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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04:35

차우찬/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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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 소속 좌완 투수 차우찬의 선수 경력을 모아 놓은 문서.

2. 아마추어 시절

2005년 군산상고의 대통령배 4강 진출을 이끌었던 주역.[1][2] 2006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본래 삼성은 1라운드에서 차우찬이 아닌 경희대학교 좌완투수 박정규[3]를 지명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명 당일 선동열 감독 본인이 직접 스카우트 팀에 차우찬을 뽑아 달라!는 요청을 했고, 결국 차우찬을 2차 1순위로 지명하게 되었다.[4] 군산상고 3학년 시절 급작스럽게 체격이 자라면서 밸런스는 아직 맞지 않지만, 잠재력 하나는 무궁무진하다는 판단 하에 삼성은 차우찬을 2차 1순위에서 지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명구, 윤성환, 오승환처럼 2차 1순위 지명 선수로 또 재미를 보게 된다.

3.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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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23
차우찬
車雨燦 / Woo-Chan Cha

3.1. 2006 시즌

4월 9일 홈에서 열린 롯데전에 선발 팀 하리칼라 다음으로 6회초 두 번째 투수로 1군 데뷔했으나, ⅓이닝 2피안타 1탈삼진 2실점으로 첫 등판은 다소 아쉬었다.[5]

패스트볼 구위 하나만큼은 장원준을 능가할 정도로 뛰어나 선발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선동열 특유의 불펜야구 때문에 중간계투로 시즌 총 9경기 등판에 그치면서 데뷔 당시에는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었다.[6]

3.2. 200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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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시즌 후 마무리 훈련 때. 오른쪽은 정현욱.[7]

5월 8일부터 1군에 올라와 던지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지고 있거나 큰 점수차로 이기고 있을 때 등판하는 가비지 이닝 처리용 투수였으나, 점차 투구 내용이 좋아지면서 점수차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도 스윙맨으로 등판하는데도 투구 내용이 나쁘지는 않아 5월 월간 기록으로 16이닝 동안 7피안타(3피홈런) 2볼넷 5탈삼진 5자책 ERA 2.81로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6월 13일과 14일 홈에서 열린 기아전에서 잇따른 부진투[8]를 선보이는 바람에 시즌 ERA도 4.82까지 치솟으면서 2군으로 내려갔었다.

이후 7월 22일에 홈에서 열린 한화전 연장 11회초에 오랜만에 1군 복귀 등판을 가지면서 당시 팀은 물론 리그에서도 빼어난 타자였던 제이콥 크루즈를 상대로 삼진을 뽑아내면서 좋은 복귀 신고를 알렸다.[9] 그러나 이후 7월 28일과 29일 기아와의 원정 경기에서 또다시 부진투를 연거푸 보여주는 바람에 또 다시 2군행.[10]

한편 8월 19일 LG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데뷔 이후 첫 선발 등판을 가졌는데 1, 2회는 물론 3회 2사까지도 순조롭게 아웃카운트를 쌓다가 2번 타자 박경수를 상대로 우중간 3루타를 허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페드로 발데스에게 우익수 앞 1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더니 4번 타자 최동수에게 좌월 투런 홈런까지 허용하며 순식간에 총 3점을 허용했다. 이후 박용택을 중견수 뜬공으로 처리는 했으나 결국 3이닝 4피안타(1피홈런) 1사사구 2탈삼진 3실점이라는 다소 아쉬운 투구내용을 선보였다.[11]

시즌 총 23경기(선발 1경기) 출장하여 28이닝 동안 ERA 6.11의 기록을 남기면서 데뷔 2년 차에도 큰 두각은 드러내지 못했었다.

3.3. 2008 시즌

이 해에는 시즌 개막전부터 1군 엔트리에 승선하여 중간계투로 등판을 했는데, 4월 27일 롯데와의 원정경기에서 11:2로 크게 앞선 7회말에 선발 정현욱[12]의 뒤를 이어 잔여 이닝을 모두 던지면서 3이닝 4피안타 2볼넷 1탈삼진 1실점을 기록하면서 데뷔 이후 첫 세이브를 올렸다.[13]

이후 5월 14일과 15일 롯데와의 원정 경기에서 1군 데뷔 이후 홀드를 연 이틀 올리며 이제서야 삼성 계투진에 권혁 조현근 이외에도 좌완 슬롯이 하나 더 추가가 되는가 싶었으나, 6월 14일 홈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서 선발 이상목[14]의 뒤를 이어 6회 부터 등판했으나 대타로 들어선 송광민을 상대로 피홈런을 맞은 것을 포함하여 1⅓이닝 동안 3피안타(1피홈런) 2사사구 1탈삼진 4실점으로 무너지면서 이 경기 이후 2군으로 내려갔고, 2군에서 다시 교정기를 가진 끝에 9월 14일 롯데전에 오랜만에 모습을 보여 1⅔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정규시즌은 25경기 36⅔이닝 1세이브 2홀드 ERA 4.17 28K를 기록했다.

이후 팀이 4위로 간신히 포스트시즌 막차를 타면서 3위 롯데와의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는 승선하지 못했으나, 롯데를 누르고 올라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는 깜짝 승선하였는데, 사유는 조현근이 시즌 막판부터 준플옵 내내 구위가 전혀 올라오지 못하면서 구위가 좀 더 좋은 차우찬이 전격 발탁된 것. 데뷔 후 첫 가을야구의 상대로 당시 정규 시즌 2위였던 두산 베어스를 상대하여 본인은 4경기 동안 2⅔이닝을 소화하면서 4피안타 1볼넷 1삼진 무실점으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었다.[15]

시즌 후 연봉도 25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소폭 상승한 차우찬은 전병호의 은퇴로 좌완 선발이 비게 된 삼성 선발진의 새로운 선발 후보로 급부상했었다.

3.4. 2009 시즌

당초 5선발 후보군으로 있었던 차우찬이었으나 일단 시즌 시작은 중간계투로 나섰는데, 작년 플레이오프 때 나름 자신감 있는 모습이 계기가 된 것인지 4월 17일까지 6경기 동안 6이닝 소화하면서 자책점 하나 없이 탈삼진은 9개나 뽑아내면서 올해는 드디어 포텐셜이 만개하는 시즌이 될지 기대가 모이고 있었다. 심지어 4월 11일 기아전에서는 ⅓이닝만 소화하기는 했으나 1군 데뷔 후 첫 승리를 따낸 것은 덤.

그리고 4월 19일 홈에서 열린 두산전에 선발로 임시 등판[16]하였으나 2이닝 동안 5피안타(1피홈런) 2사사구 1탈삼진 2실점으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남긴 채 3회초 조진호에게 마운드를 넘겼다.[17]

그런데 4월 25일 홈에서 열린 기아전에 선발로 나와 무려 7⅓이닝 동안 투구수 104개를 뿌리며 4피안타 4사사구 7탈삼진 1실점 이라는 믿기 힘든 역투를 보여주며 5선발로 급부상했다.[18]

이후 안지만과 함께 선발진에 진입하면서 작년 이상목 전병호의 선발 역할을 각각 도맡기 시작했으나 5월 1일 SK와의 경기에서만 5⅓이닝 1실점 호투했을 뿐 이후 세번 내리 연속 투구 내용이 너무 좋지 못하자 다시 임시로 중간계투에서 공을 던졌는데 오히려 계투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이면서 선 감독의 고민거리만 추가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6월 2일 홈에서 히어로즈를 상대로 선발 등판하여 6이닝 6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1실점(0자책)으로 괜찮은 투구 내용을 보였고, 기어코 팀이 2:9로 크게 이기면서 데뷔 4년 만에 첫 선발승을 거뒀다.

이후 한동안 삼성의 선발 한 축을 담당했으나, 시즌 중반 이후 선발로 나오기만 하면 털리더니 곧 중간계투로 강등당했다. 게다가 중간계투로 가서도 스트라이크 존에 공을 못 집어넣으며 수많은 역전패의 원흉이 되었다. 특히 윤성환이 차우찬 때문에 승수를 많이 날렸다. 이로 인해 촥, 차션 등의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그 전까지 삼성의 잉여 불펜 3인을 지칭하던 박성훈까지 다해지면서 조원수박차로 업그레이드되었다.[19] 박민규도 데뷔 첫 승을 차우찬 때문에 날리고 만다.[20]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부진. 데뷔 후 지금까지 쭉 중간계투로만 던진 선수를 팀 전력이 무너졌던 2009년이 되어서야 선발로 집어넣고, 이후에도 급할 때마다 보직을 선발과 불펜으로 셀 수도 없이 이동시킨 선동열 감독의 책임이 더 크다. 2009년에 차우찬은 선발 등판을 19경기로 윤성환, 크루세타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이 했다. 이는 2009년 삼성 선발진이 처참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선동열 감독 아래에서 젊은 투수 중 차우찬만큼 선발 기회를 많이 받은 투수는 없었다. 물론, 누구나 바로 류현진처럼 던질 수 있는 건 아니다. 고교 선수 한 명을 믿을 만한 선발 투수로 키우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고의 좌완 투수 중 한 명이 된 김광현조차 데뷔 시즌 초반에는 기대에 비해 부진하다 말미에서야 각성을 했다. 2009년 선발투수 차우찬의 부진은 구위 좋은 젊은 투수를 장기적으로 키우는 대신 눈앞의 성적에 급급해 불펜에 쑤셔박은 선동열식 야구의 부작용을 잘 준다.

선동열이 바뀌지 않는 이상 팀 메이트 백정현, 이우선은 물론 신인 지명으로 입단한 젊은 투수들의 운명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21]

3.5.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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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BO 리그 승률 1위

시즌 시작은 또 다시 중간계투로 시작했다가, 5월 4일 홈에서 열린 롯데전에 시즌 첫 선발 등판하였으나 1⅔이닝 동안 3피안타(1피홈런) 3사사구 1탈삼진 3실점으로 기대에 못미치는 투구 내용을 보인 채 정인욱에게 마운드를 넘겨주었다. 경기 또한 지면서 시즌 첫 패전을 떠안았다.[22]

그래도 5월 27일 홈에서 열린 SK전에서 선발 나이트가 5이닝을 채 못버티고 5실점 한 마운드를 6회와 7회 2이닝 동안 퍼펙트로 잘 막아내는 동안 팀 타선이 역전을 해내면서 시즌 첫 승리투수를 따냈다.

그렇게 중간계투로 계속해서 활약하던 중[23] 6월 22일 두산전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했는데, 이 등판에서 무언가 포텐셜이 터질 조짐을 보였었다. 표면적인 기록 상으로는 4이닝 동안 8피안타 1볼넷 4탈삼진 5실점(3자책)으로 썩 좋아보이지 않지만, 이는 이 날 주심부터 스트라이크 존이 계속 오락가락하면서 양 팀 투수들에게 계속 헷갈리게 한 점을 시작으로, 루심들마저 경기 운영에 있어 미스를 범하면서 경기가 10여분 넘게 멈춘 영향도 있었으며 #, 수비 도움을 여러 차례 받지 못하는 불운의 연속으로 인해 이닝 소화를 더 하지 못했을 뿐, 당시 꽤나 상승세였던 두산 타선 상대로 전혀 쫄지 않고 자기의 공을 잘 투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다음 경기를 기대하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선발 차우찬의 활약상이 펼쳐졌다.

6월 27일 목동 넥센전에서 6⅓이닝 동안 4피안타 3볼넷 7탈삼진 1실점 호투를 펼치면서 355일 만에 선발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7월 6일 SK전에는 7이닝 4피안타 1사구 8탈삼진 무실점으로 시즌 3승 째를 올렸다. 이어 7월 11일에 다시 목동 넥센전에 나와 7⅔이닝 동안 6피안타 2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대호투를 했음에도 아쉽게 팀 타선이 때아닌 김성태의 호투에 막혀 점수를 못내 ND를 기록했으나 팀은 기어코 연장 접전 끝에 2:1로 이기면서 팀의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7월 18일 대구 LG전에서는 생애 첫 완봉승을 기록했다. 승리 후 인터뷰에서 울먹거리기도. 6월 이후 평균자책점은 KBO 투수 전체 1위![24] 이 완봉은 2005년 배영수의 완봉승 이후 삼성 투수로서는 무려 5년 만의 완봉승이다!!

이후에도 사람 자체가 아예 바뀌면서 시즌 끝까지 5이닝은 채 못채운 적이 있을지 언정 3실점을 초과하는 경기는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으면서 9월 16일 경기가 끝난 시점에 무려 9승 1패 2홀드 ERA 2.21라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편 차우찬이 1승만 더 추가하게 되면 승률왕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과, 잔여 경기 등판 여부에 따라 133이닝을 찍을 시 규정이닝을 채우면서 방어율왕에 도전해볼 가능성까지 이야기가 나오면서 잔여 등판에 관심이 모아졌었다.[25]

SK와의 페넌트레이스 최종전(겸 양준혁의 은퇴경기)에 선발 등판해 7⅓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상대 선발 김광현이 시즌 최고의 피칭을 선보이는 바람에[26] 패전투수가 되어 승률왕에서 멀어지나 했는데, 9월 26일 LG 트윈스와의 시즌 최종전에서 등판, 9이닝 1실점 11K의 절정투구를 펼치면서 완투승으로 10승을 기록, 16승 4패로 승률 0.800의 류현진을 제치고 10승 2패로 승률 0.833을 기록하면서 극적으로 승률왕에 등극했다.[27]

2010 시즌 각성을 단순한 운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그 많던 피홈런이 이 해는 5개로 줄어들었고, 탈삼진 페이스는 꾸준히 가져가면서 볼넷이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평균자책점은 2점대 초반에다 WHIP은 1점대 초반, 차우찬 본인은 밸런스를 익힌 것이 드디어 도움이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일부 팬들은 제대로 각성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를 했는데,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LG 트윈스, SK 와이번스에게 강한 면모를 보였다. LG 상대로는 3승(1완투/1완봉승) 무패 32.1이닝 4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0.28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를 상대로는 9경기에 출장해 30.1이닝 동안 3승 1패, 평균자책점 1.19로 정규 시즌 1, 2위인 SK와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만나며 차우찬의 대 SK전 호투는 이전부터 주목받았다.

포텐 폭발로 인해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지만, 팀이 스코어 0:2로 이기던 4회 초 무사 1루에서 김동주에게 투런 홈런을 맞았고, 스코어 2:2인 5회초에 아웃카운트 하나도 잡지 못하고 만루를 채운 상태에서 강판되어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정인욱이 완벽하게 분식회계를 해서 차우찬은 이날 4이닝 78투구수 5피안타 1피홈런 5볼넷 4탈삼진 5실점 5자책점을 기록했지만, 팀이 8회 말에 4점을 뽑아 스코어 5:6으로 재역전승하여 차우찬은 패전을 면했다. 승리투수는 권오준이었다.

10월 9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7번째 투수인 정인욱이 11회말에 난타당하자 차우찬이 등판을 자청하며 몸을 풀었으나, 선동열 감독은 오늘만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며 그를 등판시키지 않았다. 결국 이날 팀은 연장 11회 초에 2점을 뽑고도 11회 말에 3점을 내줘 스코어 8:9로 재재재역전패당했다.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6⅔이닝 10피안타 1피홈런 7볼넷 7탈삼진 10실점 10자책점 평균 자책점 13.50으로 완전히 망했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하여 5⅓이닝 86투구수 6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3탈삼진을 기록하며 괜찮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최정에게 연타석 홈런을 맞고 2피홈런 3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며 강판되었다. 이날 팀이 스코어 1:4로 패하여 차우찬은 패전투수가 되었다.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7.2이닝 8피안타 2피홈런 2볼넷 1몸에 맞는 공 5탈삼진 3실점 3자책점 평균 자책점 3.52,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스윕당해 준우승에 그쳤다.

포스트 시즌 9경기 중 5경기 등판하여 14⅓이닝 18피안타 3피홈런 9볼넷 1몸에 맞는 공 12탈삼진 13실점 13자책점 평균 자책점 8.16, 1패를 기록했다.

3.6. 2011 시즌

새로 감독으로 부임한 류중일 신임 감독으로부터 1선발로 낙점받았다. 2011년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2011 시즌 초반에 활약하다 중반에 이르른 지금 아무래도 풀 타임 선발이 처음이라 그런지, 아니면 자기가 팀의 에이스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6월 16일부터 부진하였다.

8월에는 팔꿈치 통증을 느껴 잠시 2군에 있었다.

9월 27일 두산전에서 승리하며 2년 연속 10승을 기록했지만 피안타율 0.273로 작년의 0.232에 비해 증가한 데다, 피홈런도 22개로 지난해에 비해 무려 17개나 증가했다. 게다가 경기 내용도 갈 수록 안 좋아져 삼팬 사이에서는 포스트시즌에서 롱 릴리프로 기용하거나 아예 쓰지 말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반전의 스토리를 쓰게 되었다.

3.6.1. 한국시리즈

10월 2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1차전, 류중일 감독의 선발 1+1 전략에 따라 팀이 스코어 0:2로 이기던 5회초에 선발 투수 덕 매티스의 다음 투수로 등판해 3이닝 36투구수 5탈삼진 퍼펙트로 막고 마운드를 내려왔고, 신명철의 2타점으로 팀이 0:2로 승리하여 차우찬이 승리투수가 되었다. 한 달 여간 쉰 휴식이 효과가 있었던지 투구수의 ⅔가 넘는 공이 속구였으며, 대부분의 공이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였다. 그리하여 1차전 MVP로 선정되었다.

팀이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이기던 10월 3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나와 7이닝 104투구수 5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며 고전했지만, 위기에서 상대 타자들을 삼진과 범타로 돌려세우며 무려 7삼진을 기록, 결국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팀이 이 날 강봉규의 홈런으로 스코어 0:1로 승리하여 차우찬은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거두었고, 삼성은 4승 1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하였다.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1선발) 10이닝 5피안타 2볼넷 1사구(死球) 12탈삼진 무실점 2승을 기록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기여를 하였다. 사실 이 정도면 한국시리즈 MVP도 충분히 노릴만한 호성적이었으나 끝판왕의 위엄(4경기 3세이브)에 밀려서 아쉽게 MVP는 되지 못했다.

2011 시즌을 보내면서 1선발로는 다소 아쉬운 활약을 보이긴 했어도 한국시리즈에서는 본인의 활약과 더불어 팀의 우승에 결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2011 시즌의 마지막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다. 더불어 2010년 포스트시즌의 부진도 단숨에 만회하는데 성공했고, 2012년의 활약도 기대를 받게 되었다.

3.7.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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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넷이나 피홈런을 지나치게 많이 내주며 심하게 부진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출장 기회를 가져 류중일의 양아들 소리를 들었다. 이 해 6승 7패에 그쳤다. 하지만 이 해 부진했던 건 다 이유가 있었다.[28]

3.8.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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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까지는 여전히 2012 시즌의 모습을 보여주며 욕을 바가지로 먹었으나 5월 중순 이후부터 구속이 오르고 공에 힘이 붙으며 6월까지 롱릴리프로써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7월 말부터는 에스마일린 카리대 때문에 선발로 전환하여 괜찮게 활약, 2011시즌 이후 2년만에 10승 달성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는 정말로 미친 투구를 보여주었다. 1984년의 최동원까지는 아니더라도 2006년의 배영수를 연상하게 할 정도로 엄청난 역투를 펼쳐 삼성의 통합 3연패와 V7의 큰 주역이 되었다.

3.9.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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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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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KBO 리그 탈삼진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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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다시 선발투수로 복귀한 시즌. 탈삼진왕을 차지하면서 데뷔 처음으로 타이틀홀더가 되었고, 개인 최다승 등 얻은 것이 많은 시즌. 나아가 2015년 한국시리즈,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도 맹활약하며 여러모로 좋은 시즌을 보냈다. 그러나 평균자책점은 무려 4.79로 매우 높았다.[29]

3.11.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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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삼성에서의 마지막 시즌. 시즌 후 FA로 풀렸고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 최형우와 달리 차우찬은 비교적 잡음없이 LG로 이적하였다.[30] LG의 제안을 뿌리치기 힘들었고, 삼성에는 항상 미안하고 감사한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LG 이적 후에는 대구 율하초등학교 야구부에 기부까지 했다. http://osen.mt.co.kr/article/G1110828413

3.12. 1차 FA

김한수 신임 감독이 취임식에서 최형우와 차우찬을 잡겠다고 했으며 뒤이어 구단에서도 잡겠다고 공언했다.

일본의 3개 팀과 협상한다는 기사가 떴다.

해외진출 희망 차우찬, 국내 잔류하면 LG 간다

12월 6일, LG 트윈스와의 계약에 잠정적으로 합의 했다는 기사가 떴다. 거기다 삼성이 차우찬에게 세 자리를 제시했다고 시인했는데 협상 내용은 보통 비공개로 하는 걸 생각해보면 롯데가 장원준을 놓치자 대놓고 88억 불렀다고 공표해서 우린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선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우규민의 삼성행이 발표되었는데,[31] 삼성은 얼마 전 이원석 영입을 발표함으로써 최형우와의 협상이 파토났다는걸 간접적으로 알린 적이 있고, 최형우는 진짜 KIA로 갔다. 사실상 차우찬이 떠난다는 데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일단 양상문의 인터뷰에서도 차우찬 영입을 실패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 걸 보면 LG가 영입을 시도한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8일에는 삼성을 떠나 메이저 진출 또는 KBO리그 타 구단 입단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송구홍 단장은 “삼성에서 차우찬에게 제안한 내용을 공개해 당혹스럽다. 원소속팀에서 100억 원 이상 불렀으니 우리는 150억 원을 배팅해야 한다는 뜻인가” 라고 한 것으로 봐서, 이것이 차우찬의 잔류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말도 영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형우의 KIA행 소문이 진짜가 된 것 처럼 차우찬 역시 12월 14일 LG와 4년 95억의 FA 계약을 맺으면서 또다시 소문이 현실화돼 버렸다. 결국 우규민과 차우찬이 서로 트레이드된 것이나 다름 없어졌다.

차우찬이 삼성을 떠나 LG로 이적한 이유에 대해 차우찬 측은, 11월 27일 만났을 때만 해도 삼성의 조건이 LG보다 좋았지만 이날 이후 삼성은 단 한번도 차우찬과 재미팅을 가지려는 모습을 전혀 안 보여 차우찬의 에이전트는 메이저리그 쪽을 알아보려 윈터미팅이 열리는 12월 미국에 출국했고, 이후 삼성이 우규민을 영입한 것을 보자 서로 작별할 것 같다고 예감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삼성 구단으로부터 100억+@를 준비했다는 뉴스에 정말 협상 지속 의사가 있다면 저런 기사가 나오겠냐며 당혹스러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32]

송구홍 단장은 축소발표 아니냐는 의혹에 펄쩍 뛰면서 하늘이 두쪽나도 95억에서 한푼도 추가되지 않았다. 라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인터뷰에서 옵션 15억이 별도로 있음을 제 입으로 불면서 역으로 110억 설이 팩트임을 인증해주는 모습을 보였다. 다만 차우찬이 은퇴 후 정근우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서 말하길 110억보단 아래였다고 한다. *

12월 28일 올라온 인터뷰에서 본인 입장을 밝혔다. 삼성과 항상 좋은 관계였고 대우도 더 좋았지만 환경의 변화가 필요해서 일부러 대우낮은 해외계약 (메이저 스플릿계약)등을 추진했으나 앞서간 오승환, 김현수, 강정호의 충고와 계약조건(WBC 출전포기 등등)으로 LG 트윈스에서의 국내잔류를 택했다고 한다.

4.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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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G의 마지막 남은 희망 차우찬 LG를 구원하다.jpg

엄청난 거금을 받고 LG로 왔으나 입단 첫 해를 제외하면 부상과 부진으로 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활약을 보여주며 LG의 FA 계약 잔혹사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그의 몸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기용이 동반되었다는 점[33]과 2018년 두산전 전패를 막는 완투승까지 있었다는 점이 겹쳐, 다른 LG산 FA 먹튀 선수들에 비해서는 비판을 덜 받는 편이다. 실제로 차우찬의 계약을 종합하면 sWAR 1당 12억원 정도로, 먹튀는 맞더라도 먹은 돈이 많아서 그렇지 '역대급'은 아니라고 평가된다.[34]

4.1.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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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찬이 LG에서 활약한 유일한 시즌. 세부스탯만 보면 20승과 정규리그 MVP를 차지한 양현종과 비슷할 정도로 좋았지만, 승운은 매우 없었다.

4.2. 2018 시즌

파일:CHA201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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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그리고 시즌 막바지의 임팩트 있는 투구를 빼면 완전 엉망이었던 시즌. 그 임찬규보다도 평균자책점이 높다.

4.3.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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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한 때 잘 던지다가 무더위가 시작되자 2018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팔꿈치 수술로 받고 재활을 마치지 못 했음에도 류중일이 당겨쓰는 바람에 구위나 구속 등을 전혀 회복하지 못했고, 시즌이 갈수록 좋지 않은 투구를 보여주었다. 안정감을 줘야 하는 토종 에이스 타이틀을 달고 있으면서 이우찬, 류제국보다도 불안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노출했다. 오히려 차우찬이 선발 등판하는 날엔 아예 야구를 안 보는 팬들도 많았다는 얘기가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박명환을 넘어설 팀 역대 최악의 투수 먹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휴식이 필요함에도 자꾸 삼성 때 금강불괴 시절을 못 잊고 쓰는 류중일 감독의 탓도 컸다.

그나마 작년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1~2달의 부진 이후 호투하며 후반기 LG에서 케이시 켈리와 함께 계산이 서는 선발투수 역할을 수행했고, 8월 18일 5년 연속 10승을 달성하였다. 이후의 LG에서의 폭망한 경력을 감안하면 2017년 다음으로 활약한 시즌이 되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10승을 기록한 시즌이다.

4.4. 2020 시즌

파일:20차우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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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2차 FA

4년간 성적
<rowcolor=#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홀드 세이브 승률 탈삼진 피안타 피홈런 4사구 WHIP ERA
2017~2020 LG 99 578 40 30 0 0 0.444 468 600 71 228 1.43 4.62
2020 시즌이 종료된 후 FA를 신청했다. 부상으로 커리어 로우를 찍었음에도 차우찬 영입에 관심이 있는 팀들이 있다고 한다. 고대우를 요구해준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LG에서 삼성으로 간 우규민과 함께 쌍으로 욕 먹었다.[35] 사실 4년 40승이면 최악의 먹튀 수준은 아니지만[36] 문제는 세이버 스탯이 나쁘다. WAR 4점대를 찍은 2017 시즌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 시즌 모두 그다지 잘 하지 못했고 특히 2018년, 2020년은 부상과 부진으로 95억이라는 고가 대비 활약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스탯티즈 기준 WAR 1당 14억인데, 이 수치는 1~2차 합산 우규민, 롯데 시절 민병헌, 오재원 등과 엇비슷한 수치로, 사실상 먹튀에 가깝다.[37] 따라서 LG 팬들도 차우찬에게 오버페이를 하는 것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FA를 신청한 것이야 선수 본인의 권리이니 문제될 것이 없지만 1월이 다 지나가도록 협상을 질질 끌며 팬들에게 괘씸죄로 찍혔다. 심지어 인터뷰에서 "꿈을 쫒아 일본에 진출하고 싶다."거나 "동기부여를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해서 욕을 푸짐하게 먹었다. 투수 역대 최고액을 기록하며 이적해 놓고 첫 해 빼고 방어율 4~5점대를 왔다갔다하며 그저 그런 성적을 기록한데다 마지막 해에는 시즌 초반에 이탈하여 포스트시즌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도 않아서 신인인 김윤식 남호에게 선발 로테이션을 돌게 하고선 본인은 해외진출 드립을 치고 앉았으니 팬들 입장에선 복장 터질 노릇. 거기에 동기부여 드립으로 화룡점정을 장식하며 팬들은 "꿈 찾게 일본으로 보내라.", "동기부여 되게 옵션 떡칠해라."는 반응이다.

차명석 단장도 스프링캠프 직전 "이제 조건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최후 통첩을 날렸다.

결국 2월 3일이 돼서야 2년 최대 20억(연봉 3억원, 인센티브 연당 7억원)에 재계약했다. 보장 금액은 겨우 6억원이고, 나머지 14억원은 활약에 따라 지급되는 계약이라 본인 소원대로 동기부여는 충분히 될 듯. 옵션의 상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차명석 단장의 말에 따르면 건강하기만 하면 대부분 채울 수 있는 옵션이라고 하는데, 반대로 차우찬은 모든 옵션을 충족시킬 수 있으려면 리그 토종 TOP 5에 들어갈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대충 2020년 임찬규 급으로만 던지면 될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38]

그러나 차우찬 본인은 계약이 늦어진 원인이 연봉이나 옵션 때문이 아니라 2021 시즌 종료 후 해외진출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조건을 요구했는데, 구단측과 이 문제에 이견이 있어서 계약이 늦어졌다고 한다. 원래는 첫 번째 FA가 끝나는 2020 시즌 종료 후에 일본 진출을 시도할 생각이었는데, 시즌을 부상으로 말아먹어서 2021 시즌에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시도할 생각으로 요구했다고 한다.

2021 시즌 개막 후 두 달 가까이 소식이 끊겨 있다가 6월 6일 KIA전에서 복귀전을 치렀다.

4.6.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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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6일 KIA 상대로 무려 312일 만의 복귀전에서 역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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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 2021 시즌 내 복귀가 기대되지는 않았지만, 6월 6일 광주 KIA전에서 선발투수로 기적적으로 복귀해 선발승을 따냈다. 그러나 김경문이 복귀하자마자 올림픽 엔트리에 합류시켰고, 무리하게 출전해 결국 어깨 수술을 받게 되었고 시즌 아웃은 물론 선수 커리어에도 빨간불이 켜졌다.[39]

4.7. 2022 시즌

지난 시즌 올림픽에 다녀온 후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였고, 결국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 아웃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차명석 단장의 2021 결산 소통 라이브 및 인터뷰에서 어깨 수술을 받은 차우찬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재활이 잘 되어도 합류는 빨라야 후반기가 되어야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사실상 이번 시즌도 뛰기 힘들어 보이며, 은퇴 수순을 밟게 될 확률이 높다. 이번 시즌이 FA 마지막 해인데, 과정이 어찌 됐든 차우찬은 LG와의 두 번째 FA에서도 22이닝에 5점대 평자를 기록한 먹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40]

그리고 이번 시즌 복귀는 어렵다고 오피셜이 났고, 사실상 시즌 아웃이 되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퓨처스 두산전에서 선발 등판하게 되었다. 결과는 2⅓이닝 1사사구 무피안타 1K 투구수 28구. 그러나 최고구속이 겨우 134km/h로 구속이 심각하게 하락해버렸다. 어깨를 수술한 후유증인지 아니면 몸이 아직 덜 만들어진건지는 두고 봐야겠으나 구속만 봤을 때는 올해 안에 1군에 복귀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시즌이 거의 끝나가는 9월 25일이 돼서야 퓨처스리그 엔트리에 등록되었으며 당일 퓨처스 KIA전에 등판해 ⅓이닝 투구수 4개를 기록하고 내려갔다.

어느덧 나이도 30대 중후반에 접어들고 있고 직구 구속이 임찬규보다도 떨어지는 지경이기에 방출을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시즌 뒤 이상호, 김호은과 함께 방출되었다. 차우찬 본인은 현역 연장 의지가 있고, 선수의 이름값도 있는 만큼 원하는 팀이 나올 수는 있겠지만, 기량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새 팀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투수에게 치명적인 어깨 수술을 받은만큼, 이대로 은퇴할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41]

최근 여러 소식통들이 롯데행을 전망하고 있다.

5. 롯데 자이언츠

2022년 12월 1일, 롯데 자이언츠와 연봉 5천만 원에 계약했다. 의외로 4개 구단이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등번호 23번은 현재 김도규가 달고 있어, 이전 장원삼처럼 다른 번호를 달 것으로 추측되었고, 47번으로 확정되었다.[42] 좌완 불펜투수가 부족한 롯데로써 좌완 원포인트나 롱릴리프 롤을 맡을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LG에서 자신과 배터리를 이루었던 유강남도 FA로 롯데로 이적했다.

5.1. 2023 시즌

현재 롯데의 좌완 유망주 김진욱에게 가르침을 많이 주고 있다고 한다. 팬들도 나이와 부상 경력으로 인한 하락세 때문에 선수로서는 기대하지 않고, 사실상 5000만원 짜리 플레잉 코치나 김진욱 전담 과외 선생님으로 여기고 있다.[43] 사실상 3년 전 장원삼의 시즌 2. 좌완 투수, 삼성왕조의 주역, 삼성-LG-롯데 순으로 이적한 것 등 둘의 공통점이 많다. 전성기 시절 플레이 스타일[44]과 몰락하기 시작한 이후[45]는 완전히 다르지만.

6월 10일 퓨처스리그 SSG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1이닝 무실점 2탈삼진 1피안타 투구수 13개로 가능성이 보였다. 다만 최고 구속이 134km/h에 불과한 것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 그러나 이 1경기 등판 이후에는 2군에서도 등판 기록이 없다.

이후 8월이 되었는데도 아직까지 등판이 없다. 어깨 수술의 여파가 아직 있는 것으로 보인다. [46]

6. 은퇴 이후

8월 17일 어깨 통증을 극복하지 못하여 결국 은퇴를 발표했다.

롯데 구단은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스프링캠프 때부터 시즌 중까지 열심히 준비했지만 몸 상태와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아 은퇴를 결정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어깨가 좋지 않은 차우찬은 후반기 복귀를 목표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으나 6월 10일 퓨처스리그 경기에서 1이닝을 소화한 게 전부였고, 결국 몸 상태가 원하는 만큼 회복되지 않자 현역 생활을 접었다. # 은퇴 선언 후 임의해지 처리되면서 은퇴 절차가 마무리됐다.

7. 국가대표 경력

17경기 21⅔이닝 3승 ERA 1.25

큰 경기에 매우 강한 차우찬답게[47] 국제대회에서도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 특이하게 국제대회에선 선발 등판한 경기가 하나도 없고 전부 불펜으로만 등판했다.

7.1.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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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자책점 삼진 4구 상세
1 0 *.** 0 0 0 0 1 0 0 0 0

커리어 첫 A대표팀 승선. 봉중근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지고, 정우람이 예비 엔트리에도 들지 못해 상근으로 입대하면서[48]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뜬금없이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이미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전례가 있기에 감독은 물론이고 구단마저 반대했으나 양상문 한용덕 코치의 추천으로 강영식, 박정진, 강윤구, 박성훈, 이명우 등의 경쟁자[49]를 제치고 결국 차우찬은 대표팀에 승선했다.[50] 그리고 그 결과는, 세계에 공개된 대한민국의 핵무기. 이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

1차전인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0:3으로 뒤진 7회초, 손승락이 2루타와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1, 2루 위기에 몰리자, 차우찬은 좌타자 로저 버나디나[51]를 상대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온다. 하지만 올라오자마자 버나디나에게 우익선상 2루타를 허용하며 2루주자를 불러들였고, 곧바로 정대현으로 교체되었다. 이후 호주전과 대만전에는 등판하지 못했고, 대한민국이 2라운드 진출에 실패하면서 결국 네덜란드전 1피안타가 차우찬의 유일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투구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이미 2012 시즌 성적도 안 좋았고 부상선수의 대체요원으로 뽑았지만, 차우찬 역시 허리 부상을 안고 있었던 것만큼 애초 선발자체가 무리수였다.

7.2.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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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자책점 삼진 4구 상세
1 2 0.00 1 0 0 0 1 0 0 1 0

24일 대만과의 예선전에서 4이닝을 소화한 선발 양현종에 이어 5회에 등판해 2이닝 1피안타 1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면서 승리투수가 됐다. 이후 28일 대만과의 결승전에 중간계투로 등판할 예정이었으나, 경기가 워낙 박빙이어서 등판하지 않았다.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결국 1경기만 등판하고 병역특례를 받게 됐다.

7.3. 2015 프리미어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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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사구 삼진 상세
5 0 10⅓ 0.87 1 0 0 0 5 1 1 1 5 14 ##

2015년 서울 슈퍼시리즈 쿠바전 2차전에 등판, 1이닝 15구 퍼펙트로 막아 내며 프리미어 12에서의 투구에도 기대감을 갖게 해주었다.

프리미어 12에서도 김인식 감독은 차우찬을 전천후로 등판시킬 예정. 6년 전 WBC처럼 팀의 선배였던 정현욱의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개막전인 일본전에 등판하여 2이닝 1실점을 기록하였다. 4회말 조상우가 안타를 맞고 등판하였는데, 뒷 타자들을 찍어 누르며, 구위는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보여준 그 구위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5회는 2아웃까지 막았으나,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리면서 안타, 볼넷, 안타를 내주며 1실점하였다. 그러나 왜 국대에서도 전천후로 활약할 투수인지 확실히 보여 주었다.

11월 14일 멕시코전에서는 3이닝 동안 8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했다. 특히 6회 무사 1루 상황에서 7회까지 6타자 연속 삼진이라는 경이로운 피칭을 보여주었고 8회에 선두타자를 땅볼로 잡은 뒤 정대현과 교체되었다. 역시 삼진만큼은 국내 최정상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도박 사건 이후 안 좋은 소식만 들려오던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게 오래간만에 들려온 좋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유를 실력으로 증명한 경기였다.

미국전 호투와 일본전 2⅔이닝 무피안타! 3탈삼진 2볼넷으로 에이스급 피칭을 했다.

미국과의 결승전에서도 등판하여 1⅓이닝 1피안타 2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의 최종 기록은 10⅓이닝 14삼진 방어율 0.87 1승 0패 1홀드로 MVP급 활약을 보여줬다. 이 대회에서의 차우찬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단일 대회 5경기 이상 등판한 5번째 투수이자 가장 낮은 방어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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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2021년 8월 기준 / ② 이닝-연도 순
이름 대회 출전경기 선발등판 불펜등판 이닝 홀드 세이브 탈삼진 ERA
박석진 2000
시드니 올림픽
5 1 [52] 4 15⅔ 2 1 0 0 11K 1.72
정현욱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5 0 5 10⅓ 1 0 1 0 13K 1.74
차우찬 2015
WBSC 프리미어 12
5 0 5 10⅓ 1 0 0 0 13K 0.87
이영하 2019
WBSC 프리미어 12
5 0 5 8⅓ 1 0 0 0 6K 1.08
구대성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5 0 5 8 1 0 0 0 3K 1.18
조상우 2021
도쿄 올림픽
6 0 6 8 1 0 1 0 10K 1.13
윤석민 2008
베이징 올림픽
5 0 5 7⅔ 2 0 0 1 6K 2.35
하지만 아쉽게도 대회 MVP는 김현수가 가져갔다.

7.4.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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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사구 삼진 상세
3 0 5 3.60 0 0 0 0 5 0 2 2 1 4

2월 19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평가전에 0-1로 뒤진 5회에 올라 예정된 2이닝을 소화했다. 5회는 무실점으로 잘 맞긴 했지만 6회 흔들리며 2실점을 허용했다. 성적은 2이닝 4피안타 2실점.

다만 번트타구를 오재원 양의지가 미루다가 1루에 던지지 못한 점, 평범한 안타 타구를 최형우가 뒤로 빠뜨린 점으로 볼 때 실점이 모두 자책점은 아닌 점이 고무적이다.

그러나 같은 날 선발로 등판한 장원준이 애당초 예정되어있던 2이닝을 넘어 3이닝을 던지며 3이닝 3탈삼진 퍼펙트를 기록한 것과 비교되어 까였다. 게다가 작년 12월 14일 LG 트윈스로 이적하며 4년 95억의 계약이 꾸준히 거품 논란을 받다가 이번으로 인해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3이닝 퍼펙트를 달성한 장원준이 두산 베어스로 이적한 것이 4년 84억의 계약이였기 때문.

연습경기와 시범경기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3월 6일 시작된 이스라엘과의 1차전에서 6회초 등판해 ⅔이닝 0실점으로 완벽투를 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3월 7일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도 2⅓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3월 9일 대만전에서는 2이닝 2실점으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대표팀은 1승 2패로 1라운드 탈락.
다만 발목부상을 안고 뛰었다.

7.5. 2019 WBSC 프리미어 12

파일:차우찬 2회 프리미어.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실점 피홈런 자책점 사구 삼진 상세
3 0 2⅓ 0.00 1 0 0 0 0 0 0 0 2 2 ##

2019 WBSC 프리미어 12에 참가하는 김경문호에 발탁되었다. 참고로 대표팀 투수진 중 최고참이라고 한다. 담당 포지션은 선발이 아닌 전천후 활용 가능한 롱 릴리프.

역시 좋은 국대 성적을 보여주는 선수답게 이번 대회에서도 전천후로 등판하면서 4년 전 대회 못지않게 활약했다.

7.6. 2020 도쿄 올림픽

파일:차우찬 도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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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선발 이닝 방어율 홀드 세이브 피안타 피홈런 실점 자책점 볼넷 삼진
4 0 2 0 - - - - - - - - - -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됐다. 처음 차우찬이 선발됐을 때 매우 놀라는 팬들이 많았다. 이번 시즌 꽤 오랜 기간 어깨 부상 이후 재활로 신음한 상황에다 방어율도 5점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광현- 양현종 미국행, 구창모의 부상으로 마땅한 좌완투수가 없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뽑힌 걸로 보인다. 물론 이번 대표팀 투수진이 어리기 때문에 차우찬의 풍부한 국제대회 경험도 고려 요소였을 것이다.

상무와의 연습경기에 등판해 무실점을 기록하기는 했으나 패스트볼 구속이 140조차 나오지 못하는 등 몸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것만 보여줬다.

녹아웃 스테이지 1라운드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 8회에 올라와 1아웃을 잡고 내려갔다.

준결승 1차전 일본과의 경기 6회 등판했다. 1사를 잡고 안타를 맞긴 했지만, 후속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2사 1루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조상우가 승계주자를 홈으로 들여보내지 않으면서 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준결승 2차전 미국전에 6회 무사 1루에서 등판하여 공 4개로 1아웃만 잡고 내려갔다.

동메달 결정전 도미니카 공화국전에서 김민우가 백투백 홈런과 볼넷을 내주며 ⅓이닝 3실점으로 내려가자 1회 1사에서 등판했다. 볼넷과 안타, 희생타로 주자를 들여보냈으나 2아웃을 잡으며 ⅔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고 고우석과 교체되었다.

비록 구속저하 때문에 예전처럼 긴 이닝을 소화하지는 못 했지만 나올 때마다 제 몫을 해주며 이번 국제대회를 2이닝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수술 후 재활도 완벽하게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올림픽에 뽑혀서는 김경문의 무리한 기용에도 역투를 펼치면서 어깨 부상까지 발생하는 등 완전히 몸이 퍼졌고, 결국 이 출전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차우찬을 1군에서 볼 수 없었다. 본인 몸을 희생해서 메달까지 가져왔다면 이후에 고장나더라도 화려한 마무리가 되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본인만 희생당해버린 비운의 올림픽 출전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LG 트윈스 팬들도 차우찬의 선발을 반기지 않았다. 재활 중인 선수 푹 쉬게 냅두고 리그에서 잘 하고 있는 선수를 뽑아가지 괜히 뽑아서 욕이란 욕은 다 먹은 데다가 무리하게 경기에 내보내다 어깨에 이상이 생겨서 시즌아웃되게 만들고, 메달도 못 따는 등 아무 것도 얻은 것 없이 LG와 차우찬 모두에게 상처만 주고 말았다.

8.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승률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sWAR
2006 삼성 9 7 3.86 0 0 0 0 0.000 10 0 5 9 4 3 2.00 -0.01
2007 23 28 6.11 0 0 0 0 0.000 27 7 7 17 20 19 1.21 -0.17
2008 25 36⅔ 4.17 0 0 1 2 0.000 35 3 24 28 20 17 1.58 0.33
2009 42 109⅓ 6.09 6 9 0 1 0.400 129 17 82 97 80 74 1.88 0.42
2010 37 126⅓ 2.14 10 2 0 2 0.833
(1위)
106 5 56 112 35 30 1.24 5.63
2011 24 148⅔ 3.69 10 6 0 0 0.625 156 22
(1위)
65 114 75 61 1.47 2.22
2012 26 83⅔ 6.02 6 7 0 2 0.462 83 11 49 52 59 56 1.57 -0.44
2013 43 121⅓ 3.26 10 7 0 3 0.588 100 6 73 111 45 44 1.38 2.97
2014 69
(3위)
82 5.60 3 4 0 21 0.429 86 9 44 79 57 51 1.56 0.17
2015 31 173 4.79 13 7 0 1 0.650 160 28
(3위)
79 194
(1위)
98 92 1.35 2.64
2016 24 152⅓ 4.73 12 6 0 0 0.667 168 16 73 120 87 80 1.53 3.37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승률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sWAR
2017 LG 28 175⅔ 3.43 10 7 0 0 0.588 171 20 45 157 75 67 1.19
(3위)
4.97
2018 29 170 6.09 12 10 0 0 0.545 177 27 89 136 119
(1위)
115
(1위)
1.51 1.67
2019 29 168⅓ 4.12 13 8 0 0 0.619 181 16
(5위)
64 124 87 77 1.43 1.84
2020 13 64 5.34 5 5 0 0 0.500 71 8 30 51 39 38 1.55 0.70
2021 5 22⅓ 5.24 2 1 0 0 0.667 16 2 16 12 14 13 1.30 0.23
2022 1군 기록 없음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ERA 승률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sWAR
2023 롯데 1군 기록 없음
<rowcolor=#373a3c> KBO 통산
(16시즌)
457 1668⅔ 4.51 112 79 1 32 0.586 1676 197 801 1413 917 837 1.45 26.55


[1] 또 다른 주역으로는 차우찬과 함께 원투펀치를 이룬 원종현이 있다. [2] 이 당시 군산상고의 감독은 김성한. [3] 이후 KIA 타이거즈에서 지명했으나, 2012년에 방출당했다. 좌완 사이드암으로 전향까지 했던 투수. [4] 당시 군산상고 감독을 맡고 있었던 해태 출신 김성한 선동열에게 연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또 다른 설도 있는데 원래 LG 트윈스가 지명하려고 했는데 LG에게 다른 내야수를 픽하도록 유도해 놓고 선동열이 가져갔다는 얘기도 있기는 하다. 그리고 차우찬은 2017년에 FA 계약을 맺고 LG 트윈스로 오게 된다. [5] 심지어 구원 등판한 권오준 이대호에게 2:5에서 5:5가 되게 만드는 동점 쓰리런을 허용하면서 승계 주자 실점으로 2자책 한 것. 다만 팀은 6회말에 박한이 이정민에게 다시 역전 솔로포를 터뜨리며 5:6을 만들었고 이후 한 점 차를 삼성이 끝까지 지키면서 이겼었다. [6] 이후 세월이 더 흘러 2009년에 팀의 선발진이 무너지기 일보 진적인 상황이 닥쳐서야 안지만과 함께 선발 훈련을 받게 되었다. [7] 이 둘은 FA 때 LG의 4년 보장을 받고 이적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8] 특히 14일 기아전에서 2이닝 7피안타(2피홈런) 4실점으로 완전히 무너지면서 승기를 완벽히 넘겨줬었다. [9] 팀은 연장 11회 말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구원 등판한 구대성에게 심정수가 끝내기 홈런을 폭발시키며 1:2로 이겼었다. [10] 이 해 유독 기아전 상대로 심각하게 기록이 좋지 않아 4경기 등판했음에도 단 2⅓이닝 밖에 소화하지 못하면서 자책점이 무려 9점이나 되는 바람에 기아전 ERA가 34.71이나 됐었다. [11] 팀은 7회초까지 8:3으로 이기던 경기를 7회말 권혁 권오준의 믿을 수 없는 6실점 허용으로 경기를 한순간에 내주었고 결국 8:9 한 점 차 대역전패를 당했다. [12] 이상하게 보일 수 있으나 이 해 정현욱은 5월까지 중간계투이면서 땜빵 선발로도 가끔 출장했었다. 그 중에 선발로 제일 잘 던진 경기가 바로 이 경기다. 6이닝 3피안타 2볼넷 4탈삼진 2실점으로 QS를 했을 정도. [13] 세이브 요건 중에 "4점차 이상이라도 최소 3이닝 이상 효과적으로 투구하면 세이브를 부여한다."라는 규칙이 있기 때문에 올릴 수 있었던 기록. [14] 5이닝 동안 3자책점만 허용하긴 했는데 4회에 박진만의 치명적인 클러치 에러 이후 김태균에게 피홈런까지 허용하면서 실점은 7실점이나 했었다. [15] 팀은 최종 스코어 2:4로 아쉽게 한국시리즈 진출을 하지 못했다. [16] 사유는 용병 에르난데스의 발목 부상과 당초 선발 후보군이었던 조진호의 연이은 부진으로 선발진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기회를 받은 것. [17] 팀은 선발 김선우를 조기에 털어버리면서 4:5로 경기를 이겼었다. [18] 팀은 아쉽게 2:1로 한 점 차 패했으나 이 해 포텐셜이 터진 양현종과의 선발 맞대결에서 차우찬이 전혀 밀리지 않고 거의 대등하게 맞선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19] 후반에는 정현욱도 맛이 가는 등, 누구라 할 것 없이 별로이기는 했다. 그래서 삼성은 PS 진출에 실패. [20] 결국 박민규는 프로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삼성에서 방출당했다. [21] 선동열 감독은 2009년 신인지명에 앞서 고졸을 뽑지 않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실제 고졸은 2명만 뽑았고, 나머지를 대졸 투수로 뽑았다. 누가 봐도 혹사로 무너져가는 현 투수진 대신 젊고 고졸보다 튼튼한 대졸 투수들 데리고 불펜야구를 하겠다는 포석이었다. [22] 정인욱 역시 3⅓이닝 동안 3실점을 시작으로 안지만, 박민규, 백정현 모두 1실점씩 하는 동안 장원준은 무려 7이닝 3실점(2자책)으로 삼성 타선을 잘 막아내고 롯데가 삼성을 9:3으로 이기면서 승리투수를 따냈다. [23] 6월 17일까지 홀드나 세이브는 없었어도 확실히 작년보다는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이면서 시즌 ERA도 2.35로 꽤 안정적이었다. 게다가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구위에 힘이 붙기 시작하자 투구 내용이 개선되고 있었는데, 심지어 6월 17일 롯데전에서는 2⅔이닝 동안 2피안타 2볼넷을 허용하긴 했어도 무실점에 6탈삼진이라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롯데 타선이 보통 타선이 아니었음을 감안하면 이 해에 어떻게든 포텐 터질 기미는 계속 보이고 있었다는 점. [24] 6월~7월 18일까지 한정하면 차우찬은 총 47이닝을 소화하면서 자책점 단 7점만 허용하여 해당 기간 ERA가 1.34 였었다. 그야말로 완벽히 포텐을 터뜨린 모습. [25] 다만 이는 류현진이 시즌 후반으로 접어들수록 오히려 무아지경에 이르는 명품 피칭을 연이어 선보이며 1점대 ERA를 기록하고 있어 방어율왕은 쉽지 않았었다. 다만 규정이닝을 채울시 류현진에 이은 시즌 전체 2위의 기록은 도전해볼 수 있었다. [26] 7⅔이닝 8K 무실점. 직구 최고구속은 151km/h, 슬라이더도 140km/h 가까이 나왔다. [27] ERA 역시 2.14로 1.82의 류현진에 이어 이 부문 2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규정이닝에 6⅔이닝 모자라 2위 자리 역시 김광현이 2.37로 가져갔다. [28] 정작 오치아이 코치는 말리지는 않았지만, 후회할 거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29] 다만 이는 리그 사상 손꼽히는 타고투저 시즌이었기에 스탯티즈 제공 ERA+는 101.8로 4점대 후반 ERA가 평균보다는 살짝 나은 정도였다. 해당 시즌은 3점대 ERA만 찍어도 리그 특급이었을 정도. [30] 떠나면서 구단을 까는 등 별 다른 언플을 전혀 하지않았다. [31] LG가 우규민과의 협상이 순탄치 않자 우규민보다 협상우선순위가 높은 투수가 있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해당되는 선수는 몇 없다. [32]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뒤 FA행보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삼성 프런트가 협상 실패+가계약 썰에 분노해 자신들은 할만큼 했다는 것을 피력하려는 입장이라는 해석도 할 수 있다. [33] 95억원을 대령했는데 무슨 몸 관리냐는 비판이 있을 수는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 선수가 부진할 때 적절하게 맞춰서 쓰는 것도 구단이 FA 계약에서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이기는 하다. 애초에 1선발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거액을 투자한 것인데 류중일 감독의 무리한 기용으로 5선발 느낌의 피칭으로 로테만 소화하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FA 계약한 김광현은 아예 첫 시즌 수술로 개점휴업하고 두 번째 시즌 이닝 수 관리로 당해년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어낸 것과는 비교되는 행보다. [34] 그래도 이적자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이는 뉴탯티즈의 승리기여도 지표이며 개편 전에는 그나마 나았던 첫 계약에서도 sWAR 1당 14억원으로 논쟁의 여지가 없는 먹튀였다. [35] 우규민의 경우 고대우를 해준다는 프런트가 욕을 먹었고, 차우찬은 커리어 로우를 찍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본인이 고대우를 요구하였기 때문에 본인이 욕을 먹었다. [36] 가격을 보지 않고 4년 40승만 보면 매년 10승은 찍어주는거니 최악은 아니다. 당장 삼성산 투수먹튀인 우규민, 장원삼을 보면 1년간 10승은커녕 5승도 간당간당했다. 그래도 장원삼은 삼성왕조의 주역이었지만 우규민은... [37] 보통 WAR 1당 10억원 이상 환산될 시 먹튀로 간주된다. [38] 2020년의 임찬규는 147이닝을 소화해 10승에 ERA 4.08을 기록한 준수한 토종 선발이었고, 차우찬의 2019년과 굉장히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39] 결국 2023년 8월 17일 재기불가로 인해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이 시즌에 무리한 것이 커리어에 치명적으로 작용했음을 다시 한 번 팬들로 하여금 상기시키게 만들었다. [40] 사실 그 동안 당했던 혹사를 감안한다면, 그리고 투수에게 치명적인 어깨 부상인 걸 감안하면, 작년 6월에 복귀한 것도 기적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어깨의 상태가 심각하다. [41] 흥망성쇠의 예시를 아주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삼성 시절 화려하던 전적과는 달리 FA로 LG를 가더니 슬슬 먹튀의 모습을 보여주며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결국 방출당한 케이스다. [42] 마침 장원삼이 롯데와 손을 잡은 2020년에는 안치홍이 13번을 가져갔다. 참고로 안치홍은 KIA에서 8번이었는데 전준우가 사용중이었다. [43] 조원수박차 시절을 지나 삼성 왕조 시절 핵심 좌완으로 선발, 불펜 할 것없이 활약하고 국가대표팀의 꾸준한 부름을 받아 태극마크를 달고 맹활약한 차우찬보다 좋은 멘토를 KBO에서 찾기는 힘든 일이다. [44] 장원삼은 기교파고 차우찬은 파워피처였다. [45] 장원삼은 스윙맨으로 전향했고 차우찬은 여전히 선발투수로 계속 이닝을 먹은 끝에 퍼져버렸다. [46] SSG전에 등판한 후 회복이 전혀 안 됐다고 한다. 본인도 어깨가 회복이 안 되니 한계를 느끼고 은퇴를 결심한 듯하다. [47] 통산 한국시리즈 평균자책점이 2.08에 불과하다. [48] 정우람은 봉중근이 엔트리에서 빠진 후 엔트리에 발탁된다면 군입대를 미룰 수도 있다고 했지만 쿨~하게 씹혔다. 참고로 이 해 SK 와이번스의 마무리를 맡은 정우람의 2012 시즌 성적은 평균자책점 2.20 53경기 소화. [49] 이들 외에 2012 시즌 차우찬보다 좋은 활약을 펼친 좌완투수는 8명 가까이 됐다. 심지어 후보군에도 없었던 유창식이 차우찬보다 더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 [50] 반대로, 다른 기사에선 류중일 감독의 의중도 차우찬을 강하게 원했다고 하는 얘기가 있다. 그리고, 정말로 강하게 반대했다면 아무리 강한 추천이 있었다고 해도 뽑히진 못했을 것이다. 결정권은 결국 감독 몫이다. [51] 공교롭게도 4년 후 KBO 리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저 천적관계는 그대로 이어졌다. [52] 네덜란드전에서 선발 등판해 8이닝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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