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렌스크 전투(1943) | ||
제2차 세계 대전 중 동부전선의 일부 | ||
연한 노란색으로 칠해진 지역이 1943년 말까지의 소련군 공세선이다. |
||
날짜 | ||
1943년 8월 7일 ~ 10월 2일 | ||
장소 | ||
소련 러시아 SFSR 스몰렌스크 | ||
교전국 | [[틀:깃발| | ]][[틀:깃발| ]][[소련| ]]|
지휘관 |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바실리 소콜롭스키| ]](서부 전선군 사령관) |
]][[틀:깃발| ]][[안드레이 예료멘코| ]](칼리닌 전선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틀:깃발| ]][[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 ]](제3기갑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고트하르트 하인리치| ]](제4군 사령관) [[틀:깃발| ]][[틀:깃발| ]][[발터 모델| ]](제9군 사령관) |
]][[틀:깃발| ]][[귄터 폰 클루게| ]](중부 집단군 사령관)
결과 | ||
소련군의 승리, 서부 러시아 SFSR 전역의 수복 | ||
영향 | ||
모스크바에 대한 전략적 위협을 제거. 이후 바그라티온 작전의 발판이 됨. | ||
전력 |
병사 1,252,600명[1] 포 2만 문 전차 1,430대 항공기 1,100대 |
소련측 추측 병사 85만여 명 포 8,000문 전차 500대 항공기 700기 |
피해규모 |
총 피해 451,466명 전사/실종 107,645명 부상/질병 343,821명 전차 및 자주포 863대 야포 243문 항공기 303기 |
총 피해 70,593명 전사 12,984명 실종 6,298명 부상 51,311명[2] |
[clearfix]
1. 배경
당시 독일측 선전영상. 전사한 소련군 시신과 소련군 포로, 파괴된 전차들도 등장하는데 이 정도로 소련군은 큰 희생을 치렀다.
독일군은 쿠르스크 전투를 기점으로 전선 유지능력이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스타브카와 스탈린은 남부와 중부 양쪽에서 공세를 개시해 독일군을 계속 밀어낸다는 계획을 입안했다. 독일군은 비록 르제프 돌출부에서 철수했지만 여전히 스몰렌스크를 비롯한 서부 러시아에 주둔중인 독일 중부집단군 병력은 모스크바에 대한 전략적 위협으로 다가왔으며 스탈린은 하루 빨리 이들을 몰아내고 싶어했다.
문제는 해당 지역에는 상당한 늪지대와 숲이 있었으며 전차의 기동에 제약이 있었다. 게다가 수 없이 많은 강이 지나갔기 때문에 만약 독일군이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다면 도하를 시도하는 소련군에게 상당한 소모를 강요할 수 있었다. 남부 전선의 드네프르 강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동부 방벽 건설이 시도되었으나 견고한 방벽을 지었다간 병사들이 제대로 싸우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히틀러에 의해 좌절되었고 결국 허술하게 만들어진 방어선은 소련군에 의해 쉽게 돌파당했다. 반면, 중부 전선의 중부집단군은 지형적 유리함을 최대한 이용하고자 어마어마한 규모의 참호와 지뢰밭, 해자, 대전차장애물을 몇 겹으로 설치해버렸고 고지대의 방어진지는 진격해오는 소련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략적 유리함을 제공했다.
드네프르 강 상류가 위치한 스몰렌스크. 이외에도 많은 강이 주변 지역에 위치해 천연방벽의 역할을 했다.
현대에 스몰렌스크 늪지대에서 발견된 T-34-76 전차. 곳곳에 있는 늪지대는 전차의 기동을 방해했다.
2. 편제
2.1. 독일군[3]
-
중부 집단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3기갑군 ( 사령관 :
게오르크한스 라인하르트 상급대장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43군단
- 제205보병사단
- 제83보병사단
- 제59군단
- 제291보병사단
- 제263보병사단
- 제2공군야전군단
- 제2공군야전사단
- 제6공군야전사단
- 제3공군야전사단
- 제4공군야전사단
- 제87보병사단
- 제6군단
- 제330보병사단
- 제206보병사단
-
제4군 ( 사령관 :
고트하르트 하인리치 상급대장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야전군 예비
- 제36보병사단
- 제56보병사단
- 제27군단
- 제256보병사단
- 제197보병사단
- 제52보병사단
- 제39기갑군단
- 제113보병사단
- 제337보병사단
- 제9군단
- 제35보병사단
- 제252보병사단
- 제342보병사단
- 제12군단
- 제268보병사단
- 제260보병사단
- 제267보병사단
- 제56기갑군단
- 제14보병사단
- 제131보병사단
- 제321보병사단
-
제9군 ( 사령관 :
발터 모델 상급대장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야전군 예비
- 제2기갑사단
- 제4기갑사단
- 제262보병사단
- 제47기갑군단
- 제383보병사단
- 제216보병사단
- 제292보병사단
- 제6보병사단
- 제46기갑군단
- 제258보병사단
- 제31보병사단
- 제7보병사단
- 제102보병사단
- 제72보병사단
- 제20군단
- 제45보병사단
- 제137보병사단
- 제86보병사단
- 제251보병사단
}}}
}}}
}}}
}}}
-
제6항공함대( 사령관 :
로베르트 리터 폰 그라임 상급대장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1항공사단
- 제4항공사단
- 제27야전항공관구
- 제12대공포사단
- 제18대공포사단
-
제10대공포여단
}}}
2.2. 소련군[4]
-
칼리닌 전선군 ( 사령관 :
안드레이 예료멘코 상장[5]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전선군 직할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5근위소총군단
- 제19근위소총사단
- 제8소총군단
- 제7소총사단
- 제249소총사단
- 제46기계화소총여단
- 제47기계화소총여단
- 제143전차여단
-
제221중전차연대
}}} -
제3충격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21근위소총사단
- 제46근위소총사단
- 제28소총사단
- 제32소총사단
- 제357소총사단
- 제381소총사단
- 제23소총여단
- 제31소총여단
- 제100소총여단
- 제145소총여단
-
제78전차여단
}}} -
제4충격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47소총사단
- 제332소총사단
- 제334소총사단
- 제358소총사단
- 제360소총사단
- 제101소총여단
-
제236전차여단
}}} -
제39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야전군 직할
- 제21돌파포병사단
- 제28근위전차여단
- 제11근위중전차연대
- 제203전차연대
- 제2근위소총군단
- 제9근위소총사단
- 제17근위소총사단
- 제91근위소총사단
- 제83소총군단
- 제178소총사단
- 제185소총사단
- 제124소총여단
- 제84소총군단
- 제134소총사단
- 제158소총사단
- 제234소총사단
-
제43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145소총사단
- 제179소총사단
- 제262소총사단
- 제306소총사단
-
제114소총여단
}}} -
제3항공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211돌격항공사단
- 제6근위돌격항공연대
- 제21전투항공연대
- 제761전투항공연대
- 제279경폭격항공연대
-
제373경폭격항공연대
}}}
}}}
}}}
-
서부 전선군 ( 사령관 : 바실리 소콜롭스키 상장[6]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전선군 직할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5돌파포병군단
- 제2근위돌파포병사단
- 제4근위중포병사단
- 제7근위박격포사단
- 제5기계화군단
- 제2기계화소총여단
- 제9기계화소총여단
- 제45기계화소총여단
- 제233전차여단
- 제70소총군단
- 제371소총사단
- 제36소총여단
- 제213전차여단
-
제63근위전차연대
}}} -
제10근위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야전군 직할
- 제29근위전차여단
- 제119전차연대
- 제248전차연대
- 제7근위소총군단
- 제29근위소총사단
- 제15근위소총군단
- 제30근위소총사단
- 제85근위소총사단
- 제19근위소총군단
- 제22근위소총사단
- 제56근위소총사단
- 제65근위소총사단
-
제5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173소총사단
- 제207소총사단
- 제208소총사단
- 제312소총사단
- 제352소총사단
- 제3근위포병사단
-
제15근위포병여단
}}} -
제10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139소총사단
- 제247소총사단
- 제290소총사단
- 제330소총사단
- 제385소총사단
- 제9전투항공여단
- 제16근위대전차포병여단
-
제94전차여단
}}} -
제21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야전군 직할
- 제63소총사단
- 제70소총사단
- 제76소총사단
- 제95소총사단
- 제174소총사단
- 제61소총군단
- 제51소총사단
- 제62소총사단
- 제119소총사단
-
제31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36소총군단
- 제215소총사단
- 제274소총사단
- 제359소총사단
- 제45소총군단
- 제88소총사단
- 제220소총사단
- 제331소총사단
- 제71소총군단
- 제82소총사단
- 제133소총사단
- 제251소총사단
-
제42근위전차여단
}}} -
제33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42소총사단
- 제144소총사단
- 제160소총사단
- 제164소총사단
- 제222소총사단
- 제277소총사단
- 제4근위중포병사단
- 제2근위전차여단
-
제256전차여단
}}} -
제49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제58소총사단
- 제146소총사단
- 제338소총사단
-
제344소총사단
}}} -
제50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야전군 직할
- 제49소총사단
- 제64소총사단
- 제212소총사단
- 제324소총사단
- 제117중곡사포여단
- 제196전차여단
- 제56근위전차연대
- 제233전차연대
- 제38소총군단
- 제17소총사단
- 제326소총사단
- 제413소총사단
-
제68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야전군 직할
- 제5근위돌파포병사단
- 제120전차여단
- 제187전차연대
- 제62소총군단
- 제153소총사단
- 제154소총사단
- 제159소총사단
- 제72소총군단
- 제156소총사단
- 제192소총사단
- 제199소총사단
- 제81소총군단
- 제157소총사단
-
제1항공군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야전군 직할
- 제204폭격항공사단
- 제224돌격항공사단
- 제233돌격항공사단
- 제311돌격항공사단
- 제303전투항공사단
- 제309전투항공사단
- 제213야간폭격항공사단
- 제2폭격항공군단
- 제223폭격항공사단
- 제285폭격항공사단
- 제2돌격항공군단
- 제231돌격항공사단
- 제232돌격항공사단
- 제2전투항공군단
- 제7근위전투항공사단
- 제322전투항공사단
- 제8전투항공군단
- 제215전투항공사단
- 제323전투항공사단
- 제11혼성항공군단
- 제4전투항공연대
- 제148전투항공연대
- 제293전투항공연대
- 제724돌격항공연대
}}}
}}}
}}}
}}}
}}}
}}}
3. 스파스-데멘스크 공세
8월 7일, 스파스데멘스크를 탈환하기 위해 소련의 5군, 10근위군, 33군이 공세에 동원되었다. 그러나 독일군의 강력한 방어에 공격은 돈좌되었고 소련군은 공병과 포병을 집중 동원해 독일군의 방어라인을 하나하나씩 벗겨내느라 하루에 불과 4km 밖에 진격하지 못했다.로슬라블을 돌파할 수 없음을 확인한 소련군 지휘부는 예비대로 돌려진 68군을 투입해 오룔을 돌파하기로 결정하고 독일군도 이에 맞서서 오룔에 2기갑사단과 36보병사단, 54보병사단을 추가로 증원했다.
8월 8일, 소련군은 오룔과 야르체보를 돌파구로 삼아 공세를 했지만 여전히 독일군의 저항은 강력했다. 치열한 격전끝에 56 근위소총사단은 코셀리키와 델랴기노, 드보르시를 해방했고 119 전차연대와 65근위소총사단은 223 고지의 독일군을 돌파하기 위해 공격을 가했으나 독일군 1개 대대병력의 완강한 방어에 돈좌되었다. 한편 222 소총사단은 즈유지키와 라즈키를 해방했고 164 소총사단은 호틸로브카를 해방했다. 그리고 160 소총사단은 슬루즈나의 독일군 요새를 포위섬멸했다.
8월 9일,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에도 소련군은 돌파구를 확대해나갔고 8월 10일에는 소련군이 드디어 223 고지를 점령하는데 성공하고 방어하던 독일군 대대 병력은 전멸하고 만다. 223 고지의 점령으로 인해 독일군의 방어선은 붕괴되었고 독일군은 황급히 철수작전에 돌입한다.
8월 13일, 소련군은 드디어 스파스-데멘스크를 해방하는데 성공했다. 소련군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돌파구를 확대해 38개의 촌락을 해방하고 일부 분견대가 고속도로를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8월 14일에는 소련군이 233.1 고지를 장악하는데 성공하면서 셰브티-다르나 지역에서 돌파구를 확대해나갔다. 그러나 15일에는 보급이 부족해진데다가 독일군이 기갑사단으로 방어하면서 레스코프에선 철수해야 했다.
8월 16일과 17일에는 소련군이 퇴각하는 독일군을 추격하는 와중에 독일군 기갑사단이 이를 지연시키면서 독일군의 퇴각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소련군 입장에서 안타깝게도 독일군 주력을 포위섬멸시키는데에는 실패하고 만다. 결국 8월 20일, 소련군 서부전선군은 40km 까지 진격한채 작전을 종료한다.
4. 옐닌스코-도로고부즈 작전
전력을 재편한 소련군은 옐냐와 스몰렌스크를 목표로 2차 공세를 실시하기로 결심한다. 소련군은 일주일 간 공세 준비를 마친 뒤 8월 28일 부터 10근위군, 21군, 33군을 동원해 옐냐에 대한 공세에 돌입했다. 90분 간의 강력한 포격과 소련공군의 공습은 독일군의 견고한 방어선을 파괴하는데 성공했고 소련군은 그 덕에 다음 날까지 폭 30km 깊이 15km 규모의 돌출부를 형성하는데 성공했다. 돌파구로 2근위전차군이 쇄도해들었고 옐냐에 주둔한 독일군 병력들은 그대로 포위되어버린다. 독일군은 결국 막대한 사상자가 발생한 채 결국 8월 30일, 옐냐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브랸스크
한편, 브랸스크에 위치한 고지대의 독일군 병력들은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대로 브랸스크 전선군에 의해 신속하게 점령되었다. 이에 따라 1벨라루스 전선군의 병력 투입이 용이해졌고 결국 독일군은 브랸스크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9월 6일까지 소련군의 공세는 지속되었으나 야르체보와 옐냐 근처 숲에서 벌여지는 격렬한 교전으로 인해 소련군 소총사단의 전투력은 저하되었고 결국 공세는 종료되었다.
5. 두홉쉬친스코-데미도브 작전과 스몰렌스크-로슬라블 작전
스타브카는 9월 7일 부터 9월 14일 까지 소련군의 전력을 재편시킨 뒤 스몰렌스크, 비텝스크, 오르샤의 탈환을 목표로 3차 공세작전을 실시하기로 결정한다. 예비 포격이 있은 뒤 칼리닌전선군 주력 병력과 서부전선군 일부 병력이 동원되었다. 칼리닌전선군은 전투 4일 뒤 스몰렌스크로 향하는 교도부인 두홉시나를 해방시키는데 성공했다. 한편, 서부전선군 병력들은 스몰렌스크-로슬라브 작전을 가동해 스몰렌스크의 철도 교통의 요충지인 야르체보를 탈환하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 스몰렌스크에 주둔한 독일군 9군 병력들이 포위 위협에 노출되었다. 결국 9군은 더 이상의 위치를 고수할 수 없었고 부대를 철수시켜야 했다. 9월 25일, 격렬한 시가전 끝에 스몰렌스크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었고 로슬라블도 탈환되었다. 소련군은 비텝스크와 오르샤도 탈환하기 위해 공세를 거듭했으나 소련군의 공세 역량 급감과 독일군의 전력 재편으로 인해 공세는 돈좌되었고 결국 10월 2일, 공세 작전은 종료되었다.소련군은 네 번째 작전기간 동안 100~180km를 진격했다.
6. 결과
소련군의 출혈도 컸지만 독일군은 이 작전으로 모스크바를 노리는 것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했다. 게다가 스몰렌스크에서의 공세와 남부전선에서의 공세가 같이 진행되면서 독일군의 전력은 분산되었고 그 덕에 우크라이나의 대부분을 소련군에게 넘겨줘야만 했다. 독일군은 전선을 겨우 안정화하는데 성공했지만 지속적인 전투력의 소모로 인해 병력의 열악한 상태, 예비 병력의 부족, 단위 부대의 담당 전선의 확장 등이라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산업능력으로는 이러한 손실을 결코 복구할 수 없었고 결국 이는 바그라티온 작전에서 중부집단군 전체가 통째로 파괴되어버리는 재앙으로 이어지게 된다.스몰렌스크는 이 전투의 영향으로 도시의 80%가 파괴되고 농촌의 50%가 파괴되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는다. 게다가 아인자츠그루펜이 자행한 전쟁범죄로 인한 피해도 있었다.