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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25 17:01:14

마자르이샤리프

파일:마자르 이 샤리프.jpg
하즈라트 알리 마자르 (마스지드-에-카부드)와 시가지 전경. 마침 페르시아 문화권의 새해 노루즈 시기라 분위기가 밝다.
마자르이샤리프

1. 개요2. 상세3. 역사
3.1. 현대

1. 개요


마자르이샤리프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발흐주의 주도이다.

2. 상세

마자르이샤리프는 아프간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아프간에선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우즈베키스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아프가니스탄 국경과 가깝다. 주민의 대부분이 타지크인, 파슈툰인, 우즈베크인, 하자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1] 그리고 마자르이샤리프내에는 다리어, 우즈베크어가 많이 쓰이고있다.

아프가니스탄 내 우즈벡인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즈벡계열 군벌인 도스툼의 근거지이기도 했다.

아프간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기후는 대륙성 기후를 띄고 있다.

3. 역사

파일:마자르 샤리프.jpg
랜드마크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성지. 다만 시아파 측에서는 나자프가 알리의 안장지라 믿는다.

마자르이샤리프는 역사적으로 토하리스탄의 일부였다. 12세기부터 이곳이 이슬람의 4대 칼리파 알리의 매장지라는 소문이 퍼졌고, 15세기 티무르 제국의 술탄 후세인 바이카라가 대대적으로 성지화하였다. 이후 성지란 뜻인 '마자르' 혹은 샤리프의 성지란 뜻인 마자르이샤리프로 불리게 된 도시는 점차 기존의 대도시 발흐에 버금가는 도시로 성장하였다. 19세기 초엽에는 부하라 칸국의 일부였지만, 부하라 칸국이 19세기부터 러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면서 우즈벡인들이 아프간 북부로 피난을 갔다.[2] 그리고 1847년 아프가니스탄 아미르국의 도스트 모하마드 칸이 일대를 점령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행정 치소는 발흐로 남아 있었는데, 19세기 후반 수로 시설의 미비로 인한 홍수로 말라리아가 퍼져 발흐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이후 주지사가 마자르이샤리프로 치소를 이전한 이래로 현재에 이른다. 다만 상술한 대로 발흐 주라는 지명은 바뀌지 않았다.

3.1. 현대

90년대 중반이후, 탈레반 정권이 아프간의 대부분을 차지할 때 마자르이샤리프는 우즈벡 군벌 압둘 라시드 도스툼의 근거지였다. 하지만 도스툼이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패한 뒤, 도스툼은 마자르이샤리프를 버리고 북부동맹이 장악한 동북부의 아프가니스탄 영토로 피신했다. 1998년에 마자르이샤리프에선 탈레반에 의한 이란 영사관 직원 사망 사건이 일어나 이란은 탈레반 정권과 갈등이 일어났다.

2001년에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고 마자르이샤리프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2011년에는 미국의 거물 정치인 존 케리가 시내의 발흐 대학교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21년 8월에 탈레반이 도시를 점령하였고, 도스툼은 아무다리야를 넘어 우즈벡으로 달아났다.

2021년 9월 마자르이샤리프에서는 여성 수십명이 모여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시위를 했다. #

2022년 4월 21일 마자르이샤리프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


[1] 출처는 영어 위키백과 [2] 아프간 북부에는 우즈벡인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