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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00000><colcolor=#fff> 김응렬 |
|
출생 |
1928년 5월 강원도 고성군 |
사망 | 2024년 3월 3일 (향년 96세) |
직업 | 군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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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자 제24대 2군단장.2. 생애
1928년 5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태어나 1944년 중국에 있던 일본군 예비사관학교를 나와 38선 이북에 있던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1947년 말 월남했다.1948년 하사관교육을 받은 뒤 조선경비대(국군의 전신) 7연대 중사로 입대했고, 6·25 전쟁 중 육군제병학교(1기)를 거쳐 중대장으로 동해안진격작전·백암전투·원산 탈환작전 등에서 전공을 세웠다.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육군 36사단장,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 육군대학 총장, 1982∼1984년 제2군단장, 육군교육사령관을 지낸 뒤 1986년 예편했다. 2군단장 때 북한의 공격로를 차단하기 위해 비무장지대 부근에 쌍용댐을 건설했다.
1983년 중공 여객기 불시착 사건 당시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중국은 1953년 휴전 후 한국과 공식 접촉한 적이 없었지만, 비행기 승객 중 미사일 전문가를 구해내려고 적극 협상에 임한 덕분에 양국 간에 외교 전문이 오갔다. 승객은 모두 중국으로 돌아갔고, 납치범들은 한국에서 복역 후 대만으로 추방됐다. 이에 대한 답례로 중국은 사건 다음 해 1984년 공산권 국가 중 처음으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참가를 선언했다.
2024년 3월 3일, 향년 96세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