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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2 22:29:59

차윤(동진)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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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몽손 혁련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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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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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胤

1. 개요

동진의 관료로 자는 무자(武子)이다. 형설지공 중 형(螢)에 해당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남평군 출신으로 삼국시대 오나라의 관료였던 차준의 증손이었다. 아버지인 차육(車育)은 군의 주부를 지냈다. 태수 왕호지는 사람의 됨됨이를 알아보는 것으로 소문이 난 인물이었는데, 차윤을 보고 차육에게 "차윤은 집안을 일으킬 아이로 학문을 배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차윤은 공손하고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않았다. 차윤은 등유에 쓸 기름을 얻지 못할 정도로 집안이 매우 가난해서 여름이 되면 밤마다 주머니를 만들고 반딧불 여러 마리를 담아 책을 읽었다. 장성하면서 총명하고 민첩하여 마을사람들의 자랑이 되었다.

이후 형주 자사로 있던 환온이 차윤을 종사로 벽소했고, 의리를 잘 살펴서 환현으로부터 중시되었다. 또한 주부, 별가, 장사를 역임하며 조정에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오은지(吳隱之)와 더불어 소박함과 박식함으로 유명해졌다. 한편으로 잔치에도 능해서 연회에 매번 참석했는데, 차윤이 없다면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차윤이 없으니 연회가 즐겁지 않다"고 한탄했을 정도였다.

차윤은 효무제 영강 연간에 중서시랑, 관내후가 되었다. 또한 효무제가 효경을 강독할 때 사안이 동석하고 변탐, 황문시랑(黃門侍郞) 사석, 이부랑 원굉(袁宏), 단양윤(丹陽尹) 왕혼(王混)과 함께 참석하여 당시 사람들이 이를 영예롭게 여겼다. 뒤에 시중으로 옮겼다.

태원 연간에 태학생을 100명 늘리면서 차윤은 국자박사를 겸하였다. 또한 표기장사, 태상(太常)으로 옮기고 임상현후(臨湘縣侯)로 진봉되었으나 병에 걸려 직위에서 물러났다가 복귀하여 호군장군이 되었다. 한편 동진의 중앙정계는 효무제의 동복동생인 사마도자를 중심으로 돌아갔고 왕국보 일파가 조정을 장악했다. 왕국보는 사마도자에게 아첨하여 사마도자를 승상으로 삼도록 상주했으나, 차윤은 여기에 반대하여 병을 핑계로 서명을 거부했다.

396년, 효무제가 죽고 효무제의 아들인 사마덕종이 제위에 올랐다. 차윤은 융안 연간에 오흥군 태수가 되고 품계가 중이천석이 되었으나 병으로 인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보국장군, 단양윤이 더해졌다가 이부상서가 되었다. 그러나 강적과 함께 사마도자에게 아들인 사마원현에 대해 비판하려다가 사마원현이 이 일을 알게 되어 자살을 강요당한다. 동진 조정에서는 차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