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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20:08

저도(서진)

진서(晉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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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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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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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褚陶
생몰연도 불명

삼국시대 오나라 및 서진의 인물. 자는 계아(季雅). 양주 오군(吳郡) 전당현(錢塘縣) 출신. 저소손의 후손.

2. 생애

어린 나이에도 또래들과 달리 노는 것을 즐기지 않았고, 성격도 과묵하고 담담하며, 총명하고 지혜로워 홀로 분전(墳典)을 읽는 것을 좋아하였다. 저도가 13살에 불과한 나이에 〈구조〉(鷗鳥), 〈수애〉(水磑) 두 부(賦)를 지으니, 사람들은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또, 저도는 항상 친구들에게 이르길
"성현(聖賢)은 책 안에 갖추어져 있거늘, 이를 버리고 무엇을 구할 수 있겠는가!"
라 하였다.

엄은이 그를 비범하다고 여겨 저선생(저소손)이 다시 출현했다고 말했다.

주와 군에서 저도를 불러 관리로 삼으려 했으나 저도는 응하지 않았다. 오나라가 진나라에게 평정되자 이번에는 진나라 조정의 부름을 받고 상서랑에 제수받았다.

장화가 저도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는데, 저도가 등용된 것에 대해 육기, 육운은 강한에서 뛰는 용, 고영은 조양에서 우는 봉황이라고 했으며, 지금 이후로는 남방의 황금(남방의 인재)들이 이미 바닥난 것이라 걱정했지만 다시 그대(저도)를 얻어 계찰의 덕이 외롭지 않고 산천의 보물이 없어지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 건충도위, 구진태수(九真), 중위(中尉)를 역임했고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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