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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4:14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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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جبهه مقاومت ملی افغانستان[1]
National Resistance Front of Afghanistan (NRF)
[2]
파일: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기.svg 파일: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문장.svg
깃발 문장
<colbgcolor=#000> 창설일 2021년 8월
임시 수도 바자라크

[[타지키스탄|]][[틀:국기|]][[틀:국기|]]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
위치 아프가니스탄 판지시르 주

[[타지키스탄|]][[틀:국기|]][[틀:국기|]][3]
홈페이지 파일: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문장.svg [4] | 파일: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 문장.svg [5]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6]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7]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결성3. 전망
3.1. 저항군의 상황
3.1.1. 판지시르의 저항과 함락3.1.2. 동맹 세력의 발원과 소탕
3.2. 저항군 지지측이 낙관하던 탈레반 정권의 전망
3.2.1. 탈레반의 외교3.2.2. 군벌들의 이해관계3.2.3. 심각한 경제난
4. 기타5. 무장투쟁 포기 칼럼 논란6.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아프가니스탄의 반(反) 탈레반 저항군이자 미승인 망명정부.

과거 북부동맹의 계승과 재결성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때문에 '신 북부동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2021년 8월 31일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가 회장을 맡고 있는 마수드 파운데이션 재단에서 gofundme 후원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탈레반의 위협으로부터 판지시르 주 사람들 및 반 탈레반 저항 세력을 구호 및 지원하기 위해 시작되었으며 $300,000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10월에 들어 하자라 저항군과 아프간 내의 16개 주에서 크고 작은 반 탈레반 저항군들이 국민 저항전선에 합류하였다고 한다.

현재 연락사무소를 미국 타지키스탄 두샨베에 개설했다. 타지키스탄 주재 아프간 대사는 저항전선을 지지하는 중이다. 두샨베 연락사무소는 아프간 내부 거점들의 소멸 이후 사실상 저항전선의 본부로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결성

파일:Ahmad Massoud 4.jpg
파일:National Resistance Front of Afghanistan 2.png
아흐마드 마수드와 국민 저항 전선 # 아흐마드 마수드와 암룰라 살레 및 국민 저항 전선 지도부 #[8]

2021년 아프간 내 미군 철수 단 2개월만에 아프간 정권 탈레반의 공세로 인해 무너졌다. 아프간 정권의 수뇌부는 항복 내지 도피해버렸으며[9] 그로 인해 사실상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에게 장악되었다.
파일:5a98fc8c-7053-4478-a491-497c24711724_w408_r0_s.png
저항 전선의 거점 지역 판지시르.
탈레반의 장악에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아들인 아흐마드 마수드가 고향 판지시르에서 반 탈레반 및 잔존 정부군[10], 정부 인사들을 규합하여 탈레반에 대항한 저항 세력을 결성했다.[11] Laregledujeu 아주경제 기사.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 항복하기 이전 판지시르로 흘러간 어느 정도 양의 물자가 저항군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3. 전망

3.1. 저항군의 상황

(전략)
수백만 명의 아프간 사람들이 당신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열린 사회를 갖기 위해 싸워 왔습니다. 소녀들이 의사가 될 수 있고, 언론들이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고, 우리 젊은이들이 춤을 추고 음악을 듣거나, 한때 탈레반이 공개 처형을 위해 사용했던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다시 그렇게 될 수도 있습니다.

탈레반은 아프간 국민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탈레반의 통제하에 아프가니스탄은 틀림없이 이슬람 과격 테러의 근간이 될 것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음모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부화하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무자헤딘 전사들과 나는 아프간 자유의 마지막 보루로서 판지시르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의 사기는 온전합니다. 우리는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기, 탄약, 보급품이 더 필요합니다.

미국과 그 민주 동맹국들은 단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공통적으로 테러리즘에만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공유된 이상과 투쟁으로 이루어진 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유의 대의를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이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2021년 8월 18일,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가 직접 작성한 워싱턴포스트 기고문 #

저항군은 탈레반과의 매우 큰 병력 격차와 제한된 물자로 인해, 초기부터 실질적인 소탕 시점에 이르기까지 전선이 판지시르내에 국한되어있었다. 저항군은 수비적인 입장으로 전역을 아프간 전체로 확대시킬 수 있는 여력이 부족했으며 현 시점엔 소규모 인원의 도심지 공격 후 철수 등 게릴라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결성 시점, 전직 아프간 정부 인사들을 인용한 뉴욕 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판지시르에 배치된 군대가 2,000~2,500명 사이로 추산된다고 한다.

21년 9월 6일부터 탈레반의 판지시르에 대한 최종적 공세가 개시되었다. 공세 개시 당일 임시 수도였던 바자라크가 공격당했으며, 이후 3일간 수차례 통제권을 두고 격전을 벌이다 결국 8일 이후로 저항군은 바자라크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다.

9월 10일에 탈레반은 저항군측의 대통령직을 사실상 수행하던 전 부통령 암룰라 살레의 피신처를 점령했다. 암룰라는 성공적으로 도피해 이후 타지키스탄으로 망명했으나, 남동생이던 로훌라 살레는 탈출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결국 9월 13일 이후로 판지시르 계곡의 실질적인 거주지인 저지대에서 저항군은 거의 축출되었으며, 9월 18일을 기점으로 저항군은 바자라크를 포함한 저지대를 완전히 포기했다.

9월 28일에는 저항군이 계곡 상부인 안다랍을 탈환하였다고 홍보했으나, 큰 의미있는 저항은 없었다. 10월 15일을 기점으로 결국 판지시르는 완전히 탈레반이 통제하고 있으며, 산발적으로 전투를 이어가던 개별 전투원들 역시 11월 초를 넘기지 못하고 해당 지역에선 모두 토벌되었다.

11월 29일 탈레반이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무덤을 포함한 바자라크 저지대를 점령한 모습이 프랑스24 현지 취재를 통해 공개되었다. #

3.1.1. 판지시르의 저항과 함락

파일:판지시르 교통 차단.jpg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묘소에서 아흐마드 마수드를 보고 환호하는 판지시르 민중 (8.25) 바자라크의 남쪽 로카[12][13](Rokha,روخه)에서 길을 수비하는 북부동맹 인원들의 모습.

처음 거병했을 때 판지시르 내 저항군의 사기는 높지만 반전의 가능성은 상당히 낮았다.

그래서 탈레반 신생정부는 초반에 싹을 없애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세에 나섰고, 이에 맞서 저항군 측은 천혜의 요새를 통한 방어전과 소모전에 몰두했다.[14] 그 대신 단기간의 대대적 반격은 한동안 시도할 여유가 없어 저항군 전력도 같이 소모되다 바자라크가 점령당하고[15], 산악지대로 밀려버린다. 탈레반 공세 후반부에도 여전히 계곡 상부였던 안다랍을 중심으로 항전하겠다는 낙관적인 자세가 있었으나, 결국 해를 넘기기도 전에 모두 함락되었다.

이 전쟁에서 장기전으로 흘러갔다면, 탈레반 정부는 이후 행정+군사+경제 유지 등에서 상당한 악영향을 강요받게 될것이 자명했고, 저항군 역시 어떻게든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 했지만 결국 11월 초 판지시르 계곡이 완전히 점령되며 실패했다.

이후 탈레반측은 다른 지방에 새로운 전선이 등장하는 걸 막기 위해 예비 전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저항군을 차단하는데 초점을 맞추었고, 이듬해 6월의 발크합 봉기 이전까지 판지시르 밖에 잔존한 저항전선의 주요 지역 사령부와 소규모 해방구들의 토벌에 집중했다.

3.1.2. 동맹 세력의 발원과 소탕

8월 말 판지시르 저항군이 최초 봉기했을 때, 낭가하르 주의 IS 호라산 지부와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내에 존재하는 둘뿐인 저항 진영으로 통칭되었다. 그래서 저항의 상징성이 높았던 것과 별개로 마지막 등불이라는 위태로운 처지라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2021년 연말에 이르자 후술할 아프간 경제 붕괴에 대한 후폭풍이 확실하게 체감되면서, 아프간 전역의 민심 이반이 가속화된다. 그 뿐만 아니라 초기 탈레반 임시 정부가 약속했던 민족 화합도 결국 파슈툰족 중심의 타민족[16] 탄압으로 귀결되어 버리자, 타민족이 다수인 지역에서 급격한 반발과 저항 분위기가 형성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결국 10월 초 하자라족의 거병 및 판지시르 정부를 지지하는 사건을 시작으로 북부의 비 파슈툰 지역에서 탈레반에 반대하는 지역 저항군 단체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었다.

특히 하자라족은 22년 6월 23일, 사르이풀 주의 발크합에서 병력을 규합하고 대규모 봉기를 일으킨다. 21년 11월 초 이후 대부분의 국토에서 저항전선의 해방구가 토벌되었기에 저항전선 역시 이 봉기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이 역시 12000명이라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한 탈레반측의 공세로 8월 12일, 봉기의 지도자인 메흐디 무자히드가 전사하며 완전히 진압된다.

3.2. 저항군 지지측이 낙관하던 탈레반 정권의 전망

저항전선이 원하던 장기전 이행이 실패하면서 세력비는 탈레반 정부가 우세인 상황으로, 이를 자력으로 뒤집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보인다.

아래 탈레반의 약점으로 평가되는 부분이 나열되어있는데, 사실 탈레반 정권의 붕괴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말이 나뉘고 있다. 일단은 탈레반 정부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보는 관점이 더 우세하다.

붕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쪽은 후술할 현 아프간의 경제·식량 위기, 그리고 탈레반 내의 온건파와 강경파 간의 내분이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반면, 붕괴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쪽은 탈레반 지도자인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의 지도력[17]과 탈레반의 전과 다른 유화적 행보[18], 그리고 아프간 국민의 전체적으로 낮은 교육률과 원래부터 높지 않은 인권 의식 등을 꼽으며 군대만 통제된다면 보통의 독재 국가들처럼[19] 경제와는 상관없이 정권이 붕괴되지 않고 계속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탈레반 내의 많은 계파와 종파 갈등, 민생문제, 외교적 고립[20], ISIS-K 등 여러 문제들이 산재해 있으므로 확실하게 정권이 유지된다는 보장도 없긴 하다.

3.2.1. 탈레반의 외교

탈레반 정권은 암묵적으로 대외적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에게 공식적으로 정권으로 인정받은 상태가 아니다.[21]

이는 탈레반의 기본 통치 이념부터가 이슬람 원리주의와 근본주의이며, 교리와는 다르게 마약 군벌들을 포섭하여 이용하는 모순점 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로 인해 타국에서 신뢰하고 공개적으로 수교를 맺거나 군사적 지원을 하기엔 어렵다는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을 하는 전문가들도 '향후 탈레반이 비공개적 혹은 공개적으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 않다'는 견해에는 동의하고 있다. 미중 갈등사이속에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적 위치와 ISIS-K에 대한 이이제이식 견제, 그리고 아프간 철수 과정에서 미쳐 빠져나오지 못한 각국의 시민들과 협력자들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질 문제는 서방 각국에서 상당히 이슈화되었다. 이 문제는 공통적으로 야당이 여당에 대한 잘못을 지적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대한민국은 다행스럽게도 미라클 작전의 성공으로[22][23] 인질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으나, 서방에서 인질 문제는 이미 비중있는 요소가 되었다. 만약 탈레반 정권이 궁지에 몰리거나 붕괴가 확실시되는 상황이 온다면 이들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24] 서방국가들이 탈레반 정권에 대해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되 계속된 대화 시도와 지원약속을 하는 실질적 이유로 봐야한다.[25][26]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자국우선주의와 실리주의적 성향이 강해졌는데, 이로 인해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에 대한 지원과 합의 가능성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각국이 자국에 체류중인 아프간인들의 송환거부요청을 받아들여 일단 체류를 허용하고 탈레반측의 송환요구를 거부하는 한편, 자국 주재 아프간 대사관도 일부 탈레반을 승인한 국가들을 제외하면 구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에서 임명한 사람들을 그대로 놔두고 있는 걸 생각할 때[27] 탈레반과 아무리 손을 잡고 싶어도 선을 넘어서 도저히 손을 못 잡는 상황으로 보는 게 맞는 것으로 보인다.

3.2.2. 군벌들의 이해관계

현재 탈레반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아프간 전역에는 예로부터 지역 별로 군벌들이 군림하고 있는데, 탈레반 정부는 성향과 이해관계가 각각 다른 군벌 수장들과 야합해 미국을 타도하고 카불을 함락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든지 배신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탈레반 정부는 군벌을 확실하게 자기 편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제거했어야 했지만, 탈레반의 이러한 시도는 사실상 실패로 가게 된다. 이를 군벌 입장에서 보자면, 이들은 그동안 미국이 지원하던 막대한 돈을 받아 챙기며 이득을 취해왔는데, 미국이 물러나면서 그 많은 돈이 죄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탈레반이 그만큼 돈을 주면서 보상을 해줘야겠지만 경제력으로 매우 안 좋은 탈레반 정부가 미국이 제공했던 돈만큼 줄 여력이 없다.

이런 상황 덕에, 새로운 정부를 개창한지 불과 몇 개월 정도 밖에 안되었음에도 탈레반 정부에 불만을 품은 군벌 수장들이 각지에서 내전을 부채질하고 있다. 심지어 새로 군벌화된 탈레반의 지역 유지가 정치, 민족적 갈등을 이유로 탈레반 정부에 반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카불 정부는 이들을 모두 제압하기가 버거운 상황이다.

3.2.3. 심각한 경제난

아프간 경제 붕괴는 현재 탈레반 정부에게 처한 문제들 중 가장 심각하고 위협적인 문제이다.

미군과 NATO 주둔군, 그리고 아프간 경제를 떠받들던 상류층들 대다수가 아프간을 탈출한 시점부터 아프간 경제는 빠른 속도로 무너져가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주도로 해외에 있는 아프간 정부 자산들은 모조리 동결되었고, 아프간 현지에 있던 달러화 등 외환도 뱅크런으로 다 유출되면서 현 시점에서 탈레반의 외화 보유량은 그렇게 많지 않은 걸로 보인다. 탈레반 측은 그동안 버려진 상류층 저택을 털어서 약 1,200만 달러를 현찰째 회수했다고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 4천만 명의 아프간 국민들을 부양시키면서 탈레반 군 조직을 유지하기엔 너무 부족하다. 특히 군대는 비생산적인 조직이며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싸우라고 하려면 최소한의 봉급과 처우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서 빈곤국이나 소국 중에는 군대가 없거나 수천명 정도로 상징적인 수준으로만 유지한 국가도 생각보다 많은데 아프간은 그냥 빈곤국도 아니고 최빈국이며 나아가 서방국가들을 모조리 적으로 돌린 상태다. 그러다보니 탈레반은 지금 군대 유지도 주민들을 쥐어짜서 겨우 하고 있고, 당장 봉급은 어떻게 지급해도 민심이 반발하여 등을 돌리면서 세력기반은 갈수록 무너져내리고 있다.

특히 아프간의 식량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 원래부터 아프가니스탄은 농사짓기엔 척박한 땅이 너무 많고 이조차도 곡물보다 아편이 더 돈이 되기에 식량 자체 수급이 높지 않은 편인데, 유엔 치하 20여 년 동안 들어온 국제적인 식량 지원 덕분에 아프가니스탄의 인구는 2001년 당시보다 2배에 가까운 4천만 명으로 급증할 수 있었다. 그런데 탈레반이 재집권하자 유엔과 미국이 제공하던 식량 지원들은 잠정적으로 중단되었고, 결국 탈레반 신정부는 시작부터 "식량 생산량<증가 인구"라는 멜서스 트랩에 빠져버리는 처지에 이르러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하필 3년 전부터 지속된 가뭄과 흉작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10월이 되기도 전에 비축된 식량이 완전히 고갈된다는 소문이 아프간 내 민간인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면서 식량 가격이 급격하게 치솟고 있다.

그나마 그 다음 해까지 겨우 넘기긴 했지만 겨울이 끝나지 않은 2월부터 비축된 식량이 완전히 고갈되는 사태가 터진다. 식량난으로 인해 아녀자들이 자신의 장기를 판매하여 식량을 구입하거나 아이를 판매하여 다른 아이라도 살리려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그로 인해 암시장에서 장기와 사람의 가격이 저렴해졌다고 한다. 아프간이 모하마드 자히르 샤[28] 치세때는 한국보다 잘 살던 나라였다는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아프간 전역의 민심은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으며, 탈레반은 위험 단계까지 가는 민심 불안을 막느라 저항군 소탕에 전력을 쏟을 여유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

4. 기타

5. 무장투쟁 포기 칼럼 논란

국민 저항 전선이 목숨 건 항쟁을 하는 와중에 2021년 한겨레 소속 정의길 기자는[31] '탈레반이 승리했고, 인정해야 한다'는 칼럼에서 "또 다시 '반 탈레반 무장투쟁'을 주장하는 것은 아프간을 벗어나려거나 남으려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칼럼을 기고했다. # 주민들이 탈레반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법보다는 악법이라도 질서를 희구한 상황에서 기인하며, 이미 전세는 기울었으니 탈레반이 포용적 정부가 되게 돕는게 오히려 나을 수 있다는 것.

이는 일견 '20년 싸움에서 승리한 탈레반이 이젠 집권 세력이며, 그 싸움에 끼어 쥐어터져온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더 이상 내전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라는 글'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32], 기사의 서술 방향에서 몇가지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단 사실 관계를 왜곡한 부분이 있다. 기사에선 "2001년 미군 침공 때 탈레반을 축출하는 과정에서 선도에 섰던 북부동맹 세력이 마자르이샤리프에서 탈레반 대원 3천여 명을 집단학살하기도 했다"고 서술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해당 학살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친소 군벌에서 무자헤딘으로 전향한 희대의 조커로 알려진 압둘 라시드 도스툼이며, 탈레반에서 우즈베크인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을 복수를 하겠다며 탈레반이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기도 하다. 1998년 8월 8일 아프간을 휩쓸던 탈레반은 반(反) 탈레반 비(非) 파슈툰족이 연합해 대항하던 거점 도시인 아프가니스탄 북서부 도시 마자르이샤리프를 점령했다. 탈레반은 도시를 점령하고 몇 시간 뒤 무차별 공격으로 민간인을 학살하고 며칠간은 타지크족, 하자라족, 우즈베크족 등의 공동체에서 남성들을 가택 수색을 하며 색출해 잡아갔다. 수백 명의 하자라족 남자와 소년들이 그 자리에서 약식으로 처형 당하고, 다양한 인종 공동체에서 잡혀온 수천 명의 남자는 대형 컨테이너에 100~150명씩 갇힌 상태에서 달궈진 컨테이너에서 질식사했다. 그렇게 학살로 생긴 피해자 수만 약 8,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

물론 보복학살도 결코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당연히 무고한 민간인 학살을 했던 탈레반 쪽이 훨씬 죄질은 나쁘다. "3천여 명 집단학살" 같은 자극적인 단어만 사용해서 전후 관계를 왜곡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 쉽게 비교하자면 민간인들의 가자지구를 폭격했던 이스라엘과 이에 반격하기 위해 이스라엘 군들을 공격했던 팔레스타인 하마스 중 국제 사회에서 더 비판을 받은 것이 이스라엘인 것을 볼 때 탈레반 쪽이 더 비판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탈레반이 강간범들을 처벌하면서 인기를 얻었다는 내용도 있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90년대 탈레반이 집권했던 계기 중 하나는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휘하의 군인들이 납치와 집단 강간을 하고 다니며 처벌 받지 않았던 것을 탈레반에서 본보기로 화끈하게 공개처형하면서 인기가 올라간 것이다. # 굴부딘 헤크마티아르 군벌은 북부동맹과 계속 대립하는 관계였으며, 이후 그 헤크마티아르 세력은 이후 탈레반에 그대로 합병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당연히 탈레반도 강간을 많이 자행했다. 마치 "타락한 북부동맹을 탈레반이 진압했다."라는 식의 오해를 줄 만한 내용이다.

아프가니스탄이 정부의 부정부패와 군의 한심한 작태로 인해 수치스럽게 무너지는 것을 본 세계인들에게 아프간 사람들은 '탈레반에 맞설 용기도 없는 우매한 사람들', '20년이 넘도록 미국에게 의존하기만 한 사람들', '스스로 싸우지도 않고서 미국과 국제사회만 원망하는 자들' 같은 무시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33] 미국의 한 티셔츠 회사가 아프간을 탈출하려다 항공기에서 추락사한 아프간인들을 조롱한 티셔츠 디자인을 내놓은 사건이 대표적 사례. 이런 상황에서 아흐마드 마수드는 얼마든지 해외로 도주해서 유복하게 살 수 있었던 상류층임에도 이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탈레반에 대항해 봉기하여 아프간 국민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이 되어 주고 있는데[34], 정의길 기자는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것.

네티즌들도 이런 논지면 한국의 독립운동이나 민주화를 위해 싸운 사람들은 죽을 걸 알면서도 왜 투항하지 않았냐는 모순적 발언이라고 비판했다.[35] 연장선상에서 정의길 기자는 2024년 미얀마 저항군의 도시 함락 소식을 전했는데 이게 모순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다만 해당 기사는 사견이 많이 들어가는 칼럼이 아니라 사실을 주로 전달하는 기사긴 하다. 애초에 미얀마는 아프가니스탄과 달리 여전히 팽팽한 형국이기도 하고. 허나 계속 이런 식의 딴지를 당하는거 보면, 결국 기자 입장에선 아프가니스탄 시민들의 생명과 안정을 바라고 쓴 칼럼이였겠지만[36], 논리적 연결이 매끄럽진 않다보니 외통수를 자초한 칼럼이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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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리어, Jebha-ye Moqāwemat-e Mellī-ye Afġānestān. [2] 영문 표기 근거. [3] 21년 말에 저항전선은 판지시르에서 축출되었고, 22년 5월에 시도한 발크합 봉기 역시 동년 8월에 진압되어 현재 아프간 내부에는 의미있는 해방구 없이 점조직들만이 남아있다. [4] 공식 웹사이트 [5] 총사령관 아흐마드 마수드가 회장인 마수드 파운데이션 재단에서 직접 시작한 후원 웹사이트이다. [6] 해당 트위터 계정 운영자는 본디 관광 공무원이었다. 2020년에 작성한 트윗들을 보면 판지시르 자연 환경에 대한 내용이나 정부 관료와 악수하는 사진 등이 있다. [7] 공식 계정. [8] 이들이 회담을 나누고 있는 건물은 2021년 8월 4일 탈레반의 폭격에 의해 무너졌다. # [9] 초대 대통령 하미드 카르자이는 탈레반에게 협력하고, 2대 대통령 아슈라프 가니는 전 재산을 가지고 해외로 도망가버렸다. [10] 아프간군 코만도를 비롯한 아프간 정예병력 그리고 민병대들이 합류했다. [11] 판지시르 주에 모여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암룰라 살레 임시 대통령으로 추대하고, 아흐마드 마수드는 군 총사령관, 야신 지아가 군 참모총장, 비스밀라 칸 모하마드가 임시 국방장관을 맡기로 했다. [12] 해당 지역은 판시시르의 주도인 바자라크로 가는 길목이자 판지시르 최대의 식량 생산지이다. [13] 구글어스 [14] 판지시르의 고산지대는 소련군이 6번이나 점령을 시도했는데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천혜의 요새이다. 지형을 제대로 활용한다는 가정 하에 난공불락인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공세가 쉽지 않은 환경으로 저항군에게 큰 이점이다. [15] 바자라크는 저항군의 최중요 거점으로 판지시르 전체와도 거의 동등하다고 평가받았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바자라크만 잘 사수한다면 반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분석했고, 혹여 탈레반과 협상을 하더라도 유리하게 진행할 수 있는 근본적 기반으로 보았다. 하지만 바자라크 함락으로 고무된 탈레반은 저항군에게 항복하지 않으면 살려두지 않겠다 라는 일관적 태도를 보이게 되었다. [16] 주로 타지크족, 우즈베크, 하자라족. [17] 온건파와 강경파간의 대립은 아훈드자다에게 반기를 들어서 일어났다고 보기 어렵고 정치적 성과 경쟁으로 일종의 내부서열 정리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있다. [18]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이지만, 하이바툴라 아훈드자다가 탈레반을 장악한 이후 최소한 외국 눈치는 보는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19] 대표적 예시로 이란 혁명 직후에 이슬람 신정 체제 정부가 수립된 이란이 있다. 다만 한가지 알아둘 것은, 애초에 탈레반의 정치 스타일은 호메이니 같은 독재자 개인의 우상화를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며, 이슬람 원리원칙에 의거한 장로(셰이크)들의 의회에 의해 추대를 거쳐 운영되는 상황이었다. 당초 아훈드자다의 전임자인 모하마드 만수르가 2016년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숨졌을 때 탈레반 내부에서는 초대 리더 모하마드 오마르의 아들 모하마드 야쿠브를 새 지도자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모하마드 야쿠브 본인이 자신이 너무 어리고 전쟁 경험이 없다며 아훈드자다를 지도자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러한 방식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이 이슬람 초창기의 원리원칙을 성실하게 준수한다는 인상을 주는 효과가 있다. [20] 세계 대다수 나라가 탈레반 정권을 정상적인 국가정권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21] 이것은 달리 말하면 상황이 변한다면 암묵적인 인정도 바뀐다는 의미다. [22] 만약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이고 아프간 국적의 대한민국과의 협력자들이 아프간에 갇혔거나 아예 수송기가 방공미사일 내지 맨패즈에 의해 격추당하는 상황이 터져 수송기의 탑승 인원이 전원 사망하여 작전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면 충분히 정권차원에서 이슈화되었을 것이다. 2021년에는 부실급식 논란과 육해공군 내 성추행 사건, 청해부대 집단 감염 등의 좋지 않았던 일들로 인해서 군 전체의 이미지가 많이 나빠진 상황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이 작전이 실패했다면 또 다른 흑역사가 추가될 뻔 했으며, 정부에 대해서는 이 일이 제2의 샘물교회 사태가 되어 그렇찮아도 2020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인해 질타를 받은 상황이었기에 더더욱 큰 타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23] 사실, 군 내부에서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것과 아예 작전/경계 실패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를 비교해봤을 때 그 사건의 무게감부터가 다르다. 더군다나 전시도 아닌 평시라면 더더욱 그 차이가 크며,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유족들의 배상금 문제, 해당국과의 관계 악화, 작전 시 규정 수칙 준수 및 보안 유지 여부 등으로 인해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도 있다. 샘물교회 사태와의 차이점이라면 이 일은 우리나라와 같이 협력을 한 인원에 대한 일이었고, 구조해야하는 인원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한편 샘물교회 사태는 국내 민간인(선교사)에 관한 일이었는데 현지 테러분자들과 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인질 합의금까지 뜯기면서 엄청난 조소를 들어야 했으며 2명은 협상 도중 살해당했다. [24] 탈레반 정권이 지속되는 한, 서방국가들을 상대로한 인질외교를 위해 인질들에게 쉽게 해를 가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25] 9월 UN에서 아프간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약속하였고(단 약속일 뿐이다) 로이터 통신, 10월11일 미국-아프가니스탄 2차 도하합의 로이터 통신를 하여 미국으로부터 인도적 지원약속이 논의되었다고 한다. 회담내용은 추측성 정보지만 미국은 아프간 내의 자국민 안전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고 탈레반측은 식량지원과 반탈레반 세력지원 중단을 재차 확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6] 다만 대화와 약속 시도 자체가 인질들의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 억류 장기화를 만들 수 있다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27] 이들은 당연히 NRF의 대변인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28] 퇴위 후 불행하게도 건강이 좋아 92세까지 장수하며 오래 살았기에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조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불행을 다 보고 "난 저세상에 가면 알라에게 천벌을 받을 것이오! 아름답던 내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으니..."라며 통곡하다가 죽었다. [29] 현재 탈레반이 정부 위치를 차지했지만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의 식량난 등 국가 내부의 크고 고질적인 문제들에 있어 뚜렷한 해결책을 내새우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어지간히 급했는지 그 탈레반이 식량난 관련으로 서방에 도움을 요청하나 씹히는 중. 그러다 보니 탈레반이 국가 내부를 제대로 안정화시키지 못한다면 아프가니스탄 국민 저항 전선이 만에 하나 괴멸하더라도 계속 난립하는 후속 저항 세력들을 제대로 통제하기 힘들 전망이다. [30] 실제로 탈레반이 판지시르 계곡에 대한 공세 도중 큰 피해를 입고 패퇴하거나, 아니면 희생이 큰 승리를 강요 당하는 상황이 계속 이어지자, 악으로 가득 찬 탈레반 병사들이 판지시르 저지대에 있는 마을 주민들과 도시 시민들을 강제 납치 또는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면서 이 우려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31] '이슬람 전사의 탄생'이라는 서적의 저자이기도 하다. [32] 실제 기사에서도 탈레반은 아프간 주민에게 차선도 아니고 차악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33] 이와 반대로 국제사회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이 없음에도 각종 중화기로 무장한 미얀마 군부와 싸우고 있는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지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중국의 막대한 지원을 받는 군부에 끊임없이 저항하는 미얀마 시민들 용기에 미얀마 군부는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으며, 국제 사회에서도 미얀마 민주 세력을 도와야 한다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미얀마 시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국제 사회에 보여주었기에 가능했다. [34] 다만 기타 항목에도 있듯 판지시르에 대한 너무 우호적인 보도는 탈레반만 자극시킬 수 있다며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 [35] 다만 일각에선 이걸 진영논리식으로 비판하기도 하는데, 해당 기사는 기자의 사견일 뿐이며 애초에 이 기사도 논지는 탈레반이 여성의 공직을 허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설령 쇼라고 해도 2001년 이전의 개막장 탈레반보단 조금이나마 나아질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미 승부가 난 이상 이 가능성에라도 기댈 수 밖에 없다는 기도문에 가까운 글이라고 봐야 한다. '그걸 쟤들한테 기대하냐 바보야'라고 욕할 순 있겠지만, 무슨 친탈레반 어쩌고 할 계재는 아니다. (그런 식의 논리면 탈레반과 협상해 미군 철수를 결정한 미국 정부야말로 진정한 친탈레반이니 해당 기사도 전형적인 친미 기사라고 황당한 색깔론식 주장도 할 수 있다.) 실제 탈레반 내에서도 온건파와 과격파가 다투는 기조는 분명 있기 때문에 과격파로 너무 쏠리지 않도록 이들을 이용할 필요는 있다. [36] 사실 한국에서 이런 글 하나 써봤자 영어권 기사도 아니니 외국인들이 읽을 확률도 적을 것이고, 이 글을 읽을 한국인들은 지리상 애초에 아프가니스탄에 실질적 도움은 거의 주지 못한다는걸 고려하면, 결국 괜히 나섰다 실리도 명분도 못 챙긴 칼럼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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