2018년 들어서 지상파 방송사들은 유튜브에다 'KBS 옛날티비'나 'MBC 옛능' 등 공식 채널을 개설해 과거 영상 클립이나 풀영상을 올리고 있다. 특히 KBS는 과거 방송자료 개방에 MBC와 다르게 소극적이었는데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 MBC보다 11년이 늦지만 KBS 뉴스 9를 1987년 방송분부터 제공하고 여러 개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면서 유튜브를 통해 과거 자료를 올리는 등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아카이브를 개방하고 있다. 반대로 MBC는 최승호 사장 취임 이후로는 과거보다 소극적으로 아카이브를 개방하고 있으며 JTBC는 자사가 소유한 TBC 자료를 자회사 SLL중앙을 통해 판매 중이다.

방송 대본의 경우 2008년에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생존 회원 및 사망한 작가들의 유족, 지인 등을 수소문하는 등 여러 경로로 모은 자료들을 모아 '방송대본 디지털도서관(www.daevon.or.kr)' 서비스를 개시한 바 있고 #, 한국콘텐츠진흥원도 2011~2020년까지 방송 대본 열람 서비스를 실시한 바 있었다. 국가기록원은 2011년 한국방송작가협회로부터 방송대본 등 관련 자료들을 기증받아 영구 보존하고 있으나, 홈페이지에선 미공개 상태다.

4.2. 영화

현재 한국 영화의 초기작들은 상당수가 유실된 상태이며[23], 1996년 이전까지 영화법상 의무납본제도가 없었던 데다 원본 프린트 보존의 개념도 없어서 해외 영화제 같은 데에 무턱대고 원본 필름째로 내주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며, 한국영상자료원도 의무납본제 이전에 영화인들로부터 위탁이나 기증 형식으로 자료를 받았다. 오발탄의 경우 이렇게 유출된 프린트를 해외에서 발견해 영어 자막을 지우고 복원한 케이스이다.

한편으로 한국 영화 관계자나 영화 팬들은 한국 영화의 마지막 보물창고로 꼽고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평양 주석궁(...)이다. 바로 김정일 컬렉션이 그것인데, 김정일 생전에 모아둔 그 시절 한국영화 프린트가 매우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하던 초기인 1980년대까지 주력하던 것이 문화 선동 선전 분야였고 신상옥 영화감독이나 최은희 배우를 납치할 만큼 남한 영화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공동경비구역 JSA 개봉 당시에는 프린트를 하나 떠서 북한에 선물해주기도 했다. 언젠가 남북관계가 더 활성화되면 저 아카이브들이 다시 세상 빛을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가 있지만 국제정세 돌아가는 꼴을 보면 아직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히가시오사카의 원로 영화수집가 아베 요시시게(安部善重)도 아리랑 같은 일제 시기의 한국영화들을 소장한다는 소문이 돌아 1970년대부터 몽양 여운형의 친척 여운각을 비롯해 다큐멘터리 PD 정수웅, 나운규의 차남 나봉한 감독, 호현찬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 김연갑 아리랑보존회 회장 등 남북한을 막론하고 여러 영화인들과 언론인들이 필름 찾기에 나섰으나, 아베는 여러 차례 갖은 핑계를 대며 반환을 하지 않았으며 1934년작 단편영화 <아름다운 이웃 사랑(隣人愛の麗容)> 정도만 공개했고, <아리랑>의 경우 해당 영화가 적힌 필름 목록만 보여주기도 했다. 2005년에 그가 상속자 없이 사망한 후 그가 지닌 필름 전량이 일본 문화청으로 넘겨졌으나 조사 결과 해당 영화들은 한 편도 찾지 못했고, 2010년에 김연갑 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가 일본국립필름센터에서 아베의 컬렉션을 확인해 본 결과 일제 때 한국 영화는 한 편도 없었다고 나왔다.

5. 근거법령

공공관리물 기록에 관한 법률

제13조(기록관) ① 공공기관의 기록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공기관은 기록관을 설치ㆍ운영하여야 한다. 다만, 제14조에 따른 특수기록관을 설치ㆍ운영하는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그 공공기관 내에 기록관을 설치할 수 없다.
② 기록관은 다음 각 호의 업무를 수행한다. <개정 2019. 12. 3.>
1. 관할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기본계획의 수립ㆍ시행
2. 해당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
3. 기록관이 설치되지 아니한 관할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
4. 해당 공공기관의 기록물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의 접수
5. 관할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대한 지도ㆍ감독 및 지원
6. 관할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에 관한 교육ㆍ훈련
7. 다른 기록물관리기관과의 연계ㆍ협조
8. 그 밖에 기록물관리에 관한 사항

제46조(주요 기록정보 자료 등의 수집) ①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국가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국내외 소재 주요 기록정보 자료와 민간기록물을 수집할 수 있다.
②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국가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국내외 소재 주요 기록정보 자료와 민간기록물의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게 그 기록정보 자료 또는 민간기록물의 목록이나 그 사본의 제출을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그 기록정보 자료 또는 민간기록물의 소유자 또는 관리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협조하여야 한다.
③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29조제1항에 따라 상영등급을 분류받은 영화 중에서 국가적으로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협의하여 지정하는 영화에 대하여는 그 영화의 소유자 또는 관리자에게 원판필름 또는 그 복사본 1벌과 대본 1부를 송부하여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④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방송(재송신은 제외한다)된 프로그램 중에서 국가적으로 영구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방송프로그램에 대하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또는 방송통신위원회와 협의하여 수집대상 방송프로그램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의 장은 「방송법」 제2조제3호가목에 따른 지상파방송사업자에게 해당 방송프로그램의 원본 또는 사본 1부를 송부하여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개정 2013. 3. 23., 2017. 7. 26.>
⑤ 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기록정보 자료 및 민간기록물 등의 수집ㆍ보존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전문개정 2012. 3. 21.]
방송법 제83조(방송내용의 기록ㆍ보존) ① 방송사업자ㆍ중계유선방송사업자ㆍ전광판방송사업자 및 음악유선방송사업자는 방송일지에 방송내용(방송프로그램 및 방송광고를 포함한다)을 기록하여 비치하여야 하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방송 실시결과를 방송후 1개월 이내에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또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여야 한다. <개정 2008. 2. 29., 2009. 7. 31., 2013. 3. 23., 2017. 7. 26., 2020. 6. 9.>
1. 제14조제6항제1호에 해당하는 방송사업자ㆍ중계유선방송사업자ㆍ전광판방송사업자 및 음악유선방송사업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2. 제14조제6항제2호에 해당하는 방송사업자: 방송통신위원회
② 방송사업자는 방송(재송신은 제외한다)된 방송프로그램(예고방송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및 방송광고의 원본 또는 사본을 방송후 6개월간 보존하여야 한다. <개정 2006. 10. 27., 2009. 7. 31., 2020. 6. 9.>
③ 제1항에 따른 방송일지의 기록 및 방송실시결과의 제출시기등과 제2항에 따른 사업자별 방송프로그램 및 방송광고의 원본 또는 사본의 보존등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소관 업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령 또는 방송통신위원회규칙으로 정한다. <개정 2008. 2. 29., 2009. 7. 31., 2013. 3. 23., 2017. 7. 26., 2020. 6. 9.>

6. 매체별 아카이브 목록

6.1. 한국

6.2. 일본

6.3. 대만

6.4. 영국

6.5. 프랑스

6.6. 스페인

6.7. 포르투갈

6.8. 소련, 러시아

6.9. 미국

6.10. 캐나다

6.11. 호주

6.12. 기타

7. 참고/관련 문헌

8. 관련 문서


[1] 그나마 저렴했던 16mm 필름을 이용해서 방송을 녹화하는 키네스코프(키네르코)방식이 있긴 했다. 화질 열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비디오 테이프가 위낙에 비싸다 보니 영미권이나 서구권, 동구권 등지에서 널리 쓰였고, 일본에서도 상당수 프로그램의 녹화에 활용되었지만 한국에서는 다큐멘터리 등 영구보존할 가치가 있는 중요 자료만 보존했다. 서구권이라 해도 모든 방송 프로그램을 보존하는데 쓰던 것은 아니었다. [2] 거기에 197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필름에서 을 빼내려고 필름 재활용(?)하는 일이 성행했었다. [3] 이 때문에 HLKZ-TV의 방송자료는 남아있는 것이 전무하다. 물론 필름을 남겨놓았어도 1959년 화재로 방송사가 전소되었던 만큼 필름이 죄다 소실되었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4] 예술영화 독립영화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개념은 절대 아니고 콘서트와 재담을 찍은 영상이며,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이전인 1970년대 이전에는 국립영화제작소에서 직접 찍은 영상을 시골 순회상영을 했었다. [5] 다만 당시에는 한국 이상으로 경제사정이 좋았던 대만과 선진국 일보직전이던 일본조차 방송자료 재활용이 관행화되었던 때였던 만큼 당시 후진국이던 한국의 방송자료가 제대로 보존되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6] 특히 1976년 이전에는 여로 마지막회 정도를 제외하면 이렇다하게 올라온 방송자료 영상이 없다. [7] 다만 KBS가 MBC, TBC 대비 방송자료 보존 상태가 나쁜 편이라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8] 기존의 2인치 테이프 등 선형으로 기록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테이프를 헤드에 나선형으로 주행시킴으로써 비교적 낮은 주행속도에서도 고주파 신호를 효율적으로 기록하는 방식. [9] 한국에선 1981년 한국방송사업단(현 KBS 미디어)이 먼저 비디오테이프 복사판매를 개시했다. [10] KBS 뉴스 9는 1987년 1월 1일부터 전량보존을 시작했고, 드라마는 MBC의 경우 이미 1984년 무렵부터 전량보존을 하기 시작했으며 KBS의 경우 1989년 가을개편 이후부터 전량보존을 시작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전량보존을 시작한 때가 1987년 2월 3일 방영분부터였다. 물론 그 이전에도 뉴스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있는 편이기는 했다. [11] 특히 재미동포 사회에서는, 코리아타운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한국 방송사 프로그램을 취급해 와서인지 이들을 보면서 고국의 향수를 느끼는 경우도 있다. [12] 방송사 직원만 가능. [13] 다만 이는 첫 업로드 이후 방송자료가 업데이트되지 않는 점도 있어서 추후 더 방송자료가 업로드될 여지는 남아있다. [14] 당장 한국에서 방송자료가 유의미하게 생기기 시작한 기점인 1977년이 딱 한국이 중진국에 진입함과 동시에 국제TV아카이브연맹(FIAT)이 설립된 시기다. 한국이 명백한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의 비뉴스 방송자료 중 현존하는 것은 여로와 아씨 마지막회가 사실상 전부다. [15] 특히 소련 중앙텔레비전에서는 생방송을 방송사고의 위험이 있고 검열도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아무리 비용부담이 있어도 필름과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래서 이 당시의 방송자료들이 많이 남아있는지라 소련 당대에 제작된 방송프로그램들을 재방송하는 노스탤지어(Ностальгия)라는 위성TV방송국도 있다. [16] 어차피 이 당시에 컬러TV가 부유층 위주로나 보급되었고, 제작비도 많이 비쌌기 때문에 보존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17] 이 두 가지는 당시는 세미-디지털(아날로그가 혼용된) 작업이 그만큼 어려웠던 탓이기도 하다. 일단 컴퓨터가 매우 고가의 장비였던데다가 손으로 그린 그림이나 활자로 찍은 것을 다시 텔레시네로 전사해서 "수파"라는 자막을 오버레이로 입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18] 그것도 필름이 거의 온전했던 아씨 마지막회와는 달리 여로 마지막회는 필름 훼손이 심해 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20분짜리 중) 5분으로 편집한 버전만 볼 수 있었다. [19] 다만 미래소년 코난, 개구리 왕눈이, 이상한 나라의 폴, 꼬마자동차 붕붕의 KBS판 방영분을 EBS에서 재방영한 것과, 플랜더스의 개, 소공녀 세라, 요술공주 밍키처럼 방영분이 DVD 발매, 케이블 재방영, 인터넷 등지에 일부 방송자료들이 남아있는 애니메이션들도 존재한다. [20] 여담으로 국내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 중 방송사에 자료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더빙판은 미래소년 코난(1982년 KBS), 2위는 개구리 왕눈이와 요술공주 밍키(1983년 KBS)인 것으로 보이는데, 요술공주 밍키의 경우 당시의 수파(로고)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21] 간간이 유튜브에 일본인들이 업로드하는 클립 영상들을 찾아보면 1960년대 중후반에 녹화된 일부 프로그램 자료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자료는 위성방송으로 재방송된 것을 녹화한 것이거나, 실제로 당시에 녹화했던 자료를 디지털화하여 직접 업로드하는 경우이다. [22] 비디오테이프를 30만장 넘게 소장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볼수 있는 자료는 1만 장도 채 안 되며, 대신에 디지털 파일로 저장된 프로그램 위주로 서비스하고 있다. [23] 특히나 영화 필름들은 농부들이 쓰는 밀짚모자의 테두리 등을 만드는데 쓰이느라 잘려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외국의 경우도 조르주 멜리에스의 초기작 필름들이 구두 공장에 재료로 팔려나가버리기도 했다. [24] 사이트 자체의 검색기능이나 감상기능 자체는 있는 모양이지만 KBS 직원들이나 일부 방송관계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인들은 접근이 불가능하다. 다만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영상자료는 올라와 있으며 2018년 말부터 단계적으로 유튜브에다가 영상을 풀고 있다. [25] 내부 홈페이지인 TBC 추억여행 코너와 다큐멘터리 'TBC 31년만의 귀환'에서 일부 동양방송 자료들을 시청할 수 있다. [26] 일부 방송자료들을 검색하여 무료로 시청할 수 있다. [27] 아예 방송자료를 소재로 한 천연소재 NHK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한다. 한국으로 송출되는 NHK 월드 프리미엄에서도 수요일 23시에 방영된다. [28] 1940년대 이후의 프랑스 방송자료들을 열람할 수 있는 사이트로, 1974년 국영방송사 프랑스방송협회(ORTF)의 해체/분할에 따라 출범한 방송자료 보존, 방송정책 수립 등을 맡는 연구기관이며 1986년 TF1이 민영화된 후에도 그 방송사랑 협약을 맺어오고 있고, 1995년 문화유산법 아래 납본법 및 동시기 개정된 방송법에 따라 움직인다. 일부 자료들은 비용을 지불하고 열람해야 하는 자료들도 존재하는 점에 유의할 것. [29] 스페인의 국영 방송국이다. [30] 2000년대 이전의 소련과 러시아 방송 프로그램들을 올려놓는 유튜브 채널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방송자료 아카이브라고 하며, 2021년 기준 300만 개 이상의 자료들이 저장되었다고 한다. 1974년 설립되었으며, 유튜브 채널은 2017년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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