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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2:09

위구르/대외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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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받아 '중국 마카오'와 '중국 홍콩' 명의로 관련 협정을 제한적으로 체결 및 이행할 수 있음 [A]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받아 '중국 마카오'와 '중국 홍콩' 명의로 관련 협정을 제한적으로 체결 및 이행할 수 있음 [B] 국가나 그에 준하는 정치체가 아니며 외교에 관한 권한이 없으나,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하며 주변국 및 주변지역과의 역사적, 문화적 관계 내용을 담고 있음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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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과의 관계2. 중화권과의 관계3. 카자흐스탄과의 관계4. 러시아와의 관계5. 튀르키예와의 관계6.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7. 키르기스스탄과의 관계8. 타지키스탄과의 관계9. 티베트와의 관계10. 만주와의 관계11. 몽골과의 관계12.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13.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관계14. 남아시아 지역과의 관계15. 기타 서구 선진국들과의 관계
15.1. 캐나다와의 관계15.2. 호주와의 관계15.3. 네덜란드와의 관계
16. 친중 독재국가들과의 관계17. 일본과의 관계18. 미국과의 관계19. 지역별 관계20. 관련 문서

1. 대한민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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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중화권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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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카자흐스탄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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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러시아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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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튀르키예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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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우즈베키스탄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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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키르기스스탄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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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타지키스탄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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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티베트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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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만주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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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의 고위층들은 당의 중국 문화와 위구르 문화를 받아들였으며, 거란 문자의 일부분인 거란 소자가 창제될 때 위구르 문자를 참고했으며, 훗날 여진족의 여진 문자 역시 거란소자의 영향을 받게 된다. 위구르인 상인들은 요나라 연경에도 와서 무역을 펼쳤고 카라한 칸국 출신 무슬림 상인들을 위해 수도 연경에 모스크가 세워지기도 했다. 한편 요나라가 금나라에게 밀려날 때 일부 거란 유민들이 세운 서요는 위구리스탄 일부는 물론 지금의 신강 북부인 준가리아 일부까지 차지하여 카라한 왕조의 카를룩족과 위구르족을 지배한 것은 물론, 일리 지역을 두고 위구르, 동카라한과 대립이 있기도 했으며 이들을 간접지배하기도 했었다. 근세시대에는 청나라의 지배를 받았고, 이 때문에 한족, 만주족, 몽골족 등과 관계가 좋지 못했다. 청나라에서는 만주족 이외에도 다우르족(거란족의 후손), 시버족들을 중가리아에 이주시켰다. 청나라 멸망 이후부터 현재는 만주족도 나라 없는 민족으로 전락하다 보니 만주족에 대한 반감은 청나라 지배 시기를 제외하면 딱히 없다. 물론 이는 일반 위구르족 얘기이며, 강경 위구르 민족주의자들은 한족 못지않게 만주족도 매우 증오한다. 일반 한족들이 만주족에 대한 반감이 적고 한족 민족주의자들이 만주족을 엄청나게 증오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11. 몽골과의 관계

몽골의 기원으로 추정되는 몽올실위는 위구르 제국이 멸망하는 과정에서 오늘날의 몽골 고원으로 남하한 것으로 추정된다.

몽골 제국 전역에서 위구르인들은 지식인 관료층으로 활약했으며, 러시아에서부터 고려까지 몽골인들을 대신하여 외교관으로 활약했다.[1] 위구르인들이 칭기즈칸에게 일찍이 신속하게 그리고 계속해서 충성했기 때문에 고창회골의 위구르인들은 상당한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원나라에서는 한족들을 믿지 못하여 위구르인 관료들을 중용한 편이었다. 고려 말 상당수의 위구르인들이 한반도에 유입된 것도 이와 같은 배경이었다.
위구르인들은 유목민들이 제국을 건설할 때 핵심적인 통치기술들을 제공하는 "초원의 지식층 Steppe Intelligentsia"으로서 몽골에 봉사했다. 위구르인 타타통아는 칭기즈칸의 새 제국에 위구르 문자[2]를 도입했을 뿐 아니라 조세 기록에서 처음으로 관인을 사용했다. 위구르인들은 몽골 황자들의 가정 교사였으며 제국 전역에서 다루가치로서 그리고 다른 공식적인 지위에서 복무했는데 많은 위구르인들이 높은 관직에까지 올랐다.
- 제임스 A. 밀워드, 유라시아의 교차로 신장의 역사

특히 원나라는 몽골족 제일주의에 입각하여 민족을 크게 4등분하여 신분을 나눴는데 1등은 당연히 몽골인이었고 2등은 색목인, 3등은 거란족 여진족 등으로 이루어진 한인, 4등은 남송 치하에 있던 한족들로 이루어진 남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위구르족은 2등인 색목인으로 분류되었다. 원나라 인구 중에서 몽골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5%밖에 안 되었기 때문에 부족한 숫자를 메우기 위해 색목인들을 많이 등용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문해율이 높고 몽골어를 잘 하는 편이었던 위구르족들이 몽골 제국에서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다만 오이라트인들이 서진하여 세운 준가르 칸국의 경우 이야기가 다르다. 준가르 칸국은 청나라의 침입을 초래하여 오늘날 위구르인들이 중국에 예속되는 계기를 초래하였다는 이유로 위구르인들 사이에서 취급이 좋지 못하다. 준가르 칸국의 위구르 지배는 청나라 지배보다도 훨씬 더 악질적이었는데 알티샤르의 위구르인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조공을 거두고 정기적으로 성상납까지 요구하는 등 막장을 달렸다.

12.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국가들과의 관계

일반적인 오해와 다르게 위구르인들은 아랍인으로부터 이슬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다. 이런 오해는 고선지 탈라스 전투만 국내에 단편적으로 알려져서 생긴 오해로 신장 서부가 이슬람화한 것은 서기 11세기 무렵이고 신장 동부가 이슬람화한 것은 서기 15~16세기 무렵이다.[3]

문화적으로 이슬람 이전 시대부터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도 상당히 받기도 했다. 타슈쿠르간 같은 서부 지역에서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조로아스터교 유적이 발견되었다. 신장 지역의 건포도 식용과 포도주 생산 역시 고대 페르시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다.[4] 위구르인들은 이란 고원의 페르시아인들과 교류보다는 주로 중앙아시아의 소그드인, 타지크인들과 교류가 많았으며 근세 이란 사파비 왕조의 영향으로 시아파 국가가 되면서 종교적으로도 서로 갈라졌다.

상당수의 아랍권 국가들은 정부 차원에서는 중국의 위구르인 인권 탄압 관련해서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는 편이다. 아랍권 국가 대다수가 경제 사정이 열악하거나 혹은 원자재 수출에 의지하는 이유로 중국과 외교적으로 트러블을 감수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도 있다. 하지만 해당국 언론사들의 경우는 중국의 위구르 인권 탄압 및 민족 말살 정책에 대해 활발하게 보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타르의 경우는 정부 차원에서는 중국의 위구르 인권 탄압에 대해 침묵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카타르의 언론사 알 자지라가 신장 재교육 캠프 관련한 실상을 아랍권에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1 #2 #3 #4 #5 #6 #7 #8 비교하자면 대한민국 정부 역시 중국의 위구르나 티베트 인권 탄압 관련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지만, 언론사에서는 중국의 위구르와 티베트 강점 및 민족말살을 비판적으로 보도[5]하는 것과 유사하다. 중국 측에서 타국의 언론까지 직접 이래라저래라 검열하려는 시도는 엄연한 내정간섭이 되기 때문이다.[6]

이스라엘인들의 소셜 미디어 상에도 위구르를 탄압하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이 부분은 자신들의 팔레스타인인 무슬림 탄압에 대한 국제 사회의 성토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13.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과의 관계

캅카스 동남부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터키처럼 같은 튀르크계&이슬람 문화라는 공통점들이 존재하기에 아제르바이잔과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아제르바이잔인들과도 서로 교류하는 경우도 있다. #. 또한 중국, 대만 등 중화권 국가들 역시 항공에서 우루무치를 건너서 아제르바이잔으로 간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는 투르크멘인들도 소수 거주하며, 투르크메니스탄에도 극소수의 위구르인들도 거주한다.

역사적으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알티샤르와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세 지역 모두 스키타이, 그리고 훗날 튀르크계 유목민들의 돌궐 서돌궐 티무르 제국 등의 지배와 점령을 받았으며 세 지역은 나중에 튀르크화가 진행되었다. 다만 같은 튀르크 이슬람권이라도 위구르와 아제르바이잔의 경우이렇다할 갈등은 없지만 종파가 달라서 튀르키예-위구르 관계와는 달리 거리가 있는 편이다. 튀르키예의 사례처럼 위구르 탄압 문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아제르바이잔인들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은 중국과의 무역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어 정치인들은 웬만하면 위구르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편이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시기에는 아르메니아를 비판하고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위구르인들도 있었다.

투르크메니스탄 역시 정치적으로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하며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하는 정책이 있다보니 위구르 문제가 외면되는 경우가 많다.

14. 남아시아 지역과의 관계

고대 신장 지역은 쿠샨 왕조의 문화적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편이었다. 고대 중국에서 생산된 비단은 신장 지역을 거쳐 쿠샨 왕조로 다시 신드 지역의 항구 도시에서 로마 제국으로 수출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누란 유적에는 인도 카로슈티 문자 등이 발굴된 것을 비롯해서 문화적 교류가 활발했고 이는 인도 불교가 신장 지역을 거쳐 중국으로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금강경을 한역한 것으로 유명한 쿠마라지바 카슈미르 출신과 쿠처 출신의 부모를 둔 혼혈인이었다.

신장 남부( 알티샤르)지역은 길기트 발티스탄을 넘으면 카슈미르 및 파슈툰족 거주지역 등과도 연결되다보니 카슈미르인 펀자브인 등 북인도 지역의 제족 및 사람들과 혼혈이 되기도 했다. 일부 벵골인들도 인도 북부로 간 사람들은 인도 북부를 통해 위구르를 비롯한 신장 지역 민족들과의 교류와 혼혈화가 되기도 했다. 위구르와 우즈베크의 조상인 카를루크계 및 카를루크에서 갈라진 차가타이어파 투르크인들은 북인도의 벵골까지 점령하기도 했으며, 벵골로 이주해온 일부 투르크계 사람들은 벵골 술탄국의 고위층을 이루기도 했었다.

남서부 지역은 파키스탄과도 접하다 보니 파키스탄과의 교류도 있는 편이다. 다만 파키스탄은 옛날에 친중성향이 많다 보니 해외의 위구르인들은 파키스탄인과 완전히 좋다고 보긴 어렵다. 파키스탄에는 약 1천여 명 남짓한 규모의 위구르인들이 거주하는데 파키스탄 정부는 중국과의 마찰을 우려하여 이들을 위구르인이라고 분류하지는 않고 카슈가르족이라는 명칭으로 분류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파키스탄인과 사이가 매우 나쁜 정도인 것도 아니다.

2018년 9월 방글라데시와 인도의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에서 반중 시위가 나타나 위구르 인권 탄압을 규탄했다. 중국 상품 불매운동도 나타나기도 했다. #

15. 기타 서구 선진국들과의 관계

파일:From UN Human Rights Council.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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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강간·전기고문"…중국대사 초대해 '위구르 수용소' 영상 면전서 보여주는 BBC 패기

오늘날 위구르 독립 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들은 사실상 네덜란드 영국, 독일 노르웨이 같은 서구 선진국들이다. 해당 국가로 망명 혹은 이주한 위구르인들은 위구르 독립 운동 관련 소셜 미디어 페이지를 만들어서 중국 내 인권 탄압 상황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위구르인 독립 운동의 구심점이 될 목적으로 계획된 세계 위구르 회의역시 독일 뮌헨에 위치한다. 위구르인 여성들 중 중국인들과 강제 결혼한 사람들 중 서구 선진국으로 망명 신청을 하는 경우, 혹은 남편과 같이 이민한 후 이혼해버리는 경우도 꽤 된다고 한다.

호주에도 5천명에서 1만명 되는 위구르인들이 거주하며, 이들도 망명해온 사람들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신장의 무슬림들을 탄압하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며, 위구르 인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티베트계 미국인들이 무국적자로 취급받아서 비자, 체류 문제에 불이익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외 체류 위구르인들도 여러모로 곤란을 겪고 있다.

15.1. 캐나다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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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내에도 망명한 위구르족들이 거주하고 있다. 2021년 2월 22일에 캐나다 의회는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탄압을 제노사이드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15.2. 호주와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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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네덜란드와의 관계

네덜란드 의회는 '위구르족에 대한 중국의 처우는 집단학살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구속력은 없지만 이번 결의안으로 네덜란드는 유럽연합(EU) 국가 중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한 첫 번째 국가가 됐다. 이 결의안은 "소수민족인 위구르에 대한 집단학살이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1948년 발효한 유엔 '제노사이드 협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

16. 친중 독재국가들과의 관계

이란의 반정부 진보단체들은 이란 신정 정권이 중국의 위구르 무슬림 탄압에 침묵하는 이중성을 비판하고 있다. # ## ### 이런 비판을 의식하듯 이란 정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대놓고 중국의 위구르 무슬림 탄압을 부인하거나 협조하는 행동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7][8] 이란도 발루치스탄, 후제스탄, 남아제르바이잔, 동북부 국경 일대의 투르크멘인, 호라산 튀르크 등 분리주의가 강하거나 일부 분리주의를 원하는 곳도 있다보니 함부로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의 신장 재교육 캠프 운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사우디아라비아 내에서 활동하는 위구르인 활동가 두 명을 체포하고 중국 송환을 추진하여 휴먼 라이트 워치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 ## 위구르인들은 사우디아라비아 네덜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들 앞에서는 이슬람 근본주의 선교를 막지 말라며 큰소리 치다가 중국 앞에서는 입을 다무는 상황에 대해서 좋게 여기진 않는다. 위구르 독립 운동 단체들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특히 무함마드 빈 살만을 저격하는 내용도 종종 올라올 정도. 여담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끝내주는 친미 국가로 유명하였으나 무함마드 왕세자가 실권을 잡으면서 친중 외교로 방향이 전환되었다.[9]

베네수엘라, 짐바브웨, 미얀마, 에리트레아 등 유명 친중 국가들은 외교적으로 하나의 중국 입장을 지지하면서 신장 재교육 캠프가 극단주의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학교라는 중국의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이지만, 이는 진영 논리 편가르기 문제이지 위구르에 대해서는 교류도 관심도 없고 자국 내 상황 처리하기도 바쁘다.

북한은 분리 독립 무장 세력에 무기를 팔다 걸린적 있다. # 사실상 중국에 대한 도발행위에 가깝다.

17. 일본과의 관계

일본 역시 위구르 인권 탄압 문제를 비판하는 나라들 중 하나이며, 일본의 위구르인들도 미국, 호주, 영국 못지 않게 적극적으로 중국을 비난한다. 하지만 일본 극우들은 이를 이용해 일본의 우경화를 정당화하려해서 이에 비판적으로 보는 위구르인들도 일부 있다. 심지어 레비야 카디르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를 강요하는 일마저 일어났다. 다만 위구르인들은 한중일 갈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보니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기도 하다. 정작 일본 극우들은 이슬라모포비아도 심하다보니 위구르인들도 이슬람을 믿는 이유로 좋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그래도 지리적으로 일본만큼 가까운 곳이 잘 없다보니 일본으로 망명한 위구르인 인구는 약 1천여 명 정도에 달한다. 위구르 단체들은 일본에서 위구르 문화를 복원하여 보존시키려 하고 있다.

18. 미국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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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제2차 냉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미국과 중국은 치열한 경쟁 상대다. 중국에서 미국의 약점인 팔레스타인 문제를 위성 국가인 북한, 이란을 통해 건드리면 미국은 중국의 약점인 대만을 지원하거나 홍콩, 티베트, 위구르 인권 문제를 지적한다. 당장 바이든 시진핑의 첫 통화를 봐도 그랬다.

미국에는 위구르계 미국인 협회(Uyghur American Association) 이른바 UAA라는 단체가 워싱턴 D.C.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해당 단체는 세계 위구르 회의와도 협력 관계이며, 단체를 창립한 루샨 압바스 레비야 카디르와 마찬가지로 여성 독립 운동가이다.

중국 정부는 2009년 우루무치 유혈사태가 UAA의 선동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도 무고한 위구르 시민 수십 명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랍시고 관타나모 수용소에 10년째 가둬놓기도 했다. 그들의 무고가 밝혀지자 10년만에 석방은 해주었는데 보상은 하나도 안 해주고 내쫓은 건 덤.

19. 지역별 관계

20. 관련 문서



[1] 고려시대 원 간섭기 시절 역관들이 가장 중요하게 배웠던 언어가 바로 위구르어였다. 조선 초기에도 역관들에게 위구르어를 교육시켰다 한다. [2] 몽골어를 기록하기 위해 차용되었으며 내몽골 지역에서는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사용되고 있다. [3] 신장 서부의 카라한 칸국은 서쪽의 타지크 사만 왕조의 영향을 받아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신장 동부의 이슬람화는 차가타이계 모굴리스탄 칸국의 영향이다. [4] 고대 페르시아의 포도주 문화는 인접한 캅카스 지역에 영향을 받았다. [5] 한겨례 신문 기사 : 한족에만 개발 열매…경제적 차별 심각 조선일보 기사 경향신문 기사 티베트 관련 기사 경향신문 기사 한겨레 신문 기사 “티베트는 ‘80년 광주’…자유를 허하라” 조선일보 기사 [6] 참고로 중국 외교부는 환구시보의 2023년 윤석열 방미 관련 비판 보도 관련해서 주중한국대사관의 항의를 받자 "중국 외교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한국의 외교정책을 연일 격하게 비난한 관영지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환구시보 영문판)에 대해 "관련 매체의 관점이 중국 정부 입장을 반영하지 않지만 중국 국내의 민의를 반영한다"고 말을 돌렸던 바 있다. # [7] 이란은 미얀마 로힝야 난민 사태 당시 미얀마 정부가 같은 친러, 친중 진영임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게 로힝야 탄압을 비판했었는데, 이 때문에 중국의 위구르 탄압에 혹여나 조금이라도 협조했다가는 국가 체면과 권위에 적잖은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8] 그리고 호메이니 시절에 이란은 위구르 문제로 중국과 사이가 나빠진 적이 있었다. 아예 호메이니가 위구르들에게 혁명을 일으키라고 자극을 했을 정도였다. 또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역시 퇴임 이후 중국의 위구르 인권 탄압을 공식 석상에서 비판하였다. [9] 코로나-19 사태 초기 당시 사우디 왕족들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발 바이러스가 아닌 미국의 생화학무기라는 유언비어를 앞장서서 퍼트리는 등 노골적인 친중 성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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