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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6-06 21:31:28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내전/2021년/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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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 탈레반 · 탈레반 과도정부 · 미군 · 파키스탄군 · 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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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황
2.1. 9월 1일2.2. 9월 2일2.3. 9월 3일2.4. 9월 4일2.5. 9월 5일2.6. 9월 6일2.7. 9월 7일2.8. 9월 8일2.9. 9월 9일2.10. 9월 10일2.11. 9월 11일2.12. 9월 12일2.13. 9월 13일2.14. 9월 14일2.15. 9월 15일2.16. 9월 16일2.17. 9월 17일2.18. 9월 19일2.19. 9월 22일2.20. 9월 23일2.21. 9월 24일~29일2.22. 9월 30일

1. 개요

2021년 아프가니스탄 판지시르 바자라크 시를 거점으로 하는 반(反) 탈레반 저항군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의 9월 전황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탈레반 측 주장과 국민저항전선 측 주장이 엇갈리는 부분이 많다. 각자 과장된 주장을 펼친 것이 존재한 만큼, 양 측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신뢰하지는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양측의 주장을 고루 듣는 것이 좋다.

2. 전황

파일:FDnEbM7XoA0ggTU.jpg
아프가니스탄 내 국민 저항 전선 분포도[1][기준일]
출처: Frenkie Mark

기타 전황 관련 링크: Wikipedia Commons ISWN

2.1. 9월 1일


현재 신북부동맹군은 판지시르 주 고지를 경계로 고립된 상태로 보인다. 친저항군 트위터 상에는 판지시르가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한 곳이라며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탈레반 공세도 만만치 않다.

탈레반 측은 판지시르 주(Panjshir)의 카왁 고개(Khawak Pass)[3], 압카란드라(Ab Karandra), 다와(Dawa)를 점령했다고 하며 판지시르에서 북쪽 끝인 바다흐샨주도 점령했다고 한다. 만약 탈레반의 주장이 맞다면 판지시르 주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이다. 하지만 저항군 측은 이를 가짜뉴스로 치부하고 있다. #

판지시르 주(Panjshir)와 바글란 주(Baghlan)의 경계에 위치하는 카왁 고개에 탈레반이 2차 공격을 시도했다. #1 #2

탈레반 추가병력이 판지시르의 입구격인 골바하르(Golbahar)로 진격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

저항군이 카불과 판지시르 사이에 위치한 카피사 주(Kapisa Province) 일부를 점령했다고 한다. Shirkat 시장(Bazaar), Jamalagha, Deh Baba Ali, Kuhband 지역(District) 등을 점령했다고 한다. #1 #2

카피사 주의 알 비루니(Al Biruni)에서 신북부동맹군이 탈레반을 공격했다. 게릴라 전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

탈레반은 카왁 고개를 점령했다고 주장한다. #1 #2 그러나 신북부동맹군 주장에 따르면 판지시르 경계 6곳에서 들어오는 탈레반을 잘 막아냈으며 탈레반이 주장하는 판지시르로의 유입은 없으며, 탈레반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다고 반박했다. # 오히려 신북부동맹은 카왁 고개를 사수중에 있으며, 판지시르 주의 한 지역(district)인 쇼툴(Shotul)과 라탕(Rah Tang)에서의 방어태세에서 진격태세로 전환하여 탈레반을 물리쳤다고 주장한다. #

신북부동맹 대변인이 카왁 고개에서 40시간 이상의 전투를 벌이는 동안 탈레반 병사 40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다쳤으며, 그럼에도 1킬로미터 조차 전진하지 못했으며 승리를 재차 확언하였다. #

카불에서 남동쪽에 위치하며 파키스탄 국경과 맞대고 있는 코스트 주(Khost Province)에서 신북부동맹 저항군이 탈레반을 공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 판지시르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탈레반을 공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저항군 측의 과장일 수도 있으므로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신북부동맹군의 판지시르 방어전 외에 카피사 주와 파르완 주를 무대로 한 별개의 게릴라 부대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

하자라족 군벌이 신북부동맹과 함께 탈레반을 공격했다는 뉴스가 있다. #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 하자라족이 모여 사는 바르다크(Wardak) 주와 다이쿤디(Daikundi) 주에서도 산발적인 충돌이 계속됐다고 한다. # 바르다크 주와 다이쿤디 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정중앙에 위치한 곳에 있으며, 수도 카불에서 정서쪽에 위치해 있다.

탈레반이 판지시르 주의 주지사를 임명했다. 하지만 판지시르 주를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권은 없는 주지사일 전망이다. #

신북부동맹의 대변인이 판지시르에서 탈레반 135명을 죽이고 카피사(Kapisa)에서 탈레반 45명을 죽였으며, 5,000명의 코만도가 "항복을 거부하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 말했다. #

판지시르 저항군의 트위터 계정에 다라(Dara) 지구에 거주하는 젊은 장정들이 판지시르 주의 카왁(Khawak) 지구에서 일어날 전투에 자원할 예정이라는 트윗이 업로드 되었다. #

탈레반이 판지시르 계곡을 포위한 가운데 투항을 요구하며 산발적인 교전을 벌이고 있다. #

2.2. 9월 2일

신북부동맹측의 비스밀라 모함마디[4] 아프간 전 국방장관은 9월 1일 밤에 탈레반이 판지시르에 대한 재공격을 시작했지만 패배했다며 탈레반 소속 전투원 34명이 사망하고 65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

한편 판지시르의 쇼툴 구역에서 양 측이 충돌하여, 사상자가 발생했다. #

2.3. 9월 3일


밤 사이 탈레반의 대규모 공격이 있었지만 저항군에 의해 전부 격퇴됐다. # 저항군 SNS 계정들은 파르완 주 살랑 구역(Salang District)과 주도 차리카르(Charikar)를 탈환한 한편, 470명 이상을 사살하고 43명의 포로를 사로잡았다는 전과를 발표했다. 탈레반 측의 부상자는 390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구 소련군 장비인 BM-40의 발사장면 역시 공유되었다. # # #

탈레반 계정들은 별다른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채 침묵을 유지했다. 침묵을 유지하는 이유는 단 두가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거나 그냥 무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편 탈레반이 주장한 선전 중 하나인 카왁 고개 점령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방인 바글란 주 안다라브로 역습한 저항군과 판지시르 내의 완고한 방어로 해당 지역까지 진격한 탈레반 부대는 포위된 상태이다. #

이 관측을 뒷받침하듯, 카왁 고개에서 동쪽으로 9킬로미터 떨어진 카박(Khavak)에서 탈레반 대원 10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 사상자는 그보다 더 많은 것으로 추산된다. #

탈레반의 이번 공세는 야간전투장비를 이용한 야간에 이뤄졌는데, 신 북부동맹 지휘부 측은 이러한 전투가 가능하도록 장비를 지원한 곳이 파키스탄이라고 주장했다. #

구 북부동맹의 저항지였고, 아프간 영웅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주로 활동했던 지역인 타카르 주(Takhar province)의 쿠와자 가르(Khuwaja Ghar) 지역에서 탈레반에 반기를 들었다고 한다. #[5]

탈레반이 신 북부동맹의 완전한 격퇴를 위해 알 카에다와 손을 잡았다고 알려졌다. #[6]

금일 오후 4시 경부터 탈레반의 새로운 공세가 시작되었다는 선전이 있었다. 탈레반 선전 매체에선 판지시르 주요 거점을 순식간에 점령하고 판지시르 내부까지 들어가 격전 중이라고 선전을 했으나, 판지시르 저항군 측 계정들과 카불에 있는 탈레반 대변인 측도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남겨 이 선전 내용은 대부분 거짓으로 보인다. 또한 이 계정에서 판지시르 사령부 항복과 살레 대통령 권한대행의 타지키스탄 망명이라는 출처 불명의 찌라시까지 유포되었는데, 저항군 측은 즉각적으로 주도 바자라크에서 벌인 야간 출정식 영상 @과 살레 대행의 공식 근황 영상 #을 올려 반박했다.

어처구니없는 건, 저항군도 속이지 못한 찌라시에 탈레반들이 속았다는 것인데, 진짜로 판지시르가 항복한 걸로 착각한 카불 주둔 탈레반 대원들이 심야에 공중에다 축포를 난사하여, 당시 수많은 카불 시민들이 불안에 떨었었다. 그래서 얼마 뒤 탈레반 수뇌부가 공중 사격을 지양하라며 공식 경고를 올리기도 했다. # 이 사격으로 최소 17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

판지시르 주 경계 고지 이외에도 금일 저항군이 재탈환한 파르완 주의 도시에서도 대대적인 교전이 벌어지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 저항군은 판지시르 계곡 길목을 비롯한 여러 지점에 지뢰와 부비트랩 등을 설치했는데, 탈레반이 여기에 걸려 큰 피해를 보았다. 이 때 폭사한 탈레반 병사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지역 민간인들을 강제로 투입했다고 보도되었다. 이 공방전에 휘말린 파르완 주 민간인들은 고향을 떠나 판지시르 방향 또는 카불로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2.4. 9월 4일

카왁 고개를 넘어 파르얀(Paryan)으로 야간 진격 중이던 탈레반 부대[7]가 저항군의 유인 후 섬멸 전술에 당해, 해당 선전을 올린 시간대까지 험비에 틀어박혀 기약 없는 농성 중이었다고 저항군이 밝혔다. # 포위된 탈레반 부대는 이후 날이 밝자 대부분 섬멸당했으며, 그 과정에서 탈레반 부대의 지휘관이 사살되었다는 추가 성과도 발표했다. #

위에 언급된 탈레반 특수부대가 궤멸된지 얼마 후, 탈레반의 새로운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이에 북부동맹군은 일부러 마을과 길을 내주고, 좁은 길목 옆 바위산에 설치된 폭약을 격발해 낙석공격을 하여 계곡 깊숙히 진격한 탈레반 부대의 퇴로를 차단했고 생존한 병력 상당수도 계곡에 갇혔다고 한다. # 이번에 퇴로가 차단된 탈레반 부대는 가지고 온 수송 차량과 험비 등 장비들을 버린 상태이다. 해당 탈레반 부대는 파르얀(Paryan)을 끝내 점령한 것으로 보이나 퇴로가 차단당했기에 저항군 측의 강한 압력을 받을 전망이다. #

남서부 판지시르 국도를 따라 탈레반 부대의 또다른 진격이 있었다. 이 부대는 큰 저항 없이 쇼툴(Shutul)과 아나바(Anaba) #를 점령했지만, 이후 바라자크로 돌격하는 과정에서 주변 고지에 매복한 저항군의 대규모 역습에 당해 진격이 돈좌되고, 큰 피해를 당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판지시르의 입구인 골바하르(Golbahar)에 있던 잔여 병력들이 카피사 주 방향으로 퇴각하는 영상이 포착됐다. # # 비슷한 시기, 탈레반 지도부도 공식으로 판지시르 주 통제 선언을 철회했다. @

2.5. 9월 5일

금일까지 탈레반은 판지시르 일대의 전투에서 공식적으로 1,132명 전사, 725명 부상, 포로로 2천여 명 정도의 누적 피해를 입었으며, 비공식 통계로 따지면 최소 3~4천 명 가량의 인명피해를 당했다.[8]

이 인명 피해를 탈레반 측도 무시하기 어려웠는지, 율법학자 장로들로 구성된 조직, 울레마(Ulema)를 만들어 판지시르 측과 휴전 협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에 아흐마드 마수드도 휴전 협상에 찬성한다는 공식 성명을 내면서, 대신 현재 모든 공격을 멈추고 판지시르 주와 바그란 주 안다라브 마을 일대에서 철수하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

탈레반 내 온건파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국만 저항 전선 관련하여 회유책을 주장하고 판지시르에서 자기 부하들을 철수시키자, 친파키스탄 군벌 시라주딘 하카니와 갈등이 발생하여 카불 내에서 양측의 총격전이 발생했다 한다. 바라다르는 파키스탄 내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 중이라고 한다. #

새벽 동안 탈레반 돌파 부대가 점거한 파르얀 일대에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 이 공방전이 벌어지는 와중 국적 불명의 무인기가 출현해 저항군 진영을 공습하고 조명탄을 전투 지역 여러 곳에 투하했다고 한다. 북부동맹 측 소식통은 이 공습의 배후로 파키스탄 정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그러나 판지시르 계곡 내의 연이은 승리에도 사면초가의 전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9] 저항군은 알 카에다, ISIS, 펀자브인, 탈레반, 탈레반의 정예 부대인 바드리313 대원으로 위장한 파키스탄 특수부대들이 여섯 곳에서 계속해서 공격을 시도하고 있음을 알렸다. #

파키스탄 정보부 ISI의 수장이 카불 세레나 호텔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저항군이 사살한 탈레반의 소지품에 파키스탄 주민등록증이 다수 발견되었다는 점을 미루어 파키스탄계 탈레반뿐만 아니고 정부가 직접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또다시 판지시르 계곡의 인터넷이 불통 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 이미 전신을 비롯한 유선 통신이 단절된 상황에서 무선 통신까지 차단하기 위해 전자전까지 개시한 걸로 보인다.

한참 뒤, 판지시르 측 계정이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현재 탈레반 부대가 남서쪽은 루카(Rukha) 마을까지, 북동쪽으론 카로(Kharo) 마을까지 들어왔다고 밝혔으며, 저항군 측은 늘 그러했듯이 역습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 반대로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탈레반 측 계정은 주도 바자라크를 동서로 포위할 발판을 마련했다고 선전 중이다.

2.6. 9월 6일

어젯밤부터 이어지던 공격이 판지시르 전역으로 커질만큼 대대적인 공세가 있었다.

이 공격에 파키스탄 공군이 공식으로 참전해서 전투 헬기로 저항군 방어선 또는 매복 지점을 공습했으며, 무인기로 후방 정찰 및 주요 인물 암살 시도도 병행했다고 저항군 측은 밝혔다. #[10]

이러한 공습으로 저항군 대변인 # 압둘라 압둘라의 조카 그리고 저널리스트 2명 등이 공습에 휘말려 숨을 거뒀다고 전하고 있다. #

파키스탄의 지원에 힘입어 탈레반 부대는 다시 판지시르 계곡 내부로 진입해 주도 바자라크로 돌격 중이며, 총사령관 마수드는 결사항전을 부르짖으며 최전선에서 독전 중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이 판지시르에서 카불로 피난 온 200명 이상의 소년들을 이유없이 잡아갔다. #

탈레반은 저항군과의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고 예상보다 피해가 커지자 때려잡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까지 감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중에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겠지만 과거 북부동맹의 제압에 실패해 미군에게 교두보를 주었던 과거를 교훈삼아 이번에 아주 철저하게 말살해 하자라인 등 탈레반에 대한 불만이 큰 소수민족들의 저항의지를 꺾으려는 듯 하다.

반면 저항군의 주전력인 특수작전군의 생존자들 입장에선 파키스탄 공군의 공습은 어쩔 도리가 없어 지상전의 결과와 상관없이 공습에 의해 사상자가 늘어나고, 이 때문에 전황이 더 불리하게 기울었다. 이 상황이 장기화되면 저항군들은 전선 곳곳에 뿔뿔히 흩어져 각개격파당할 수밖에 없다.

끝내 탈레반이 바자라크의 판지시르 주지사 관저를 장악했다. # 아울러 바자라크 운동장에 계류시킨 저항군이 보유하고 있던 헬기 전력들을 확보한 영상이 업로드 되었다. #. 이후 판지시르 주를 장악한 탈레반은 주민들과 대면하여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 저항군 측은 일단 주변 산야로 대피했지만 곧바로 탈레반의 추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이 판지시르 주를 완전 접수했다고 선언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흐마드 마수드가 성명을 냈다. # 성명에는 "전 아프간인의 봉기", "탈레반 가담자의 각성 촉구", "국제사회의 지원과 관심을 호소", "탈레반을 지원하는 외세[11]에 대한 비난"이 포함되어 있다. 성명을 미루어보아 저항군의 항거는 게릴라 방식으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금일 전투에서 파키스탄이 개입한 사실이 명백해지면서 탈레반 치하 아프간 국민들의 반 파키스탄 감정을 폭발시키게 만들었다. 또한 마수드의 성명을 들은 상당수의 카불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성명에 동조하는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 # # # 가즈니 주에서도 반 탈레반, 반 파키스탄 시위가 발생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

2.7. 9월 7일

이란이 탈레반의 판지시르 공세에 '강하게 규탄(strongly condemned)'했다. 동시에 파키스탄으로 여겨지는 '외부 세력의 개입'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

바자라크 함락 이후 계곡 깊숙한 곳에 숨어버린 저항군 소탕을 위해 진격하던 탈레반 부대가 안다라브 등 여러 지점에서 국적 불명의 전투 헬기 3대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탈레반 측에서 밝혔다. 갑작스러운 제3세력의 출현으로 탈레반 측 소식통이 당황할 무렵, 아직까지 생존한 저항군 측 트위터 계정자가 해당 공습은 아프간 정부 붕괴 직전에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에 군용기를 끌고 망명한 공군 파일럿들이 자발적으로 참전한 것이라며 감사의 반응을 남겼다. #[12][13]

뒤이어 어둠을 틈타 저항군 측이 반격을 가해 바라자크 중앙 도심을 재탈환하고 바자라크 경기장 소재지로 알려진 루흐카(Ruhka) 일대에서 격전 중이라는 소식도 알리고 있으나 아직 확실하진 않다. 저항군 트위터에 따르면 탈레반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판지시르의 비무장 민간인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고 알리고 있다. @

한때 탈레반에게 공식으로 점령되었던 바자라크의 아흐마드 샤 마수드 영묘가 훼손되었다는 증거 사진이 나타났다. # 다행히 교전으로 정신이 없을때라 묘를 완전히 파헤쳐 부관참시나 영묘 폭파 같은 극단적인 행위가 아닌 석관을 보호하는 유리판만 깨트렸다. 하지만 이 유리판에 고인의 명예를 상징하는 코란 구절이 새겨져 있다는 게 밝혀져 이슬람교 특유의 신성모독 논란까지 얽매이고 있다. # 탈레반은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하고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나 @ 훼손된 장면은 일파만파 퍼지고 있어 해당 행위는 앞으로 있어 탈레반의 통치에 막대한 악재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한편, 카불을 비롯한 여러 주에서 반탈레반 시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 @ 탈레반 측은 이 시위를 해산하기 위해 사격을 시행한 것으로 보이며 # @ # #, 사상자가 발생했다. # #

아프가니스탄 마오주의 공산당 측에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시위에 나서기를 주장하였으며 반탈레반 시위를 지지하였다. @

2.8. 9월 8일

새벽을 틈타 남부 칸다하르에서 올라온 탈레반 증원군이 공세 끝에 바라자크를 임시로 점령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14] 이에 바자라크 수비군은 잠시 후퇴했다가 북부의 수비 부대와 배후의 매복군과 합세하여 반격을 가한 것으로 보이며, 격전 끝에 탈레반 부대는 또다시 패퇴했다고 한다.

이 패퇴한 탈레반 부대를 완전히 섬멸하기 위해 저항군은 판지시르 남부에 있는 로카(Rokha) 마을까지 내려와 교전 중이라고 밝혔다. #

한편 고립되거나 패퇴 직전에 몰린 현지 탈레반 대원들이 독단적으로 판지시르 주의 비무장 시민들에 대한 무차별 사살을 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저항군 측에서 공식으로 탈레반의 잔혹함을 규탄하는 성명을 올렸다. # 아울러 저항군으로 참전한 병사, 민병대원의 가족들을 조직적으로 색출해 사살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 #까지 나오자, 더 이상 탈레반 포로 또는 전사자들에게 안식을 줄 필요가 없다며 판단하면서, "우리는 탈레반 흡혈귀놈들의 시체를 수거한 뒤 산에 대충 갖다 버렸으며, 민간인에 대한 무자비함의 대가로 이들의 시체를 반환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

저항군은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

바다흐샨 주의 탈레반 지휘관이 자신의 부하 170명과 함께 전향했다는 소식이 알려졌으나 #, 해당 정보가 확실한지는 더욱 구체적인 증명이 필요하다.

2.9. 9월 9일

판지시르 주 남부에 있는 수많은 마을에서 탈레반의 민간인 학살 사례가 계속 보고되고 있다. 파슈토어 아직 남부에 버티고 있는 탈레반 부대는 30년 전 소련군이 그러했듯이 판지시르 계곡을 관통하는 메인 도로와 도로에 붙어 있는 관공서를 장악한 상태이며, 저항군은 과거 소련군을 상대할 때처럼 야산에 숨어있다가 불시에 습격하는 유격전으로 대응하고 있다.

저항군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타지키스탄에서 민병대가 조직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나타났으나 아직까진 확실하지 않다. #

금일 오후 1시 경, 탈레반과 저항군 사이에서 단 3일 가량의 임시 휴전을 맺었다고 한다. #[15]

2.10. 9월 10일

어제 오후를 기점으로 상호 간 적대행위를 잠시 멈추기로 합의했지만, 판지시르 계곡 남부 거점들에 정착한 탈레반 대원과 저항군 유격대 간의 교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 사실상 휴전이 유명무실해졌다.

한편 지난 며칠 동안 벌어진 탈레반 침공군의 무차별 학살 및 약탈 행위를 견디지 못한 판지시르 주 민간인 수백 명이 계곡길을 따라 피난길에 올랐다. 다만 저항군과 한패라는 인식에 일부러 가혹하게 대해 알아서 떠나게 만드는 게 아닌가라고 보는 관측도 상당하다. #

이 날, 저항군 핵심 인물이 목숨을 잃었다. 비극의 주인공은 대통령 권한대행 중인 암룰라 살레의 친형 "로훌라 아지지"란 인물로 탈레반과 교전 중[16] 포로로 잡혀 즉결처형 당했다고 한다. #

저항군은 포기하지 않았는지, 저항군 측은 파르얀(Paryan) 구[17], Dareh 구와 Abshar 구[18] 안에 퍼져 있던 탈레반 부대들을 전부 몰아내고, 완전히 탈환했다고 밝혔다. # @ #

2.11. 9월 11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대통령 권한대행인 암룰라 살레의 친형 로훌라 아지지의 장례를 불허한다고 발표했다. 살레의 조카는 전날 "그들이 삼촌(로훌라 아지지)을 9일 죽이고, 매장도 하지 못 하게 했다"며 "그들은 삼촌의 시신이 썩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문자메시지를 한 로이터통신 기자에게 보냈다. #

2.12. 9월 12일

한편, 저항군의 핵심 거점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알려진 바글란 주 안다랍 마을 일대로 탈레반 부대가 진격하다, 저항군의 저항에 부딪혀 큰 피해를 입고 패퇴했다고 한다. #

2.13. 9월 13일

본격적인 게릴라 전으로 돌입하면서 저항군 측에서 위치 유출을 우려해 의도적으로 전황 소식을 알리지 않고 있다.[19]

미확인 소문으론 북부 도시들의 민심 불안이 최악에 치달아 결국 저항군에 동조하는 무장 봉기가 시작되었다는 말도 있고, 압둘 라시드 도스툼 장군이 우즈베키스탄 출신 민병대를 이끌고 북부의 국경 대도시인 마자르 이 샤리프를 순식간에 장악하여 거점 확보를 성공했다는 소문도 있으나, 아직 어느 곳에도 북부 지방의 상황을 알리는 소식통이 없어 확실하지 않다.

2.14. 9월 14일

두 번이나 벌어진 마수드 영묘 훼손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탈레반 측이 칸다하르 출신 사업가를 통해, 파손된 유리판과 비석을 새로 제작하고 영묘에 설치했다고 밝혔다. #

2.15. 9월 15일

아프간 정부 붕괴 당시 헤라트를 지키다 결국 항복하고 이란으로 망명한 이스마일 칸이 이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판지시르 주만 홀로 저항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저항의 움직임이 있으며, 이는 사그라들지 않고 점점 커지고 있다고, 대 탈레반 저항 여론을 부추겼다. @

아프가니스탄 마오주의 공산당에서 탈레반에 의한 여성 권리의 침해를 비판하였다. @

2.16. 9월 16일

오랜만에 저항군 측 대표 계정이 침묵을 깨고 새로운 소식을 냈다.

먼저 바자라크 일대를 다시 장악해 승기를 잡는 듯 했던 탈레반이 산맥 너머 벌어졌던 안다랍 공방전 이후, 이틀 연속으로 공격하러 나서지 않아, 총격전 자체가 나지 않은 폭풍 속의 고요 같은 시간을 보냈다며 근황을 알렸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저항군의 별동대가 탈레반의 내부 혼란을 틈타 판지시르 주 이북 지역으로 북진해, 타지키스탄의 접경 도시인 바다흐샨 주 에쉬카셈(Eshkashem)을 점령했으며 주변 지역 보강을 위해 추가 증원군을 쪼개 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

2.17. 9월 17일

지난 1주일에 걸쳐 자행된 탈레반의 초토화 작전으로 현재 판지시르에 있던 대부분의 민간인들은 계곡 밖으로 빠져나가, 판지시르 주의 생산 능력이 사실상 소멸되었다. @

그래서 저항군도 판지시르 주도 바자라크를 비롯한 주요 저지대 거점 마을들이 무너졌다는 걸 공식으로 인정하면서, 이제부터 미군 철수 이전 탈레반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항군 측도 판지시르 계곡을 떠나 북부 전역으로 흩어져 여러 방면에서 게릴라 공세를 벌이겠다며 선언하였다. #[21]

2.18. 9월 19일

아프가니스탄 마오주의 공산당에서 탈레반의 타도를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

2.19. 9월 22일

판지시르 저지대의 붕괴 이후에도 저항군의 여러 부대들이 여전히 판지시르 고지대에 남아 저지대의 탈레반 부대가 다른 지방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는 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거점 중 하나로 알려진 바글란 주의 안다랍 지역으로 탈레반 부대가 다시 진격했었다. 하지만 이 부대는 저항군+민병대과의 전투 끝에 엄청난 사상자를 남기고 겨우 후퇴했다고 한다. 방어하던 저항군은 이에 반격을 실시하여 안다랍 주변 탈레반 거점 마을과 고지를 모두 탈환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한편 9월 초 이후 공식 매체에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던 마수드와 살레를 비롯한 저항군 사령부 인사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에 대하여, 여러 언론사들이 아프간 북부 고원에서 벗어나 안전한 타지키스탄에 망명했다고 보는 기사들이 여럿 올라왔다. 미국 매체 인터셉트[22] 영국매체 iNews 미국의 유명 정치저널 The National Interest 정보의 출처는 현직 미국 고위 관리 1명과 전직 아프간 공무원 2명이라고 한다.

2.20. 9월 23일

판지시르 산악지대에 있는 저항군들이 탈레반 수십명을 사살하고 100여명 항복, 40여명을 부상시켰다고 주장했다. #

본격적으로 하자라족을 대량 학살[23]하려는 탈레반의 계획을 저지하고 하자라족의 저항과 동조하겠다고 선언했다. #

2.21. 9월 24일~29일

하자라족에 대한 탈레반의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하자라 족의 젊은 층들이 와르다크 주와 다이쿤디 주에서 지금까지 저항 중이던 하자라 민병대에 대거 입대하고 있다. 탈레반은 이들도 막기 위해 진압 부대를 보냈지만, 하자라 민병대는 이를 막아내면서 점령지를 계속 키워내는 모양이다.

한편 판지시르 북쪽 바다흐샨 주 일대에도 새로운 전황이 드러났다. 16일 에쉬카셈(이스카쉼)의 점령으로 타지키스탄과의 보급로가 개통되자, 탈레반은 이 보급로를 차단하기 위해, 반대로 저항군은 이 보급로를 기반으로 주변을 평정하기 위해 진격하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이 전투에 탈레반의 네임드 부대인 "만수리" 대대가 참전했지만, 이 부대를 비롯해 탈레반이 큰 피해를 입고 패퇴했으며, 저항군은 더 나아가 타카르 주까지 진격해 일부 거점 지역을 장악했다고 선전하였다.

이로 인하여 바다흐샨 주의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카불의 탈레반 사령부도 다급하게 증원군을 편성하여 북부로 가는 주요 국도인 살랑 통로(Salang Pass)를 통해 파병하려 했다가, 이 일대에 매복한 저항군 부대에 발각되어 큰 피해를 당했다. 살랑 통로 일대 외에도 카피사 주의 데 바바 알리 지구에도 일부 저항군 유격대가 도착해 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저항군 측은 주장하고 있다.

2.22. 9월 30일

저항군은 탈레반에 대한 게릴라 공격으로 다수의 탈레반 병력이 부상을 입었고 판시지르 지방보안 책임자인 루미 아가 미르의 아들이 사망했다. 공격 후 저항군 부대는 성공적으로 지역을 떠나 기지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1] 주황색 지역은 저항과 충돌이 치열한 곳, 보라색 지역은 조직적인 지역 저항군이 결성되거나 최근 무장 충돌 빈도가 증가한 지역, 하늘색 지역은 최소 한번 이상 총격전 등의 무장 충돌이 발생한 지역을 의미한다. 지도를 보면 판지시르 주를 중심으로 저항 물결이 짙은 것을 알 수 있다. [기준일] 21/11/9 [3] Kotal-e Khawak [4]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국방부 장관 권한대행이다. [5] 타카르 주는 아흐마드 마수드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6]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알 카에다에게 암살당했다. 아흐마드 마수드 입장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 둘이 서로 손을 잡은 셈이다. [7] 탈레반 지휘부 직속 특수부대인 "레드 유닛" 부대로 판명되었다. [8] 점점 누적되는 인적 손실에 협상을 시도하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데, 이는 탈레반 조직원이 6~7만에 불과한 데다가, 며칠 전 봉기했다고 알려진 하자라족 무장세력도 소탕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친 탈레반 트위터 계정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거짓인 선전 보도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병력소모가 심해지면서 생겨난 내부 불안을 결집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9] 어제의 전쟁의 포화 속에서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지 신북부동맹 측 트위터(Panjshir_Province)에서 "세계는 침묵하고 있다. 1000가지의 문제에 해답은 없다. 내 생각에 미국, 유럽, 파키스탄, 러시아, 이란, 탈레반은 합세해서 우리의 반대편에 선 느낌이다."라는 암담한 트윗을 올렸다. # 뒤이어 "야간 전투가 내 인생 최악의 밤이었다." #와 "하룻밤이 일 년과 같이 길었다. 그러나 빛(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라는 자조적 평가도 올렸다. [10] 참전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 그저 육안으로 식별 가능했던 전투헬기와 무인기 몇 대, 그리고 탈레반 대원으로 위장한 파키스탄 특수부대원이 있을 것 같다고 모두 '추정'만 했었다. 그러다 미합중국 중부사령부 측에서 확인 조사 끝에 파키스탄 군인이 가득 탄, 군용 헬기 27대(파키스탄 공군 주력 헬기인 Mi-17로 가정했을 경우, 최대 600명 내외로 추산)와 무인기가 판지시르 계곡으로 북상한 걸 공식적으로 인증을 했다. [11] 파키스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12] 왜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에서 이 망명 파일럿들에게 보급을 주고 출격을 허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이 독단적으로 출격했다고 보는것은 보급이나 보안(영공 통과) 문제 등 여러가지로 현실성이 없다. [13] 굳이 이들의 출격을 그냥 바라본 이유를 추측해보자면 탈레반을 그동안 은근히 뒤에서 지원해왔던 파키스탄이 이제는 대놓고 이빨을 드러내며 군사력으로 판지시르를 공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런 정세를 그대로 놔둬버리면 아프간은 파키스탄의 위성국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인 파키스탄과는 다르게 우즈벡과 타지키스탄은 이슬람 세속주의를 추구하고 있어서 파키스탄의 영향력이 국경지대에 닿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도 아프간에서 넘어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두 국가의 세속주의를 비판한다며 테러를 감행하려고 시도중인데, 각종 테러단체의 산실인 파키스탄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것이 달가울 리가 없다. 파키스탄 영향력의 확장을 막자고 무작정 우즈벡과 타지키스탄이 아프간에 직접 군사력을 투사하는 것은 명분상이나 실리상으로 좋은 선택은 아니기 때문에 은근슬쩍 망명 아프간 파일럿들을 지원해서 파키스탄을 견제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14] 이번에 올라온 탈레반 부대도 마수드 영묘를 가만히 두지 않았는데, 묘비를 쓰러뜨려 박살을 냈다고 한다. 다만 이 행위가 작정하고 한 게 아니었는지, 박살난 묘비를 보고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일부 탈레반 병사들의 행적이 영상 @으로 남았다. 그러나 여전히 고인을 모독한 행위라는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다. [15] 하지만 이 합의 소식을 현장의 모든 탈레반 대원이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민간인을 노린 공격을 한다던가, 병원 등 관공서 건물을 여전히 지키고 있으며, 이 때문에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 저항군들 사이에서 장기간 산악 행군으로 인한 탈수 증상에 시달리거나 전투 중 부상으로 쓰러지는 병사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페르시아어 [16] 또는 휴전 소식을 믿고 가족들과 함께 피난 대열에 합류하다가 [17] 판지시르 주 북동부 구역 [18] 해당 두 구역은 바자라크 기준 남동쪽을 관할하고 있다 [19] 또한 그동안 저항군 계정에 맞서 선전 글을 올리던 친 탈레반 계정이 최근 며칠 동안,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 본사 관계자의 제재(혐오 조장 등)로 대부분 삭제 조치 당하면서, 현재 남아있는 아프간 관련 계정들은 반 탈레반, 친 저항군 성향의 계정들만 있다. 이로 인해 SNS를 통한 교차검증이 매우 어려워지게 되었다. [20] 하지만 저항군의 전력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대부분 판지시르 주 고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기에, 실제로 이 도시를 점령한 세력이 저항군이 아니라, 저항군의 요청을 받고 월경한 타지키스탄 계열 의용군이 아닌가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21] 이 투쟁의 글을 올린 저항군은 해당 글을 비롯해, 거병 이후 판지시르 저항군이 처해왔던 여러 어려움들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을 회고한 백서도 남겼다. 이 내용 중 최후의 주도 바자라크의 함락으로 우리가 알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트윗 번역 [22] 에드워드 스노든 NSA 기밀자료 폭로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더 가디언의 기자 글렌 그린월드가 창설한 매체로서 # 미군의 드론 암살 프로그램을 폭로하는 등 미군의 대외정책에 상당히 비판적이어서 미군에서는 공식적으로 구독금지 리스트에 오른 매체이다 [23] 하자라족 출신 주민들이 대량 거주하는 마을에 난입해서 외국 출신 탈레반 대원들을 위해 집을 비우고 마을에서 나가라는 추방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를 거부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총을 쏘거나 폭탄을 터트려서 마을을 피바다로 만들고 있다는 사건도 여럿 보고되고 있다. 이렇게 추방된 하자라족 주민들은 이른 추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얼어 죽거나 식량 부족으로 굶어 죽어야 할 답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