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13 04:07:29

신면

진서(晉書)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color: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제기(帝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181818,#e5e5e5
1권 「선제기(宣帝紀)」 2권 「경제문제기(景帝文帝紀)」 3권 「무제기(武帝紀)」
사마의 사마사 · 사마소(昭) 사마염
4권 「혜제기(惠帝紀)」 5권 「회제민제기(懷帝愍帝紀)」 6권 「원제명제기(元帝明帝紀)」
사마충(衷) 사마치 · 사마업 사마예 · 사마소(紹)
7권 「성제강제기(成帝康帝紀)」 8권 「목제애재폐제기(穆帝哀帝廢帝紀)」
사마연(衍) · 사마악 사마담 · 사마비 · 사마혁
9권 「간문제효무제기(簡文帝孝武帝紀)」 10권 「안제공제기(安帝恭帝紀)」
사마욱 · 사마요 사마덕종 · 사마덕문
※ 11권 ~ 30권은 志에 해당. 진서 문서 참고
}}}}}}}}}}}}
[ 열전(列傳) ]
||<-6><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 31·32권 「후비전(后妃傳)」 ||
[ 재기(戴記) ]
||<tablewidth=100%><tablebgcolor=#800080><width=33%> 101권 「유원해재기(劉元海戴記)」 ||<-2><width=34%> 102권 「유총재기(劉聰戴記)」 ||<width=33%> 103권 「유요재기(劉曜戴記)」 ||
유원해 , 유화 · 유선, 유총 , 유찬 · 진원달, 유요
104 · 105권 「석륵재기(石勒戴記)」 106 · 107권 「석계룡재기(石季龍戴記)」
석륵 , 석홍 · 장빈, 석계룡 , 석세 · 석준 · 석감 · 염민,
108권 「모용외재기(慕容廆戴記)」 109권 「모용황재기(慕容皝戴記)」
모용외 , 배억 · 고첨, 모용황 , 모용한 · 양유,
110권 「모용준재기(慕容儁戴記)」 111권 「모용위재기(慕容暐戴記)」
모용준 , 한항 · 이산 · 이적, 모용위 , 모용각 · 양무 · 황보진,
112권 「부홍등재기(苻洪等戴記)」 113 · 114권 「부견재기(苻堅戴記)」 115권 「부비등재기(苻丕等戴記)」
부홍 · 부건 · 부생 , 왕타, 부견 , 왕맹 · 부융 · 부랑, 부비 · 부등 , 삭반 · 서숭,
116권 「요익중등재기(姚弋仲等戴記)」 117 · 118권 「요흥재기(姚興戴記)」 119권 「요홍재기(姚泓戴記)」
요익중 · 요양 · 요장 요흥 , 윤위, 요홍
120권 「이특등재기(李特等戴記)」 121권 「이웅등재기(李雄等戴記)」
이특 · 이류 · 이상 이웅 · 이반 · 이기 · 이수 · 이세
122권 「여광등재기(呂光等戴記)」
여광 · 여찬 · 여륭
123권 「모용수재기(慕容垂戴記)」 124권 「모용보등재기(慕容宝等戴記)」
모용수 모용보 · 모용성 · 모용희 · 모용운
125권 「걸복국인등재기(乞伏國仁等戴記)」
걸복국인 · 걸복건귀 · 걸복치반 · 풍발 , 풍소불,
126권 「독발오고등재기(禿髪烏孤等戴記)」
독발오고 · 독발리록고 · 독발녹단
127권 「모용덕재기(慕容徳戴記)」 128권 「모용초재기(慕容超戴記)」
모용덕 모용초 , 모용종 · 봉부,
129권 「저거몽손재기(沮渠蒙遜戴記)」 130권 「혁련발발재기(赫連勃勃戴記)」
저거몽손 혁련발발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800080><tablebgcolor=#800080> ||
}}} ||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辛勉
생몰연도 불명

서진의 인물. 자는 백력(伯力). 양주 농서군(京兆郡) 적도현(狄道縣) 출신. 좌위장군 신홍(辛洪)의 아들.

2. 생애

신면은 박학하고 굳건한 절개가 있었다. 회제 사마치 재위기에 임관하여 여러 차례 승진해 관직이 시중에 이르렀다.

영가 5년(311년) 6월, 한나라의 전군대장군 호연안, 정동대장군 왕미, 시안왕 유요가 낙양을 함락하고, 황궁에 진입해 군사를 풀어 궁녀와 진귀한 보물들을 모두 약탈하였다. 회제는 그 사이에 화림원(華林園)을 통해 황궁을 빠져나오려다 한군에게 붙잡히고 평양(平陽)으로 압송되었다.

신면은 회제를 따라 평양에 이르렀는데, 유총이 그를 광록대부로 삼으려 하자 굳게 사양하였다. 이에 유총이 황문시랑 교도(喬度)를 보내 독약과 술을 가지고 신면을 핍박하게 하니, 신면은
"대장부가 어찌 몇 년의 목숨 때문에 높은 절개를 져버리고 두 성(姓)을 섬길 수 있겠는가! 차라리 지하에 계신 무제께 가리라!"
라 탄식하고는 거침없이 술에 독약을 타 마시려 하였다. 교도는 술을 마시려는 신면을 제지한 뒤
"주상께서는 그대를 시험하셨을 뿐인데, 그대는 진실로 고귀한 선비요!"
라 감탄하며 떠났다. 이 일로 유총은 더욱 신면의 정절을 아름답게 여기고 존경하여, 평양의 서산(西山)에 신면을 위해 작은 집을 지어주고 매달 쌀과 술을 지급하였으나 신면은 항상 이를 받지 않고 사양했다. 그리고 나이 80세에 이르렀을 때 세상을 떠났다.

3.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