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백군 延白郡 / Yŏnbaek Coun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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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대한민국[1] |
광복 당시 면적 | 935㎢ |
광역시도 | 황해도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1읍 19면 |
시간대 | UTC+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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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해도 동남부에 있던 군(郡). 면적은 약 935.6㎢. 광복 당시 1읍 19면으로 되어 있었으며, 군청은 연안읍 연성리에 있었다. 1944년 당시 인구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로 큰 군이었다.
한국 3대 평야 중 하나인 연백평야가 이 군뿐만 아니라 이웃 벽성군의 동쪽까지 펼쳐져 있다. 따라서 이 지방의 특산물로는 쌀이 있으며, 바다에서는 조기·새우, 땅에서는 토탄(土炭)이 있다.
송나라 서긍의 고려항로 |
동아시아에서 중국, 동남아등과 유일하게 고수를 소비하는 황해도 남부의 여러 지역중 하나이다. 이곳은 김장철에 배추를 쓰지않고 대신 고수로 고수김치를 해먹는다[2] 뿐만아니라 설 명절에 경기 충청 지역이 떡을 올리는 것과 다르게 연백 지역은 대신 만두를 올린다.
이러한 연백의 식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역사적 배경이 있는데, 고려 시대에는 벽란도에서 출발한 배가 보통 연백에 위치한 예성항을 통해 명주(明州, 現 절강성 영파시)에 도달하였다. 연백평야를 흐르는 예성강은 그 어원이“ 고려 때부터 중국의 송나라와 교섭할 때 이곳에서 모든 배를 띄워 예절 있게 맞아들이고 다시 바래다 주었던 강이다 해서 예성(禮成)이다“ 할 정도로 송나라 상인들의 왕래가 원체 많았던 곳이었다. 따라서 조선 시대 이 지역 예성강가에 살았던 중국인 매춘부들을 소재로 한 들놀이 '당녀소매무(唐女小梅舞)' [3] 라든가 고려 시대 송나라 상인들의 왕래가 많았을 때의 사실을 노래한 민요 「 예성강곡(禮成江曲)」등 당시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는 여러 민중예술이 전해진다.
2. 역사
2.1. 일제강점기
1914년 연안군과 배천군(白川)[4]이 통합되어 만들어졌다. '연백'이란 군명 역시 두 군의 앞글자에서 따온 것.[5] 따라서 같은 연백군이라도 연안 지역과 배천 지역의 특성이 달랐다고 한다.2.2. 광복 이후 ~ 6.25 전
광복 후 38선이 그어지자 연백군 역시 남북으로 분할되었다.연백군 대다수 지역이 남한에 속했지만 38선 이북의 일부 지역은 북한에 넘어갔다. 이때 북한은 일부만 남은 연백군을 폐지하지 않고[6] 평산군 적암면과 금천군의 예성강 서안 지역인 산외면과 서북면을 편입시켜 그대로 존치하였다.[7] 이 때문에 한동안 2개의 연백군이 공존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는데 북한쪽 연백군에 저수지와 관개시설 다수가 위치한 관계로 전쟁 직전인 1950년에는 농번기에 북한이 물을 통제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8]
2.2.1. 경기도 연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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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선포 이후 현재까지 폐지된 대한민국 행정구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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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주소1=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1=본 틀에 대한제국 선포(1897년 10월 12일) 이후 폐지된 행정구역만 등재한다.,
토론주소2=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2=대한제국 선포부터 광복(1945년 8월 15일) 전까지 폐지된 행정구역 가운데 현재 휴전선 이남에 위치했던 행정구역만 등재한다.,
토론주소3=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3=휴전선 이북에 위치한 행정구역을 원칙적으로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주소4=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4=단 광복 이후 6.25 전쟁 전까지 38선 이남에 위치했으나 휴전 후 북한 치하에 들어간 경우와 일부 영역을 수복했으나 인접 시군에 편입시켜 휴전선 이남에 실효지배하는 영역이 없어진 경우에 한해 등재한다.,
토론주소5=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5=명칭 변경 사례를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주소6=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6=폐지된 행정구역의 소속 도(道)는 폐지 당시를 기준으로 한다. 단 제주도에 소재했던 행정구역에 한해 제주특별자치도 소속으로 표기한다.,
토론주소7=OutstandingAgreeableFeignedKnowledge#10, 합의사항7=폐지된 행정구역이 행정구역 명칭과 단위가 같은 행정구역으로 다시 설치된 경우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주소8=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8=단 1995년 대규모 도농통합 뒤에 폐지된 동명의 행정구역은 등재할 수 있다.,
토론주소9=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9=폐지된 동·읍·면은 원칙적으로 등재할 수 없다. 단 1995년 대규모 도농통합 뒤에 동으로 승격되어 폐지된 읍·면은 등재할 수 있다.,
토론주소10=YouthfulTangibleDryClam, 합의사항10=1995년 이전에 폐지된 읍·면이라도 2개 이상의 행정구역에 분할 편입되어 폐지된 경우는 등재할 수 있다.,
토론주소11=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11=1995년 후 동으로 승격되어 폐지된 읍·면이라도 군 전체가 시로 승격하면서 관할 읍·면이 동으로 승격되어 폐지된 경우는 등재할 수 없다.,
토론주소12=FriendlyObtainableAnnoyedCopper#11, 합의사항12=1995년 이후에 군이 폐지되고 해당 지역에 동명의 새로운 시를 설치한 경우 이전의 군을 틀에 등재하지 않는다.(따라서 틀에서 경기도 광주군을 제외한다.),
)]
경기도의 폐지된
군 {{{#!wiki style="margin: -5px -10px; display: inline-tab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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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백군
延白郡 Yŏnbaek County |
}}} | |||
<colbgcolor=#70122c><colcolor=#fff> 군청 소재지 | 연안읍 연성리 | |||||
광역자치단체 | 경기도 | |||||
하위 행정구역 | 1 읍 19 면 | |||||
면적 | 886㎢ | |||||
인구 | 246,588명[9] | |||||
인구밀도 | 278.32명/㎢ | |||||
군수 | 홍정석[6.25직전군수] | |||||
국회의원 | <colbgcolor=#70122c><colcolor=#fff> 갑[11] |
[[대한국민당(1949년)| 대한국민당 ]][당선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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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배 (재선)[13][14] | |||
을[15] |
[[무소속(정치)| 무소속 ]][당선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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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초선) |
광복 후 38선이 그어지자 미군정의 임시조치로 38선 이남에 위치한 벽성군 동부 지역[17]을 편입한 다음 황해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었다.[18] 또한 면 대부분은 38선 이북에 있고 일부만 이남에 위치한 연백군 화성면과 운산면, 구 벽성군 영천면은 각각 석산면과 은천면, 내성면에 편입되었다. 6.25 전쟁 전까지는 옹진군과 함께 남한지역이었기 때문에, 연백 출신 황해도계 실향민들도 상당히 많다.
여담으로 6.25 이전까지 연백군에 경찰서가 셋이나 있었다.
- 연안경찰서 (연안읍 소재) - 연안읍, 호동면, 호남면, 해성면, 송봉면, 봉서면, 괘궁면, 봉북면, 해룡면 관할
-
배천경찰서 (유곡면 소재) - 은천면, 해월면, 온정면, 도촌면, 유곡면, 석산면 관할
배천 지역의 전통적 중심지는 현 북한 치하에서 배천읍 소재지인 은천면이지만, 시가지가 38선 남쪽으로 겨우 몇백 미터 떨어져 있는지라(...) 적진에 너무 가까워서 은천면 남쪽에 있는 유곡면에 경찰서를 두었다. -
청단경찰서 (추화면 소재) - 추화면, 용도면, 내성면, 일신면, 청룡면 관할.
보면 알겠지만 구 청단서의 관할 구역은 용도면을 제외하면 분단 이전 벽성군 동부에 해당하는 면들이었고 청단서 자체 역시 벽성군 지역에 위치했다. 온전한 연백군 소재 경찰서들은 연안과 배천 2개 서였던 셈이다.
초기 대한민국에 연백군은 미곡과 소금 생산을 책임져주는 비옥한 땅이였고 때문에 인천부윤이 미곡생산량을 감독하기 위해서 연백까지 시찰 왔을 정도이다.
1949년, 홍정석 초대 군수의 후임으로 다른 사람이 지명된다는 소문이 돌자 연백군 20명 읍ㆍ면장들이 군수유임을 위해서 총사퇴를 각오하고 정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홍군수는 1949년 8월 26일 새로운 인사를 단행할때도 연백군수에 유임될 수 있었다.
2.3. 북한 치하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 치하에 점령된 후 북한은 38선 이남지역에 남연백군을 설치했다가 군면리 대폐합을 단행하면서 1952년 12월에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다시 분리되었다. 다만 연백군을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재분할한 뒤에도 북한은 이 일대의 평야인 연백평야는 새 명칭을 만들지 않고 평야만 벌[19]로 고쳐서 연백벌이라 부르고 있다. 애초에 연안평야 배천평야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철도 노선으로는 토해선이 있었으나, 한국전쟁당시 예성강철교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본 북한이 예성강철교를 파괴하고 노선 일부를 끊어놓은 다음, 일부 구간을 북쪽으로 이설하여 현재는 배천선이 군 내부를 가로지른다.
3. 통일 이후 전망
현재 연안과 배천 모두 시가지가 상당히 발달해 있기 때문에[20], 남북통일이 되면 시로 승격되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도 있다. 2008년 북한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 행정구역상 연안군의 인구는 15만 8845명, 배천군 15만 9825명으로 합치면 31만 명이 넘는다. 이것도 청단군으로 편입된 구 괘궁면, 목단면, 그리고 북한군 주둔 인구[21]를 제외한 수치.[22]물론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현실화되려면 이촌향도로 주민들이 빠져나가지 않아야 하는데, 장기적으로는 수도권에 연합될 가능성이 있지만 통일 직후 당분간은 인접한 개성시나 해주시, 또는 수도권으로 인구가 유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23] 덤으로 저 북한군이 통일 이후에도 여기 주둔할 확률은 없다.
4.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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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
해주시 |
송림시 |
||<-5><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545b96>
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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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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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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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 구 연안군 지역
- 연안읍(延安邑)
- 봉북면(鳳北面)
- 관할 리 : 소성(韶成), 광동(光東), 산정(山井), 송전(松田), 오성(梧城), 오현(梧峴), 용남(龍南), 원동(院東), 풍양(豊陽)
- 면 북쪽으로 38선이 지나간다.
- 봉서면(鳳西面)
- 관할 리 : 정촌(鼎村), 명천(鳴川), 미산(美山), 번계(磻溪), 봉황(鳳凰), 소아(小雅), 월파(月波), 현죽(玄竹)
- 토해선 철도가 지나며, 북한에서 오현역이라고 부르는 봉서역이 있다.
- 송봉면(松逢面)
- 관할 리 : 운계(雲溪), 대룡(大龍), 노정(老亭), 도룡(渡龍), 송현(松峴), 증산(增山), 청계(淸溪), 청송(靑松)
- 해성면(海城面)
- 관할 리 : 초양(草陽), 구룡(九龍), 매정(梅井), 무릉(武陵), 일산(日山), 해남(海南), 화양(華陽)
- 연백군의 최남단. 몇 개의 아주 낮은 야산만 있을 뿐 전역이 평야이며, 이렇다 할 강도 없다. 면 내에서도 최남단인 해남리에 있는 연백 염전은 한반도 최대 소금 산지였는데[24], 6.25전쟁이 끝나고 연백염전이 북한 수중으로 떨어진 후에 남한은 이태 동안 극심한 소금 부족을 겪을 정도였으며, 그 이후에야 신안군 같은 서남 해안 일대의 천일염전 개발이 촉진되었다. # 한강 하구에 있는 무릉리, 구룡리, 해남리 동쪽에 강화군 교동도와 접하며, 특히 해성면 해남리와 교동면 서한리는 한강과 경기만의 경계에 해당한다.
- 호남면(湖南面)
- 관할 리 : 소정(素井), 개현(蓋峴), 석천(石泉), 송야(松野), 읍동(邑洞), 자봉(雌鳳), 파항(把抗), 호서(湖西)
- 한강 하구인 송야리, 석천리 건너편에 강화군 교동도와 접한다.
- 호동면(湖東面)
- 관할 리 : 나진포(羅津浦), 개안(開安), 거안(居安), 남당(南塘), 봉화(烽火), 용산(龍山), 유정(留亭), 추정(楸井)
- 토해선이 지나며, 북한에서 온정역이라고 부르는 연안온천역이 있다. 한강 하구인 유정리, 봉화리 건너편에 강화군 교동도와 접한다.
4.2. 구 배천군 지역
- 금산면(金山面)
- 관할 리 : 선암(仙巖), 대아(大雅), 석천(石泉), 선성(仙城), 예의(禮義), 은산(銀山), 일곡(日谷), 장현(長峴), 화양(花陽)
- 전지역이 38선 이북이며, 남쪽에 예의저수지가 있다. 평산·금천군의 경계에 가까운 금산면의 황의산(黃衣山, 478m)은 군내 최고봉이었다.
- 도촌면(道村面)
- 석산면(石山面)
- 관할 리 : 용동(龍東), 구산(九山), 묵화(墨花), 문창(文昌), 수복(壽福), 월암(月巖)
- 온정면(溫井面)
- 관할 리 : 금성(錦城), 낙선(樂善), 모례(慕禮), 상운(祥雲), 아양(峨洋), 창동(昌東), 향정(杏亭)
- 면소재지인 금성리에 연안온천이 있다. 정작 이 지역은 조선시대 배천군 지역이라는 것이 함정(…). 지금도 북한 행정구역상으로는 배천군에 속한다. 한강 하구인 아양리, 창동리 건너편으로 강화군 교동도와 접한다.
- 운산면(雲山面)
- 관할 리 : 호산(虎山), 강서(江西), 대야(大野), 도태(都台), 석산(石山), 우포(牛浦), 주암(舟巖), 파릉(巴陵)
- 연백군 동북쪽에 있는 면. 남쪽 일부를 제외한 전지역이 38선 이북이었다. 남쪽 끝인 강서리 백마산에는 고찰(古刹) 강서사(江西寺)가 지금도 남아 있다. 예성강을 경계로 동쪽에 개성시와 접하며, 북쪽으로 금천군과 접한다.
- 유곡면(柳谷面)
- 관할 리 : 식현(食峴), 계화(桂花), 금곡(金谷), 영성(永城), 용현(龍峴), 유천(柳川), 이포(梨浦), 충무(忠武), 화성(花城)
- 학 도래지가 식현리에 있다. 동쪽은 예성강에 접하고, 북쪽 은천면, 운산면과는 옥산강(玉山江)을 경계로 접한다.
- 은천면(銀川面)
- 관할 리 : 연남(蓮南), 고읍(古邑), 구암(龜巖), 비봉(飛鳳), 산음(山陰), 성호(星湖), 양청(兩請), 연동(蓮東), 영천(潁川), 옥산(玉山), 정촌(亭村), 홍곡(鴻谷)
- 과거 배천군의 중심지였다. 치악산(361m) 아래 시가지가 전개되어 있다. 일제 때는 외국인이 상권을 잡지 못하여 제2의 개성이라는 평이 있었다 한다. 하지만 38선이 그어지고 보니 배천 시가지 대부분은 38선 이남인데 읍치의 진산(鎭山)인 치악산은 물론이고, 심지어 배천 시가지 북쪽 끄트머리 일부도 38선에 닿아버리는 바람에 개성에서 벌어진 문제가 배천에서도 똑같이 일어났다. 그래서 배천경찰서는 보다 후방인 유곡면에 두어졌다. 배천 향교, 문회서원 외에 영천리에 조선 세종 때에 발견된 배천온천이 있다. 배천온천은 온양온천과 함께 서울에서 많은 입욕객들이 왔었다. 토해선 철도 배천역이 있다. 은천군(銀泉郡)과는 관련이 없다.
- 해월면(海月面)
- 화성면(花城面)
4.3. 구 평산군 지역
1906년에 월경지 및 땅거스러미를 정리할 때 연안군에 편입되었다.- 괘궁면(掛弓面)
- 관할 리 : 우번(羽翻), 갈암(葛巖), 고포(古浦), 관동(冠洞), 구암(鳩巖), 도성(桃城), 봉현(鳳峴), 산두(山斗), 생금(生金), 한정(寒井), 화천(華川)
- 38선이 면 가운데를 지나며, 북서쪽에 구암저수지를 끼고 있으며 서쪽은 벽성군과 화양천을 끼고 마주한다.
- 목단면(牧丹面)
- 관할 리 : 탁영(濯纓), 덕양(德陽), 동운(東雲), 봉덕(鳳德), 성주(聖周), 아현(雅峴), 의현(義峴), 정동(井洞), 창덕(彰德)
- 전지역이 38선 이북이었다. 남서쪽에 구암저수지(鳩岩貯水池)[25]를 끼고 있는데, 금산면·화성면의 예의저수지(禮義貯水池, 여기도 38선 이북이었다)와 함께 연백평야에 물을 대는 수자원이었음에도 전지역이 38선 이북이라 북한에서 물을 막았다 트다 하는 통에 농사철마다 말썽이 되곤 했다. 면소재지인 탁영리는 북쪽으로 벽성군 동운면, 평산군 용산면과의 경계에 있으며, 부근 목단산의 탁영대(濯纓臺)[26]가 있어 아예 이 부근을 가리켜 탁영대라 부르기도 했다. 탁영대는 해주시·연안읍· 남천읍으로 통하는 삼거리가 있는 교통 요충지였다.
- 용도면(龍道面)
- 관할 리 : 천태(天台), 난계(蘭溪), 대평(大坪), 발산(鉢山), 송학(松鶴), 심계(深桂), 안정(安井), 옥야(沃野), 운중(雲中), 청계(淸溪), 현암(玄巖)
- 토해선이 지나며 천태역이 위치한다. 구암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화양천(花陽川)을 경계로 벽성군 추화면(청단)과 인접한다.
- 해룡면(海龍面)
- 관할 리 : 금천(琴川), 금산(錦山), 대흥(大興), 맹산(孟山), 부사(富士), 용남(龍南), 흥운(興雲)
- 토해선이 지나가며 풍천역이 있다.
5. 정치
자세한 내용은 연백군/정치 문서 참고하십시오.6. 여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과 함께 연백군 전역이 북한 땅으로 넘어갔지만, 전쟁 이전(1950년 5월) 실시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연백군 을의 김태희 의원[27]은 지역구를 상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선거가 있는 1954년까지 그 직과 임기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는 개성시, 개풍군, 장단군, 옹진군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대한민국은 포천시 북부/연천군/철원군/김화군 남부/화천군/양구군/인제군/양양군/속초시/고성군 지역을 새로 얻은대신 개성시(개풍군)/연백군/옹진&강령 반도를 상실하게 되었다.연안읍, 호남면 일대에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21호(연안 학 도래지[28]), 봉서면, 봉북면, 해룡면 일대에 제22호(연안 학 도래지), 은천면, 유곡면, 도촌면 일대에 제23호(백천 학 도래지), 도촌면 토월리 산25 일대에 제71호(백천의 학 및 백로 번식지)가 지정되어 있으나, 미수복지역이기 때문에 1962년에 일단 해제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때 연백 분할안이 나온 적이 있다.
연백과 인천 강화도 교동도가 가깝다보니 교동 사투리가 연백 사투리와 비슷하여 이북 말씨 느낌이 난다. 또한 한국전쟁 당시 교동도에 피난 온 연백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1]
'연백군'은 북한에는 없는 행정구역으로 대한민국에서만 사용되는 행정구역이다.
[2]
현대의
강화도와
파주 북부,
전북도 군산 일부 지역에서
고수를 즐겨먹어온 것은
6.25 전쟁 당시 황해도
실향민의 영향이다. 지금도
강화 사투리는 황해 방언과 매우 흡사하다.
[3]
예성강가에는 당시 국제 무역항이던 벽란도가 있었고, 따라서 그런 지역은 자연스레 매춘 산업이 발달하기 마련이다. 중국 상인들이 자주 활동했던 곳이니 중국 매춘부들이 와서 일한다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 않다.
[4]
한자로는 白川이지만, 읽을 때는 '백천'이 아니라 '배천'으로 읽는다.
[5]
재미있는 것은 '배천'은 '배'로 읽었으면서, 이 때는 '연배'가 아니라 '연백'으로 원음으로 읽는다는 것.
[6]
반대로 일부만 남은
옹진군은
벽성군에 편입시켜 폐지하였다.
[7]
인민위원회는 적암면에 두었다. 지금도 적암면 일대는 북한 연백군의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봉천군의 군소재지이다.
[8]
더군다나 이해 봄은 유독 가물었기 때문에 피해가 더 컸다.
[9]
1949년 기준
[6.25직전군수]
[11]
연안읍, 송봉면, 해룡면, 용도면, 괘궁면, 추화면, 청룡면, 일신면, 내성면, 봉서면
[당선당시]
[13]
전 연백군수
[14]
전쟁중 납북
[15]
은천면, 유곡면, 해월면, 온정면, 도촌면, 석산면, 봉북면, 호동면, 호남면, 해성면
[당선당시]
[17]
내성, 추화, 일신, 청룡면
[18]
군정법령 제22호
[19]
북한에서는 평야의 이름을 지칭할 때 례당벌(
예당평야), 호남벌(
호남평야), 김해벌(
김해평야)등과 같이 '벌'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20]
6.25 전에는 인구가 많아서
연백군 갑,
연백군 을 2개 선거구가 있었다.
[21]
북한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역별인구에 나온 전체인구와 전국인구의 전체인구가 다르다.
* 특히 지역별인구에 나온 연령별 남녀 인구 총합은 20대에서 성비가 여성이 남성에 비해 2배나 많은 세대도 나타나는데, 이것은 북한군의 인구가 지역별인구 통계에 빠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2]
북한에 있는 군들의 인구를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남한에 있는
군, 심지어
시들보다도 인구가 많은 것을 알 수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북한주민들은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기에 이촌향도현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수도 적고, 인구도
평양시,
함흥시,
청진시를 제외하면 50만 명을 넘는 곳이 없다.
[23]
현행법상으로 시가지 인구가 5만 명 이상인 군이나 둘로 분산된 인구 2만 이상의 시가지 인구의 합이 5만 이상이고 전체 인구가 15만 이상이면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행령을 만족하는 군이 시로 승격될 수 있다. 따라서 연백군은 연안읍 인구만 5만 명을 넘거나 연안읍과 은천면(배천군 중심지)인구의 합이 5만 명을 넘는다면 법률로 정하는 시 승격 조건을 만족하고, 연안읍 인구와 은천면 인구가 각각 5만을 넘기면 연안시, 배천시로 분리되어 모두 승격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현행 시행령에 따르면 5년 연속으로 인구가 증가해야 시 승격이 가능하기 때문에 통일 후 인구 유출이 발생할 경우 연백군은 시행령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시로 승격될 수 없다. 물론 통일 후 휴전선 이북지역에 한해 한시적으로 시행령에 예외 조항을 두거나 아예 시행령을 고칠 가능성도 있으므로 통일이 가시화되기 전에는 어떻게 될지 판단이 어렵다. 참고로 현행 지방자치법에는 특정 군에서 시가지 인구 5만 이상을 만족하는 지역을 분리해 도농복합시를 설치할 수 있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에 연안시, 배천시로 각각 승격하기 위해서는 입법을 통해 연백군을 분할하는 조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24]
위성사진으로 봐도 크고 아름다운 염전이다.
[25]
평산 방면에서 흘러온 화양천(花陽川)을 막아 축조한 저수지로 면적 10.76㎢로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 최대의 저수지였다. 일부 문헌에는 황해호(黃海湖)라 나온다.
[26]
목은 이색이 한때 이곳에 살며 이름지었다. 탁영(濯纓)은 '갓끈을 씻는다'는 뜻으로
초사(楚辭)의 '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말이다.
충주 살미면에도 같은 이름의 장소가 있다.
[27]
갑구의
김경배 의원은 전쟁중에 납북되었다.
[28]
이 문서의 "학 도래지"라고 하는 것은 실은
황새 도래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