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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전투병과교육기지사령관 | |||||
초대 오덕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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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김익렬 |
4대 김동빈 |
5대 임충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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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한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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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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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대~00대 : 소장 · 00대~현재 : 중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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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재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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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목포홍일고등학교 (졸업) 한남대학교 대학원 ( 경영학 / 석사[1])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86년 ~ 2023년 | |
임관 | 육군3사관학교 (23기) |
최종 계급 | 중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육군교육사령관 |
주요 보직 |
제2군단장 합동참모본부 민군작전부장 제52보병사단장 제3군단 참모장 제1야전군사령부 교육훈련과장 제3군단 작전참모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 조직진단과장 육군본부 지휘통제실장 제3보병사단 제18보병연대장 |
종교 | 개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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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중장이며, 최종 보직은 육군교육사령부 사령관이다.2. 생애
전라남도 무안군 출신으로 삼향북초등학교, 목포홍일고등학교를 거쳐 1986년 육군3사관학교(23기)를 졸업하고 보병 소위로 임관하였다. 2001년 한남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하였다.3. 주요 보직
4. 여담
- 스스로 이야기 할 때 늘 끝차에 진급한다고 부족한 사람이 운만 좋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겸손함에서 나온 표현으로, 기본적으로 비육사라는 디스어드밴티지 속에서 장군이 될 정도로 자력이 좋은 편에 속한다. 상술한 경력에서 보이듯 정철재 장군은 육군 야전 작전 및 교육훈련 분야의 손꼽히는 권위자이다. 준장 2차 진급에 실패하고 갖게 된 여유라는 설도 있다. 실제로 준장 진급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났다가[11] 막차 진급을 앞두었던 1군 교육훈련과장 시절에는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여유와 소탈함을 보여줬고 이 자리에서 준장 막차 진급에 성공했다. 힘들게 준장을 달고 나서 생긴 인품과 여유로 저런 겸손이 가능했고 지금의 덕장 이미지가 생겼다는 평가도 있다.
- 소탈한 인품으로 간부, 용사할 것 없이 부하들에게 인망이 두터운 편이다.
- 소초장, 대대장, 사단 작전참모, 연대장, 군단 작전참모, 군단 참모장, 군단장 등 여러 직책을 GOP라는 최전방 경계작전부대에서 주로 근무한 작전 직능의 야전형 군인이다. 준장 시절 국방일보에 기고한 글
- 모교인 삼향북초등학교와 목포홍일고등학교에 방문하여 강연하였다. #
- 부하사랑을 몸소 베푸는 덕장으로서 평소에는 잘 웃고 농담도 잘 할 정도로 격 없는 소통을 좋아한다. 다만 실전과 같은 전투지휘훈련 등에 돌입하면 명확한 지침하달 등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 여느 배 나온 장군들과는 달리 평소 운동을 좋아하여 군인다운 체력과 날렵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 간혹 위병소 근무자 및 공관 주변을 정비하던 본부근무대 장병들에게 고생한다며 피자나 치킨, 손수 내려준 커피를 제공하며 서프라이즈를 보여주기도 했고 항상 부하들의 복지 및 여건보장 등에 관심이 많아 부대 내 시설 개선 사업들도 많이 추진하였다.
- 2023년 2월 28일, 37년 간의 군생활을 뒤로하고 명예롭게 전역함과 동시에 보국훈장 국선장을 수여받았다.
- 예비역 중장이 되면서 육군참모총장 직속기관인 육군 정책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육군정책연구위원회는 장군 출신으로 구성된 10여명의 인원이 육군의 정책을 발전시키기 위해 구성된 일종의 태스크포스(TF)다.
- 연대장 시절 부하들에게 '진짜 군인'이 될 것을 강조했으며 그래야만 '지금 당장 싸워도 이길 수 있는 부대가 된다'고 설명했다. 확고한 대적필승의 정신무장을 바탕으로 최고 수준의 전투준비태세를 완비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실전적이고 효과적인 교육훈련, 전투체력 구비, 전투실상을 고려한 전술훈련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전 부대원간의 형제 같은 전우애, 상호 간의 신뢰, 골육지정 정신 등을 강조했다.
5. 관련 문서
[1]
석사 학위 논문:
군 조직의 리더십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 (2001)
[2]
참모장 시절
김병주(육사 40기),
김승겸(육사 42기) 장군이 군단장으로 재임했다.
당시 일화
[3]
전임자
이상호, 후임자
김규하
[4]
작전부장과 더불어
김성진,
이창효,
박양동 장군 등 중장 진급자를 많이 배출하고 있다. 특히 비육사의 요직으로 유명하다.
[5]
전임자
박양동, 후임자
박원호
[6]
이로써 3사 23기는
허강수와 정철재, 2명의 중장을 배출하였다. 보통 비육사는 출신별로 기수당 중장이 2명 이상 나오는 경우가 드물다. 옛날 3사 10기의
박성규 대장-
오정석 중장, 14기의
이순진 대장-한동주 중장이 배출된 적이 있다. 참고로 3사 14기는 항공작전사령관을 포함 사단장을 5명 배출한 기수이기도 하다. 단 이렇게 진급할 경우 인사적체가 생겨 다음 기수가 중장
T/O를 받지 못하는데다 추후 대장 진급에 있어 임관동기들 간에 진급 경쟁이 치열해진다. 함께 중장에 진급한 인물들은 모두 육사 45기에서 4명(
강건작,
전동진,
안병석,
이정웅)을 배출했으며 학사 11기(육사 44기와 임관동기)의
소영민 소장이 진급했다. 그리고 정 중장 본인 역시 소위 임관 후 2년간 학사학위
위탁교육으로 인해 사실상 전임 군단장인
박정환 중장(육사 44기)과 임관동기로 간주된다. 이로 인해 육사 45기와 동기급인 3사 24기의
방성대 소장과 학군 27기의
신희현,
권영현 소장은 진급하지 못했다. 신희현 소장은 2021년 12월 인사에서 중장 진급 및 제3군단장 임명이 발표됐다.
[7]
취임 다음날인 12월 8일 예하
제7보병사단장의 이취임식을 주관하였는데 이임 사단장인
박원호 소장(육사 46기)이 본인의 후임 합동참모본부 민군작전부장으로
영전하게 되었다.
[8]
전임자
박정환, 후임자
장광선
[9]
후임자
강건작
[10]
김태일 소장과는
제3군단
참모장 전후임 사이이기도 하다.
[11]
1차 진급 대상자 시절 맡은 육본 과장, 2차 진급 대상자 시절 맡은 군단 작전참모 모두 진급 가능성이 높은
요직으로 손꼽히고 업무량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보직자는 이 자리에서의 업무 수행이 진급을 좌우한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12]
44주간 국내외 안보정세와 국가 안보전략, 국방정책, 전쟁과 군사전략, 국가·국방 자원관리 등을 학습하며 국가안보전략 및 정책관리능력을 배양하는 과정으로 군인, 공무원, 일반인 대상으로 개설한다.
[13]
방원팔 사단장 이후의
이승도(3사 17기), 이한기(육사 41기),
이상호 사단장은 소장 전역하였으며, 본인 이후의
김규하, 김호복 사단장 역시 중장 진급에 성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