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의원 ( 가나가와 11구) | ||||
제41-44회 고이즈미 준이치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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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0회 고이즈미 신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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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신지로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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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국 제27·28대 환경대신 | |||
일본국 제45-50대 중의원 의원 고이즈미 신지로 小泉進次郎 | Koizumi Shinjir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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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7003A><colcolor=#ffffff> 출생 | 1981년 4월 14일 ([age(1981-04-14)]세) | ||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 |||
현직 |
제50대
중의원 의원 자유민주당 환경·온난화대책조사회 회장대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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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제27-28대 환경대신 내각부특명담당대신 (원자력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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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1일 ~ 2021년 10월 4일 | |||
SNS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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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7003A><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1] 어머니 미야모토 가요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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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형
고이즈미 고타로 남동생 미야모토 요시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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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타키가와 크리스텔(2019년 ~ 현재) | ||
자녀 |
장남 고이즈미 미치노스케(2020년 1월 17일생) 장녀(2023년 11월 20일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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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칸토가쿠인 무쓰라 소학교 (
졸업) 칸토가쿠인 무쓰라 중학교 (졸업) 칸토가쿠인 무쓰라 고등학교 (졸업) 칸토가쿠인대학 경영학부 ( 경영학 / 학사)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 ( 정치학 / 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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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75cm | ||
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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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파벌 | 무파벌 | ||
지역구 | 가나가와 11구 | ||
의원 선수 | 6 (중) | ||
의원 대수 | 45, 46, 47, 48, 49, 50 | ||
약력 |
전략국제문제연구소 비상근연구원 고이즈미 준이치로 중의원 의원 비서 제45-50대 중의원 의원 내각부 대신정무관 겸 부흥대신 정무관 제27-28대 환경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원자력방재담당) 자유민주당 총무회장 대리 자유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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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정치인. 6선(제45-50대) 중의원 의원이며, 환경대신을 역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의 차남으로, 본인 또한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었다.2. 생애
어린 시절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형 고타로와 같이 찍은 사진. 우측이 신지로.
1981년 4월 14일,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미야모토 카요코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준이치로와 카요코는 별거 상태로, 신지로는 형 고타로와 함께 첫째 고모인 미치코에 의해 길러졌다. 간토가쿠인 무츠라 소학교, 간토가쿠인 무츠라 중학교, 간토가쿠인 무츠라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의 모교이자 지역 명문고인 가나가와 현립 요코스카 고등학교(神奈川県立横須賀高等学校)에 입학하려고 시험을 치렀는데, 합격하진 못했다. #[2]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에는 야구부 부원이었다. #
2004년 칸토가쿠인대학 경제학부[3]를 졸업하고 2006년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SIPA에서 정치학 석사를 취득했다.[4] 이후 미국에서 약 1년간 국제전략연구소 CSIS 연구원으로 재직했다가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한다. CSIS 재직 당시 쓰지 기요토 의원과 함께 근무했다.
한국 내에선 통상적인 일본의 정치인 가문과 마찬가지로, 아버지 준이치로가 정계 입문을 적극 추천했다고 알려졌지만 일본 내에서는 오히려 아버지가 정계 입문을 매우 반대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현대의 정치인들이 나라를 불문하고 세습하지 않겠다는 립서비스를 많이 하기에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는 있지만 고이즈미의 경우는 교차검증이 어느 정도 되어 있는 편. 형인 고타로는 아버지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치인이 아닌 배우가 되었지만 동생인 신지로는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에 형 고타로가 한 인터뷰에서는 신지로가 정계에 입문하자 아버지인 준이치로가 충격을 받았고 이후 그 정치 도전을 인정하면서 "스스로 공부해라(自分で勉強しろ)"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
2.1. 정계 입문
2006년 6월 아버지 준이치로는 총리직을 내놓은 뒤부터 정치의 중심에서 급격히 멀어진다.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급히 귀향한 신지로는 2007년 아버지의 개인비서 자격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해, 2008년 아버지의 정계은퇴 선언 직후 공식 후계자가 됐다.자민당의 파벌이나 세습정치 같은 구태를 비판하고 혁파하려 한 준이치로조차도 자신의 후계자로는 아들을 세우고, 그 과정도 은퇴 발표를 해버리고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후계자로 아들을 지명하는 과정에서 다른 후보는 끼어들 틈도 없었다는 부분에서 비판을 받는다.
2.2. 국회 입성
2009년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나가 아버지의 지역구인 가나가와 11구에서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당시 최연소는 민주당의 마쓰오카 히로타카(1982년생)이었다. 당시 아소 다로 총리가 자민당의 멸망에 쐐기를 박고 정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는 게 확실시되던 상황에서 치른 선거라서, 자민당의 거물들조차 지역구에서 줄줄이 낙선하던 판이었다. 규마 후미오는 완전 낙선, 아마리 아키라, 이부키 분메이, 마치무라 노부타카 등은 지역구 낙선이지만 석패율 비례대표로 부활. 심지어 전직 총리대신들조차 16선 관록의 가이후 도시키가 낙선했고, 모리 요시로와 후쿠다 야스오는 젊은 여성 자객을 상대로 겨우 살아남은 선거였다.그럼에도 민주당 바람이 강하게 분 수도권에서 당선되었다는 점은 대단하다. 이때 자민당 소속으로 첫 당선된 신인이 단 4명뿐이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물론 지역이 가문의 텃밭이긴 하다. 어쨌든 같이 당선된 신인이 별로 없었고 자민당이 쪼그라든 상태에 혜성같이 나타난 신인이라 오히려 일본 정치 전면에 나설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이 때 맡은 자민당 내의 첫 당직은 청년국장으로, 보통은 재선 이상이 맡기에 초선 의원이 맡을 수 없는 요직이다. 자민당의 위기 상황에서 혜성같이 배출된 젊고 잘생긴 명문가 도련님의 브랜드 가치를 인정해 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실제로 총선 이후 살아남은 자민당 의원 수가 많이 줄어든 터라 다들 선수에 비해 중요한 당직을 맡기도 했다.[5] 실제로 자민당 젊은 정치인들 중 에이스급이 청년국장을 맡으며 수많은 중진 정치인을 배출했다. 청년국장을 거친 총리대신들로는 다케시타 노보루, 우노 소스케, 가이후 도시키, 아소 다로, 아베 신조, 기시다 후미오가 있다. 이외에도 현 자민당의 중진들 중에서도 활동이 활발하고 지명도가 높은 의원들이 많이 거쳐갔는데 청년국장 경험자로는 히라누마 다케오, 누카가 후쿠시로, 오코노기 하치로, 하마다 야스카즈, 시모무라 하쿠분, 이노우에 신지, 하기우다 고이치 등이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민주당이 사방에서 공격을 받았다. 2012년 사면초가 처지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카미카제 해산을 단행해 스스로 무너졌다. 총선이 치러지면서 신지로는 초선 때보다 3만 표를 더 받고 79.9%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재선됐다. 한편 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고이즈미 신지로가 청년국장으로서 46회 총선에 대거 출마한 젊은 아베 칠드런들( 오구라 마사노부 등)의 지원유세를 어마무시하게 많이 다녔다. 자민당 중진들보다도 고이즈미 신지로의 지원유세가 최고였다고. 2013년엔 자민당 청년국장 자격으로 '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참여했다. 정권을 되찾은 자민당은 우익 색깔이 한층 강해졌고, 신지로는 당색에 쉽게 물들었다.
이듬해 내각부 대신정무관 겸 부흥대신 정무관에 임명됐다. 의원내각제는 국회의원이 행정부 요직에 앉으므로 한국으로 치면 차관급의 고위직. 2014년의 총선거에서는 자기 선거구는 내버려 두고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만 했는데도 압도적인 득표차에 더해 전국 최다 득표자의 기록을 남기며[6] 3선 의원이 되었다. 이때가 불과 33세.
2017년 총선거에서도 지원 유세만 나갔다. 마찬가지로 78%, 15만 4천표의 큰 득표율로 당선. 1일 반 정도만 본인 유세를 했다고. 각종 스캔들로 하야 위기였던 아베가 국회 해산권을 발동해 총선을 치렀는데, 신지로의 이미지와 지원 유세는 자민당이 재집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웃기는 것은 선거가 끝나자 갑자기 '자민당 필요 없다'며 아베 신조를 정면 비판했는데, 이는 속이 뻔한 행동에 불과했다. 아베가 부가가치세율 인상을 결정하여 국민적 반감이 높아지자 그걸 이용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던 것.
일본 정가 및 언론은 신지로가 선거 유세에서 동일본 대지진 10주년을 언급하거나 2020 도쿄 올림픽 이후 인구 감소, 경기 후퇴 등을 언급한 것에 주목하면서 신지로의 야망이 차기 총리 자리라고 보고 있다.
신지로의 약점은 무파벌로 자민당의 뿌리 깊은 병폐인 계파 문제를 어떻게 타개할지도 관건이다. 아버지 준이치로가 자민당 내 비주류로 총리 재임 당시 파벌 타파를 내세웠던 만큼 자민당 내에서 아버지를 이은 무당파 비주류에 속하며, 기존의 자민당 내 파벌( 호소다 파, 아소 파-지공회, 기시다 파, 니카이 파 등)들의 영수들이 죄다 '포스트 아베 신조'라 불리는 총리직 경쟁자들이기 때문에 이들 파벌에 입적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이들도 받아줄 이유가 없다.
보수 계열의 타 당에 들어가 독자적 정치세력을 구성할 가능성도 있지만, 일본 정치의 세력 구도는 사실상 '자민당 외 듣보잡'인 상황일 뿐더러 고이케 유리코 등 신지로보다 더 상황이 좋았던 거물들조차 자멸한 상황이라 가능성이 낮다.
그런 면에서 모리토모/가케학원 스캔들의 조사를 위한 국회 특별위원회를 제의하거나, 자민당에서 발의한 참의원 정족수 확대 등, 공직 선거법 개정안을 힘으로 통과시킨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등 당내 소장파로서 이미지를 만드는 중이다.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등 일본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아베 신조는 건재했다. 신지로에게 있어 차기 대권주자로 부각될 기회였지만, 조사하라는 둥 원론적인 입장 표명만을 하면서 전혀 아베를 저지하지 못했다.
더욱이 2018년 6월 10일의 니가타현 지사선거에서 자민/공명당 후보인 하나즈미 히데요 후보에 대한 지원유세를 거절했는데, 당시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스캔들 때문에 위기였던 아베 신조의 재신임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행위를 한 셈이다. 결과는 여당 단일후보 하나즈미 히데요가 야당 단일후보 이케다 치카코를 3만 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아베는 무사히 당권을 지켰다.
만일 야당에게 졌더라면 신지로는 정말 현 자민당 주류들에게 찍힐 뻔했다. 어쨌든 아베의 총리 연임이 성공하며 "신지로의 태도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 뻔히 보인다"라고 말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신지로는 결혼 보고를 하러 총리실 문을 두드리게 된다.
아사히 TV의 보도 스테이션은 12월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지지도를 조사했는데, 29%의 지지율로 아베 신조의 16%, 이시바 시게루의 16%로 눌렀다. 지역구를 너머 지원 유세를 여러 군데 다니면서 정치적 입지가 높아졌다. 한편 제 1야당인 입헌민주당 측에서는 에다노 유키오 대표가 9%의 지지율로 2위인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4%)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니가타현 지사 선거 얼마 후 9월 20일에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이시바 시게루에게 투표했다. '자민당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목소리도 강점으로 바꾸어나가는, 그런 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이 때도 선거 운동 중엔 중립인 척 쫄았다가, 투표 직전에야 이시바를 지지한다고 밝혀 더욱 비웃음을 샀다. 뭔가 보여줘야 될 때를 실기하고 마지막에서야 마지못해 권력자에게 반기를 드는 행동은 아무런 실리도 챙기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낸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 정가에서는 이시바 지지를 표명해 총리의 등용문이 되는 관방장관에 오르지 못할 거라는 견해가 우세했고 그대로 됐다. 선거가 승리로 끝나자마자 아베는 수월회(이시바파)를 대대적으로 쳐냈다.
2.3. 환경대신 발탁
2019년 9월 10일 신지로가 바베큐 내각의 신임 환경대신으로 발탁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이 적극적으로 어필했다는 후문. # 아베의 기관지로 불리는 산케이 신문은 신지로를 키워 기시다 후미오 자민당 정조회장, 고노 다로 방위대신과 경쟁토록 하는 아베의 정치적 계산이란 평가.아버지와 달리 한국에 인지도가 없었지만, 2019년 일본 후지 TV 인기 아나운서 타키가와 크리스텔과 갑자기 결혼과 임신을 발표하면서 한국 미디어에도 화려하게 등장했다.
일본 농협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추진하는 등 차기 총리에 오르기 위한 단계를 밟아나가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 알려졌으며, 역사 인식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점차 지성이나 정치 철학이 빈약하다는 점이 드러나, 일본 누리꾼들로부터조차 조롱받고 있다. 예시.
게다가 타키가와 크리스텔과의 결혼을 쓸데없이 총리 관저에 직접 찾아가 보고하는 행동을 하면서, "총리가 되고 싶은 티를 너무 노골적으로 낸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물러나라는 둥 발언이 무색하게 결혼을 아베에게 보고하러 간 것도 비웃음을 샀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이나 팬들은 "아버지 준이치로가 그랬듯, 언론을 잘 이용하는 정치인으로서 미래가 촉망된다"고 떠들었다.
영국 BBC는 'Shinjiro Koizumi: A rising star in Japanese politics'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현지 익명의 취재원(일본인)이 말하길 성미 급한 젊은이(young guy in hurry)'라고 평가했다면서 "셀럽과의 결혼은 차기 총리 자리를 노린 것"이라는 말도 했다. #
원래는 아버지와 같이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였다. 입각 직후에도 원자로 사고가 난 후쿠시마현을 찾아가 전임 환경대신이 한 원전 오염수 방류 주장을 어민들에게 사과하고 원전 폐지 찬성 입장을 밝혔다. 아버지 준이치로 전 총리도 원전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여 아베 내각을 곤란하게 하던 대표적인 원전폐지 찬성파로, 신지로에게도 "입각 후에 이를 이루어 달라"라고 당부하였다. 국민들은 물론 주변국들의 기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환경대신으로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을 흐려, 원전 폐지에 대한 소신이 없어진 게 아닌가 의심을 받는 중이다.
더 타임스에서는 '2020년에 주목해야 하는 20인' 목록에 올렸다. #
그리고 아베 신조 총리직 사임 이후 총재 선거에 대해서는 8월 30일 , 고노 다로 방위대신이 출마하면 지원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 9월 8일에는 스가 요시히데 지지로 선회했다. # 스가 내각에서는 환경대신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
총리대신 지명 투표에서 고이즈미 신지로에 투표한 이름 모를 표가 하나 나와, 여야 가릴 것 없이 중의원들이 폭소하였다. 한일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자기 이름 쓰는 칸인 줄 알고 자기 이름을 쓴 거 아니냐", "신지로가 셀프투표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드립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중에 마루야마 호다카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의원이 직접, 자신이 신지로에 투표했음을 밝혔다.
그래도 환경대신답게 경단련과 탈탄소 제휴를 하기도 했다. # 2021년 3월부터는 기후변화 문제 담당 업무를 겸하게 되었다. #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46% 감축하겠다는 일본정부의 발표가 있어 언론에서 이에 대해 환경대신인 그에게 왜 하필 46퍼센트인지 인터뷰하자 '멍하니 있었더니 뚜렷하지는 않지만 46이라는 숫자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고 대답해 웃음을 주고 있다. #
2.4. 2021 자민당 총재 선거
당초 2021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스가 요시히데 현직 총리 지지를 선언했으나 1 9월 3일, 뜻밖에도 스가가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불출마를 여러차례 권한게 고이즈미 신지로라는 보도가 나왔다. 2그리고 본인도 총재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같은 가나가와현 의원이자 친한 고노 다로를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총재 선거에서 고노 다로가 지면서 파벌 안배 따라 환경상에서 물러난다. 2021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본인과 스가가 지지한 고노가 기시다에 패배함에 따라 자민당 주류에서는 배제되게 되면서 비주류의 길을 걷게 되었다.
2.5. 기시다 내각 시절
2021년 10월 말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역시 79%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된 이후 시행된 당 인사에서 총무회장 대리로서 후쿠다 다쓰오 총무회장을 보좌하게 되었다. 과거 신지로가 자민당 농림부회장을 맡던 시절 후쿠다가 농림부회장 대리로서 신지로를 보좌한 바 있는데 관계가 역전되었다. 물론 두 사람은 청년 정치인으로서 공감대를 갖고 친한 사이이지만 자민당 당내에서 두 사람의 입지가 제대로 역전된 게 드러난다. 신지로는 계속되는 망언으로 인한 이미지 하락에 더해 현직 총리 기시다 및 아베, 아소에 대항한 적그리스도로서 요직에서 배제된 반면[7], 후쿠다는 자민당 총재선에서 젊은 의원들의 자율투표를 이끌며 소장파 리더로서 자리매김하고 당 4역인 총무회장직을 받아냈다.2022년 9월 6일,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내각의 출범에 따라 국회대책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한번 더 좌천되었다. # 국회대책위원회는 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이 존재하는데, 수석부위원장을 필두로 하여 여러 부위원장들이 있기 때문에 총무회장을 보좌하는 대리 직책에서 국대위원장, 그 것도 수석부위원장 산하의 부위원장으로 더 좌천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총리의 아들인데다가 어린 나이에 4선 의원으로 환경대신의 자리까지 오르며 승승장구 했던 과거에 비하면 확실히 밑바닥으로 좌천된 것이다.
다만 2023년 말부터 기시다 총리가 연이은 실정으로 '증세안경' 소리를 들으며 간 나오토 전 총리 이래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는 가운데 공부회 등을 설립하며 은인자중하던 신지로가 설문조사에서 차기 총리감 1~2위에 드는 등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이 '다음 자민당 총재에 어울리는 정치인'을 조사한 결과,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을 꼽은 응답이 20%로 가장 많았다. 다음이 17%의 신지로, 고노 다로(12%) 순이었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포스트 기시다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수위권에 있었다.
하지만 계파가 중요한 일본 정계에서 계파가 없다는 것은 약점으로 꼽힌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당원 투표보다 국회의원 표가 더 중요하므로 이들이 승리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아베파가 비자금 의혹으로 몰락하고 자민당 계파정치가 바뀔 경우 계파에 속하지 않은 의원들에게도 기회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8] #
또한 12월 15일 지지통신이 발표한 여론조사(8~11일) 결과 집권 자민당 국회의원 14명 가운데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총리로 적합하다는 응답은 16.0%로 1위였다. 이 때문에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가까운 그가 비주류 세력을 결집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론 일본은 의원내각제라서 신지로가 대중적 인기가 높고 자민당 내에서도 지지가 높아졌다 하여 당장 차기 총리가 되지는 않겠으나, 그 동안 꾸준히 인지도를 높히고 대중적으로 친근한 이미지를 쌓았기에 당내에서도 무시 못할 정도로 입지가 상승했다고 볼 수 있다. # 기시다 총리가 자신과 대적한 고노 다로를 지원한 고이즈미를 밑으로 좌천시키면서도 국민적 인기만 높지 당내 인기는 거의 없는 이시바 시게루처럼 아예 배척할 수 없는게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9]
2.6. 2024 자민당 총재 선거
현직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가 차기 자민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했는데, 이는 의원내각제와 사실상 자유민주당 일당 우위인 일본 정계 환경을 고려하면 사실상 총리 사임 선언이 되는지라 고이즈미 신지로 역시 총리 자리에 재도전할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다.2024년 8월 21일, 공식 회견은 아직 없지만 사실상 일본 총리에 도전하는 게 확정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미 신지로 본인이 자민당 의원 40여명에게 추천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후 2024년 9월 6일, 공식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함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 자세한 내용은 2024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문서 참조.
외교정책 공약으로 기시다 내각의 외교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한편 납북자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총리가 되면 정상끼리 같은 세대이므로 지금까지 접근법에 얽매이지 않고 전제 조건 없이 마주하는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싶다"고 밝혔다. 북일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노선을 이어가려는 모습.
1차 투표에서 3위로 낙선했는데, 의원 선거에서는 75표로 최다 득표를 했지만 당원당우 득표에서 다카이치 사나에의 109표, 이시바 시게루의 108표에 한참 못 미치는 61표를 얻었다.
고이즈미의 탈락 원인으로 가장 크게 지목되는 건은 선택적 부부별성 지지와 노인연금 수령 나이 80세 지지이다. 정치자금 게이트로 파벌이 해체되면서 뒷배가 사라진 3선 이하 의원들이 고이즈미의 주요 지지세력이지만[10] 이들은 비교적 젊은 층이 주로 포진되어 있는 반면, 당원표 의결권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고령인만큼 보수적인 사람들이 많았으며, 그런 이들에게 부부별성은 권위에 도전하는 정책이며 부부별성법에 직접 영향받을 결혼 적령기 일본 20대~40대 여성들은 부부별성 자체에 관심이 없어 양쪽에서 무관심또는 반대의사를 보인 것이며 거기에 노인연금 80세 안은 대중적 지지까지 떨어뜨릴수 있는 위험한 정책이었기 때문에 당원들의 비토정서를 자극한 것.
이번 패배는 고이즈미에게 고질적인 약점으로 지적되던, '환경대신 외의 다른 내각 실무 경력이 풍부하지 못해 부족하다.'는 부분이었으며 상술한 공약과 이로 인한 반대 여론도 경험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이 터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결과적으로 보면 패배야 어쨌든 고이즈미의 정치적 입지면에선 패배와 별개로 손해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 총재 선거는 고이시카와로 묶이며 정치적으로 연이 깊은 고이즈미, 이시바, 고노 3인방이 모두 출마했던데다가 주로 이들과 대립하던 아베 파벌도 아베의 피살 이후 자연스레 해체수순을 밟으며 이 3인방을 막아설만한 정적도 없다시피했기 때문, 즉 이번 총재 선거는 정적끼리의 힘겨루기보다는 막말로 고이시카와 3인방의 리더 결정전에 가까웠다. 선거 결과 공개 이전부터 이 3인중 총재가 나올거라는 추측이 지배적이었고 실제로 3인방중 1인인 이시바 시게루가 총재가되었던 만큼[11] 도중에 서로 갈라지지 않은 이상 고이즈미또한 이시바에 의해 내각에 재입성하거나 자민당의 주책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지는 만큼 아직 젊은 편인 고이즈미의 나이를 고려하면 훗날 재기할 수 있는 반석을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본 선거에 대한 후일담으로 집에 와서 눈물을 흘리며[12] ‘아빠가 졌어, 인생이란 게, 질 때도 있단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는데 4살 아들이 ‘아빠, 그러면 내일은 이길 거야?’라고 말해서 웃었다고 한다. # 원래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이라도 아들이 이걸 보고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달리 아들의 순수한 한마디에 웃음이 나왔다고.
2.7. 자유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총재선 1차에서 낙선한 후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를 지원해 그의 당선 공신이 되었기 때문에 추후 내각이나 당에서 요직을 맡을 가능성도 점쳐졌고 실제로 자민당 부총재, 간사장, 정무조사회장, 총무회장과 같이 묶이는 당5역인 선거대책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이시바 총재가 총리 취임 후 10월 9일 중의원 해산 및 10월 27일 차기 중원선 투·개표를 결정했다고 하기 때문에, 고이즈미로서는 선거대책위원장이 되자마자 시험대에 올랐다. 조기 총선은 본인도 총재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바이므로 본인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편 중의원 해산 과정에서 의장 누카가 후쿠시로의 미숙한 진행과 야당의 반발로 인하여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탓에 만세 삼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고이즈미가 2017년부터 만세삼창을 하지 않은 사실이 재발굴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인은 당시 “합리적인 이유도 없이 (관례를) 계속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라고 밝혔다.
10월 11일, 정치자금 파문을 최초로 단독적으로 조사하고 고발한 고베가쿠엔대학의 가미와키 히로시 교수가 "고이즈미가 정치자금 보고서에 지출 등을 과소하게 기재했다"는 이유로 고이즈미와 회계책임자, 사무담당자를 도쿄지방검찰청에 고소했다. #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공 연정이 과반수를 넘기지 못하며 패배하자 사임하였다. # 사임하면서 '직을 그만두겠다는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라는 말을 해 펀쿨섹식 화법이 다시 도마에 오르며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
이번 조기총선은 자민당 총재선거 기간 중 고이즈미의 "새로운 정권이 탄생한다면 국민의 신임을 묻는 것이 당연(新政権ができたらすぐにでも国民の信を問うのが当然)"하다는 발언을 계기로 점화되었다. 조기총선에 반대한 이시바와는 정반대의 스탠스. 그러나 자신을 간판으로 내세운 선거에서 국민들에게 어필할만한 아젠다 셋팅에 실패한 덕분에 선거는 언론이 주도한 "정치와 뒷돈"이 주요 이슈가 되어버렸으며, 그 결과 대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기시다 정권의 승계를 내세운 이시바와 함께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
다만, 고이즈미의 스탠스대로 신속하게 해산하지 않았더라면 더 크게 패배했을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서 자민당이 기록한 비례득표는 26.73%인데, 이 수치는 자민당 역사상 최악의 패배라 불리는 2009년 총선 당시 자민당이 기록한 비례득표와 소숫점 둘째자리까지 정확히 일치한다. # 하지만 2009년에 야권에서 민주당 한 당이 얻었던 득표가 이번에는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 일본유신회 3개 당으로 흩어졌기 때문에[13] 자민당이 제1당 지위라도 사수할수 있었던 것.
실제로 이번 총선이 해산 이후 불과 18일만에 치러지는 바람에 야권에서 후보 단일화 논의가 거의 진행되지 못했다. 급한대로 입헌민주당 대표인 노다 요시히코가 비자금 스캔들 연루 의원 출마 지역구에서만이라도 단일화를 타 야당에 제안했고, 국민민주당과 일본유신회도 이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워낙 시간이 촉박했던지라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 만약 총선이 조금 더 늦게 치뤄져 야권이 단일화를 성사시켰다면 자민당이 실제 결과보다 의석을 더 잃고 야당으로 추락했을수도 있단 이야기.[14]
3. 비판 및 논란
3.1. 야스쿠니 신사 참배 관련
2019년 8월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논란이 있었다. 이에 대해 신지로는 "전몰자에 대한 추모를 했을 뿐이며, A급 전범을 추모하러 간 것은 아니다"라며 아버지와 똑같은 입장을 내놨다.3.2. 공금 유용 및 불륜 관련
2019년 12월 26일에 돈세탁 및 불륜 논란이 터졌다. 시사주간지 주간문춘은 지난 26일 발간된 최신호에서 과거 불륜과 공금유용 등 신지로에 대한 메가톤급 의혹을 폭로했다. 주간문춘은 "신지로가 2015년 6월 기혼 여성과 나가노현 가루이자와의 호텔에 투숙하는 등 불륜 관계에 있었다"고 보도했다. "신지로가 하루 10만엔(약 106만원)이 넘는 호텔 숙박비를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정치자금 관리단체 명의로 지불하는 등, 공금을 사적인 용도로 유용했다"고도 밝혔다. 이로 인해 포스트 아베 후보군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간문춘의 신뢰도가 신뢰도라, 신빙성 여부는 추후 보도를 더 봐야 한다. 그러나 신지로는 해명 기자회견에서 회피성 대답으로 일관했다. 불륜 의혹에 대해서는 '사적인 부분은 말할 것이 없다'고 했고, 공금유용 의혹에 대해서는 '잘 처리되고 있다고 들었다'고만 했다. 따라서 많은 일본 국민들은 신지로에 대한 의혹들이 사실이라고 보고 있다.
3.3. 코로나19 대책회의 불참 관련
일본 본토에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코로나19 대책회의에 불참하여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일본공산당 소속 중의원 의원인 미야모토 도루는 "신지로가 후원자들과의 신년회에 참석하느라 대책회의를 빠졌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이에 대해 신지로 본인은 '신년회에 참석했다'고 말하는 건 피했지만 신년회에 참석했다고 인정하는 듯한 답변을 했다고 한다. # 야당은 1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이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하지만 '회의에 빠지고 지역구 신년회에 간 게 맞느냐, 예스(yes)인가 노(no)인가'라는 질의에 신지로는 연거푸 "말씀하신 대로"라고만 말하며 사실상 답을 회피했다.그러나 이 답변 때문에 여론이 더욱 악화하자 19일 국회 답변 때는 태도를 바꿨다. "참가자들의 블로그를 보니 술도 나왔던데"라는 질문에 신지로는 처음에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말씀하신 대로"라며 버텼지만, 결국엔 "신년회였고, 그 자리에 술도 나왔다"라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반성하겠다"라며 머리를 숙였다. 신지로는 20일 야당의원의 추궁엔 "반성을 하고 있다. 제 반성이 국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저의 문제라고 반성하고 있다"라고 했다. "반성이란 말은 20차례나 했지만, 야당이 요구한 사죄엔 응하지 않았다"라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결국 참석자들의 SNS 등을 통해 신지로가 회의에 '환경성 정무관'을 대리 출석시키고, 자신은 지역구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열린 후원회의 신년회에 간 사실이 드러났다.
3.4. 조악한 캠페인 주최 관련
일본 내 코로나 19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고이즈미 신지로는 환경대신으로서 기자회견에 나가, 감염 위험에 노출된 미화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쓰레기봉투에 그림을 그리는 연쇄 챌린지를 제안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높은 직업군인 미화원들을 응원하기 위해 격려와 고마움을 담아 쓰레기봉투에 특별한 메시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자는 제안이었다.그는 “감사의 고리(캠페인)에 참가해 주시면 고맙겠다. 작업자들에게 많은 격려가 된다”고 호소했다. 고이즈미 환경상은 그러면서 ‘항상 고마워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수거차 모양 그림을 새긴 쓰레기봉투를 두 손으로 들며 부하직원의 자녀가 휴교·외출 자제로 집에 있는 시간을 이용해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권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차가운 여론이 반영된듯 고이즈미 환경상의 제안에 대한 SNS 반응은 비판 일색이었다. “39세 어린이 발상이다” “학급회 선생님인가?”라는 조롱부터 “ 메시지 대신 돈을 달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특히 “미화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위생 대책이나 인적 지원을 늘려달라”고 호소한 이도 있었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한가한 제안을 하고 있다는 게 대다수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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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와카시오 호 기름유출 사고 관련
자세한 내용은 와카시오 호 기름유출 사고 문서 참고하십시오.2020년 7월 25일, 일본 상선미쓰이(商船三井) 소속 화물선 와카시오 호가 인도양 모리셔스 해안에서 좌초되어 유류 탱크에서 기름이 약 1천 톤 이상 흘러나왔다. 현지 주민들은 바다를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지만, 이와 관련하여 일본 환경성에서 파견한 대응팀이 매우 부실하고 고압적이라고 현지와 외신들이 비판하였다.
3.6. 이나가와카이계 요코스카카이와의 유착관계
중앙이 '고이즈미 신지로', 오른쪽이 '타케우치 키요시'. |
신지로의 외증조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는 직접 야쿠자 조직인 고이즈미구미(小泉組)[15]를 창설한 인물이었고, 신지로의 친부인 준이치로의 선거대책본부장이던 '타케우치 키요시(竹内清)'또한 이런 요코스카카이의 조직원 출신이며 그 키요시는 이나가와카이 2대 두목인 이시이 타카마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라고 할 만큼 고이즈미구미(=요코스카카이)와 고이즈미 가문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만큼 타케우치 키요시가 후원회의 일원으로서 일본의 대표적인 세습 정치인인 고이즈미 부자의 정치 자금을 지원했고, 그 자금의 출처가 요코스카카이 혹은 이나가와카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16]
4. 가치부전·바보 연기 설
당시 회의 말미에 질문 시간이 있었다. 놀랍게도 고이즈미가 손을 들었다. 동북아 안보와 관련해 인도의 역할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짧은 질문이었지만 마이클 그린이 추구하는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넘어선 시각이었다 …(중략)… 나중에 일본인 지인에게 들었지만 고이즈미는 어떤 자리에서도 항상 질문을 한다고 한다. 그의 질문을 들으며 놀랐던 것은 영어 구사 능력이다. 필자가 알고 있던 워싱턴의 어떤 일본인보다도 정확하고 분명한 영어를 구사했다. 미국 정책통들과 1 대 1 영어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日 차기 총리? 내가 만난 고이즈미 2세",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주간조선 2018년 4월 6일 보도 중 #
"日 차기 총리? 내가 만난 고이즈미 2세",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주간조선 2018년 4월 6일 보도 중 #
일각에서는 '아베 신조를 비롯한 골수 자민당 파벌과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이고 차기 총리대신을 노리는 야망을 품고 있어, 일부러 정치능력을 숨기고 어리숙한 척하는 것 아니냐( 가치부전)' 하는 의견도 있다. 일본판 ' 상갓집의 개'가 아니냐는 것이다. 비록 일본에서는 칸토가쿠인대학이라는 정치가치곤 평범한 대학을 졸업했지만 차후 미국 명문대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을 확인된 뒷돈 없이 졸업한 데다가[17], 중의원이 된 때가 2009년인데 초기에는 꽤나 성실하고 지적인 이미지를 내세웠다. 심지어 그의 친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부터가 정치적 거물이었던 만큼 아버지 믿고 정계에서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면에 나설 수 있는 인물이었다. 허나 갈수록 묘하게 어수룩하고 비전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무리 그래도 일본의 포스트 총리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 진짜로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게 더 비상식적이라는 것.
이에 대해 개인의 능력과 자질보다는 인맥과 파벌에 기초한 정치공학이 지배적인 일본 국회의 환경을 지적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불안함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에 오히려 의도적으로 어리숙하고 바보 같은 면모들을 보여주며 직접 역풍을 맞는 상황을 피하려 한다는 추측도 있다.
신지로는 유명한 방송인인 아내 타키가와 크리스텔을 이미지메이커로 내세우면서 대중친화적이고 흡사 '예능인' 같은 친근한 이미지로 엮어나가면서도, 본인 역시 '펀쿨섹'과 같은 황당한 발언으로, 그러나 자신의 정치생명에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닌 정도로 이슈몰이를 이어나가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보면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수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고, 동시에 일본의 냉랭하고 다소 경직된 일본 정계에서도 당장 크게 위험시되지 않는다는 인상을 심어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신지로의 기행은 특정시점에서 갑자기 늘어났다. 비슷하게 중국 주석에 오르기 전까지 중앙 권력에 관심 없는 척하며 공산당 내외부로부터 무색무취한 인물이라는 평을 받았던 시진핑의 방식을 자기 나름대로 차용한 게 아니냐는 추측까지도 존재한다.
고이즈미 가문은 신지로의 외증조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 시절부터 이미 일본 정치판에 입지를 세울 대로 세우고 이후로도 그 영향력을 대대로 세습해온 정치 명문가이며, 신지로는 비록 차남이지만 장남인 형 고타로가 연예인으로서의 길을 지망하여 정치에는 입도 대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기반을 온전히 물려받을 수 있었다.[18] 그런 엘리트인 만큼 신지로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장과 발언을 이해도 못할 바보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신지로는 2018년 중의원개혁실현회의(衆議院改革実現会議)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일본 국회의 디지털화를 추진하기도 했고, 젊은 의원이라는 본인의 이미지를 이용해 회의의 효율성을 제고하고자 본회의장에 노트북과 태블릿PC을 반입하여 정보를 확인, 정리할 수 있게끔 요청하는 등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신지로가 상대적으로 동안이라 그렇지, 2021년에 만 40살이 되었는데,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된 일본 정계에서나 젊은 피 취급을 받지 사회인으로서는 교육을 끝마치고 사회생활에도 적응할 만큼 했을 중년이다.
한마디로 신지로의 기행은 단지 젊은 나이의 치기나 실수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명확한 포지션을 드러내서 책임을 지거나 적을 만드는 일은 아주 교묘하게 피하면서도, 화제가 될 법한 이상한 소리로 인지도를 올리는 데 도가 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어그로는 제대로 먹혀 자국민은 물론 옆나라 한국 대중들에게까지 유머 자료로 퍼뜨려지고 이름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오죽하면 타국 정치에 관심이 적은 한국에서조차 일본 전현직 총리가 아닌 일본 정치인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정치인으로 꼽힐 정도다.
신지로가 전 총리의 아들이라는 엄청난 스펙에다 집안 대대로 출마만 하면 당선되는 지역구를 물려받은지라 미디어에 흔한 스테레오타입인 '앞날 창창하지만 멍청한 도련님' 이미지가 강한데,[19] 그의 아버지인 준이치로가 총리직에서 퇴임한 뒤 그의 뒤를 이어 당시 90대 총리 자리에 오른 아베 신조의 원전 정책에 대해 강경하게 탈원전을 주장하며 아베와 완전히 척을 진 원수지간이 된 만큼, 신지로는 세이와 정책연구회가 주축인 정치판에서 몸을 사려야 하는 입장이었다.[20]
환경대신의 자리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를 직접적으로 관리하는 위치라서 굉장히 어려운 중책을 맡았다고 봅니다. 앞으로 고이즈미 신지로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이지만 후쿠시마 원전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환경대신의 자리에 앉혀 정치적으로 제거할 목적이 상당히 크다고 봅니다. 일단 고이즈미 신지로는 정치적으로 아베 쪽 집단(극우파)의 반대세력입니다. 또 고이즈미 신지로의 경우 국민적 인기가 상당히 큽니다. 아베의 경우 고이즈미 환경대신의 입각을 반대했는데, 스가 관방장관이 고이즈미 환경대신을 의도적으로 기용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합니다.
호사카 유지 #
호사카 유지 #
이는 단지 한국 내에서만 거론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도 신지로는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니고 원래 자기 아버지 따라서 反아베파로서 활동하다 아베의 허울뿐인 포용 정책의 일환으로 캐스팅되어 가장 존재감 없고 한직인 환경대신에 앉혀놓고 잘못하면 아버지까지 정치적 유탄을 맞을 상황이라 펀쿨섹이니 46%니 하는 적당한 말만 하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지금 일본은 중앙정치판만큼은 다른 민주주의 선진국의 트렌드와 완전히 역행할 정도로 정치판이 늙었다.[21] 장기집권으로 고일 대로 고인 자민당 내의 파벌구도상 70~80 먹고 정치경력이 40년은 되는 노장들이 여전히 막후에서 당을 쥐락펴락하는 판국에 고작 40세의 신지로는 사고 안 치고 조용히 눈칫밥이나 먹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자기가 누군지, 또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이 어떤지를 아주 잘 안다는 얘기다. 나를 알고 남도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 전혀 바보가 아니고, 나름대로 이빨을 숨기고 있는 인물이라고 봐도 된다. 이를 빗대어 한국 인터넷에서도 구한말 비슷한 길을 걸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에 비유하면서 사실은 누구보다 원대한 야심을 가졌지만 단지 지금은 숨기고 있는 인물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리기도 한다. #1 #2 골빈 파티광 이미지로 노이즈 마케팅을 하며 은근히 영리하게 실익을 취한 패리스 힐튼이 연상되기도 한다.
즉, 신지로는 아베-스가-기시다 라인을 비롯한 자민당 주류 정권의 소용돌이 속에서 비주류인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 신중하게 밑바닥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인물이라고 보면 되겠다. # 물론 그러는 와중에 민주주의의 가치 중 하나인 투명성이 저 입에서 나오는 우왕좌왕하는 헛소리로 가려져버리기 때문에 그걸 듣는 일본 국민들이 속 터지는 것이기는 하다.
어디까지나 썰에 불과하지만, 고이즈미 신지로는 전 총리의 아들이라는 거물급 배경이 있음에도 자민당 내 입지가 불안하고, 언제 바람 앞의 촛불이 될지 모르는 위태한 상황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신지로의 정치적 역량이 드러난 사건은 2021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때였다. 그의 설득으로 스가 요시히데가 퇴진을 결정했고 이어 신지로가 고노 다로를 공개 지지한 뒤 이시바 시게루까지 붙어 자민당 내 개혁파들이 아베와 아소를 중심으로 한 수구파와 한판 붙는 모양새가 되었다. 고노가 의원표에서 기시다 후미오에게 패하긴 했으나, 고노-고이즈미-이시바 연합 이들 모두가 바로 이어진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도 전국 최고 수준의 득표율을 보여준 터라[22] 그들이 비록 기시다에게 배제되더라도 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후 고노가 총재가 되기라도 한다면 신지로는 내각관방장관은 떼어 놓은 당상인 수준이다.
공교롭게도 2022년 7월에 그의 관운을 크게 막고 있던 아베 신조 전 내각총리대신이 저격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이제 그의 행보를 대놓고 막을 존재가 사라진 것도 그에게 있어선 어느 정도 호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어날지는 불투명하지만 사건 당일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당연히 신지로가 언급되었고, '야심을 숨긴 인물' 설이 다시금 조명받기도 했다.[23]
하여간 아직 나이도 젊고 진짜 바보였다면 당 내에서 이렇게 견제받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신지로도 엄연히 15년간 5선 의원을 하고 있다.[24] 그가 본심을 드러내려면 아직도 10년은 남은 것 같지만, 그가 바보가 아니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5. 가족 관계
-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 (1942 ~ ) / 어머니 미야모토 가요코 (1957 ~ )
아주 어릴 적에 아버지 준이치로와 어머니 카요코가 이혼했다. 2016년 일본 여성지 <이키이키> 4월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준이치로와 카요코는 14살 차를 극복하고 결혼했다고. 준이치로가 만 36세, 부인 카요코가 만 22세.
그러나 결혼 4년 만인 1982년, 어린 두 아들을 두고 카요코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고이즈미 가문을 떠났다. "셋째를 임신 중이었는데도 이혼을 감행할 정도로 성격 차가 컸다고만 말했다"라고. 부부 사이뿐 아니라, 카요코와 고이즈미 일족 사이에서도 갈등이 깊었다는 말이 있다. 이혼 후 첫째 고타로와 둘째 신지로의 친권은 아버지 준이치로에게, 태중의 셋째는 어머니 카요코에게 친권이 돌아갔다.
부모의 이혼 이후, 고타로와 신지로는 고모들의 손에 자랐다. 준이치로의 첫째 누나 미치코(道子)도 이혼해 친정 고이즈미 가로 돌아와 있었고, 둘째 누나 다카코(隆子)도 친정과 긴밀히 교류했고, 셋째 누나 노부코(信子)는 아예 결혼하지 않고 준이치로의 정치와 가사를 돕고 있었다. 고타로와 신지로는 고모들과 가정부들의 보살핌 속에 자라났으나 어머니와는 만나지 못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미치코 고모가 친엄마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으나, '고모가 나에겐 친엄마나 다름없으니 상관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
한편 카요코는 이혼 이듬해인 1983년에 3남 요시나가(佳長)를 낳았고, 요시나가는 어머니 카요코의 성씨를 따라 '미야모토 요시나가'가 되었다.
이키이키 인터뷰에 응한 카요코는 "당시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라고 술회했다. 이혼 후 고이즈미 집안은 카요코와 요시나가가 고타로와 신지로를 만나지 못하게 했고, 요시나가가 커서 "아버지를 만나고 싶다"라고 청했지만 역시 거절했다. 2001년 할머니인 고이즈미 요시에(小泉芳江)가 91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도, 고이즈미 일족은 카요코와 요시나가의 문상을 거절할 정도로 매몰찼다. 무작정 장례식장을 찾아간 카요코와 요시나가는 결국 잠깐의 문상을 허락받았지만 문상이 끝나자마자 쫓겨나듯 떠나야 했다고 한다.
준이치로와 카요코 모두, 이혼하고 [age(1982-01-01)]년이 지난 지금까지 재혼하지 않았다. 준이치로는 독신으로 3번의 총리 연임을 수행했고, 정계 은퇴 후인 2010년에야 4부자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고. 2013년 요시나가가 결혼할 때는 어머니 카요코까지 총 5명이 모였다고 한다. "만감이 교차했다"는 인터뷰를 덧붙였다.
할머니 고이즈미 요시에는 예전 입헌민정당의 간사장 고이즈미 마타지로의 외동딸이었다. 마타지로는 야쿠자 출신으로 정계 거물이었다. 하마구치 내각 - 제2차 와카쓰키 내각에서 체신대신을 지냈는데, 몸에 문신이 있어서 '이레즈미(문신) 대신(いれずみ大臣)'이란 살벌한 별명이 있었다고. 영화 청연의 주인공인 실존인물 비행사 박경원을 지원한 사람이 바로 그다.
그런데 신지로의 할아버지 사메지마 준야는 야쿠자의 딸인 요시에와 눈이 맞아서 그녀와 '사랑의 도피'를 했다. 원래 사메지마 준야는 가고시마현 서민 출신으로 야학을 다녔고, 얼마 안 되는 학업을 마치고는 옷가게 점원, 심지어 서울 조선은행에서 차 심부름을 했다고. 이후 오사카에서 공장을 전전하다가, 카나가와현의 아사히 글라스 공장으로 오게 된다. 거기서 운명의 사랑을 만난 것. 마타지로가 체면에도 불구하고 "딸아, 제발 돌아와라"라고 신문 광고까지 냈다. 원래 명문가의 아들과 정략결혼을 시키려 했던 딸을 뺏긴 마타지로는, 대신 사메지마 준야를 데릴사위로 들였다. 이 때 사메지마 준야는 처가의 성씨를 따라 고이즈미 준야가 된다. 그는 1937년 입헌민정당 후보로 고향 가고시마에서 당선된다.
1945년 할아버지 준야는 패전 후 정계에서 일단 물러나 있었다가, 기시 노부스케 밑으로 들어갔다. 1952년 장인과 함께 개진당으로 옮겨 장인의 지역구였던 카나가와현에 출마해 당선된다. 고이즈미 가문의 지역구는 이 때부터 카나가와현 제11구가 된다. 하토야마 이치로와 함께 일본민주당(1954년) 결성에 참여했다가 1955년 보수 대연합 때 자민당 결성 멤버가 된다. 하토야마의 2차 내각 때 법무, 정무 차관, 1964년엔 방위상에 오른다. 1965년 자위대의 한반도 파병 가능성을 모색한 <미쓰야 연구>를 폭로하고 이듬해 급사한다. 아버지 준이치로는 그 뒤를 이었다.
2019년 8월 7일, 혼전임신한 타키가와 크리스텔과 함께 총리관저를 찾았다. 방문한 이유는 " 아베 신조 총리 및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인사하기 위해서"라고 했으나, 결국 목적은 언론에 두 사람의 결혼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총리관저 방문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밝힌 총리와 관방장관과의 후일담을 보면, 역시나 전혀 소원한 모습이 없다. 아베는 "결혼(생활)은 쉽지 않아.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고. 자신을 환경상으로 밀었다는 스가 관방장관에게도 인사했다.
총리관저에 도열하고 선 관저 담당 기자들 앞에서 타키가와 크리스텔의 임신과 결혼 계획을 밝혔다. 교제는 2018년 1월에 시작해, 출산 예정은 2020년 초라고. 형 고이즈미 고타로도 인터뷰에서 "19년 6월에야 동생과 크리스텔의 교제 사실을 알았다"라고 말했다. 동생이 독신주의인 줄 알았고, 신지로는 부모를 보면서 결혼 생활에 자신이 없다고 말했었단다. 어렸을 때부터 "결혼뿐만 아니라 여성과 사귀는 것도 포기하겠다"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고. "정말 오랜만에 신지로에게서 '정치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닌, 어릴 때 신지로의 모습을 보았다"라고 기쁜 얼굴로 덧붙였다.
신지로 본인이 말하길 ''그녀와 함께 있으면 '정치인 고이즈미 신지로'가 아니라 '인간 고이즈미 신지로'가 될 정도로 편하다. 나는 항상 갑주를 입고 있는 상태와 같았으나, 크리스텔의 앞에서는 '갑주를 벗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는데, 말을 중언부언 길게 하는 신지로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말이라 빅웃음을 주었다. 2020년 1월 17일, 아들이 태어났다. (현재 [age(2020-01-17)]세)
2020년 2월 5일, 장남의 이름을 미치노스케(道之助)라고 지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형과 자신을 키워준 첫째 고모 미치코(道子)를 기리는 의미라고 한다.
2024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복잡한 가정사를 언급한 뒤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자민당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부모님이 어렸을 때 이혼했는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이혼 사실을 몰랐다. 어머니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고모(고이즈미 전 총리의 친누나)였다. 형제는 형(배우인 고이즈미 고타로)뿐인 줄 알았는데 동생이 더 있었다. 대학생 때 처음으로 성이 다른 동생과 만났으며 아버지랑 꼭 빼닮아서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그동안의 거리와 공백이 메워졌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고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도 드러내며 "나를 낳아준 어머니와 만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만나면 생모 대신 나를 키워준 고모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고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결혼 후 아들이 태어나고 아버지가 된 뒤 달라졌다며 "올해 처음으로 엄마를 만났다. 자세하게는 말하지 않겠지만 만나서 좋았다. 43년 동안 (생모와) 만나지 않았고 성도 다르지만, 그래도 가족은 가족이다"고 말했다. #1 #2
6.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9 |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가나가와 11구 |
|
150,893 (57.09%) | 당선 (1위) | 초선 |
2012 |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84,360 (79.86%) | 재선 | |||
2014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68,953 (83.28%) | 3선 | |||
2017 |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54,761 (78.02%) | 4선 | |||
2021 |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47,634 (79.17%) | 5선 | |||
2024 |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29,779 (72.36%) | 6선 |
7. 소속 정당
소속 | 기간 | 비고 |
|
2009 - | 정계 입문 |
8. 어록
한일 양국에서 고이즈미 신지로의 발언은 논란이 되고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일본 우익 정치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극우 망언 같은 논란이 아니라, 자신만의 기묘한 책임회피성 4차원 화법 때문에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순환 논법(동어반복)과 논점일탈( 동문서답)을 비롯한 이상한 화법을 구사하며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 추상적인 답변으로 질문이나 문책등을 적당히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그 정도가 심하게 과해서 듣는 사람을 어이없게 만들 정도다.
명쾌하고 오해의 여지가 없는 화법을 사용해야 할 정치인이 마치 시인이나 문학 작가나 사용할 법한 두루뭉술한 화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포엠(ポエム)"[25]이라고 이름 붙여 밈화하였으며, 각종 짤방감 및 티셔츠로도 만들어졌다. #.
전 총리였던 신지로의 부친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분명히 말씀드리자면(はっきりいいますと)'이 말버릇이었고, 평소 대쪽 같은 모습으로 강단있는 이미지를 구축했었다. 일본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연설 잘하는 총리'의 이미지로 유명하며 현직 때는 '고이즈미 화법'이라며 모범적인 화술의 예시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정작 그 아들이자 차기 일본 총리 후보로 지목되는 사람이 이토록 모자란 모습을 보이는 점은 의아한 부분. 재능낭비의 쓸데없는 사례로 당당하게 꼽히며 네타가 되고 있다. 예시
이제는 아버지하고 엮이고 있다. # 반대로 국내에서는 반어법적 의미로 "신지로가 종신 일본 총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드립을 칠 정도이다. 이러한 흐름을 보자면 호부견자 평가를 받아도 반론은 생략하고 반성해야할 정도.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국내에서는 고도의 정치적 처신이라는 의견도 높아지면서 오히려 총리가 되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다.
우습게도 뻘소리만 내뱉는 와중에 전혀 당황하는 기색 없이 표정은 뻔뻔해서, "저럴 거면 정치인이 아니라 차라리 형처럼 연예인을 하는 편이 낫지 않았겠나"라고 보는 시선들이 좌우익을 막론하고 은근히 많은 편이다.
8.1. 펀쿨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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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대처법을 설명하는 고이즈미 신지로 |
(On tackling such a big... big-scale issue like climate change,) it gotta be fun, it gotta be cool, and you gotta be sexy too.
(기후변화와 같이 커다란… 커다란 규모의 문제는) Fun하고, Cool하고, 그리고 당신 역시 Sexy하게 대처해야 하죠
2019년 9월경
환경대신 취임 직후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러 갔다가 회의 전날에 "기후변화 문제는 Fun하고 Cool하고 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라고 발언하였다. 보이는 바와 같이 무슨 소리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발언이라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인터넷 밈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이 발언을 펀쿨섹으로, 그리고 신지로를 한국의 신조어인
본좌를 조롱격으로 첨가한 펀쿨섹좌로 부른다.(기후변화와 같이 커다란… 커다란 규모의 문제는) Fun하고, Cool하고, 그리고 당신 역시 Sexy하게 대처해야 하죠
해당 회담은 영어로 진행되었기에 신지로의 발언 역시 일본어가 아닌 영어가 원문이지만, 이 회담을 일본 내에서 방송하면서 영어 원문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띄운 일본어 자막의 의미(혹은 자막을 번역한 의미)로 인터넷에 널리 퍼졌다.
다만 이 일본어 자막은 발언의 앞부분을 잘라버리고 뒷부분만 전달하였기에 의미가 온전히 전달되지 않았다. 자르지 않은 영어 원문을 해석하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인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후변화와 같은 대규모 이슈의 대처는 재밌어야 하고 멋있어야 한다. 당신도 (기후 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유연해져야 한다."같은 의미가 된다. 그럴 듯하게 풀어서 써보자면 "기후변화와 같은 전세계적 이슈는 모든 세대에게 중요한 문제이지만 젊은이들은 이러한 지루한 이슈에는 관심이 없다. 이들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을 만큼 재밌고 멋있어야 하며 섹시한 이슈 메이킹을 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널리 퍼진 부분만 보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같아 보이지만 풀버전(5분 20초 구간부터 시작)을 보면 신지로가 말하고자 하는 맥락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즉, 사회적 이슈를 해결하려면 대중적인 관심과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사실 '섹시'는 신지로가 처음 꺼낸 단어가 아니라 신지로가 참여한 컨퍼런스에서 바로 옆에 앉아있던 전 UN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이자 2015년 파리기후협약을 성공적으로 이끈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의 슬로건으로 각종 국제회의에서 "환경문제에 sexy하게 대처해야 했다"는 발언을 수없이 했고 바로 옆에 당사자가 있으니 이를 인용하면서 언급한 것이다.
이는 일본 낙농업과 관한 해석이라는 말도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협약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면 하락세를 타는 일본 낙농업계의 반발을 사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을 예측하였기 때문에, ' 일본 정부는 기후 변화 대응에 찬성하고, 대중들도 이것을 따라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대부분의 대중이 못 알아듣게[26] 돌려 말했다는 주장이다.
물론 원론적인 담론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를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일절 없이 지나치게 추상적인 말만 늘어놓은 것이 문제였다. 국제연합 회담에서 일국의 대표로 나간 장관급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실속은 아무것도 없이 뜬구름 잡는 소리만 계속한 것이다.[27] 이는 이후에 이어진 다른 발언들을 보면 확실해진다. 또한 신지로는 이 컨퍼런스에서 화석연료 사용량 문제에 관한 질문도 받았지만 "줄이겠다."라고 단순한 답변만 했을 뿐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묻자 우물쭈물하기도 했다. 다음 날 테레아사의 보도스테이션에서 우익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조차 '일본이 신용을 잃을 수도 있는 발언'이라고 언급했다.
それをどういう意味かと説明すること自体がセクシーじゃないよね。
同席してくれた人の会合の中での言葉の1つ。
やぼな説明はいらないですね
(한국어 번역)
"그것이 어떤 뜻인가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네요."
"회의에 함께 참석한 사람이 말한 말입니다."
"촌스러운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네요."
귀국 이후 펀쿨섹 발언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답한 발언(중간 편집됨)
이후 일본에 귀국한 이후 언론에게서 소위 펀쿨섹 발언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받았지만,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다. 촌스러운 설명은 필요 없다."라는 해괴한 책임회피성 대답을 내놓아서 이 발언 역시도 한일 양국에서 밈화되었다. 同席してくれた人の会合の中での言葉の1つ。
やぼな説明はいらないですね
(한국어 번역)
"그것이 어떤 뜻인가 설명하는 것 자체가 섹시하지 않네요."
"회의에 함께 참석한 사람이 말한 말입니다."
"촌스러운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네요."
귀국 이후 펀쿨섹 발언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답한 발언(중간 편집됨)
웹상에서 퍼진 부분은 "회의에 함께 참석한 사람이 말한 말입니다" 부분이 잘려버린 채 유포되기도 했는데, 신지로 본인으로서는 "다른 사람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이라는 최소한의 설명을 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남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니 자신한테 묻지 말고 당사자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대답한 것이어서 결국은 책임회피성 발언이며 설명을 하지 않은 것과 다름 없다.
사실 펀쿨섹 발언이 인터넷상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으므로 대중적 관심을 모아야 한다는 표면적 취지는 성공적이었다. 환경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정책이나 확고한 비전이 있다면 그것을 설파할 절호의 기회였으나, 그런 것은 전혀 없었고 본인의 발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어이없는 변명뿐이었다. 그리고 펀쿨섹 발언은 조롱거리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10월 15일 각료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Sexy는 '(사고방식이) '매력적으로'라는 뜻이라고 답변했다. 또한 고이즈미 환경상은 정책적인 질문에는 회견에서 잘 답변하였다면서 그의 발언이 '타당성이 없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
배우인 형 고이즈미 고타로가 배우 타카시마 마사노부[28]와 함께 TV 도쿄 새 드라마 <병원의 치료 방법 ~닥터 아리하라의 도전~>의 방송을 앞두고 인터뷰에 참여했다가 "어감이 좋다고 생각하는 영단어는?"이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에 마사노부가 "고타로를 위한 질문이네"라는 말을 슬며시 꺼냈다. 이에 고타로는 "그렇네… 엄청난 질문이 와 버렸네요. Sexy."라고 말하자, 마사노부는 빵 터트리면서 "고타로가 머리 좋아서 한 얘기이지,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라며 당황해 했다. 이후 고타로는 "기대에 부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라며 마무리했다. 영상
한편, 뉴욕에 방문했을 때 펀쿨섹 답변 외에도 동문서답하는 인터뷰 실수를 또 범한 것이 나중에 알려졌다. 당시 신지로가 기자들과의 언론 대담에서 " 스테이크를 매일 먹고 싶을 정도로 좋아한다."라고 밝혔다. 그러자 해당 이슈와 관련해서 기자들이 '육우 사육이 온실가스 효과를 유발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매일 먹고 싶다는 것은 매일 먹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동문서답을 날렸다. 아마도 스테이크를 좋아한다는 발언으로 인한, '환경대신이 환경 보호에 앞장서 솔선수범하지 않는다'는 공격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즉, '육우 사육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아니라 '자기는 스테이크를 먹지 않기 때문에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한 것.
기자들조차 이 상당한 언변에 당황했는지 한참 정적 후 웃음을 터뜨리고는, "환경대신으로서의 육우 사육과 온실가스 이슈에 대한 생각을 밝혀달라"라고 재차 물어봤으나 '몰래 먹으면서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라는 황당한 대답으로 보는 사람들의 어이를 더욱 상실하게 만들었다. "스테이크는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 그런데 이 발언은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발언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조선일보에서 기사화되기도 했다. "펀, 쿨, 섹시" 일본 환경장관 고이즈미는 왜 놀림감이 됐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고이즈미는 몇 년 후 2024년 일본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입후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에서 ‘국무대신 시절 가벼운 언행들로 지적받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환경대신 시절 내 발언이 적절히 전달되지 않았던 것은 반성하고 있다”며 “앞으로 그러한 일이 없도록, 국민에게 전하려는 바가 명확히 전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사과했다. #
8.2. 인터넷 밈화
일본 인터넷 인터뷰에서 나온 "지금처럼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지금처럼이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알맹이가 없는 순환 논법 발언이 안 좋은 쪽으로 화제가 되었다. 일각에서는 "섹시 발언보다 이게 더 심각하다"는 반응을 보일 정도. 상술했듯 펀쿨섹 발언은 다른 인물의 표현을 차용한 것이기도 하고, 뒤에 좋은 대답이 이어졌다면 충분히 훌륭한 도입부가 될 수 있었다. 반면 이런 순환 논법은 어떻게 해석해도 좋아질 수가 없다. 이 외에도 "경기가 좋아지면 반드시 불경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발언도 발굴되는 등 한일 양국에서 웃음거리가 되어 그의 괴상망측한 발언을 흉내내는 밈이 생겨나게 되었다.대체적으로 순환 논법성 오류나 상식적, 귀납적으로 뻔한 인과관계가 이뤄지는 어록, 즉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당연한 말을 그럴듯하게 비장한 척 포장하고는 신지로의 모습들을 내걸며 게재하는 방식.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 형은 나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 흑백은 검은색과 흰색입니다.
- 바뀌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 아내와 저는 결혼 기념일이 같습니다.
- 식사를 할 때는 보통 무언가를 먹는 편입니다.
- 계정을 비공개로 바꾸면 공개되지 않는 계정이 됩니다.
- 너는 생일에 태어났구나?
- 방이 어두울 땐 저는 전기를 켭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밝아졌구나 하고.
유사한 개그 코너로 COWCOW의 당연한 체조가 있다.
원래는 당연해야 하는 사실이지만, 사회의 모순 등으로 하여금 당연하게 누리지를 못하는 사항을 자조적으로 밈을 빌려내어 표현하는 방식도 생겨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시 퇴근은 정확한 시간에 퇴근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스크를 쓰면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등이 있다.
2019년 9월 17일 "후쿠시마 오염토의 최종 처리장을 후쿠시마현 바깥에 30년 내로 마련하겠다"는 정부 공약에 관한 질문에 답변한답시고 "30년 후면 나는 몇 살[29]일까 지진 직후부터 생각해왔다. 아마 (내가) 건강하다면 (후쿠시마 현민들과의) 그 30년 후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아닐지, 그것을 말씀드릴 수 있는 정치가라고 생각한다"고 생뚱맞은 소리를 해 비웃음을 샀다.
고개를 끄덕이는 고이즈미 신지로 |
やります。それが約束ですから。
(하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더구나 뒤이어 나온 "공약 실현이 가능하다면 그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단히 비장하면서도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
하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음!"이라고 답하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는데, 마치 만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듯한 분위기로 별 의미도 없는 말을 한 탓에 어이없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하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이는 일본 사회가 보기에도 어처구니가 없었던 덕분에, 도쿄신문이 '청기백기' 운운하며 신지로를 비꼬는 농담들을 게재했을 정도다. 당시의 그 그윽한 표정은 국내에서도 짤로 만들어져 절찬리에 쓰이는 중. 사진을 올릴 수 없는 댓글 형식일 경우 아예 짤 없이 엉뚱한 화법 끝에 (끄덕) 이라는 말을 뒤에 붙혀서 해당 표정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는 위의 당연한 말 드립과 합쳐져서 "그것이 (당연한 말)이니까"라는 형태가 자주 쓰인다.
각종 매체에서 밈이 되어 패러디되었다.
일본에서는 그의 말투를 따라하는 트위터봇이 생겼다.
한국에서도 밈으로 사용되는 게 알려지기도 했으며, 한글을 몰라도 뜻이 통하는 기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 한국인 트위터 유저가 신지로의 말투를 패러디한 트윗을 올리면서 사진을 함께 첨부해 올렸는데, 이를 본 한 일본인이 해당 트윗을 인용하면서 "고이즈미는 이렇게 똑똑한 말 못해요"라는 코멘트를 덧붙인 일이 있었다. 그 한국인 트위터 유저가 올린 트윗에는 GS25에서 찍은 주류4캔(병) 만원 행사 태그에 청하 2,500원, 4병 구입시 10,000원 이라고 적혀 있는 사진도 같이 첨부되어 있었다. 즉 할인행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할인이 아닌 것을 신지로 식으로 비꼬는 트윗이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은 2500원짜리 청하가 아닌 다른 상품을 끼워넣어도 되는 거라 결국 행사에 문제가 있는건 아니었다고.
이러한 패턴은 일본 인터넷에서 고이즈미 구문(小泉構文) 혹은 신지로 구문(進次郎構文)이라고 불리는데, 이 드립이 시작되기 전 이미 유사한 드립은 존재했다. 일본의 국민적 게임인 몬스터 헌터 시리즈에서 유래한 엠프리스 구문[30]이 그것인데 의미가 동일한 말을 여러번 하는 것을 엠프리스 구문이라는 용어로 불렀고, 신지로 역시 화제가 된 초반에는 엠프리스 구문의 일종이라는 소리를 듣곤 했다. 이후 신지로 구문 쪽이 압도적으로 더 많이 퍼져서 엠프리스 구문은 거의 사장되어버렸다.
펀쿨섹을 패러디한 특가 기획전 포스터 |
영어권에는 꽤 오래 전부터 누가 봐도 뻔하고 당연한 사실을 진지하고 중요한 것처럼 말할 때 비꼬는 의미로 쓰는 말인 No Shit Sherlock이 있다. '당연하지 바보야', '그러시겠죠 탐정나리' 등으로 비꼬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셜록 홈즈가 탐정의 대명사로 자리 잡혀 있다 보니 만들어진 말이다. 예시를 모은 트위터와 서브레딧이 있다. Captain Obvious라는 밈도 있다.
같은 말이지만 말하는 사람에 따라 뜻이 달라보이는 예시로 에이브릴 라빈과 고이즈미 신지로를 붙여놓고 " He was a boy. She was a girl"을 써넣은 짤도 있다.
" 이봐, 친구! 그거 알아? 레몬 한 개엔 자그마치 레몬 한 개 분량의 비타민C가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이라는 밈도 그의 발언과 비슷해서 인터넷에서 그와 엮였다.
과거 제44대 미국 부통령을 지낸 댄 퀘일도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할 위기에 처할 것이다.(If we do not succeed, then we run the risk of failure.)"라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이즈미 마에지로(和泉前次郎) 환경대신 |
8.3. 기타 발언
- 2019년 10월 태풍 하기비스 피해로 인해 후쿠시마 방사능 제염토가 일부 유실되는 상황이 발생하자 "유실된 원전 폐기물은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또 한 번 논란이 되었다. 또, "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제염에서 나온 흙은 문제 없다"는 문건을 작성하였다.
-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는데 반성하고 있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 못한다는 점에서 반성을 해야 한다고 반성합니다(본인 스스로는 반성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반성하고 있지만, 대중들이 자신의 자세에서 그런 모습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 역시 자신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므로 이 점까지 함께 반성하겠다.) 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에서는 "인용된 '반성'이란 단어의 횟수만 자그마치 20회이다. 라임이 마치 시 같았다."라고 평가했다.
- 위의 망언들과 더불어 2013년 정무관 시절 동일본 대지진을 두고 가면라이더처럼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한 발언[32]도 뒤늦게 조명받았다. 다만 가면라이더 작가가 미야기현 출신이므로 그렇게까지 뜬금없는 발언은 아니다. 한국으로 치면 도봉구에서 둘리처럼[33]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발언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
- 2021년 4월 일본 정부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6% 감축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는데, 오가와 아야카 아나운서가 "어떻게 (목표 수치를) 46%로 결정하게 되었느냐"고 질문하자 "확실한 형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떠올랐어요, 46이라는 숫자가요."라고 답했다.[34] 언론사 공식 유튜브 측에서 해당 발언 장면을 썸네일로 걸어놨고 관련 뉴스 소개도 압도적인 비율의 싫어요를 받았고 댓글도 그를 비난하는 내용이 다수. # 다만 이 발언의 임팩트가 너무 웃겨서 신지로가 했던 그 다음 발언이 주목받지 못하는 감이 있는데 바로 목표치가 너무 높은 거 아니냐고 묻자 대답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표로 하겠다고 했다가 동메달을 따면 비난하겠느냐"는 말을 했다. 그러니까 애당초 수치는 애매하게 높게 잡아놓았고 거기에 대해 노력은 하겠지만 설령 거기에 충족하지 못해도 비난만 받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이걸 보면 말을 웃기게 하긴 해도 빠져나갈 구멍은 마련하고 있다는 얘기다.[35] 사실 저 수치도 환경성에서 대충 2030년 경에 45%~46% 정도로 감축이 가능하다는 수치를 잡아놓은 걸 토대로 말한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는 상태다. # 대부분이 간과하는데 신지로는 말을 웃기게 해서 놀림거리가 되긴 해도 실제로 심각한 정치 현안에 대해선 논란이 되지 않도록 말을 능구렁이처럼 돌리는 데에는 굉장히 능한 사람이다. 이런 능구렁이같으면서도 그럴싸한 말 때문에 일본판 상갓집 개[36]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을 물어보는 기자에게 " 영국 의회에 갔을 때, 이 문제는 생각 이상으로 외국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정치인들만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인, 학자 등의 여러 관계자와 충분히 논의해서 해결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며 역시 답변을 회피했다.
- 2022년 5월엔 어린이날을 맞으며 "어린이의 목소리는 소음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했는데, 지금까지 해왔던 특유의 말투가 이 발언을 위해 준비한 게 아니냐는 한일 양국의 평가가 있었다. 반대로 이 당연한 말이 신지로가 강조할 정도로 한일 양국의 아동 인권이 낮다는 자조섞인 발언도 나올 정도. 물론 식당 등지에서 시끄럽게 구는 건 민폐지만, 이제는 마음껏 뛰어놀아도 되는 놀이터 등에서도 떠들고 노는 것마저 문제삼는 현 사회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야박해진 현실을 뒤돌아보게 만든다.
- 2024년 이시카와현 노토 지방 지진의 구호금을 모금할 때 일부 정치인들도 나섰는데, 여기서 고이즈미 신지로가 직접 모금함을 매고 나서 모금하는 모습이 찍혔다. 이 때 모금함에 적혀있던 '모금액은 전부 일본 적십자사를 통해 이재민 지원에 사용됩니다.' 문구가 고이즈미 신지로의 말투 덕에 저 말이 더욱 진실성 있게 느껴진다는 글이 크게 리트윗되었다.[37] 그러니까, 저런 후원이나 모금액이 전액 이재민들에게 쓰이는 건 당연한 것인데 가끔씩 일어나는 일 때문에 불신은 갖는 경우가 있지만 저 말이 고이즈미 신지로와 엮이니까 당연한 말이 더욱 사실처럼 느껴진다는 것. 특히 재난 현장에 유명 정치인이 오면 사람이 몰려서 구조에 방해가 된다고 가급적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발표에 따라 현장에 가지 않고 본인의 지역구에서 모금활동을 하는 행동을 보여 호평을 받고 있다.
- 2024년 7월 19일 무슨 말을 한 건 아니지만 강아지에게 찐한 키스를 당해 소소하게 화제가 됐다. #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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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이 다쿠 | 이시카와 아키마사 | 이시하라 마사타카 | 이시하라 히로타카 | 이와야 다케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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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이 다쿠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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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칸토 지방의
국회의원 치바현, 가나가와현, 야마나시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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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현 선거구 | 가나가와현 선거구 | 야마나시현 선거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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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니시 히로유키 | 미우라 노부히로 | 아사오 게이이치로 |
[1]
12선 중의원 의원, 제87-89대 내각총리대신 역임.
[2]
일본도 지방 분권적인 성격이 강하고 그 지역 명문고 출신의
학맥이 강하다. 당연히 요코스카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인으로서 요코스카 최고 명문고를 나오는 게 도움이 많이 되었겠지만, 학업 능력이 그렇게 좋진 않았던 듯하다.
[3]
편차치 45~50 정도인 중하위권 대학.
중고일관제라 무시험으로 그냥 입학할 수 있다.
[4]
아버지 준이치로가
총리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이 대학원 동문으로
나카소네 야스타카 의원과
쓰지 기요토 의원이 있다.
[5]
일례로 재선 중의원 의원에 불과하던
다이라 마사아키가
그림자 내각의 국무대신에 내정될 정도. 다이라 의원은 훗날 6선 의원 신분으로
이시바 내각 디지털대신으로 임명되어 진짜로 국무대신을 맡게 된다.
[6]
당시 2위가
가나가와 15구
고노 다로, 3위가
가나가와 2구
스가 요시히데였다.
[7]
신지로가 밀어준 고노 다로도 외무대신을 지낸 사람이 갈 직책이 아닌 당 홍보본부장으로 좌천되었다.
[8]
그러나 총재선은 위에서 서술했듯이 국회의원 표로 결과가 정해지기 때문에, 자기가 어느 파벌에 소속되어있고 자·타 파벌의 지원을 받느냐 못받느냐가 당연히 중요하다. 특히 자신을 밀어주는 뒷배가
3A(
아베 신조,
아소 다로,
아마리 아키라)와 같은 정치계의 거물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무파벌 출신 총리인
스가 요시히데도 당시 상대 후보들이었던 기시다 후미오와 이시바 시게루의 파벌들을 제외한 모든 파벌들의 지원을 받고 당선되었고,
2021년 총재선에서 고노 다로가 자파벌인
지공회의 제대로된 지원을 받지 못해 파벌의 표가 갈라져 결선투표 끝에 2위로 낙선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건 자민당의 계파정치가 바뀌지 않는다는 가정 하의 얘기고, 일본의 역사적 특성상 오래전부터 계파 정치를 중요시하고있는 일본 정치이기에 야당들 또한 계파가 존재하므로 오랫동안 이어져오고있는 계파 정치를 바꾸는 것은 거의 쉽지 않다. 대부분의 정치인들또한 말로만 계파 정치 타파를 외칠 뿐이지 속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9]
아베, 아소, 기시다로 이어지는 일본의 정치의 중심 세력의 입장에서 고이즈미를 아예 배척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고이즈미는 이시바와 다르게 4대에 걸쳐 의원으로 입성한 정치 가문으로 당장 전대인 부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직을 수행한 일본 현대사의 거물 중 1인이었다. 이시바와 다르게 대대로 친분을 쌓은 의원들이 많고 비주류로 세력이 약하다고 하더라도 뭉쳤을 경우 자신들을 위협할 세력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기에 기시다는 고이즈미를 좌천은 시켰으나 그 이상의 제재는 하지 않았다.
[10]
이 사람들은 딱히 정치적 스펙트럼이 일관적이진 않지만, 자신들의 재선 가능성때문에라도 가장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고이즈미와 합세해 차기 선거를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11]
여기에는 결선에서 고이즈미가 자신을 포함한 지지세력의 표를 이시바에게 몰아준 영향도 상당수 있었다.
[12]
원래 눈물이 많다고 한다.
[13]
아닌게 아니라, 이 3개 당의 득표율(입헌민주당 21.2%+국민민주당 11.32%+일본유신회 9.36%)을 합치면 2009년 당시 민주당이 얻었던 득표(42.41%)와 비슷해진다.
[14]
대표적인 사례가
비자금 스캔들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도쿄 17구의
히라사와 가쓰에이다. 국민민주당 후보가 28.02%, 일본유신회 후보가 22.87%로 표를 거의 균등하게 나눠가지는 바람에 히라사와 가쓰에이가 34.78%라는 매우 낮은 득표율로 자리를 지켜낼수 있었다.
[15]
현대에 들어선
이나가와카이계 요코스카카이로 개편되었다.
[16]
실제로 고이즈미 부자의 지역구인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에서 이들의 유착관계 소문이 알려져있다고 한다.
[17]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the School of International and Public Affair, SIPA)을 졸업한 것은 맞으나, 아버지의 후광으로 입학 허가를 받은 후, 영어 성적이 부족해서 정식 입학 전 1년 동안 어학연수를 받는 조건으로 입학한 것으로 컬럼비아 동문 사이에 알려졌다.
[18]
다만 아예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준 건 아니다. 준이치로는 대놓고 자식들에게 "정계 입문할 생각 마라."라고 할 정도로 자식들을 정치판에 끼워넣기를 꺼렸고, 신지로가 이런 아버지의 의견까지 무시하며 정치인으로서 투신하고서도 '혼자서 노력해라.'라며 그를 엄하게 키웠다고 한다. 심지어 신지로가 2024년 총재선에 출마할 때도 응원보다는 "총재선은 정 출마하려거든 50세는 되고 나서 출마해보라고 했는데... 그래도 뭐 어른이니까 본인이 알아서 해야겠지."라며 덤덤한 반응이었다. 인터뷰에서 실제로 말한 뉴스 영상도 남아 있다.
[19]
이는 단순히 외부에서 시기하거나 비아냥대서만 만들어진 건 아니다. 신지로 본인이 일부러 어그로를 끌면서 이런 이미지를 부채질한 부분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이다.
[20]
비슷하지만 정반대의 사례로
다나카 마키코가 있다. 본인과 본인 아버지가 속한 파벌인
헤이세이 연구회에서 세이와 정책연구회로 정권이 넘어갈 때 몸을 사렸으면 정치적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그 와중에도 비서 급여 횡령과 각종 망언을 일삼았음이 알려진 탓에 자민당에서 쫓겨났고 본인도 선거에서 대패한 뒤 이후 복귀를 사실상 포기하는 등 정치적 생명이 완전히 끝났다.
[21]
지자체는 비교적 젊고 개혁적인 지사들이 종종 배출된다. 일본 지방선거는 중앙과 거의 따로 돌아가는 경향이 크다. 중앙의 중의원이나 참의원이 중도 은퇴 후 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통하고, 대부분은 해당 지역 출신의 중앙부처 관료나, 젊은 시절부터 지방의회나 기초단체장을 맡은 청년이 지사선거에 공천받는다. 현재 일본의 대형 지자체에 7-80년대생 지사가 꽤 있는데,
홋카이도
스즈키 나오미치(81년생),
치바현
구마가이 도시히토(78년생),
효고현 사이토 모토히코(77년생),
오사카부
요시무라 히로후미(75년생) 등이다. 이중 스즈키와 구마가이, 요시무라는 각각
유바리시장,
치바시장,
오사카시장에서 스텝업하여 지사선거에 나선 것이며 사이토는
총무성 관료 출신이다. 하지만 어떤 단체의 장이라고 하면 나이가 몇 살이건 일단 그 집단 내에서 강력한 실권과 권위를 인정해주는 한국의 사정과 달리, 일본 중앙정치판은 이미 수천 년 동안 바지 쇼군+실세
오고쇼정치가 너무 익숙한 데다가 자민당 장기집권에 익숙해졌다. 게다가 일본의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단단하게 짜여 있던 관료제가 2000년대부터 처참하게 붕괴되어 지자체의 경제력과 실권이 심각하게 약화된 탓에, 젊고 의욕 있는 40대 지자체장 출신 인사의 노력을 일본 정부와 자민당이 쓰고 버리는 지방직 알바, 파견 나간 신입사원 정도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되려 코로나-19 사태로 지자체가 생존의 위협에 내몰리고 중앙이 지방의 위기를 해결해줄 능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이들이 더 강력하게 자기 색깔을 드러내면서 목소리가 커진 쪽에 속한다.
[22]
고노는 심지어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역대 최다득표였다.
[23]
이러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기시다 내각에선 전혀 조명받지 못하며 2번의 좌천을 겪고 있다. 단순히 기시다를 지지하지 않아서 좌천된 것 치고는 저 밑바닥까지 좌천된 탓에 견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24]
한국에서는 15년 경력이면 최소 4선 의원이니 만큼 중진 이상으로 대우받지만, 일본에서는 15년 정도로는 길다고 보긴 어렵다. 선거구가 고이즈미 가문이 120년 가까이 4대 세습을 하고 있는
가나가와현 제11구다.
[25]
영단어 Poem의 일본어 표기로서 말 그대로
시(詩)라는 뜻. 일본에서는
허세 가득한
중2병스러운 문장을 포엠이라고 부르면서 조롱하는 문화가 있는데, 앞서 포엠이라고 불리면서 드립을 받았던 쿠보 타이토 작가의
블리치/시가 유명하다.
[26]
제대로 알아들으면 낙농업계를 중심으로 반 자민당 정서가 확산되고, 그렇다고 기후변화에 대해서 별 입장을 안 말하면 일본이 기후변화에 대해 책임을 안 지는 것으로 보여서 다른 나라들로부터 화살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27]
저 말 이후 구체적인 내용이 이어졌다면 정말 멋진 발언이었을 것이다. 이목을 확 끌어놓고 핵심을 확실히 전달하는 셈이니, 본인 표현대로 정말 sexy하게 정책전달을 한 셈이 됐을 것이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접근성을 고려해야한다는 것은 확실히 일리 있는 말이고, 특히 젊고 수려한 외모의 정치인이 특이하게 표현했다는 것만으로 이슈가 되기 충분하다. 문제는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덴 성공했지만 정작 알맹이가 없어 뻘소리에 그쳤던 것이다. 어찌보면 노이즈 마케팅인데, 노이즈 마케팅도 상품이 확실하다면 재밌는 전략이었단 평가를 받지만, 상품이 쓰레기였다면 그냥 어그로로 취급받는다.
[28]
배우 타카시마 타다오의 아들이자 배우 타카시마 마사히로의 동생.
2016년
NHK 대하드라마 <
사나다마루>에서
호조 우지마사 역을 맡았다.
[29]
67살이다.
[30]
炎妃龍の青き炎を封じ込めた脚用装備。その内には炎妃龍の青き炎が封じられている。
염비룡의 푸른 불꽃을 봉인한 다리용 장비. 그 안에는 염비룡의 푸른 불꽃이 봉인되어 있다. [31] 하드한 장르인 촉수물, 여수사관물이 같이 나온다. [32] 기사 원본 [33] 배경이 도봉구 쌍문동이다. [34] 참고로 고이즈미 신지로의 출신지인 요코스카시 지역번호가 046이다. [35] 말의 취지만 살펴보면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이 세운 에이즈 치료제 보급 공약과 비슷하다. 이종욱 사무총장도 공약의 완전 달성은 어렵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종욱 사무총장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장기적인 과제를 높은 목표를 세워서 먼저 시작한다는 노력과 진취성을 강조한 반면, 고이즈미 신지로는 책임을 회피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36] 흥선대원군의 야인 시절 별명. [37] 원문을 직역하면 신지로의 말투가 여기에 와서 효과가 있습니다 정도 된다.
염비룡의 푸른 불꽃을 봉인한 다리용 장비. 그 안에는 염비룡의 푸른 불꽃이 봉인되어 있다. [31] 하드한 장르인 촉수물, 여수사관물이 같이 나온다. [32] 기사 원본 [33] 배경이 도봉구 쌍문동이다. [34] 참고로 고이즈미 신지로의 출신지인 요코스카시 지역번호가 046이다. [35] 말의 취지만 살펴보면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이 세운 에이즈 치료제 보급 공약과 비슷하다. 이종욱 사무총장도 공약의 완전 달성은 어렵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종욱 사무총장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는 장기적인 과제를 높은 목표를 세워서 먼저 시작한다는 노력과 진취성을 강조한 반면, 고이즈미 신지로는 책임을 회피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36] 흥선대원군의 야인 시절 별명. [37] 원문을 직역하면 신지로의 말투가 여기에 와서 효과가 있습니다 정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