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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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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로 데뷔 전

반야월초 4학년 당시 학급대항축구대회에서 재능을 보인 박주영은 시덕준 축구부 감독 눈에 띄어 축구 선수로 스카웃된다. 하지만 반에서 1,2등을 다툴 만큼 수재였던 박주영은 부모님의 반대로 3개월 동안 축구를 하지 못했으나, 박주영 본인과 학교의 노력으로[1] 다시 축구화를 신으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다. 4학년임에도 6학년 경기에 나설 만큼 월등한 기량[2]을 가졌던 박주영은 대구 전역에서 축구 유망주로 이름을 날렸고, 지역 축구 명문인 청구교육재단에서 그를 스카웃하고자 했고, 청구중 김병익 감독과 청구고 박경훈 감독이 합심하여 청구중으로 진학하게 된다.



청구중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영남권 최고의 유망주로 성장한 박주영은 청구고 1학년에 포항 스틸러스의 지원을 받아 프로 데뷔시 포항과 우선 협상을 한다는 조건으로 브라질로 1년 간 축구 유학을 다녀온다.[3][4] 귀국 후 본격적으로 변병주 감독의 지도 아래 2학년부터 경기를 뛴 박주영은, 당시 고교 시합 33경기 47골을 기록하며 4개 대회 득점왕을 거머쥐고 청소년 대표팀에선 2살 월반을 하는 등, 전국구 유망주로 거듭났다.

청구고 졸업 후 포항 입단이 아닌 고려대학교 체육교육과 04학번으로 진학을 선택한다. 박주영은 새내기임에도 등번호 10번을 달았고, 고연전 득점 등 대학 무대에서도 최고의 활약을 펼친다. 게다가, 2004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서 6득점하며 역대 2위의 기록으로 득점왕에 오르는 환상적인 활약으로 인해 박주영의 주가는 엄청나게 뛰어 버린다.

2000년대 전후 천재로 칭해진 선수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시드니 올림픽의 주축이었던 박진섭은 히딩크 부임 후 한순간에 국대에서 사라졌고, 한때 자타가 공인한 천재로서 리그와 대표팀을 호령했던 고종수, 이천수는 뜻하지 않게 커리어가 꼬였으며, 권집, 최성국, 김동현 등은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때문에 축구계에서 아예 퇴출당했다. 전성기 시절 본인은 언제나 천재가 아니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적어도 당시 국내에서 그만한 재능을 가진 선수는 드물었다.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킬러'라고 불릴 만큼 감각적인 슈팅과 개인기, 탁월한 결정력 등 한국 축구를 이끌 차세대 유망주로 지목받았었다. 특히 중국 수비수 3~4명을 제치며 개인기로 골을 만들어 낸 장면은 지금 봐도 인상 깊을 정도다.

2. FC 서울 입단

결국 대학 생활 1년 만에 프로 팀들과 협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국내 빅클럽들은 물론 J리그의 팀들까지 경쟁에 뛰어들었고, 개중에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것이 FC 서울이었다. 고려대 동문인 GS그룹 회장 허창수가 직접 어윤대 총장을 만나 협상을 벌였으며, 이적이 확정되기도 전에 고려대에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7억원 상당의 인조잔디 구장 건립을 약속했다. 결국 이런 노력이 먹혀 박주영은 FC 서울에 입단하게 된다. 포항은 계약 위반 조항에 따라 브라질 유학비의 2배 금액인 5,000만원의 보상금만큼은 받아내겠다고 밝혔으나, FC 서울 측에서는 당사자들인 박주영과 포항이 해결할 일이지 우리와는 관계가 없다며 일축했다. 물론 포항과의 우선 협상권이 있었고, 박주영 신드롬이 나오기 전인 청구고 시절 계약 제안이 있었지만 너무 낮은 제안이여서 결렬되었다고 한다. 조민국 감독이 회고하기론 당시에는 포항이 선수의 가치를 그리 높게 보지 않았는지 여러 조건이 좋지 않아 결렬됐다고 한다. #

이와 관련된 논점으로 포항이 청구고에 대한 지원을 끊은 것에 대해 박주영 사건으로 인한 보복이라는 얘기가 있으나 이는 지역 연고제 차원에서 포스코 재단 직계 학교인 포철 동/서초, 포철중, 포철공고 외에 모든 학교에 대한 지원을 끊은 것뿐이지 박주영에 대한 보복은 아니다. 한편 박주영의 유학이 포항 구단 측이 직접 지원한 것이 아닌 포스코 재단 차원에서 장학금 개념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우선 협상 계약의 직접성과 강제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박주영 팬들의 쉴드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기사에도 유학비 지원의 주체는 포항 스틸러스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 기사에 언급된 브라질 유학 수혜자 중 오범석, 황진성, 신진호 등이 포항에 입단한 것만 봐도 장학금 차원이었단 쉴드는 설득력을 잃는다.[5]

하지만 박주영 이적 파동은 결국 K리그 드래프트 부활의 계기 와 엮이긴 했다. 당시 드래프트를 주장하던 시민구단과 반대파인 기업구단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박주영 사건이 터졌고, 유스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드래프트에 있어서 가장 완강한 반대파인 기업구단 포항과 전남은 기존의 계약 방식으로는 선수를 지킬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유스 우선 계약 4명이라는 떡밥을 물고 시민구단과 함께 드래프트 찬성으로 돌아서버렸다. 물론 드래프트 시행 요구에 강경한 입장이었던 측이 시민구단이었다는 점과 여러 가지 이유에서 박주영이 드래프트 제도 부활에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박주영의 프로 입단 상황과 맞물려 어느 정도 엮였다고 보는게 정확한 상황이다. 즉, 일종의 오비이락. 그리고 당시 고려대 감독이었던 조민국에 의해서 한참 후인 2015년이 되어서야 그 당시 정황이 나타났다. 고려대를 갔을 때부터 FC 서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울산 현대와 고려대가 접촉을 시작한 것. #[6]

3. FC 서울 1기

2005-2008
96경기 35골 10도움

3.1. 2005 시즌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주영
FW
마차도
MF
김두현
MF
이천수
MF
이호
MF
조원희
DF
임중용
DF
유경렬
DF
조용형
DF
김영철
GK
김병지

3월 13일 컵대회 성남전 후반 43분 김은중의 패스를 왼발슛으로 마무리하면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다.

3월 20일 컵대회 부산 아이파크 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이원식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4월 17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컵대회 경기에서 후반 36분 히칼도의 택배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해 동점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팀은 상대에게 골을 내줘 2:3으로 패했다.

4월 24일 대전 시티즌과의 컵대회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팀 승리를 이끌었다.

4월 27일 광주 상무 전에서 전반 2분 단독 드리블로 1대1 찬스를 만들었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득점으로 연결시켜 선제골을 만들었다.

5월 1일 울산 현대 전에서도 후반 38분 박스 바깓쪽에서 때린 슈팅이 수비 맞고 들어가면서 4경기 연속골을 기록했고 팀은 덕분에 2대1로 승리를 거두었다.

5월 18일 광주 상무전 전반 14분 프리킥 득점을 성공시키면서 선제골을 기록했고 전반 43분에는 이기형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면서 멀티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후반 35분에는 자신이 얻어낸 PK를 직접 처리하면서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6월 29일 전북 현대 전에서는 개인기로 수비수들 농락 후 김은중 에게 패스를 했고 그 패스를 김은중이 마무리 하면서 어시스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7월 6일 있었던 부산 아이파크 전에서 전반28분 히칼도의 패스를 헤더슛으로 골망을 가르면서 선제골을 기록했고 후반 11분에도 히칼도 패스를 골로 연결하면서 멀티골로 팀 승리를 이끌었다.

7월 10일 포항 스틸러스 전에서는 전반 15분 히칼도의 정확한 패스를 원터치로 마무리하며 선제골을 터뜨렸고 후반15분에도 역시 히칼도의 패스를 마무리 하면서 멀티골을 작렬시켰다. 그리고 후반 막판에는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면서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본인의 두 번째 해트트릭이다.

8월 24일 광주 상무 전에서는 후반 19분 김동진의 득점을 어시스트 했다.

8월28일 울산 현대 전에서는 전반 38분 김은중의 패스를 골로 연결시켜 9호골을 기록했다. 팀은 동점골을 허용해 아쉽게 비기고 말았다.

10월 2일 인천 유나이티드 전에서 정확한 킥으로 김동진의 득점을 어시스트했다.

10월 23일 슈퍼매치에서는 전반 21분 선제골을 기록. 리그 10호골을 터트렸다.

10월 26일 FA컵 김포전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0월 30일 부산 아이파크 전에서 후반 37분 김승용의 땅볼 크로스를 득점으로 연결시켜 팀 승리에 일조했다.

11월 9일 전남 드래곤즈 전에서 전반 9분 팀 동료가 준 스루패스를 받아 골키퍼까지 제친 후에 득점을 기록, 리그 12호골을 터트렸다.

리그 19경기 12골 3어시스트, 삼성하우젠컵 11경기 6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5년 FC 서울에서 프로 데뷔, 첫 해 리그 득점 순위 2위(12골), K리그 역사상 최초로 만장일치로 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후반기에 복귀해 미친 활약으로 팀의 우승을 이끈 울산의 이천수에게 밀려 MVP를 내줬다. 하지만 박주영은 매 경기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선보였다. 또한 갓 프로에 데뷔한 만 20살의 신인 선수가 리그 득점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이천수와 MVP를 겨뤘다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었고,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2005 시즌: 32경기 18골 5도움
대회 경기 득점 도움
K리그 19 12 3
삼성 하우젠컵 11 6 1
FA컵 2 0 1
합계 32 18 5

3.2. 2006 시즌

3월 12일 수원 삼성 과의 슈퍼매치 선발출전해 후반 33분 자신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직접 마무리 지으며 패배할 뻔한 경기에서 팀을 구했다.

3월 15일 전북 현대 전에서 후반 3분 헤딩 패스를 김은중이 득점으로 성공시켜 시즌 첫 도움을 기록하게 되었다.

3월 25일 제주 유나이티드 와의 경기에서 전반 31분 최원권의 프리킥을 헤딩으로 골망을 가르면서 추가골을 터뜨렸고 전반 41분에도 마찬가지로 프리킥 상황에서 최원권의 킥을 헤더로 마무리 하면서 멀티골을 기록했다. 이 경기 맹활약 덕분에 팀은 3:0 완승을 거뒀다.

5월 5일 부산 아이파크 전에서는 2대2 동점 상황에서 후반 25분 강력한 왼발슛으로 역전골이자 자신의 리그 4호골을 기록했다.

5월 10일 경남 FC 전에서는 전반 초반 프리킥 상황에서 히칼도의 킥을 골로 연결시키면서 리그 5호골을 기록했다.

7월 22일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 와의 컵대회 경기에서 후반 36분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8월 1일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의 FA컵 경기에서 후반 추가시간 쐐기골을 터뜨리면서 팀 승리에 일조했다.

8월 12일 열린 FA컵 슈퍼매치에서 후반 22분 1대1 단독 찬스를 성공시키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10월 21일 전남 드래곤즈 와의 경기에서 후반 44분 쐐기골을 터뜨리면서 리그 6호골을 기록했다.

10월 25일 성남 전 1대2로 끌려가던 후반 44분 김은중이 얻어낸 박스 바로 바깥 프리킥을 멋지게 성공시키면서 리그 7호골을 기록했다.

리그 26경기 7골 1어시스트, 삼성 하우젠컵 4경기 1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25년이 넘는 리그 역사는 결코 녹록한 게 아닌지라, 불과 1년 만에 완벽히 장단점이 파악되고 수비수들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며 득점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7]

특히 이 시기 논란이 되었던 대목은 피지컬인데, 팬들은 '공격수로서 파워가 부족한 만큼 피지컬 강화가 필수'라는 의견과 '축구 지능으로 골을 넣는 타입인 만큼 피지컬 강화는 시간 낭비'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물론 축구가 결국 피지컬의 중요도가 엄청나게 높은 게임이란 걸 생각하면 후자의 의견은 그저 헛소리일 뿐이다.

가끔 보면 히칼도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기록이 너무 차이가 난다며 박주영은 히칼도 빨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애매한 정도다. 박주영의 당시 골 기록을 살펴보면 히칼도 빨이라고 하기에는 그래도 좀 넣었고, 아니라고 하기에는 의존도가 크기는 크다. 즉 박주영이 히칼도 빨이냐고 묻는다면 확실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히칼도 의존도가 낮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아니다. 애매하다.

게다가 실력 외적인 요소로도 비난을 받아야 했다. FC 서울은 연고복귀 때문에 다른 축구팬들의 비난의 대상인데다, 포항과 계약파동 때문에 배신자 이미지까지 있어 리그에서 박주영을 감싸줄 팬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울이라는 거대시장을 노리고 연고복귀를 했지만 연고복귀 첫 시즌 흥행이 신통치 않았던 FC서울이 구단 인지도 상승 겸 이미지 세탁 차 박주영을 구단 간판으로 내세우며 이용해먹은 것도 컸다. 언제 어느 포지션에 뛰어도 최소한 중간은 가는 견실함은 나쁘지 않았으나, 진작부터 '천재', '킬러' 등으로 각광받은 만큼 슬럼프 장기화로 인해 언론 역시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이장수 전 FC서울 감독도 박주영의 슬럼프가 장기화된 데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한바 있다.[8]

2006 시즌: 32경기 10골 1도움
대회 경기 득점 도움
K리그 26 7 1
삼성 하우젠컵 4 1 0
FA컵 2 2 0
합계 32 10 1

3.3. 2007 시즌

3월 18일 제주 유나이티드 전에서 후반 3분 정조국의 패스를 결승골로 연결하면서 팀에게 귀중한 승점 3점을 안겨줬다.

3월 21일 수원 삼성 블루윙즈 와의 삼성하우젠컵대회 경기에서 무려 3골을 터뜨렸다. 0대1로 끌려가던 전반 13분 이청용의 패스를 한번 잡고 오른발로 마무리 하면서 동점골을 넣었다. 후반 6분에는 상대 수비 실수를 놓치지 않고 왼발슛으로 마무리하며 역전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후반 7분 2번째골 이후 1분 만에 이청용의 상대 뒷공간을 완벽히 허무는 스루패스를 원터치로 마무리하며 해트트릭을 달성했는데 그것도 FC 서울 팬들이 제일 싫어하는 수원을 상대로 기록한 해트트릭이라 더 뜻깊은 3골이었다.

9월 30일 부산 아이파크 전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골문 앞 혼전상황에서 슬라이딩으로 밀어넣으면서 팀이 4대0 대승을 거두는데 일조했다.

2007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며 15경기 5골, 그마저도 삼성하우젠컵에서 기록한 해트트릭을 제외하면 리그에서 11경기 2골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데뷔 시즌에 비하면 눈에 띄게 득점이 줄었다.

2007 시즌: 15경기 5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 11 11 0 2 0
삼성 하우젠컵 3 2 1 3 0
FA컵 1 1 0 0 0
합계 15 14 1 5 0

3.4. 2008 시즌

3월 15일 전북 현대 전에서 후반 42분 최원권의 패스를 받아 득점을 기록하면서 팀에게 승점 3점을 안겨줬다.

4월 6일 광주 상무 불사조를 상대로 전반 8분 프리킥 골을 작렬시키면서 2호골을 기록했다.

5월 11일 인천 유나이티드 전에서는 아디가 자신이 올려준 코너킥을 헤딩골로 연결하면서 리그 1호 어시스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5월 25일 성남 상대로는 감각적인 뒤꿈치 패스를 선보이며 이청용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리그 두 번째 도움.

8월 23일 대구 FC 전에서는 기성용의 결승골을 어시스트 하며 리그 3호 도움을 기록했다.

8월 30일 광주 상무 와의 경기에서 전반 33분 기성용의 역전골을 어시스트 하면서 리그 4호 도움을 기록했다.

2008 시즌에는 전반기 리그에서 13경기 2골 4어시스트와 삼성하우젠컵 4경기 출장을 기록하였다. 국내 무대에서 컵대회 포함 통산 35골 10도움을 기록하고 올림픽 후 프랑스 AS 모나코로 전격 이적하였다.

2008 시즌: 17경기 2골 4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 13 11 2 2 4
삼성 하우젠컵 4 3 1 0 0
합계 17 14 3 2 4

4. AS 모나코 FC

2008-2011
103경기 26골 9도움

4.1. 2008-09 시즌

2008년 여름, 프랑스 리그앙 소속의 AS 모나코로 이적하게 된다. 당시 분위기는 '유럽에서 뛰기는 아직 부족하다'였다. 모나코가 UEFA 챔피언스 리그 준우승 경력도 있고 나름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보니 그런 말이 더 많았다. 하지만 등번호 10번을 바로 부여받은것에서 모나코의 높은 기대치를 볼 수 있었다.

데뷔전인 FC 로리앙과의 경기에서 1골 1도움으로 맹활약,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특히 모나코가 극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더라도 언제나 돋보이는 활약을 보이며 '축구를 배우러 갔는데 가르치고 있더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후 팀내 에이스로 급부상하며 모나코에서 제대로 된 축구를 하는 몇 안되는 선수가 된다. 나머지는 네네, 알레한드로 알론소, 스테판 뤼피에 정도.[9]

08/09시즌 리그 31경기 5골 5도움, 컵대회 4경기 1도움을 기록하며 유럽무대 적응을 끝마쳤다. 덧붙이자면 골키퍼를 제외한 필드플레이어 중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나섰다.

2008-09 시즌: 35경기 5골 6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리그 1 31 31 0 5 5
쿠프 드 프랑스 3 3 0 0 1
쿠프 드 라 리그 1 0 1 0 0
합계 35 34 1 5 6

4.2. 2009-10 시즌

09/10시즌 리그앙 포워드순위와 평점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최근 3경기 연속 골을 터뜨리며 좋은 활약을 보여줬다. 리그 21경기 8골 3도움으로, 네네에 이어 팀내 득점 2위로 3골이 결승골이고 2골은 팀을 패배에서 구한 동점골이다.

1월 31일 OGC 니스전에서는 프랑스 리그 진출이후 처음으로 멀티 골을 달성했다. 경기 종료 직전 골을 넣을 기회를 잡았으나 팀 동료 무사 마주의 리그 첫골을 돕기 위해 양보했다. 하지만 리그 후반에 허벅지 부상을 당했고 그로 인해 마지막 경기에는 출전하지 않고 한국으로 조기 귀국했다. 어쨌든 부상만 빼면 알찬 한 시즌을 보낸 듯 하다.

2010년 월드컵 후 프리미어 리그 팀으로의 이적설이 많이 나돌았지만 거의 다 뜬소문이었거니와 군대 문제에도 발목을 잡혔고, 결국 AS 모나코에 계속 남아 있게 됐다.

2009-10 시즌: 33경기 9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리그 1 27 26 1 8 3
쿠프 드 프랑스 5 5 0 1 0
쿠프 드 라 리그 1 0 1 0 0
합계 33 32 2 9 3

4.3. 2010-11 시즌

2010-11 시즌 들어서는 부상의 여파인지 영 활약이 미미하다. 주전 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는 듯한 느낌. 지속적으로 이적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후유증과 월드컵에 출전하며 프리 시즌에 충분한 준비를 하지 못한 점, 그리고 저번 시즌 같이 뛰던 동료들이 모두 이적하며 동료들과 손발이 맞지 않는 점 등을 부진의 원인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주포지션인 최전방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으로 자주 기용되었다.

침체가 계속되나 했지만 2010년 11월 3일 FC 지롱댕 드 보르도전에서 크로스바에 맞고 튕겨나온 음보카니의 슛을 침착하게 골대로 다시 차넣으면서 장장 51일만에 시즌 2호골을 기록했고 이어서 11월 8일 낭시전에서는 후반에 두 골을 몰아치며 완벽히 살아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시안 게임 종료후 복귀 이틀만에 출전한 니스전에서도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다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시즌 5호골을 기록했다.

12월 23일. 팀의 6연속 무승행진을 끊는 결승골을 기록하며 팀에 오랜간만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시즌 6호골이며 경질설이 나돌던 라콩브 모나코 감독의 수명을 연장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4주짜리 부상을 당해 아시안컵 출전이 좌절당했는데 그 연유가 황당하게도 단단한 겨울 잔디 위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는 기도 세레모니 도중 동료들에게 깔려서 무릎이 눌린 탓이라고 한다.

부상에서 복귀한 2월 13일. 로리앙과의 경기에 측면 공격수로 출전하여 승부에 쐐기를 박는 페널티 킥을 성공시키며 시즌 7호골을 기록했고 이어 27일 캉과의 경기에서 시즌 두번째 멀티골을 터뜨리며 지난 시즌 부상으로 실패했던 두 자리수 득점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29라운드, 아를르 아비뇽전과 경기에서 10호골을 기록하면서 차범근(17골, 분데스리가), 설기현(12골, 벨기에 주필러리그)에 이어 유럽 진출 한국선수 3번째로 10호 골을 기록했다. 그리고 10년 넘도록 아시아 국적 선수로 리그 1 최다 골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10]

파일:박주영 아우바메양.jpg

파일:박주영 아우바메양2.jpg
오바메양이 소속팀 동료였으며 당시 박주영의 백업 자원이었다.[11]

4월 10일 30라운드, LOSC 릴경기에서 2회 연속골을 기록하며 11호 골을 기록했다. 아비뇽이 리그 20위 꼴지(30라운드까지 겨우 1승 거두었다.)로 강등이 확실시된 약팀인 거와 달리 리그 1위를 달리는 LOSC 릴와 경기였기에 그 성과는 더 뚜렷했다. 덕분에 리그 16위로 오른 AS 모나코는 일단 강등권을 모면했다.

하지만 이후 모나코는 부진에 빠졌고 박주영도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하며 다시 강등권으로 추락했다. 결국 2010-11 시즌 리그앙의 강등권에서 헤매다 강등당했다.

2010-11 시즌: 35경기 12골 0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리그 1 33 32 1 12 0
쿠프 드 라 리그 2 2 0 0 0
합계 35 34 1 12 0

4.4. 이적 사가

모나코가 강등당하면서 이적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는데, 에이젼트가 AC 밀란 부회장을 만났다는 기사도 뜨는등 옆나라의 루머의 제왕 혼다를 넘어서는 기세로 수많은 이적설을 뿌렸다.[12] 하지만 이적시장 말까지 확실한 이적 뉴스는 뜨지 않았고, 결국 이적시장 마감을 1주일 가량 앞두고 전시즌 프랑스리그 디펜딩 챔피언 LOSC 릴과 메디컬 테스트를 마치며 계약을 앞두었다. 그런데 릴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날에 런던으로 날아갔다.[13] 르 퀴프의 보도에 따르면 릴 회장이 갔을 때 호텔방이 비어있었고, 릴과 계약을 포기하고 아스날과 계약하기 위해 떠났다고 한다. 덕분에 각종 축구 커뮤니티는 혼돈의 카오스에 빠졌다.

박주영의 이적으로 아스날에선 공격수 니클라스 벤트너 선더랜드 AFC로 이적설이 나돌고 있는데, 그런데 정말로 이적해버렸다. 1년 임대다. 하지만 선덜랜드 부동의 주전인 아사모아 기안이 뜬금없이 중동으로 임대가서 오히려 지동원에 유리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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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논란을 뒤로 한 채, 2011년 8월 30일 한국시간 23시 경에 마침내 아스날 구단 홈페이지에 박주영의 공식 영입발표가 게시됐다. [14]


아스날 입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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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프리미어리거 9호. 그리고 등번호는 9번.

5. 아스날 FC

2011-2014
7경기 1골

5.1. 2011-12 시즌

2011년 9월 10일 스완지 시티 AFC전에서 박주영이 교체로 등록돼있어서 교체 멤버로 데뷔전을 치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아스날 마지막 교체 카드로 로빈 반 페르시에서 마루앙 샤막으로 교체했다. 박주영의 데뷔 무대는 날아갔다.[15][16]

결국 2011년 9월 21일 칼링컵 32강, 4부리그 팀인 슈르즈베리타운과의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 72분 가량을 뛰었으나 이렇다할 활약을 내지 못하고 미야이치 료와 교체되었다. 본인도 경기결과에 만족을 못했던지 인터뷰를 거절하고 경기장을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데뷔전 이후 한달여가 지난 시점에서도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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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칼링컵 4라운드 볼턴 원더러스전에 풀타임 출전하며 2-1 승리를 견인하는 결승골을 넣었다! 멋지게 휘어들어가는 골로 그간의 마음 고생을 한 방에 날렸다. 벵거 감독 역시 골이 들어가자 박수를 치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프리미어리그 데뷔 준비가 끝났다고 발언했다. BBC에서는 벵거가 노다지를 캤다고 표현하는 등 현지 분위기도 좋은 편이다.

10월 29일 첼시 FC와의 경기에서는 벤치 명단에 들었지만, 반 페르시의 해트트릭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했고 아스날은 5:3으로 승리하였다. 마지막까지 몸을 풀었고 출전을 앞둘 뻔 했으나 반 페르시의 역전골이 나오게 되자 베르마엘렌이 마지막 교체카드로 출전하게 되었다. 박주영으로써는 아쉽겠지만 다음 경기 고대하던 챔피언스 리그의 출전을 기대할 수 있다.

11월 2일 UEFA 챔피언스 리그 F조 4차전 마르세유전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교체로 나올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선발로 출전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최전방 공격수로서 단 한번도 슈팅을 기록하지 못했고 62분을 뛴 후 반 페르시와 교체되었다. 사실상 여기서 박주영의 아스날 시절은 끝이 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칼링컵을 통해 얻어낸 꿈꾸던 챔피언스 리그 선발이었지만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며 벵거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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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전 출전을 위해 락커룸으로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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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의 UEFA 챔피언스 리그 데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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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까지 경기출전을 못하며 벵거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했다. 경기에 연속으로 결장하면서 앞으로의 프리미어리그 인생을 결정지을 기로에 서있다. 국내 언론과 팬들의 설레발과 달리 박주영을 영입한 아스날의 당초 의도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출전하는 공격수 샤막과 제르비뉴의 공백을 메우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스날에 티에리 앙리가 임대영입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가, 앙리의 부상으로 희망이 보였으나 같이 영입되었던 18살짜리 신예 체임벌린에 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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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6일,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에서 반 페르시가 4분 만에 골을 넣은 상황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벤치에 앉아있다. 정확히는 골을 넣는 장면을 보고 나서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적을 원치 않고 있다.

항상 아스날 경기전에 이번에는 어떤 이유로 출전한다는 기사가 올라오며 박주영 팬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1월 19일 현재 기준으로 앙리가 부상당해 맨유전에 출전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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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 [17][18] 감격의 첫 EPL 출전을 했다. 출전 시간은 이미 후반 80분이 넘었기에 별 활약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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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과 박주영의 코리안더비가 성사되었다. 경기 종료 후 서로 유니폼 교환했다.

1월30일(월)경기, 2월2일(목), 2월4일(토)의 경기에도 결국 출전하지 못했다. 특히 2월 4일에는 반 페르시의 혹사논란이 있었고 경기 내용도 아스날이 압도적으로 쳐바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출전하지 못했다. 다만, 비단 박주영 뿐만 아니라 벤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침울하다. 현재 아스날의 목표가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수성과 로빈 반 페르시 득점왕 만들기라 어지간하면 반 페르시는 계속해서 풀타임을 뛸 가능성이 높다.

3월7일 챔피언스리그 AC 밀란전에 후반 38분 교체출전해 뛰었다. 마지막 추가시간에 아스날이 결정적 역습 찬스를 맞았으나 알렉스 송이 비어있는 박주영을 한번 보더니 외면하고 마크당하고 있는 반 페르시에게 패스를 하다 무산되었다. 그러나 어차피 그 상황에서 밀란 수비진이 박주영이 가는 쪽으로 백업을 하고 있었고 송 빌롱이 패스를 한다면 오른쪽의 빈 공간을 향해 달려가던 토마스 로시츠키에게 패스해야 했었다. 어차피 박주영에게 패스 해줘봐야 역습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백패스를 하거나 뺐겼을거란 이야기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영국매체 토크포스트에서 '영입 Worst11'에 선정됐고, 영국 스포츠블로그 풋볼 팬캐스트에 게재된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선수 20인'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리저브팀에서는 몇 경기를 치루긴 했다. 첫 경기 선덜랜드 리저브팀과의 경기에선 1대1 찬스를 놓치는 등 경기력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후 리저브팀에서 4경기 연속골을 넣긴 했다. 리저브팀에서는 같이 출장한 샤막보다는 골을 더 넣긴 했는데 그래도 외면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19] 덕분에 박주영의 영입은 이나모토처럼 애초에 벵거 감독이 원한 것이 아닌 구단측의 아시아 마케팅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마저 나올 지경이다.[20]

결국 리그경기 패스성공률이 100%다.[21]

시즌 후 구단 공식 홈페이지의 2011-12시즌 평가에서는 "박주영은 첫 시즌 제한된 기회만을 얻었다. 볼턴 상대로 멋진 골을 넣었으나 로빈 반 페르시의 뛰어난 활약에 밀려 리그 출전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리저브 경기에서 많은 골을 넣으며 자신의 재능을 증명했다. 다음 시즌에는 더 큰 임팩트를 노리고 있을 것" 이라고 언급했다.

2011-12 시즌: 6경기 1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1 0 1 0 0
UEFA 챔피언스 리그 2 1 1 0 0
칼링컵 3 3 0 1 0
합계 6 4 2 1 0

5.2. 2012-13 시즌

이러한 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루카스 포돌스키 아스날 이적설이 탄력을 받으면서 안 그래도 좁던 입지가 더 좁아졌다. 이젠 벤치에 앉을 자리도 없어질 기세라는 식의 기사까지 나오는 중. #

5월 1일 포돌스키가 정식으로 아스널로 이적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리고 6월 26일 프랑스 대표 공격수 올리비에 지루를 영입했다는 아스널 공식 발표가 나왔다.

이로서 아스널의 공격진은 포화상태를 넘겼다. 반 페르시, 포돌스키, 월콧, 지루, 제르비뉴, 샤막, 아르샤빈(임대), 벤트너(임대), 벨라(임대) 그리고 박주영.

결국 8월 11일, 벵거 감독이 다른 팀을 알아보라고 대놓고 말했다. 근데 이 날은 박주영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1골 1어시로 팀을 승리로 이끌며 맹활약한 날이다.

다른 팀들은 소속 선수들의 올림픽 활약상을 소개하기 바쁘지만, 아스널은 박주영이 골을 넣었음에도 일언반구도 하지 않으며 완전히 박주영에 대한 기대를 접었음을 나타내었다. 사실 아스널 자체가 소속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부정적으로 보는 탓도 있다. 그런데 전 시즌 박주영 투명화의 주범인 아스날의 에이스 로빈 반 페르시가 맨유로 이적해서 계속 남는다면 기회가 좀 더 늘어날지도 모르게 되었다.

12/13시즌 등번호 9번을 포돌스키에게 빼앗기며 30번을 갖게 되었다. 아스날과 결별도 그리 멀지는 않았다. 이적시장 막바지 풀럼 FC 셀타비고 이적설이 올라왔고, 이적시간 마감일인 8월 31일 결국 100만 유로 (약 14억원) 으로 레알 클루브 셀타 데 비고로 임대되었다. 이 후 완전이적 옵션이 붙었다고 한다.
A South Korea international, Ju has played in the 2006 and 2010 World Cups. He also represented his country this summer in the 2012 London Olympics, where his two goals in six games helped the team to a bronze medal. Everyone at Arsenal wishes Ju well for his time at the Balaidos Municipal Stadium

여담으로 갈때까지 주라고 불렸다. 아스날에서 Chu Young이라는 이름 대신 콜네임으로 밀어주려고 했던 것 같지만 워낙 인지도가 낮아서 국내 팬들은 '그냥 잘못부르나보다' '골 넣을 때마다 주님 찾더니 '주'님 됐구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5.3. RC 셀타 데 비고 (임대)

26경기 4골 1도움
팀의 에이스인 이아고 아스파스와 상성이 좋을 법한 공격수를 물색하던 파코 에레라 감독의 눈에 들어 2012-13 시즌부터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소속의 셀타비고로 임대를 오게 됐다. 기본적으로 아스파스의 원톱을 사용하는 팀의 성향상 플랜 B로서의 입지. 덕분에 꾸준한 출장기회는 잡고 있지 못한 가운데 공격력이 필요한 시점에 조커로 기용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 경우도 있다. 아스파스와 얼마나 순조롭게 공존할 수 있는지가 활약의 열쇠가 될 듯하다. 이적 인터뷰에서 15골 이상 넣겠다고 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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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는 18번. 2012년 9월 16일 발렌시아 CF와의 원정 경기에 교체로 나와 약 20분 가량을 뛰었다.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열심히 뛰었지만 후반 들어 급격히 떨어진 팀 페이스 때문에 별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그래도 아스날 시절보단 폼이 많이 올라왔다는 게 중론이다.

그리고 9월 23일 헤타페 CF와의 홈 경기에서 교체출장하여 드디어 임대이적 후 첫 골을 터뜨렸다!

페널티 박스 왼쪽 외곽에서 크론 델리가 살짝 띄워 올려준 공을 쇄도하며 그대로 밀어넣었다. 결국 이 경기의 결승골이 되었으며 팀은 2-1 승리. 폼이 점점 올라오고 있다. [22] 그러나 그 이후 출전기회를 제대로 잡지 못했고 셀타 비고의 감독은 아직 우리가 바라는 수준을 맞춰 주지 못하고 있다며 좋은 선수이니 열심히 할 것이고 도와주겠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거기다가 팀과의 호흡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실력문제라고 디스했다. 그러나 11월 19일 마요르카와의 경기에서 선발출전해 시즌 2호골을 만들었다. 감독으로부터 디스를 당하고 주전자리도 밀려있던 상황에서 나온 골인지라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골이 될듯하다.

11월 30일 국왕컵 32강 2차전에서 후반 10분, 헤딩으로 3호골을 작렬시켰다, 1차전에서 2-0으로 패배했지만 2차전에서 셀타비고는 3골을 넣으며 3-0으로 승리하여 최종스코어 3-2로 16강 진출 했는대 상대방이 레알 마드리드다. 그런데 12월 12일(한국시각으로 12월 13일 오전) 셀타비고가 레알 마드리드를 16강 1차전에서 2:1로 이겨버리고 말았다. 이 와중에 헤트트릭 기회를 날렸다는 개드립 기사가 올라와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그리고 박주영은 팀이 강등이냐 1부잔류냐를 결정짓는 마지막 리그경기때 팀을 나왔다. 관련 기사팀내 규정에의하면 뛰지않는 선수라도 경기장에서 지켜봐야했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나온 것. 결국 이것때문에 벌금(보너스 삭감)을 물고 라리가의 마무리를 안좋게 매듭지었다. 박주영의 이적소식을 매번 알려준 박주영의 지인의 말으로는 군사훈련 문제로 일찍 나왔다고 한다.

셀타 시절을 종합하면 실패를 부정할수 없으나 운 또한 많이 없던 시절이다. 이적금이나 연봉을 생각하면 셀타도 에이스급으로 데려올 생각이었고 박주영도 그리 생각했을 터이나 당시 셀타의 에이스 이아고 아스파스와 동선이 겹치고 셀타가 중후반기로 갈수록 미드필더가 초토화되어서 팀 적응이 힘들었던 점도 있다. 이러하니 아스파스의 짝은 거의 베르메호로 굳어지는 형편이었다. 셀타도 이러한 점에서 패서형 미드필더를 겨울에 사려고 했으나 전임 감독이 경질되고 후임감독은 아스파스에게 전권 몰아주기 박주영은 조커형으로 빼면서 안그래도 떨어진 폼을 회복하기엔 시간도없고 팀스타일도 안맞는 계륵이 되어버렸다. 26경기 출전이라지만 대부분이 교체라는 점에서 후반 30~35분 등에서 교체하니 실제로는 출전시간은 10-12경기 정도다. 하지만 강등권 팀에서 자리를 못잡고 컵대회에서는 언제나 선발이었다는 점 아스파스가 결장일때 확실하게 찬스를 살리지 못한 점 등, 박주영 자신의 실패라고 봐야한다.

2012-13 시즌: 26경기 4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22 8 13 3 1
코파 델 레이 4 4 0 1 0
합계 26 12 14 4 1

5.4. 2013-14 시즌

국내 기사에서는 2013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 SV가 박주영의 영입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독일쪽에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고 오히려 함부르크측이 박주영 영입에 관심이 없다고 부인을 했다.

프랑스 리그앙 생테티엔, 로리앙 같은 팀들이 박주영을 원했고, 아스날측에선 프리로 보내주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박주영측이 연봉을 깎지 않아 이적이 무산되었다는 프랑스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박주영의 주급은 50,000 파운드, 연봉으로는 약 300만 유로 수준인데 이 정도 금액은 잉글랜드에서도 어지간한 중하위팀에서는 팀 수위급 연봉이며 프랑스에서는 2~3팀, 독일에서 3~4팀, 스페인에서는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AT 마드리드를 제외하고는 줄 수 없는 금액이다. 실력에 비해서 지나치게 고액 연봉을 받아서 이적하기 힘들었다. 참고로 산티 카솔라 후안 마타가 스페인에서 뛸때도 주급으로 40,000 파운드를 못 받았다.

결국 이적은 하지 못했고 2013-2014시즌 아스날의 프리미어리그 25인 로스터에는 들었으나 1군에서 훈련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대리인은 1군 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다고 부정했지만 아스날 1군 단체 촬영을 할 때 잠시 나타난 것을 빼면 박주영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는데 웨스트브롬을 상대로 캐피털 원 컵 3라운드를 대비한 훈련에 참여했고 놀랍게도 출전명단에 포함됐다!

출전은 하지 못했지만 박주영이 훈련에 참여하고 벤치에 앉았다는 것만으로도 국내외 축구팬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한 해외팬은 '박주영이 아직도 살아있었냐?' 라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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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나폴리전을 대비한 훈련에서도 모습을 비추고 벵거 감독과 악수를 했다. 물론 박주영은 챔피언스리그 출전 명단에는 없어서 당연히 출전은 불가능하다. 훈련에서는 의외로 팀 동료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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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 유니폼을 입은 박주영의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이 10월 4일이 돼서야 13-14 유니폼을 입은 사진으로 뒤늦게 바꿨다. [23] 니콜라스 벤트너가 프로필 사진 재촬영을 할 때 같이 한걸로 보인다.

2013년 10월 7일(한국시간)부터 잉글리시 챔피언십 리그에 있는 위건 애슬레틱 FC가 긴급임대를 통해 박주영을 3개월간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는데, 위건에서의 입지[24]와 박주영의 높은 주급[25]을 감당하기 힘든 위건의 사정으로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다. 위건의 오언 코일 감독은 여전히 ' 그가 와주길 바란다'며 박주영이 스스로 주급을 깎아서라도 와달라고 하는데 박주영은 그럴 생각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도 나왔다. 아스날에서 사실상 전력 외로 분류된 상태에서 다른 선수라면 주급을 깎아서라도 뛸 수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비교하며 사람들은 박주영을 '아스널에서 적당히 훈련뛰면서 축구 구경하고 주급 받아먹는 선수'라며 조롱하고 있다. 여기에 오언 코일에게 박주영을 추천한게 이청용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후배가 차려준 밥상 걷어찬놈'이란 비난까지 받고 있다.

이 와중에 뜬금없이 프랑스 렌을 비롯해, 파리 생제르맹, , 리버풀, 토트넘, 볼턴으로부터 영입제의를 받았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사건의 전모는, 2011년 기사를 OSEN이라는 언론사에서 2년 후에 재활용했고, 네티즌들이 진상을 확인하고 비난을 퍼붓자 하루만에 내렸는데, 그 와중에 스포츠조선이 이걸 보고 받아쓰기한 것. 여담으로 파리 생제르맹의 2013년 공격진은 즐라탄, 카바니, 라베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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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3년 10월 30일(한국시간) 캐피털원컵(리그컵) 첼시전에 후반36분에 교체투입되었다. 시즌 첫 투입으로인해 각종 드립이 난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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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에는 명단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있지만 간간이 올라오는 훈련 사진에서 매우 밝은 모습을 보여주며 국내 팬들의 뒷목을 잡게 하고 있다. 벵거 감독은 꾸준히 박주영 뛸 곳 찾아라라고 말하고 있지만 박주영은 아스날에서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런 뱅거 감독의 우려와는 달리 북런던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

박주영이 이렇게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아스널에 남아 있는 것은 축구선수로서의 동기 부여가 전혀 되지 않는 탓일 수도 있다. 본인에게 월드컵 출전의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월드컵에 두 번 출전했고,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여 병역 혜택도 받았으며, 박주영 본인의 성격이 매스컴 타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하므로 굳이 국가대표팀으로 돌아갈 이유도 없어 보인다는 시각도 있다. 거기에 45,000파운드의 주급[26]은 엄청난 금액이라 이를 포기할 이유도 없다. 때문에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명문 클럽 아스날의 경기를 코앞에서 공짜로 관람하고, 7천만원이 넘는 돈을 매주 받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축구팬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27] 아스날 입장에서도 저 중하위권 클럽에서 에이스놀이 할 선수급에 해당하는 비싼 주급때문에 쉽게 임대가 되지 않았다. 임대시 주급 지불에 대한 의견차 때문이다. 구단이 일방적 방출을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은 아니나, 이럴 경우 계약기간까지 보전된 주급을 일시에 지급해야 하므로 구단에선 섣불리 그렇게 하기도 어렵다.

13-14 시즌 겨울 이적 시장을 지켜봐야겠지만, 지금 상태로 계속 머무른다면 다음 월드컵 출전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1월 중순까지는 결국 이적 실패로 남는가 했지만 1월 후반부터 급히 팀을 찾는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박주영에게 관심을 보인 다수의 구단들이 "태도가 다소 좋지 않다"는 그에 대한 평가를 접하고 영입을 주저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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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경기 연속 후보 명단에 들었으나 출전하지 못하였다.

2013-14 시즌(아스날): 1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캐피탈 원 컵 1 0 1 0 0
합계 1 0 1 0 0

5.5. 왓포드 FC (임대)

통산 2경기
평판과 이미지가 예상보다 좋지 않았던 데다, 심지어 그가 브라질 월드컵 직전까지 반 시즌만 뛸 팀을 찾겠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이적은 어려웠다고 한다. 관련기사 그러나 박주영은 겨울 이적시장 막판 2부 리그 왓포드 FC로 시즌 종료까지 임대 계약을 하는데 성공한다. 2014년 2월 기준 왓포드는 16위에 그쳐 있는 상황이라 리그 잔류가 더 우위(승격권보다 강등권 승점차가 좁으니)이기에 프리미어 리그 승격은 어렵다.

박주영으로선 벤치 멤버로 하는 일 없이 있는 것보단 여기라도 가는 게 급선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을 가기 위해 홍명보 감독이 제시한 꾸준한 경기 감각을 살리기 위해서, 대표팀 승선을 위한 선택이라고 봐야 할 듯하다. 같은 리그에 있는 이청용과의 맞대결도 기대가 되는 것 중 하나.

2부 리그, 그것도 하위권에 있는 팀을 어떻게 골랐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몇몇 축구 전문가들이 그 이유가 위치에 있다고 보았다. 아직 신혼 생활인 아내 때문에 다른 곳으로의 이사는 어려운 일이고 그래서 런던 인근에 있는 팀을 찾은 듯 한데, 그 중 왓포드가 최적의 조건이었던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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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이 왓포드, 빨간색이 아스날.[28]

위의 그림대로 왓포드는 아스날의 연습구장 거의 바로 옆에 붙어있다. 아예 2군들은 아스날 2군과 연습장을 공유해서 쓴다고 한다. 벵거 감독의 눈에 어쩌다 한 번이라도 띄기 위해선 최적의 위치라는 소리다. 영국 축구 평론가 존 듀어든은 왓포드 동네 자체가 시골과 다름없는 재미없는 마을이기 때문에 축구에 집중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우선은 앞에서 서술했듯 오랫동안 경기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박주영 본인에겐 경기 감각을 되살리는 것이 급선무인듯 하다. 그리고 박주영이 왓포드로 임대되자마자 임대해온 킴 칼스트롬이 훈련 도중 부상으로 2~3개월이나 결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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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3일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과의 리그 경기에서 91분 포레스티에리와 교체 투입되며 드디어 95일만에 경기에 나섰다. 실제 경기를 뛴 시간은 4분 정도. 이 와중에 박주영이 경고를 받은 것을 들어 프로정신과 집념의 증거라는 기사가 떠서 축팬들은 그럼 퇴장당하면 인간승리냐며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 정작 실제론 경고를 받은 적도 없다는 게 함정이다. 사실 구단측 착오로 트위터상 중계에선 박주영이 경고를 받았다고 떴기 때문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2014년 2월 23일 32라운드 볼턴과의 리그경기에 실로 오랜만에 선발출장했다. 그리고 61분에 교체아웃될 때까지 골/도움/슈팅/유효슈팅/오프사이드/얻어낸 파울 모두 0개를 기록하며 팀은 0:2 패배를 당했다.

이후 국대에서 골을 넣는 등의 활약으로 왓포드에서도 나아진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가 됐었으나 돌아가자마자 부상을 당하며, 왜 경기 뛴지 오래된 공격수를 기용하는 게 위험한지를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29]

그리고 4월이 돼서야 부상 내용이 밝혀졌는데 바로 봉와직염이다.

한국에 돌아와서 파주 NFC에서 훈련하는데 기사 이른바 황제훈련드립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아스날은 주전 스트라이커의 성추문 파문이 일어나고 심혈을 들여 영입한 미드필더가 햄스트링 부상으로 이탈하는 등의 악재가 연이어 터졌고, 리버풀에게 1:5로 털리고 벵거감독 1,000 번째 기념경기에서 천적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에게 0:6으로 털리는 참사를 맞이하였다. 결국 전반기 1위에서 4위로 미끄러진 채 시즌을 마감했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토템이 없어서 그렇다’는 농담이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에 돌기도 했다.

2013-14 시즌(왓포드): 2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EFL 챔피언십 2 1 1 0 0
합계 2 1 1 0 0

5.5.1. 아스날에서 실패한 이유

2010년대 초중반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이였고 신인으로 데뷔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던 서울 시절부터 유럽으로 진출해 차범근 이후로 리그서 10골을 기록하면서 유럽에서도 먹히는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증명됐기에 갑작스러운 아스날 이적과 별개로 박주영이 아스날에서 그야말로 폭삭 망할 것이라고는 대부분의 한국 축구 팬들이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적한 과정과 당시 상황만 놓고 본다면 박주영은 오히려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요소만 가득한 상태였다. 오히려 선수 본인이 커리어의 선택의 기로에 있어서 완전히 잘못된 선택을 해서 커리어가 꼬여버린 케이스. 이는 훗날 같은 리그앙 및 프리미어리그로 똑같이 이적한 전철을 밟은 국가대표 주전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 황의조도 범한 실수이다. 박주영의 이적과 실패로 인해 한동안 아스날은 혐한 구단, 친일 구단[30]과 같은 말도 안되는 프레임에 씌워져 국내 축구 팬들에게 신나게 까였다.[31]

첫번째는 박주영이 아예 PL의 빠른 템포와 거친 피지컬에 적응하지 못했다. 리그앙에서도 살아남은 박주영이지만 프리미어리그는 리그앙보다도 더 거친데다가 파울에 굉장히 관대한 편이다. 그러다보니 박주영 입장에서는 파울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된 좋은 움직임들도 유효한 프리킥으로 이어지지 않다 보니 팀 입장에서는 크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박주영의 최대 장점인 좋은 헤딩 능력이나 연계 능력 역시 프리미어리그 수준이 절대 아니였다. 프리미어리그는 고사하고 리그컵에서 하부리그 팀들을 상대로도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인 박주영은 당시 기량으로 잘해봐야 2~3부리그 준주전 선수가 적합하다는게 주된 평이다. 게다가 당시 박주영이 이적해온 리그앙과 모나코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수준이 떨어지는 시대였다. 리그앙은 PSG에 카타르 자본이 들어오기 전인지라 리그 전체적인 수준이 낮았고 모나코는 몰락한 명가로 박주영이 에이스 놀이를 하던 팀이였다. 즉, 박주영은 모나코처럼 리그앙 하위권 팀에서 핵심 자원으로 활약할 수 있는게 본인의 최대 고점이였던 것이다. 벵거는 그래도 박주영이 모나코서 뛴 경험을 생각해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미 만나봤던 마르세유를 상대로 선발로 내세웠지만 당연하지만 박주영은 마르세유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펼친적이 없는 중하위권 선수였기에 활약을 할 수가 없었다. 박주영 이후에 아스날은 지루, 라카제트와 같은 리그앙 득점왕 출신들을 영입했는데 이 선수들도 리그에서 한시즌에 14골 전후로 넣는 것이 프리미어리그 한시즌 커리어하이였다. 리그앙에서 10골 남짓 넣던 박주영이 PL로 넘어와 1골을 넣기도 힘들어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였다. 벵거 역시 박주영에게 기회를 못 준것과 별개로 박주영이 훈련에서 모습이 부족했다고 평했기에 자신감도 결여됐지만 애초에 아스날급이 아닌 선수를 아스날이 실수로 돈을 주고 산 것이 문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두번째로 아스날은 영입한 시점에서부터 박주영을 닥주전으로 기용할 생각이 없었다. 박주영이 영입될 당시에 이미 아스날에 반페르시, 샤막,벤트너와 같이 스트라이커를 소화할 수 있는 자원들이 과포화된 상태였다. 아스날은 11/12 시즌을 시작하고 맨유에게 8:2로 가르마 대참사가 나버리면서 이적시장 막판에 메르테자커, 아르테타와 같은 자원들을 패닉바이를 했고 그 패닉바이를 했던 선수들중 박주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하지만 패닉바이는 애초에 계획에 없던 선수를 영입하는건지라 선영입 후 계획에 맞춰 기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선수 본인이 활약을 제때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반페르시가 이전 시즌까지 기량을 좋았지만 부상이 워낙 많아 반페르시 부상시에 박주영은 잘해봐야 2~3옵션 스트라이커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기존 계획이였다. 하지만 하필 이 시즌에 반 페르시가 풀 페르시 모드로 각성해버리는 바람에 박주영은 커녕 다른 스트라이커 자원들에게조차 기회가 가질 않았다.
게다가 겨울에 앙리를 단기 임대까지 하면서 상징성이나 기량도 당시 앙리에게 밀리는[32] 처참한 상황이였다. 심지어 당시 리저브 리그, 즉 2군 리그에서도 경기력이 시원찮았다. 한마디로 본인이랑 10살 넘게 차이나는 유소년들이랑 뛰어도 기량이 압도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번째로, 박주영은 이미 당시에 폼 하락이 예견되어 있었다. 박주영은 유럽으로 이적한 후에 아스날 이적 전후로 보자면 2010 피파 월드컵 2010 아시안게임 2012 올림픽까지 그야말로 나갈 수 있는 국제대회는 다 나간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국가대표에서 박주영의 위상은 대체 불가인지라[33] 월드컵 예선 경기들도 꼬박꼬박 차출되는 고난의 일정의 연속이였다. 당시 언론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아 그렇지 박주영도 손흥민 못지 않게 엄청난 혹사를 당한 축에 속한다. [34]당연하지만 프리시즌이나 휴식기에 제대로 된 휴식 없이 계속해서 무리한 일정을 감행하다 보니 폼이 회복이 될리가 없다.

5.6. 계약 해지

5월 23일, 프리미어 리그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표한 각 구단별 방출 선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 병역특례로 2015년까지 계약을 연기할 수 있었지만 그 옵션을 포기하고 계약을 만료시켰다.

이것으로 박주영의 축구 커리어는 최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아직 단정할 순 없지만 이미 여러 번의 뒷통수와 셀타 비고, 왓포드에서 죽친 것으로 인해 유럽 쪽에선 평가가 매우 나쁜 터라 박주영을 원하는 팀이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때문에 이번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활약이 박주영에게 중요했는데, 역시나 러시아전에서의 무활약으로 클래스를 입증했고 이제는 홍명보마저 박주영을 중용할지 의심이 되는 상황이다. 알제리전에서도 중용되었지만, 후반 55분 만에 교체되어서 월드컵 2경기 연속 무 슈팅 기록을 이어갔다. 벨기에전이 남아있지만 러시아, 알제리전에서 보여준 모습으로는 턱도 없다. 결국 벨기에전은 출전하지 못하고 벤치에서 팀의 패배를 지켜보았다. 월드컵이 끝난 후 과연 박주영은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여부는 빠와 까들의 공통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FC 서울 시절 함께했던 세뇰 귀네슈 감독이 있는 터키 쉬페르리그 부르사스포르에서 영입을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 언플인지 실제 움직임이 있는지는 미지수. 터키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영입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귀네슈 감독의 한국과 FC 서울에 대한 애정을 생각하면 실제로 박주영을 영입할 의사는 있는 것 같다. 기성용도 한때 임대로 자기 팀에 데려오려고 했던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또한 선덜랜드가 영입을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도 지역지에서 나왔다.

하지만 죄다 소문으로 끝나고 8월 들어서 선덜랜드나 부르사스포르 영입설은 싹 사라진 상태, 아니 기레기들의 설레발 및 박주영 측 카더라 이야기였을 뿐, 그런 거 없었다고 봐야할 듯. 존 듀어든이 호주 A리그에서 관심이 있다고 한다. 아주 까임을 받고 말았다. 여하튼 8월 안으로 소속팀이 없다면 6달 동안 백수 신세가 된다. 하지만 고작해야 아랍 몇몇 리그에서 관심을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을 뿐이지만 그마저도 본인이 유럽행을 고집하여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2014년 8월 귀신 같이 AFC C급 지도자 과정을 이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C급 라이선스는 초등학교 이하 유소년들을 지도할 수 있는 자격으로, 만약 팀을 못 구할시 축구 교실 등에서 지도자로 활동하며 병역특례 자격을 유지하려는 노림수로 보인다.

병무청에서는 박주영의 AFC C급 라이선스 취득에 대해 '지금까지 예술·체육요원이 34개월간 선수나 지도자 활동을 못해 복무를 위반한 적이 없었다.'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어쨌든 대한축구협회에 의하면 교육 내내 매우 성실한 자세로 임했다고 한다.

6. 알 샤바브 FC

7경기 1골

6.1. 2014-15 시즌 초

알 샤바브 FC로 이적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입국하고 있다.

2014년 10월 1일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소속의 알 샤바브 FC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간으로 알려졌다.

참고로 알 샤뱌브 FC는 2014년 사우디 챔피언스컵에서 우승했기 때문에 2015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박주영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0월 18일 알 힐랄 FC와의 경기에 후반 12분 교체 출전하면서 데뷔전을 가졌다. 그리고 0:0으로 끝날 것 같았던 후반 추가시간에 결승골 득점에 성공, 데뷔골을 기록했다.

골의 퀄리티는 상당한 편인데, 상대 선수가 흘린 볼을 곧바로 앞에있는 팀 동료에게 패스 후 본인은 수비수 여러 명 뒤로 침투해 들어갔고 패스를 받은 후 그대로 골키퍼와 골대 사이의 상당히 좁은 틈으로 밀어 넣었다. 실제로 골키퍼와 골대의 거리가 굉장히 좁았던 걸 생각하면 컨디션은 나쁘지 않은 듯하다.

아마도 이슬람을 믿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특성상 기도 세리머니는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데뷔골 이후 하자지가 퇴장을 당하면서 팀 내 패스를 해주는 선수가 사라졌고, 제로톱 시스템이 가동되면서 박주영이 미드필더로 뛰게 되었다.

그런데 1월 이적시장이 며칠 안 남은 이 시점에 터키 쉬페르리그 10위 팀인 가지안텝스포르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 그러나 카더라 이야기일뿐, 아직 성사된 건 없다.

2017년 7월 박주영이 아직도 알 샤밥으로부터 150만 불 정도의 주급을 받지 못해 소송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그런 가운데 2015년 2월 5일 소속팀과 계약을 해지하며 자유계약 대상자가 되었다. # 계약 해지 이유는 박주영의 현지 적응 실패 때문이라고 한다.

실상은 터키 가지안텝스포르와 계약을 하려고 논의를 하였는데 # 알 샤밥이 플레이 메이커와 계약이 완료돼야 떠날 수 있다고 하여 # 시간이 정체된 동안에 가지안텝스포르가 다른 선수를 영입하여 가지안텝스포르와 계약을 실패했다.

2014-15 시즌: 7경기 1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7 5 2 1 0
합계 7 5 2 1 0

7. FC 서울 2기

2015-2021
218경기 55골 21도움
2005-2008, 2015-2021
314경기 90골 31도움
결국 백의종군 수준의 연봉[35]으로 다시 FC 서울 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몇 년 동안 계속된 부진으로 경기력이 안 좋아졌는데도 과연 FC 서울에 와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향간에는 그의 연봉이 팀 내 최고 연봉 수준이라는 이유로 몰리나를 뛰어넘는 수준의 13~15억이라고 알려지고 있으나, 서울 측의 말은 이는 근거없는 소문이며, 박주영의 연봉은 백의종군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팀 내 한국인 선수 중에서는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을 것으로 추측된다.[36]

만약 13~15억이 사실이라면 이동국의 11억보다 2억이나 더 많은 수준이니 연봉 공개에서 한국인 부문 1위를 차지할 것이니 그때 기다려보면 알 수 있을듯. 구단의 공식 입장은 한 자릿수라고 한다. 2015 시즌이 끝나고 국내 선수 TOP 5가 공개되었는데, 5위(6.3억) 내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나 비록 반 시즌 모드라고는 해도 평타 이상은 해줬다는 점 등을 봐서는 잘 쳐줘도 시즌 초반 추정치의 절반 정도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알 샤밥과의 계약 해지에서 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알 샤밥이 4개월간의 주급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계약 불이행으로 FIFA에 소명했다. #

7.1. 2015 시즌

번호는 91로 배정받았다. '9+1=10'의미로 배정한 모양. 다만 FC 서울은 2015 시즌 기준으로 9번과 10번[37] 에스쿠데로 에벨톤의 번호이기 때문에 저 91번은 그냥 임시로 정한 것이고, 다음 시즌이 되면 등번호가 변경될 것 같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2015년 3월 14일 홈 개막전에 맞춰 입단식을 치렀다.

2015년 4월 4일 제주 유나이티드전에 복귀전을 치를 예정이다. #

후반전 시작과 함께 김현성과 교체되어 들어가며 치른 복귀전에서 팀은 에벨톤의 골로 첫 승을 거두었다.

4월 12일 인천 유나이티드전에 선발 출장하고 PK로 골을 넣었다! 2008년 4월 6일 광주 상무전에서 프리킥으로 넣은 골 이후로, 8년이 지난 2562일만에 다시 K리그에서 복귀골을 터뜨렸다. 다만 이 골을 빼면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지만 스트라이커가 아닌 공격형 미드필더로는 괜찮은 모습을 보이긴했다.

2015년 4월 18일 FC서울이 수원 블루윙즈를 상대로 치른 이른바 '슈퍼매치'에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며 축구 팬들의 빈축을 샀다. 이전에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FC 서울의 기대주였으나, 이번 경기에서는 이전보다도 떨어진 폼을 여실히 드러내며 세월의 공백을 보여주었다. 이전에는 슈퍼매치에서 멋진 결과를 내던 박주영이니 만큼 모두들 최용수 감독이 박주영 카드를 써먹으리라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박주영은 김현성과 교체되어 들어갔다.[38] 그만큼 박주영에게 어느 정도 기대가 있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박주영은 후반전 내내 슛 한 번 쏘지 못하고 공격 기회 조차 만들지 못한 채 뛰어다니기만 했다.

2015년 4월 26일, 무릎 부상을 입어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 이때까지만 해도 박주영의 평가가 바닥에 가까운데다 입단-첫골-부상-장기슬럼프의 길을 걷나 할 정도로 FC서울 서포터들도 큰기대를 하기 힘들었다.

드디어 골을 넣었다! 5월 16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교체로 들어가 후반 31분 상대 문전에서 기회를 잡아 슛을 날렸으나 그 볼이 수비를 맞고 다시 박주영에게 굴러왔고, 전남 골키퍼 김병지와 일대일 상황에서 침착하게 골을 넣었다.

5월 31일 울산 현대와의 홈경기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으며 정말 오랜만에 슛다운 슛[39]을 보여주었으나 공은 골대만 강타하고 양 팀은 또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래도 최용수 감독은 박주영의 경기력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6월 6일의 전북 현대와의 원정경기에서는 전반 44분아크 부근에서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연결한 왼발로 왼쪽으로 감아찬 슛이 그대로 전북의 골망을 흔들면서 팀은 2:1 승리를 기록했다. 이것으로 시즌 3호 골을 기록했다.[40]

12라운드 대전 시티즌 과의 경기에서 89분 윤주태의 극장골을 어시스트 하면서 FC 서울 복귀 후 첫 도움을 기록했다.

7월 1일의 제주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4분에 후왼쪽에서 올라온 프리킥으로 골문앞에서 혼전 상황이 펼쳐졌고 그 사이 박주영이 골문 안으로 밀어넣었다 이걸로 시즌 4호골이다.

어느 정도 폼이 올라오면서 공헌도도 높아 지고 있고, 팀 순위도 4위로 올라섰다.

7월 8일 성남과의 원정에서 후반 교체 출전 해서 수비수 맞고 흐른 공을 로빙슛으로 넣어 시즌 5호골을 넣었다. 여전히 타팀에게 야유를 듣는지만 서울팬 입장에선 팀내 최다골을 넣고 있으며 서울 미들진 상태가 안좋은 탓에 공격수 임에도 내려와서 공격 전개까지 해주고 있는 에이스이다. 무릎 상태도 안좋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체 출전 시키고...

전반기를 종합하면 서서히 폼이 올라오고는 있고 골도 자주 넣지만 일대일 찬스등을 계속 놓치는 장면등이나 골키퍼를 제치고도 아쉽게 뜨는둥 아쉬움이 많기도 한 절반의 성공이었다. 후반기를 대비해 FC서울은 대전의 아드리아누를 영입하기로 하고 협상에 들어갔다. 공격진 보강에 나서는 걸 보면 박주영의 득점력 부담을 낮추기 위해 영입하는가 보다.

그리고 7월 22일 FA컵 포항 스틸러스와의 8강에서 전반 23분과 후반 25분에 골을 넣으며 팀의 4강 진출과 팀의 2-1 역전승에 결정적인 활약을 했다. 동점골은 높은 타점을 이용해 반대쪽 파포스트를 노리는 박주영 다운 해딩골과 역전골은 몰리나가 코너킥을 올린 뒤 파포스트로 나가는 공을 허벅지로 트래핑한 뒤 슛한것이 수비맞고 굴절되어 골이되었다. 올시즌 첫 멀티골.

7월 25일 인천과의 홈경기에서 윤주태의 크로스가 골키퍼에 맞고 뒤로 흐른 공을 집어넣어 승부를 2-0으로 굳히는 리그 6호골이자 시즌 8호골을 넣었다. 이걸로 박주영은 FA컵에 이어 연속경기 골을 기록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참고로 최용수는 박주영을 극찬하며 스트라이커는 골로 말한다라고 했는데, 박주영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박주영을 까는데 쓰던 말이 이젠 박주영을 칭찬하는데 쓰인다니 아이러니하다.

이 같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계속 싫어한다. 이렇게 국내로 돌아와 뛸 기회를 얻으면 경기력 올라올 거면서 해외에서 허송세월 했다는 게 이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전반기 18경기 8골 1도움으로 팀내 최다골이며 최용수 감독도 이미 에이스로 낙점 시킨지라 몸만 버텨준다면 박주영 중심으로 올시즌을 헤처나갈 것으로 보인다. 아드리아노의 영입과, 공격형 미드필더인 다카하기 요지로의 존재는 분명히 박주영에게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8월12일 울산전에서 시즌 2호 어시스트를 추가했다. 대전에서 영입한 아드리아노에게 빈공간에 절묘하게 준 패스를 아드리아노가 살리며 결승골.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전반 18분 프리킥도 찼으나 김승규의 선방에 막혔다. 1:1기회도 있었지만, 정동호가 뒤에서 걷어내서 실패했다. 또한 이번 경기 활약으로 첫 클래식 주간 mvp에 선정 되었다.

슬슬 국가대표에 뽑혀야 한다는 의견이 생기고 있으나 아직 몸상태가 올라오지 않았기에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더 많다. 아스날 이적 이전에 보여준 중앙공격수로서의 역량은 지금의 이정협보다 위지만[41] 오랜 결장으로 실전감각이 많이 죽었고 무릎상태가 좋지 않으며 나이가 30에 접어들어 회복력이나 신체능력이 예전같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은 온전히 한 시즌 뛰고 몸 상태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대표팀에 남아도는건 2선 자원이고[42] 중앙 공격수 자원이 아니기에 실전감각 회복하고 몸 상태만 정상이라면 (나이가 걸리겠지만)가능성이 없진 않다. 문제는 그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서 보여주었던 형편없는 플레이의 기억이다. 어지간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선수 본인은 복귀 인터뷰에서 현재로선 대표팀에 대한 생각은 없다며 경기력 회복에 전념할 뜻을 밝혔다.

그렇게 시즌을 치르던 중 8월 22일 대전과의 홈경기에서 전반 46분, 오스마르의 선제골에 선수들이 모여 좋아하고 있을 즈음 골대로 들어간 공을 골대 뒤에 앉아 있던 대전 서포터들을 향해 차버렸다. 이에 분노한 대전 서포터들이 공을 돌려주지 않으며 경기가 10분 정도 진행되지 않는 사태가 벌어졌다. 기사 박주영의 사과와 심판의 적절한 조치가 없자 대전 서포터즈가 서울 구단 관계자와 언쟁이 오갔다. 결국 경찰까지 와서 중재를 한 뒤에야 공을 돌려줘 경기를 진행할 수 있었고, 경기가 끝난 뒤 박주영은 대전 서포터즈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했다. 경기결과는 후반에 윤주태의 추가골을 더해 2:0으로 승리했다.

대전전까지는 공격조율이나 플레이메이킹 등 좋은 활약을 하였으나 마지막 제주전 미들진이 실종하면서 최근 시합중 가장 좋지않은 모습을 보였다. 부진의 원인은 부상을 안고 출전한 탓에 몸이 망가진 탓이었다. 9월 9일 포항전 경기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는데 복합적인 부상 때문이라고 한다. 무릎이 좋지 않음에도 경기를 계속해서 뛰어서 무릎에 물이 차는현상이 있고 뼈에 멍이들어서 걷기도 힘든 상태라고 한다.

그리고 FC서울은 포항전 무승부 전북전 3-0 대참패를 당했고 에이스 박주영의 부재를 실감했다. 9월 23일 성남전에서 후반 교체투입으로 복귀를 했다. 그러나 아직 몸상태가 60%도 안되었다고 한다.

9월 28일 광주 FC전에서 선발로 나서서 팀의 동점골을 터뜨렸으나 전반종료 직전 발바닥 부상을 입었다. 최용수감독의 말으로는 서있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 욘스가 경질 안당하려고 무리하게 당겨 쓰다 몸 망가졌다는게 중론. 그러나 박빠들로서도 전성기 정도의 폼은 아니지만 박주영 중심으로 팀을 만들고, 부활을 시켜준 사람 또한 최감독인지라 까기도 뭐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시합을 자세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오른쪽 무릎에 6-7월부터 붕대나 보조테이프로 조정하는데 지금 왼발족저근이 파열되어 서지 못하는 상황에 의사는 8주 진단을 내렸다. 부상시기가 9월말 정도였으니 사실상 시즌아웃을 선언해야하나 가장 중요한 상위 스플릿과 아챔이 걸려있는 FA컵 4강전이 10월 14일에 있다. 최감독이나 구단으로서도 쉽게 시즌아웃 선언도 힘든 상황이다.

그와중에 FA컵은 서울이 결승에 올라가고 리그도 꾸역꾸역 극장을 찍으며 올라가고 있다. 아마도 10월 31일 FA컵에서 우승만 한다면 무릎 뼛조각 수술과 족저근파열 재활에 충분히 시간을 들일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월 31일 FC서울이 FA컵에서 우승했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미소가 멋진남자 박주영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족저근막이 어느정도 회복되어 걸어다닐수 있는듯하다. 팬이라면 내년 ACL에서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듯 하다.

기사에의하면 무릎이 많이 호전돼 굳이 수술을 안하고 재활치료쪽으로 가닥을 잡은것같다. 최용수 감독도 박주영의 무릎이 고질병인지라 수술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내년 1월까지는 돌아와 줬으면 한다고 한다.

그리고 2015 시즌이 종료되었고 최종 스탯은 리그 23경기 7골 2어시 FA컵 1경기 2골 통합 24경기 9골 2어시이다. 올해는 골보다 빌드업에 주력하고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하였다고 많은 사람들이 평가한다. 한창 폼이 올라갈때 부상이 연달아서 생겨서 아쉽다는게 중론. 하지만 2016 시즌은 전지훈련부터 훈련을 참여하기 때문에 그의 활약상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다.

2015 시즌: 24경기 9골 2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 클래식 23 17 6 7 2
FA컵 1 1 0 2 0
합계 24 18 6 9 2

7.2. 2016 시즌

파일:FC서울_16시즌_박주영_리그우승.jpg
K리그1 리그 우승의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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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시즌
통산 49경기 11골 7도움

7.3. 2017 시즌

17시즌을 앞두고 부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주장은 곽태휘.

2월 21일 ACL 상하이 상강과의 홈 경기에서 후반전 교체출장했으나 데얀과의 연계슛과 프리킥에서 상대 손에 맞은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이렇다 할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제한된 시간에 뭘 기대하기엔 팀 전체의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2월 28일 ACL 우라와 레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출장하여 전반 14분 정말 환상적인 프리킥으로 만회골을 넣었다. 팀이 5-2로 대패한 이 경기에서 이렇게 멋진 프리킥 골이 터진 게 아쉬울 정도. 환상적으로 꺾이는 프리킥 골 장면 또한 이 골은 유럽 매체에서도 재조명되기도 했다고 한다.

K리그 클래식 2R 강원전 교체투입되어 동료들에게 엄청난 패스들을 공급해주며 후반전 분위기 향상에 톡톡히 한 몫했다. 특히 후반 막판 윤일록에게 뿌려준 패스는 일품.

3R 광주 FC전 후반 63분 페널티킥 키커로 나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4월 26일 챔피언스리그 5차전 상하이상강 전에서 1대3으로 지고 있던 후반 25분 윤일록의 땅볼 크로스를 슬라이딩으로 마무리 하면서 추격하는 골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팀은 상대에게 추가골을 허용하며 2대4로 완패하고 말았다.

8라운드 대구 FC 전 0대2로 끌려가던 후반 80분 PK 키커로 나서 상대 골키퍼인 조현우를 파넨카킥으로 완벽하게 속이면서 만회골을 기록했다. 팀은 아쉽게 1대2로 패하였다.

11라운드 상주 상무 전에서는 후반 68분 윤일록의 코너킥을 강력한 헤더로 마무리 하면서 끌려가던 상황에서 동점골을 터뜨렸다. 팀은 이 골에 힘입어 승점 1점을 획득했다.

12라운드 강원 FC 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심상민의 정확한 크로스를 헤딩골로 연결시켜 추격골을 넣었지만 시간이 부족한 나머지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하였다.

6월 슈퍼매치에서는 후반 교체 출전 했으나 이렇다 할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대구전에서는 선발 출전 했으나 프리킥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

6월 25일 상주 상무전에서는 후반 77분 이상호와 교체되어 오늘쪽 윙어로 투입됐다.

17라운드 전남 드래곤즈 고요한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으면서 리그 5호골을 터뜨렸다.

7월 2일 다시 한번 전북을 상대로 극장골을 터뜨리며 왜 자신이 승부사인지를 증명해냈다. 활동적인 움직임으로 찬스를 많이 만들고 윤승원의 선제골을 만들었으며 후반 추가시간에 이명주의 복귀 어시스트로 결승골을 넣었다. 6호골

7월 16일 제주 원정길에서 주장완장을 찬 박주영은 팀의 2연승을 이끌었다. 전반 10분 페널티 아크 정면 혼전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수비수의 태클 위로 살짝 띄운 뒤, 하프 발리 슈팅으로 연결해 구석으로 절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골을 기록했다. 그 뒤로 박주영은 전후반 내내 센스있는 연계 플레이와 투쟁적이고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후반 67분 데얀과 교체되었다. 최근 황선홍 감독은 '박주영 선발 - 데얀 조커 투입'의 공식을 확립하고 있다. 이는 박주영이 근래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는 것에 따라 굳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리그 7호골(시즌 9호골)

7월 23일 전북전에도 선발로 출전하였지만 주세종의 퇴장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그리고 2-3주짜리 부상을 입어 8월 수원전 복귀.

9월 9일 제주전 후반 72분 교체투입 됐으나 좋은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9월 20일 30라운드 광주 FC 오랜만에 선발로 출전하였다. 선발로 출전해 윤승원의 선제골을 어시스트 하였다.

9월 24일 포항전에 선발 출전 하였다. 박주영의 프리킥이 골대를 맞고 나오자 오스마르가 밀어넣으며 골을 성공시켰다. 종료 직전에 패스를 올려준공이 수비수 팔에 맞았으나 PK로 선언되지는 않았다.[43]

9월 30일 전남전 후반 고요한과 교체되어 들어갔다. 문전 혼전 상황에서 얻은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8호골을 기록했다.
이날의 MOM 8호골

10월 8일 상주전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투입 되어 1-0승리에 기여했다.

10월 15일 전북전에서는 선발 출장해서 찬스를 만드는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

10월 28일 울산전에서는 후반 데얀과 교체되어 들어갔다. 공격진을 활발하게 움직이며 힘을 불어 넣었지만 후반 일대일 찬스에서 김용대의 선방에 막혔다.

11월 4일 강원전에서는 후반에 주세종과 교체되어 들어갔으나 주세종이 나가면서 중원이 비게 되어 대패의 원인이 되는 교체가 되었다.

11월 19일 제주전에서는 종료직전 데얀과 교체되어 들어갔다.

2017 시즌은 박주영에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시즌이였다.
올해도 두자리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기를 원하는 팬이 많았으나 결국은 리그 34경기 출장 8골 1도움의 아쉬운 활약이었다. 특히 전반기에만 7골을 넣고도 두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후반기 초에 무릎부상을 당한 것이 폼이 하락하게 된 원인이라고 추정된다.[44] ACL에서는 4경기 2골 0도움을 기록하였다.

그렇다고 마냥 박주영이 활약을 못했다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2016 시즌은 데얀 아드리아노 윤주태 등과 함께 로테이션 시스템이 가동되어 선수 본인에게 큰 부담이 없었으나, 2017 시즌은 데얀과 박주영 밖에 없었기 때문에 짊어질 짐이 많았다.

2017 시즌: 39경기 10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 클래식 34 14 20 8 1
FA컵 1 1 0 0 0
AFC 챔피언스 리그 4 2 2 2 0
합계 39 17 22 10 1

7.4. 2018 시즌

3년 재계약으로 2020년까지 활약하게 되었다. 데얀의 수원 이적으로 분노한 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급하게 박주영 재계약 카드를 꺼내든 모습인데, 이미 무릎 상태가 한계에 달한 박주영에게 3년은 무리수가 아닌가 싶은 우려가 많았고 이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1라운드 제주전에 선발 출전하였다.

2라운드 강원 FC 전에서 전반 44분 신광훈의 왼발 크로스를 헤딩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넣었으나 팀은 내리 두 골을 얻어맞아 지고 말았다.

4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에 교체 투입되었다.

5라운드 수원전에서 후반 30분에 교체로 투입되어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6라운드 포항전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되었다.

7라운드 울산전에는 명단 제외되었다. 그 후 박주영의 인스타그램에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경기에서 패해 화가 나고 팬들에게 미안하다는 부분은 문제가 없었으나, 뒷부분에 2년 동안 아무것도 나아진 것 없는 FC 서울이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구절이 문제가 되었다.

다음 날, 또 하나의 글을 게시하며 “저는 오늘 팀을 부정적으로 만드는, 팀에 피해를 끼치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후배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반성하겠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할 말을 하지 못하는 그런 선수는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피해를 보더라도 그것만은 지키고 싶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황선홍 감독은 "개인적인 의견을 내는 것은 나쁘지 않다. 팬들과 소통하는 것도 좋다. 전혀 문제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도, "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은 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다. 다음에 이런 일이 또 발생한다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

결국 8라운드 대구 FC와의 경기에서도 명단 제외되었다. 경기를 뛰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는 황선홍 감독의 평.

9라운드 전남 드래곤즈와의 경기에서 후반에 교체 출전했다.

10라운드 상주전에서도 조영욱과 교체 투입되어 그라운드를 밟았지만 이렇다 할 활약은 보여 주지 못했다.

그리고 황선홍 감독이 사퇴하고 이을용 감독대행 체제에서 주전으로 나오기 시작하였다. 괜찮은 연계 플레이를 보이고는 있으나 파괴력 측면에서는 부족하다는 평가.

전반기를 종합하면 2015 시즌 초반 이후로 최악의 폼을 보여 주고 있는 시즌이다. 후반기에 반전한다 해도 현재까지의 득점 기록을 보았을 때 두 자릿수 골을 기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7월 22일 대구 FC와의 경기에서 교체 출전했다가 다시 교체 아웃되었다.

8월에는 단 한 경기도 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R리그에서는 골을 기록했지만 이을용 감독대행은 폼을 더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로 들어온 마티치의 활약 또한 미미해서 빨리 돌아오라는 의견도 있지만 박주영 역시 올해 보여준 활약은 영 좋지 않다.

9월 기준 15경기 1골. 2018 시즌은 박주영 축구 인생 역사상 최악의 시즌으로 확정되었다. 한편 박주영이 부상 중이라 폼이 올라오지 않아 명단에 들지 못한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정작 박주영은 본인 SNS에서 사실이 아니며 올 시즌에 부상으로 쉰 적이 한번도 없다고 직접 반박했다. # 누구의 말이 사실이던 간에 올 시즌 서울이 선수단 관리가 전혀 안 되며 팀 분위기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부분이다.

10월 27일 강원 FC와의 하위 스플릿 첫 경기에서 드디어 명단에 포함됐고, 후반 윤주태와 교체 투입되며 3개월 만에 복귀했다. 이 날 기회를 만들어 내는 움직임이 돋보이는 선제골을 기록했다. 또한 이범영 골키퍼의 손 끝에 간신히 걸린 중거리 슈팅과 크로스바를 맞는 헤딩 슛 등 서울 공격진이 거의 못 보여 줬던 위협적인 장면들을 계속 만들어냈다. 공격진과 미드진의 위치를 손짓으로 조절하며 그림을 그리는 커맨더 역할도 수행했다. 이 경기에서의 활약은 준수했던지라 " 전임 감독 단장은 팀이 강등 위기에 처할 때까지 이런 선수를 안 쓰고 뭘 했냐. 이 선수보다 나은 이라도 있었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박주영의 올해 전반기를 완전히 망각한 소리다. 전임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뒤 선수들의 폼이 일시적으로 올라오는 것은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상이고[45] 전반기 내내 박주영의 폼이 최악을 찍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마디로 박주영이 잘한 것이 아니라 나머지 선수들이 그 부진한 박주영보다도 더 못한 것이다.[46] 고질적인 무릎 부상도 항상 있었고, 황선홍 감독과 마찰도 있었다. 이제 와서 이런 선수를 왜 안 썼냐고 하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본인을 그나마 기용하기 시작한 이을용 체제에서도 딱히 좋은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47][48][49]

11월 4일 대구 FC와의 경기에서는 후반 교체 투입되어 위협적인 프리킥을 날렸지만 조현우의 선방에 막혔다. 그 외에는 특별한 활약 없이 팀의 무기력한 무승부를 막지 못했다. 최용수의 신임과 별개로 계속 교체 투입되는 것을 보면 체력이나 몸 상태가 풀타임을 뛰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어 보인다.

11월 11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아쉽게 1:1 찬스를 놓쳤으나 추가 시간 PK 극장골을 성공시키며 팀을 12경기 무승에서 탈출시켰다.

11월 24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공격진을 이끄는 활약을 했으나 팀은 0-1로 패했다. 모든 공격이 박주영의 발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활약이었다.[50] 경기 내내 공격 마무리 역할을 해주고 결정적인 패스, 흘리기 등을 통해 찬스 메이커 역할도 하였다. 다만 그걸 동료들이 하나도 받아 먹지 못했고 본인도 무릎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서 경합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웠다. 서울은 이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잔류를 확정 짓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천에게 패배함으로써 마지막 경기까지 봐야 잔류를 확정 짓는 상황까지 가게 되었다.

12월1일 상주전에서 선발 출전하여 전반에 찬 회심의 슈팅이 굴절되고 후반에 찬 프리킥이 너무 정면으로 갔다. 그리고 특유의 포스트 플레이를 활용하여 공격진의 핵으로서 역할은 다하였으나 팀은 또 패배, 결국 승강 포스트라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2018 K리그 1 기록은 20경기 3골, 1031분.

승강 플레이오프에서의 활약에 따라서 평판이 조금 달라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박주영과 서울 역사상 최악의 한 해가 되었다.[51]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후반 55분 윤주태와 교체 투입되어 공격진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이날 정현철의 골을 어시스트하여 직접 득점은 없었지만 팀의 3-1 승리에 기여하였다.

2차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40m 장거리 슛으로 골을 넣어[52] 잔류 확정 극장골을 넣었다!! # 그렇게 박주영은 강등당할 뻔한 팀을 마지막 경기에서 확실하게 구해냈다.

2018 시즌 최종 기록은 22경기 4골 1도움.

역사상 가장 부진한 한 해였지만 승강 플레이오프에서의 대활약으로 승부사답게 시작과 마지막을 장식하며 서울 내에서도 정리 대상에 올라야 한다는 의견을 스스로의 실력으로 묵살시켜 버렸다.

2018 시즌: 22경기 4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1 20 9 11 3 0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2 0 2 1 1
합계 22 9 13 4 1

7.5. 2019 시즌

작년과는 달리 전지 훈련부터 참가하여 몸 상태가 상당히 좋다고 한다. 가고시마 전지 훈련에서도 좋은 폼을 보여 주었다.

3월 3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출전해 화려한 패스와 훌륭한 연계, 매서운 크로스로 황현수의 2골에 관여, 2:0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작년과는 180도 다른 좋은 시작.

5라운드 울산 현대전에서 교체 출전해 후반전 추가 시간에 시즌 첫 골을 신고했다. 그러나 4경기 무패 + 무실점을 달리던 팀이 이 경기에서 1:2로 패하면서 아쉽게도 빛이 바래고 말았다. #

6라운드 경남 FC전에서는 전반 42분 프리킥으로 페시치의 K리그 데뷔골을 어시스트했다.

강원 FC와의 FA컵 32강전에도 모습을 드러냈고, 0:1로 지고 있던 후반 9분과 11분 순식간에 멀티골을 터뜨리며 페시치와 팀 내 득점 공동 1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팀은 이후 제리치의 멀티골로 역전패, 탈락했다. #

8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전에서는 올해 들어 가장 안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인천이 6-3-1 카운터 형식으로 나오면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진 데다가 특유의 폼이 아닐 때는 연계라도 뛰어났으나 이 날은 연계도 그냥 그저 그런 모습을 보였다.[53][54][55]

10라운드 슈퍼매치에서는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하면서 찬스를 여러 번 만들어 내는 등 좋은 활약을 보였다. 후반전 막판 김종우에게 반칙을 당해 PK를 얻어냈고, 본인이 직접 찼으나 노동건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56] 그러나 경기 종료 직전 본인이 얻어낸 프리킥을 맡아 고요한에게 수원 수비진을 무너뜨리는 절묘한 패스를 찔러 주었고, 고요한이 노동건을 제치는 과정에서 PK를 얻어냈다. 벤치에서는 윤주태, 팬들은 고요한을 외쳤으나 고요한의 배려로 박주영이 다시 한 번 키커로 나섰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첫 번째와 똑같은 코스(!)로 조금 더 강하게 차며 극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골 영상 이 때 득점으로 기록된 시간은 추가 시간 8분. 첫 번째 실축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 경기로 프로로서의 노련함과 멘탈은 확실히 본받을 만한 선수라는 것을 증명했다. 인터뷰

11라운드 대구 FC전에서 고요한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함에 따라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전하였고, 프리킥으로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전반 14분 프리킥으로 황현수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고, 57분 결정적인 1:1 상황에서 조현우가 편안하게 잡을 수 있도록 정직한 패스[57]를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지만 83분 측면에서 날린 환상적인 프리킥이 골대 안쪽을 맞고 골망을 흔들면서 결승골을 기록,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58][59] 지난 경기에 이어 2연속 MOM에 선정되는 쾌거를 누렸으며 11라운드 MVP로 선정되었다. #

15라운드 경남 FC 원정에서는 경기 막판에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전반 12분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머리 부상을 당해 붕대를 감고 풀타임을 뛰었으며, 86분에 김한길의 크로스를 받아 헤딩 골을 성공시켰다.[60] 그러나 89분 이영재의 동점골로 1:1로 맞선 상황, 후반전 추가 시간에 박기동의 패스 미스를 잡은 후 침착하게 문전 앞으로 찔러 준 것이 오스마르의 결승골로 연결되었다. # 6월에 들어가자마자 4골 3도움을 달성한 것은 2015년 K리그 복귀 후 가장 좋은 페이스이다. 이 활약을 기반으로 15라운드 MVP까지 선정되었다.

16라운드 슈퍼매치에서는 전반 10분에 고명석의 파울을 영리하게 유도하면서 오스마르의 프리킥 선제골에 기여했고, 공중볼 경합에서 승리하며 오스마르의 3번째 골을 헤딩으로 어시스트했다. #

18라운드 울산 현대전, 전반 45분 정확한 택배 크로스로 박동진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며 5호 도움을 기록했다. 팀은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해 무승부를 기록했다.

21라운드 인천 원정에서 1:0으로 앞선 후반 오스마르의 기가 막힌 전진패스를 받아 관중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오른발 중거리포를 터뜨리며 경기를 끝내버렸다. 인천 수비가 아무것도 못 했던 건 사실이지만, 오스마르가 패스한 공이 계속 앞으로 가는 상황에서 볼터치 없이 공을 따라가며 정산 골키퍼의 위치를 3번이나 확인하고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 논스톱 슈팅을 때려 골포스트 오른쪽 상단에 꽂아버리는 박주영의 기술은 실로 대단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21라운드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

22라운드 전북 현대전 2대2 동점상황에서 멋진 골을 넣었으나 고요한의 반칙이 지적되어 VAR로 취소되었다.

24라운드 대구 FC전에서는 시작하자마자 정원진의 백힐 패스를 골로 연결해 3경기 만에 다시 골을 기록했다. 후반에도 상대선수 퇴장을 이끌어 내는 등 팀 공격을 주도하며 팀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

25라운드 강원전에서 마지막 인저리 타임에 페시치의 절묘한 패스에 이어 찬스를 잡았지만 발에 제대로 맞지 않아 결승골의 찬스를 놓쳤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때 부상이 있었는지 이 경기 이후 성남전, 제주전, 전북전 3경기를 연속으로 결장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선수층이 너무나도 얇아져 박주영이 없으면 플레이 메이커의 부재로 공격 자체가 이어지지 않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박주영이 없으면 서울은 페시치조차도 고립되고 공격진의 패스가 이어지지 않는 문제점이 계속되고 있다. 세 경기에서 코너킥에서 세트피스 한골을 제외하면 이런 경향이 특히 눈에 띈다.

29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박주영의 출전으로 인해 다소 답답하던 공격진의 조율이 이루어질 수 있었고, 본인도 PK 득점을 포함해 1골 2도움의 맹활약을 펼쳤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서울에서 박주영의 입지는 아직도 확고하다는 점이 다시 입증되었다.

30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후반 38분 헤더로 동점골을 넣었다.[61] #이걸로 시즌 8호골.

33라운드 수원과의 슈퍼매치에서 선제 PK골을 기록했다.[62] # 또한 어시스트를 기록하진 못했지만 팀의 두번째 골 또한 돌파에 이어 고요한에게 패스를 줘 마크를 따돌리게하고 고요한이 크로스로 이명주의 골에 기여했다.

34라운드 상위 스플릿 강원과의 시합에서 후반 37분 이명주의 크로스에 이은 멋진 헤더 골을 기록했다. #[63]. 이걸로 리그 10호골을 신고하며 3년만에 시즌 두자리수 득점에 성공했고, FA컵 2골 포함 시즌 12골 7어시스트로 남은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하게 되었다.

2019 시즌: 36경기 12골 7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1 35 31 4 10 7
FA컵 1 1 0 2 0
합계 36 32 4 12 7

7.6. 2020 시즌

2020년은 박주영의 계약 마지막 해이다. 어쩌면 올 해가 그의 선수생활의 마지막 해가 될 수 있다.

포르투갈 전지훈련에서 4경기 1도움을 기록했다.

2020년 1월 28일, 홈에서 펼쳐진 크다 FA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플레이오프에서 전반 38분 PK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

2월 18일 ACL 조별리그 1차전 멜버른 빅토리와의 1차전에서 전반 8분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기록했다. #

K리그1 3라운드 포항전에서 날카로운 코너킥으로 황현수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03:18 부터

5라운드 전북과의 홈 경기에서 전반 45분 교체 투입되어 곧바로 동점 골이자 시즌 마수걸이 득점포를 쏘아올렸다. 02:36 부터 이 득점으로 조나탄을 넘어 부천의 레전드 이원식과 이근호, 염기훈과 함께 K리그 통산 득점 공동 20위에 랭크했다. 다만 팀은 1-4로 크게 패배했다.

6라운드 대구 FC와의 원정 경기 중 세징야의 프리킥 상황에서 자책골을 기록했다. 10년전 6월, 남아공 월드컵에서 메시의 프리킥 상황에서 자책골을 넣어버렸던 것과 연관지어 자책골 10주년 기념 골라는 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팀은 0-6으로 큰 패배를 당했다.

10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슈퍼매치에서 1골 1어시를 기록하며 K리그 통산 득점 단독 20위에 등극했다. 이걸로 골도 어시도 리그 2호씩 #

FA컵 16강에서 후반 교체 투입되어 동점골을 기록했다. # 그러나 이후 조영욱이 얻은 PK를 미끄러지며 실축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승부차기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PK를 차내며 팀을 다음 라운드로 이끌었다.

23라운드 수원 FC 전에서 문전 앞 혼전 상황에서 동점골을 기록했다. #

26라운드 강원 전에서 후반에 교체로 출전해서 지난 시즌 대구전이 연상되는 멋진 프리킥 골을 넣었다. K리그 통산 99번째 공격포인트이다. 다만 팀은 한골을 내줘 1대1로 비겼다. #

최종라운드에서 고인이 된 김남춘의 유니폼과 주장 완장을 골 라인에 가져다 놓으며 서럽게 우는 모습을 보여 팬들의 마음을 짠하게 했다. # 경기가 끝난 직후 강화도로 향해 고인의 장례식을 함께했다.

올 시즌 K리그 성적은 23경기 1699분 출장 4골 2도움 으로 작년에 비해 턱없이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 내 최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였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해 시즌 후로 연기되었던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2차전 베이징 궈안전에서 페널티킥으로 챔피언스 리그 2호 골인 동점 골을 기록했다. #

조별예선 3차전 치앙라이전에서 한승규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

조별예선 4차전 치앙라이전에서 PK를 놓치기는 했으나 이후 코너킥 상황에서 헤더로 동점골을 기록하며 만회했다. 하지만 이날 패배에 상당히 일조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PK를 놓치기도 했고, 이를 성공 시켰다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는 반응들이 있었다.

2020 시즌: 31경기 9골 3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1 23 15 8 4 2
FA컵 2 1 1 1 0
AFC 챔피언스 리그 5 5 0 3 1
AFC 챔피언스 리그 예선 1 1 0 1 0
합계 31 22 9 9 3

7.7. 2021 시즌

2020년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추측 등이 많았지만 2020년 12월 29일 1년 재계약을 통해 2021년까지 함께 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톱 자원이 전무하다시피 한 서울 팀 사정 상 올해도 3라운드까지 매 경기 선발로 출장중인데, 연계에선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득점 기회를 너무 많이 날려먹는 모습을 보여주어 서울 팬들의 원톱 선수 영입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그리고 부상을 당하고 한달 간 장기간 출장을 못하면서 서울의 톱은 아예 역할을 상실한 채 진짜로 아무것도 못하는 허수아비들의 잔치가 돼 버렸다. 서울 팬덤에서는 지도자 준비하고 있는[64] 박주영이 은퇴하고 나서 톱 위치는 어떻게 해야할지 벌써부터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일단 여름이적 시장에서 지동원을 영입했고 조영욱이 껍질을 깨기 시작했다.

여전한 제공권으로 최근 위협적인 헤딩 슛들을 보여주며 전체적으로 톱으로서 나쁘지는 않으나 팀내 원톱중 유일하게 공격 포인트가 없다. 지동원도 있고 하니 내년부터는 염기훈처럼 플레잉코치 혹은 지도자로 나서며 선수생활을 은퇴할 가능성[65]도 있고, 시즌 말 떠도는 루머처럼 타팀으로 이적하여 계속 선수로 뛸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본인 인스타에 AFC/KFA A급 강습회를 수료했다고 올렸다. 2021시즌 서울에서의 기록은 리그와 FA컵을 합쳐 17경기 출전.

12월 15일 본인 인스타그램에 10년 반 동안 머물렀던 FC 서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며 자신의 거취에 관한 글을 올렸다. 다음은 인스타에 올라온 입장문 전문.

【 입장문 전문 】
> 안녕하세요, 박주영입니다.
FC서울의 팬 여러분과 저를 아껴주시는 모든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근 저의 계약과 계획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에 제가 현재 상황을 여러분들에게 직접 말씀드리는게 추측과 오해를 예방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여 글을 남깁니다.

아시다시피 FC 서울과의 계약은 올해를 끝으로 만료됩니다.
FC서울과 저는 올 시즌 종료 전까지 총 3번의 미팅을 했습니다. 서울은 저에게 유스팀 지도자를 제안해주셨지만, 저는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전달했습니다. FC 서울과 선수로서 논의한 저의 미래에 대한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팀을 알아봐야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동안 FC 서울에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기쁠때도 있었고,슬플때도 있었지만 우리팀에서 여러분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서울과 함께한 지난 모든 시간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어떻게 10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이 짧은 글에 다 담을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그 감사함을 말로 표현할수 있을까요?

제가 FC 서울에서 행복하게 축구를 할수있었던건,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저의 모든 순간에 여러분들의 지지와 응원이 없었다면, 저는 1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FC 서울의 유니폼을 입을 수 없었을겁니다. 그동안 함께한 많은 동료 선수들에게도 다시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제 마음을 표현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못하는 것이기도 하죠. 늘 무뚜뚝하고 지금도 말하는게 쑥스럽지만,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FC 서울 FC 서울을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들은 저의 삶에서 영원한 1번이라는 사실입니다.
처음 프로에 입단한 그날부터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FC 서울은 저에게 있어 영원한 1번입니다.

서울에서 보낸 모든 시간이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FC 서울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에 대한 여부를 떠나, 서울은 제 마음 속 가장 큰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짝사랑이 되더라도, 절대 제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만남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헤어짐도 있겠죠.

제가 선수로서 FC 서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전적으로 팀이 원할때까지 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새로운 준비와 도전을 해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아직 다음 행선지에 대해 정해진 것이 없고, 더이상 FC서울의 10번 유니폼을 입지 못하는게 어색하지만, 지난 10년 6개월동안 FC 서울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진심을 다해 사랑했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끝을 함께하지 못하는것이 아쉽지만 그것또한 제가 감당해야할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부심과 행복했던 기억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저는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좋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축구인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FC 서울이 어떤 역할이든 저를 필요로 한다면, 꼭 그 부름에 응하겠습니다.

운동장에서 만나뵙고 인사 드려야 하지만 그럴수 없음에 죄송한 마음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12월 28일, FC 서울 구단 SNS를 통해 박주영의 퇴단 소식이 공식 발표되었다. FC 서울 팬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되었고 일부 팬들이 프런트에 성토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으나, 4년전 데얀이 수원으로 이적할 때의 충격과는 달리 대부분 수긍하고 그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분위기.[66] 2020 시즌에는 박주영이 가장 많은 골과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면서 팀에 보탬이 됐지만 2021 시즌엔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고, 조영욱이 박주영의 자리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게 된 것이 박주영이 떠난 가장 큰 이유라고 볼 수 있다.

2021 시즌: 17경기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1 17 10 7 0 0
합계 17 10 7 0 0

8. 울산 현대


2022년 1월 7일, 2012년 런던 올림픽 와일드 카드 발탁과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최종 명단 발탁을 주도했던 은사 홍명보 감독이 있는 울산 현대로 이적한다는 단독 기사가 보도됐다. 김광국 단장도 박주영 영입 추진을 인정하면서 다각도로 영입을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구단 측에서 선수단 내 최저 연봉을 제의했는데도 선수가 수용했고, 구단에 금전적 조건을 백지 위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현역 커리어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려는 의지가 크다고 한다.

팬들은 처음에는 외인 공격수도 영입 못 한 상황에 고령 + 고연봉 스트라이커를 영입하는 거냐며 반발이 심했으나 이런 뒷사정이 밝혀진 지금에선 응원하는 반응이 더 크다. 다만 선수 자체의 안티도 적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 여론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울산에서 새 출발하는 이번 시즌에서의 평가 여부가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22년 1월 16일, 울산은 박주영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1년.[67] 박주영의 영입까지 더해 울산은 전 소속팀이 FC 서울이였던 선수들만 현 스쿼드에 8명을 보유하게 됐다.[68] 2022년 1월 19일 전지훈련 미디어데이에서 홍명보 감독은 박주영이 울산 현대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인터뷰 하였다.

8.1. 2022 시즌

서울에서 달았던 10번은 울산의 에이스 바코가 가져가게 되면서 등번호는 91번을 받았다.[69][70]

선수 소개 멘트는 뜨거운 불꽃을 피운다, 천재 스트라이커.

영입 당시에 써드 옵션 공격수로 영입된 것은 팬들과 홍명보 감독을 포함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허나 울산의 새 외인 스트라이커 레오나르도는 비자 발급이 늦게 되는 건지 아직 입국도 못 하고 있어 자가격리 등을 감안하면 본격적으로 나설 수 있는 시기는 3월 초인 것으로 보이며, 결정적으로 오세훈이 개막이 3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 J리그 시미즈로 튀어버리는 바람에 자칫하면 개막전 선발을 넘어 강제 전성기를 맞이하게 생겼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이용래: 굿 럭

프리시즌 광주 FC와의 연습 경기에 후반 교체투입되어 득점에 성공했다.

2월 20일, 김천 상무와의 개막전에 명단 제외되었다. 벤치에 앉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폼이 올라오지 않은 문제인 것인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팀은 원톱의 공백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끼면서 공격진들의 빈공 끝에 0:0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홍명보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주영을 명단에 넣을 수 있었지만, 시즌 초이기 때문에 조금 더 폼을 올린 후에 명단에 넣을 것이라고 밝혔다.

2월 26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성남 FC와의 2라운드에서 교체명단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후반 막판에 이청용과 교체되어 투입되면서 울산에서의 데뷔전을 치렀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박주영의 투입으로 수비진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며 울산은 박주영의 더미 플레이를 통해 더 유효한 공격 시퀀스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3월 1일, 울산 현대 의 홈에서 열린 수원 FC와의 3라운드 경기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3월 6일,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4라운드 경기에도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3월 11일, FC 서울과의 5라운드에서 벤치에 앉았다. 박주영이 나오기를 바라는 양 팀 팬들이 많았으나 아쉽게도 울산이 교체 카드를 실질적으로 두 장 밖에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였고,[71] 남은 두 장의 교체 카드도 바코 이청용에게 돌아가 아쉽게도 출전이 불발됐다. 경기 후 서울 원정석을 향해 인사를 하러 갔고, 많은 팬들이 박수로 화답했다.

3월 15일, AFC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포트 FC전에서 처음으로 선발출장했다. 선수단 내 코로나 19 집단 감염으로 인해 가용 인원이 줄어들게 되었고, 이 때문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울산 현대 이적 후 첫 선발이었지만 공격에 크게 기여하지는 못했고, 60분을 뛴 후 레오나르도와 교체되었다.[72]

3월 27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6라운드 경기에서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지만 출장하지는 못했다.

4월 2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7라운드 경기에는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4월 5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8라운드에도 교체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이 불발되었다.

4월 9일, 울산 홈에서 열린 대구 FC와의 9라운드 경기에도 교체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하지 못했다.

4월 15일, 말레이시아 조호르에서 열린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D조 1경기에서 후반 85분에 레오나르도를 대신해 투입되었다. 짧은 시간이었고 후반 막판에 가와사키에게 밀리는 양상이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팀은 조현우의 아쉬운 막판 미스로 동점골을 허용하여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4월 21일, 광저우 FC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D조 3경기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출장했다. 이 날 세컨톱으로 나온 코스타와 호흡을 맞췄으며, 후반 57분에 이청용의 크로스를 받아 멋진 오른발 발리로 마무리해 울산에서의 데뷔골을 만들어냈다. 이후 63분에 바코와 교체되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4월 24일, 광저우 FC와의 AFC 챔피언스 리그 D조 4경기에서 지난 경기에 이어 선발출장했다. 지난 경기와 마찬가지로 최전방 위치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줬고 슈팅도 여러차례 기록했다. 그 중 골대를 한 번 맞춰 2경기 연속골 기회가 아쉽게 무산되었다. 이 경기에서 울산 현대 이적 후 처음으로 풀타임 소화를 했고, FotMob로부터 평점 7.4점을 부여받았다.

4월 27일 가와사키전, 4월 30일 조호르전에 벤치명단에 들었으나 출전하지 못했다.

5월 5일 수원 삼성전, 5월 8일 강원전, 5월 14일 인천전에는 경기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5월 18일 제주전, 5월 21일 김천 상무전에는 교체 명단에 포함되었으나 출전하지 못했다.

6월 19일, 전북 현대와의 K리그1 16라운드 경기에서 1:3으로 뒤지고 있던 후반 73분에 교체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미 골문 앞에 텐백으로 버스를 세운 전북을 상대로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6월 26일 성남전에서 후반 18분 윤일록과 교체되어 필드를 밟았는데, 바코에게 전달된 결정적 백힐 패스로 어시스트를 할 뻔하기도 하는 등 최전방에서 특유의 센스 있는 플레이와 등지고 버티기로 울산의 공격에 힘을 더해줬다. 그러나 후반 추가시간 엄원상의 극장골 장면에서 박주영이 마상훈에게 파울을 했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골이 취소되고 말았다.[73] 경기 후 평소 항의를 잘 하지 않던 그마저도 동료들과 함께 심판에게 항의했고, 골을 넣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책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모로 이 경기는 박주영에게 있어서 억울한 경기가 됐다. 결국 울산은 0:0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7월 5일 강원 FC전에서 드디어 울산 현대 소속으로 리그에서 처음 선발 출전했고, 후반 24분까지 소화한 뒤에 레오나르도와 교체됐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진 못했으나 최전방에서 수비진들과 적극적인 경합을 벌이는 등 투혼을 발휘하며 팀의 2:1 승리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

울산이 여름 이적시장에서 마틴 아담을 영입한 뒤로는 계속해서 명단 제외가 되고 있다. 그래도 경기 외적인 면에서는 베테랑으로서 팀을 잘 이끌어주고 있다. 결국 울산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솔선수범한 박주영의 리더십 덕에 17년 만의 리그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으며, 박주영 본인도 2016년 FC 서울에서의 리그 우승 이후 6년만에 또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됐다.[74]

시즌이 모두 끝난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 올 한해 그리고 월드컵에 대해서 언급했다. #

마지막 리그 경기 제주전에서 은퇴 인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이호와는 달리, 박주영은 울산 현대와 단기 계약을 맺긴 했으나 현역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수도 있기에 내년에 그의 거취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인터뷰에 따르면 현역 생활을 이어가는 생각도 물론 있지만 나이 및 체력과 가족 등 문제로 거취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2022년 12월 23일 홍명보 감독의 제안으로 다음 2023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로 합류 및 지도자 연수를 준비한다는 단독 기사가 나왔다. #

2022 시즌: 9경기 1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1 6 1 5 0 0
FA컵 1 1 0 0 0
AFC 챔피언스 리그 3 2 1 1 0
합계 10 4 6 1 0

8.2. 2023 시즌

보도대로 이번 시즌부터 플레잉 코치를 맡게 됐다. 등번호는 작년과 똑같이 91번을 받았다.

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전환되었기에 출전 명단에 포함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지만, 10월 24일 열린 조호르와의 ACL 조별리그 3차전에서 놀랍게도 벤치 명단에 포함되었다. 다만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이번 시즌은 결국 1분도 출전하지 않고 시즌을 마쳤다. 사실 작년의 이호처럼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은퇴식 겸 마지막 경기를 홍명보 감독이 제안했으나, 박주영 본인이 주목받는 상황을 원치 않았기에 거절했다고 한다.

플레잉코치로 계약을 연장할 수도, 이대로 조용히 은퇴 수순을 밟고 전업 코치로 새 출발을 시작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8.3. 2024 시즌

전지훈련에 동행한 것이 확인되면서 잔류가 확정됐다. 등번호도 전 시즌과 똑같이 91번을 받았다. 다만 직접 경기 출전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자신을 울산으로 데려온 홍명보가 논란 속에 국가대표팀으로 떠나게 되었다.

2024 시즌 종료 이후 은퇴할 것이라 한다.

11월 10일, 친정팀인 FC 서울과의 리그 37라운드 경기에서 벤치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오랜만에 명단에 포함되어 화제가 되었다. 약 1년 만의 명단 승선이었다. 전반 32분에 교체 투입되면서 748일 만에 그라운드를 밟았다.[75] 그리고 전반전 종료와 함께 교체 아웃되었다.

11월 23일, 리그 마지막 경기인 수원 FC와의 경기에서 후반 28분 교체 투입되며 홈 팬들 앞에서도 출전했다. 2:2로 비기고 있던 후반 39분, 에사카 아타루의 역전골을 어시스트하며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더군다나 이전까지 K리그 통산 공격포인트 99개를 기록 중이였는데 이 어시스트로 K리그 통산 100번째 공격 포인트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거기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싶던 후반 45분, 이청용의 어시스트를 받아 몸을 날린 슬라이딩 슈팅으로 4:2를 만드는 득점까지 터트렸다! 이 골은 코로나19로 시즌이 축소되었던 2020년 26라운드에서 강원 FC를 상대로 만든 프리킥 득점 이후 무려 4년만에 터트린 리그 득점이자 울산에서의 리그 첫 득점이다. 특히 양박쌍용으로 묶이는 이청용과 만들어낸 골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렇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은퇴 전 마지막 경기임이 사실상 확정이였으나 오히려 이날 울산 공격진 중에서 가장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팬들 사이에서 시즌 내내 공격진이 부진할 때 한 두번 정도 더 기용할 가치가 있었던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팀은 박주영의 1골 1도움으로 2:2를 4:2로 만드며 마지막 경기에서 기분 좋은 승리를 챙겼으며, 또한 이로 인해 울산은 득점 수 3년 연속 1위[76]를 달성했다. 만약 예상대로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경우 그야말로 한국 축구사에서 다사다난한 길을 걸어오며 많은 업적을 남긴 박주영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드라마틱한 마지막 경기를 만든 셈이 되었다.

2024 시즌: 2경기 1골 1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K리그1 2 0 2 1 1
합계 2 0 2 1 1

[1] 감독이 몰래 유니폼을 빨아와서 시합이 끝나면 회수하는 식이었다고 한다. [2] 날아라 슛돌이를 본사람들은 알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1학년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크다. [3] 박주영이 청구고 1학년이던 시기는 한일 월드컵도 열리기 전인 2001년이었고, 청구고 소재인 대구광역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 팀이 없던데다가, 당시 청구고등학교는 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보인정보산업고등학교와 함께 포항 스틸러스의 실질적인 산하 유스팀이었기 때문에 포항의 지원을 받고 브라질 유학을 갈 수 있었던 것이다. [4] 참고로, 당시 박주영과 함께 브라질 유학을 갔던 20명 중 포항 스틸러스 1군 팀에 입단한 선수는 0명이다... [5] 다만 청구고에 대한 지원을 멈춘건 포항스틸러스의 보복이 아니라 지역연고제의 안착과 대구 연고 프로팀인 대구FC의 존재 때문이었다. 즉, 대구광역시 소재 학교인 청구고는 대구FC의 유스로 취급하라는 것. [6] 조 감독의 증언과 기사의 취재 내용, 구단 관계자의 증언이 조금씩 다른데, 아무래도 기업 수장이나 대학 총장이 서로간의 인맥을 활용해서 선수의 소속을 직접적으로 결정한 정황이 있던건 사실이지만 직접적으로 그렇다고 인정하기엔 외부 시선이 좋지만은 않은 점도 있고, 다른 시민 구단이 그 점을 거론하며 기업구단의 수뇌부들을 강력하게 비판할 여지가 될 수 있기에 말을 아끼는 것으로 보인다. [7] 사실 2005 시즌에도 후반기에는 끈끈한 맨마킹에 능한 전담 마크맨이 한 명만 붙어도 어쩔 줄을 모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8] 그러나 이장수도 박주영에 대해 부적절한 인터뷰로 안티가 생기는데 일조했다. 대표적으로 박주영 정도의 선수는 EPL을 가야 된다. 바이에른 뮌헨이 관심 있다는데 지금 분데스리가는 유럽 5위다. 바이에른이라도 갈 필요 없다가 대표적 망언이다. [9] 첫 시즌에는 박주영과 호흡을 맞추는 리카타가 잘했으나, 다음 시즌이 시작되기 전 AS 생테티엔으로 이적하였다. [10] 이후 20-21시즌에 황의조가 타이 기록을 세운다. [11] 다들 알다시피 오바메양은 박주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클래스를 가진 선수로 성장한다. 두 선수는 같이 뛴 적은 없어도 아스널에서 활약하게 되긴했는데 한 두경기에나 겨우겨우 출전한 박주영에 비해 오바메양은 엄연히 도르트문트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아스날의 주전으로 입성한 월드클래스 스타였다. [12] 리버풀, 토트넘, AC 밀란, AS 로마, 유벤투스, 세비야, 마르세유, 보르도, PSG, 그리고 중소규모 팀들이나 러시아 팀들까지해서 무려 20여개 팀과 연결되었다. 박주영 본인은 UEFA 챔피언스 리그 출전이 가능한 팀으로 이적을 원했다고 한다. [13] 아르센 벵거와 통화 후 이적결심 [14] # [15] 벵거 감독이 경기 당일날 "박주영이 워크 퍼밋을 경기 전까지 발급받으면 경기에 내보내겠다" 라고 발언. 경기 직전에 워크 퍼밋이 발급되었다. 그리고 벵거의 말을 믿은 SBS와 한국 축구 팬들은, 아스날전 마지막 교체 카드로 샤막이 나오자 분노 폭발했다. 덕분에 정작 지동원과 기성용이 골 넣는 경기를 보지 못했다. 박주영 데뷔전도 아니고, 경기력도 한심했던 아스날전을 대체 왜 봤는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16] 같은 날 박지성의 출전을 못하게 만든 맨유의 톰 클레버리, 조니 에반스와 함께 벵거가 추석 선물 3인세트를 선사했다. [17] 1:1 상황에서 다들 안나오겠거니, 하는 상황에서 박지성이 어시의 어시가 되는 연계 플레이를 하면서 2:1로 맨유가 앞서나갔다. [18] 좀 더 일찍 나올수도 있었는데, 아스날이 0:1로 뒤지고 있어서 뱅거 감독이 아르샤빈과 박주영을 동시에 투입하려고 했으나 그 순간 반 페르시의 동점골이 터지는 바람에 안드레이 아르샤빈만 투입되고 박주영은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 [19] 사실 샤막 또한 반 페르시의 미친 활약 때문에 해당 시즌 13경기 그 중 대부분을 교체로 나와 1골 1어시에 불과했다. [20] 물론 박주영 영입은 벵거의 픽이 맞긴 하다. 다만 원래 벵거 감독은 베스트 멤버를 주야장천 굴리는 스타일로 팬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어지간한 상황이 아닌 이상 로테이션을 돌리지 않기 때문에 애당초 박주영에게 땜빵노릇 이상을 기대했다고 보긴 힘들다. [21] 단 3개만 시도했고, 모두 성공했다. [22] 여담으로 이날 홈구장 잔디가 안 좋아서 평소와 다름없는 기도 세레머니를 하려다 렉걸리듯 철푸덕해서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다. [23] 이날 전까지는 박주영 혼자만 11-12 유니폼을 입은 사진이었다. [24] 3순위 공격수 [25] 45,000파운드로 우리돈 약 7,600만원이라 한다. 기사 [26] 한화로 약 7,600만원. 한 주에 꼬박꼬박 통장에 7,600만원씩 들어온다. [27] 큰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하나의 오류를 지적해 보자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VIP석이면 좋은 시야와 영상은 물론 쾌적한 실내환경과 푹신한 의자, 맛있는 음식과 양질의 주류들을 포함한 호화 서비스가 제공되며 런던 명사들과의 만남과 사교의 장으로서도 좋은 무대가 될 수 있다. [28] 사실 이는 런던 서부에 첼시 FC에 필적할 만한 성적을 기록하는 라이벌이 없는 것이 가장 크다. 당장 서런던에서 첼시 이외에 가장 성공적인 클럽이라고 하면 EFL 챔피언십 붙박이인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풀럼 FC 정도이고, 나머지는 브렌트포드 FC, AFC 윔블던등을 제외하면 프로에 올라오기도 벅찬 클럽들밖에 없다.남런던의 크리스탈 팰리스 FC도 이와 비슷한 상황인데, 이쪽은 그나마 찰턴 애슬레틱 FC도 존재하고, 역사적 라이벌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도 있어 낫다. 이와 비해서 동런던과 북런던은 너무하다 할 정도인데, 북런던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아스날 FC 토트넘 홋스퍼 FC가 있고, 동런던은 만나기만 하면 전쟁을 치르는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밀월 FC가 있다. [29] 실제 박주영 K리그 초창기 라이벌인 김진용 같은 선수 역시 현재 부상과 실전감각 저하가 계속 맞물리고 얽히고 설키며 굉장히 미미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30] 다만, 이나모토 준이치도 영입해놓고 경기에 거의 출전시키지 않아서 일본의 팬들에게 유니폼 판매용으로 영입했다며 많은 욕을 먹은 전례가 있다. [31] 사실 박지성 시절부터 맨유의 최대 라이벌중 하나였기에 이유 없이 욕을 먹었고 박주영 이후에도 손흥민이 토트넘으로 이적해 허구한날 무개념 토트넘팬들의 주된 욕받이 타겟이 아스날이 됐다. 덕분에 국내 아스날 팬들은 한국인 선수가 아스날로 이적한다는 이적설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혹여나 주변에 아스날 골수 팬이 있다면 한국인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좋다. [32] MLS에서 황혼기를 보내면서도 축구 도사 놀이를 하던 앙리를 20대의 전성기 나이인 박주영이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 앙리의 말도 안되는 클라스를 보여준다. 그게 아니더라도 미친 득점왕 페이스를 쓰던 반 페르시나 아스날의 원탑 레전드인 앙리를 박주영이 어떤 방식으로든 밀어내는건 불가능했다. [33] 허정무호도 그렇지만 조광래 감독에게 박주영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정도의 시합내용의 차이가 있었다. [34] 실제로 최용수 감독도 FC서울에 박주영이 복귀하고 나서 인터뷰에서 주영이의 무릎이나 몸상태가 좋지 않은건 많은 시합을 소화해서 라고 덧붙였다. [35]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재하 단장이 한 말이다. [36] 그러나 팀 내 최다 연봉은 곽태휘로 추정되고 있다. [37] 이 두 번호는 팀 내의 주전 공격수들이 주로 부여받는다. [38] 여기서 샤신한준희 KBS 해설위원이 박주영과 김현성을 필드 위에 함께 두어야 한다고 탄식했다. [39] 박주영 자신의 주특기였던 오른발로 상당한 거리에서 왼쪽으로 감아찼다. [40] 원래 한 골 더 넣긴 했는데 오프사이드로 무산되었다. [41] 10년의 박주영은 포스트플레이도 좋았지만 기본적으로 이정협보다 공을 다루는 능력이 좋았다. [42] 빅 앤 스몰 조합의 스물이 제 포지션인 김신욱은 말할것도 없고, 슈틸리케의 황태자 이정협이나 K리그에서 주목받고 있는 황의조, 주민규, 유럽파에서 관심을 받고있는 석현준까지 모두 슈틸리케 감독이 원하는 중앙 공격수 타입은 아니다. [43] 박주영이 일부러 맞췄다고 판단되면 PK로 선언되지 않은 것이 맞다. [44] 후반기에는 전남전 프리킥골이 다다. [45] 가장 최근 예로 파울루 벤투 벤투 감독이 부임한 뒤 첫 평가전이 있다. 박힌 돌이던 굴러온 돌이던 새 감독의 눈도장을 받기 위해 정말 미친 듯이 뛰는 게 보인다. [46] 말컹, 제리치, 주니오 세 선수가 20골 고지에 올랐고, 이적한 데얀조차 10골을 넘겼다. 그런데 서울은 고요한이 최다 득점자이며, 팀 득점은 12개 팀 가운데 꼴찌를 다투고 있다. [47] 여기에는 여러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 특히 박희성의 존재인데 직접 관전한 사람들 얘기로는 R리그에서도 특별한 모습은 보여 주지 못했다는 의견이 흉흉한데 1군에 합류하고 선발로도 뛰면서 이을용 감독의 전술에 안 맞았던가 혹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지던 프런트와의 불화 등 여러 가지 추측이 있다. 7월 22일 대구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했으나 다시 나온 것이 상당한 의심을 사고 있다. 이때 팀과 무언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48] 게다가 박주영이 현재까지 저지른 논란이 많다 보니 나중에 와서 해명을 한다 해도 순순히 받아들이기 힘들고 해명을 할 시 정말로 박주영은 올해로 서울을 떠나야만 한다. 그래서 과거는 넘어가자는 의미로 자신이 실력이 부족했다는 표현을 했을지도 모른다. 올해 박주영이 상당한 부진을 보여 준 건 사실이지만 톱 포지션만 놓고 보면 톱에 안 맞는 선까지 톱으로 쓰는 전개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최용수 감독이 현재 톱 포지션은 함량 미달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안델손, 보얀 마티치 등은 최용수 감독 복귀 이후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49] 하나 더 사족을 덧붙여서 윤주태 또한 이을용 체제에서 복귀했으나 벤치에 한 번 앉은 것 빼고는 전혀 중용하지 않았다. 윤주태가 원톱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투톱에서 박희성-윤주태 조합이라면 나름 기대할 만하고 후반 조커로 써도 될 것을 전혀 이용하지 않는 것 또한 의문으로 남는다. 실제로 최용수 감독 체제에서는 2골을 기록했고 11월 24일 경기에서는 골대를 맞추는 매서운 활약을 보였다. 아예 톱 포지션 자체의 의미를 상실한 황선홍, 이을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문이었던 시절이다. [50] 그러나 박주영 또한 득점 찬스에서는 아쉬움을 보였다. [51] 조금 더 욕심을 부리면 복귀전인 강원전에서 한 방 더 터뜨리고 인천전과 상주전에서 한 방만 터졌으면 역시 박주영이라는 평가가 나왔을 것이다. 감독에, 구단에, 팀 분위기에 정말 지지리 운도 안 따른 해였다. [52] 박주영이 프로가 된 후 아마도 가장 먼 거리에서 기록한 골일 것이다. [53] 전반 막판에 행운의 찬스를 잡았으나 홈런을 날렸고 프리킥도 영점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54] 박주영의 단점 중 하나가 상대가 마음 먹고 라인을 내리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무릎이 전성기 같지 않아 공중볼 싸움은 시도하기 힘들고 작년부터는 프리킥과 코너킥을 전담하는 등 해가 갈수록 헤딩은 점점 사라지고 킥에 중심을 두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55] 하지만 아직 특유의 1.5~2선에서 연계에 있다가 단숨에 1선으로 치고 올라 득점에 가담하는 면은 경쟁력이 있다. 하지만 인천전에서는 상대가 6백으로 나온지라 사이드에 틈이 생기지 않아 제대로 공격할 수가 없었다. 이 점은 페시치도 마찬가지. [56] 2005년 청소년 국가대표 시절 나이지리아전 실축 이후 공식 경기에서 한 번도 PK 실축이 없었다. 그 기록이 14년 만에 깨진 셈. [57] 슛도 아니고 진짜로 패스 수준이었다. 정황상 칩슛을 시도했던 듯. [58] 그런데 경기 후 박주영의 인터뷰에 따르면 사실 슛이 아니었고(...), 골대와 선수들 사이로 절묘한 패스를 찔러 주려 한 것인데 운이 좋았다고 한다. [59] 그러나 이게 정말인지는 의문인 게 2012년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4명을 제치고 넣은 골도 빗맞아서 들어갔다고 했고 2018년 승강 플레이오프 때 40m 장거리 골도 골키퍼가 나오길래 그냥 찼더니 들어갔다고 말했다. 겸손으로 말한 듯하며 정말로 노리고 찼을 가능성이 높다. [60] 헤딩한 곳은 부상과 상관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끝까지 뛰었다고 한다. [61] VAR논란은 있었으나 확인 결과 골로 인정되었다. [62] 지난번 슈퍼매치의 영향으로 노동건 골키퍼와의 재대결로 관중이나 시청자들이 상당히 긴장하면서 시청했다고 한다. [63] 하지만 시합은 논란에 이은 판정과 주세종의 퇴장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64] 부상으로 4-5월 공백기에 지도자 자격시험 연수를 다녀왔다고 한다. [65] 위에 4-5월 공백기에 지도자 연수를 갔다온게 결정적인데 보통 부상을 당하면 재활훈련에 매진하지 지도자 연수를 가는 케이스는 드물다.14년 브라질 월드컵 끝난뒤에도 지도자 연수는 받았지만 당시엔 소속팀이 없고 무엇보다 부상이 아니었다. [66] 데얀의 수원 삼성 이적과 다른 점은 데얀은 서울을 나가기 전 시즌까지 15골 이상을 넣던 핵심 중의 핵심 스트라이커였다면 박주영은 2020 시즌부터는 기량이 급속도로 하략했고 주전에서도 서서히 밀린 상황이었다. 박주영이 현역 연장 의지가 강한 만큼, 더 이상 FC 서울에서 주전으로 뛸 수 없는 현재 기량을 생각하면 서울에 잔류하는 것보다는 다른 도전을 위해 팀을 떠나는 것이 선수 본인에게 더 도움이 되는 선택일 것이다. [67] 2022년 FA 명단에 이름을 올려 계약 기간이 1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68] 조수혁, 김태환, 박용우, 김성준, 고명진, 윤일록, 이청용, 박주영. [69] 2015년 사우디 아라비아리그 알 샤바브 FC에서 FC 서울로 복귀했을 때 받은 등번호와 같다. [70] 9+1=10의 의미가 강하다 [71] 전반 6분만에 부상당한 센터백 김기희를 신형민으로 교체했다. [72] 푸른파도2 3화에서 코로나 증세를 앓고 있는 상태로 어쩔 수 없이 무효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뛰었다고 밝혔다. [73] 정작 VAR을 통해 느린 화면으로 돌려보면 마상훈이 먼저 박주영을 팔로 미는 장면이 있었는데, 김우성 심판이 VAR을 보고도 공격자 반칙으로 노 골을 선언했다. [74] 절묘하게도 박주영이 K리그에 복귀한 2015년 이후로 전북이 리그 우승을 못 한 적이 딱 두번 있었는데, 두번 다 박주영의 소속팀이 우승을 거머쥐었다. 또, 그 중 첫번째 리그 우승했던 2016년 당시 전북이 우승을 눈앞에 뒀을 때 그 우승을 빼앗은 장본인이 본인이다.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서울 우승시에는 명백히 주인공이었고 울산에서는 조연이었다는 점이다. [75] 후반 막판 교체를 예상한 팬들도 많았지만 사실 울산의 경우 2022년 당시 이호(1984)의 경우처럼 은퇴를 앞둔 선수의 경우 전반 종료 직전에 투입시키고 후반 시작과 동시에 다른 선수로 교체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박주영 역시 38라운드에서 이런 식으로 마지막 경기를 가질 가능성이 높았지만 특별히 친정팀 서울과의 경기인 만큼 37라운드에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76] 강원과의 공동 1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