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파시스트당 당수[1] 콘스탄틴 로자옙스키 Константи́н Родзае́вск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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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콘스탄틴 블라디미로비치 로자옙스키 Константи́н Влади́мирович Родзае́вски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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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7년 8월 11일[2] | |
러시아 제국 블라고베셴스크 | ||
사망 | 1946년 8월 30일 (향년 39세) | |
소련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모스크바 루뱐캬 교도소 | ||
국적 |
[[러시아 제국| ]][[틀:국기| ]][[틀:국기| ]] (1907년 ~ 1918년) [[소련| ]][[틀:국기| ]][[틀:국기| ]] (1920년 ~ 1924년) [[만주국| ]][[틀:국기| ]][[틀:국기| ]]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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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하얼빈 사범대학 | |
직업 | 정치인, 변호사 | |
소속 | 러시아 파시스트당 (1931년~1943년) |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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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의 파시스트로, 러시아 파시스트당의 당수였던 변호사이자 정치인.2. 생애
2.1. 정계 입문 전
콘스탄틴 로자옙스키는 1907년 8월 11일, 블라고베셴스크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얼빈 사범대학에서 법을 공부하고 러시아 파시스트 조직[4]에 가입하면서 파시스트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2.2. 파시스트 활동
1931년 5월 26일, 새로 창당된 러시아 파시스트당의 당수가 된다. 이후 1934년 파시스트당과 아나스타시 본샤츠키가 이끌던 러시아 파시스트 조직을 합당하고, 베니토 무솔리니를 롤모델로 삼고 하켄크로이츠를 상징으로 삼기로 결정하는 동시에 러시아의 민족주의 상징물과 러시아 제국의 상징을 사용하였다. 검은 셔츠단처럼, 당 내 당원들은 검은 유니폼과 검은 대각선 벨트를 착용했으며, 국제적인 러시아계 파시스트 조직을 만드는데, 이 지부 중에는 뉴욕 지부도 있었다.[5]다만 로자옙스키와 본샤츠키는 유대인 문제에 대해 의견이 엇갈렸기에[6] 파시스트당 내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였고, 이 주도권 다툼은 본샤츠키가 출당당하면서 끝나게 되었다.
2.3. 만주국 생활
만주국 내에 12,000명의 추종자를 가졌던 로자옙스키는 1940년 일본 제국 건국 2600주년 기념 행사에서 당원 몇몇을 데리고 쇼와 덴노에게 가서 경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또 파시스트당 당원들은 만저우리시 지부에 거대한 하켄크로이츠 네온 장식을 설치했는데, 소련-일본 간 국경에서 3k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이때 그리고리 세묘노프와도 접촉했다.당원들이 설치한 하켄크로이츠 네온 장식.
이는 소련 정부에 일본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었는데, 로자옙스키는 이 장식물들을 설치하면서 언젠가 블라디미르 키슬리친(Влади́мир Алекса́ндрович Кисли́цын) 장군[7]과 일본군이 함께하는 반소비에트 저항군 부대를 이끌고 소련 정권으로부터 러시아인들을 해방시킬[8]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2.4. 제2차 세계 대전 및 사망
로자옙스키는 볼셰비키주의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키고자 했으나 일본 제국 정부는 러시아 파시스트당의 활동을 소련에 대한 사보타주 공격으로만 제한시킨다. 극렬한 반유대주의자였던 로자옙스키는 당 기관지와 팸플릿을 통하여 반유대주의를 선전하였다.하지만 소련군이 참가한 연합군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이겨 가자 로자옙스키는 어쩌면 사형을 피하고자 하는 마지막 발악이었는지,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민족주의 국가가 되어 간다고 판단하고 1945년 자진해서 하얼빈에서 소련군에게 항복하였다. 러시아로 돌아간 로자옙스키는 자유와 소련 신문지에서의 일자리를 약속받았으나, 당연히 이런 극렬 파시스트에게 정말로 자유와 일자리를 줄 생각이 없었던 소련 정부는 파시스트당 당원인 레프 오흐틴[9]과 함께 그를 체포했고, 로자옙스키는 인민재판을 통해 당원들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은 뒤 모스크바의 루뱐캬 교도소에서 처형된다. 함께 파시스트당을 만들었던 미하일 마트콥스키가 12년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끝났던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를 맞은 셈이다. 다만 마트콥스키는 만주 작전 당시 소련에 협조했기에 이 점이 참작된 듯하다.
3. 대중매체에서
- 하츠 오브 아이언 4에서 파시스트 러시아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 위 게임의 모드인 The New Order: Last Days of Europe에서 국가사회주의에 해당하는 교권 파시즘 성향의 아무르 지역에서 군벌화된 러시아 파시스트당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 히틀러가 되었다에서는 만주국에서 생활하던 중 독일과의 관계가 악화된 일본에 의해 러시아 파시스트당이 해산되자 지지자들과 함께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고생을 한 끝에 독일에 도착한다. 히틀러와 만나 러시아 파시스트당을 지원해주면 독소전쟁이 터졌을 때 러시아인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키고 파시스트 국가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설명하는데, 히틀러는 그의 계획이 현실성 낮다는 것은 알지만 독일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이를 받아들인다. 전후 자유 러시아 공화국의 초대 총리로 취임한다.
[1]
1931년 9월 18일~1945년 4월 30일
[2]
율리우스력 1907년 7월 29일
[3]
러시아 내전에서 백군이 패배한 이후 망명.
[4]
Russian Fascsist Organization (RFO), 하얼빈 사범대학의 파시즘 성향 인물들이 만든 조직이다.
[5]
당시 뉴욕에는 러시아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나 러시아계 2세들이 많이 살았다. 로자옙스키와 정치적 성향이 완전히 정반대인
레프 트로츠키도 미국 망명 시절에 뉴욕의 러시아인 지역에서 살았다.
[6]
본샤츠키는 로자옙스키와는 달리 '빨갱이 유대인만이 우리의 적이며, 그 외의 유대인들은 적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다.
[7]
러시아 내전 때 백군 편에서 싸운 장군으로,
러시아 제국을 옹호하는 군주주의자였다.
[8]
실제 표현.
[9]
뜨노에서도 이를 반영하여 로자옙스키가 다스리는 아무르의 군사지도자에 속해있으며 포스트 타보리츠키 이후에는 부라티야로 거처를 옮겨 안드레이 디키쪽에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