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碧城郡 / Pyŏksŏng County
벽성군 碧城郡 / Pyŏksŏng Coun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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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북한 | |
인구 | 90,753명 | |
광복 당시 면적 | 1,552㎢ | |
광역시도 | 황해남도 | |
광복 당시 행정구역 | 20면 | |
시간대 | UTC+9 | |
[clearfix]
1. 개요
황해남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군 소재지인 벽성읍은 해방당시 가좌면 취야리였다.
광복 당시에 20개 면으로 이루어졌고 군청은 해주시 부용동(북본정)에 있었다.
2. 역사
원래 해주군(1895년에 23부제 시행으로 해주목에서 개편, 설치)이었으나, 1938년에 해주읍이 해주부로 분리 승격되며 나머지 지역은 벽성군이 되었다. '벽성'은 조선후기인 1608년에 해주목에서 강등된 벽성현(碧城縣)에서 유래되었다.광복 이후 삼팔선이 그어지면서 가좌면 일부, 대거면 일부, 월록면 일부, 해남면 대부분, 동강면, 송림면 전 지역(서부)와 영천면 일부, 내성면 대부분, 추화면 대부분, 일신면, 청룡면 전 지역(동부)가 38선 이남에 위치하였는데 이렇듯 꽤 많은 면들이 남한령이 되면서 남한에서도 벽성군을 그대로 유지시킬 법도 했는데, 정작 벽성군의 중심지 역할을 해야 할 해주시가 북한령이 된 데다가, 결정적으로 38선 이북 지역을 제외하고 나니 해주만 때문에 두 동강 나버렸으므로 벽성군의 남한령 지역은 그대로 존치시키지 않고 서부 지역은 옹진군, 동부 지역은 연백군에 편입시켰다. 그 과정에서 가좌면은 옹진군 부민면에, 대거면과 월록면은 옹진군 옹진읍에, 영천면은 연백군 내성면에 편입시켰다. 물론 6.25 전쟁 휴전 이후에는 연평도를 제외한 전 지역이 옹진, 연백과 함께 완전히 북한령이 되고 말았지만. 같은 시기에 북측은 옹진군 옹진읍, 교정면, 가천면 각 일부를 편입했다가 1951년에 해방 당시로 환원했고, 1952년에 태탄군, 신원군, 청단군을 분리 신설하며 면적이 크게 줄었다.
3. 지리
광복 당시에는 면적 1553 ㎢[1]로
해주시를 둘러싼 매우 큰 군이었으나, 1952년 북한 정권이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지금처럼 영역이 줄었다. 교통편으로는
옹진선 철도[2]가 지난다.
4. 북한 기준 행정구역
총 1읍 21리로 구성되어 있었다.- 읍: 벽성읍
-
리: 남창리, 내호리, 대성리, 도현리, 용정리, 백운리, 사현리, 상림리, 서원리, 석담리, 석동리, 쌍암리, 안곡리, 옥정리, 원평리, 월봉리, 월현리, 장천리, 장현리, 죽천리, 통산리
5.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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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도에는 1936년[3][4]과 1943년[5]의 개편이 반영되지 않았다. |
인구 : 19,670명 (1946년)
벽성군은 대한민국에서 면을 가장 많이 관할하는 행정구역이다.
- 가좌면(茄佐面)
- 검단면(檢丹面)
- 관할 리 : 온천(溫泉), 가현(加峴), 냉정(冷井), 대암(大巖), 도락(道樂), 지남(指南)
- 군 서북쪽 끝에 있는 면으로 면소재지는 온천리이다. 이목(梨木)시장은 지역 농산물의 집산지이다. 광탄천(鑛灘川)이 이 면에서 발원, 장곡면 죽천, 장연군 태탄을 거쳐 황해로 흘러든다.
- 고산면(高山面)[6]
- 관할 리 : 원평(原坪), 사현(士峴), 석담(石潭), 수정(壽井), 입암(立巖)
- 석담리의 석담구곡은 율곡 이이와도 관계 깊은 곳으로, 고산구곡가로 유명하다. 율곡 이이는 1곡 관암(冠巖), 2곡 화암(花巖), 3곡 취병(翠屛), 4곡 송애(松崖), 5곡 은병(隱屛), 6곡 조협(釣峽), 7곡 풍암(楓巖), 8곡 금탄(琴灘), 9곡 문산(文山)으로 이름붙였으며, 가장 경치가 좋다는 은병에 소현서원을 세웠다. 현재는 소현서원의 강 건너편에다 석담휴양소가 운영되고 있다. 석담리에 이이의 가문인 덕수 이씨 문성공파의 종가가 있었다. 한국전쟁 때 14대 종손이 월남해서 문성공파 후손들은 남한에도 있다.
- 금산면(錦山面)
- 관할 리 : 작천(鵲川), 감수(甘水), 냉정(冷井), 부산(缶山), 산산(蒜山), 송전(松田), 신창(新昌), 추정(楸井), 학현(鶴峴)
- 해주시 동북쪽에 있는 면으로 재령 방면으로 통하는 철도가 지난다. 면소재지는 작천리.
- 나덕면(羅德面)
- 관할 리 : 통산(通山), 나치(羅峙), 내곡(內谷), 일곡(日谷), 자하(紫霞), 전산(錢山), 중덕(中德), 통천(通天), 한평(閑坪)
- 내성면(來城面)
- 관할 리 : 소호(蘇湖), 금성(錦城), 대산(大山), 오봉(梧峰), 팔학(八鶴), 화전(花田)
- 전지역이 38선 이남이었으며, 면소재지는 소호리.
- 대거면(代車面)
- 관할 리 : 도평(桃坪), 갈현(葛峴), 강정(江亭), 고산(苽山), 수동(水洞), 숙달(淑達), 은동(隱洞), 종평(宗坪)
- 일부 지역이 38선 이남이었다.
- 동강면(東江面)
- 관할 리 : 오금(梧琴), 금산(琴山), 덕현(德峴), 사인(舍人), 석교(石橋), 연봉(鳶峰), 화산(花山)
- 옹진반도에 있는 면으로, 전지역이 38선 이남이었다. 면소재지는 오금리.
- 동운면(東雲面)
- 관할 리 : 덕달(德達), 공수(公須), 두동(斗洞), 사동(沙洞), 삼정(參井), 영정(咏亭), 운양(雲陽), 주산(周山)
- 미율면(彌栗面)
- 관할 리 : 석정(石井), 가정(佳井), 내동(內洞), 도현(道峴), 동호(東湖), 둔창(屯倉), 매정(梅井), 안곡(安谷)
- 서석면(西席面)
- 관할 리 : 남파(南坡), 동양(東陽), 문정(文井), 백운(白雲), 서원(書院), 석동(席洞), 송간(松間), 신광(神光), 연근(蓮根), 율동(栗洞), 읍청(揖淸), 지동(芝洞)
- 해주시 서쪽에 있는 면으로, 1938년 서변면(西邊面)[7]과 석동면(席洞面)이 통합되어 설치되었다. 면소재지는 남파리.
- 송림면(松林面)
-
관할 리 : 송현(松峴), 가평(加坪), 내동(內洞),
대수압(大睡鴨),
소수압(小睡鴨), 육도(六島),
연평(延坪) - 옹진반도에 있는 면으로, 전지역이 38선 이남이었다. 면소재지는 송현리. 송현·가평·내동 3개리만 육지에 있고, 나머지 3개리는 도서지역이다. 원래 연평리( 연평도)도 송림면에 속했었으나 한국전쟁 이후 연평리를 제외한 면 전역이 북한령이 되면서 남한령 송림면은 연평리 하나만을 관할구역으로 삼았고 1999년에 송림면을 연평면으로 개칭하였다. 연평리를 제외한 나머지 법정리는 이북5도 체계하에서 여전히 벽성군 송림면에 속해 있다.
- 영천면(泳泉面)
- 관할 리 : 공해(控海), 갈산(葛山), 매산(梅山), 수산(繡山), 영양(迎陽), 장방(長芳), 좌랑(佐郞), 척두(尺頭), 한우(閑右)
- 해주시 동쪽에 있는 면으로, 1938년 영동면(泳東面)[8]과 천결면(泉決面)이 통합되어 설치되었다. 일부 지역이 38선 이남이었다. 면소재지는 공해리.
- 운산면(雲山面)
- 관할 리 : 지촌(芝村), 관동(館洞), 당동(堂洞), 백정(柏亭), 서동(書洞), 오담(鰲潭), 유정(柳亭), 황금(黃金)
- 군 서북쪽에 있는 면으로 면소재지는 지촌리이다. 오담리는 김구가 태어난 곳이다.
- 월록면(月祿面)
- 관할 리 : 상림(桑林), 군만(群蠻), 답동(畓洞), 사천(沙川), 삼현(三峴), 안현(安峴), 용정(龍井), 장둔(長屯)
- 일부 지역이 38선 이남이었다.
- 일신면(日新面)
- 관할 리 : 생왕(生旺), 광전(廣田), 내동(內洞), 무정(武井), 법교(法橋), 심해(深海), 저산(滁山), 천석(泉石)
- 전지역이 38선 이남이었으며 면소재지는 생왕리이다. 저산리의 저(滁) 자는 심지어 중국 고문헌에서도 쓰인 적이 거의 없는 벽자라서[9] 입력할 때와 읽을 때 심각하게 애로사항이 꽃핀다. 참고로 저산리는 38선 이남에 있어서 남연백군에 속했다가 1952년 북한이 청단군 남촌리와 합병시키면서 폐지되었다.
- 장곡면(壯谷面)
- 관할 리 : 죽천(竹川), 국봉(菊峰), 대성(大成), 동봉(東峰), 백운(白雲), 쌍암(雙巖), 정현(精峴), 죽동(竹洞), 회산(回山)
- 면소재지인 죽천은 시장이 있는 농축산물의 집산지이다.
- 청룡면(靑龍面)
- 관할 리 : 영양(迎陽), 구정(龜井), 덕녕(德寧), 맹해(孟海), 용매(龍媒), 학산(鶴山), 학월(鶴月)
- 군 남쪽에 위치하며, 전지역이 38선 이남이었다. 면소재지는 영양리이다. 앞바다에 용매도(龍媒島)가 있는데, 위성사진으로 보면 현재는 본토와의 사이에 다리(방파제)가 놓인 듯하다.
- 추화면(秋花面)
- 해남면(海南面)
- 관할 리 : 오남(梧南), 당산(堂山), 봉대(峰垈), 삼봉(三峰), 항현(項峴)
- 옹진반도에 있는 면으로, 거의 전지역이 38선 이남이었다. 면소재지는 오남리.
[1]
땅 넓기로 유명한
안동시와 면적이 거의 비슷하다!
[2]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옹진선과
토해선 철도
[3]
영동면(泳東面) 광석리, 석계리, 왕신리, 청풍리가 해주시로 편입되었다.
[4]
단, 서변면 선산리, 동애리, 용당리가 편입된 것은 해당 지도에 반영되었다.
[5]
서석면 읍청리, 동양리, 율동리가 해주시로 편입되었다.
[6]
전라북도
완주군과
함경남도
정평군에 이름과 한자가 똑같은 면이 있다.
[7]
해주읍 시가지 바로 서쪽 및 남쪽(38선 이남인 용당포 반도) 지역을 관할했으며, 1936년 일부 지역이 먼저 해주읍에 편입되었다.
[8]
해주읍 시가지 바로 동쪽 지역을 관할했으며, 1936년 일부 지역이 먼저 해주읍에 편입되었다.
[9]
저(滁) 자는 중국
장쑤성
난징시 북쪽으로 흘러
장강 하류에 합류하는 저하(滁河)라는 물줄기, 또는
안후이성
추저우시(滁州市)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용 한자이다. 위 두 지역의 지명으로만 쓰일 뿐 다른 뜻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