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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20:35:27

문경새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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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도립공원
문경새재
聞慶새재 (조령)
Mungyeong Saejae
<colbgcolor=#6ab048> 위치 경상북도 문경시
충청북도 괴산군
높이 642m
좌표 북위 36° 46′ 1.46″
동경 128° 4′ 27.29″
면적 5.3㎢
위성사진
파일:문경새재도립공원.png
문경새재 도립공원
지정일 1981년 6월 4일
관리주체 경상북도
홈페이지 파일:경상북도 휘장.svg
파일:external/tour.gbmg.go.kr/?1391.jpg
문경새재의 제1관문인 주흘관

1. 개요2. 설명3. 교통4. 매체5. 기타6. 조령산불됴심표석
6.1. 외부 링크6.2.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6호
7. 관련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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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새재 또는 조령(鳥嶺)은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사이를 잇는 해발 642m의 고개로, 소백산맥의 조령산(1,017m)을 돌아 간다.

새재는 조령을 순우리말로 읽은 것으로, '나는 도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전통적으로 충청도 경상도의 도계였으며, 오늘날에도 충청북도 경상북도의 도계 중 하나를 이룬다. 경상북도에서는 조령 일대를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으며, 이 밖에 명승 제32호와 사적 제147호(새재에 설치된 관문들('문경 조령 관문'))로도 지정되어 있다.

2. 설명

문경새재의 험준함은 예로부터 유명해서, 삼국시대 때는 신라 초기에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을 막는 국경선이었고, 임진왜란 당시 신립이 충주 탄금대가 아닌 이곳에서 결진하여 매복했다면 왜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를 더 효과적으로 막았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 파견 온 명나라 장군 이여송은 문경새재의 지형을 보고 "이 험준한 고개를 지킬 생각을 못 하다니 신 총병도 참 지략없는 사람이다."하고 신립을 비웃었다고 한다. 심지어 일본마저 이곳에 매복이 있을까봐 긴장했으나 이무도 없단 보고에 이런 명당을 비우다니 조선엔 인재가 없다고 비웃었다. 그가 조령에서 적을 막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탄금대 전투 문서의 6번 문단으로.

파일:external/db.kookje.co.kr/L20120104.22007202503i1.jpg

한양 동래를 연결하는 영남대로의 중추로 추풍령(좌로), 죽령(우로)과 함께 낙동강 유역( 경상도)과 한강 유역( 경기도)를 잇는 가장 중요한 경로였다. 전근대 시절에는 죽령은 자체가 험한데다 단양의 남한강 협곡때문에 한산했고, 추풍령은 우회길인데다 옥천과 영동사이에 있는 금강의 협곡들 때문에 각광을 받지 못했으나, 조령은 고개가 험한 것을 빼면 한성과 경상도를 직선거리에 가깝게 이었고 협곡과 같은 방해물이 적었다. 그 덕분에 청주에서 회인과 보은을 거쳐 상주로 가는 고개인 화령과 함께 주요 고개로 자주 이용이 되었다.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경상도의 선비들이 화령과 함께 그야말로 사랑해 마지않았는데, 죽령으로 향하면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어가면 추풍 낙엽처럼 떨어지는 데 반해, 문경새재를 넘으면 말 그대로 경사를 전해듣고(聞慶) 처럼 비상하리라는 미신이 있었기 때문.

후삼국시대 견훤 왕건의 격돌이 있었던 격전지 가운데 하나이며(929년 가은성 공방)[1]

지금도 복원이 잘 되어있어 꽤 준수한 트레킹 코스로 3개 관문(주흘, 조곡, 조령관)이 있다.

3. 교통

오늘날 충주 - 문경간의 교통은 이화령을 지난다. 서울 - 부산의 지름길인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 나들목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3번 국도 34번 국도가 지나가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화령을 넘어간다.

그런데 중부내륙선 철도이화령이 아니라 조령산을 직접 돌파한다. 처음에는 이화령으로 계획됐으나 지질 조사 결과 문경새재를 직접 돌파하는 것으로 계획이 바뀌었다. 그래서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에 교각을 세우고 있다. 이곳에 연풍역이 들어설 예정이다.

문경새재의 인지도가 워낙에 높은지라 이화령을 지나는 도로에도 문경새재 이름을 붙이고 있다. 과거에는 매우 붐볐으나 이제는 한산한 자전거 도로이자 트레커들의 코스가 된 3번 국도(신작로)의 이화령 고갯길이 새재 자전거길로 불리며, 중부내륙고속도로의 터널도 이화령을 지나는데 문경새재터널로 이름지어졌고, 근처에 있는 나들목의 이름 역시 문경새재 나들목이다.

3관문에서 수안보와 충주로 가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길고, 막차가 17:10에 있는데 실제로는 5분 일찍 도착하여 출발하므로 막차 시간에 주의를 요구한다. 그 외 소조령(확장되기 전 2차선 3번 국도)까지 나가면 '신혜원'이라는 정류장이 있는데 여기서 괴산군에서 수안보를 오가는 군내버스를 탈 수 있다.

4. 매체

5. 기타

6. 조령산불됴심표석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Saejae_dyosimbi.jpg
경상북도 문화재자료[2] 제226호.

옛날에 세워진 산불 조심 표석이 이곳에 있는데 특이하게도 '산불심'이라고 쓰고 '산불심'이라고 읽는다. 이 표석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확실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구개음화가 활발해진 18세기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를 의도한 표기가 '됴'라는 것 자체가 이미 구개음화가 상당 부분 진행된 시기에 이 비석이 세워졌음에 대한 방증. 즉 발음은 [조]로 하면서도 쓸 때에는 "원래 '됴'로 써야 맞는 것이겠거니" 하며 지레짐작을 해 버린 경우이니, 일종의 과도교정에 해당한다. 사실 '조심'의 '조(操)'의 중고한어 및 현대 표준중국어 발음은 [t͡sʰɑu]로, 초성이 무성 치경 파찰음이기 때문에 'ㄷ'이 올 이유도 접근음 [j]가 올 이유도 없다. 아마 조선 초기에는 '조'가 [t͡so]라고 발음됐던 것이 나중에 [t͡ɕo]라고 읽히게 되었는데[3], 이를 '됴'라고 인식해서일 것이다. 즉 [t͡so]와 [tjo]가 모두 [t͡ɕo]로 뭉개진(…) 상황에서 [t͡ɕo]라는 발음에만 기대어 원음이 [tjo]였을 것이라고 잘못 판단하여 새긴 것. 또한 의 순우리말인 '뫼' 혹은 '메'가 잘 쓰이지 않는 시기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옛한글로 쓰인 비석이 총 5기가 남아있는데, 그 중에서 순한글로 쓰인 유일한 비석인데다 자연보호에 관한 당시의 시선도 알 수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표기가 독특한 느낌으로 보여서인지 이곳 주변에서는 팻말 등을 설치할 때도 비석처럼 쓰는 것이 불문율이다.

6.1. 외부 링크

6.2.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6호

산불조심의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해 세운 비로,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다.

서쪽면에 ‘산불됴심’이라는 순 한글 글자를 세로로 큼지막하게 새겨 놓았다. 조선시대에는 국경 수호와 산성 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하고 산불을 조심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으므로 이를 서민들이 잘 알 수 있도록 한글비를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순수 한글비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는 이 표석은 ‘조심’을 ‘됴심 ’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 영·정조 시대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7. 관련 영상




[1] 흥미롭게도 상주 출신이란 견훤은 정확히는 문경새재 출신이 된다. 물론 상주나 문경이나 거기가 거기. [2] 지정 문화재 카테고리로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가 아니나 가치가 있다 판단시, 지자체장이 선정한다. [3] 반절이 七刀切이므로 ㅣㄹ+ㄷ=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