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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4 11:39:30

박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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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동
Park Yang Dong
파일:박양동 군수사령관.jpg
학력 금오공업고등학교 (졸업)
금오공과대학교 (공학 / 학사)
임관 학군사관 (26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88년 ~ 2022년
최종 계급 중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군수사령관
주요 보직 제6군단
합동참모본부 민군작전부장
제39보병사단
수도방위사령부 참모장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장
합동참모본부 특수전과장
제3군단 교훈참모
제12보병사단 참모장
제12보병사단 제52보병연대
제2보병사단 제32보병연대 제2대대장

1. 개요2. 생애3. 주요 보직4. 여담
4.1. 위관급 ~ 소령 시절4.2. 중령 ~ 대령 시절4.3. 장성급 장교 시절
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중장, 최종 보직은 육군군수사령부 사령관이다.

2. 생애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으로 해리중학교(27회)를 졸업하였다. 군 가산복무 지원금 지급 대상자 금오공업고등학교(9회)와 금오공과대학교(84학번,기계공학전공)[1]를 졸업하고 1988년 학군사관 26기로 임관하였다. 병과는 보병이다.

3. 주요 보직

4. 여담

4.1. 위관급 ~ 소령 시절

4.2. 중령 ~ 대령 시절

4.3. 장성급 장교 시절

5. 관련 문서



[1] 참고로 금오공대는 당시 육해공군 ROTC가 설치된 유일한 대학이었으며 현재는 현역 장성을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군단 중 하나이다. 현재 까지 해당 출신으로 가장 최고 계급은 육군은 박양동 중장, 해군은 박재갑 예)소장( 안보지원사 참모장), 공군은 이동원 예)소장(전 방공유도탄사령관)이며 현재는 금오공고RNTC와 금오공대ROTC 연계제도가 금오공고의 공립화로 없어져 금오공대는 육군 ROTC만으로 편성되어 있다. [2] 대대장이 마치 상병처럼 일이병을 갈군다고 이 당시 별명이 박상병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KCTC훈련에서 역대급 성과를 내서 제1야전군사령관 표창을 수상하였다. 요즘은 KCTC훈련 준비 및 시행자체가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만큼, 거진 참모총장, 지작사령관급 표창을 준다. [3] 연대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연대 참모, 사단 참모부의 실무자들이 업무가 미진할 시 갈굼을 자행했다. [4] 계엄령 문건 당시 재임중이었다. 다행히도 직속상관이었던 구홍모 전 육군참모차장이 反알자회성향이라서 휘말리지 않았다. [5] 전임자 문병호, 후임자 박안수 [6] 전임자 김종철, 후임자 정철재 [7] 강창구, 김현종, 박정환, 허강수 소장과 함께 중장으로 진급하게 되었다. [8] 취임식 사진1 사진2 [9] 전임자 김성일, 후임자 강건작 [10] 전임 사령관이였던 황대일 중장과 마찬가지로 非군수직능으로서 군수사령관으로 취임하였다. [11] 전임자 황대일, 후임자 엄용진 [12] 이는 용사들에게 휴식 시간을 부여하지도 않고 휴가도 주지 않으면서 돼지풀 뽑기만 지속하여 강요한 원홍규(3사 16기) 예) 소장과 다를 게 없다. 원홍규 장군도 평판이 매우 나빴는데, 지휘 능력과 성과 또한 전·후임 지휘관들보다 못했다는 예비역들의 증언이 말해준다. [13] 임관 후배인 이우헌 장군(육사 50기)은 업무상 장군 운전병이나 전속부관이 교육훈련과 본연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짧은 거리로 차를 운전할 때는 본인이 직접 몰았다. 이 경우는 본인 밑에서 직책을 수행하는 휘하 장병들에 대한 배려심 차원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휘하 장병으로부터 평가가 좋았다. [14] 박양동 장군의 경우는 배려심 따위는 접어치우고 본인 독단으로 한 경우여서 1호차 운전병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15] 실제로 강건작 장군은 28사단장 시절에도 전임자 윤의철 장군이 없앤 포상휴가를 도로 복구시켰다. 해당 포상휴가들은 김승겸 사단장 시절에 만들어졌던 것들이다. 강건작 장군 외에도 육사 40기 출신 구홍모 장군의 사례도 있는데, 구홍모 장군 역시 전임 7사단 원홍규 장군이 없앤 포상휴가를 도로 복구시켰고 지휘 능력도 좋아서 중장 진급에 성공했다. [16] 허강수 장군 역시 구홍모, 강건작 장군처럼 덕장으로 평가받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전임 7군단장이던 윤의철이 없애버린 포상 휴가를 도로 복구했고, 군단장 재임 중 발생했던 중공발 코로나19로 휴가, 외출, 외박을 다녀오지 못한 용사들에게 1박 2일의 외박을 부여하여 좋은 평판을 받았다. [17] 이것에 대한 썰이 있는데, 코로나19 당시 지작사령관 안준석 장군 주재로 회의를 진행했다. 그때 박양동 장군을 위시한 6군단 수뇌부가 격리할 정도로 6군단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고 장병 격리장소가 부족하니 가까운 7군단 시설을 협조하겠다고 했다. 안준석 장군은 7군단에게 괜찮겠냐고 했고, 7군단장 허강수 장군은 어쩔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삔또상했는지, 다른 군단장들이 애로/건의사항을 주저리 이야기할때 혼자 무표정으로 X표식만 들었다. [18] 본인의 임관 선배인 원홍규, 윤의철 장군은 본인의 업보에 대한 반성마저도 하지 않았다. 결국 원홍규 장군은 중장 진급에 실패했고, 윤의철 장군 또한 대장으로 진급하지 못했다. [19] 참고로 엄용진 장군 또한 50사단장 시절 평판이 좋아서 중장 진급에 성공할 수 있었다. [20] 해당 인사에서 본인의 임관 동기인 육사 44기 박정환 장군이 대장 진급과 동시에 합동참모차장에서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