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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23:58:05

옥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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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동 법정동
<colbgcolor=#009742> 왕십리도선동 도선동 상왕십리동 홍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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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 법정동 행정동
옥수동

玉水洞 | Oksu-dong
<colbgcolor=#009742><colcolor=#fff> 광역자치단체 서울특별시
기초자치단체 성동구
법정동코드 1120011300
행정표준코드 3030119
하위 행정구역 39통 312반
면적 1.94㎢
인구 25,503명[1]
인구밀도 13,145.88명/㎢
정치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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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구의원 | 가 선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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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센터 독서당로 203 (옥수동 428-5)
옥수동 주민센터
1. 개요2. 역사
2.1. 과거의 달동네, 현재의 부촌
3. 상세4. 지리5. 교통
5.1. 도로5.2. 철도5.3. 버스5.4. 공동주택
6. 교육7. 유적8. 출신 인물9. 기타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성동구 법정동이자 행정동. 법정동과 행정동의 영역이 일치한다. 성동구의 서남부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금호동3가, 금호동4가 성수동1가, 서쪽은 매봉산을 경계로 용산구 한남동, 남쪽은 한강을 경계로 강남구 압구정동, 북쪽은 중구 신당동에 접한다.

옥수동은 특이하게 뚝섬에도 땅이 있다. 성수JC 남쪽에 관할구역이 일부 걸쳐 있고, 성수대교도 중간 부분은 옥수동에 속한다. 이는 과거 한강과 중랑천의 합류부에 퇴적토가 쌓여 형성된 하중도 저자도가 옥수동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지을 때, 저자도의 흙을 퍼다 한강을 일부 매립했기 때문에 현재는 저자도가 없어졌고, 저자도가 있던 자리의 동쪽 일부분에 뚝섬을 에워싸는 제방이 걸치게 되면서 옥수동의 일부분이 뚝 떨어져 있게 된 것이다. 당시 저자도의 북쪽 부분을 관할하던 금호동4가 역시 뚝섬에 일부 땅을 가지고 있다.

2. 역사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folding 삼국시대 ~ 후삼국시대
{{{#!wiki style="margin-top:-5px;margin-bottom:-11px"
475 고구려 북한산군(北漢山郡)
553 신라 신주(新州)
557 북한산주(北漢山州)
568 남천주(南川州)
604 한산정(漢山停)
660 한산주(漢山州)
757 한주 한양군(漢州 漢陽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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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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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5 관내도 양주목(關內道 楊州牧)
1018 양광도 양주목(楊廣道 楊州牧)
1067 남경(南京)
? 양광도 양주목
1104 남경(南京)
1308 한양부(漢陽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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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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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 경기좌도 양주군(京畿左道 楊州郡)
1397 경기좌도 양주부(京畿左道 楊州府)
1413 경기도 양주부(京畿道 楊州府)
1424 한성부 남부(漢城府 南部)
1751 한성부 남부 두모방 두모포계
(漢城府 南部 豆毛坊 豆毛浦契)
1895. 5. 26. 한성부 남서 두모방 두모포계 두모동
(漢城府 南署 豆毛坊 豆毛浦契 豆毛洞)
}}}}}}}}}
{{{#!wiki style="margin:-0px -11px -5px"
{{{#!folding 일제강점기 ~ 현대
{{{#!wiki style="margin-top:-5px;margin-bottom:-11px"
법정동은 파란색, 행정동은 분홍색
1910. 10. 1. 경기도 경성부 남서 두모방 두모포계 두모동
(京畿道 京城府 南署 豆毛坊 豆毛浦契 豆毛洞)
1911. 4. 1. 경기도 경성부 두모면 두모리
(京畿道 京城府 豆毛面 豆毛里)
1914. 4. 1.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두모리
(京畿道 高陽郡 漢芝面 豆毛里)
1936. 4. 1. 경기도 경성부 옥수정
(京畿道 京城府 玉水町)
1943. 6. 10. 경기도 경성부 성동구 옥수정
(京畿道 京城府 城東區 玉水町)
1946. 10. 9. 서울특별자유시 성동구 옥수동
(서울特別自由市 城東區 玉水洞)
1947. 6. 옥수동
1949. 8. 15. 서울특별시 성동구 옥수동
(서울特別市 城東區 玉水洞)
1955. 4. 18. 금옥동(金玉洞)
1959. 10. 31. 옥수동(玉水洞)
1975. 10. 1. 옥수1동(玉水一洞) 옥수2동(玉水二洞)
1980. 7. 1. 옥수동
1988. 7. 1. 옥수1동 옥수2동
2008. 8. 11 옥수동 }}}}}}}}}
조선시대에 이곳은 두물개라고 불렸다. 두물개란, 한강 중랑천,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곳에 있는 나루터라는 뜻으로, '-개'는 순우리말로 포()를 뜻하는 다른 말이다. 두물개는 이후 두뭇개로, 두뭇개에서 두무개로 발음이 바뀌었고, 이를 한자로 음차하여 두모포라 하였다. 다른 말로는 이수포(二水浦), 혹은 동호나루(東湖津)라고도 하였으며, 이 일대를 흐르는 한강을 가리켜 동호(東湖)라고 하였다.

두모포는 조선시대에 서울을 지나는 한강 동쪽의 주요 나루터였다. 한강 상류에서 오는 고추, 마늘, 감자 등의 전곡과, 목재, 시탄이 모이는 곳으로 크게 번성했다. 조선 명종 대에는 명종의 모후였던 문정왕후의 동생이자, 당대의 권신이었던 윤원형의 첩실인 정난정이 백성들은 굶주리는데 기우제를 지낸답시고 쌀밥을 지어 두모포에서 물고기들에게 투척하곤 했는데, 야사에 의하면 두모포에서 큰 물고기가 낚여 올라오면서 이들의 몰락을 예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문정왕후는 이로부터 3일 후에 세상을 떠나고, 윤원형과 정난정 일파도 숙청되면서 예언이 현실화되었다.

두무개에서 유래한 두모리라는 지명은 1936년에 이 지역이 경성부로 편입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이류로 옥수정(玉水町)으로 바뀌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옥수동의 이름은 지금의 옥수동 339번지 손순응씨 집에 있던 옥정수(玉井水)라는 우물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일대를 가리켜 옥정숫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우물물이 맛이 으뜸이라 임금께 진상되기도 했다고 한다.[출처] 두모리로 불리던 이 지역은 1936년에 이르러 옥정숫골에서 딴 옥수동으로 이름이 바뀌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고, 두무개라는 이름은 반포대교 북단에서 용비교까지 한강 북안을 따라 달리는 도로인 두무개길에 남았었다. 2010년에 두무개길이 서빙고로 뚝섬로로 통합되며 이마저도 사라져 버리고, 두무개길 하행선이 지나가는 두무개다리터널에만 남아 있다. 또한 옥수동의 유래가 된 옥정수 우물은 4.19 혁명 이후 이곳에 독서당로가 뚫리면서 매몰되었다 전해진다. 위치는 대략 동호대교 북단 옥수사거리 즈음으로 보이며, 현재는 옥수삼성아파트 앞에 유래비가 남아 있을 뿐이다.

고려시대에는 양주목(楊州牧)에 속했다. 1067년( 문종 21년)에 양주목이 남경(南京)으로 승격하자 그에 속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남경이 다시 양주목으로 격하되었다. 1104년( 숙종 9년)에 다시 남경이 설치될 때에 그에 속해 쭉 유지되었다.

1395년( 조선 4년)에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할 때에 한양도성 내부만 한성부가 되고 그 외 지역은 모두 양주군에 속하게 했는데, 지금의 행당동 지역도 양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1424년( 세종 6년), 한양에서 떨어져 나온 지 29년이 지나서 다시 한성부 성저오리(城底五里)에 편입되어 남부에 예속되었다.

세종은 관료들이 경치 좋은 곳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보낼 수 있도록 지금의 옥수극동아파트 자리에 동호독서당(東湖讀書堂)을 지었다. 일종의 연수원 같은 개념이었다. 휴가 때도 공부하라는 엄한 상사의 분부이기도 했으나, 당시에는 집에 앉아 있으면 책 읽는 것 밖에 할 게 없었으므로, 집에 들어앉아서 책 읽을 바에야 경치 좋은 곳에 나와 바람 쐬며 책 읽으라는 세종대왕의 배려이기도 했다. 이때문에 옥수동을 지나는 도로에 독서당로라는 도로명이 붙었고, 옥정중학교에서 옥수역까지 이어지는 도로인 한림말길은 동호독서당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자연부락의 이름인 한림말에서 유래하였다.

또,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옥수현대아파트 입구 자리에 동빙고(東氷庫)라는 얼음창고가 있었는데, 지금의 용산구 서빙고동에 있던 서빙고에 대비하여 동쪽에 있었으므로 동빙고라 하였고, 그 주변에는 빙고동(氷庫洞)이라는 자연부락이 있었다. 당시에는 겨울이 되면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을 채취하여 빙고에 보관하였는데, 한강변에는 서빙고동의 서빙고와 옥수동의 동빙고 두 군데가 있었다. 옥수동에 있던 동빙고는 1504년( 연산군 10년)에 지금의 동빙고동으로 옮겨 동빙고동 동명의 유래가 되었다.

영조 27년인 1751년에 이루어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성부 남부에 이 두모포의 이름을 따서 두모방(豆毛坊)이 신설되었는데, 두모방은 지금의 옥수동, 금호동, 응봉동, 행당동 일원을 관할하였다. 동시에 두모포계(豆毛浦契)가 신설되어 이에 속하였다.

1895년 5월 26일에는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행정구역 개편이 단행되며 두모포계 예하에 두모동(豆毛洞)이 신설되었다. 경술국치 이듬해인 1911년 4월 1일에는 경기도 경성부 두모면 두모리(豆毛里)가 되었으며, 1914년 4월 1일에는 경성부 성외 지역이 모두 고양군으로 이관됨과 동시에 두모면과 한지면이 통페합되어 한지면(漢芝面)이 되었는데, 두모리는 이에 속하였다. 1936년에는 다시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옥수정(玉水町)으로 개칭되었고, 현재까지 동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1943년 6월 10일에는 구제(區制)가 시행됨에 따라 성동구(城東區)에 속하게 되었다. 해방 이후인 1946년 10월 9일에는 정(町)을 모두 (洞)으로 바꾸면서 옥수동이 되었다. 1947년 6월에는 지금의 행정동 제도의 전신인 동회(洞會)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옥수동회가 설치되었고, 1955년 4월 18일 부로 동회 제도를 폐지하고 행정동 제도를 시행하며 금옥동(金玉洞)이 설치되어 옥수동과 금호동을 관할하였다. 1959년 10월 31일에는 금옥동이 폐지되고, 금북동, 금남동, 옥수동으로 다시 나뉘어 법정동 옥수동 일원을 관할하는 옥수동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75년 10월 1일에는 옥수1동과 옥수2동으로 나뉘었고, 용산구 성동구가 경계 조정을 하면서 서쪽 일부 지역이 한남동으로 편입되었다. 1980년 7월 1일에는 옥수1동과 옥수2동을 다시 통합하였다가, 1988년 7월 1일에 다시 옥수1동과 옥수2동이 나뉘었다. 그 후 20년 동안은 옥수1동과 옥수2동이 나뉘어진 채로 존재하다가, 2008년 8월 11일 부로 옥수동으로 통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1. 과거의 달동네, 현재의 부촌


파일:external/www.doopedia.co.kr/400_125876584477612.jpg
과거에는 200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달동네 하면 성동구의 옥수동과 금호동 일대였을 정도로 달동네 규모가 컸었다. 드라마 서울의 달 촬영지도 바로 여기 옥수동 달동네다. 당시에는 매봉산 일대를 중심으로 "손약국(옥수동 531-19)" 일대에 최하층의 최하위 빈민층의 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다세대 불량주택 밀집 지역이었다.

파일:ECA473F6-3096-41A5-ABD0-0BAD67B00A8B.jpg
2010년대 이후로 재개발이 진행되었고,현재 옥수동은 재개발이 되면서 대한민국 전체로 비교해도 10순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엄청 비싼 값의 유명한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 현재는 거의 80% 이상을 아파트 단지가 차지하고 있다.

3. 상세

옥수동은 동서로는 성동구 용산구, 남북으로는 중구, 강남구의 4개 지역을 연결하는 곳이다. 성동구 내에서는 용산구와 접하는 유일한 곳인데, 두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독서당로 뿐이고, 매봉산이라는 지리적 장벽으로 인해 옥수동에서 두 지역이 분리되는 경향을 보인다.

중구에서 옥수동을 거쳐 강남을 연결하는 동호로 1985년에 개통된 도로이다. 기존에 사대문안에서 강남으로 가려면 남산1호터널- 한남대교, 혹은 왕십리- 성수대교 루트를 이용했으나, 동호로가 개통되면서 동대문이나 장충동, 신당동에서도 옥수동을 지나 곧장 강남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동호로는 옥수터널 옥수고가를 지나 곧장 동호대교를 통해 강남으로 건너가기 때문에 옥수동을 잠시 거쳐 갈 뿐, 사실상 신당동에서 곧장 강남으로 넘어가는 것에 가깝다.

때문에 외지인들은 옥수동으로 들어올 일이 흔치 않지만, 사대문안, 강남, 용산, 왕십리가 모두 근거리에 위치한다는 점에서 성동구 내에서 정주 요건은 가장 좋은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장점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이곳이 달동네였기 때문에 저평가 되고 있었지만, 2010년대 전후로 달동네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 단지를 세우면서 비로소 입주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한강뷰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어 지가가 순식간에 올랐고, 현재는 성수동에 있는 갤러리아 포레, 성수동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포레스트 다음으로 옥수동에 있는 아파트들이 성동구 내에서는 값이 가장 비싸다. 때문에 최근에는 달동네의 오명을 벗고 압구정동과 견주어 '옥구정동', '뒷구정' 등의 별칭이 생기기도 했다.

생활권은 작게 보면 금호동과 생활권이 하나로 묶이고, 크게 보면 금호동, 행당동, 응봉동과 함께 왕십리 남부 생활권에 속한다. 이 4개 동끼리는 서로 오고 가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한편으로는 금호동, 행당동, 응봉동과는 달리 한남동 바로 옆에 붙어 있기 때문에 한남동 생활권에 들어가기도 한다. 독서당고개를 넘으면 바로 한남더힐 유엔빌리지가 나온다.
[clearfix]
동면적 대부분을 거주지역이 차지하는 특징답게 역 주변이 주요 상권이다. 특히 포장마차와 술집, 음식점들이 옥수역 주변으로 형성되어 있다. 과거 90년도부터 5번 출구에 많은 포장마차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서서히 없어지더니 2020년 기점으로 전부 철거되었고 1번 출구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포장마차도 2023년 하반기에 철거되었다. 뜬금없이 2020년도 초부터 와인바가 옥수동 곳곳에 생겨났다. 소주와 맥주를 즐기려면 옥수역 주변 술집을 이용하면 된다.
단 한번도 햄버거 프렌차이즈가 있었던적이 없다.

4. 지리

서쪽과 북쪽은 남산과 이어지는 매봉산이 버티고 있으며, 동쪽 방향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는 경사지를 이루고 있다. 동쪽에는 달맞이봉이 버티고 있으며, 그 아래로 한강이 흐르고 있다.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이곳은 한남동과 함께 한성부 근교의 유원지로서 이름이 나 있었고, 사대부들은 이곳에 저마다 정자를 지어 때때로 피서를 와서 경치를 감상하곤 하였다. 세종 대에 이곳에 동호독서당을 설치한 것도 이러한 지리적 특성을 보고 위치를 정한 것이었다.

1950년대 이후, 서울의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면서 본래 옥수역 근방에 한정되어 있던 시가지가 급격하게 매봉산 산등성이까지 타고 올라가면서 산동네가 형성되었다. 재개발이 된 이후에도 아파트 단지가 경사진 지대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재개발 이후에는 한강뷰 프리미엄이 붙으면서 성동구에서 지가가 가장 높은 곳이 되었다.

매봉산이나 달맞이봉은 한강을 바로 앞에 두고 있어 사진 찍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 아래에는 이촌한강공원이 있는데, 옥수역을 통해 진출입이 가능하다. 다만 옥수동 앞 이촌한강공원의 경우, 딱 한강 보면서 산책하거나 자전거 탈 정도의 길만 나 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걸어서 약 40분 거리에 서울숲이 있으므로 산책 겸 쉬엄쉬엄 걸어서 다녀올 만하고, 동호대교를 건너면 잠원한강공원이 나온다.

5. 교통

5.1. 도로

<rowcolor=#fff> 도로명 주요 경유지
<colbgcolor=#004a8b> 강변북로 <colbgcolor=#fff,#1f2023> 가양대교 성산대교 동호대교 성수대교 천호대교
독서당로 한남역옥수사거리 ↔ 금호사거리 ↔ 응봉사거리
동호로 동호대교 금호역 약수역 장충체육관( 동대입구역) ↔ 종로5가
뚝섬로 옥수역 용비교 성수대교북단 ↔ 영동대교북단 ↔ 잠실대교북단 ↔ 동서울터미널
매봉길 독서당고개 ↔ 옥수사거리
한림말길 옥정중학교 옥수역
옥수동을 지나는 도로는 매우 적지만, 독서당로 동호로는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로서 연결되는 곳이 많아, 교통이 편리하다. 독서당로는 옥수동의 고지대를 지나가는 도로로서, 옥수동의 메인 스트리트 역할을 하고 있다. 독서당로 연선으로 맛집이나 개인 카페들이 들어서며 작은 상권이 형성되어 있다. 독서당로를 타고 서쪽으로는 한남오거리로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금호사거리를 지나 응봉사거리로 이어지며, 응봉사거리에서 독서당로와 고산자로가 합류하여 왕십리역 방향으로 이어진다.

동호로는 남쪽으로는 동호대교를 건너 논현로와 이어지고, 북쪽으로는 금호터널을 지나 장충체육관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장충체육관 앞에서 직진하면 퇴계로, 을지로, 종로 등과 교차하다가 대학로로 이어지며, 장충체육관 앞에서 우회전하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 방면으로 나아가게 되고, 좌회전하면 남산2호터널, 이태원로 방면으로 이어진다. 압구정역 방면으로 가려면 옥수사거리에서 동호대교 방면으로 빠지면 되지만, 장충체육관 방면으로 가려면 옥수사거리에서 매봉길로 빠진 후, 곧장 우회전하여 금호역에서 좌회전해야 하는 복잡한 길이다. 반대로, 장충체육관 쪽에서 옥수사거리 방면으로 진입할 때에도 이 길을 이용해야 하며, 금호역에서 직진을 하면 곧장 압구정역까지 가게 된다.

한림말길 옥정중학교에서 옥수역을 지나 뚝섬로로 이어지는 샛길이다. 뚝섬로를 이용하고자 하면 옥정중학교 뒤에서 한림말길로 빠진 다음, 뚝섬로를 이용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 뚝섬로를 타면 서쪽으로는 서빙고로로 곧장 이어지며, 한남역을 지나 용산역 앞에 이르게 된다. 반대로 동쪽으로는 용비교를 지나 성수동으로 빠지게 된다. 이 도로는 1997년에 강변북로가 이설되기 전까지는 강변북로 본선으로 이용되던 도로이며, 강변북로가 이설된 후에는 일반 도로로 격하되었다. 특히 이 도로 하행선(옥수역 방면)으로는 경원선 아래로 지어진 터널을 지나가게 되는데, 한강 방면으로 아치형 구멍이 뚫려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코스로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면, 독서당로를 통해 쭉 직진한 다음, 보광동교차로 앞에서 유턴하면 된다.

강변북로가 옥수동 관내를 지나가기는 하지만, 옥수동 관내에서는 진출입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강변북로 가양대교 방면을 이용하려면, 독서당로를 타고 쭉 직진하다가 서빙고고가차도를 타고 강변북로로 진입해야 하며, 천호대교 방면을 이용하려면, 뚝섬로를 따라 용비교를 건넌 후, 성수대교북단 교차로로 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빠지는 방법이 있다.

이외에도 옥수사거리에서 매봉길를 따라 북쪽으로 쭉 올라가면 남산타운아파트가 나오고, 약수역 방면으로 나아갈 수 있다.

5.2. 철도

파일:Seoulmetro3_icon.svg
금호역
파일:ITX-청춘 BI.svg 파일:Seoulmetro3_icon.svg 파일:GJLine_icon.svg
옥수역
관내에는 금호역 옥수역이 있다. e편한세상 옥수 파크힐스 래미안 옥수 리버젠, 브라운스톤 금호1차아파트의 경우는 금호역이 더 가깝고, 그 이외 지역은 옥수역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다만, 옥수역이 워낙 중심가인 독서당로에서 이용하기 불편한 위치에 있다는 게 단점이고, 생각보다 큰 옥수역 크기에 당황할수도 있으며 3호선 옥수역과 경의중앙선 옥수역과의 거리는 약170m 가량으로 먼 거리를 자랑한다. 심지어 경의중앙선의 경우는 배차 간격도 심히 나쁘다는 단점도 있다. 3호선,경의중앙선간 환승 통로에서 누군가 뛰기 시작하면 다들 뛰기 시작하는 장면을 볼수가 있다. 다만 용산~ 춘천 ITX-청춘이 옥수역에 정차한다는 것은 장점이다.

5.3. 버스

5.4. 공동주택

6. 교육

7. 유적

888년, 진성여왕 때 창건된 미타사라는 절이 있다. 원래 미타사는 금호동에 있었는데, 도적 때문에 옥수동으로 옮겼다는 설, 옥수동의 지형이 과부들을 낳는다하여 옥수동이 비구니 절을 지었다는 설이 있다.

8. 출신 인물

9. 기타

옥정초등학교 옥정중학교, 서울방송고등학교[3], 그리고 천주교 신자들의 결혼식 장소로 유명한 옥수동 성당도 위치해있다.

[1] 2023년 3월 주민등록인구 [출처] 옥수삼성아파트 앞 유래비 [3] 하지만 위 학교는 옥정초와 옥정중과는 달리 옥수역에서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옥수동에 위치해있기는 하지만 약수역을 통해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