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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언어를 비교언어학적으로 분류할 때 쓰는 어족의 하나로 일본 열도에서 쓰이는 언어들이다. 일본어와 류큐어를 대등하게 취급하고자 할 경우, 일류어족(Japanese-Ryukyuan languages)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에는 일본어와 류큐어가 속한다. 또 본토 일본어와 소통이 힘든 하치죠 방언을 별개 언어인 하치죠어로 놓고 여기에 포함시키기도 하며, 류큐어를 단일 언어가 아닌 언어군으로 봐서 류큐어파로 분류하고 산하 방언들인 오키나와어, 미야코어, 야에야마어 등을 독립된 언어로 보기도 한다.일본어는 흔히 고립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류큐어와 묶어서 이렇게 독립된 어족을 형성한다고 보는 시각이 보통이다. 일본어족이라는 용어는 미국의 일본학자이자 언어역사학자인 리온 세라핌(Leon A. Serafim)이 고안하였다. 일본어의 계통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었고,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가설이 한때 설득력을 얻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 이들 언어들이 어족을 형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마련되지 못하여서 현대에는 그냥 독립된 언어/어족으로 여겨진다.
일본 열도에서 사용되기는 하지만 아이누어는 일본어족의 언어가 아니다. 계통상 아이누어는 일본어족과 거리가 먼 고립어로 분류되며, 이들의 조상 중 일부인 조몬인들이 현대 일본어에 어느정도의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있어도 직계는 야요이인이 유력하다.
문증이 가능한 가장 오래된 일본어족 계통 언어로 된 사료는 고대 일본어로 기록된 시집인 만요슈인데, 상대 일본어 시기[1]의 한국어- 일본어 간의 어휘 및 문법 요소의 차용 과정을 분석하거나, 이를 통해 고대 한국어를 재구하는데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이용된다.
2. 기원
일본어족의 원향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이 있는데, 종래에는 일본 최초의 국가인 야마타이국이 규슈에서 발원했다는 점을 근거로[2], 그곳이 원향일 거라고 추정한 학자들이 많았다. 때문에 한때는 현대 일본인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야마토 민족의 조상 민족인 야요이인이 한반도에서 기원한 이들이라는 점과 엮어서, 일본조어를 고대 한국어와 아이누어 사이에서 형성된 크리올어로 보는 가설도 있으며, 알렉산더 보빈이 제안한 반도 일본어설에 따라, 한반도 중남부를 원향으로 간주하는 경향도 있다.여기에 더해서 좀더 급진적인 가설도 있는데, 반도 일본어설을 주장한 알렉산더 보빈 본인이 중국의 남부 지역을 일본어족의 원향이라고 주장한 것이 그것이다. 보빈이 추가적으로 추측한 바에 따르면 일본어족의 조어는 한반도에 넘어온 것보다도 이전에는 근본적으로 중국 대륙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있다.[3] # 물론 중국티베트어족과 연관있다는 소리는 아닌데, 중국티베트어족 계통의 언어들은 선사 시대에는 그렇게 넓은 지역에서 쓰이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본래 고대 중국 동남부에는 크라다이어족 등이 넓게 분포해있다가 중국어가 확장되면서 기층(substrate)언어로써 동화되어 사라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사실 소위 '남방언어'들과 일본어 사이에 비슷한 점이 많다는 지적은 옛날부터 있어서, 크라다이어족은 물론이고, 오스트로네시아어족, 오스트로아시아어족 등등까지 묶어서 남방어족(Austric languages)라는 대어족 가설을 세우는 소수 학자들이 있었다. 다만 보빈은 이걸 부정하면서도 크라다이어족과 일본어족은 서로 별개의 어족이기는 하나 고대에 가까운 지역에서 사용되었기에 접촉에 의해 어휘나 문법요소가 가까워졌을 수 있다며 중국어파 확장 이전의 선사시대 중국 동~남부쯤에서 일본어족의 조어가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다만, 이 가설은 아직 주류 학계에서 회의적으로 보며, 보빈 본인도 가능성이 높은 설은 아닌 것으로 보고있다.
2021년에는 한반도 중남부보다 더 앞선 일본어족의 기원지로 요서 지방이 지목되고 있다. 당해 11월에 네이처 지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일본어족을 포함해 한국어, 몽골어족과 퉁구스어족, 튀르크어족의 조상 민족들이 기원전 7000년 경에 만주 서부 지역에서 기장을 이용한 농업에 종사하던 농경민들에서 기원했다고 하는데, 이들이 농업의 전파 과정에서 동북아시아 각지로 퍼지면서, 각자 언어군의 공통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해당 논문[4] 이로 미루어보면, 알렉산더 보빈이 일본어족의 근본적인 원향이 중국의 중남부라고 지적한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만주가 원향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보빈이 주장한 반도 일본어설과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고구려어에 일본어와 동계어로 추정되는 어휘가 많이 보이는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이 가능해진다.
이와는 별개로 일본어족의 원향이 일본 열도라는 설이 다시 제안되기도 했다. 2020년에 네덜란드의 언어학자인 조르주 판 드리엄[5]과 인도의 인류학자인 갸네시와르 차우베이도 별도로 같은 가설을 제안했는데, 똑같이 일본 열도를 원향으로 보는 다른 학설과의 차이라면, 기존 학설들은 규슈를 원향으로 보는데 반해, 이 설에 의하면 혼슈가 원향으로 비정된다.
그 밖에 타밀어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였던 일본의 언어학자인 오노 스스무가 일본어족은 물론, 한국어까지 전부 드라비다어족에 속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으나, 그 근거가 일부 유사한 발음을 가진 어휘들을 동계어라고 주장하는 등의 무리한 끼워맞추기가 많아서, 학계에서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 여기서 드라비다어족을 제외하고 일본어족과 한국어를 동계로 보는 주장도 미국의 생물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에 의해 제안되었고, 알타이어족 가설 및 이 학설의 확장판인 우랄알타이어족 가설에 근거해서, 일본어족과 한국어를 전부 우랄어족이나 다른 알타이 제어와 동계로 보는 학설도 있었으나, 주류 언어학계는 이들 주장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고있다.
2.1. 반도 일본어설
한국어족은 그들이 기마술을 배운 내륙 아시아(한국 건국 신화들에서 볼 수 있듯 아마 중남부 만주일 것이다.)에서 왔을 것이라 믿는다. 많은 반대되는 주장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언어는 한강 유역과 그 남쪽에 살던 사람들의 언어와 계통적 연관성이 없었다. 이들은 쌀을 재배하는 농경민족이었는데, 칼과 창을 든 보병력으로 북쪽에서 내려온 장갑기병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두 가지 선택, 곧 새로운 지배자를 받아들이든지, 혹은 수평선 너머의 섬(일본 열도)으로 이주하든지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대부분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 일본어족의 후퇴는 그리 빠르고 즉각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은 또한 한국어는 원래 내륙아시아의 무기에 익숙한 기병을 가지고 한반도에 들어온, 한반도 중남부에서 일본어를 말하던 농경민족을 예속시킨 침입자의 언어였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 알렉산더 보빈, 고구려에서 탐라까지 (2013). #
이것은 또한 한국어는 원래 내륙아시아의 무기에 익숙한 기병을 가지고 한반도에 들어온, 한반도 중남부에서 일본어를 말하던 농경민족을 예속시킨 침입자의 언어였다는 가설에 힘을 실어준다.
- 알렉산더 보빈, 고구려에서 탐라까지 (2013). #
외국의 학자 중에 일본어와의 연관성을 주장하는 학자로는 미국의 크리스토퍼 벡위드(Christopher I. Beckwith)라는 학자가 있다. 벡위드는 『고구려어 - 일본을 대륙과 연결시켜 주는 언어』라는 책을 통하여, 일본어와 고구려어를 '부여어족'이라는 동계로 놓고 한국어는 철저히 떼어놓는 주장을 했는데,[6] 여기에서 그는 고구려어와 한국어 간의 유사성과 한국어와 일본어 간의 유사성은 단순한 차용으로 보고 기존 학설을 비판했다.[7] 또한 일본어와 오스트로네시아어족 간의 영향마저도 무시했다. 이러한 이유로 국어학자인 정광 선생에 의해 번역 출간되면서 대차게 까였다. 한편, 일본어와 알타이어간의 연관성을 찾는 일본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일본어족설을 만주~한반도에 거주하던 민족이 일본에 건너가 그곳에 영향을 끼친 증거로 보나 일본에서는 반대로 한(韓)계의 신라어와 부여계의 고구려어를 분리해 놓고, 신라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 저명한 언어학자인 이기문 교수도 신라어와 고구려어가 상당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어쩌면 한일 양국어의 유사점은 고구려어 및 부여어계(부여·백제)를 매개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고구려어와 일본어의 유사성에 대한 주장을 일본에서 주장하는 억지 주장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있는 편이지만, 사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펼치면서 고구려어와 일본어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자들이 학계에 존재한다. 단지, 위에 서술되었듯이 중점으로 삼는 것이 한국에서는 민족인 반면 일본에서는 언어인 것. 즉, 일본에서는 민족 부분은 짧게 서술하고 넘어가고 언어를 중점으로 다루지만, 한국은 반대로 언어를 짧게 서술하고 민족 부분을 중점으로 서술한다.
동아시아의 여러 언어의 권위자로 유명한 러시아계 미국인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Alexander Vovin)은 여러가지 연구를 통해 고구려의 관직명, 지명 등에서 한국어와 연관된 단어들이 보이며[8] 고대 한국어는 만주 지역의 민족들이 쓰던 언어가 점차 한반도로 남하하여 형성된 언어라는 가설을 내세웠다. 그는 한반도 중남부의 지명들이 일본어와 유사한 면이 보인 점에서 원래 한반도 중남부에는 일본어계 언어의 사용자들이 있었는데, 점차 고구려어가 남하하여 퍼지면서 한반도 중남부의 일본어를 밀어내고 한국어가 형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원래 제주도를 가리키는 말이었던 탐라는 일본어인 타(田)+무라(村) 혹은 타미(民)+무라(村)에서 유래했다고 한다.[9] 또한 일본어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있던 건 오히려 초기 신라어이며 이마저도 삼국시대 중후기를 거치며 삼국의 언어 모두가 유사한 모습으로 수렴하였다고 한다. 탐라라는 국명은 신라에서 하사한 것으로 본래 '탁라'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오늘날의 정설이다. 하지만 탐라국은 신라에 입조하기 전부터 이미 탐라라는 국호를 사용하였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백제 문주왕 2년(476년)이다. 탐라라는 이름 자체의 기원은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보빈의 가설에 따르면 한반도 남부에 일본계 고대 종족이 일부 존재했다고 추정하며, 김부식(고려시대)이 쓴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 비교를 통해 신라어가 아스카~나라 시대 일본어의 6모음체계와 같은 것으로 보고, 고대 한반도인이 일본으로 이주했다는 야요이 이주설의 도래인에 대한 한반도계 비중을 뒷받침하는 주장을 한다.
참고로, 보빈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어의 고유어와 일본어의 고유어 모두 서로의 고대 언어에서 차용한 것들이 있다. 한국어 내의 일본어족 귀화어로는 '섬', '바다', '쌀' 등이 있는데, 특히 양국 고유어 중에서 고대~중세 한국어에서 'p-' 계열로 나타나면서 고대 일본어에서 'w-' 계열로 나타나는 것들은 거의 다 일본어족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이처럼 한국어 내의 일본계 귀화어의 수는 많지 않으며, 정작 그 반대로 중부~서부 일본어(특히 규슈 일대)에 들어간 한국계 귀화어의 수가 훨씬 많다고 한다. 이 역시도 언어가 대체로 한쪽 방향으로 영향을 주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이는 고대 한반도에서 세형 동검 등의 문물과 기마술을 바탕으로 한 한국어족 사용자들이 남하하면서 남부의 일본어족 사용자들을 힘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그 결과 한반도 남부의 일본어족 화자들을 동화시켰기 때문으로, 대개 지배-피지배 관계에서는 지배층의 언어가 피지배층의 언어로 흘러들어가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가야의 이진아시왕 등 한반도 삼국 시대의 주요 지배층의 이름들은 실제로 고대 일본어로는 해석할 수 없는 이름들인 바, 한국어족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고 한다.[10]
물론 고대에는 백제-왜-가야 연합의 흔적으로 주로 호남에서 발견되지만, 경상남도 고성군 송학동 고분군 1호분처럼 경남 지역에도 전방후원분 또는 기타 왜계 고분 논쟁이 있는 고분들이 존재를 하며 근대에도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임진왜란 시기 항왜의 규모는 1592년부터 전쟁이 끝난 시기까지 약 10,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조선 정부는 항왜들을 유치하여 이들로부터 무기 제조, 군사 기술을 전습받기도 하였으며, 변방의 방어 및 일본군에 대한 정보 탐색 등에도 활용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듯 원래 한국인이 일본인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소리지만, 한반도에 고대부터 왜계가 존재를 했었다는 것은 사실[11]이며,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유입과 동시에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로의 인구 유입이 있었다.
근대에 와서 명확하게 민족이 형성되기 전에는 여러 종족이 거부감 없이 뒤섞여 사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흔하게 있어왔던 일이며, 특히 삼한과 일본열도 사이에는 곡옥, 청동거울, 세형동검, 고인돌 등의 고고학적 교류 흔적이 분명하게 드러나며 이러한 교류는 백제와 야마토 왕권간의 우호관계로까지 이어진다. 애초에 빙하기 이후, 항해기술이 발달하기 전인 고대시대에 대륙에서 일본열도로 대규모로 건너가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은 연안항해인데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한반도를 거쳐갈 수밖에 없다. 임나일본부와는 달리 여러 국가 형성 초기단계의 제민족 이동과정에서 (민족적인 의미의 일본인이 아닌) 일본계 고대 종족이 일부 한반도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반대로 (민족적 의미의 한국인이 아닌) 한국계 고대 종족 또한 충분히 일본열도에 건너가서 살았을 수 있다.[12]
일본서기 민달천황조의 기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고대 야마토 왕권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계 어족'에 속하는 백제와 언어가 통하지 않아 역관을 따로 두었고 백제의 언어를 '한(韓)어'라고 구분하여 자국의 언어와는 별개의 언어로 따로 구분했다. (4세기 이후의 기록에는 백제는 고구려와 언어가 같다는 기록[13]이 있어 백제어는 고구려어와 좋은 비교대상이 된다.) 때문에 백제와 같은 '부여계 어족'에 속하는 고구려어와 고대 일본어 사이에 언어적 유사성이 있었다 해도 언어 계통 자체는 서로 완전히 달랐을 거로 추정 할 수 있다. 즉, 고대 일본어는 고구려어와 백제어 같은 '부여계 어족'과 완전히 다른 언어 계통이었지만 '부여계 어족'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아서 부여계 어족에 속하는 고구려어, 백제어와 서로 비슷해진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14]
3. 분류
[1]
서기 300년에서 800년경까지의
일본어를 말한다.
[2]
여기에는 이견이 있는데,
교토대학과
오사카대학의 연구진들은
야마타이국의 위치를
간사이 지방으로 보고있다.
[3]
무속신앙부터 일본은 태양을 섬기는 반면, 한국(하느님), 만주(abkai han), 중국(황제를 천자天子라고도 칭함)은 하늘을 섬기는 등의 큰 차이가 있다는 점등의 가까운 지역에서 기원했다기에는 차이가 크다.
[4]
주의할 점이 있는데, 해당 논문은
알타이 제어가
비교언어학적으로 친연 관계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알타이 제어를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이라고 부르면서 이들을 하나의
어족으로 보는데, 그 근거로 제시한 내용이 궤변에 가까워서
언어학계에서 회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가령, 논문에 의하면 일본조어로
여자를 뜻하는 '*me'와 현대
한국어 '며느리'의 '며'가 동계어라고 하는데, 그럼 그 뒤에 있는 '느리'의 어원이 무엇인지는 전혀 제시하고 있지않아서, 재구 자체가 오류가 많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5]
히말라야산맥 제어와
오스트로아시아어족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6]
즉, 현대 한국어와 고구려어 사이에는 차용 이외에는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다.
[7]
이에 따라 명백한 기초어휘까지 입맛대로 차용이라고 하는가 하면, 한자음 재구에도 문제가 있었다. 국명 신라(新羅)가 Silla라고 발음되는 것을 한국어의 틀이 아닌 중국어 틀에서 해석하려 하여 新(신)의 한자음이 고대에 'Sir'로 발음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신라가 斯羅(사라), 斯盧(사로), 尸羅(시라) 등의 여러 표기가 있었으며, 한자어가 아니라, 우리말을 한자로 적었을 뿐인 것도 몰랐으며 'n+r→ll'의 자음동화현상도 보지 못했다. 이외에도 무턱대고 단어의 어원을 한자어 기원으로 몰아가려는 경향도 보인다.
[8]
보빈의 주장에 따르면 고구려에서 왕비를 가리키던 어륙 및 백제에서 왕을 가리키던 어라하는 동일 계통의 단어로 추정되며, 일어서다라는 한국어 단어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9]
실제로 탐라국의 시조들이 일본 여성과 결혼하는 등 교류가 존재했다.
[10]
일본어에 비해 한국어가 역사언어학적으로 훨씬 따지기가 어려운데, 그 원인으로는 자료 부족이 무엇보다도 크게 작용한다. 그래도 한반도~일본 열도에 이르는 광범위한 언어 조사를 통해서 동질성이 나타나는 어휘들을 추리면 한반도 중심과 일본 열도 중심의 것들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추적해 확인할 수 있는 아이누어, 일본어 계열을 빼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한국어 계열밖에 없기 때문에 가능한 추론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이나 중국티베트어족의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오히려 이들 언어들은 한국어족보다도 역사언어학적으로 연구할 건덕지가 풍부해서 반박된다. 즉, 한반도~일본 열도의 옛 고유명사 중에서 일본어족으로 보기 힘든 정체불명의 것들은 현재 전하지 않는 옛 한국어족 어휘들로 잠정적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11]
임나일본부설처럼 가야 지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거나 백제를 속국으로 두고 신라를 정벌했다는 주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라-왜 전쟁,
관산성 전투,
가야멸망전,
백강 전투등 왜가 한반도의 전투에 관여하며 백제와 임나를 지키기 위하여 수 많은 병력을 보냈던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12]
보빈은 가야와 관계가 깊은 한국계 왕조가 일본 열도에 일정 기간 존재했을 것이라 추정했으며 여기에서 섬을 가리키는 일본어인 시마가 유래했을 것이라 추정했다.
[13]
梁書 百濟:今言語服章略與高驪同 (양서 백제전: 지금 언어와 복장이 고구려와 같다.), 南史 百濟:言語服章略與高麗同 (남사 백제전: 언어와 의복이 고구려와 같다.)
[14]
이런 현상을
언어동조대라고 하며,
현대 한국어와
현대 일본어,
중국어,
스웨덴어와
핀란드어가 이런 사례에 든다.
[15]
최근 언어학계에서는 류큐제어를 남규슈 방언의 하위 집단으로 분류하고 있다. 북규슈 방언과 남규슈 방언이 분화한 이후 류큐어가 다시 남규슈 방언에서 분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오키나와의 고고학적 물질문화 변화와도 일치하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