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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영(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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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영의 수상 및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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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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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스 /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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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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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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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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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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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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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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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온 윌리엄스 / 로드 벤슨
오리온스 / 모비스
2013-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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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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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종
LG
문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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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본 제퍼슨
LG
2014-2015 시즌
양동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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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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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르도 라틀리프
모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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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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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호영
상무 / 포워드
이종현
고려대학교 / 센터
이승현
오리온 / 포워드, 센터
김시래
상무 / 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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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농구부 코치
SUNGKYUNKWAN UNIVERSITY BASKITBALL TEAM
파일:윤호영2022-23.png
윤호영
尹皓暎 | Ho-Young Yun
<colbgcolor=#8dc63f> 출생 1984년 6월 1일 ([age(1984-06-01)]세)
경기도 의왕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신체 신장 196cm| 체중 93kg | 윙 스팬 210cm
포지션 스몰 포워드
학력 내손초등학교 (졸업)
구로중학교 (졸업)
낙생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체육대학 (사회체육학 / 학사)
프로입단 2008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 원주 동부)
현역시절 등번호 19[1], 13[2]
병역 상무 농구단 (2012~2014.1)
소속 <colbgcolor=#8dc63f,#191919> 선수 원주 동부-DB 프로미 (2008~2023)
코치 성균관대학교 (2024~)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상세3. 커리어
3.1. 농구 입문3.2. 중앙대 시절3.3. 프로 데뷔3.4. 프로 데뷔 이후
3.4.1. 2008-20093.4.2. 2009-20103.4.3. 2010-20113.4.4. 2011-20123.4.5. 2013-20143.4.6. 2014-20153.4.7. 2015-20163.4.8. 2016-20173.4.9. 2017-20183.4.10. 이후
4. 2011-2012 포스트시즌
4.1. 2011-2012 KB국민카드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4.2. 2011-12 KBL 챔피언결정전4.3. 라이벌 양희종4.4. 최악의 인터뷰?
5. 콩라인6. 플레이 스타일7. 사생활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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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선수가 다리가 아예 부러져서 못 뛰는 거면 몰라도,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면 경기 뛰어야죠. 그게 선수잖아요"
ㅡ 2012. 4. 인터뷰

대한민국의 前 프로 농구 선수. 소속팀은 원주 DB 프로미. 로드 벤슨, 김주성과 함께 '동부산성(혹은 원주산성)'으로 불리는 트리플 타워의 한 축을 담당했던 KBL 대표 포워드. 중학교 3학년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농구에 입문하여 1년을 유급해, 원래 나이보다 한 학년 적은 동기들과 프로데뷔를 함께 했다. 대학 졸업반 시절부터 일취월장한 기량과 타고난 높이로 이름을 알렸고, 프로 데뷔 후도 많은 이들을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기록과 활약이 미미하다는 이유로 별명은 '윤미미'[3] 그런 미미한 선수의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준우승을 네 번 했다는 이유로 별명은 '콩 호영'(...).

2. 상세

1984년생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또래의 선수들보다 일찍 결혼을 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4살 연상인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아이를 두었다. 가정에 충실한 모습과 함께 인터뷰에서 극도로 말을 아낀다던지, 술자리에도 12시가 넘어가면 참석을 하지 않는 기존의 운동선수에 대한 일반적 평가와는 다르게 성실한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아마 시절부터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라는 평가를 받았기에 프로 첫해에 그가 보여준 모습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대학 무대에서 득점력과 수비력으로 이름을 떨쳤던 선수들이 대개 그렇듯, 프로 무대에 오면서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권을 모두 내주고 수비만 전담하는 반쪽짜리 선수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2년차부터 팀의 감독이 교체되고, 팀의 주 득점원으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해가 거듭될 수록 공격과 수비력이 꾸준히 향상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1-2012 시즌, 수비와 공격 모두 리그 최정상급 포워드로 모두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KBL 3번으로서 좋은 신장에 발이 빠르며 탄력도 좋다. 탄력이 좋은데다 타이밍도 잘 잡아서 블락능력도 뛰어나다. KBL의 최고의 선수중 하나인 김주성과 함께 2011년 정규시즌 신화를 써내려간 주역 중 하나가 윤호영이었다. 대학시절 그가 갖추었던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의 모든 자질이 만개한 시즌, 그러나 아쉽게도 군대까지 미루며 도전했던 챔피언 결정전에서 고배를 마시고 나이 기준에 아슬아슬하게 부합하여 합격했던 상무로 입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무 복귀 이후 이충희 - 김영만 시대를 거치면서 노쇠화가 진행되던 와중에 과도한 혹사에 따른 부상으로 인해 과거 리그 최강 스몰 포워드의 명성은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거듭된 혹사와 부상으로 망가져가는 와중에도 묵묵히 팀에 헌신하는 선수.

다만 이상범 감독이 부임하고 어느정도 관리받으면서 현재는 제 기량을 되찾았다. 2022년 기준 이젠 나이가 30대 후반인만큼 체력은 예전같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3. 커리어

연도 수상 내역
2003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남자농구팀 청소년 국가대표
2007년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최우수선수상
제28회 R.윌리엄 존스컵대회 남자농구팀 국가대표
제24회 하계유니버시아드 남자농구팀 국가대표
제24회 동아시아 남자농구 선수권대회 남자농구팀 국가대표
2010년 2009-2010 동부프로미 프로농구 정규리그 이성구 기념상
2011년 스포츠토토 한국농구대상 기량발전상
2012년 2011-2012 KB국민카드 프로농구 베스트5 포워드부문
2011-2012 KB국민카드 프로농구 MVP
2011-2012 KB국민카드 프로농구 스포츠조선 한국농구대상 블록슛상
제 30회 런던올림픽 예선 남자농구팀 국가대표
제 1회 프로- 아마 농구최강전 MVP

3.1. 농구 입문

백운중을 다니던 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윤호영은 농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4] 본격적으로 농구선수가 되기 위해 구로중학교로 전학하면서 빠른 성장세를 보이며 단숨에 유망주로 평가받는다. 큰 신장과, 뛰어난 점프력등 기본적으로 갖춘 하드웨어가 남달라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초등학교때부터 전문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았던 다른 선수들과의 기본기면에서 많은 차이로 주전으로 바로 뛸 수는 없었다. 그로 인해 1년을 유급하며 기본훈련에 매진한 윤호영은 낙생고로 진학한다. 본인의 노력으로 고등학교 1학년부터 경기에 출전하는 횟수가 잦아지며 '잠재된 유망주'라는 인식을 떨치고 차차 명성을 얻어, 청소년 국가대표로도 발탁된다.

3.2. 중앙대 시절

파일:external/heyto25.files.wordpress.com/20080916124618-353-0.jpg

2000년대 대학농구리그 중앙대 전성시대의 일원이었다. 다만 4학년 이전까지는 백업 혹은 로테이션 멤버였다.[5] 졸업반 무렵에는 오세근, 김선형이 합류하면서 중앙대가 50연승 넘게 질주하며 대학 무대의 최강자로 군림하는 데 기여했다. 선배인 박상오의 백업선수로 뛰다가, 4학년 시절 졸업 및 프로지명 버프를 받았단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엄청난 기량향상을 보여준다. 수비와 블락슛에 특화된 선수라는 평을 깨고 넓은 시야와 외곽슛의 안정감까지 갖추며 대학최대어로 손꼽히게 된다. 이는 동아시아 남자농구 선수권대회(ABC)에서 이정석이 부상으로 빠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윤호영을 영입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팀에서 뛰면서 윤호영은 드롭존 공격과 수비에 주축 역할을 하며, 자신의 주가를 올렸다. 신장 198cm[6] 웬만한 흑인과 견주어도 밀리지 않는 윙스팬[7], 스몰 포워드로서의 최상급인 수비력, 20점을 올릴 수 있는 득점기계로서의 활약, 뒤늦게 농구를 시작했지만 사기급 발전속도 등 윤호영은 아마시절부터 한국농구의 미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3.3. 프로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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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 하승진 드래프트'[8] 라 불렸던 2008 드래프트[9]지만, 강병현, 윤호영, 차재영, 김민수 등 대학리그에서 일찍이 두각을 드러냈던 선수들이 많아 로터리픽을 보유한 팀들에게 기대를 안겼다. 비록 역대급 드래프트였던 2007 드래프트[10]에 비해 얕은 선수층으로 비교되기도 했지만 구단에서는 알짜 역할을 할 선수들이 많다는 이유로 상위픽에 대한 기대가 컸다. 드래프트 이전부터 윤호영의 1순위 지명설이 유력하다는 소문이 돌았기에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김민수, 하승진, 강병현, 차재영과 함께 국가대표 5인방으로 분류되던 윤호영은 한국 프로농구 역사상 최장신 센터 하승진(연세대), 아르헨티나 특급 김민수(경희대)에 이어 세번째로 원주 동부에 지명되었다. 김주성 영입 이후 전창진의 동부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는 강팀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로터리픽과 거리가 멀었는데 2006-2007 시즌 김주성의 부상 공백이 커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 로터리픽을 얻는데 성공하고 윤호영을 영입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한 수 드래프트 이전부터 끈끈한 조직력과 김주성을 주축으로하는 강력한 수비와 빠른 농구를 앞세운 동부에 윤호영이 합류한다면 막강한 라인업을 구축할거란 예상이 나왔고, 이미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인 대학선배 김주성과 감독 전창진으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를 했다.

3.4. 프로 데뷔 이후

3.4.1. 2008-2009

시즌 소속 경기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스틸 블락슛 야투(%) 3점슛(%) 자유투 (%) TS PER
2008/09 동부 53 4.7 1.1 3.2 0.6 0.8 42.0 27.9 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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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대를 받고 시작한 프로 시즌 첫 해, 윤호영은 '이름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만큼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부족함을 보였다. 대학 4학년때 보여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골 밑에서 주춤하는 모습, 소심한 플레이로 팬들을 실망시켰다. 뛰어난 블락타이밍과 슛을 보유했음에도 이도저도 아닌 페이더웨이슛을 시도하며 털리는 전형적인 안놈안을 보여주었다. 저런 모습이 겉으로 드러날 정도였으니 당시 감독이었던 전창진의 고민도 깊었는데 일부에서는 전창진의 플레이와 강압적인 선수지도방식이 윤호영과 맞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고 지적되기도 했다.[11] 로터리픽 신인 4인방[12] 중 가장 저조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윤호영의 루키시즌 성적만을 놓고 보면 리그 평균 이상으로 심지어 동부에서는 김주성 이후의 최고의 성공적인 신인 스탯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신인상 후보에서 멀어지고[13]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루키시즌에 대한 아쉬운 평가가 계속 되고 있는 것은 대학 시절의 모습을 기억하며 기대했던 팬들이 '멘탈문제'에 가린 '실력'에 대해 안타까워했기 때문이다. 재밌는 것은 이 시즌에 KBL 공식 기록을 세우게 되는데 1월 21일 vs 삼성의 경기에서 5차 연장까지 가는 접전으로 '출전시간 61분 57초'가 바로 그 것이다. 이것도 전창진의 선수조련 중 하나인가

3.4.2. 2009-2010

시즌 소속 경기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스틸 블락슛 야투(%) 3점슛(%) 자유투 (%) TS PER
2009/10 동부 51 9.0 1.6 4.8 1.1 1.2 59.9 17.0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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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할 정도의 평가가 약이 되었을까, 윤호영은 프로로서 맞는 소포모어2009-2010 시즌에서 모두를 기대케 했던 '포텐셜'을 어느정도 터뜨리기 시작한다. 일각에서 대학시절부터 기대했던 수비에서는 '포스트 김영만'의 모습[14], 공격에서는 '리틀 김주성'이라 불리던 대학시절을 연상케 하며 김주성과의 완벽한 호흡을 보여주며 바로 직전 시즌보다 월등해진 기량을 보여주었다. 대학 시절부터 윤호영은 아직도 미완성인, 그래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보여줄 것이 많은, 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었었는데 이 시즌의 기량 향상은 팬들과 전문가들이 예상이 적중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팀에 대한 애착이라면 10개 구단 중 최고일 듯. 동부 팬들의 윤호영에 대한 애정은 이 때부터 길러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3. 2010-2011

시즌 소속 경기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스틸 블락슛 야투(%) 3점슛(%) 자유투 (%) TS PER
2010/11 동부 53 13.3 2.1 4.8 1.1 1.0 50.4 32.1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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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 시즌은 본인 또한 군입대 전 마지막 시즌이라 생각하며 뛰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평균 두 자리 수 득점 달성하며, 김주성, 로드 벤슨과 함께 동부의 '트리플타워', '동부산성' 이라는 말이 탄생한 해였다. 이전까지 3번으로서의 역량이 있느냐는 의문점 또한 완전히 상쇄시키며 동부의 확실한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대신, 이때부터 윤호영은 팀 내에서의 역량보다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서의 역량을 평가받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김주성이 있기에 윤호영이 있다는 '우산효과'에 대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두해 잘해서 평가받을 수 있는 프로스포츠가 아니기에, 기량이 급성장하여 이제 막 주전으로 뛰기 시작한 윤호영에겐 당연히 나올 수 있는 평가였다. 그러나 '질식수비'를 통해 상대팀에게 틈을 내어주지 않는 동부만의 수비농구가 시작된 데에는 윤호영의 각성이 절대적이었다. 특히나 대학시절-루키시즌-2년차-3년차 해를 거듭할수록 눈에 띄게 발전하는 기량은 한계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들어 본인의 가치상승에 큰 몫을 했다.

3.4.4. 2011-2012

시즌 소속 경기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스틸 블락슛 야투(%) 3점슛(%) 자유투 (%) TS PER
2011/12 동부 52 11.9 2.6 5.2 1.1 1.4 50.7 40.7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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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 시즌 아쉽게 KCC에 패하며 챔피언을 놓친 팀, 윤호영은 상무 나이 제한을 아슬아슬하게 앞두고 공익 입대를 생각하며 입대 전 한 시즌을 더 뛰기로 결정했다. 선수 개인으로서의 미래가 달려있는 중요한 시즌, 윤호영은 또 한 번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정규리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2011-2012시즌 동부는 만화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스탯을 기록하며 KBL 역사를 새로 쓴 팀이 됐다. 그 중심에서 활약한 윤호영은 고질적인 문제였던 외곽이나 골밑능력을 강화하고 자신의 특장점이던 블락에서도 상대마크를 압살시키는 모습 보이며 리그 최고의 포워드로 자리잡았다. 위에서 언급했듯 풀타임 소화의 기록보유자답게 팀 내 선수 중 유일하게 백업도 없이 풀 시즌을 치러냈다. 소심하다고 평가받았던 플레이스타일은 다른 선수들을 배려하는 이타적인 선수라는 평가로 확대되었고, 묵묵하게 자신의 일만 해낸다는 평가를 받았던 수수한 플레이스타일은 공수 양면의 활약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기록지가 되어 돌아왔다.[15] 군입대를 앞뒀다는 점이 아쉽게 생각될 만큼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챔피언 결정전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시며 콩라인으로 입성했다 팀은 준우승에 그쳤다. 더 이상 '대학시절' 이라는 말을 나오지 않게 하는 공수 양면의 완벽한 활약과 전설급 기록을 쏟아낸 팀의 에이스로서 윤호영은 2011-2012 시즌 우승팀 소속이 아닌 선수로서 MVP의 영예를 안았다.[16] 또한, 그간 부상 때문에 연이 없었던 런던 올림픽 남자농구팀 국가대표에 차출되어 군인 신분으로 성인팀 태극마크를 달게 되었다. 비록 반지를 끼지는 못했지만 윤호영 개인으로서는 최고의 시즌이라 평가된다. 이런 커리어를 쌓아놓고 입대해야하는 상황 그러나 해가 거듭할수록 기록적으로나 팀 성적면으로나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만들어 나가고 있기에 공익근무대신 상무를 선택한 것이 고무적이라 여겨진다. 상무에서도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맡으며 골밑에서 활약하며 팀의 100연승을 이끌고 프로-아마 최강전의 초대 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MVP로 선정되었다.

3.4.5. 2013-2014

시즌 소속 경기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스틸 블락슛 야투(%) 3점슛(%) 자유투 (%) TS PER
2013/14 동부 5 7.8 3.4 5.0 1.2 0.6 50.0 20.0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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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4시즌 예상하지 못한 부진을 겪던 동부로서는 3번과 4번을 넘나들며 강력한 수비와 적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던 윤호영을 기대했다. 1월 29일부로 복귀한 뒤 1월 31일 고양 오리온스와의 원정경기에 출장했다. 상무에서 주로 센터포지션에서 경기를 펼치다 보니 MVP를 타던 시즌에 보여주던 비교적 좋은 3점슛이나 미들슛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열성적으로 리바운드를 따내는 모습과 윤호영이 출장한 전반전에는 동부가 좋은 수비를 보여주는 등 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팀은 후반 오리온스의 공세에 밀려 완패했지만, 윤호영은 군 복귀선수로서 어느 정도 준수한 모습을 보였다. kt전에서는 조성민을 막느라 지친 모습을 노출했지만 이후 동부가 동부산성시절 보여주던 수비력을 보여주는데 공헌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승준의 시즌 아웃 때문에 부족한 김주성의 백업 역할도 맡아서 적지 않은 출장시간동안 큰 영향을 주었다. 덕분에 울산 모비스 피버스를 꺾기도 했으며, 2연승을 달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삼성전에서 부상을 당했는데 이것이 엄지발가락 골절 수술인 것으로 알려져 결국 시즌아웃되고 말았다.

3.4.6. 2014-2015

시즌 소속 경기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스틸 블락슛 야투(%) 3점슛(%) 자유투 (%) TS PER TS PER
2014/15 동부 50 8.76 2.46 6.92 1.02 0.94 45.57 31.58 75.41 0.533 12.79
수비력은 여전하지만 공격에 대한 건 기복이 심한 모습을 보였다. 때론 폭발하면 20점을 넘게 넣을 때도 있지만 감이 안 좋은 날은 5점 이하로 넣을 때도 있는데 이런 모습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 그래도 허웅의 가세로 좀 더 팀이 빨라지고 김주성이 회춘모드를 보이면서 수비에서 제역할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팀에 큰 보탬이 되었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kt와의 경기에서 조성민과 신경전을 벌였는데, 문제는 신경전 중 박치기를 시전한 것. 강하게 한 건 아니지만 엄연히 박치기를 한 게 맞았다. 심판은 더블 파울로 마무리했고 경기는 kt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조성민 김영만 감독에게 다가가 사과한 것과 대비해서 계속 짜증내는 모습은 팬들을 안타깝게 했고 결국 네이버 실검에 올랐다. 이후 kt 전창진 감독에게는 전화로 사과를 하였으나 조성민에게는 아무런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성민이 윤호영보다 2년 선배였으니 일종의 하극상을 하였고 이를 인터넷 방송에서 중계하던 석주일은 윤호영을 질타하면서 해설 중에 쌍욕을 하려다 참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후 KBS의 1.21 뉴스에서 조성민이 윤호영에게 먼저 욕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조성민도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조성민이 '뭐래는 거야 XX' 이라는 욕을 한 것이 동영상에 나오는데 트래시토킹으로 있는 욕설과 폭행은 잘못의 정도가 다르다.[17] 이후 여론도 일방적으로 윤호영만 욕먹고 조성민이 일방적인 피해자로 여겨지던 것에서 '조성민도 잘못한 게 있다'로 바뀌었지만 '둘 다 잘못했다'로 여론이 희석되지는 않았다. 이정도 트래시토킹은 코트 위에서 매우 흔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http://sports.news.naver.com/videoCenter/index.nhn?uCategory=kbasketball&category=kbl&id=108768

3.4.7. 2015-2016

시즌 소속 경기 득점 어시스트 리바운드 스틸 블락슛 야투(%) 3점슛(%) 자유투 (%) TS PER
2015/16 동부 16 8.69 3.06 4.81 1.00 0.94 41.30 26.67 54.17 0.468 11.13
합류 후 두 경기 남짓은 괜찮았으나, 이후 공격에서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면서 양희종에 이은 미미한 포워드 2 신세이다. 오프 더 볼 상황에서의 움직임, 받아먹기조차도 엉성한 모습을 보이며 경기매너로 욕을 먹긴 해도 3점슛까지 장착해가며 노력하는 김주성과 비교되며 극딜의 주 대상이 되고 있다. 게다가 고액연봉자가 되고나서 너무 못하니 더 욕먹는 중.

12월 2일 모비스와의 경기에서 허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치료하는데 두 달 이상 걸린다고 하고 플레이오프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하니 사실상 시즌아웃.

팬들은 윤호영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는 반응이다.

3.4.8. 2016-2017

웬델 맥키네스 스몰 포워드 자리를 함께 소화하고 있다. 3라운드 현재 시즌 성적은 부상의 여파인지 7.81점의 평균 득점, 그리고 1.0개의 블락, 그리고 44.8%의 야투율을 보이면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는 중.

3월 2일 홈경기에서 발목을 다쳤다. 진단결과 아킬레스건 파열로 시즌아웃 판정이 나왔으며 이로써 두 시즌 연속 시즌아웃되었다. 동부로선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아킬레스건 부상인 것을 생각하면 17-18 시즌도 복귀가 불투명한 상황인데, 같은 부상을 당했던 강병현도 딱 1년이 걸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3.4.9. 2017-2018

무서운 회복력을 보인 것인지 2라운드에 돌아와서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려나가는 중이다. 다만 아킬레스건 부상의 영향 때문인지 출전 시간을 이상범 감독이 조절해 주는 중이다. 출전 시간도 떨어졌고 겉으로 드러나는 기록 또한 전성기 때만큼은 나오지 않고 있다. 허나 벤치에서도 경험이 많지 않은 선수들을 훌륭하게 이끌어주는 구심점 역할을 잘 수행해주는 중이다. 팀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선수 본인에게도 의미있는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3.4.10. 이후

2018-19 시즌에는 시즌 53경기를 출전하며 몇 년 만에 제대로 된 풀시즌을 소화했다. 평균 26분을 출전하며 평균 득점 8점을 상회하는 준수한 활약을 보였다.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2019-20 시즌에도 여전히 DB의 중심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수훈 선수 인터뷰에서도 잦은 모습을 드러내면서 DB를 먹여살리고 있다. 다만 손목, 발등 등 잦은 잔부상으로 인해 결장하는 경기가 많아졌고, 기록에서도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며 시즌 35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19-20시즌 이후 FA가 되었으나, 3년 3억원, 총액 9억원의 조건으로 재계약했다. 이대로라면 40세까지 DB에서 뛰게 되며, 원 클럽 플레이어라는 상징성 +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던 커리어까지 감안하여 충분히 영구결번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2020-21 시즌은 고질적인 허리디스크가 재발하여 정규리그 출전이 쉽지 않아보인다. 사실상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릴 가능성도 있는 상황. 윤호영의 지속된 이탈에 구단 플랜에도 악재가 생긴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스몰포워드와 파워포워드를 모두 볼 수 있는 선수가 이탈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배강률이나 김태홍을 기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 정준원도 4경기만에 허리디스크로 사실상 시즌아웃 되었다. 어쩔수 없이 이상범 감독은 김훈이나 나카무라 타이치를 3번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21년 1월 말 디스크치료를 마치고 예상보다 빨리 복귀하게되었다. 훌륭한 코트조율을 보여주면서 복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다만 점프슛이 운동능력이 많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시즌 평균 12분 남짓을 23경기만 출전하며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2021-22 시즌도 벤치멤버로 14분 남짓을 33경기만 출전하면서 존재감 있는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계약기간 마지막 해인 2022-23 시즌, 거의 벤치에 머무르며 거의 플레잉 코치격 역할을 맡았고,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다. 2023년 10월 28일 은퇴식 이후 바로 미국으로 지도자 연수를 떠났다.

이후 김상준 감독의 연락을 받고 모교 성균관대학교 농구부 코치에 부임했다.

4. 2011-2012 포스트시즌

4.1. 2011-2012 KB국민카드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라운드 상대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블럭슛 스틸
4강PO-1 vs 모비스 19 5 2 1 1
4강PO-2 vs 모비스 5 7 1 1 1
4강PO-3 vs 모비스 12 4 4 0 2
4강PO-4 vs 모비스 8 8 2 1 1

KCC를 완파3대떡으로 쳐바르고하고 4강에 올라온 모비스와의 경기. 윤호영은 정규시즌의 모습보다 다소 떨어진 듯한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했다. 상대의 레더의 끈질긴 태클에 도움수비에 가로막혀 결정적일 때 허덕이는 모습을 자주 보이며 모비스의 전술에 말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매치업에서 윤호영에게 골이 집중되었고, 3번 포지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맥시멈을 해내며 동부의 트레이드마크인 수비력을 살려 승부를 안전하게 동부의 것으로 가져왔다. 전적 3승 1패로 챔피언 결정전에 무난하게 안착.

4.2. 2011-12 KBL 챔피언결정전

라운드 상대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블럭슛 스틸
Final-1 vs KGC 16 7 2 0 1
Final-2 vs KGC 7 5 3 0 2
Final-3 vs KGC 10 8 4 0 3
Final-4 vs KGC 2 2 0 1 2
Final-5 vs KGC 25 7 1 0 1
Final-6 vs KGC 19 4 2 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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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해에 준우승이라는 고배를 마시고, 윤호영은 군대까지 미루며 우승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정규시즌을 견뎠다. 정규시즌 5승 1패로 압도적인 전적으로 앞서며 KBL 역대 최소득점인 41점을 안겼던 KGC와 맞붙게 되며 언론과 전문가, 관계자, 팬 모두에게 압도적인 동부의 우세를 점치게끔 만들었다. 1차전부터 분전하며 '역시 윤호영'이라는 소리를 나오게 했지만, 팀 자체는 비교적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KGC의 체력에 압도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정규시즌 기이할 정도로 살아나지 않았던 양희종의 슛 감각이 살아나고 그것이 예상치 못한 변수로 작용[18]했다. 공수 양면에서 완전히 살아난 양희종에게 마크당하며 공격 또한 잘 풀리지 못했고, 더불어 김주성까지 오세근과의 승부에서 체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매 승부마다 후반의 흐름을 KGC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스탯 면으로 봤을 땐, 윤호영은 자신의 몫을 다 해낸 것처럼 보였지만 경기 안팎으로 말이 많았던 신경전과 본인이 키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뛰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상대에게 내주게 되었다. 거기다가 위쪽 사진에서 보았듯이 벤슨이 심판 판정에 흥분, 웃통을 까는 분노쇼(...)를 펼치다 퇴장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는 최대 변수까지 발생하면서 더더욱 꼬이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홈에서 펼쳐졌던 6차전은 정규시즌의 동부라면, 그것도 KGC 상대의 동부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4쿼터 최대 17점까지 벌려놓았던 점수차를 역전당하며 66-64로 패해 다소 허무하게 우승을 놓치고야 말았다. 올시즌 최고의 기량을 펼쳤던 정규시즌의 히어로, 군 입대를 앞두고 반드시 팀을 우승시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한 윤호영은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없었다.

4.3. 라이벌 양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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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012 프로농구는 오세근, 최진수, 김선형 세 루키의 활약과 함께 양희종VS윤호영이라는 84년생 라이벌의 대결구도가 화두였다. 정규시즌에선 KGC에겐 압도적으로 강한 동부였지만, 윤호영과 양희종의 1:1 매치는 전적에 관계없이 언제나 치열한 양상을 보였다. 같은 나이지만, 윤호영의 유급으로 양희종이 1년 선배이다. 두 사람은 청소년 대표팀을 함께 뛰고 고등부-대학리그에서 꾸준히 맞붙으며 성장했다. 비록 플레이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지만 소속팀에서의 입지와, 올어라운드 플레이어라는 특징, 수비력, 포지션 등이 톱급이었기에 아마시절부터 종종 비교되고는 했다. 양희종이 2007-2008 시즌에 1라운드 3순위로 KT&G에 입단하고, 4학년인 윤호영은 대학리그 최고의 포워드로 성장하였고, 한 해 뒤인 2008-2009 시즌에 윤호영 역시 1라운드 3순위로 동부에 입단한다. 윤호영의 루키 시즌은 양희종보단 오히려 같이 데뷔한 김민수와의 비교가 더 잦았다. 윤호영의 동기인 걸출한 신인들도 많았고, 순위상 경쟁구도가 될 수 없는 사정상 양희종과의 비교는 전무했고, 이후 양희종이 상무에 입대하면서 두 사람은 윤호영이 꾸준히 성장했던 2년간 맞붙을 기회가 없었다. 거기에다, 양희종의 복귀 시즌에 군입대가 예정되어있던 윤호영이라 리그 탑급의 두 선수의 매치업은 사실상 향후에도 기대하긴 힘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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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윤호영이 군대를 한 시즌 뒤로 미루며, 본격적인 라이벌 매치는 시작된다. 이미 시즌 중반부터 동부와 KGC의 경기가 끝나면 농구 관련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창에서 양희종과 윤호영을 비교하는 글들이 쏟아졌고, 양 팀 팬이 아닌 사람들까지 이들의 과거부터 개인적인 상황들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우위를 구분했다. 농구 전문 기자들로 구성된 팟캐스트 방송 '파울아웃'에서 이 두 사람을 다루는 방송이 나오기까지 했는데, 방송의 내용은 이랬다. 전문가와 농구 관계자, 기자들 대부분이 주저없이 윤호영을 택했다. 이는 공격력이 바닥이던 양희종과 포스트 김주성으로 각광받던 윤호영의 시즌 성적으로 봤을 때 당연한 결과였지만, 정작 방송을 진행하는 기자들은 만장일치로 양희종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기본기'와 '팀에 따른 롤'에 있었는데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농구를 시작한 윤호영은 기본기와 경기에 임하는 소극적인 태도면에서 어릴 적부터 정석으로 농구를 시작했던 양희종에게 결정적일 때 밀리지 않겠냐는 견해였다.[19] 또한, 상무에서 공격의 에이스 역할을 했던 양희종이 공격롤이 제한된 KGC에 있기 때문에 지금의 스탯을 찍는 것이란 가정이 가능하다는 이유.[20] 농구팬들이 관심있게 듣는 방송인만큼 이 편이 발행되고 난 후, 안 그래도 불이 붙었던 두 사람의 비교글은 폭발 수준에 이르렀다. 해당 리플만 모아도 책 한권은 거뜬히 나올 정도 주된 설전의 내용은 양희종과의 1:1 플레이에서 포스트업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윤호영을 보며 양희종이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했고, 단일시즌 리그 전체적인 선수의 역량을 평가했을 때나, 기록적인 면에서나 아아 양무록 어떻게 윤호영과 양희종을 비교할 수 있냐는 주장이 대립했다.

이런 논쟁이 오고간다는 것도 선수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터,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난 1,2위 팀은 대결 전부터 상대방에 대한 신경전을 시작했고 그 중심에 양희종과 윤호영이 있었다. 연세대 동기였던 이광재와 양희종의 다소 훈훈한 신경전은 어쩔 수 없이 매치업에서 붙을 수밖에 없었던 윤호영과 양희종의 구도로 번졌다. 양희종이 먼저 "윤호영이 대학 때는 많이 넣어야 한 두 골이었다. 실력이 많이 좋아졌다"라고 한 인터뷰가 시발점이 되었고, 윤호영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21] 이후 이상범이 계속에서 양희종에게 1:1로 윤호영을 마크시키겠다는 발언을 했는데, 윤호영은 그것에 대해 "그러면 저야 땡큐죠" 하고 대답했다. 두 사람의 설전은 플레이를 보는 데 재미를 가중시켰고, 두 팀 팬들의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 응원 양상을 가열했다. 이후 양희종이 '윤호영의 발언에 잠도 못잤다'며 "윤호영이 동부에 있어서 윤호영이라고 생각한다. 동부에 특화된 선수다"라는 발언을 했고, 이후 동부 구단에서까지 제지할 정도로 커지게 되었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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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종의 기억에서는 대학 때 한 두골 밖에 넣지 못한 선수였을지 몰라도, 윤호영의 졸업반 시즌은 상당히 뛰어났다. 전국구 선수로 어린 시절부터 활약한 양희종에게 뒤늦게 농구에 입문한 윤호영이 어떻게 비춰졌을지 모르지만[23] 윤호영의 입장에선 충분히 억울한 말일 수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만큼 윤호영의 시즌 성적이 대학시절마저 잊혀지게 할 만큼 대단했고, 양희종의 발언 역시 그런 의도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을 기자들에 의해 공격적으로 왜곡된 부분이 있었다. 또한 2차전을 앞두고 했었던 윤호영의 '땡큐'발언 역시 모비스전에서 도움수비로 마크당하던 데서 벗어나 1:1로 수비한다면 더 수월해질 것 이라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정규시즌부터 서로에 대한 견제가 심했던 그들이기에 챔피언 결정전이라는 큰 무대에서의 게임은 그만큼 더 주목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양희종처럼 윤호영 역시 쇼맨십이 강하고 언론친화적인 성격의 선수가 아니었기에 이후에도 오해와 편견들이 양팀 팬 사이에서도 계속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두 사람은 코트 밖의 일을 경기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았고, 치열한 블록을 주고받으며 각 라운드에서 누구의 우위를 점칠 수가 없었다. [24] 양 선수의 팬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워내는 것이 이번 리그의 목표가 아니겠냐며 '너만큼은 내가 꼭 이기고 만다' 하며 싸웠다던 두 선수의 멋진 플레이에 감탄했다. 6차전이 모두 끝나고 시즌 내내 이어졌던 두 사람에 대한 비교는 '둘 모두 확실히 대단한 선수, 비교는 의미없다'로 훈훈하게 종결.

...됐는 듯 했으나. 윤호영의 입대로 인해 이 라이벌 매치는 당분간 볼 수 없다. 그리고 윤호영이 정규시즌 MVP를 수상하고 모 주간지와 취중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왜곡의 여지가 많은 말들이 쏟아지게 된다.

4.4. 최악의 인터뷰?

윤호영은 원래부터 미디어와 친하지 않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수훈 인터뷰에서도 칭찬하면 그냥 웃고 지적성이 다분한 민감한 질문이 나오면 바로 인상이 어두워지는 등.. 이렇다보니 점점 본인도 인터뷰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본인은 팬서비스의 중요성 또한 알고 있지만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성향에 과묵하고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별 수 없다고. 시즌 후, 개그콘서트에 출연 요청도 있었지만 본인의 필사적인 반대의사로 벤슨과 김주성만 참여했다.

KBL 시상식에서 시즌 MVP를 수상하고도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수상소감을 했던 윤호영은 이후 모 주간지와 취중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사단이 되었다. '취중'이라는 전제가 있었기에 원래 양식자체가 자유로운 인터뷰인데 여기에서 심판 판정의 부당함, 양희종과의 신경전에 대해서 날이 선 대답이 여과없이 활자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질타를 받으며 단숨에 어그로킹이 되고 말았다.

결국 담당 기자가 인터뷰 내용을 대폭 수정하고 후편으로 게시된 양희종 인터뷰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모두 사과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는데, 이 사과 형식의 기사에서도 윤호영이 인터뷰와 인터뷰 이후의 질타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나타나 있다.[25]

이런 윤호영의 미디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팬들의 반응 또한 두 가지로 양분하는데, 프로리그의 선수라면 흥행적인 측면에서나 팬들을 위해서나 미디어에서 본인을 어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본인의 몫을 다 하는 선수가 본인의 성격과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한다면 저 인터뷰와 같이 오히려 역효과만 더 나게 된다는 주장이 있다.

5. 콩라인

챔피언결정전 우승과는 연이 없다. 2010-11, 2011-12 두 번의 준우승을 시작으로 당시 감독이었던 강 누구와 함께 무난하게 콩라인이 되었다. 특히 2012년엔 허무하게 우승을 놓친 후, 경기장 밖에서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다는 후문이...

그리고 군 복무 이후에도 2014-15, 2017-18 준우승 2번이 더 추가되면서 총 네 번의 준우승을 기록, 콩호영이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이 더욱 확고해졌다. 원주는 그의 입단 직전 시즌인 2007-08이 2024년 현재까지도 마지막 우승이다.

6. 플레이 스타일

윤호영의 플레이 스타일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하이라이트. 빛난 베테랑 (윤호영 H/L)

대학교 졸업반때와 최전성기였던 2010~11시즌, 2011~2012시즌 윤호영은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였다. 3번 포지션에서 상대 선수를 상대로 포스트업을 하고, 포스트업에서 밀리는 듯 싶으면, 외곽으로 나와 3점을 터뜨린다. 예상 불가능한 돌파는 감독의 전략 안에서 자유자재로 응용된다. 외곽슛이 아쉽다고 하지만 어느정도 보완은 했다.[26] 수비면에서도 큰 신장과 팔길이를 활용해 동부 특유의 드롭존의 한 축으로 활용된다. 블록슛에서도 리그 최고라 평가되는 같은 팀 동료 김주성 다음 가는 수준. 동부의 공수의 핵. 흔히 양희종과 비교했을 때, 양희종이 좀 더 거칠고 상대를 압박하며 코트를 휘젓는다면 윤호영은 인사이드에서 블록과 도움 수비에 특화되어있으며 더 나은 공격셋업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된다.[27]

전성기 당시 운동능력은 당대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고, 맨발 195cm의 신장과 210cm 에 달하는 윙스팬은 뛰어난 운동능력과 수비 센스에 더해서 그를 최고 수준의 디펜더로 만들어 주었다. 기본적으로 신장 대비 발이 빠르면서 민첩성도 괜찮으며 탄력도 좋다. 힘이 좋은 편은 아니나 국내선수와의 매치업이면 크게 몸싸움에 밀리는 편도 아니다.

양희종의 도발 처럼 동부에 특화되어 있다는 평가도 들었는데[28] 윤호영의 신체조건은 스몰포워드 치고는 좋은 편이나 파워포워드 치고는 나쁜 편이다. 동부에는 김주성이 있기 때문에 윤호영이 파워포워드가 아닌 스몰포워드로 뛸 수 있고 그래서 매치업상 우위를 가지고 플레이 할 수 있고 수비 부담도 덜고 공격 비중이 커질 수 있지만 김주성급 빅맨 동료가 없는 다른 팀에서 뛴다면 윤호영은 양희종이 아니라 김주성이나 오세근 함지훈 등과 매치업 돼야 하니 동부에서 처럼 활약할 수 없다는 것.[29] 실제로 김주성의 은퇴 이후 윤호영의 성적은 이전보다 떨어지기도 하였다.[30]

다만 MVP를 수상한 11-12시즌의 윤호영의 PER이 16.35에 불과했다는 점은 다소 흠이다. 역대 MVP 수상자 중에서 두번째로 낮은 수치이며[31] 해당 시즌 순위로도 외국인 제외 국내선수중 PER 15위에 불과했다. 김주성이 받는 게 맞다는 말이 많이 나왔던 것도 이 시즌 김주성은 17.73을 기록하여 더 뛰어난 활약을 보였기 때문. 사실 외국인 빅맨이 확고한 에이스롤을 맡고 올스타급 국내선수들은 팀내 2~3옵션 롤을 맡는 리그 특성을 고려하면, 16정도의 per도 그렇게 낮은건 아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MVP치곤 빈약하지 않나 싶은 수치인건 사실이기도 하다. PER은 15를 리그 평균으로 삼는다. 15 언저리면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닌 딱 리그 중간급 선수라는 뜻이다. 실제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고도 전체 15위에 불과하였다. 16정도면 팀의 중심이 아니라 그냥 저냥 주전으로 나오는 롤플레이어들 수준이다.[32] PER 을 만든 존 홀린저에 의하면 16.5는 팀내 3옵션 수준 선수를 뜻하며 실제로 윤호영은 동부의 3옵션이었다.

게다가 저 시즌 이후 윤호영의 기량은 지속적인 퇴화를 보이고 있다. 상대가 수비패턴에서 윤호영을 버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외곽슛 성공률이 꽤 내려갔고, 애초에 페네트레이션 롤은 없는 선수니 윤호영이 외곽에서 볼을 잡으면 상대편에서 편하게 수비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포스트업도 능하지 못한 편이고, 미들라인 점퍼도 뚜렷하지 못하다. 수비에서의 역할은 꾸준하지만 그가 샐러리캡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애매하게 창렬하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 윤호영을 출장시킴으로써 안정적인 수비와 시즌 성적을 보장받은 동부지만, 한편으로 윤호영이 가진 이러한 한계들이 플레이오프에서 항상 터져나왔기에 그의 입단 후 동부는 챔피언결정전 우승이 없다. 양희종과의 라이벌리나 문태영 등 공격적으로 한 수 위의 평가를 받는 선수와의 매치업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매년 똑같은 방식으로 한계에 봉착함으로써 용병- 김주성-윤호영의 트리플타워는 이제 너무 많은 나이를 먹었다. 체력적인 문제가 항상 제기되는 이유이며, 그 증거물이 바로 14-15 챔피언결정전이다. 동부는 4전 전패했다.

15-16 시즌과 16-17 시즌 연속으로 시즌아웃을 당한 이후, 17-18 시즌 초중반에 복귀 이후로는 조금 플레이스타일을 바꿨다. 좀 더 이타적인 플레이 위주로 바꾸고 볼 소유 시간을 줄였다. 페이스업 상황에서의 페네트레이션 시도는 상당히 줄었고, 인사이드에서 가끔씩 포스트업-페이더웨이 or 골밑 공략을 한다. 공간이 나면 캐치 앤 샷 3점을 쏘고, 탑과 엘보우 지역에서 공을 잡고 보조 리딩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외국인 선수를 수비하는 롤에 중점을 두면서 안드레 에밋, 애런 헤인즈 등의 최고 외국인 선수들을 막아내며 국내 선수 중 최고 수비라는 평을 받고 있다.

7.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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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이나 루머, 스캔들, 추문 이런 게 단 하나도 없기 때문에 생긴 항목. 그렇다고 해서 리그의 스타플레이어에 뛰어난 말빨과 성실한 가장 이미지를 갖춰 좋든 나쁘든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라는 건 아니다. 너무나 소심한 성격과 이타적인 플레이, 트레이드 마크인 눈웃음(...) 같이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 벌써 이 자체가 한 시즌의 전설을 쓴 MVP 선수임에는 지나치게 평범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프로 지명 후, 4년간 사귀었던 4살 연상 미모의 여자친구와 결혼했다. 스물아홉이란 나이에 벌써 애가 둘(...). 다른 선수들에 비해 이른 결혼으로 가정을 꾸렸다.[33] 윤호영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윤호영의 지나친 가정 사랑(...)을 말한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상무 입대를 포기하고, 공익근무나 상근예비역으로 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시즌 도중에 영장이 나오는 등 심리적인 압박 속에서 부인의 권유로 상무 입대를 결심한다. 상무 농구단은 보통 2/4분기에 선수 선발을 하고 입대를 시키는데, 1984년 6월 1일생인 윤호영은 아슬아슬하게 지원 자격에 해당된다. 2012년 3월 26일 상무 합격이 발표되며, 4월 30일에 입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바로 런던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로 차출되며 국가대표팀에서 훈련을 시작, 상무체육부대 소속의 군인 신분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 예선을 치르게 된다.

8. 관련 문서



[1] 2008~2009 [2] 2009~2023 [3] 라이벌로 거론 되는 양희종은 양무록이다. 경기에 나와도 기록할게 없다고 무록(...) [4] 평범하다고 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데 아디다스 3:3 농구대회 같은 길거리 농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고, 초등학교 시절에는 경기도 대회에서 시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5] 1년 선배인 양희종 기억에 윤호영의 이미지가 경기당 한두골 넣는 선수였을 정도로 4학년 이전의 윤호영은 크게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6] 프로농구선수들의 실제 신장에 대한 논란은 심심할 때면 늘 나오는 떡밥이지만 대개 신발을 신고 잰 키를 프로필로 쓴다. 윤호영 또한 195cm가 본인의 맨발 키로 알려져 있다. [7] 윤호영의 윙스팬은 2m 10cm로 NBA의 신장 2m대 플레이어들과 동급이다. [8] 사실 하승진은 드래프트 직전까지도 KBL에 복귀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해에 대학무대에서 활약하던 다른 신인 선수들이 본의 아니게 마음고생을 했다고. [9] 보통 OOO드래프트라 불리는 연도에는 드래프티들의 선수층이 얇은 것이 일반적이라 여겨진다. [10] 일명 '황금세대'라 불렸던 드래프트로 김태술, 이동준, 양희종, 정영삼, 박상오, 이광재, 함지훈, 유병재, 박구영 등... 이정도면 사기급 [11] 이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당시 이미 베스트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었던 동부로서는 윤호영을 김주성의 백업으로 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포스트 김주성으로 키워야할 윤호영이라는 최고의 선수에게 롤을 주지 않아 반쪽짜리 선수로 전락시켰다는 것. [12] 하승진, 김민수, 강병현, 윤호영. [13] 이 해의 신인왕은 김민수- 하승진 구도로 경쟁하였고 결국 하승진이 수상하였다. [14] 실제로 이 시즌부터 김영만 동부의 코치를 맡았다. [15] 이렇게 팀의 실질적 에이스이자 역대급 활약을 했음에도 팀당 출전 제한 등으로 김주성, 박지현 등에게 밀려 올스타에 뽑히지 못했다. 말만 올스타지 인기투표 그러나 본인은 가족들이랑 여행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는 인터뷰를 시전해서 팬들을 멘붕시켰다. [16] 원래 여론에서는 김주성이 받아야 한다는 여론이었지만 김주성이 윤호영이 받았으면 한다는 말이 있었다. [17] 법적으로 폭행과 모욕(욕설)의 형량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18] 양희종의 정규시즌 성적만 놓고 보면 '전력 외'로 분류될 만큼 형편없었다. 그러나 4강PO부터 자신의 원래 기량을 찾게 됐는데 이는 양희종이 컨디션 저하 전까지는 국가대표이자 리그 톱급 스몰 포워드였기에 더 강력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다. [19] 이는 결과론적일수 있지만, 당해 챔피언결정전을 통해서 일부 입증된 부분도 있다. [20] 일리는 있다. 인내의 리빌딩으로 우승을 차지한 KGC지만 그에 따른 반대급부로 너무 많은 주전급 선수들이 포화상태에 있다. 그런데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양희종의 득점력이 지나치게 부진했다. [21] 이후 다소 문제가 된인터뷰에서 밝혔지만 그 말을 듣고 굉장히 화가 났고 개인적으로 뭐라고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팀 동료들이 말렸다고 한다. [22] 이건 원주 동부 프런트에서 오버한 거라는 여론이 대부분이다. [23] 윤호영의 기량이 만개했을 4학년 때 양희종은 프로에 진출해서 윤호영 활약을 볼 수 없었고 대학에서 같이 뛰던 시절에는 윤호영이 중앙대 주전이 아니었다. 또한 이당시 윤호영은 수비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공격력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희종, 윤호영은 둘다 농구대잔치 우승을 2번씩 하였으나 양희종은 저학년때부터 주축 선수로 활약했고 심지어 성인 국가대표로 뽑히기도 하였다. 윤호영은 3학년이 되고서 부터 주축 선수[34]였고 윤호영의 4학년 때 우승은 양희종이 졸업한 다음이었다. 중앙대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윤호영이 3학년때 오세근이 들어오면서 부터이다. 심지어 양희종이 3학년이고 윤호영이 2학년때 중앙대는 농구대잔치를 불참한 일도 있었다. [24] 물론 양희종의 득점력이 폭발하며 챔결에선 윤호영이 양희종에게 패한 것이라는 관점이 더 힘을 얻고 있다. [25] 이로서 윤호영의 인터뷰는 영원히 안녕... [26] 외곽슛은 신예 시절 많이 부족하다가 MVP를 수상한 10~11 시즌 40% 성공률을 기록하며 만개하는 듯 하였으나 이후 다시 나빠졌다. 이후 시즌 별로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중 [27] 양희종보다 윤호영이 좀 더 포스트플레이어에 가깝다. 윤호영은 원래 4번이었다가 대학 졸업시즌에 3번으로 포지션을 바꾸었고 프로에 와서도 4번에 가깝게 플레이를 하는 편이다. 김주성이 없었다면 4번으로 뛰었을 확률이높고 김주성의 후계자 소리도 들었다. 수비도 둘다 좋은 편이지만 양희종이 앞선에서 압박을 많이 한다면 윤호영은 좀 더 골밑 수비에 치중하는 편이다. [28] 그래서 윤호영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을 가능성이 있다. [29] 대학에서도 오세근, 함지훈, 박상오와 함께 뛰었기 때문에 수비 부담을 덜고 스몰포워드로 포지션 변경이 가능했던 것이다. 오세근 입학 이전에는 파워포워드로 뛰면서 함지훈이나 박상오의 백업으로 나왔다. [30] 물론 김주성이 굉장히 롱런하면서 윤호영 역시 기량이 떨어질 나이가 되기는 했다. [31] 첫번째는 14-15시즌 양동근이며 윤호영이 MVP를 받던 시점에는 윤호영이 역대 최저였다 [32] 15는 백업을 포함한 전체 평균이란 뜻이기 때문에 주전만 놓고보면 평균 15는 넘어간다. [33] 다만 부인이 나이가 더 많으면서 나이 차이가 꽤 나서 아주 신기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들도 이른 나이에 얻었으니 독특한 사례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