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을 포함하는 지명에 대한 내용은 동래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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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
낙민동 |
명륜동 | 명장동 | 복천동 | 사직동 | |||
수안동 | 안락동 | 온천동 | 칠산동 |
부산광역시의
자치구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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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구
東萊區 Dongnae-gu |
}}} | |||
<colbgcolor=#3b297d><colcolor=#fff> 구청 소재지 | 온천천로359번길 70 (낙민동) | |||||
광역자치단체 | 부산광역시 | |||||
하위 행정구역 | 13 동[1] | |||||
면적 | 16.63㎢ | |||||
인구 | 271,639명[2] | |||||
인구밀도 | 16,334.27명/㎢[3] | |||||
구청장 |
|
장준용 (초선) | ||||
구의회 |
|
5석[4] | ||||
|
5석[5] | |||||
|
4석[6] | |||||
시의원 |
|
3석[7] | ||||
국회의원 |
|
서지영 (초선) | ||||
상징 | <colbgcolor=#3b297d><colcolor=#fff> 구화 | 매화 | ||||
구목 | 소나무 | |||||
구조 | 학 | |||||
구가 | 동래의 노래 | |||||
지역번호 | 051 | |||||
| | | |
[clearfix]
1. 개요
|
|
<rowcolor=#fff> 구 동래구청[8][9] | 임시청사 |
|
|
<rowcolor=#fff> 신청사 조감도 |
일제강점기에는 부산 도심이었던 지금의 중구 일대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었기 때문에 동래온천에서 출발해 서면을 지나 부산 시내를 잇는 부산전차의 종착역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부터 몇 개의 극장이 있었는데, 90년대 무렵 마지막 남은 극장까지 모두 닫았다. 하지만 50대 이상은 아직도 이곳을 극장가라고 부른다. 더 나이드신 분은 옛날 시장터라고도 한다.
구 마스코트 뚜기는 지역 탈춤인 동래야류[10]에 나오는 말뚝이 탈에서 유래했으며 나름대로 귀엽게 생겼다.
2. 상징
동래구의 CI |
삼각형은 금정산의 높은 기상과 무궁한 발전, 가운데 학(鶴) 형상은 고고한 선비정신과 역사성, 하단의 3선은 온천이 있는 문화·관광의 고장을 뜻함 |
동래구의 브랜드 슬로건 |
부산의 뿌리인 동시에 비전인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동래구의 이미지를 동래학춤의 시각적인 역동감과 청각적인 흥겨움의 추임새로 표현, 전통문화의 계승과 정체성 확립과 신명나는 축제의 고장임을 나타냄 |
동래구의 마스코트 |
양반의 무능과 허례허식을 풍자하고 조롱하던 말뚝이가 동래의 뚜기와 뚜미가 되어, 맑고 큰 눈으로 세상을 직시하고 커다란 귀로 구민의 낮은 목소리, 쓴소리까지 놓지지 않고 전달하는 구민의 대변자 역할을 한다. |
동래구의 상징물 | |
<colbgcolor=#fff,#1c1d1f> 구목 소나무 |
사철 늘 푸르름이 있어 동래구민의 한결같은 의지와 꿋꿋한 기상을 뜻함. |
구화 매화 |
엄동설한을 견디고 화사하고 깨끗하게 개화하는 꽃으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밝고 맑은 동래구민의 마음가짐을 뜻함. |
구조 학 |
고고한 기품과 순결성은 우리 고장의 역사와 전통을 가꾸어 온 티없이 맑은 선비의 모습과 구민의 정직함을 뜻함. |
3. 역사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며 근현대 이전 부산의 역사 대부분은 동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동래 및 부산광역시/역사 문서로.동래라는 지명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신라 이전 삼국시대 초기에는 거칠산국이 있었으며 신라에 정복된 뒤 신라 경덕왕 17년인 757년에 거칠산군을 동래군으로 개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경덕왕이 같이 지은 동평, 기장과 함께 부산에서 가장 오래 된 지명이다. 신라~고려 때 동래군의 중심지는 원래 지금의 수영구쯤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하여 고려시대에 지금의 동래구의 위치로 옮겼다.
조선시대에 들어 외국과의 창구로서 발전하고 동래 관할인 부산 포구의 중요성이 늘어나면서 동래부(東萊府)로 승격되었으며, 동래부의 영역은 오늘날의 강서구, 기장군, 북구 대부분의 지역을 제외한 부산광역시 전역에 해당된다. 부산은 동래의 하위 지명이었다(동래부 부산진, 동래부 부산포 등). 오늘날에는 반대로 부산이 상위 지명(부산광역시)이 되고 동래가 그 하위 지명(동래구)이 되었다.
1895년 23부제가 잠시 시행되었을 때 동래부는 현재의 행정구역 상으로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양산시, 경주시, 거제시, 포항시를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1년 뒤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되자 동래부는 이전의 동래부로 돌아간다.
1910년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동래부가 부산부로 개칭되었다가, 1914년 부산부에서 개항장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을 동래군으로 분리시켰다. 이때의 동래군은 현재의 강서구, 중구, 영도구, 동구, 서구[11]를 제외한 부산광역시 전역을 포함했다. 이후 동래군은 지속적으로 부산부에 편입되고, 1942년에는 현재의 동래구 지역이 부산부에 편입되었다. 해방 이후 1963년 동래군은 현재의 기장군의 영역으로 축소되었다가 1973년 양산군에 흡수되어 폐지되었다.
한편 부산부에 흡수된 동래 지역에는 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57년 부산시에 구(區)제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6개 구 중 하나로 동래구가 설치되었다. 당시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12] 당시의 동래구는 현재의 금정구 남부, 수영구, 해운대구, 연제구를 포괄한 꽤 넓은 구였다. 1963년에는 부산직할시가 출범하면서 동래군 북면을 편입하였다. 이때의 동래구는 지금에 비해서 상당히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5년 지금의 수영구 일대가 부산진구 일부와 함께 남구로 분리되었고, 1980년 수영강 동부 지역이 해운대구, 1988년 북부 2/3가량이 금정구로 분구하고 1995년 남아있던 면적 중 남부의 절반 가량이 연제구로 분구하여 면적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현재 남아있는 동래구 관할 지역은 조선시대 동래부의 읍치 지역을 포함한다. 그래서 그런지 동래구를 동서로 지나가는 부산 도시철도 4호선 공사 도중 임진왜란 당시 동래성 전투의 유물이 발굴되어 공사가 지연되기도 하였다.
'부산'(광역시)과 '동래'(구)의 관계는 광주광역시의 광산구(특히 송정), 대구광역시의 칠곡, 대전광역시의 유성, 창원시의 마산, 인천광역시의 부평[13], 서울특별시의 영등포구(과거) 등과도 비슷하나, 이 지역들이 아직도 광주, 대전, 창원, 인천 본시가지와 자기 동네를 구분하는 의식이 상당히 뚜렷하게 남아 있는 반면, 동래 사람들은 '부산'과 '동래'를 구분하는 의식이 과거에는 있었지만 지금은 동화되어 거의 없어졌고 부산광역시의 일부로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14][15]
4. 인구
부산광역시 동래구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1966년 191,340명
|
1970년 372,901명
|
1975년 569,099명
|
1975년
10월 1일 동래구 수영출장소[관할행정동] →
부산진구 대연출장소와 합병되어
남구 분리 승격 1976년 9월 1일 동래구 해운대출장소[17] → 부산시 해운대출장소로 승격 분리 1978년 1월 1일 동래구 일부지역[18] → 해운대출장소로 이관[19] |
1980년 676,851명
|
1985년 824,632명
|
1988년 1월 1일 동래구 일부지역[20] → 금정구 분리 승격 |
1990년 596,473명
|
1995년 3월 1일 동래구 거제동· 연산동 → 연제구 분리 승격 |
1995년 313,176명
|
2000년 300,081명
|
2005년 276,095명
|
2010년 282,779명
|
2015년 272,837명
|
2020년 270,745명
|
2024년 10월 271,639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70만 명
|
행정동별 인구 통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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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제3동 36,836명
|
수민동 31,011명
|
|
명륜동 26,477명
|
|
안락제2동 25,966명
|
|
사직제2동 25,282명
|
|
온천제1동 24,423명
|
|
온천제2동 24,411명
|
|
사직제3동 17,100명
|
|
명장제2동 13,963명
|
|
안락제1동 13,725명
|
|
명장제1동 13,553명
|
|
사직제1동 10,150명
|
|
복산동 8,607명
|
|
2023년 11월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
법정동별 인구 통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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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동 85,319명
|
사직동 51,969명
|
|
안락동 39,436명
|
|
명장동 27,392명
|
|
명륜동 26,371명
|
|
낙민동 19,664명
|
|
수안동 11,112명
|
|
복천동 5,471명
|
|
칠산동 3,050명
|
|
2024년 1월 기준 행정안전부 법정동별(행정동 통반 단위) 성/연령별 주민등록 인구수, 그래프 최대 값은 8.5만 명 |
1995년 수영구까지 분구된 이후 동래구 인구는 조금씩 감소 추세이나, 부산광역시 전체 인구 감소 추세에 비해서는 동래구의 인구 감소는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동래구 관내에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부산 도시철도 3호선, 부산 도시철도 4호선, 동해선 광역전철이 모두 있다 보니 이들 역세권을 따라서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 행정동별 인구추이 #===
수민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일자미상 수안동 + 낙민동 → 수민동 신설 |
1966년 9,272명
|
1970년 9,009명
|
1975년 11,995명
|
1980년 21,678명
|
1985년 30,963명
|
1990년 30,086명
|
1995년 27,434명
|
2000년 33,938명
|
2005년 31,744명
|
2010년 34,412명
|
2015년 32,778명
|
2020년 33,017명
|
2023년 8월 31,15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5만 명
|
복산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일자미상 복천동 + 칠산동 → 복산동 신설 |
1966년 10,288명
|
1970년 14,674명
|
1975년 18,385명
|
1980년 19,375명
|
1985년 21,393명
|
1990년 23,112명
|
1995년 20,290명
|
2000년 17,269명
|
2005년 14,757명
|
2010년 13,913명
|
2015년 12,506명
|
2020년 10,175명
|
2023년 8월 8,735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
명륜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일자 미상 명륜동(법정동) → 명륜동(행정동) |
1966년 11,145명
|
1970년 15,850명
|
1975년 23,072명
|
1979년 8월 8일 명륜동 → 명륜제1동, 명륜제2동 분동 |
1980년 27,284명(명륜제1동 13,503명 + 명륜제2동 13,781명)
|
1985년 28,348명(명륜제1동 13,435명 + 명륜제2동 14,913명)
|
1990년 28,968명(명륜제1동 12,493명 + 명륜제2동 16,475명)
|
1995년 25,654명(명륜제1동 9,963명 + 명륜제2동 15,691명)
|
2000년 21,177명(명륜제1동 7,854명 + 명륜제2동 13,323명)
|
2005년 18,045명(명륜제1동 6,409명 + 명륜제2동 11,636명)
|
2010년 13,330명(명륜제1동 5,589명 + 명륜제2동 7,741명)
|
2011년 3월 1일 명륜제1동 + 명륜제2동 → 명륜동 합동 |
2015년 20,820명
|
2020년 24,678명
|
2023년 8월 26,440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
온천제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일자미상 온천동 → 온천제1동, 온천제2동 분리 |
1966년 14,578명
|
1970년 21,086명
|
1975년 23,221명
|
1980년 23,474명
|
1985년 24,273명
|
1990년 19,065명
|
1995년 16,713명
|
2000년 13,403명
|
2005년 14,434명
|
2010년 19,040명
|
2015년 20,324명
|
2020년 19,427명
|
2023년 8월 24,05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5만 명
|
온천제2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일자미상 온천동 → 온천제1동, 온천제2동 분리 |
1966년 5,371명
|
1970년 15,131명
|
1975년 28,799명
|
1979년 1월 1일 온천제2동 → 온천제2동, 온천제3동 분동 |
1980년 20,282명
|
1985년 26,894명
|
1990년 27,795명
|
1995년 27,322명
|
2000년 24,561명
|
2005년 21,615명
|
2010년 23,587명
|
2015년 19,535명
|
2020년 15,191명
|
2023년 8월 24,448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
온천제3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79년 1월 1일 온천제2동 → 온천제2동, 온천제3동 분동 |
1980년 23,938명
|
1985년 28,959명
|
1990년 30,473명
|
1995년 31,619명
|
2000년 28,991명
|
2005년 32,281명
|
2010년 35,858명
|
2015년 35,914명
|
2020년 39,185명
|
2023년 8월 37,17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4만 명 |
사직제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일자미상 사직동(법정동) → 사직동(행정동) |
1966년 3,404명
|
1970년 5,810명
|
1975년 15,374명
|
1979년
1월 1일 사직동 → 사직제1동, 사직제2동 분동 1979년 8월 8일 사직제1동 → 사직제1동, 사직제3동 분동 |
1980년 11,154명
|
1985년 12,876명
|
1990년 13,897명
|
1995년 12,442명
|
2000년 10,044명
|
2005년 9,373명
|
2010년 9,666명
|
2015년 9,590명
|
2020년 10,787명
|
2023년 8월 10,212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1.5만 명 |
사직제2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79년 1월 1일 사직동 → 사직제1동, 사직제2동 분동 |
1980년 20,377명
|
1985년 25,238명
|
1990년 26,787명
|
1995년 27,322명
|
2000년 27,054명
|
2005년 18,797명
|
2010년 30,230명
|
2015년 28,037명
|
2020년 28,203명
|
2023년 8월 25,26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만 명
|
사직제3동 인구 추이 (1980년~현재) |
1979년 8월 8일 사직제1동 → 사직제1동, 사직제3동 분동 |
1980년 23,111명
|
1985년 28,379명
|
1990년 29,691명
|
1995년 31,619명
|
2000년 21,199명
|
2005년 18,537명
|
2010년 17,228명
|
2015년 13,731명
|
2020년 17,707명
|
2023년 8월 17,016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
안락제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일자미상 안락동(법정동) → 안락동(행정동) |
1966년 5,591명
|
1970년 11,087명
|
1975년 18,930명
|
1980년 31,825명
|
1982년 9월 1일 안락동 → 안락제1동, 안락제2동 분동 |
1985년 20,912명
|
1990년 25,595명
|
1995년 22,940명
|
2000년 19,022명
|
2005년 15,423명
|
2010년 17,769명
|
2015년 16,464명
|
2020년 14,945명
|
2023년 8월 13,921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25만 명
|
안락제2동 인구 추이 (1985년~현재) |
1982년 9월 1일 안락동 → 안락제1동, 안락제2동 분동 |
1985년 24,501명
|
1990년 30,416명
|
1995년 27,635명
|
2000년 30,728명
|
2005년 29,457명
|
2010년 32,902명
|
2015년 32,544명
|
2020년 27,825명
|
2023년 8월 26,082명
|
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5만 명
|
명장제1동 인구 추이 (1966년~현재) |
일자미상 명장동(법정동) → 명장동(행정동) |
1966년 865명
|
1970년 2,857명
|
1975년 5,748명
|
1980년 19,303명
|
1985년 33,147명
|
1990년 1월 1일 명장동 → 명장제1동, 명장제2동 분동 |
1990년 27,2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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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5,01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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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2,11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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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8,963명
|
2010년 17,56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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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5,09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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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4,51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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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3,65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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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3.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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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제2동 인구 추이 (1990년~현재) |
1990년 1월 1일 명장동 → 명장제1동, 명장제2동 분동 |
1990년 20,688명
|
1995년 21,775명
|
2000년 19,890명
|
2005년 18,556명
|
2010년 17,29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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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5,23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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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5,09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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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4,018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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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는 현재 행정구역이 아닌 해당 연도 행정구역 기준, 그래프 최대 값은 2.25만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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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지역 특징
금정산 자락이 내려오는 극서부를 제외하고는 부산광역시 치고는 평평한 편이고, 온천천이 구의 북쪽에서 내려와서 동쪽으로 흘러나간다. 구가 전체적으로 오래 된 거주지이다보니[21] 전체적으로 오래된 느낌이 나는 듯. 유명한 동래온천이 있다. 온천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 때문에 조선시대 일본 사신들이 자주 찾았다. 일제시기에 이 지역에 일본인 중심의 온천촌이 형성되었고, 온천장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아직도 동래 온천 일대는 봄만 되면 벚꽃이 만개한다. 원래 조선 사람들은 주로 동래 시장(옛 동헌 근처) 근처에 모여 살았고, 일제시기 두 지역 주민들 간에 알력도 있었다.전반적으로 오래된 주거지역으로 상업지역이 연제구로, 공업지역 및 새로 개발된 지역이 금정구로 모두 분리해나간 상황. 사직동~ 온천동 구역이 그나마 번화가라고 할 만한 정도이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부산의 대표 상권 중 하나인 부산대상권이 빠르게 무너지면서 반대로 동래역 주변 상권이 빠르게 발달하였다. 그리고 동래구는 과거 부산의 부촌중 한곳이었고, 학군 부분에서는 아직도 부산 상위권 학군을 자랑하고 입시학원들이 동래구 사직동쪽에 모여 있는 지역이라서, 40~50대 부부+학생 자녀로 이루어진 가정이 많은 편이며, 동네 분위기가 조용해서 주거에 적합하며 학교도 많다. 그중에서도 동래구 하면 흔히 떠올리는 동래구의 서쪽 지역인 사직동, 명륜동, 온천동 일대는 일부 재개발 구역을 제외하면 크게 낙후된 지역이 없고, 중상류층 가정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다. 조선시대부터 동래 정씨를 비롯한 양반들이 거주하던 지역으로 전통적으로 오래된 주거지역이다 보니 단독주택의 비율이 높았었지만, 학군, 교통, 생활 환경이 뛰어나서, 많은 지역의 재개발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점차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는 추세며, 이 때문인지 2023년에는 오히려 역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동래온천, 동래성, 충렬사, 부산복천박물관, 식물원, 금강원, 사직구장,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우장춘기념관, 동래고분 등이 있고, 인근에 시청, 교육청, 법원, 경찰청, 부산대학교, 부산교육대학교가 있다.
6.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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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b297d> ㄱ | <colbgcolor=#ffffff,#191919> 구만덕로 · 금강공원로 · 금강로 · 금정마을로 | |
ㄴ | 낙민로 | ||
ㄷ | 동래로 | ||
ㅁ | 명륜로 · 명서로 · 명안로 · 명장로 · 문화로 · 미남로 | ||
ㅂ | 반송로 · 복천로 | ||
ㅅ | 사직로 · 사직북로 · 삼어로 · 서동중심로 · 석사로 · 석사북로 · 쇠미로 · 수안로 · 시실로 | ||
ㅇ | 안남로 · 안락로 · 안연로 · 여고로 · 여고북로 · 연안로 · 온천장로 · 온천천로 · 우장춘로 | ||
ㅈ | 종합운동장로 | ||
ㅊ | 차밭골로 · 체육공원로 · 충렬사로 · 칠산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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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만덕터널과 제2만덕터널이 있어 북구 방향으로 빠르게 갈 수 있다. 주요 교차로는 미남교차로( 미남역), 내성교차로( 동래역 인근), 동래교차로( 수안역), 안락교차로( 충렬사역 인근)가 있다. 만덕터널~동래고등학교 구간은 1년 365일 내내 차가 막히는 구간이다. 심각하게 차가 많이 막힐 때에는 안락동 뜨란채아파트까지 막힐 때도 있다.
6.1. 관내 철도 역 목록
동래구의 철도역 | |
부산 도시철도 1호선 | 동래역, 명륜역, 온천장역 |
부산 도시철도 3호선 | 사직역, 미남역 |
부산 도시철도 4호선 | 미남역, 동래역, 수안역, 낙민역, 충렬사역, 명장역 |
동해선 광역전철 | 동래역(동해선), 안락역, 부산원동역 |
교통이 우수한 편이다. 특히 도시철도는 부산시 구군들 중에서 가장 많은 노선을 보유중이다[22]. 부산 도시철도 1호선[23], 부산 도시철도 3호선[24], 그리고 부산 도시철도 4호선[25]이 지나간다. 또한 동해선 동래역[26], 안락역, 부산원동역이 위치해 있다.
7. 경제
비록 해운대구를 필두로 해안가 인근 지역들이 신흥 부촌으로 성장해버린 탓에 지금은 예전과 같은 위상의 부촌은 아니지만,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동래구 역시 부산 내에서는 재정자립도가 준수한 편이다.과거 동래구에 버스 터미널(고속버스터미널,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을 때는 정말 잘 나갔다. 그야말로 부산의 관문 역할을 톡톡히 해 왔기 때문에 주변에 상권이 형성되며 경제력이 그만큼 좋았기 때문이다.
7.1. 금융
동래구에 위치한 금융기관[괄호] | |||
제1금융권[괄호] | |||
국가기관 | |||
동래우체국 (7) | |||
국책은행 | |||
중소기업은행 (2) | |||
특수은행 | |||
농협은행(중앙회) (6) | |||
시중은행 | |||
신한은행 (1) | 우리은행 (3) | ||
SC제일은행 (1) | 하나은행 (4) | ||
국민은행 (5) | |||
지방은행 | |||
부산은행 (15) | 경남은행 (1) | ||
제2금융권(상호금융)[괄호] | |||
농업협동조합 | |||
동래농협 (4) | 부산축산농협 (1) | 부경양돈농협 (1) | 부산우유농협 (1) |
수산업협동조합 | |||
제1,2구잠수기수협 (1) | 대형기선저인망수협 (1) | 냉동냉장수협 (1) | |
새마을금고 | |||
온천새마을금고 (3) | 온천3동새마을금고 (3) | 안락새마을금고 (3) | 사직1동새마을금고 (2) |
사직2동새마을금고 (1) | 사직3동새마을금고 (1) | 수민동새마을금고 (2) | 복산동새마을금고 (1) |
명륜동새마을금고 (2) | 명장1동새마을금고 (2) | ||
명장2동새마을금고 (2) | |||
신용협동조합 | |||
부산동래신용협동조합 (2) | 부산성의신용협동조합 (1) | 부산제일신용협동조합 (1) | 온천장신용협동조합 (1) |
산림조합 | |||
부산광역시산림조합 (1) | |||
상호저축은행(상호금고) | |||
IBK저축은행 (1) |
7.2. 상권
7.2.1. 영화관
<colcolor=white> 동래 |
SCREENX SWEET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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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GV 아시아드|{{{#fff 아시아드}}}]] |
4DX SCREENX SWEET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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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 |
8. 관광
- 사직 야구장 - 롯데 자이언츠 홈구장.
- 부산사직체육관 - 부산 KCC 이지스, 부산 BNK 썸 홈구장
- 충렬사 - 임진왜란 때 왜구와 맞서 싸운 선조들을 기리기 위한 시설로 안락동에 위치해 있다. 송상현 장군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곳으로. 안락서원 자리에 지어졌다. 영내에 동래 읍성의 장대 중 하나인 동장대와 군관청이 있다. 군관청은 원래 수안경찰서 인근에 있던 것을 이전해온 것이다.
- 복천동 고분군 - 특히 인근에 조성된 복천박물관에서 가야시대의 유물을 직접 볼 수가 있다. 입장료가 공짜로 바뀌어 부담없이 들어갈 수가 있으니 가야, 그 중에서 금관가야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가볼 것을 추천.
- 동래온천(온천장) - 대한민국 최초의 온천으로 80년대까지만 해도 신혼여행지로 각광 받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방문객이 많다. 온천장역에서 육교를 건너면 쉽게 접근 가능하다.
- 금강공원
-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
- 동래 읍성 - 일제강점기 때 철거된 성곽과 장대(북장대, 서장대, 동장대)가 복원되어 있다. 성문은 복천동 고분 인근의 북문과 인생문만 복원되어 있다. 대부분 구간은 복천동 일대에 복원되어 있지만 일부 구간은 충렬사 영내에 남아 있다.
- 동래읍성임진왜란역사관( 수안역)
- 동래부동헌 - 조선시대의 광역시 격인 동래도호부의 시청사라고 할 수 있는 관청. 부산에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30] 비교적 최근인 1970년대 까지 보건소 같은 공공기관 건물로 사용되어 형태가 많이 변형되었다.
- 동래향교 - 조선시대 고등교육기관인 향교로 서울 명륜동과 마찬가지로 명륜동에 위치해 있다. 유림들이 매년 봄가을로 공자에게 제사를 지낸다. 동래 향교는 근처에 안락서원도 있어서 조선시대 당시 동래 고을의 교육 중심지였다.
- 온천천
9. 생활문화
9.1.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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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설립된 동래고와 동래중(설립 당시는 동래부학교. 당시는 한 학교였다가 1951년 분리되었다.) 같은 역사가 오래된 학교가 있다. 동래고 외에도 일대에 걸출한 고등학교가 많이 있어서 부산의 전통적인 8학군에 속한다. 사립고등학교들도 문제 사학들이 다른 구로 옮겨가거나 분구되어 모조리 떨어져 나간 상황이라, 다른 지역구의 사립학교들과 비교하면 대부분 학력수준이나 시설이 준수하고 사학비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며, 공립고등학교들도 대체적으로 시설 및 학교 수준이 준수해서 학군 자체는 남구, 해운대구와 함께 부산 내에서 최상위급이라 할 수 있다.[31] 최고 전성기때인 1980~90년대에는 지방 최고의 학군으로 통하는 대구광역시 수성구와도 비교되거나 뛰어넘었을 정도의 위용을 자랑했었다. 1980년대 부산 3대 부자(동일고무벨트 김진재, 동서대학교 장성만[32] 동성화학 백제갑)중 2명( 김진재 아들 김세연, 장성만 아들 장제국)이 동래구 학군 고등학교에 재학했었을 정도로 1980년대 당시 부산지역 실세들의 자제들이 동래구 학군에 많이 있었다. 심지어 1987년, 1988년에는 학력고사 전체 수석을 2연속이나 동래구 고등학교에서 배출되어서 전국적으로도 지명도를 얻었으며 이때 분양된 복천동 우성베스토피아 아파트는 동래 학군이 가장 과열되었던 시기에 분양되다 보니[33] 전국에서 투기꾼들이 몰려들어서 이슈가 되었을 정도였다. #
그 외에도 동래 학군의 고등학교들이 특기할만한 점이 있었는데, 1986년 2학기 교복부활 당시 동래학군의 여러 고등학교들이 가장 앞장서서 교복부활 대열에 동참했으며, 1990년경에는 동인고등학교를 제외한 대다수의 동래학군의 고등학교들이 교복부활을 하면서 전국에서 제일 먼저 교복부활이 이루어진 학군으로 보수적인 학부모들의 주목을 받았었던 적이 있었다.
반면 대학은 없는데, 원래는 있었으나 금정구, 연제구가 차례차례 분구하면서 없게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부산대학교(금정구)와 부산교육대학교(연제구)가 떨어져나갔다.
여담이지만 1970년대에 럭키금성그룹 (현재 LG그룹)에서 동래구에 사립 공업고등학교를 하나 만들 뻔 했다고 한다. # 지금의 동래 럭키아파트자리가 과거에 금성사 공장이었는데, 1970년대 후반에 금성사 공장 이전이 추진되면서 그 자리에 사립 공업고등학교를 만들어서 자사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려 구상했으나, 계획 변경으로 그 자리에 사립 공업고등학교 대신에 대단지 아파트인 동래 럭키아파트를 짓게 되었다고 하며, 사립학교 계획은 부산의 공업고등학교 대신에 진주 연암공업대학으로 실현되었다.
특수학교로는 명장동에 부산맹학교가 있다.
9.2. 음식
유명한 음식으로 동래파전이 있다. 일본인들에게 본격적으로 파전을 알린 것이 바로 동래파전. 비교적 굵은 파를 넣은 두툼한 해물파전을 부친 후 계란을 깨서 뚜껑을 덮어 만든다. 이런 스타일의 파전은 동래가 원조. 지역 명주인 산성막걸리[34]와 함께 먹으면 일품이다.근데 정작 원조라고 하는 집은 맛은 훌륭하지만 가격과 양이 좀 창렬하다. 초창기에는 시장통의 가판에서 파는 서민적인 음식이었지만 유명세를 타면서 고급화로 전환, 식기와 그릇을 놋으로 된 것을 썼고 동시에 가격도 그에 걸맞게 바뀌었다. 그래서 가격대가 워낙 쎈지라 지역 주민들은 잘 안간다.[35] 금강공원 올라가는 길에도 파전집이 있다. 그 유명한 동래파전과는 스타일이 다르지만 삼대천왕에 나올 정도로 네임드다.
9.3. 의료기관
관내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은 대동병원(432병상)이다. 동래봉생병원(255병상), 광혜병원(217병상)이 종합병원으로써 그 뒤를 잇고 있다. 중형 의료기관이 발달한 부산의 특성상 이들 병원이 의료수요를 충분히 커버하고 있지만, 대학병원급 의료기관이 동쪽과 남쪽에 치우쳐 있는 점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10. 정치
자세한 내용은 동래구/정치 문서 참고하십시오.11. 하위 행정구역
자세한 내용은 동래구/행정 문서 참고하십시오.
12. 논란
현재 건설중인 동래구 신청사를 짓기 이전에 구청자리에 문화재 조사를 한 결과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 걸친 유구와 유적이 다수 발견되었으나, 문화재청 권고를 무시하고 1년여만에 발굴현장을 공개하였었다. 부산 내에서 가장 오래된 청사를 가지고 있던 근대건축물인 구 동래구청과 더불어 발굴된 다른 유적들도 신청사 건립을 위한 속도전에 무차별적으로 훼손된 격.
문화재청의 매장 문화재 심의에 따라서 일부 유구에 대한 이전과 복원, 전시관 운영으로 조건부 허가가 되었기에 2022년 4월 현재는 신청사 공사가 진행중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01102056400051
13. 기타
스타크래프트 2 프로게이머인 박수호의 아이디가 동래구(DongRaeGu)이며 HOT6 GSL Season 1 경기 도중 트위터 실시간 트랜드에 동래구가 올라갔다. 거기에 동래구를 세계에 널리 알린 업적에 힘입어 동래구 사이버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짐작가겠지만 박수호 선수의 고향이 바로 여기이다.사이버펑크 2077의 인게임 라디오에서 언급되었다. 2022년 생물학 무기로 무인지대가 된 부산의 동래구에서 사람 혹은 AI의 움직임이 목격되었다는 내용이다.
동래 정씨(東萊 鄭氏)의 본관인 동래가 바로 이곳이다.[36]
14. 나무위키에 등록된 출신 인물
자세한 내용은 분류:동래구 출신 인물 문서 참고하십시오.
[1]
9개
법정동, 13개
행정동
[2]
2024년 10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통계
[3]
2024년 10월 기준.
[4]
동래구 가선거구 (수민동, 복산동): 오영진
동래구 나선거구 (명륜동, 온천1동): 조진우
동래구 라선거구 (사직1동, 사직2동, 사직3동): 전두현
동래구 마선거구 (안락1동, 안락2동, 명장1동, 명장2동): 서덕미
동래구 비례대표: 김미화 [5] 동래구 나선거구 (명륜동, 온천1동): 이규만
동래구 다선거구 (온천2동, 온천3동): 탁영일
동래구 라선거구 (사직1동, 사직2동, 사직3동): 이지영
동래구 마선거구 (안락1동, 안락2동, 명장1동, 명장2동): 전경문
동래구 비례대표: 권영원 [6] 동래구 가선거구 (수민동, 복산동): 천병준
동래구 다선거구 (온천2동, 온천3동): 허미연
동래구 라선거구 (사직1동, 사직2동, 사직3동): 정명규
동래구 마선거구 (안락1동, 안락2동, 명장1동, 명장2동): 장영진 [7] 동래구 제1선거구 (수민동, 복산동, 명륜동, 온천1동): 박중묵 (3선)
동래구 제2선거구 (온천2동, 온천3동, 사직1동, 사직2동, 사직3동): 송우현 (초선)
동래구 제3선거구 (안락1동, 안락2동, 명장1동, 명장2동): 서국보 (초선) [8] 부산 지역 구·군 청사 가운데 제일 오래되었으며, 1963년에 지어졌다. 2000년대 초반 꾸준히 이전 논의가 있었으나 다수의 반대로 무산되고 바로 뒷편에 신관을 짓기로 결정됐다. 2016년 현재 본관과 신관 둘로 나누어 운영 중이며 이로 인해 구청 주변을 둘러싼 담을 허무는 등 구청 일대를 새로 정비했다. [9] 2022년 현재는 더이상 낡은 구청을 감당할 수 없어 현재 자리 그대로 철거 후 신축할 예정이다. 전국의 지자체 청사 중에서 서울특별시청(현 서울도서관)다음으로 오래된 만큼 보존가치가 있었고, 학계에서도 옛 (부산)시청사 철거와 같은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철거에 신중하자는 반응이었으나 결국 철거되었다. 이전지가 마땅치 않았기에 벌어진일인데 동래역 환승센터가 무산된 탓이 크다. 특히 지역 유지들이 구청은 읍성 안쪽에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옛 읍성 안쪽에는 이렇다할 자리가 없었다. 결국 현 부지에 재건축하기로 결정되었다. 공사 기간 동안에는 동해선 동래역 인근의 낙민동 임시청사를 사용하고 있다. [10] 동래는 조선 시대부터 일본과의 교류와 왜관의 존재로 인해서 한량들과 기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풍류가 많이 발전하였다. 동래 학춤이라거나 동래고무라거나 대놓고 동래한량 춤이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민간에서 시행하던 탈춤도 동래지역에서는 한량들 위주로 이루어져 의상이 화려하고 여유로운 춤을 보여주는데, 이는 완전히 예능화 된 봉산탈춤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그런 것 치고는 원래 수영야류에서 이어져서 그런지, 한자 표현을 마구 틀리는 경향이 있다. [11] 이 중 강서구를 제외한 나머지가 바로 1914년 당시의 부산부 영역이다. [12] 즉, 1957년부터 1973년까지는 '부산시 동래구'와 '경상남도 동래군'이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거기에 1957년~1963년 7년간은 동래구와 동래군 둘 다 경상남도 소속이다. [13] 다만 부평은 역사적으로도 원래는 인천과 별개의 고을이었다. [14] 서울의 영등포구도 과거에는 서울과 구분하려는 독자의식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냥 서울의 일부로 여긴다. [15] 부산과 동래는 동래도호부라는 같은 고을에 속했지만, 서울(강북)과 영등포는 한성부와 시흥군이라는 제각기 다른 고을이었다. [관할행정동] 수영동[37], 광안동, 민락동 [17] 우동, 좌동, 중동, 송정동 [18] 재송동, 반여동, 반송동, 석대동 [19] 이후 1980년 4월 1일 해운대구로 승격함. [20] 서동, 금사동, 회동동 부곡동, 오륜동, 장전동, 구서동, 금성동, 남산동, 청용동[38], 노포동, 선동, 두구동 [21]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부산의 중심지였다. [22] 2호선과 부산-김해 경전철 빼고는 다 온다. [23] 동래역, 명륜역, 온천장역. 참고로 이 3역은 모두 온천천을 따라 건설되어 있으며 지상역이다. [24] 미남역, 사직역 [25] 명장역, 충렬사역, 낙민역, 수안역, 동래역, 미남역 [26] 도시철도 동래역과는 한참 떨어져 있으니 주의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30] 동헌 보다 큰 건물로 동래객사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 [31] 2014학년도 기준 부산지역 일반고 수능성적 TOP20개 학교 중 동래구 소재 고교가 7개를 차지하여 가장 많았다. # [32] 장성만의 정치적 본거지는 사상구 였지만, 본래 거주지는 동래구 온천동이었다. 그 덕분에 장제국은 고등학교 시절 까지 온천동에 거주했고, 장제원은 국민학교 시절 까지 온천동에 거주했다. [33] 당시 언론에서 비슷한 시기에 분양된 대구 수성구의 우방 궁전맨션 아파트와 라이벌 플래그가 섰을 정도였다. [34] 어원인 금정산성은 현재 금정구로 분구되었다. [35] 허영만의 식객에서도 동래파전편 후기에 피자를 즐겨찾는 세태를 보고 한탄하는 글을 남겼다. 허나 서술한 바와 같이 가격도 워낙에 비싼데다 만화에서도 제대로 된 동래파전편 만들기가 무척이나 어렵다고 묘사되었다. 게다가 후기에 삽입된 단칸 만화와 같이 파는 안키우냐고 묻자, 비싼 땅에 파 키워 무엇에 쓰느냐며 욕만 먹는다. [36] 정확하게는 조선시대 동래부에서 유래되었다. 시조를 모신 사당인 정묘사는 동래구에 없고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다.
동래구 나선거구 (명륜동, 온천1동): 조진우
동래구 라선거구 (사직1동, 사직2동, 사직3동): 전두현
동래구 마선거구 (안락1동, 안락2동, 명장1동, 명장2동): 서덕미
동래구 비례대표: 김미화 [5] 동래구 나선거구 (명륜동, 온천1동): 이규만
동래구 다선거구 (온천2동, 온천3동): 탁영일
동래구 라선거구 (사직1동, 사직2동, 사직3동): 이지영
동래구 마선거구 (안락1동, 안락2동, 명장1동, 명장2동): 전경문
동래구 비례대표: 권영원 [6] 동래구 가선거구 (수민동, 복산동): 천병준
동래구 다선거구 (온천2동, 온천3동): 허미연
동래구 라선거구 (사직1동, 사직2동, 사직3동): 정명규
동래구 마선거구 (안락1동, 안락2동, 명장1동, 명장2동): 장영진 [7] 동래구 제1선거구 (수민동, 복산동, 명륜동, 온천1동): 박중묵 (3선)
동래구 제2선거구 (온천2동, 온천3동, 사직1동, 사직2동, 사직3동): 송우현 (초선)
동래구 제3선거구 (안락1동, 안락2동, 명장1동, 명장2동): 서국보 (초선) [8] 부산 지역 구·군 청사 가운데 제일 오래되었으며, 1963년에 지어졌다. 2000년대 초반 꾸준히 이전 논의가 있었으나 다수의 반대로 무산되고 바로 뒷편에 신관을 짓기로 결정됐다. 2016년 현재 본관과 신관 둘로 나누어 운영 중이며 이로 인해 구청 주변을 둘러싼 담을 허무는 등 구청 일대를 새로 정비했다. [9] 2022년 현재는 더이상 낡은 구청을 감당할 수 없어 현재 자리 그대로 철거 후 신축할 예정이다. 전국의 지자체 청사 중에서 서울특별시청(현 서울도서관)다음으로 오래된 만큼 보존가치가 있었고, 학계에서도 옛 (부산)시청사 철거와 같은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철거에 신중하자는 반응이었으나 결국 철거되었다. 이전지가 마땅치 않았기에 벌어진일인데 동래역 환승센터가 무산된 탓이 크다. 특히 지역 유지들이 구청은 읍성 안쪽에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옛 읍성 안쪽에는 이렇다할 자리가 없었다. 결국 현 부지에 재건축하기로 결정되었다. 공사 기간 동안에는 동해선 동래역 인근의 낙민동 임시청사를 사용하고 있다. [10] 동래는 조선 시대부터 일본과의 교류와 왜관의 존재로 인해서 한량들과 기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풍류가 많이 발전하였다. 동래 학춤이라거나 동래고무라거나 대놓고 동래한량 춤이라고 한다. 그래서 원래는 민간에서 시행하던 탈춤도 동래지역에서는 한량들 위주로 이루어져 의상이 화려하고 여유로운 춤을 보여주는데, 이는 완전히 예능화 된 봉산탈춤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그런 것 치고는 원래 수영야류에서 이어져서 그런지, 한자 표현을 마구 틀리는 경향이 있다. [11] 이 중 강서구를 제외한 나머지가 바로 1914년 당시의 부산부 영역이다. [12] 즉, 1957년부터 1973년까지는 '부산시 동래구'와 '경상남도 동래군'이 함께 존재했던 것이다. 거기에 1957년~1963년 7년간은 동래구와 동래군 둘 다 경상남도 소속이다. [13] 다만 부평은 역사적으로도 원래는 인천과 별개의 고을이었다. [14] 서울의 영등포구도 과거에는 서울과 구분하려는 독자의식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냥 서울의 일부로 여긴다. [15] 부산과 동래는 동래도호부라는 같은 고을에 속했지만, 서울(강북)과 영등포는 한성부와 시흥군이라는 제각기 다른 고을이었다. [관할행정동] 수영동[37], 광안동, 민락동 [17] 우동, 좌동, 중동, 송정동 [18] 재송동, 반여동, 반송동, 석대동 [19] 이후 1980년 4월 1일 해운대구로 승격함. [20] 서동, 금사동, 회동동 부곡동, 오륜동, 장전동, 구서동, 금성동, 남산동, 청용동[38], 노포동, 선동, 두구동 [21]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부산의 중심지였다. [22] 2호선과 부산-김해 경전철 빼고는 다 온다. [23] 동래역, 명륜역, 온천장역. 참고로 이 3역은 모두 온천천을 따라 건설되어 있으며 지상역이다. [24] 미남역, 사직역 [25] 명장역, 충렬사역, 낙민역, 수안역, 동래역, 미남역 [26] 도시철도 동래역과는 한참 떨어져 있으니 주의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괄호] 안의 숫자는 지점수를 뜻함. [30] 동헌 보다 큰 건물로 동래객사가 있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었다. [31] 2014학년도 기준 부산지역 일반고 수능성적 TOP20개 학교 중 동래구 소재 고교가 7개를 차지하여 가장 많았다. # [32] 장성만의 정치적 본거지는 사상구 였지만, 본래 거주지는 동래구 온천동이었다. 그 덕분에 장제국은 고등학교 시절 까지 온천동에 거주했고, 장제원은 국민학교 시절 까지 온천동에 거주했다. [33] 당시 언론에서 비슷한 시기에 분양된 대구 수성구의 우방 궁전맨션 아파트와 라이벌 플래그가 섰을 정도였다. [34] 어원인 금정산성은 현재 금정구로 분구되었다. [35] 허영만의 식객에서도 동래파전편 후기에 피자를 즐겨찾는 세태를 보고 한탄하는 글을 남겼다. 허나 서술한 바와 같이 가격도 워낙에 비싼데다 만화에서도 제대로 된 동래파전편 만들기가 무척이나 어렵다고 묘사되었다. 게다가 후기에 삽입된 단칸 만화와 같이 파는 안키우냐고 묻자, 비싼 땅에 파 키워 무엇에 쓰느냐며 욕만 먹는다. [36] 정확하게는 조선시대 동래부에서 유래되었다. 시조를 모신 사당인 정묘사는 동래구에 없고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