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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10000><colcolor=#ffffff> 모로코 알라위 왕조 제3대 국왕
모하메드 6세 محمد السادس Mohammed V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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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3년 8월 21일 ([age(1963-08-21)]세) | ||
모로코 라바트 | |||
재위기간 | 모로코 국왕 | ||
1999년 7월 23일 ~ 현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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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10000><colcolor=#fff> 가문 | 알라위 가문 | |
아버지 | 하산 2세 | ||
어머니 | 랄라 라티파 함무 | ||
자녀 |
아들 몰레이 하산 딸 랄라 카디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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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모로코 왕립 아카데미 (
졸업) 무함마드 5세 대학교 (법학 / 학사) 무함마드 5세 대학교 (정치학 / 석사) 무함마드 5세 대학교 (공공법 / 석사) 니스-앙티폴리스 대학교 (법학 /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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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이슬람 ( 수니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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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재 모로코의 국왕. 하산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2. 생애
포브스에 따르면 자산은 21억 달러(약 2조 8,000억원)로 추정되어 세계 왕족의 재산 순위 중 7위에 이른다 한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왕실에 관련된 부패 문제가 상당하다고 한다. 설령 왕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표현하는 순간 골로 가기 때문에 외국 거주 모로코인을 제외하면 왕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듣기 힘들다. 그럼에도 대내/대외정책을 비교적 현명하게 해왔다.내부적으로는 역사적으로 내부 갈등의 핵심이던 베르베르(아마진)에 대한 유화책, 여성권리, 이슬람 극단주의 경계. 대외적으로는 전통의 적국인 스페인과의 화해, 알제리와의 화해제안 등의 대외정책으로 프랑스에 의존하는 부분을 줄임을 목표로 하는 듯하다. 모로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왕실이 모로코 발전에 이바지한 바도 크고, 상술했듯 왕실의 부패 문제가 있지만 왕이 없으면 정치인들이 똘똘 뭉쳐서 짬짜미를 해먹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지대학교 중동문제연구소가 '모로코 왕국 헌법' 번역·제작한 것에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친서를 명지대학교에 전달했다. 전달식은 주한 모로코 대사관에서 2018년 4월 19일 이루어졌다. #
아내인 랄라 살마와 나이 차가 15살이나 되는데 2001년에 결혼했다. 결혼 당시 짐은 오로지 랄라만을 아내로 맞이한다고 알라에게 선서했기에 지금도 아내는 랄라 살마 하나뿐이다. 일부다처제가 허용된 모로코 왕실에서 특이한 경우.[1][2] 선왕인 하산 2세는 아내가 2명이었다.
화려한 미모로 인기 있던 왕비 랄라 살마와 1남 1녀를 낳고 잘 사나 싶었으나, 2017년 12월 이후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언론에서 두 사람이 이혼했다는 추측이 나왔다. # 아내 살마가 사라진 때를 기점으로 무함마드 6세의 건강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고 한다. 참고로 위 사진은 왕위 즉위 무렵의 젊을 때 사진이고 아래 사진은 건강할 적 사진이다. 현재는 급노화가 진행됐으며 살도 빠지고 병색이 완연하며 연설할 때 보면 노인처럼 목소리가 떨리고 힘이 없다. 아무튼 이 모든 조짐을 모로코 내부에선 쉬쉬하면서 모른 척 한다. 결국 이혼 사실이 2018년 3월에 비공식적으로 알려졌다. 2021년 이후로는 언론에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2020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심장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
2021년에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의 배후 지원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했다.
2023년 2023년 모로코 마라케시사피 지진 발발 당시 프랑스에서 머물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3. 여담
- 소탈한 모습으로 인기를 얻었다. 국민들과 마주치면 허허 웃는 표정으로 '인증샷'을 찍어준다고 하며 이런 친근한 모습은 아랍의 봄 시위 당시 반왕실 시위가 금세 묻히는 원인이 됐다. 그러나 이 좋은 평가도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프랑스의 별장에 머무르다가 뒤늦게 허둥지둥 귀국하는 등의 행동으로 옛말이다.
- 아들이자 왕세자로는 2003년생인 몰레이 하산 빈 무함마드가 있다. #
-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자국 모로코가 8강에 진출하자 당연히 모로코 현지에서는 모두 축제분위기였던 상황에서, 무함마드 6세는 라바트 거리에 차를 타고 등장했다고 한다. 모로코를 상징하는 붉은색 옷을 입고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차안에서 국민들에게 국기를 흔들며 시내를 행진했다. #
- 이후 아프리카팀 사상 처음으로 최종 대회 4위를 달성한 모로코 축구 대표팀 전원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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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탄도 이와 같은 사례가 있다. 5대 국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국왕도
제선 페마 한 명만 보고 살아가겠다고 했기에 아내가
제선 페마 하나뿐이다.
[2]
이슬람권에서도 배우자를 한 명만 두는 무슬림 남성들이 대다수다. 이슬람 교리상 몇 번째 아내든 조금이라도 차별을 두면 안 되기 때문에, 경제력이 없으면 아내를 여러 명을 둘 수 없다. 돈 없으면 결혼 못하는 건 이 동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튀르키예같이 일부다처제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나라들도 있다. 왕족이면 마음껏 넷째 부인까지 둘 수 있을 것 같지만 의외로 왕비를 한 명만 두거나 많아봐야 두 명인 경우가 더 많은데, 정략결혼으로 맺어진 첫째 부인도 보통 친척이거나 유력 가문 출신인 경우가 많아서 눈치가 보이기도 하거니와, 부인이 많으면 국민들, 특히 여성들의 여론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