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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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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2e59><colcolor=#fff>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장하성
張夏成 | Jang Ha-seong
파일:ZA.17627246.1.jpg
출생 1953년 9월 19일 ([age(1953-09-19)]세)
전라남도 광주시
(현 광주광역시)
거주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본관 인동 장씨[1]
재임기간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2017년 5월 21일 ~ 2018년 11월 9일
제13대 주중화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
2019년 4월 8일 ~ 2022년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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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2e59><colcolor=#fff> 가족 3남 2녀 중 장남(둘째)
부인, 슬하 2남
장하진 (누나), 장하준/ 장하석 (사촌)
학력 광주서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 경영학 / 학사)
뉴욕 주립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사)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박사)
병역 면제 (요추궁결손 후유증)
약력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장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
한국재무학회 회장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정책네트워크 내일 소장
한국금융학회 회장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 문재인 정부)
제13대 주중대사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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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집안 내력3. 생애
3.1. 장하성 펀드3.2. 청와대 정책실장
3.2.1. 관련 문서
3.3. 정책실장 퇴임 이후3.4. 주중대사
4. 논란5. 여담6. 저서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경영학자, 전 정무직 공무원.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출신으로, 2017년 5월 21일부터 2018년 11월 9일까지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으로 봉직했다.

주요 활동분야는 대기업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즉 소수 재벌가의 경영권 독점 해소다. 지난 1997년 삼성 주주총회에서 주목을 받았고, 같은 대학교의 이필상 교수와 함께 대표적인 재벌기업 비판론자로 유명하다. 소액주주 운동으로 인해 본인의 재산 대부분이 대기업 주식이 되었다.[2]

2. 집안 내력

파일:external/magazine.hankyung.com/d519aa41452f263647fa25a47551a31a.jpg

그의 증조부 장진섭(張鎭燮)은 인동 장씨 함평파로 구한말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도 일대 염전과 논밭을 가진 만석꾼 부호였다. 1915년쯤 육지로 나와 광주에 자리를 잡았고, 일찍부터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식들을 외지로 유학 보냈다. 그의 조부 장병상(張柄祥)은 장진섭의 둘째 아들로 서울 보성전문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메이지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국내에서 철도공무원을 했지만 독립운동을 하던 형과 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다 수차례 일본 경찰에 끌려다녀야 했다. 해방 후에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선거에 저항하다가 테러를 당해 후유증으로 일찍 죽고 말았다.

장하성 교수의 부친 장충식(張忠植)은 장병상의 둘째 아들로 서울대학교에서 화학공학 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은행에 재직하다가 전라남도 도의원, 후지필름 사장 등을 지냈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장충식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에 재학 중이었는데, 국군으로 참전하여 인민군과 싸웠다고 한다. 아버지 장병상이 "전쟁 났으니 나가 싸워라"하고 자식들에게 엄명을 내렸다고... 결국 압록강 전투에서 중공군 기관총에 어깨 관통상을 입어 상이용사가 되었다고 한다.

장하성의 나이 여덟 살 때에는 4.19 혁명이 일어났다. 그때 장하성의 아버지 장충식과 어머니 민난식(閔蘭植)[3]은 데모에 적극적으로 참가했다고 한다.[4]

조부 장병상(1899 ~ 1958)의 형제들 (장하성의 작은할아버지/큰할아버지들)은 다음과 같다.
아버지 장충식의 형제들 (장하성의 숙부들)은 다음과 같다.
장하성의 형제들은 다음과 같다.
사촌 장하준은 10살, 장하준의 친동생인 장하석은 14살 어리다.

3. 생애

1953년 9월 19일 전라남도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에서 아버지 장충식과 어머니 여흥 민씨 민난식 사이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3년 경기고등학교(69회)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1978년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 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를 했고,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1990년에는 미국 휴스턴대학교 재무학과 교수로 일했고, 1990년 귀국하여 모교인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 후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면서 소액주주운동과 장하성 펀드 등으로 명성을 떨쳤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한국증권학회 이사, 고려대 경영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18대 대선에서 안철수 당시 후보를 지지하며 정책네트워크 내일 소장으로 활동했다. 정책 전반을 관리하는 등 안철수의 멘토 역할을 자처했다. 대선이 끝난 후, 문재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제안했으나 정치를 하지 않겠다며 거절했다.

강남좌파의 대표적 예시로 꼽힌다. 상술했지만 명문가 태생으로서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로 밝혀진 재산이 104억으로 문재인 행정부 1등이다.[6]

3.1. 장하성 펀드

장하성이 가장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장하성 펀드탓이었다. 2000년 중후반 대한민국을 강타한 펀드중에 하나였다.

애초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유명한 학자였다. 자신의 신념을 따라 대기업을 줄기차게 비판해온 인물이었는데 행동으로 그러한 신념을 옮긴 결과물이 장하성 펀드였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태광그룹 계열의 태광산업에 소액주주로서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고, 합의에 이르는 등의 성과[7]도 일부 있었으나 태광 측 돌변으로 주주대표 소송에 착수하는 충돌이 이어졌다. 장하성 펀드의 사례로 태광그룹을 택한 것은 나름의 선견지명이었던 것이 "재벌 총수의 황제 보석 사건"" 태광산업 방폐물 불법 보관 사건", "총수 일가 김치 강매 사건" 등 근래에도 가장 문제가 많은 대기업으로 눈총을 받았다.

물론 장하성 펀드가 유야무야된 현재는 기억하는 사람도 적지만 당시의 반응은 이랬다. "청렴결백한 학자가 대한민국의 뿌리부터 썩은 기업구조를 뜯어고치기 위해 나섰다."라고.. 다만 펀드를 운영하기 위해 운용사로 선정된 곳이 미국의 헤지펀드인 라자드였다. 사실 국내의 펀드운용사들에서 이러한 대기업들을 적으로 돌리는 말도 안되는 펀드를 하자는 제안을 넣어봤자 안 할 것이 뻔하여 헤지펀드와 손잡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였고 이는 매우 타당한 설명이었다. 다만 헤지펀드라는 것의 목적이 돈만 벌면 발을 빼는 게 일반적인 관행인 가운데 장하성 본인은 라자드가 오랫동안 대한민국에 투자할 것이라면서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지만, 10년 갓 지난 지금 라자드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당시 이름은 라자드 한국기업 지배구조 개선 펀드였지만 속칭 '장하성 펀드'라고 하면 잘 알려졌었다.

여하튼 그 당시에 장하성은 장하성 펀드의 펀드 기금의 운용고문을 가장한 실질적인 펀드매니저로 활동했고, 언론과의 대화도 꺼리낌 없었다.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을 통해 착실히 수익률을 올리겠다는 이상적인 펀드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한데, 장하성 펀드가 샀다하는 소문이 나면 일제히 주식가격이 폭등했다. 덕택에 장하성 펀드에 투자한 사람 중에는 정말 순수한 신념을 따라 '소액주주의 권리 보호 및 지배구조 개선에 나도 한몫 하겠다는 마음'으로 투자한 투자자들도 미쳐 날뛰어 수익률에 눈이 먼 경우도 많았다.역시 돈이 제일 무섭다 그러다보니 경쟁적으로 펀드에 가입하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펀드의 덩치는 불어갔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장하성이라는 이름의 약빨이 줄어들면서 수익률이 낮아지고 유야무야 펀드 가입기간이 만료된 사람들이 나가고 지배구조 개선이 불가능한[8] 종목에 투자하는 등 기대했던 방향과 매우 다르게 나아갔다.

라자드에서는 사실상 펀드매니저를 장하성으로 인정해놓고 장하성 펀드가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자 '그의 조언을 받았지만 투자종목을 정하는 것은 펀드 운용 매니저들의 전적인 권한'이라고 하였고 장하성 역시 '펀드에 편입된 모든 종목을 내가 동의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펀드의 운용자체 어드바이저인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로 발을 뺐다.

결국 이후 말한 대로 장하성 펀드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현재 라자드는 대한민국에 투자 자체를 하지 않고 있다. 사실, 이는 본질적으로 칼 아이칸이나 앨리엇 매니지먼트 같은 행동주의 펀드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그들은 주로 지배구조가 약한 기업의 지분을 일정 수준 이상 매입한 뒤, 주주 이익 확대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워 배당을 높이거나 주가를 부양하라는 등의 요구를 하는 등 약탈적 투자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게 주 목적인 펀드다. 기업 본연의 성장인 매출과 순이익 증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분명히, 한국의 재벌 중심 구조는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이는 오너들이 자신들이 지배하는 기업의 위상을 이용해서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게 문제일 뿐, 순환출자든 지주회사든 이사회와 노동조합이 제 역할을 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다만, 자신들이 경영하는 그룹에 대한 오너들의 지분이 미미하지만 이들을 대체해서 기업 경영의 주도권을 쥘 만한 국내자본이 미약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들에게 준법 경영 등을 요구하는 조건으로 차등의결권을 부여하는 식의 딜이 필요한데, 이걸 시도하는 정치세력들은 반대파들에게 '재벌과 결탁한다.'라는 공격을 당하기 딱 좋기 때문에 아무도 시도하지 않고 있다. 결국, 정치권의 역량이 문제의 근원이자 답인 셈.[9]

3.2. 청와대 정책실장

2017년 5월 21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으로 임명되었다. 처음으로 임명된 공직으로, 안철수 측의 인물을 끌어안음으로 통합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 측은 인선 배경으로 "한국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 온 유능한 경제학자"라며 "해박한 이론을 바탕으로 경제력 집중 완화와 기업지배구조 개선 운동을 해 온 경험과 경륜 높이 평가"했다. 정책실장은 경제부총리,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고용노동부장관, 금융위원회 위원장 그리고 국토교통부장관이 갖지 못하는 경제정책 간언권과 경제계 인사권을 가져 같은 장관급이라도 권한이 크다. 즉 대통령의 지근에 위치하는, 경제, 노동, 사회 부문의 실세라고 할 수 있다.

인선 발표 당시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과는 깊은 인연이 없었다며, 세 차례 전화 통화 끝에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10] 특히, 정부 출범 이후의 인사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고, 변화를 일으키고자 하는 의지와 대통령의 말에 마음이 흔들렸다고 소회를 밝혔다.

2017년 5월 25일, 원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옆자리가 부담스러워 자리를 옮기려다 실패했다. 대체적으로 청와대에선 대부분 대통령 옆자리는 부담스러워한다고.

파일:00027.gif

2017년 7월 3일 한미정상회담에 관하여 청와대에서 자세한 논의과정을 공개하였는데, 장하성 실장이 회담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양측에서 FTA에 관하여 구체적 수치를 언급하며 격렬한 설전을 벌이면서 분위기가 경색되자, 장 실장이 직접 영어를 사용하며 설명을 했고, 이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장 실장은 와튼 스쿨을 나온 동문이라며 아주 현명하신 분이라고 농담을 던지면서 분위기가 풀렸다는 것. 11월 7일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공식 방문했을 때도 장하성과 김현종 서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신의 누나인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장관도 문재인 정부에서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청와대 경제팀 인사들 중에서 가장 파워가 센 사람으로 꼽힌다. 한국경제신문이 경제정책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큰 인사에 대해 질문했더니 전문가 140명 중 62명이 장하성 실장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고 응답했다. 2위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으로, 24명이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응답했다. 그에 비해 장 실장의 직무수행 평가는 경제팀 10명 중 5위에 불과했다. #

시중에서는 2018년 7월, 8월 취업자 수 증가폭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000명, 3000명에 불과[11]하는 등 월평균 취업자수가 예년 대비 1/100 이하인 참사 수준으로 악화된 경제 상황에 대해서 김영주 고용노동부장관과 더불어 경제 상황에 책임이 가장 큰 사람으로 지적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영주 장관의 경질을 요구했다. 실제로 무분별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12]

2018년 11월 9일, 자리에서 물러났다. 후임은 김수현 사회수석이 맡게 되었다.

3.2.1. 관련 문서

3.3. 정책실장 퇴임 이후

2019년 2월 26일 고려대학교 LG-포스코 경영관에서 정년 퇴임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저는 이상주의자"고 고백했다. 사실상 자신이 주도한 소득주도 성장론이 이상주의적인 정책임을 인정하는 발언으로 해석되었다. 또한 앞으로 현실 정치와 선을 긋고 살겠다며 시민단체 등에서 활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

3.4. 주중대사

2019년 3월 1일 주중대사로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기존 주중대사였던 노영민은 대통령비서실장이 되어서 공석인 상태이다. 외교 전문가가 아닌 경영학자 출신이 주중대사로 유력한 것을 두고 북한,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해당 인사를 둘러싸고 중국 관련 전문성 및 청와대의 인사 돌려막기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2019년 3월 29일, 주중대사에 정식으로 임명됐다.

2020년 1월 신종 코로나가 중국에서 발생하자 주중대사로 현지를 총지휘해야 할 책임이 있으나 어떠한 공식적인 일정이나 입장 표명이 없어 부실 대응으로 중국 교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2020년 2월 16일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관련 "중국의 어려움은 한국의 어려움"이라고 인민일보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보냈다. 반면 2월말, 우리나라에 예상외로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중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한 것에 대해 2월27일 현재 이렇다할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물론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되어 아무 언급도 못했을 수도 있으나 외교부 장관인 강경화 장관이 2020년 2월26일 밤 중국의 왕이외교부장에게 유감을 표시한 것과 대비되는 부분.

4월 20일에 장하성 대사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우한(!)에서 한중교류행사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

7월 27일에 장하성 대사는 중국이 유학생과 취업자, 유효한 거류증이 있는 교민 등 3개 그룹에 8월부터 비자를 발급해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

2022년 6월 22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예방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3년이 넘는 주중대사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였다.

4.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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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6.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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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장군 금용(金用)계 함평파 25세 하(夏) 항렬. 인동 장씨 30세. # [2] 자산이 100억원에 가깝고 이 중 절반은 대기업 주식이다. 문재인 내각에서 가장 자산이 많다. [3] 전라남도지사를 지낸 민영남의 딸이다. [4] 그 때문인지 그의 어머니 민난식은 지금 4·19묘지에 묻혀 있다. [5] 기존 편집본에 경성의전(서울의대의 전신 중 하나)을 나왔다는 서술이 있으나 오류이다. 서울대학교의 전신 학교 졸업생까지 모두 확인 가능한 서울대학교 인명록에 이름 없음을 확인함. [6] 2등은 윤석열 검사로 64억 7195만 원. 3등은 조국 민정수석의 43억 8981만. 하지만, 본인은 세상에서 제일 못난 사람이 돈 자랑하고 집안 자랑하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집안 얘기 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7] 태광그룹, 장하성펀드와 지배구조 개선에 합의 [8] 이미 대주주가 50%넘는 지분을 장악하고 있어서 뭔 짓거리를 해도 불가능한... [9] 오너가 회사를 상장한 뒤 50프로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편법증여 등을 하지 않고 정당하게 상속세를 낸다면 손자에 이르러서는 10프로 정도의 지분만 남게 되고 이런 현실에 외국계 행동주의펀드가 개입하면 우량 국내기업이 해외 투기자본에게 넘어가는 국부유출의 결과로 이어지기에 결국 나라가 기울게 되는 것.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 유니더스나 락앤락 등 시장점유율이 높은 국내 우수 강소기업들이 상속 문제로 중화권 자본에 넘어갔다. [10] 이때 수강생의 말에 따르면, 장 교수가 직접 수업에서 밝힌 바로는 처음 두 번은 전화상의 권유였고 마지막 세 번째 전화에서 직접 찾아가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진심을 느껴 정책실장 자리를 수락했다고 한다. 단, 조건을 한 가지 달았는데 당시 맡고 있는 수업이 있으므로 아무리 바쁜 회의나 일정이더라도 이 수업시간만큼은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회의 도중에 수업을 위해 퇴장한 적도 있었고 결국 이 수업을 무사히 종강하였다. [11] 이마저도 통계청에서 2500명을 반올림하여 3000명으로 발표했다. # [12] 물론 요식업종 폐업률은 정권과 관계없이 매년 90%에 육박한다는 통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