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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0:14:33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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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최고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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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오마르 만수르 아훈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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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2021년 아프가니스탄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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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라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1]
ملا ھیبت الله اخوندزاده[2]
ملا هبت‌الله آخندزاده[3]
Hibatullah Akhundz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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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탈레반 3대 지도자.webp
출생 1961년 ([age(1961-12-31)]~[age(1961-01-01)]세)
아프가니스탄 왕국 칸다하르
가족 모하마드 칸 (부친)[4]
압두르 라흐만 (아들)[5]
그 외 수명의 아내, 수십명의 자녀들[6]
민족 파슈툰인 두라니족의 일파 누르자이 씨족
국적
[[아프가니스탄|]][[틀:국기|]][[틀:국기|]]
종교 이슬람 수니파 ( 데오반드파)
재임기간 탈레반 최고사령관( 아미르 알 무미닌 أمير المؤمنين)
2016년 5월 26일 ~
소속

1. 개요2. 생애3. 카불 점령4. 정치 활동
4.1. 온건파와 강경파 노선 문제4.2. 탈레반 내부 분열과 외세 개입 문제
5. 여담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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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프가니스탄 최고지도자(아미르 알무미닌) 권한대행이자, 탈레반 제3대 최고지도자.

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을 멸망시키고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미군의 드론 공격 등을 피하기 위해 조용히 활동하던 인물로 아직 그에 대해서 공개된 정보는 많지 않다. 2021년 탈레반 카불 점령 전후로 알려지거나 공개된 사진도 프로필 사진 딱 한 장 뿐이며, 카불 함락으로부터 2년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도 공개 석상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군 철수 기한인 8월 31일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으며, 8월 말 기준 칸다하르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공개석상에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육성 공개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2020년 당시 코로나-19로 사망한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였다. # 탈레반 고위 간부 한 명이 2020년 아훈드자다가 파키스탄의 공격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2. 생애

1961년 아프가니스탄 왕국 칸다하르 주 판즈와이에서 태어났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가족들과 함께 파키스탄 퀘타로 피신하였으며, 가족들 대부분이 파키스탄 발루치스탄에 거주 중이다. 2019년 8월 16일 아훈드자다의 아버지와 형제 중 한 명이 발루치스탄 내 모스크에서 폭발물 공격으로 사망했다. 탈레반 측은 해당 폭발물 공격이 아프가니스탄 국가 안보국이 벌인 일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이지만, 아훈드자다를 견제하려던 다른 탈레반 그룹에서 테러를 벌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20년에는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사망했다는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오보로 밝혀졌다. 2012년에는 가르치던 마드라사 학생 중 한 명이 갑자기 그에게 권총을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하필 권총이 막혀서 총알이 나가지 않았고, 아훈드자다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이 사건 당시 전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고 차분하게 대처하면서 탈레반 내에서 위상이 크게 상승했다.

미군의 공격으로 전사한 모하마드 만수르(ملا اختر محمد منصور)를 이어 2016년부터 탈레반의 최고지도자를 맡았다. 2021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완전 철수하자 그 틈을 노려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임에도 보안 유지가 굉장히 철저한 인물로 가족 관계 관련해서도 아주 기본적인 내용 외에는 외에는 알려진 내용이 별로 없다. 심지어 모친 성명이나 부인 성명도 알려지지 않았다.[7]

3. 카불 점령

극단주의 집단의 수괴이다 보니 긍정적인 평가는 힘들겠지만, 리더십이나 전략적 판단 능력은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보인다. 미군이 완전 철수하기도 전에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더 일찍 더 적은 피해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공식적인 항복을 받아내었다. 미국은 이번 탈레반 대공세 이전 탈레반 마약 카르텔 수준으로 평가했고, 심지어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최소 2년 이상은 버틴다는 낙관적 평가를 내놓은 경우도 있었다.[8] 그러나 미군이 조금씩 철수를 시작하자마자 탈레반은 타지크인 아편 재배 군벌들을 포섭하고 신속하고도 빠른 전방위적 공세전략으로 아프가니스탄 정중앙의 여러 하자라인 민병대들을 무력화시킨 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대표적 용장 중 한 명인 헤라트 이스마일 칸을 궁지로 몰아 바로 항복을 받아내고, 도스툼을 도주시키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인명 피해로 아프간을 단 2달여만에 완전 장악하는데 성공했다.[9]

이런 전방위적 분산 공세는 자칫하면 군대의 역량에 지장을 주어 각개 격파 위험을 가져올 수 있지만[10] 미군철수로 인한 충만한 사기와(사실상 승리했다는 믿음) 더불어 광신으로 공세가 계속 유지 될 수 있었다고 보는게 좋다. 결국 대부분의 공세가 성공하여 순식간에 행정주가 포위당하면서 패색이 짙어지자 항전의 의지를 잃은 아프간 지도부가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고 보고있다. 이런 저런 결과를 토대로 볼때 전략적 수완이 부족한 인물은 아니다. 탈레반의 대외 외교를 담당하는 압둘 가니 바라다르의 경우 능력은 검증된 인물이지만 대신 오랜 수감생활 및 출소 이후 카타르에서 주로 생활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내 다른 탈레반 군벌들을 통제하는데 한계가 있던 인물이고, 모하마드 야쿱은 아편재배자들의 손을 무자비하게 다 잘라버리던 순도 100% 광신도 모하마드 오마르의 아들이라 아편 재배 군벌들에게 제대로 신뢰를 주기 힘들었다. 결국 다양한 탈레반 군벌들을 결집시켜서 순식간에 승전을 거둔 주역은 아훈드자다라는 말이 나온다.

4. 정치 활동

조용히 활동하던 인물로 아직 그에 대해서 공개된 정보는 많지 않다. 애초에 탈레반 지도부는 오사마 빈 라덴을 간판스타로 내세웠던 알카에다와 다르게 원래부터 지도부의 보안 기밀 유지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1994년 탈레반에 가입한 아훈드자다는 이후 1995년 아프가니스탄 서부 파라 주에서 권선징악부(파슈토어로 د فضیلت تبلیغاتو او د معاونیت مخنیوي وزارت)라는 일종의 종교경찰청에 소속되어 활동하였고 1996년에는 동부 낭가르하르 주에서 군사 법관을 맡았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대법원에서 근무했으며 칸다하르의 마드라사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현재 해당 인물 관련하여 밝혀진 자료가 워낙 적어서 그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시절 당시 폭정 범죄에 얼마나 어느정도로 관여했는지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확실한 것은 2001년 카불이 북부동맹에게 함락당한 이후 탈레반이 내린 파트와들이 대부분 아훈드자다는 협의를 거쳤다는 점이며, 2001년 이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이 발표한 갖가지 황당한 사이비 파트와 역시 그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이 북부동맹에게 무너진 이후 아훈드자다는 파키스탄의 퀘타로 피신한 상태에서, 전임자 모하마드 오마르 및 모하마드 만수르와 협의하여 파트와를 내리는 역할을 맡았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시기 탈레반의 파트와 상당수 혹은 거의 대부분이 퀘타 슈라를 통해 합의되고 공표되었다 한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에 의하면 … 이슬람국가가 반드시 모든 무슬림들 간의 상호적인 협의( 슈라; Shura)를 통해 자신의 일들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우두디는 이 정부체제를 가리켜 ‘신-인 민주정치(theo-democracy)’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국가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의 일을 개인적이라거나 사적이라고 여길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가 주장하는 이슬람국가는 파시스트 국가나 공산주의 국가와 어느 정도 유사성이 있다. 여기에서 마우두디는 이슬람이 ‘서구의 세속 민주주의에 대한 완전한 안티테제’임을 확실히 밝힌다. ‘서구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반은 인민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이슬람 테러리즘 속 이슬람 / 이븐 와라크

아불 알라 마우두디는 탈레반 극단주의 신학의 기원이 된 이슬람주의 사상가이다. 애초에 탈레반의 정치 스타일은 호메이니, 김일성 같은 독재자 개인의 우상화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며, 이슬람 원리원칙에 의거한 장로(셰이크)들의 의회에 의해 추대를 거쳐 운영되는 상황이었다. 당초 아훈드자다의 전임자인 모하마드 만수르가 2016년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숨졌을 때 탈레반 내부에서는 초대 괴수 모하마드 오마르의 아들 모하마드 야쿠브를 새 지도자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모하마드 야쿠브 본인이 자신이 너무 어리고 전쟁 경험이 없다며 아훈드자다를 지도자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 이러한 방식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이 이슬람 초창기의 원리원칙을 성실하게 준수한다는 인상을 주는 효과가 있다.

탈레반이 추구하는 정권은 신정 국가이지만, 전근대 제정일치 정치체제와는 목표나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이슬람주의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종교 파시즘을 영어로 신정민주주의(Theo-Democracy)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번역했다.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신정민주주의 이론에 의하면 신정민주주의는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의 사생활, 경제생활, 가족관계 모두 다 샤리아 아래에 있으며, 자카트, 결혼, 이혼, 출산, 상속 등 세속사 모두가 샤리아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원론적으로 따진다면 개인의 사생활 경제생활 가족관계 다 경건하게 하자는 좋은 사상이 아닌가 싶지만, 샤리아를 적용하고 해석하는 주체가 극단주의 정치인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만약 아훈드자다가 대외석상에서 민주주의 혹은 슈라 관련한 언급을 강조한다면 이는 일반적인 민주주의를 존중하겠다는 뜻보다는 이 이름만 그럴듯한 신정민주주의를 언급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11]

9월 8일,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가 향후 아프간은 샤리아에 근거하여 통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

10월 30일, 아훈드자다가 2016년 이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 하지만 영상이 아닌 음성 파일일 뿐이기에 정말 그의 목소리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낸 목소리인지는 알 수 없다.

2024년 4월.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의 모스크에서 열린 이드 알 피트르(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이슬람 명절) 기념 기도회를 이끌었다고 밝혔다. #

4.1. 온건파와 강경파 노선 문제

탈레반이 2021년 8월 15일부로 카불을 점령하고 대부분의 지역을 장악한 현재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바랄 수 있는 시나리오 중 하나는 탈레반이 튀니지의 엔나흐다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이슬람 극단주의 집단에서 온건 성향의 이슬람 민주주의로 전향하는 것이다. 해당 인물이 전임자들에 비해 온건 성향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지만, 대신 그가 탈레반이 수장이 된 이후로 탈레반이 이미지 관리를 하면서 과거와 같은 막장 행위가 감소한 것 자체는 사실이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도 희망을 가져볼 여지는 있다. 일단 아훈드자다는 탈레반 내에서 군벌, 지역유지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파트와를 발표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이슬람 신정 국가에서 파트와는 일종의 입법 행위의 비교할 수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파트와 공표 이외에 대외 활동은 사실상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주도하고 있는데, # 이 압둘 가니 바라다르의 경우 협상에 능한 실리주의자로 알려져 있다.[12]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가 압둘 가니 바라다르의 실리주의 노선에 호응하는 경우, 탈레반 정권은 최소한 과거의 그 사이비 종교 집단의 모습보다는 그나마 정상적인 정권으로 기능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게다가 국제사회의 시선도 어느 정도 의식해서인지 탈레반 정권(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이 이슬람 국가 체제 하에서 실리주의 정책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의 혼란을 잠재우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게 된다면 자국 내 인권 상향은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한 국가로 변모할 수 있다.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에 따르면 탈레반 2인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외무장관, 탈레반 창설자 모하마드 오마르의 아들이자 군사작전을 총괄해온 모하마드 야쿠브가 국방장관이 될 것이라 한다. 또 탈레반 연계 조직인 하카니 네트워크의 고위 인사 칼릴 하카니가 내무장관에 내정됐다.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새 정부 주요 보직에 여성은 배제됐다. #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측의 아흐마드 마수드에게도 12인회에 참여를 권유했으나, 마수드는 탈레반이 다원주의와 온건 이슬람, 다당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협력하지 않겠다며 이를 거부한 바 있다.

탈레반 대원 상당수가 길자이족인 것과 반대로 아훈드자다는 두라니족 출신이다.[13] 파슈툰인들은 본래 반농반목 민족이지만 이 중에서 두라니족은 농경 생활을 위주로 하는 민족이고 길자이족은 목축을 주로 하는 부족이다. 비교하자면 아프가니스탄 근현대사 내내 좀 더 호전적인 길자이족들이 외세와의 전쟁에서 더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싸워왔다면 두라니족의 경우 길자이족들이 몸빵하는 사이에 실리를 챙기는 입장이었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주요 지도부 상당수는 두라니족[14], 탈레반 대원의 주 공급원은 길자이족이었지만 # 두라니족 출신 아훈드자다가 탈레반 정권의 수장이 되면서, 정치적 실리를 두라니족들이 챙기는 상황이 이번에도 또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유로 아훈드자다가 온건 이슬람 정책[15]을 펼치다가 길자이족들을 달래는 데 실패하면 불만을 품은 길자이족 토호들이 ISIS-K로 붙어서 아프가니스탄 내부 상황이 더 혼란해질 가능성도 있다.

길자이족 인구만 해도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의 20~25%에 달한다. 길자이족이 탈레반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보다 훨씬 더 높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아프가니스탄 국민 대다수는 길자이족이 아니다. 시골 유목민 출신 탈레반 대원들은 경제 운영이나 시위 진압에 대한 노하우가 부족하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시위가 날 때 탈레반 대원들이 총기를 난사하며 대응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 와중에 인권 탄압 문제로 구호 물자 유입마저 감소하면 아프가니스탄은 버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향후 아훈드자다 정권의 성패는 길자이족 유목민이 주축이 된 기존 탈레반 대원들 및 보다 세속적인 그러나 탈레반을 의심하는 다른 민족 집단들 사이를 잘 중재하는데 달려있다.

4.2. 탈레반 내부 분열과 외세 개입 문제

2021년 9월 들어 탈레반 조직원들을 통제하지 못 하고 게다가 파키스탄을 끌어들여 오히려 아프가니스탄 통제에 더 애를 먹는 모습이 나오고 있다. 조직 2인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판지시르에 투입된 자신의 병력들에게 전투 중단 및 철수를 지시하려다 시라주딘 하카니와 다투면서 총을 맞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시라주딘 하카니의 경우 정통적인 친사우디/친파키스탄 군벌이며, 아흐마드 마수드 암룰라 살레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인사들을 사면하지 말고 모조리 처단할 것을 주장하는 강경파이다. 바라다르의 경우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정부 사이의 평화 협상을 파키스탄의 허락 없이 진행했다가 파키스탄 ISI에 의해 괘씸죄로 수감당했던 인물로, 2018년 출소 이후 미국/중국과 대외 협상을 주도했으며, 2021년 카불 점령 이후에도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관련해서 온건한 입장을 내보였다.

외세를 몰아내자는 슬로건을 내세웠음에도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파키스탄계 탈레반 대원들을 끌어들이다 패전하자 이후 ISI와 파키스탄 공군 드론과 전투 헬기 지원을 요청하는 등, 노골적인 친파키스탄 행보를 보이는 바람에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반탈레반/반파키스탄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후 9월 발표한 내각에서 한 때 실세로 평가받았던 바라다르가 여러 가지 이유로 2인자 자리에서도 밀려난 부총리 자리를 맡게 되었다. 바라다르가 탈레반 내부의 권력다툼에 의해 카불을 떠나 칸다하르로 갔다는 소식이 보도되는 등 온건파와 강경파간의 권력다툼이 심해지는 상황이다.

5. 여담

가족들과 함께 파키스탄에 오래 체류하면서 자마아티 이슬라미와 적극적으로 교류했던 인물로 탈레반 정권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다면 명목상이나마 과시용으로 투표와 선거를 진행할 수도 있다. [16] 참고하자면 자마아티 이슬라미는 다음과 같은 당 강령을 가지고 있는데, 재건된 탈레반 정권에서 해당 슬로건들과 유사한 정치 슬로건을 내세울 확률이 높다.
1. 쿠란과 순나의 원래 가르침을 회복하고 예언자와 정통 칼리파 시대에 실현되었던 사회 종교적 체제를 창출한다.
1. 이지티하드(اجتهاد‎ / ijtihād, '종교적 율법에 대한 유권해석')를 정당, 의회, 선거 같은 정치영역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적 제도의 실현을 위한 분야에서도 적용한다.
1. 이슬람은 개인신앙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등 인간생활 모든 분야를 포괄한다. 따라서 모든 분야에서 이슬람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1. 수피파에서 신봉하는 숙명론이나 의례적인 이슬람을 배격한다. 이슬람은 역동적이고 혁명적인 정치이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르두어 위키백과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 문서에 탈레반 지지자들이 손을 댔는지 삼전도비 수준의 서술이 올라와 있다.[일부번역]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찬양 문구만 가득하고 별 중요한 내용은 없다.

아들 중 한 명이 2017년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주에 있는 정부군 기지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일으켜 사망하였다 한다. 정부수반 중에서 아들이 자폭 테러를 일으키고 사망한 최초의 케이스로 볼 수 있다.[18]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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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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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알리 하메네이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압둘라 2세
6위 7위 8위 9위 10위
무프티 타키 우스마니 모하메드 6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 알리 알시스타니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하비브 우마르 빈 하피즈 살만 알오우다 조코 위도도 아마드 무함마드 알타예프 마울라나 마무드 마다니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압둘라 빈 바야 모하마두 부하리 무함마드 빈 사두 아부바카르 3세 야흐야 촐릴 스타쿼프 알리 고마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하산 나스랄라 하비브 알 자인 알 아비딘 알지프리 함자 유수프 한손 아마드 티자니 빈 알리 키세 문니라 쿠베이시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무스타파 호스니 압둘아지즈 이븐 압둘라 아알 알 셰이크 우사마 알세예드 알아즈하리 샤 카림 알후사이니 알하비브 무함마드 루트피 빈 야흐야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압둘 말리크 알후티 마울라나 타리크 자밀 할리마 야콥 무함마드 알야코우비 세예드 호세인 나스르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우트만 타하 캘리그래퍼 셰이크 라체드 가노우치 사미아 술루후 하산 모하메드 살라 압델 파타 엘 시시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무크타다 사드르 마울라나 나주르 우르레만 무에즈 마수드 티모시 윈터(셰이크 압달하킴 무라드) 이브라힘 살레 알후세이니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모하메드 베차리 아미르 칼레드 아레프 알리 나예드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 셰이크 무함마드 일야스 아타르 콰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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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름(هبت‌الله) 발음은 다리어, 파슈토어로는 하이바툴라, 아랍어로는 히바툴라, 이란어로는 헤이바톨라, 타지크어로는 하이바툴로라고 한다. 관련 글. 아훈드자다의 활동지인 아프가니스탄의 주요어. 다리어, 파슈토어의 발음으로 명기한다. [2] 파슈토어 [3] 페르시아어 [4] 부친과 전사한 아들의 성명 외에는 가족 관계 관련으로 알려진 내용이 별로 없다. [5] 2017년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주에 있는 정부군 기지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켜 사망. [6]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아들 말고도 수명의 이름 불명인 자녀들이 현재 생존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를 비롯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일부다처제, 다산을 중요시하는지라 아내들과 자식들이 많은 경우가 많다. 오사마 빈 라덴도 52남매 중 17번째로 태어났고 그 자신도 6명의 아내 사이에서 20~26명의 자녀를 뒀다. [7] 애초에 탈레반은 딸이 태어나면 족보에 올리지도 않고 여자 묘비에 이름도 올리지 않기는 한다. # [8] 아프간군이 무능하다고 하여도 장비의 질적인면은 탈레반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탈레반은 스리랑카 내전 당시의 타밀 반군과 다르게 기초적인 공군도 보유하지 못한 상태이기도 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명장 이스마일 칸, 압둘 라시드 도스툼도 있었으며 보통 방어전이 공격전보다 유리한 만큼 충분히 공세 이전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몇 달에서 몇 년은 버티리라는 미국의 평가는 합리적 평가였다. [9] 그 폭정으로 악명높았던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까지 발생시키면, 국민들의 저항과 반발이 더 심해진다. 이번 공세에서 탈레반이 이전과 다르게 비교적 신사적이었던 이유에는 탈레반 성향 자체가 온건해져서라기보다는 반 탈레반 세력들의 결사항전 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도 있다. [10] 아프가니스탄군은 전체병력중 약 86%가량이 장부상 병력이였다고 한다. 이는 탈레반이 병력을 분산시켜 공격하였다 하더라도 최소 정부군에 비해 수적우위는 항상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게 좋다. [11] 오히려 아불 알라 마우두디의 신정민주주의 이론이 개인 독재와 우상화 문제가 심각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만든 이란의 통치체제보다 더 막장으로 치닫기 쉬운게, 독재자의 권위로 자국의 순니파 및 아르메니아인 기독교도 등등 소수민족들을 형식적으로나마 포용하는 이란 이슬람 신정 공화국 체제와 다르게 탈레반은 순니 데오반드파 획일주의를 강요한다. 즉 해당 정치 체제 하에서 비무슬림 혹은 시아파나 수피는 비국민 대우를 받는다. [12] 중국의 왕이를 만나 회담을 갖고, # 카불 점령 이후 외국의 눈치를 보면서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인사들에 대한 사면령을 직접 발표한 것도 바로 이 압둘 가니 바라다르이다. # 2010년 감옥에서 수감되었다가 2018년 다시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딜 해서 출소한 이후 카타르에서 호의호식했을 정도로 약삭빠른 인물이기도 하다. [13] 두라니족은 길자이족과 함께 파슈툰족 내에서 가장 유력한 부족 집단 중에 하나이다. 원래 압달리( 에프탈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불렸으나 두라니 왕조의 창건자 아흐마드 샤 두라니의 별명 '두르레 두르란'을 따서 두라니족으로 부족명을 개명하였다. 두라니는 진주라는 뜻이다. # [14]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가 두라니족 출신이다. [15] 다른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강경 이슬람 정책이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온건해 보이는 정책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내부적으로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하게 추구하면서도 외교에 있어서는 실리를 추구하는 차원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와 상극인 성향의 국가들(미국, 인도, 러시아, 중국 등)과도 적극적으로 타협하는 식으로 말이다. [16] 단 이 경우 인도, 파키스탄, 영국과 같은 의원내각제가 아닌, 대통령 중심제(사실상 신 대통령제)를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슬람 공화국 시절에도 대통령 중심제이긴 했다만… [일부번역] 2001년 미국 침략자들이 서방 동맹국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고 ... 미국 간첩들 때문에 지하드 수행이 거의 불가능했을 때조차 하이바툴라 장로는 다른 동료 무자헤딘 원로 학자들과 함께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무자헤딘을 조직하고 규합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들은 무슬림들을 십자군 전쟁에 맞선 성전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아프간 사람들에게 미국 십자군에 맞서 지하드에 참전하도록 독려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전 러시아의 침략 기간에도 지하드와 이슬람을 수호하기 위해 150만 명의 순교자, 7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였지만 이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분열하면서 일부 조직 지도자들과 (탈레반이) 분쟁이 벌어진 것을 계기로 이러한 희생은 무산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깊은 고통과 절망에 빠뜨렸습니다. 하이바툴라 장로는 그의 동지들의 헌신에 힘입어 무기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전 세계 불신자들의 동맹에 대항하여 지하드를 시작했습니다. 이 저항기간동안 그는 아프가니스탄 무슬림들은 지쳐도 또 지쳐도 불신자들에 대항하는 지하드를 계속할 것이라는 점을 이 세상에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불신에 대한 최후의 승리가 자신들의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군과 전쟁을 치루는 동안 지하드 전사들은 하이바툴라 장로와 같은 결단력 있는 리더의 지휘를 받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무자헤딘은 열악한 무장에도 불구하고 십자군 동맹의 대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였습니다. 15년 동안 지하드 과정에서 우리의 대장로(Shaikh Sahib)는 다방면에서 출중한 공적을 세웠습니다. [18] 과거 구 집권층이던 시절 탈레반 지도부는 일선 장병들만 북부동맹, 미군과의 전장에 내몰고 본인들은 카불에서 사치를 부리거나 동굴에 숨어지내기만 하는 추태를 보여주었다. 이런 점은 아프간 정부의 극심한 부패와 무능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에 대한 불신 또한 키우는 원인이었기 때문에 솔선수범해서 아들을 자폭조에 보냄으로써 지도부가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 집단으로 변했다는 의사를 표시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