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제83대 황제
스타브라키오스 Σταυράκιο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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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F0807><colcolor=#FCE774,#FCE774> 이름 |
스타브라키오스 Σταυράκιος[1] |
출생 | 790년대 초 |
동로마 제국 | |
사망 | 812년 1월 11일 |
동로마 제국 | |
재위 기간 | 로마 황제 |
811년 7월 26일 ~ 811년 10월 2일 (2개월) | |
전임자 | 니키포로스 1세 |
후임자 | 미하일 1세 랑가베스 |
부모 | 아버지 : 니키포로스 1세 |
배우자 | 테오파노 |
종교 | 기독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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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마 제국 83대 황제이자 니키포로스 왕조 제2대 황제. 아랍계로서는 세번째 로마 황제였다. 아버지 니키포로스 1세와 함께 전장을 누볐으나 811년 7월 24일 플리스카 전투에서 아버지를 잃고 본인 역시 척추가 골절되고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콘스탄티노플로 피신했다. 그후 황제로 즉위했으나 누나 프로코피아와 신하들의 강력한 권고로 결국 3개월 만에 미하일 1세 랑가베스에게 양위한 뒤 수도원에 보내졌다가 얼마 안가 사망했다.2. 생애
778년 무렵 니키포로스 1세와 알려지지 않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803년 12월 15살에 공동 황제 자리에 올랐고 807년 12월 20일 테오파노와 결혼했다. 그 후 그는 아버지와 함께 여러 전투에 참여해 제국군을 이끌어 제국의 국방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다만 아바스 왕조와 갈등을 빛다가 아바스 왕조의 12만 대군이 아나톨리아로 쏟아져 들어와 큰 피해를 입고 강화를 맺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811년 5월, 니키포로스와 스타브라키오스는 휘하 장수들과 함께 불가리아 왕국으로 쳐들어갔다. 1년에 걸쳐 철저한 준비를 한 제국군은 승승장구하며 불가리아를 밀어붙였다. 당황한 불가리아 국왕 크룸은 강화를 요청했지만 이번 기회에 불가리아 왕국을 아예 멸망시키고 싶었던 니키포로스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811년 7월 26일, 플리스카 근교의 좁은 협곡을 지나던 제국군은 불가리아군의 습격을 받았다. 니키포로스는 여러 장수들과 함께 전사했고 그의 해골은 크룸의 술잔으로 쓰였다. 한편 스타브라키오스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그 과정에서 척추가 골절되고 다리가 부러지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스타브라키오스는 콘스탄티노플로 돌아온 후 황제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부상이 워낙 심각해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은 국가 비상 사태를 극복할 적임자로 니키포로스 1세의 사위인 미하일 1세 랑가베스를 추대하려 했다. 여기에 미하일의 아내이자 스타우라키오스의 누나 프로코피아도 스타우라키오스를 설득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미하일을 매우 싫어했고 오히려 자기 아내인 테오파노를 후계자로 지명하려 했다.
그러나 죽어가는 황제가 동의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 811년 10월 2일에 미하일 1세 랑가베스가 황제가 되었다. 이후 원로원 의원들은 스타브라키오스를 강제로 수도원에 보내 삭발식을 거행하게 했다. 그후 스타브라키오스는 석 달만인 812년 1월 11일에 사망했다. 향년 3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