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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07 14:47:07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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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EATO 깃발.svg
한국어 :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
한문 : 東南亞條約機構
영어 : South-East Asia Treaty Organization[1]
동남아시아 조약 기구(SEATO)
미국 영국 프랑스 필리핀 호주 뉴질랜드 태국 파키스탄
1. 개요2. 회원국3. 상세4. 관련 문서

1. 개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프랑스가 철수한 후 SEATO는 냉전 하에서 동남아시아에서 공산주의의 확대에 대항하기 위해 1954년 9월 8일 마닐라에서 《동남아시아 집단 방위 조약》(Southeast Asia Collective Defense Treaty) 또는 마닐라 조약(Manila Pact)[2]에 8개국이 서명함으로써 창설되었던 군사 협력 기구이다. 본부는 태국 방콕에 있었다.

1954년에 창설되어서 1977년 6월 30일에 해산되었다.

2. 회원국

보호대상

3. 상세

개요에 나온대로 마닐라 조약 혹은 합의에 의거하여 1955년에 공식발효되었으나 사실 굉장히 허술한 기구였다. 집단안보체제임에도 불구하고 외무장관 혹은 대사를 중심으로 하는 이사회만 존재했고 군사협력기구와 통합사령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포스터 덜레스 국무장관이 초기부터 세아토를 아시아판 나토로 조직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분명히 할 때부터 드러난 문제이긴 했다. 게다가 아시아의 반공전선 구축이라는 명분으로 구성되었으나 동북아 지역은 완전히 제외된 북위 21도 30의 이남으로만 영역을 한정했다.[3] 덕분에 동북아의 미국의 주요기지가 포진된 한국- 일본이 제외되고 대만도 빠지게 된다. 또한 남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는 정식회원국은 아니었지만 제네바 의정서등에 의거하여 군사보호를 받을수 있었고 그외 동남아 국가들과 제3세계 국가들과는 비동맹외교정책을 유지했다. 그외에도 기존의 NATO와 같은 경제협력과 원조지원에 대한 방침도 담고 있었다. 이 어중간한 기구적 취약성 때문에 당연히 SEATO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는데, 비회원국에 대한 보호 임무 천명은 인도를 비롯한 비동맹국가들을 크게 자극했다. 이 때문에 네루는 인도의 가입을 거절하였음은 물론 주변국들에게 SEATO에 가입하지 말 것을 주문하였고 가입에 흥미를 보였던 버마는 끝내 가입을 거절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인도는 SEATO 확대에 반대했고 실론, 인도네시아의 가입도 좌절되었다.

적극적인 군사협력기구가 아니다보니 이 기구를 통하여 미국은 베트남전에 개입하는데 지원을 "요청"했다. 호주-뉴질랜드-필리핀-타이는 병력을 파병했으나 영국과 프랑스는 군사협력에 거부적 입장이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는 슬슬 아시아에서 식민지들을 독립시켜가면서 발을 빼고 있었다. 프랑스는 이미 북베트남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벌였고 북베트남과 평화협정을 맺은 상태였으며 남베트남도 반불 감정은 있었기에 파병하지 못했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군사갈등으로 제 코가 석자였던데다가 그렇게 적극적 입장도 아니었다. 게다가 군사보호를 받아야하는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의 개입에 소극적이었던 탓에 캄보디아와 라오스가 빠르게 공산화되었고 베트남 전쟁 과정에서 프랑스와 파키스탄이 탈퇴수순에 들어가는 분열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파키스탄은 60년대 인도와의 군사갈등에서 SEATO의 지원을 전혀 못받고 오히려 인도에게 미국이 지원하는 사태를 보자 중국과 가까워졌고 1971년에는 방글라데시 독립전쟁때도 도와주지 않자 1972년에 탈퇴선언을 하고 73년에 관계를 끊었다. 프랑스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동남아에서의 철수와 함께 군사협력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던데다가 유럽의 안보중시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미국과 갈등했기에 1974년 회원국의 의무를 중단하며 탈퇴하게 된다. 그나마 믿을만한 영국도 베트남 전쟁에 부정적이었고 물자만 지원하는 등 굉장히 소극적이었다.

더욱이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면서 이 기구는 사실상 존재가치가 더욱 콩가루가 되는 상황이 되었다. 적극적인 군사협력도 못하는 상황에서 소극적 개입과 잦은 분열 그리고 주요 핵심국가들의 이탈 및 동남아에대한 무관심이 겹치게 된다. 특히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동남아에 대한 관심이 줄고 오히려 동북아와 유럽으로 관심을 돌린데다가 영국과 프랑스는 동남아에서 완전 철수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주요 3개국이 무관심하고 파키스탄이 탈퇴를 하면서 완전한 허울뿐인 존재로 남게 된다.[4]

결국 1977년 2월 20일 미국-영국-필리핀-태국-뉴질랜드 5개국의 188명의 병력이 참가한 마지막 합동훈련을 필리핀에서 수행[5]함으로서 완전히 기구의 공식활동이 중지된다. 이 마지막 훈련 폐회식때 석별의 정으로 한국에게는 알려져 있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 씁쓸하게 마무리를 장식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해 6월 30일부로 완전히 해체하게되나 해당 조약인 마닐라 조약은 현재도 존속 유지하고 있다.

4. 관련 문서



[1] 영어발음명은 세아토가 된다. [2] 1955년 2월 1일에 공식 발효 [3] 해당 동남아시아 조약기구와 별개로 한국, 일본, 대만과 미국을 포함할 동북아시아 조약기구 (NEATO)에 대한 계획 및 논의는 존재하였으나 해당 기구를 제안한 대만과 미국 정부의 일부 외에는 큰 호응을 받지 못하여 대만 해협 위기를 전후로 흐지부지되었다. 일본은 당시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반전사상이 강하였고 한국은 독립을 쟁취한지 채 10년이 안되었던 터라 강하였던 반일감정에 의해 반대하였다. [4] 사실 강대국들입장에서는 당시에 동남아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낮아져 있었으니 그러한 무관심은 더욱 베트남전쟁 이후에 더욱 가속화되었다. [5] 그러나 대민활동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